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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어 사전(나탈리아 긴츠부르그)을 읽고
<가족의 삶과 기억은 바로 나> 특이한 문체의 소설을 발견했다. 감정에 토로하지 않고 담담하게 건조체로 서술한 이 소설. 가계도와 주요인물로 시작하는 이 소설을 보며 처음엔 가계도까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1차 대전 이후의 시간과 2차 대전을 겪으며 보낸 시간이 오롯이 표현된 작품이며 소설이되 소설이 아닌 그런 작품이다. 이 글의 화자인 나탈리아는 지노, 파올라, 마리오, 알베르트 터울 많은 4명의 언니, 오빠를 둔 막내로 태어났다. 어린 나탈리아의 입장에서 언니, 오빠의 행위와 말들, 그리고 이에 대한 아빠와 엄마의 대응과 행동들을 기억에 의존해 서술하며 이야기를 이끌어 간다. 어린 화자의 기억에 의존해 서술해서인지, 가족들의 행동에 대해 객관적인 느낌이 들 정도로 표현해 심지어 사건을 문장의 나열로 그친 느낌까지 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월하게 죽 읽어나갔다. 소설을 읽자마자, 예전에 읽었던 방송인이며 이탈리아인인 ‘알베르토 몬디’의 ‘이탈리아의 사생활’의 한 대목 “한국은 교육수준이 높지만, 교양수준은 그렇게 높지 않다.”는 말이 생각났다. 나탈리아 가족이 비록 논쟁을 벌이기도 하지만, 그들이 나누는 정치적 견해에 대한 토론, 시 쓰기를 일상화 하는 것, 오페라를 향유하는 것, 국경을 자유로이 넘나들며 오가는 여행, 등 현재 우리 일상의 가정에서도 벌어지지 않는 일을 다반사로 겪으며 살아가는 모습에 일종의 문화적 충격을 받았다. 또한 부럽기도 했다. 1920년대 이후 유럽의 모습이 비록 계층이 다른 가정의 모습이지만, 현저한 차이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그렇게 차이가 나던가? 하며. 그리고 어렵다고 하면서도, 매년 여름이면 2개월가량 산 가까이 집을 임대해 휴가를 보내는 모습이 또한 부러움으로 다가왔다. 이탈리아의 정치적 상황은 파시즘으로 치닫는 형국이었으나, 이 가정은 철저히 반파시즘을 고수하며 정치적 시련을 받기도하고, 피하기도 하며 그 세월을 살아간다. 국가적으로도 개인적으로 역동적이기도 하고, 역경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는 시기임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에서는 그 고통을 간결하게 표현해 독자는 아프게 느낄 사이가 없이 역사적 사실이었음을 알고 지나가는 정도이다. 심지어 나탈리아의 첫남편 레오네 긴츠부르그는 정치적 박해로 유형생활 20년 중 건강이 나빠져, 10년 감형으로 나와 며칠 만에 사망하지만, 그 순간을 너무도 간결하게 표현해 쓰윽∼ 읽으며 넘어갈 뻔할 정도였다. 다시 책장을 넘기며 어떻게 이렇게 간결하게 표현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물론 레오네의 사망은 이후 다시 서술되지만, 놀라운 서술이었다. 기억을 이용해 서술하는 방식이라 시간의 흐름에 따르기는 하지만, 사건의 연상에 따라 유사한 내용이 반복되기도 하는 자유연상과 유사한 느낌이었다.
이 소설을 읽어가며 이 부분이 ‘가족어사전’을 대표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닐까 하며 읽어갔는데, 마지막에 가서도 그 생각은 변치 않았다. P36 ∼P37 우리 형제는 5남매다. 우리는 각기 다른 도시에 살고 있으며 어떤 형제는 외국에 산다. 그리고 편지 왕래도 자주 없다. 만났을 때도 서로에게 무관심하고 신경을 쓰지도 않는다. 하지만 우리들끼리는 단 한마디면 족하다. 단한마디, 한 문장, '우리 메르가모에 소풍 온게 아니오.‘라든지∼ 이런 문장들은 우리가 살아 있는 한 존재하게 될 우리 가족 간의 연대감의 토대를 이루면서, ∼ 성급한 아버지의 목소리가 우리의 귀에 울리게 될 때, 지구상의 이곳저곳에서 이런 말들이 다시 창조되고 살아날 것이다. 독선적이고 폭력적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 정도의 아버지조차도, 또한 좋던 싫던 가족과 지내왔던 생활상과 기억은 고스란히 그들의 정체성과 그들 자신으로 만들어져, 바로 그 기억과 그 연대감이 그들임을, 그들을 만들었음을 말해 준다고 본다. 나 또한 내가 겪은 삶의 전체가 바로 나를 만들었지 않다 싶다. 그래서 입양되어 자신의 출생과 생물학적 부모를 모르는 경우, 구태여 알아내기 위해 애쓰는 사람들의 모습에서 자기 정체성을 만들어 가려는 안간힘을 볼 수 있지 않나 싶다. 소설 내용 중 정말 부러웠던 장면, 장면들은 한 나라에서만 정착된 삶이 아니라, 자기 선택에 따라 자유롭게 국경을 넘나드는 모습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었다. 남북 분단의 상황에 한국인들은 대륙과도 떨어진 섬처럼 살았기에 널따란 대륙을 오가는 삶이 부럽다. 근래 문재인 정부의 노력에 따라 남북 상황이 유연해지긴 했지만, 아직 갈 길이 멀어 보인다. 우리 자손들은 한반도 남쪽과 북쪽으로 한정된 삶을 살지 않는 날들이 어서 오길 잠시 빌어본다. 소설은 <아버지가 고함쳤다.>로 시작해, <아버지가 말했다 "도대체 그 이야기를 몇 번이나 들었는지 모르겠군!"> 끝난다. 마치 시의 수미상관같은 구조다. 글의 시작도 끝도 삶은 그러니까 계속된다. 그런 말인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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