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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자유주의 경제학은, 경영자란 물질적 이윤 동기 외에 비이윤적 동기는 없는 것으로 보았다. 그리고 경영자들은 노벨상을 받은 경제학자들의 주장이니 그런 줄 알고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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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애덤 스미스는 옳았다? 사방팔방 퍼져나가던 복지국가 패러다임은 인간의 노동 의욕 저하라는 복병을 만나 무너지기 시작했다. 가만히 있으면 국가 제도의 도움을 받아 어려움 없이 살 수 있는데 굳이 땀흘려 일하려 들지 않으리라는 우려는 현실이 됐다. 수입의 대부분을 국가 재정을 유지하는 데 쏟아 부어야만 하는 사람들의 불만을 하늘을 찔렀다. 그들을 달래기 위해 각국은 세율을 낮추었으며 노동 능력을 지닌 이들의 복지를 삭감하는 방향으로 선회하기 시작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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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스미스는 경제학자이기 이전에 도덕 철학자이다. 물론 당시에 경제학이란 학문이 오늘날과 같은 독립된 학문도 아니었다. '애덤 스미스'의 묘비에는 "<도덕 감정론>의 저자, 여기에 잠들다"라고 새겨져 있다. 그는 1723년에 스코틀랜드의 커콜디에서 출생을 했으며, 1759년에 <도덕 감정론>을 출간했고, 1776년에는 <국부론>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런데 '애덤 스미스'는 <도덕 감정론>의 내용을 여섯 번에 걸쳐서 수정하였다고 하니 그만큼 <도덕 감정론>에 대한 애정이 깊었던 것 같다. 또한, '애덤 스미스'는 법에 관한 책의 저술에 착수했으나 살아 생전에는 완성할 수 없다고 생각해서 그 원고를 불태웠는데, 그가 죽은 후, 약 100년만인 1895년에 스미스의 강의를 들었던 학생의 노트가 발견되어 <애덤 스미스의 법학강의>가 출간된다. 이 3권의 책을 통해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으로써 정치경제, <도덕감정론>으로써 윤리학, <법학강의>로써 법률, 이렇게 사회과학 전분야를 아우르는 종합적 사상가였음을 입증하게 된다. <도덕 감정론>에 대한 내용을 자세하게 살펴보기 위해서는 얼마전에 읽은 <내 안에서 나를 만드는 것들/ >을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이 책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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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는 스미스의 사상을 우리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고 점을 말하고 있네요. 그의 사상을 오해와 의도적 왜곡과 함께 후세학자들에 의해 자신의 경제이론을 합리화하는데 사용한 경우가 많았다고 하니 이 책을 통해 진정한 그의 사상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널리 알려진것과는 달리 스미스는 노동자 편이었다고 하니 여태껏 잘 알지 못하던 진실에 한발짝 다가서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지금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을 완하할려고 하면 왜곡된 사상이 아닌 처음 스미스의 사상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국부론의 출간 당시 미친 영향이 대단하였다고 하니 명저임에 틀림없다고 생각합니다. 국부론을 이해할려면 당시의 시대적 배경(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의 경제상황)을 알면 도움이 된다고 하네요. 어느책이든 출간 당시 시대적,경제적 배경을 이해한다면 도움이 되는건 당연하겠죠.
인간은 동감을 추구한다고 <도덕감정론>을 통해 말해주고 있습니다. 행복의 원천은 타인으로부터 동감에서 찾고 있네요. 우리는 결코 혼자 살수 없는 존재들입니다. 타인과 어울러 살면서 행복하고 싶다면 그들로부터 지지와 인정을 받어야 하는데 이러한 지지와 인정이 바로 동감에서 나오는 것이겠지요. 부자가 되고 싶어하는 인간의 심리에 대해서도 책에 언급되어 있음을 알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세상으로부터 인정받고 싶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국부론은 중상주의 체제를 비판한 책입니다. 책의 이해를 돕기 위해 시대상황이나 그 이전 상황까지 설명해주어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받을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아무리 좋은 책이라 하더라도 독자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다면 결코 좋은 책이라고 말할수 없겠지요. 스미스는 독점이익을 통해 부를 축적하는 상인과 제조업자를 미워하고 공정하게 돈을 버는 상인은 존경받아야 한다고 했습니다.이것은 오늘날에도 유효한 사상이 아닌가 합니다. 부를 축적하는 것이 나쁜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피해를 주면서 부를 축적하는것이 나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공정한 방법으로 부를 명예를 추구하는 사회, 이것이 이상적인 사회라고 생각합니다.
