|
[책 속으로} 소설가 김영하의 첫 작품은 무협물 <무협 학생운동> 홈런타자 김봉연과 잠수함투수 방수원은 내 우상이었다. ...... <무협 학생운동>은 재미있고 흥미로우면서도 독특한 책이다. 1980년대, 정확히는 박정희 대통령의 죽음부터 시작해 1987년 6/29선언까지 일어난 학생운동을 무협물처럼 각색한 소설이다. 아무리 소설이라고는 하지만 학생운동의 역사를 무협에 빗대어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건 좀 무리수라는 생각이 앞선다. ... 대체 이렇게 글 잘쓰는 사람이 누굴까? 이 소설의 저자는 다름 아닌 김영하다. 작가는 소설가로 등단하기 전 연세대학교에서 석사과정을 다니던 중에 이 작품을 썼다. 열에 아홉은 모른다. 독두마왕 전두(전두환)와 노갈(노태우), 아메대왕(아메리카)이 백성들의 삶을 도탄에 빠뜨리고 잇다. 이에 젊은 무사(대학생) 류와 초아는 함께 중원의 평화를 위해 힘쓰기를 다짐하지만 나중에는 이들 역시 서로 문파가 갈려서 등을 돌리게 된다. 실제로 학생운동을 온 몸으로 겪었던 세대라면 재미와 함께 씁쓸한 감정을 느낄 만한 내용이다. 88쪽
김영환과 이석기. 나에겐 이러한 모순들이 서로 맞지 않는 퍼즐조각 같다. 누구도 알려주지 않고 굳이 알고 싶어 하지도 않는 1980년대의 그림이다. 이 땅에 평화가 깃드는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90쪽
윤성근 저자는 1975년생이군요. 이 땅에 평화가 깃드는 날은 과연 언제쯤일까? 라는 질문이 나온 날은 2016년 5월이었네요. 지금은 어떤 평가를 하고 있을지 궁금합니다. 저는 격동기를 지나고 있다고 생각되고 이 격동기를 어떻게 보내는가가 대한민국 국민의 앞날을 결정할 것이라 생각합니다. 호불호를 떠나 중요한 문제이니 많이 고민하고 결정하면 좋겠습니다. 에너지나 동력이 한 번 끊기면 다시 돌리는데 시간이 많이 필요하니까요.
|
|
작년에 출간한 저자의 '책이 좀 많습니다'를 보고 너무 실망해 살까말까 사실 좀 고민했다. 이거 또 낚이는거 아닌가...해서 말이다. 더우기 '책임 좀'은 출판사가 이매진이라는 좀 낯익은 곳이었던데 비해 이번 책은 모요사 라는 처음 듣는(미란하다 정말 첨 보는 출판사다) 출판사라 더욱 그랬다. 고민 고민 중이었는데 조선일보 북 판에서 어수웅 기자가 이 책을 소개하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 구입하게 됐다. '책이 좀' 보다는 내용이 충실하다. 사실 3분2는 내가 갖고 있는 책이고, 나 역시 한때 책을 구하러 다니면서 어려웠던 기억이 있었던 지라 재밌게 술술 읽을 수 있었다.
35년전 나는 전설적인 잡지 '뿌리 깊은 나무'를 창간호부터 종간호(폐간호가 맞는 말일지도 모른겠다. 강제적으로 간판을 내렸으니)까지 '탐서' 한 적이 있다. 권당 5백원씩 샀던 기억이 있는데 여러군데 서점을 돌아다니면서 결국 2년만에 임무를 완수했을때 그 벅찬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고은시집 부분에서 콧끝이 찡했던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이다.
