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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마지막 권이다. 평사리 최참판댁은 이미 조준구에게 넘어가고, 실권을 장악한 조준구는 마을사람들을 핍박하기 시작한다. 혼자 남은 서희가 애처롭기만 하다.
조준구가 서울에서 데리고 온 종들에게 치여 지내던 최참판댁 종들, 그나마 서희를 보호하기 위해 똘똘 뭉쳐 있지만 상놈인 처지에 지내기가 만만치 않다. 수동이가 죽었다. 김서방댁도 딸 남이를 여의면서 혼수문제로 한바탕했지만 돌아온 것은 매타작 끝에 내몰림 밖에 없었다. 딸 ‘남이는 보따리 하나 겨드랑이에 끼고 울면서 시집을 갔고 김서방댁과 개똥이는 쫓겨났다.’(277쪽) 이제 남은 사람은 길상이와 봉순이 뿐이다. 헌데 길상이를 바라보는 봉순이의 시선이 애틋해진다. 갈수록 괴팍해지는 서희의 비위를 맞추기도 엔간한 봉순이에게 길상의 무관심이 더욱 서럽다. 그러나 길상이 마음 역시 편치만은 않다.
‘봉순이가 싫지는 않았다. 아니 좋아했다. 누이동생 같이 생각해 왔던 봉순이가 어느덧 여자로서 자기 잎에 서게 된 요즘 실은 당황했던 것이다. 사랑스런 누이가 여자로, 사모하는 마음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여자, 다만 여자로 보여졌다는 것은, 그건 죄였다.’(226쪽) 더군다나 봉기의 딸 두리를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한 삼수가 어느 날 저녁, 우물가에 숨어 있다가 혼자 물을 길러온 두리를 덮치고서도 뻔뻔스레 봉기댁을 조롱하는 것을 보면서도 심란스러운 마음에 어쩌지 못했던 길상이다. 길상 역시 이제는 아이가 아닌 혈기왕성한 청년이었던 것이다.
‘봉순이를 아내로 맞을 생각은 전혀 없었다. 그러면 누구를? 길상이 자신도 모를 일이다. 다만 천근의 무게를 가진 맷돌이 가슴을 짓누루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다. 천근의 맷돌을 들어 올려 밑바닥을 보아서는 안된다. 그것은 자기 자신에게조차 무서운 비밀이다.’(226-227쪽) 그저 자신을 최참판댁에 종으로 보낸 우관선사를 원망할 뿐이다.
서울로 목수일을 떠나면서 두만이를 데리고 갔던 곰보목수 윤보가 혼자 평사리로 내려왔다. 마을공기가 하수상해졌다. 혹시나 하며 관망하던 사람들, 조준구에게 무언가를 기대하던 사람들도 최참판댁과는 전혀 다른 그들을 보고서 자신들의 선택이 잘못되었음을 알게 되었다. 일이 터질 것 같은 분위기 속에 두만아비는 영만일 데리고 뜬금없이 사돈댁으로 간다. 결국 윤보가 주동이 되어 마을사람들이 최참판댁으로 처들어 간다. 조준구 내외를 찾았지만 사당 마루 밑에 숨어있던 그들을 찾지 못하고 재물만을 털어 사라진다. 길상이도, 김훈장가족도 함께 갔다. 삼수와의 거래로 살아남은 조준구 내외가 가만히 있을리 만무하다. 읍내에서 헌병과 순사들이 몰려오고 삼수는 폭도로 몰려 죽는다. 헌병들이 마을을 결딴내고 있을 때 멋모르고 돌아온 한조 역시 폭도로 몰려 죽었다. 혼자 남은 서희의 시달림은 조준구가 살아나면서 이미 예고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조준구를 죽이지 못하고 마을을 떠났던 이들. 의병이 되었지만 윤보가 죽고나서 풍지박산이 되었다. 용이가 길상이와 함께 월선이를 찾아온다. 간도로 가기로 하고 서희에게 의중을 묻는다. 김서방이 죽자 서희 방 장롱에서 농발을 빼고 막대기 두개를 괴어 놓으면서 훗날 긴요할 때 쓰라고 했던 윤씨를 떠올리며 서희는 간도로 갈 결심을 한다. 이부사댁 큰아들 상현도 부친인 이동진의 소식을 알아보기 위해 이들과 동행하겠다고 나선다. 평사리를 빠져나오면서 서희를 위해 구례 쪽으로 가마를 타고 갔던 봉순인 집합장소인 진주에 나타나지 않는다. 길상이 간도에 가면 혼인을 하자고 했건만 봉순이는 최종집결지인 부산에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환이가 나타났다. 그동안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숨어 지내던 환이가 길상에게 나타나 별당아씨의 죽음을 알리고 사라진다. 우관선사를 찾아간 환희, 백부와 숙질 간의 만남은 출가한 우관선사에게도, 환이에게도 업보이다. 환이는 장차 어찌하려는가
아들 홍이를 내세워 용이의 마음을 잡기위해 안간힘을 쓰는 임이네, 마을이 결딴나자 무조건 읍내 월선이 집으로 밀고 들어온다. 염치는 고사하고 뻔뻔하기 그지없는 임이네 역시 월선이와 용이를 따라 함께 간도로 간다. 용이는 장차 두 여인을 어찌하려 하는가