스미스는 중상주의를 비판하고 중농주의를 지지했지만 중농주의에 대한 비판의견도 내 놓았다고 합니다. 그가 자유방임주의자가 아님을 알수 있었고 정부의 역활도 중하게 생각하였다고 하니 지금 우리가 알고 있던것과는 사뭇 다른점이 많았습니다. 그만큼 우리가 스미스를 잘못 알고 있었던 점이 적지 않았습니다.
후대 학자들에 의해 변형되고 해석되는 과정에서 본래의 스미스의 뜻이 왜곡되거나 와전되어 버리는 경우를 설명해주고 있어 왜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지를 알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케인스, 마르크스, 슘페터가 주장한 이론도 설명되어 있어 스미스가 예측못한 상황이나 바뀐 상황에 대해 알수도 있었습니다. 완벽한 사람이 없듯이 완벽한 이론도 없겠지요. 법과 제도가 시대에 따라 변화하듯이 경제학이론도 시대에 걸맞게 조금씩 수정되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대한 잘못된 해석으로 일반인들은 스미스를 자유방임주의자로 착각하고 있지만 사실은 '보이지 않는 손'은 '나쁜손'이라고 말하였지만 신자유주의 경제학은 착한손이라고만 한다고 하네요. 또한 스미스는 갑의 편이 아닌 을의 편이란점을 분명히 하고 있어 지금까지 신자유주의 경제학자들로 인해 스미스의 사상에서 잘못 알고 있었던 부분을 바르게 알게 되었네요.
또한 저자는 신자유주의 이념을 극복하는 것이 경제를 살리는길임은 언급하고 있습니다. 신자유주의로 결국 약자들만이 힘들어져 버리고 날고 커져만 가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스미스가 바라던 '보이지 않는 손'이 '동감의 손','정의의 손','따뜻한 손'이 되기를 기원해봅니다.
국민대다수가 잘 살아야 나라가 부강해질수 있다고 말한 스미스의 생각과는 달리 반대로 되어버린 사회에서 진정으로 선진국으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부의 재분배문제는 피할수 없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예견한대로 지금의 우리사회는 기업가들이 사회적 이익보다 자신의 이익을 더 우선시 하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경제상황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스미스가 주장한 본래의 '보이지 않는 손'이 작용해야하지 않을까 합니다.
책을 통해 애덤 스미스가 본래 주장하였던 사상과 변질되어 버린 지금의 경제철학 그리고 작금의 경제불평등에 대해 많은것을 생각하게 해준 계기가 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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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 하면 누구나 떠올리는 그 "보이지 않는 손" 정작 국부론에서는 단 한번만 언급되는 그 손이 대체 경제의 "ㄱ"자도 모르는 우리 조치 다 알고 있는 것일까.
EBS 다큐 프라임을 보면서, 애덤 스미스의 이야기가 많이 나오길래, 김수행 박사님이 번역하신 국부론 1권을 읽었다. (1권만으로도 두께가 어마어마해서, 2권은 아직이지만,,) 1권만 읽으면서 느끼는 것은, 대체 왜 애덤 스미스를 자유방임주의 경제학을 주장한 사람이라고 했을까하는 생각이였다. 국부론 1권은 오롯히 그저 평범하게 살고 있는 시민들이 잘살기 위해서는 이래야 한다는것이였는데, 그 생각이 어떻게 자유 방임주의를 이야기 하는 것일까.
특정 규제를 풀어야 한다, 이건 옳지 않다 라고 말할때는 기득권에 대한 보장이였기에 그런 특정계급을 위한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이야기하는것 같았는데 대체 왜? 자유 방임주의 경제학이라는 것일까.
그런데 그 의문이 이 책을 보면서 풀렸다. 좀더 전문적인 부분들에서 이해가 좀 안가는 부분도 있지만, 결국 요는 그렇다. 현재의 경제학을 만든 신고전주의 경제학자들이 결국 자신들의 뜻대로 국부론을 이용하고 잘못 해석해온 것이라는것이다.