탐서의 즐거움. 이건 정말 아는 사람만 안다. |
|
[탐서의 즐거움] 탐나는, 어느 탐서가의 헌책 탐닉기
정신은 경험의 노예이다. 경험을 초월한 무언가를 이루는 사람이 있긴 하지만 극히 드물다. 내가 장서에 큰 욕심이 없고, 최신판주의자이며, 책에 대한 감정이 묘한 것도 성장배경과 밀접히 관련 있다. 문학청년이었던 아버지는 밥을 굶지 않으면서 글을 쓰기 위해 공무원이 되었다. 하지만 스물에 가장이 되고 서른이 되기 전에 아비가 되는 ‘어른의 무게’는 녹록치 않았고, 습작할 때마다 그 시간에 벌 수 있는 한 푼이 아쉬웠다. 책을 쓰지 못하는 한을 풀려는 것처럼 아버지는 다람쥐처럼 집안에 책을 쌓고, 또 쌓았다. 그렇게 비좁지만 수천 권의 책이 있는 ‘책만 있는 집’이 만들어졌다. 처음엔 나의 신상 폐가 책 먼지와 곰팡이에 시름했고, 아버지의 정신줄 놓은 구매에 여러 번 분유 공급이 위기에 처했으나, 곧 공존하였다. 좋고 싫음을 판단하기 전에 이미 내게 주어진 책. 그 모든 책이 1990년 9월 수해로 사라졌고, 온 가족이 힘썼으나 26년이 지난 지금도 그 장서 수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을 그저 한국전쟁이 끝나고 난 후 어느 한때의 일이라고 생각하며 책을 덮을 수 있을까? 그 후로 수십 년이 지났다. 지금은 확실히 그때보다 더 자유롭고 좋은 세상이 되었을까? 그렇게 장담할 수 있을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사회는 여전히 존재한다. 그렇다면 앞으로도 또 다른 옷을 입은 광인 이야기들은 계속 나올 것이다. - p.31 about <광인일기>/강용준/1974/예문사
다행인지 불행인지, 우연인지 필연인지 모르지만 학생운동 세대를 가까스로 비껴간 나에게 당시의 사회 분위기는 안개처럼 아련한 느낌만 전해줄 뿐이다. 모든 것은 책으로 읽고 배워서 퍼즐을 맞춰나갈 수밖에 없다. 여전히 나는 이 퍼즐의 큰 그림이 어떤 모양인지 짐작조차 하기 어렵다. - p.88 about <무협 학생 운동>/김영하/1992/아침
이렇게 말해도, 현재 장서 수와 독서량을 고하면 상당히 많은 이들이 나를 책에 미친놈이라고 부를 것이다. 탐서의 즐거움이라. 인생 이력이 이렇다보니 독서와 장서에 취미를 붙인 지 얼마 안 되어 복숭아처럼 발그레해지며 책이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독자들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 <탐서의 즐거움>의 소재인 헌책 탐방에 대해서는, 나도 흔한 책쟁이들처럼 절판책 복간 애원, 전국 헌책방 수배 등을 한다. 적게는 수개월에서 많게는 십수년을 찾고, 태백도 가고 부산도 갔다. 저자와 달리 나는 내가 태어난 이후의 책, 거의 대부분 현 ISBN 체계의 책들을 찾는다. 나의 자주적 탐서는 한글을 깨친 5세 때부터 시작된다. 아버지는 자식이 머리가 얼른 커져 본인의 주옥같은 컬렉션을 같이 읽고 유의미한 토론을 나눌 날을 기다리며 아이 책 구입에 인색했다(돈이 없기도 하고). 하지만 아버지의 바람을 뒤로 하고 발달과정에 충실해 꼴리는 책을 읽던 나는 어머니를 따라 친척집으로, 이웃집으로, 쓰레기장으로 읽을 아이 책을 구하러 다녔다.