1부가 막을 내렸다. 최치수가 죽고, 윤씨부인이 죽고, 평사리 최참판댁은 조준구에게로 넘어갔다. 혼자 남은 서희는 간도로 떠난다. 길상이만 동행하고 있을 뿐이다. 서희는 왜 간도로 떠나기로 한 걸까? 물론 평사리에 남아 있어도 뾰족한 수는 없지만 장차 간도에서 어떤 삶을 엮어갈지 궁금하다. 길상이나 용이처럼 서희와 함께 떠나는 사람들은 물론, 환이와 이동진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까? 1부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 문의원도 죽고, 목수 윤보도 죽었다. 2부에서는 어떤 사람들이 또 새로이 등장할까? 참 봉순이는 어떤 삶을 선택하게 될까? 많은 궁금증을 가지고 나 또한 2부로 넘어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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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4편 역병과 흉년 (16~20). 제 5편 떠나는 자, 남는 자 (1~ 18)
4권에서는 을사보호 조약이 체결되며 술렁거린다. 나라가 없어졌지만 평사리 사람들은 하루 하루를 걱정하며 살고 있었고, 설마 이 촌구석에서까지 무슨 일이 있겠냐했지만 일본군들이 칼을 차고 돌아다니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하면서 변화를 느낀다. 친일을 하는 조준구도 본색을 서서히 드러내 농민들을 핍박하기 시작하고 있었다. 서울에서는 조선 군대의 해산으로 무기고를 부수고 대한 제국의 마지막 군인들은 남대문에서 일군과 처참한 교전을 벌인다. 그 싸움에 뛰어들었던 윤보는 평사리로 돌아와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과 함께 평사리 의거를 단행한다. 전국적으로 의병이 일어나고 있었고, 의병조직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방편이었다. 조준구를 찾지 못해 죽이지는 못하고 패물 곡식등 많은 재물들만을 챙겨서 떠난다. 윤보와 뜻을 같이했던 길상, 용이등 많은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고, 남아있는 사람들은 조준구가 불러들인 일본군에 의해 핍박을 받기도 한다. 동참하지 못한 그들은 편안했을까? 그들의 마음을 들여다 보는 것도 안타까울뿐이었다. 윤보 일행의 습격이 서희의 지시 아래 이루어진것이라 여겨 서희를 괴롭히지만 절대로 굴하지 않는 강인함을 보여준다. 그러면 그럴수록 서희는 점점 더 강해졌다.
악인들치고 의리 지키는 사람을 본적이 없는데, 평사리라고 다를까? 최참판댁의 하인이었지만 조준구의 앞잡이가 되어 이웃을 수탈하는데 한 몫을 했던 삼수는 평사리 의거에서 윤보 일행을 도와주는척 하면서 조준구를 살려준다. 비열한 인간이 의리라는 것이 있을까? 그는 조준구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앞잡이 노릇 외에도 인간같지 않은 행동을 너무나 많이 했기에 그의 죽음은 동정의 가치가 없었다. 만약 조준구가 이때 죽었다면 서희는 확고한 최참판댁의 권위를 지켜나갈 수 있었을텐데, 서희의 앞날이 위태롭기만하다. 서희의 엄마 별당아씨는 병으로 죽었고, 그녀를 잃은 구천이의 모습이 다시 등장을 하는데, 서희의 유일한 핏줄이라고도 할 수 있는 구천이의 역할도 가볍지만은 않을것 같다.
용이와 월선, 임이네의 이야기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용이가 떠나고 임이네는 아들 홍이를 데리고 월선이 집으로 들어오는데 그 뻔뻔함에 헛웃음만 나온다. 용이의 핏줄이어서인지,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자로서의 안타까움인지 홍이를 살갑게 대하는 월선. 무당의 딸이란 업보 때문에 어긋난 사랑, 하지만 절대로 끊어지지 않는 그들의 사랑을 보면 정말 사랑이란 것이 뭘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이쯤되면 모든 굴레를 벗어던지고 온전한 사랑을 할 수 있기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또 하나의 가슴 아픈 사랑이 시작되고 있었는데, 봉순이와 길상,그리고 서희. 어느덧 혼기가 찬 봉순이의 길상이에 대한 애정, 그것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길상. 그들은 또 어떤 모습으로 운명을 헤쳐나갈지...