이책의 저자는 말한다. 애덤스미스의 또다른 대표작 도덕감정론과 국부론은 서로 다른것이 아니라, 같은 것을 이야기하고 있으며, 그것은 그저 나만 잘살면 된다는 자유방임주의 경제가 아닌, 공감적 자연주의 경제라는것. 모두가 함께 잘살기 위한 방법에 대한 책이라는 것이다. 그런 요소들을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들어 현재 애덤스미스의 국부론이 가지는 오해를 이야기한다. 또한 애덤 스미스가 살았던 시대의 배경을 통해, 왜 애덤스미스가 그런 주장들을 했었는지도 말이다.
이책에서 저자는 공자또한 오해를 받는 인물중 하나라고 이야기한다. "충" 임금에 대한 충성심이라고 우리가 흔히 공자를 이야기할때 얘기하는 저 "충"은 임금이 아닌, 사람간의 신의를 의미한다고, 이또한 후대의 사람들이 존경받는 공자를 이용해 나라를 다스리기 더 쉽도록 오해하여 해석한 것이라고 말이다.
애덤스미스. 철학자이지만, 10년의 여행을 통해 국부론을 쓰고, 어떻게 해야 모두가 잘살수 있는지를 저렇게 체계적으로 써낼수 있었는지. 딱 국부론 반밖에 안읽었지만, 그것을 읽으면서도 놀랐는데, 이 책의 저자를 통해 한번 더 놀랐다.
국부론을 읽어보고 싶지만 엄두가 안나는분. 읽었지만 어떤것을 읽었는지 잘 모르겠는분. 국부론을 다 이해하지만 내가 이해한 것과 어떻게 다른 생각을 했는지 알고싶은분.
모두에게 한번쯤 읽어볼만한 책이 아닐까 싶다.
"결국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것은 포용적 경제제도다. p.1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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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현대인의 눈으로 읽어낸 애덤 스미스의 책을 읽고, 주요 내용을 정리하며, 현대 사회의 현황에 맞추어 주요 테마를 변주한 책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우선,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의 신화란 애덤 스미스가 진정 말하고자 했던 것과 동떨어져 있다는 것을 명확하게 지적한다. 애덤 스미스가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개념을 창안했다는 이야기는 상식 수준으로 널리 퍼져 있는데, 요약하면 시장에 따로 개입하지 않고 내버려 두면 시장은 알아서 물건을 파는 사람에게도 물건을 사는 사람에게도 가장 효과적인 방향으로 굴러가기 마련이라는 주장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에 따르면, 이 이야기는 애덤 스미스의 저술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다 못해 완전히 곡해한 수준이다. 애덤 스미스는 그렇게 무책임하고 방임적인 주장을 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제목에서 '따뜻한 손'이라는 표현을 썼듯이, 저자는 애덤 스미스가 진정으로 말하고자 했던 것은 인간미라는 개념이 시장이라는 장소에서 통용되는 것이며, 그 비결은 따뜻한 손이 사람들을 쓰다듬어주는 것에 비견되는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라는 것을, 애덤 스미스의 서술 및 관련 자료를 직접 인용하며 보여준다. 표면적으로만 주장을 이해하는 것이 얼마나 실제 의도를 왜곡할 수 있는지,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직접 책을 읽지 않고 되풀이하기만 하는 것이 그 파급력을 얼마나 크게 만들 수 있는지도 아울러 보여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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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도는 아니지만 우리는 대부분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을 저술했고 그 가운데
스코틀랜드인으로 태어난 애덤 스미스는 1776년 <국부론>을 세상에 선보이지만 흔히 우리는 스미스의 <국부론>과 '보이지 않는 손'을 인용하며 경제학적 가치에 '보이지 않는 손'이 자기조절적 시장기능이라 생각했던 신고전경제학자 마셜과 진실된것이 무엇인지도 모른체 그저 그러려니 하고 사용했던 많은 것들이 있겠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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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저녁 식사를 기대할 수 있는 것은 정육점 주인과 양조장 주인, 그리고 빵집 주인의 자비심benevolence 때문이 아니라 그들 이기심their own interest에 대한 그들의 고려 때문이다."