책이라고 하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람이 만들어낸 것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아 또다시 사람들에게 만들어낸 것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아 또다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책이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책은 절대 작고 보잘것없는 종이 뭉치가 아니다.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우주까지 날아갈 수 있고, 백 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형서점도 망하게 만들 수 있다. 사람들끼리 사랑하거나 미워할 수도 있으며 전쟁, 평화, 궁핍, 풍요 등 사람이 못할 일은 없는 것만 같다. 하지만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는 것 또한 책 때문인 걸 늘 감사하게 여겨야 한다. 이제 책은 ‘교양’을 넘어 ‘삶’을 향해야 한다. 오랜 세월 동안 책은 사람에게 너무도 많은 것을 베풀었다. 책은 친구이며 연인이고 삶의 동반자다. 그런 책을 위해 사람은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나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내가 일하는 헌책방 서가에 진열된 『세계사상교양전집』을 보고 있으면 서른 즈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둘 때 내가 했던 고민들이 책 속 글자처럼 한 줄 한 줄 이어져 흘러내린다. - pp.127~128 about 세계사상교양전집/을유문화사/1963~1975/을유문화사 나는 서울 은평구에서 ‘이상한 나라의 헌책방’을 운영하며 여러 권의 ‘책을 말하는 책’을 쓴 윤성근의 존재를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의 책과 가게에 구미가 당긴 적이 없었다. 위에 언급했듯 헌책 ‘수집’에 대한 욕구가 전혀 없고, 세상에 읽을 책이 이렇게 많은데 책을 말하는 책을 읽으며 안 읽어서 공유할 수 없는 감상을 느끼는 고역을 굳이 경험하고 싶지 않아서이다. 어느 라이브 책 방송에서 <탐서의 즐거움>을 같이 훑어보다가 꼭 읽어보고 싶어졌다. 이 책이 소개하는 30여 권의 책 중에 아는 책이 몇 권 있었지만, 살면서 구하러 갈 것 같진 않았다. 그리고 그 경험, 10살 넘게 많은 사람의 삶과 맞물린 경험은 내가 겪을 방법이 없었다. 원 없이 책을 읽고 죽을 방법이 없는 것을 한탄하는 내게 <탐서의 즐거움>은 훔치고 싶은 타인의 경험이었다. 그리고 기대하고 상상한 그대로의 책이어서 참 좋았다. 총천연색의 사진 덕에 다루는 책들의 외양을 구경할 수 있어 더욱 좋았다.
작년에 세계인구가 72억을 돌파했는데 아직도 60억이라는 이 아재는 몇 년에 사시는 것이냐, 지금도 유통되는 전혜린의 유고 에세이도 절묘한 편집의 맛이다 등 내가 아는 몇 가지가 걸리다가도, 내가 모르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것에 겸손해지나 불안해하며 감탄한다. 그 많은 이야기를 놔두고 내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어 스무 번 넘게 읽은 대목은 어린 소년이 윤성근이 정릉에서 여의도까지 자전거 타고 온 이야기였다. 인생 작가인 장준하를 예찬하는 대목엔 반가워 책을 껴안았다. 이문열 이후의 삼국지 완역․편역의 세계만 아는 내게 그의 <월탄 삼국지> 이야기는 흥미롭게 다가왔고, 번역에 대한 견해 차이는 지평을 넓히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내가 존경하는 박완서가 스스로 전집에서 빼길 요청했다는 <욕망의 응달>에 잠시 마음이 멈칫한 것을 보면 대에 걸쳐 고은의 <일식>을 찾는 부녀, 헌책을 좋아하다가 헌책방까지 차린 작가의 마음을 조금 알 것 같았다. 