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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세간에 별의별 이상한 책들이 다 출간되고 있다. 최근의 정치적 상황때문인지는 몰라도 과거 퇴행의 원인과 책임자들이 희망과 선구자로 오도되는 이런 참담함 상황에서 눈앞이 깜깜해질 따름이다. 나는 이런 문명의 잘못된 사생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심판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사람을 위함'이라는 인류의 간절한 소망을 의도적이건 실수건 왜곡하고 있는 세태는 분명히 바로잡아야 한다. 이건 나 자신의 어두웠던 과거도 영웅적 사명감도 직접적인 원인이 아닌 그저 할 일을 하는 것 뿐이다. 이 책의 거짓됨이 의미하는 것음 단지 S고라는 한 곳의 문제가 아니다. 대한민국 고등학교는 최악이다. 학교며 교사는 '좋은 대학 보내기'라는 성과주의에 빠져 학생들에게 삶을 가르쳐주기는커녕 삶을 생각해볼 시간조차 주지 않는다. 시험 전에 모의고사 점수를 적어놓고 모자란 점수만큼 체벌을 받거나 거친 말로 압박을 가하는 건 나만의 경험일까? 이런 상황에서 학생들 사이에서 태어나는 문화는 상호협조와 소통이 아닌 무한경쟁의 논리다. 누가 더 잘하나 누가 더 좋은 대학을 가나 치졸한 자존심 대결이 사람을 미칠듯한 긴장의 실 위에 올려 놓고 그 고통을 양분으로 삼아 학생들은 '자율'적으로 '성장'을 한다. 서울대를 몇 명 보내는가 연고대를 몇 명 보내는가 플랭카드에 걸린 이름이 학생들을 모두 대표하지 않는다. 거기에 이름을 올릴 수 없는 학생들의 삶에 대한 배려라는 건 대한민국 '교육'기관에서 과도한 요구일까? 그런 학생들은 입시상담실로 부르지도 않는다. 뜯겨먹히고 있는 초식동물이야말로 보살핌이 필요할 진데 학교는 그런 것에 아랑곳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승자를 길러내는 것이야말로 학생들을 위하는 것이라고 자위한다. 홍보용으로 육성되는 자치활동은 최악이다. 학교나 학생이나 그 곳 외의 삶을 생각할 여유란 그 나이 때는 사치인가 보다. 정말 창조적이고 자율적인 문화활동은 창작에서나 소비에서나 억제된 채 자료집에 몇 줄 싫기 위해 사진찍기용으로 형식적으로나마 남는다. 학생회는 학생을 대표하는 자치기구인가? 교사와 학생 간의 위계적 관계가 너무도 자연스럽게 형성되어있는 상황에서 뻔한 거짓말을 믿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자식들께서 정말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모르는 무심한 부모님들이다. 학생회의에 학생부 교사가 들어와서 회의를 '지도'하는 상황에 민주적이라는 타이틀을 달아줄 수 있을 것인가. 민주주의의 위기는 바로 여기에서 시작된다. 인성은 메마르고 점점 사람들은 타인에 무감각해진다. 소통과 변용의 가능성은 닫히고 오직 남는 것은 소위 그들이 자랑스레 가르치는 "현실을 살아가는 방법"이다. 꿈을 품어도 품어도 모자란 시기, 벌써부터 학생들은 '현실'이란 것을 자신들이 주체가 되어 만들어 나갈 수 있는 드넓은 대지로 보긴 커녕 그 상상력을 제한하는 법을 배운다. 이런 교육에서 무슨 희망을 기대할 수 있는가. 이런 교육에서 무슨 '다른 길'을 기대할 수 있는가. 계속 걸어오던 길, 부국강병의 기치를 들고 시작된 반쪽짜리 교육의 완성판이라는 말이 더욱 어울릴 것이다. 나는 이 책을 펴보지 않았다. 아니 펴보는 것조차 나에게 너무 많은 고통을 요구한다. 자유와 진실을 사랑하는 인간으로서 나는 이 학교와 무관한 사람이 봐도 선정적이기 이를 데 없는 제목과 목차를 가진 이 책을 펴볼 용기가 나지 않는다. 글의 힘, 말의 힘, 다른 생각의 힘이 천대받고 또 그리 되어가고 있는 세태에서 이렇게나마 글을 쓰는 이유는 혹시나 학생들이 봐줄까하는 바램에서이다. 그들에 대한 나의 사랑을 글이나마라도 전하고 싶다. 대한민국 고등학교 학생들은 삶을 사랑하기 매우 힘든 상황에서 살아가고 있다. 새로운 통찰과 인식을 얻기 보다는 체념과 포기를 배우고 있다. 하지만 그런 상황 속에서도 학생들은 울고 웃으며 살아가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하고 있다. 그런 능력은 곁에 함께 지내는 사랑하는 학우들뿐만 아니라 권위적인 스승들까지도 포괄한다. 나는 학생들의 그런 쾌활함과 명랑함에 희망이 있다고 믿는다. 교사들의 상황도 꽤 많이 변하고 있다. 비록 위계적인 질서 상의 자신의 위치에 대한 성격갑옷으로 둘러싸고 있지만 따스한 목소리를 듣고 건네려는 노력들이 늘어나고는 있는 듯 싶다. 사람들의 교육에 대한 열정이야 굳이 말할 것이 없을 것이다. 교사건 학부모건 교직원이건 간에 정말로 열성적인 이들의 진심어린 노력은 눈물겹다. 하지만 이런 열정이 자신들 안에 갇힌 채 상황을 파국으로 몰아가는 것은 정말 크나는 우연적 불행이 아닐 수 없다. 대화에 나서지 않는 한 희망은 없다. 진정으로 자유로운 소통이 학교에 있는 모든 이들에게 허용되어야 한다. 자신의 위치 때문이건 적접적인 억압이건 우리는 서로 대화하는 데 너무나도 제한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런 가능성의 새싹들은 이 책이 다루고 있는 희망과 가능성이란 것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언제부터인지 사람들은 무엇이 좋은 삶인지 멋진 삶인지 논하기 보다는 무엇이 성공적인 삶인지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표현의 작은 차이야 어쨌든 좋다. 하지만 어쨌든 지간에 교육은 사람을 위한 것이다. 삶을 위한 것이다. 만약 학교가 학생들의 진정으로 자율적인 능력, '삶을 사랑할 능력'을 가르쳐 주지 못한다면 우리의 미래는 암울하기 그지없다. 보다 더 좋은 학교를 만들기 위한 시민들과 교육계의 뜨거운 열정이 실수와 착각에서 빠져나와 보다 더 올바른 길을 나가길 기도해본다. 그리고 학생들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