윤보는 죽었고, 용이와 길상은 평사리로 다시 돌아와 서희, 월선이, 임이네등을 데리고 간도로 떠나기 위해 부산에 닿았다. 같이 가기로 했던 봉순은 그 자리에 나타나지 않는데, 의도적인 이 행동이 봉순이의 인생에 큰 바람을 일으킬것같다. 이동진의 아들 상현도 그들과 함께 떠나는데, 상현 아내의 불안감에서 상현과 서희의 관계에 대한 암시를 하는듯하다.
평범하게 살아갈 수 있는 많은 사람들이 삶의 터전을 뒤로한 채 낯선 곳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해야한다. 시대의 큰 물결을 거스를 수 없고, 그 힘찬 물결에서 살아남기 위해 변화해 나가야하는 모습들은 소설 속의 그들만의 일은 아닐 것이다. 평사리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이렇게 뒤켠으로 물러나고, 새로운 땅 간도로 떠나는 것으로써 1부는 끝이 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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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권까지는 평사리 내에서의 사건이 주를 이루면서 때때로 시국에 관한 소문이 들려오는 정도였지만, 이제 을사조약을 맺게 된 역사적 배경이 이 시골 마을의 촌부들 생활에까지 본격적으로 영향을 미치기 시작합니다.
철통같던 옛 가치관들이 무너지고, 위세 당당하던 최참판 댁 살림은 조가에게 넘어갔으며, 윤씨 부인을 중심으로 지켜지던 암묵적인 규칙들은 온데간데 없습니다. 규칙이 사라지면 당장 가장 큰 고통을 겪는 것은 지배계층이 아니라 보통 사람들이지요. 서희는 천애고아가 되어 재산을 빼앗기기는 했지만, 드높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었을 뿐 직접적인 위협을 받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평사리 사람들은 파리 목숨 신세가 되지요. 토지의 이야기가 진행되는 내내, 이 시대에는 현대에 비해 한 사람 한 사람의 목숨이 가벼웠다는 점이 죽 묘사되긴 했습니다만, 조준구의 수탈 때문에 주려 죽고 왜병들에게 의병으로 몰려 생목숨 빼앗기는 것은 역병이나 흉년처럼 공평한 재난에 의한 죽음과는 또 그 궤를 달리합니다. 억울함의 정도에서 근본적인 차이가 있어요.
그리고 의외로 좋은 역할 중 하나인 용이가 짜증을 심하게 유발합니다. 어렸을 때 월선이와 애틋했다고는 하지만 결국 강청댁에게 장가를 들어 수십년에 걸친 삽질 연애(불륜;)의 시작이 되지요. 그래, 어린 시절이고 혼인 같은 인륜지대사에 어머니 뜻을 거역 못해서 그렇다고 칩시다. 하지만 그 뒤로도 계속 그 모양이죠. 어진 성품의 청년이었다고 드물게도 강조되는 용이인데 정작 자기 안사람에겐 어땠나요, 정은 없더라도 그냥 남들에게 어진 만큼만 자기 댁네에게도 어질게 했음 되잖아요. 하지만 강청댁에게 연민을 느꼈으면서도 어떻게 대했어요? 수줍게 남편에게 꽃 꺾어다 주던 새댁이 그렇게 악착같은 성격으로 변한 게 다 누구 때문이에요? 그리고 임이네는? 본인은 계집질 할 만큼 다 하면서 월선이한텐 바라는 게 뭐 그리 많은지요. 게다가 월선이가 혼자 고향 떠나 고생해서 돈푼깨나 벌어오니까 이번엔 남자 자존심 상한다고 찌질찌질. 어쩌라고. 하기야 답답하기로 월선이도 둘째가라면 서럽고, 그래서 둘이 똑 천생연분이기는 합니다.