어떤 책은 똑같은 내용의 새 책 대신 오래된 책이 더 인기가 좋다. 예를 들면 신영복 선생의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같은 책이 그렇다. 이 책은 나중에 초판에서 누락된 내용을 덧붙여 개정증보판을 펴내기도 했지만 그래도 헌책방에서 손님들이 많이 찾는 건 햇빛출판사에서 1988년에 펴낸 초판이다. 그 이유를 곰곰이 생각해보면, 책을 갖고 싶은 간절한 마음이 생기도록 만드는 건 그 속의 내용도 중요하지만 결국 책이라는 물성 그 자체가 아닐까 싶다. 책을 작가와 동일시하는 것이다. 아무리 책 쓴 사람을 좋아한다고 하더라도 작가를 완전히 자기 소유로 만들 수는 없는 일이다. 그이를 내 책장 어느 곳에 모셔둘 수는 없다. 책이라면 가능하다. 잘 쓴 책을 읽는다는 것은 본문을 평 때마다 살아 있는 작가를 만나는 것과 같다. 그러니 작가와 더 가까운 느낌을 받을 수 있는 책을 원하는 것이다. 그런 책은 초판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책에 오류가 좀 있더라도, 장정이 새 것과 비교해서 허술하더라도, 세로쓰기에 맞춤법이 개정되기 이전에 펴낸 책이라도, 본문 안에 한자가 많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오직 처음에 출판된 책만이 작가의 첫 온기를 품고 있다고 믿는다. 우선은 나부터가 그렇다. - p.203 about <장준하 문집>/장준하/1985/사상 책을 덮고 (헌책이) 오래되고 낡았으나 마음을 데운다는 부제 표현에 한참 눈이 머물렀다. 나는 쓰기 위해 읽는 사람이고, 성장배경과 기질 때문에 장서와 헌책에 작가만큼 애정이 없다. 그러나 나 역시 작가처럼 책의 물성을 통해 책에 내 기억을 얽고, 책으로 나와 타인의 기억을 연결하며 무언가를 겹쳐 본다. 내가 ‘책을 말하는 책’을 읽기를 꺼리는 것은 시간 여유가 없고, 그런 책 중 고담준론인 것을 싫어한다는 것을 이런 책이라면 얼마든지 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좋아하는 것에 대해 그것을 좋아하는 이야기에 충실한 책. 생각과 경험이 갈리더라도 그런 마음이 담긴 책을 보면 전혀 찡그리게 되지 않는다. 문득 궁금해진다. 어쨌든 흐를 세월에 늙어간 나만큼 골동책이 될 나의 오랜 책들을 늙은 내가 어떻게 대할지, 간절한 바람대로 내가 최대한 빠른 시일 내 책을 내 내 책이 누군가의 ‘애틋한 헌책’이 되면 어떨지. 이렇게 나의 즐거운 <탐서의 즐거움> ‘탐독’이 끝난다. 자, 한 책이 끝났으니 가서 다음 책을 탐합시다. |
|
잠자는 책은 이미 잊어버린 책 이 다음에 이 책을 여는 것은 내가 아닙니다. _ 김수영 <서책> 중에서 193쪽 1991년 민음사에서 펴낸 화엄경이전까지 고은의 문학세계 는 허무주의라는말로 대신할 수 있다화엄세계에 들어서기 전 고행의 여정이라고 할까? 1990년대 이전 작품을 보면 어느 것 알 것 없이 소설 속에 자리 잡은 먹먹한 감정이 독자들 가슴을 짓누 른다. 그중에서도 1974년에 초판을 펴낸 잘 알려지지 않은 장편 소설 일식을 얼마 전에 구할 수 있어서 읽어보았다. 헌책방에 가끔 오시는 집요한 성격이 한 손님이 아니엇다면 이 책을 영원히 모르고 살았을지도 모른다. 아직 중년의 나이가 되 지 않았지만 말투나 행동은 이미 중후한 매력을 풍기고 잇는 좀 수상한 느낌의 손님인데, 어느 날 고은 시인의 책을 찾는다며 보 이는 대로 좀 수집해달라고 부탁하는 거였다. 무슨 책이든지 중 복되는 것만 아니면 다 사겠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때ㅔ까지 고은에 대해서 내가 알고 있는 것이라곤 시인이라는 것, 한때 승려였다는 것, 그리고 노벨문학상 발표 시즌만 되면 늘 그 이름이 ...... 195쪽 출판사는 일식이 신비의 작가 고은이 무려 미국 의 무당 출간 삼 년 전에 그의 냉혹한 메스로 파헤친 정신분열증 환자인 15세 소녀의 성과 사랑의 비밀한 방 정식이라며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면 무당이라는 책은 또 무엇인지 궁금해진다. 미국 작가가 쓴 책일 텐데 제목은 무당이라니, 그것부터가 좀 수상하다. 알고보니 무당은 윌리엄 피터 블래터의 1971년 작품인 엑 소시스트가 우리나라에 들어오면서 붙은 번역 제 목이다, 사연을 안다는 것. 그리고 멋진 작가의 작품 중 널리 알려지지 않는 작품을 나만 안다는 것. 그것은 또 하나의 재미로 충분하지요. 오늘 저는 또 하나의 재미를 만났습니다. |
