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사진이 묻고 철학이 답하다 – 이광수, 최희철(2017.06.26.) 사진과 철학... 가까울 것 같지만, 가깝게 연결되는 단어는 아닌 것 같다. 어떻게 담았을까 이 책은 사진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하나의 사진을 두고 서로 이야기를 담아둔 것이다. 사진이 앞에 나와 있지만, 사진은 이야기를 꺼내기 위한 발화점이고 담겨진 삶의 이야기를 여러 각도에서 말한다. 사진은 이광수 교수가 인도를 여행하며 찍고, 그 사진과 이야기에 대해 사진가는 보고 시인은 읽는다. “갇혀 있는 것들에 대한 사유” 무엇인가 갇혀 있는 사진이 있다. 이를 사진가는 갇혀 있는 성소를 보며 개인과 사회의 단절을 안타까워한다. 단절을 넘어 대청마루의 소통을 그리워한다. 하지만..같은 사진에 대해 시인을 이렇게 읽는다. 갇혀 있으므로 본질이 흩어져 버림을 아쉬워한다. 동물원 사자가 갇혀버리며 사자의 본질을 잃어버린 것처럼 사회의 틀에 갇혀 있는 제도와 이데올로기에 대해 말한다. 진정한 본질이 무엇인지... 이 한편이 이 책의 전반적이 흐름을 말해준다. 종교와 역사를 전공한 인문학자의 관점과 넓은 바다에 살며 철학적으로 시를 쓰는 시인 좋은 시도이며 좋은 내용이다. 하지만 철학이고 시적이며, 종교와 역사를 넘나들어.. 쉽게 읽어지지는 않을 것이다. 특히 모나드(실체와 본질을 의미하는 철학용어)라든지 타자(das Andere, others, 他者, 자아의 상대 개념)이든지... 어렵다. 뭐..철학책이니까..(물론 쉬운 철학책도 있다..) 철학은 생각의 틀이다. 같은 것을 보아도 그 아래 흐르는 생각이나 보이지 않는 압력을 찾아내고 이해하려는 것이 철학이다. 가볍게 읽어지는 책은 아니다. 졸린 눈으로 보다가도 생각이 꼬리를 물어 잠을 깨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한 장 한 장 읽어가며 한 단락 단락 꼽씹어 볼만한 책이라고 생각된다. 사진을 넘어 눈 앞에 보이는 어떤 장면에서 자신의 철학으로 돌아보고 싶게 자극하는 책이다. 평소 철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매우 공감할만한 책이지만, 처음 접하는 사람에게는 다소 어려울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보는 광경, 또는 새로운 곳에 대한 놀라움을 철학의 렌즈로 사유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다양한 관점을 제시한 측면에서 흥미로운 책이다. 뱀의 다리... 사진을 찍은 이광수 교수님은 만나뵌 적이 없다. 대부분의 책은 저자를 직접 만나는 경험이 없지만, 최근 나는 저자들을 만나서 책을 보는 드문 경험을 하고 있다. 철학하는 시인 최희철 선생님은 내가 일하는 곳에 가끔 놀러오신다. 얼핏 보면 딱 동네아저씨이다. 넉살좋고 유쾌하시고.. 처음 주변에서 베르그송주의자*라고 했다. 철학자... 철학자라면 강신주, 이진우 등 이름있는 교수님들을 상상하지만, 그냥 동네아저씨가 철학자라니... 이런 생각을 가지만 하지만, 동네 가게에서 주변 사람들에게 철학자의 소임을 위해 글을 쓰셨다는 탁석산 선생님이 생각나기도 한다. 곧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가신다고 하신다. 무사히 잘 돌아오시고 또 많은 생각을 담아오시길 기원한다. *잠시 이해를 위해 말하자면... 베르그송은 생철학과 직관주의이다. 이는 합리성이나 논리성보다 현재 주어진 감각이나 감정을 중요시하고 보이는 현상에 대해 변화하고 문제를 제기하고 찾는 것이다.