주요 인물들은 변하는 세상과 빼앗긴 입지를 견디지 못하고 한번 큰 사고를 친 후 삶의 터전을 버리고 떠납니다. 2부에서는 전혀 다른 곳에서 이야기가 계속되겠죠. 잠시 쉬었다가 2부를 시작해야겠어요. 전 원래 이것 저것 한술씩 뜨는 식으로 읽는 걸 좋아하는데 한동안 진득하게 한 이야기만 파서... 잠깐 다른 책을 뒤적이고 2부를 읽어야겠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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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놓고 벌어지는 일들. 토지라는 제목 그대로의 내용이 펼쳐진다. 이제야 <토지>의 제목이 이해가 되었다. 땅을 일구며 살았던 농민들에게 토지란 삶의 터전이었고, 한 나라의 백성에게 토지란 삶의 근원지였다. 그러기에 내가 내 두 발을 디디고 선 땅의 소유권은 가지고 있지 않더라고 내가 이 땅의 주인이다 여기고 살아가는 게 우리네 농민들이고, 백성들이었다. 하지만 세상은 이들에게 이마저도 허락하지 않았다. 땅의 주인이 아닌 땅의 노예가 되게 했고, 결국에는 이들을 땅에서 떠나게 만들었다.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장악해가며 마을 사람을 내모는 모습은 일본이 우리나라를 점령해가는 모습과 너무나 닮아있었다. 그저 작은 도움이 필요한 듯 최참판댁에 엉덩이만 붙이고 있으면서 주변 사람들에게 가식적인 웃음을 팔며 있다가, 최치수와 윤씨 부인이 죽자 덜컥 최참판댁을 차지하고 들어앉아 주인 행세를 하는 조준구. 마을 사람들을 이간질 시키며 대립시키더니 결국에는 모두 이용만 한 뒤 가차 없이 없애버리던 그. 이 때까지만 해도 그는 그저 욕심 많은 양반이고 이익만 챙기려 하는 친일파라고만 생각했었다. 하지만 어린 주인인 서희를 곁에 놔 둔 채 최참판댁의 모든 걸 차지한 그의 모습은 우리의 어린 임금 순종의 목숨만 살려놓은 채 우리 나라를 마음대로 주물러 논 일본을 생각나게 했다. 조준구와 일본이 한번 동일시되어 보이자 그의 악행은 훨씬 더 사악해 보이기만 했다.
조준구를 피해 일본을 피해 토지를 버리고 떠나는 사람들.. 그들을 보고 있자니 너무 안타까웠다..
- 연필과 지우개 -
제1부 1897년 한가위부터 1908년까지 약 10년간, 경남 하동의 평사리를 무대로 하여 5대째 대지주로 군림하고 있는 최참판댁과 그 소작인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하지만 1860년대부터 시작된 동학운동, 개항과 일본의 세력강화, 갑오개혁 등이 <토지> 전체의 구체적인 전사가 된다. 동학 장군 김개주와 윤씨 부인에 얽힌 비밀이 차차 풀려나가면서, 신분문제와 이기적 욕망에 사로잡혀 귀녀와 평산 등이 최치수를 살해하며, 전염병의 창궐과 대흉년, 조준구의 계략으로 결국 최 참판댁이 몰락한다. 서희는 조준구의 세력에 맞섰던 마을사람들과 함께 간도로 이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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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그렇게 할 수 있어. 내 원한으로 불살라서 죽여버릴테야. 난 그렇게 할 수 있어. 찢어 죽이고 말려 죽일테야. 내가 받은 수모를 하난들 잊을 줄 아느냐? (p148) 어린 서희의 입에서 나온 말이라고는 믿어지지 않는 이 대사가 드디어 나왔다. 그저 드라마 대사 중 하나인줄만 알고 있다가 책 속에서 읽으니 그 말을 해야만 했던 서희의 심정을 헤아리기 보다 뭐랄까, 그저 반가운 마음부터 앞선다. 드라마 토지를 기억하게 만든 대사덕분에 나는 토지를 읽고 싶었고, 책을 읽는 중 드라마를 떠올리게 하는 이 말을 보게 되니 내 기억이 잘못되지 않았구나 싶다. 토지 4권으로 해서 1부 이야기가 마무리 된다. 최참판댁 재산은 역병이 돌아 할머니가 돌아가시고 난 뒤 조준구와 부인 홍씨에게 은연중 넘어가게 된다. 서희는 나이는 어리나 타고난 당돌함으로 그들에게 맞서지만 아직은 역부족이다. 서희를 굳건히 지키고 있던 세 명, 길상, 봉순, 수동 중 수동이가 죽고나자 조준구의 만행은 도를 넘어간다. 조준구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인심을 잃어 결국 마을 사람들은 조준구의 재산을 빼돌리고 마을을 떠난다. 그 속에 서희, 길상, 용이, 월선, 임이네가 있었다. 