|
미안한 마음이 든다. 샀는데 마음에 들어 샀는데 읽지 않는다는 것은 미안한 일이라 생각된다. 미안하다. 그래서 일단 한 대목 적어본다. 43쪽 얼마 전 헌책방에서 한 무더기 책이 새로 들어왔다. 책이 들어오 면 헌책방 일꾼이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끈으로 묶어놓은 책을 풀어서 분야별로 분류하는 것이다. 빨리 하기 위해서 보통은 문 학, 역사, 철학, 예술처럼 큰 덩어리로 먼저 나눈다. 그다음에 이미 분류된 책들을 하나하나 살피며 다시 분류한다. 그렇게 해 서 몇 덩어리로 나눈 책들을 깨끗하게 닦고 난 다음부터 한 권 한 권 책 정보를 살피기 시작한다. 책이라는 이름을 달고 세상에 태 어난 이상 가치 없는 것이 있겠냐마는 가격을 매기기 위해서라 도 책들의 계급을 나눠야할 필요가 있다. 이게 참 곤란한 문제다. 전혜린의 수필집 목마른 계절. 1976년 범우사 초판. 내게 모인 이 책들을 다시 살펴줄 필요성을 오늘 다시 생각한다. |
|
당신은 책을 좋아하시나요? 어렸을 때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었던 적도 있습니다. 그러다 머리가 커지며 독서는 취미가 아니란 말을 듣고 취미란을 그냥 비워두기 시작한 때도 있었고요. 독서란 우리가 살아감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공기나 식사처럼 그런 필수의 행위란 뜻으로 취미가 되어서는 아니 된다, 그때 누가 그런 말을 하였겠지요. 그리고 그 말이 참 멋있게 느껴졌더랍니다. 그래서 취미란에 독서라고 적는 것은 인간적인 삶을 살지 않는다고 적은 것과 같단 느낌이 들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이제 나이가 더 들고나니 그런 것들이 무어 그리 중요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결국은 말의 뜻풀이로 해보는 가볍지만은 않지만 그렇다고 사는데 큰 변화를 가져다줄 그런 심오함도 없는 그런 유의 말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것은 인생에 독서의 중요함을 말하고자 함이었을 뿐이겠지요.
나는 요즘 책 좋아하느냐는 질문에 그런지 아닌지 금방 대답을 하질 못하겠습니다. 그런 질문을 받으면 질문할 사람이 답답함을 느낄 정도로 음~ 하며 제법 긴 시간을 생각해보게 됩니다. 질문한 사람은 어쩌면 이미 정해진 답을 가진 채 질문을 하였는지도 모르겠지요. 사실 그 질문이라는 것이 영업을 위해 필요한 말이 아닌 이상, 주변의 친지들이나 동료들의 질문이라면 분명 책을 보는 혹은 독서를 하는 걸 목격한 후에 그런 질문을 하기 마련입니다. 그래서 질문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책을 자주 본다고 느끼는 사람에게 그런 질문을 하게 되지요. 그럴 때 내가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는지 잠시라도 뜸을 들이며 대답을 빨리해주지 않으면 그래서 약간 주저하듯이 말을 하면 그들은 대부분 책 좋아하잖아!라고 말을 해줍니다. 답을 알면서 왜 묻는 건지도 모르겠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나에게는 그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찾지 못한 듯합니다.
