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래 전부터 읽고 싶었던 작가와 번역가의 작품이다. 하지만 인연이 닿지 않아 생각만 하고 있다가 독서모임 책으로 정해지면서 바로 주문했다. 적절한 두께에 깨끗한 새 책을 택배로 받을 때면 언제나 기분 좋다. 이번엔 그 기쁨이 얼마 가지 않았다. 아기가 커피를 쏟아 같이 온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와 이 책에 얼룩이 졌다ㅜㅜ 졸지에 헌 책이 되어버렸다. 별 거 없는 인생사에서 이 정도 일은 아무것도 아니다. 이렇게 마음을 다잡고 <섬>을 넘겼다. 첫장을 넘기니 까뮈의 추천사가 등장한다. 까뮈는 이 책을 알제에서 스물 살 때 읽었는데 앙드레 지드의 <지상의 양식>에 버금간다고 칭송한다. 장 그르니에의 작품 가운데 <알베르 까뮈를 추모하며>라는 책도 있다. 둘의 관계도 상당히 궁금하다. 나중에 찾아봐야겠다. 이 책은 8편의 단편들로 엮여 있다. 하지만 모두 하나의 이야기처럼 느껴진다. 비슷한 분위기의 나른함이 있어서 그럴까? 얼마 전 읽은 책에서 '몽상하라'고 말했다. 심심함 속에 창조의 영감이 찾아온다고 말이다. 저자의 삶이 바로 그렇다. 창밖의 이웃집 나무를 보는 것 외에 그의 생활은 은둔이다. 특별한 것 없는 일상 속에서 그는 해탈과 초월을 경험한다. 난 인생을 살면서 감사해하는 것 중 하나가 시골에서 자란 유년 시절이다.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시골에서 자란 사람은 은연중에 외로움을 깔고 살지 않나 싶다. 저녁이 될 무렵 하늘의 변화무쌍한 구름 모양과 새벽녁 밤하늘을 일상에서 접하는 경험은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다. 넋을 잃고 바라보며 우주 안에서 내가 작아지는 경험 말이다. 장 그르니에는 바닷가에서 산 경험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바다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부지런히 바다와 접촉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내 마음속에서는 만사가 헛된 꿈과도 같은 것이라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다." 29쪽 그리고 또 하나의 중요한 경험은 동물과의 접촉이다. 그에게는 바로 고양이다. "어렸을 적에 짐승들과 가까이 지내며 자란 사람에게는 커서 또다시 그들과 함께 지낼 수 있다는 것이 커다란 기쁨이다." 55쪽 고양이 물루는 단순히 반려동물이 아니라 철학적인 존재다.
하지만 이사하면서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 수의사에게 3프랑을 주고 안락사시키는 결말에서는 뭐라 할 말이 없다. 갑자기 현실적인 존재로 변한 것 같다. 아이의 탄생에 경이로워하다가 생활고로 보육원에 보내버리는 결말의 이야기를 듣는 느낌이랄까;;
저자는 풍경 속에서 충만감을 느낀다. 그의 표현은 충격적이다. '나 자신의 탄생을 목격하는 느낌'이라고 했다. 물아일체를 넘어선 그 어떤 것을 획득한 걸까?
|
|
추천 받아서 산 책인데 너무 번역체라서 글이 안 읽혀요. 주어와 서술어 호응이 안 맞아서 순간순간 돌아가서 다시 읽어요;;;; 그리고 콤마를 너무 자주 써서 거슬려요. 28쪽 하단부분을 예로 들자면 [바다 가까운 곳에서 지내고, 부지런히 바다와 접촉하면서 살았기 때문에~] '고' 뒤에 콤마가 굳이 필요없는데 (그리)고 뒤에 계속 콤마를 쓰시네요ㅠ 잘못된 거는 아닌데 매문장마다 저렇게 되어있어서 조금 거슬리네요...ㅠㅠㅠ |
|
박웅현의 '책은 도끼다'에서 처음 알았고, 알베르 카뮈의 스승이 쓴 책이라 하여 꼭 읽어보고 싶은 마음만 있었습니다. 그러고 며칠 후 인터넷 한 글에서 '섬'과 관련하여 쓴 게시글을 우연히 보게 되었고, 바로 구매하여 읽어보았습니다. 책 서문부터 알베르 카뮈의 추천글을 통해 얼마나 존경받아왔던 스승인지 느낄 수 있었고, 장 그르니에의 글을 통해서는 마음이 여유와 안정을 찾을 수 있었습니다. |
|