(p.158) 여전히 인용되는 <국부론>의 구절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개인의 이기심과 분업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조화되어 사회적 부를 증진한다고 보았으며,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여 국방, 치안 등의 공공재를 제외한 국가의 간섭을 배제한 야경 국가론을 주장했다고 누누이 배웠다. 21세기 현재도 교육 현장을 비롯하여 언론, 토론 방송 등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자유방임주의자, 시장만능론자의 대명사로 부각된 탓에 그의 전반적인 사상이나 주장의 정수는 제대로 조명되지 못했다. 정작 당대를 살았던 인간 애덤 스미스에 무지한 채, 후세인들의 입맛과 자의적 해석으로 화석화된 애덤 스미스만을 만났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제목 그대로 애덤 스미스를 다룬다. 경제학의 아버지, 자유방임주의의 맥락에서 '인용'된 사상가의 족적이 아니다. 텍스트(text)를 이해하기 위해선 컨텍스트(context)를 알아야 한다. 한 사상가를 제대로 조명하려면 그의 생애와 당대의 사회, 역사적 배경이 전제돼야 한다. 특히 애덤 스미스가 주장한 경제 원리는 18세기 중상주의에 대한 비판적 시각이 담겨 있다. 당시 중상주의는 국가의 부가 화폐, 금, 은 등의 귀금속의 보유량으로 인식했고, 상인, 제조업자들의 이익을 국가적으로 보호, 장려하였다. 오히려 "당시에는 대다수 사람들이 경제적 자유를 누리지 못하고 있었다. 동업조합법, 도제법, 거주법과 같은 악법이 경제적 약자들의 경제적 자유를 제약하고 있었던 것이다. 스미스는 이를 철폐하여 대다수 국민에게 경제적 자유를 줄 것을 주장했다." (p.22) 또한 국부란 귀금속의 총량이 아닌 노동의 연간 생산물이며, 분업 등으로 생산성이 향상되면 노동자들의 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리라 예측하였다. 즉, 국부의 증가는 사회 생산성 향상과 후생 증가다. 특히 <도덕감정론>을 논의하지 않고는 애덤 스미스를 제대로 알 수 없다. 원래 명망 있는 도덕철학자였던 그는, 윤리의 원천은 인간이 선천적으로 가진 동감(同感)에 있고, 이것이 발전하여 내면에 '공정한 관찰자'(impartial spectator)의 개념을 설정한다. 마치 공자가 <논어>에서 말한 역지사지의 정신인 서(恕)가 연상된다. 앞서 빵집 주인은 이기심(selfishness)이 자기이익(self-interest) 추구로, "타인과 동감하면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다. 신중하게 타인의 피해를 주지 않는 정으로운 방법으로 이익을 추구하는 행위를 말한다." (p.159) 동감 안에는 공정성, 정의감 등 다양한 도덕 판단이 내제되어 있으므로, 단순히 자기이익 추구를 현대 경제학의 합리적 인간, 즉 이윤극대화, 효용극대화를 추구하는 인간형으로 간주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애덤 스미스가 <국부론> 말미에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일반적인 통념과는 달리, 신고전경제학파, 신자유주의자가 합리적 인간형을 전제하면서 도출한 시장의 자기조절능력, 최적화의 개념과는 다른 것이다. 애덤 스미스는 경제적 기득권층의 카르텔을 제약하고, 모든 계층이 누릴 수 있는 공감에 바탕을 둔 자유로운 경제활동을 장려하며, 그 과실을 사회 전반이 누리는 사회를 바랐다. <애덤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사상을 직접적으로 읽지 않고 사회적 '통념'에 의해 피상적으로 이해"했던 그의 사상을 조명한다. '애덤 스미스에 대한 11가지 오해'(p.21)를 조목조목 밝힌다. 마치 스미스가 시장만능론자, 자유방임주의, 개인의 이기심, 기업의 이윤극대화, 자본가의 이익 우선, 금융시장 자유화의 사상적 원류로 이해했던 '통념'을 친절하게 바로잡는다. 이러한 오해는 케인지언으로 분류되는 폴 사무엘슨이나 신자유주의 대부 밀턴 프리드먼처럼 경제학의 거두들마저 학파를 가리지 않고 잘못된 인용을 하였으니, 어쩌면 일반 독자들에겐 당연하겠다. 고전 명작은 모두가 알지만 읽은 사람은 드문 작품이란 우스갯소리가 있다. <국부론>, <도덕감정론>도 빼놓을 수 없다. 심각한 문제는 사상을 '통념'과 자의로 해석하고, 이를 근거로 여론과 사회적 담론을 호도하는 관행이다. 현재 그의 사상은 세계적으로 재조명되고 있다. 중국 공산당 지도부는 바람직한 시장의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지침서로서 <도덕감정론>, <국부론>을 언급하고, <논어> 등 유교 사상과 유사점을 흥미롭게 조명하고 있다. 세계 금융위기 이후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이 대두되었다. 