분명 나는 책을 좋아할까라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면 잘 모르겠습니다. 분명 한국인의 평균 독서량보다는 더 많은 책을 읽고는 있지만 진정으로 책을 좋아하고 독서하기를 좋아하는 사람인지 솔직하게 잘 모르겠습니다.
책과 관련된 소설 중에 마음을 빼앗기 듯이 재미나게 본 소설이 몇 권 있습니다. 지금 생각나는 책은 발터 뫼어스의 [꿈꾸는 책들의 미로]와 아르투르 페레스 레베르테의 [뒤마 클럽]인데 특히 [뒤마 클럽]에서 책 사냥꾼들의 이야기는 마치 인디애나 존스가 세계의 보물을 찾아 다니 듯한 모험담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그와 유사한 책 사냥꾼에 관한 소설이 있었지만 그리 달가이 이야기할만한 소설은 아닌 듯하단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좋아하는 것과 독서를 즐겨 하는 것은 분명 다른 것이겠지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책을 좋아하는 사람과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을 동일하게 보기는 하는 듯합니다. 그것은 책을 좋아하지 않으면서 독서만 즐기는 사람은 거의 없을 듯하지만 책을 고르고 찾음에 있어 독서와 상관없이 책만을 찾는 이들도 분명 이 세상에 존재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읽기 위한 책보다 소장하기 위한 책으로써 말입니다.
[탐서의 즐거움]에서 탐서探書는 서적을 찾는 즐거움이란 의미가 아닐까 싶습니다. 지금은 쉽게 책방이나 주변에서 볼 수없는 책들, 한마디로 희귀본이 되어버린 책들에 대한 이야기로 흥미를 돋우게 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합니다. 헌책방을 운영하고 있는 저자가 자신만의 어떤 기준으로 책을 찾아다닌 이야기와 책 속에 등장하는 지금은 쉽게 볼 수 없는 서른 권쯤의 책들에 관련된 이야기들을 펼쳐 보여주는데 말 그대로 구매 욕구를 자극하게 만들어주는 그런 책이 아닌가 합니다. 마치 아주 화려하게 꾸며진 백화점 명품관의 카탈로그처럼 나의 능력은 아니되지만 갖고 싶은 마음을 가지게끔 만들어주는, 이 책 역시도 독서의 즐거움보다는 책을 찾아내는 즐거움, 지금은 많은 사람들에게 잊혀졌으며 쉽게 구해서 읽을 수 없는 책을 가진 자의 즐거움을 말해주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하여 책을 읽는 어떤 이들은 몹시도 부러워할 것이며, 또 어떤 이들에게는 나도 저와 같은 일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꾸게도 만들어주는 그런 책이 아닐까 싶습니다. 오래전에 만들어진 많은 책들이 분류가 명확히 되어 있지 않아 쉽게 찾아낼 수 없을 것이며 전국에 흩어진 헌책방들을 훑으며 예기치 못하게 만나는 반가운 책들도 있었을 것이며 길을 떠났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적 또한 많았을 테지요. 그런 여정들이 탐서 속에 스며들어 있단 생각에 탐서가探書家들이 찾아낸 책에 더 의미가 있지 않나 싶습니다. 그렇게 저자의 손에 들어온 책들의 이야기에는 그 책이 가진 이야기와 함께 새로이 덧입혀져 탐서의 이야기들로 흥미진진합니다.
지금은 세상에서 잊혀진 책을 찾아 탐험을 떠나는 책 탐험가의 이야기.
간혹 사람들은 질문을 하곤 합니다. 책을 좋아하느냐고 말입니다. 그 질문의 의도는 책을 좋아하는 것을 묻는 것일까요? 독서를 좋아하느냐고 묻는 것일까를 고민하는 것은 어쩌면 지나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
|
옛 책, 헌책 오래된 책의 매력이라 ......