|
|
사진 찍는 인문학자와 철학하는 시인이 만났다. 과연 어떤 대화가 오갈까. 구면이라면 어색하지 않겠지만 데면데면한 사이라면 누군가가 먼저 나서 대화의 포문을 열기 전까지 긴장이 이어질 것이다. 첫 대화의 시작은 어떤 것을 소재로 삼으면 좋을까. 두 인물이 만날 수 있는 교집합을 따져본다. 내가 발견한 단어는 ‘사진’. 사진의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촬영하는 이의 의도에 따라 무엇이건 사진 속에 담아낼 수 있다. 사진 속에선 시간이 멎어 있다. 사진 속 현실은 고정돼 있으나 바라보는 이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다. 최근에는 포토샵 등의 프로그램을 사용한 변형도 자유자재로 할 수 있다. 사진은 가능성이다. 처음 인문학자가 사진을 찍는다고 했을 때 참 안 어울리는 조합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깊이를 헤아릴 길 없는 사람과 그런 사람이 살아가는 세상을 탐구하는 게 인문학자다. 그런 인문학자가 무한대의 가능성을 지닌 사진을 외면하는 게 도리어 어색하다. 사진을 감상하며 저자의 직업에 집중했던 건 아니다. 사진 속엔 선과 색이 많다. 등장인물까지 많으면 그야말로 현란하다. 사진에 집중하면 집중할수록 난 저자를 잊었다. 하지만 이내 나의 망각은 극복됐다. 짧다고도, 그렇다고 길다고도 할 수 없는 글이 이어진 탓이다. 무엇이 사진을 감상하는 올바른 방법일까. 인문학자의 글을 읽으며 나는 소설을 읽기에 앞서 누군가의 추천사나 해설을 읽어버린 것만 같은 느낌을 받았다. 글로 인해 사진의 가능성을 놓치는 게 아닌가 싶어 조바심이 일기도 했다. 하지만 기우였다. 인문학자의 글은 심오한 대화를 낳았다. 이제껏 제 차례를 기다려온 시인이 나선 것이다. 시인 앞에는 ‘철학하는’이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철학. 이 학문은 나에게 여전히 난해한 무언가로 다가온다. 논리를 표방하려 안간힘을 쓰지만 소위 철학한다는 사람을 만나면 내 논리는 한줌 모래마냥 흩어진다. 하필이면 시인이 철학을 하다니. 그러나 나의 이런 생각은 철없는 것이다. 시는 여느 장르의 글보다도 짧다. 분량이 짧다는 것은 끊임없이 가다듬어 오로지 핵심만을 남겨야 한다는 의미다. 이른바 ‘비우기’ 없이는 탄생하기 힘든 게 바로 시다. 시인은 고로 철학해야만 한다. 내 주변의 복잡다단한 것들을 인식함에 있어서는 나와 같은 사람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임에도, 그 복잡함으로부터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뽑아내야만 한다. 그런 후에 제 사고를 가장 잘 드러내 줄 것만 같은 표현을 고르는 거다. 어쩌면 시를 쓰는 사람은 곧 철학을 하는 사람일 수밖에 없다. 이 책에서 시인은 인문학자가 던진 화두를 이어받는다. 사실 상대가 인문학자여서 난 적잖이 긴장을 한 상태였다. 시인이라면 시인다운 언어를 사용하리라 기대하기도 했다. 그러나 시인은 그냥 시인이 아닌 철학하는 시인이었다. 그의 언어는 정갈했고, 인문학자보다도 더 깊이가 있었다. 그렇게 나는 두 인물의 대화로부터 인생을 맛보았다. 대화중에는 세상의 달고 쓴 진실들, 우리가 애써 감추고자 했던 금기들도 쏟아졌다. 이 풍성한 대화가 모두 사진 한 장으로부터 비롯됐다는 사실. 조금은 믿기지가 않기도 했다. 사람마다 선호하는 스타일이란 게 있다. 내 경우에 사진은 일단 흔들리면 실패라는 사고가 강했다. 흔들리지 않아도 이왕이면 선이 살아 있는 다소 날카로운 형태의 사진을 즐겨 찍었다. 솔직히 이 책에 수록된 사진들은 과거 내가 즐겨온 사진과는 거리가 있었다. 선명한 색이 일품인 사진은 많았지만, 일부는 일부러 흔들림을 즐긴 게 아닌가 의심이 갈 정도로 형체가 흐릿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기에 나쁘진 않았다. 사진을 풍성하고도 훌륭하게 만드는 건 사진 그 자체가 아닌 이야기였음을 난 이번에 깨달았다. 결국 사진에는 철학이 담겨야 한다. 무엇을 사진에 담아낼 것인가는 그간 자신이 경험해온 것들로부터 비롯된 자신의 사고에 따라 결정된다. 인생을 담겠다는 의지 없이 촬영한 사진은 겉은 화려할지 모르나 속은 비어있다. 사진을 촬영한 이도 그래서 허함을 느낀다. 텅 빈 듯한 느낌을 채우기 위해 우리는 가장 우리가 택하기 쉬운 방법을 취한다. 사진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곧잘 걸린다는 ‘장비병’은 정신으로 채워야 할 것을 물질로 채워보려는 발악과도 같다. 오늘날 사진으로부터 철학을 읽어내는 이가 얼마나 될까. 나부터가 그래 오질 못했다. 철학이 부재한 탓에 시시때때로 마음이 동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