장 그르니에를 알 게 된 건 역시나 우리에게 보다 잘 알려진 알베르 카뮈 때문이었죠. <섬>이라는 책이 무얼 어떻게하여 스무 살의 카뮈를 충격에 빠뜨렸고, 길거리에서 읽다말고 정신없이 집으로 달려가 자신의 방에 황급히 들어가게 했는지, 그리고 훗날 그 만한 찬사를 이 책과 학교 스승인 작가에게 전하게 되었는지 알고 싶은 마음에 집어 들었던 것이죠. 내가 <이방인>을 처음 읽으면서 느낀 그 마음들 보다 더 큰 충격이고 떨림이었을까? 무언가를 결심하게 만들었을까? 그런 것들이 너무나 궁금해서 저도 그처럼 이 책을 아무도 없는 조용한 방에 조용히 앉아 읽어내려가게 되었습니다. 몇 시간을 미동도 없이 읽고난 그 마음. 나만의 섬. 장 그르니에에게, 그리고 기회를 선물한 카뮈에게 뒤늦은 감사를 보냅니다. 책에 관해서는 온전히 혼자 갖고 있겠습니다. |
|
바라보는 존재로 만족할수 있는 삶이다. 이런 관조의 삶이 궁극적 이상향이다. 까뮈의 스승이었던 그르니에의 생에 대한 깊은 고찰.... 단순하면서도 충족된 삶, 그것이 평생토록 추구되어야 할 원칙이다. 거죽의 비순수함과 위선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기.바라보는 존재로 만족할수 있는 삶이다. 이런 관조의 삶이 궁극적 이상향이다. 까뮈의 스승이었던 그르니에의 생에 대한 깊은 고찰.... 단순하면서도 충족된 삶, 그것이 평생토록 추구되어야 할 원칙이다. 거죽의 비순수함과 위선을 벗어 던지고 본래의 순수한 모습으로 돌아가기. |
|
나의 뇌의 에너지 총량은 이 한겨울에도 범람하는 파도에까지 이르렀다. 닿지 않는 곳에 미세하게 닿아 있는 지금에서야, 한참 늦은 결구를 맞이했다. 잠깐의 틈으로 만들어낸 알량한 가설 하나일지도. 갸우뚱하는 반절의 정답일수도. 하지만 빛의 유무를 실컷 떠들어댄 지난날이 있었다면, 이제는 색채를 가미한 생명으로의 진전을 꾀하고자 한다. |
|
책이라는 존재는 배움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다. 가정에서는 부모님에게, 학교에서는 선생님에게, 사회에서는 사회적 분위기에서 자연스럽게 그런 가치를 배우게 되고 거기에 다다르지 못하는 책은 가십거리정도로 취급된다. 언제나 이성이 우선시되고, 이성에 의해 감성은 자제되도록 교육을 받는 환경에서 어쩌면 그건 당연하다. 하지만 이성을 담당하는 좌뇌와 감성을 담당하는 우뇌의 존재는 어느 것이 더 우월 하느냐의 문제로는 설명되는지는 않는다. 생존의 필요에 의해 그렇게 진화해 온 것이니 동등하게 그 중요성을 가지고 있다. 논리적인 사고와 정확한 분석을 통한 사고는 수학처럼 딱 떨어질지 모르지만 주위를 보지 못한다. 가을이면 떨어지는 낙엽을 보고 논리적으로 분석적으로 과학적으로 생각하는 인간만이 존재하게 된다. 책이라는 존재는 배움만을 전제로 깔고 있지 않다. 활자로 된 세상은 우뇌를 자극해 감성이라는 안테나의 반경을 더욱 넓혀주며 더 날카롭고 예리하게 해 준다. 그냥 스쳐지나갈 작은 세상들, 너무나 평범해서 존재조차 깨닫지 못하던 것들을 느끼게 해주며, 인지하게 해주며, 공감하게 해 준다. 따라서 책이 꼭 배움을 전제로 할 필요는 없다. 우리의 촉각을 곤두세울 수 있는 책이라면 그 자체로 좋다. 하지만 ‘책=배움’이라는 공식에 익숙한 나에게 마음을 움직이는 아름다운 글귀들은 풀리지 않는 난해한 수학문제처럼 이해되지 못하고 머리 속에서 맴돌기만 한다. “겨울 숲 속의 나무들처럼 적당한 거리에 떨어져 서서 이따금씩만 바람소리를 떠나보내고 그러고는 다시 고요해지는 단정한 문장들. 그 문장들이 끝나면 문득 어둠이나 무, 그리고 무에서 또 하나의 겨울 나무 같은 문장이 가만히 일어선다. 그런 글 속에 분명하고 단정하게 찍힌 구두점. 그 뒤에 오는 적막함, 혹은 환청, 돌연한 향기, 그리고 어둠, 혹은 무, 그 속을 천천히 거닐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p.16-17” 이 책을 옮긴 김화영의 말처럼 글을 만져보고 냄새맡고 싶다. |
| 장 그리니에의 전집 섬을 읽고. 여러가지의 이야기들이 모여있어 시간 날때마다 끊고 읽을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가장 강렬하고 기억에 오래남는 첫번째 글 입니다. 저마다의 인생에는 여명기에 결정적인 순간이 있다는 것. 이미 어렸을적결정지어진 인생을 말하는 것 같기도 하고 여명기는 다 다른 시기일 수도 있으니 아직 기대할만 한 희망이 있다는 뜻 인것 같기도 합니다. 후자에 더 마음을 기대보았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