그걸 다 알 수 있는 나이는 아니고 어느 정도 안다고 생각하다가 교보문고에서 이 책을 구입했습니다. 좋은 기회가 있어서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교보문고에 책이 참 많다 그리고 책을 매개로 모인 사람도 참 많다 그러다가 책도 사고 크리스탈 퍼즐로된 Owl도 샀습니다. 지금 제 앞에 있습니다. 올빼미가 손잡이인 드라이버 세트도 샀고요. 이 역시 제 앞에 있습니다. 이런 글을 수필 또는 에세이라고 할 수 있겠지요.
윤성근 저자가 쓴 탐서의 즐거움 중에 한 쪽을 같이 보시지요.
41쪽입니다. 폐지로 버려질 뻔한 전혜린의 수필집 목마른 계절, 범우사, 1976년 1976년이 이렇게 오래 전으로 느껴질 줄은 몰랏네요 ......
44쪽
게다가 다른 허접한 책 더미 속에 파묻힌 저 가녀린 문고본은 1976년 범우사에서 펴낸 초판 이다 나는 깜짝 놀라 얼른 쌓여있는 다른 책들을 치우고 죽어 가는 전혜린을 구조했다.
전혜린은 법학도였으나 도중에 전공을 독일문학으로 바꾸고 독일로 건너가 뮌헨 루트비히 막시밀리안 대학교에서 공부했다. 1956년 결혼해 딸을 낳았지만 1964년에 이혼했고 성균관대학 교 조교수로 일하다가 이혼 다음 해인 1965년 수면제 과다복용 으로 사망했다. -중략- 그리고 사후에 나온 책으로는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앟았다와 이 모든 괴로움을 또 다시가 있다.
1960년대에 나온 두 책에 비해 목마른 계절은 앞선 책에 있 는 내용을 발췌해서 한 권으로 만든 것이기 때문에 당연히 독자 들 사이에서 인지도는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책을 만듦에 있어서 편집이란 바로 이런 맛이 아닌가. 먼저 나온 책이 제대로 정리도지않은 전혜린의 글들을 아무런 수정 없이 그래도 실었다 면 목마른 계절은 이것을 절묘하게 편집했다. -중략-
마치 비가 내리는 것처럼 세로쓰 기로 편집된 일기는 희망과 설움, 삶과 죽음이 동시에 뒤범벅이 된 소낙비 래리는 강물 같다, 모든 것은 그렇게 무의미하다. 나는 내 자신과 내 분노를 증오시해서는 안 된다. 나는 어느 책으로 인 해 죽지 않는다. 그러나 누가 알겠는가? 바로 이와 같은 무의미한 감정으로 인해 헐값으로 죽을지도 모른다. 나는 죽음조차도 기 뻐하지 않는다. 하지마 나는 여러 번 그것을 갈망했다. 모든 것이 그렇게 무의미하기 때문에.
전혜린이 쓴 책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여저히 절판된 것 없 이 새 책으로 만나볼 수 있다. 그만큼 독자들이 계속해서 전혜린 을 찾는다는 말이고 ......