그러나 금융과두제와 재벌 카르텔은 공고화되었고, 빈부 격차는 심화되고 있으며, 약자들의 경제적 자유는 위축되고 있다. 스미스는 생산성 향상이 노동자의 임금을 올려서 사회 복지가 증진된다고 하였지만, 현실은 1970년대 이후 생산성 상승분보다 임금 증가분은 미미하다. 저자 김근배 교수는 이 점에서 '오늘날 신자유주의는 과거 중상주의와 같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애덤 스미스에 대한 '통념' 바로잡기에 나섰다. "통념을 깨고 보면 애덤 스미스의 손이 보입니다. 경제적 약자도 포용하는 따뜻한 손 말입니다. 애덤 스미스의 따뜻한 손은 병든 이기심의 자본주의를 구할 동감의 손입니다." (p.352) 화석화된 애덤 스미스가 아닌, 이제는 진정한 애덤 스미스를 만나야 한다. 동감에 기반을 둔 따뜻한 자본주의. 그가 바라던 세상을 이해하는 시간은 값진 경험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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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을 통해 그의 저서에서 사용된 "보이지 않는 손"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를 알려주는 책입니다. 21세기 오늘날 중국 지도자들이 시장경제를 도입하면서 <국부론>과 <도덕감정론>이 이들에게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하는데, 경제민주화와 경제불평등 문제에 대한 방안이 담겨져 있어 현재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도 큰 도움이 될 책으로 생각됩니다. 애덤 스미스의 사상에서 인간의 본성을 설명하는 동감은 공감, 동정, 동료애와 같은 의미인데, 행복의 원천으로 풀이되기도 합니다. 저자는 이러한 애덤 스미스의 사상을 공자의 사상을 비교하면서 타인에 공감하는 두 사상의 유사성을 이야기하는데, 특히 두 사상이 모두 본래 진보적이었지만 후대의 지배계층이 이를 권력과 결부되면서 자신들을 합리화하는데 이용하면서 보수주의 사상으로 인식되는 점을 지적합니다. 에덤 스미스에 있어 (전체 국민들의) 소비야말로 모든 생산의 유일한 목표이자 목적이며, 생산자의 이익은 그것이 소비자의 이익을 촉진하는 데 필요한 한도에서만 고려되어야 하는 것이고, 그의 모든 사상은 전체 국민의 이익이 아닌 특수한 계층의 이익을 추구하는것을 방지하는 것이었고, 타인에 대한 배려가 결여된 탐욕을 결코 옹호하지 않았습니다. 저자는 현대의 <국부론>이라 할 만한 제임스 A 로빈슨의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를 인용하면서 애덤 스미스의 주장을 요약하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 경제적 약자를 포함해 모두를 끌어안는 포용적 제도를 가진 나라는 발전과 번영을 이루고, 경제적 강자만을 위한 착취적 제도를 가진 나라는 빈곤에 이르고 실패한다는 것이다. 또한 비슷한 설명을 찾으면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아마티아 센 교수 <자유로서의 발전>에 따르면 경제발전이란 결국 자유가 확장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따라서 신자유주의 경제주의학자들이 애덤 스미스를 인용하면서 자신의 논리를 설명하는 것은 짝퉁 제품에 잘나가는 브랜드를 붙여놓은 것에 지나지 않는 것이라 볼 수 있고, 이러한 신자유주의에 의해 위기에 처한 경제를 살리기 위해 정의롭지 못한 시장경제를 바로잡자는 애덤 스미스의 원래 모습을 되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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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애덤 스미스는 도덕철학자로 고전경제학의 창시자입니다. 애덤스미스는 지금의 자본주의 시스템의 토대가 되는 경제 이론을 만들었으며 기업의 이윤추구, 작은 정부.. 한나라의 경제를 부강하게 만들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국부론> 을 통해서 하나하나 정리하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국부론>이라는 책에 대해 자의적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그 중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11가지 에 대해서 하나 하나 확인하고 검증하는 것.그것이 이 책의 목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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