예전에 저도 한 권 샀던 것 같습니다. 별로 그 가치를 몰랐엇지만 이제 다시 그 때로 돌아간다면 조금 더 정성들여 읽고 생각해볼 것 같네요. 무슨 얘기를 저자는 하고 싶었을지 말이지요. 그냥 내 감정과 비슷하네라는 생각만 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탐서의 즐거움은 예전의 기억과 지금의 제 각오를 동시에 깨워 일으켜세우는 책이네요. |
|
책읽기 삶읽기 257 책 한 권을 찾는 손길 ― 탐서의 즐거움 윤성근 글 모요사 펴냄, 2016.5.16. 15000원 책 한 권을 찾으러 책방으로 마실을 갑니다. 어느 책을 만날는지는 모르지만, 저마다 마음에 스며들 이야기가 깃든 책을 찾으러 책방으로 마실을 갑니다. 오늘날에는 책방마실을 하지 않아도 인터넷에서 책을 찾아보기 쉽습니다. 인터넷으로 책을 장만하기 쉽고, 인터넷에서 줄거리를 살피기 쉽습니다. 가만히 따지고 보면 새책이나 헌책이나 줄거리는 모두 같고, 종이책이나 전자책이나 줄거리는 다 같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책을 읽든 우리는 늘 이야기를 읽는 셈입니다. 정작 내가 이 책을 가장 귀중하게 여기는 이유는 잡다하게 모아 놓은 산문들 중 하나인 〈회사원과 매몰광부〉라는 짧은 글 때문이다. (22쪽) 《죠스》의 번역 초판 제목은 황당하게도 《아가리》다. 이러니 어떤 곳에서도 검색에 걸리지 않은 것이다. (80쪽) 줄거리를 잘 훑기에 책을 잘 살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줄거리를 모르더라도 책을 못 읽거나 안 읽었다고 하지는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책을 손에 쥐고 읽을 적에는 ‘줄거리 외우기’를 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나름대로 새로운 생각을 얻으려는 뜻으로 책을 한 권 만나려 합니다. 더 많은 책도 아니요, 더 꼼꼼히 살피는 줄거리도 아니라, 더 즐겁게 삶을 짓는 슬기롤 다스리려는 뜻으로 책 하나를 만나려 하지요. 김영하의 진정한 첫 번째 소설은 《무협 학생운동》이다. 김영하 작가를 좋아하는 많은 독자들 가운데 과연 이런 소설이 존재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 (87쪽) 책이라고 하는 것을 어떤 마음으로 대해야 하는지 정답은 없다. 그러나 한 가지, 사람이 만들어 낸 것 중에서 가장 오랫동안 남아 또다시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 책이다. (127쪽) 윤성근 님이 쓴 《탐서의 즐거움》(모요사,2016)은 윤성근 님 나름대로 스스로 좋아하는 책을 찾아나선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다른 사람이 추천하기에 어느 책을 더 좋아하지 않습니다. 널리 알려진 책이기에 그 책을 이녁도 좋아할 만하지 않습니다. 책 한 권을 찾아나서려는 사람 스스로 마음에 들 때에 비로소 그 책을 좋아할 만합니다. 오래도록 남을 만하기에 좋아할 만한 책은 아닙니다. 값어치가 크기에 더 좋아할 만한 책이 아닙니다. 즐겁게 읽을 만하기에 책을 찾아나섭니다. 기쁘게 되새기면서 마음밥으로 삼을 수 있기에 책 한 권을 찾으려고 오래도록 여기저기 책방마실을 다닐 수 있습니다. 지금 다시 《이방인》을 읽어 보아도 나는 딱히 번역에 대해서 이러쿵저러쿵 말하고픈 생각이 들지 않는다. 심지어 1950년대 판본을 읽으면서도 충분히 좋은 문장이라는 느낌을 받는다. (190쪽) 나는 《이방인》뿐 아니라 《어린 왕자》도 《베토벤의 생애》도 《독서술》도 꽤 오래된 번역으로 읽었습니다. 1950년대에 나온 번역이라고 해서 2010년대에 못 읽을 만하지 않습니다. 왜 그러한가 하면, 1950년대나 1930년대 번역이라 하더라도, 또 1970년대나 1990년대 번역이라 하더라도, 외국말을 한국말로 옮기려고 마음을 기울인 사람들이 흘린 땀방울을 느끼면 즐겁거든요. 요새는 잊혀졌을 수 있지만, 오래도록 사람들 가슴에 스며든 말결하고 말투를 예전 번역책에서 느낄 때에도 즐거워요. 새로 나오는 책은 새로 나오는 책대로 사랑받기를 빌어요. 오래된 책은 오래된 책대로 사랑받을 수 있기를 빕니다. 이 모든 책이 우리 마음을 아름답게 가꾸는 밑거름이 되기를 빌어요. 꿈을 노래하고 사랑을 밝히는 책 하나를 즐겁게 가슴에 얹을 수 있기를 빕니다. 2016.6.21.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책읽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