하동 평사리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이렇게 1부로 끝이 나고 질긴 목숨들은 용정에서 새 터를 잡아 이어진다. 최참판댁의 사정이 이렇게 돌아가는 동안 나라 역시 주권을 잃고 혼란 속으로 접어든다. 을사 보호 조약이 체결되어 나라의 주권이 일본 제국에게 넘어가고, 충성스런 신하들은 자결한다. 해아 밀사 사건은 아무래도 헤이그 밀사 사건을 말하는 듯 싶은데, 이 사건으로 인해 고종은 퇴위를 해야했고, 조선의 군대는 해산하여 나라는 힘을 잃게 된 것이다. 나라가 혼돈에 휩싸이게 되고, 그것이 사람들에게 어떻게 변화를 일으키는지 토지는 담담히 보여준다. 어서 서희가 자랐으면... 어서 이 나라가 힘을 키웠으면.. 책을 읽으면서 바라는게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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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이 생각하는 세상 (박경리, 토지 1부 4권을 읽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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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는 한국문학계의 보배이며, 글쓰기를 잘하고 싶다면 꼭 읽어보길 추천한다. 형무소에 있을 때 토지를 읽은 후 글쓰기 실력이 일취월장했음을 느꼈다.” 윗말은 유시민 책 ‘유시민의 글쓰기특강’에 나오는 내용을 요약한 것이다. 유시민의 추천이 토지를 읽게 된 계기이다. 토지는 매우 유명한 소설이다. 하지만 권 수는 약 20권이요, 1권에 약 400페이지. 분량이 굉장히 길기 때문에 완독하기 어려운 소설 아닐까 싶다. 나 역시 유시민 작가의 추천이 아니었다면 절대 손댈 일이 없었을 지도 모른다. 작가 박경리의 말이 소설 서두에 나온다. 현란한 문체로 지리산 자락에 실현시킨 최 참판댁을 다녀온 내용을 쓰는데 이미 거기서 작가님의 표현력에 압도당했다. 서두 끝을 볼 때쯤 작가의 내면을 울컥 토해내듯 한 느낌에 눈시울이 촉촉해지더라. 게다가 작가님은 암투병 생활과 함께 토지를 집필했다고 하니, 토지, 이 얼마나 피와 집념의 작품인지. 토지 전체내용의 시간흐름은 조선 말기 동학농민운동이 벌어진 시점부터 대한민국 광복이 이뤄지는 때까지라고 하는데, 1부는 동학농민운동부터 을사늑약까지의 시간배경 속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5부가 마지막이다.) 내용은 간단히 말해 평사리 마을에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주요내용은 최 참판댁의 재물과 토지가 서희로부터 조준구에게 홀랑홀랑 부당하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 사이에 각 인물 간 사랑, 음모, 범죄를 다룬다. 한편 평범한 일상사를 그리기도 한다. 이야기를 탐닉하다보면 그 시대 삶의 모습을 엿볼 수도 있다. 우리 조선이 일본에게 빼앗기게 되는 과정과 동시에, 서희가 갖고 있던, 혹은 가져야했던 최 참판댁 재물이 조준구에게 빼앗기게 되는 과정이 그려진다. 국민이 나라 잃은 슬픔은 추상적이지만 마을사람이 집과 마을을 잃는 괴로움은 현실적이다. 두 과정이 동시에 보여줌으로써 나라 잃는 고통과 슬픔, 괴로움과 안타까움을 효과적으로 표현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건 비단 국가를 잃을 때의 괴로움만은 아니다. 당시 시대상황 속에서 여성의 위치가 얼마나 열악했는지가 너무 절실히 표현되었기에 가슴 아팠다. 소설이기에 극단적으로 과장된 것이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먹고 살기가 너무 힘들고 절박한 당시 상황 속에서 현재와 같은 인권은커녕 제 몸 하나 건사하며 살아남으면 다행일 때라고 여기는 사람들. 그 속에서 가장 낮은 계급이었던 여성, 물론 양반 여성이 아닌 상민, 농민, 특히 천민 여성은 각박한 인생 속에서 거친 운명을 스스로 정당화하며 견뎌나가는 모습이 애처롭게 느껴졌다. 한편으로는 너무나 대단하다고 느껴지기도 했다. 옛날엔 먹고 사는 게 힘들어 굶어죽기가 예사였다는 말은 그저 ‘그랬겠지, 뭐.’라는 수준으로 암기의 대상이었지, 실제로 그 정도가 얼마나 대단했을지 와 닿는 면은 없었건만. 실제 흉년 동안 굶어죽는 사람이 많아 장례는커녕 넝마로 덮어 한쪽에 모아놓았다고 하니 얼마나 끔찍한 일인지. 동냥할 때 “밥 한 술만 주소.”하면서 돌아다니는 실성한 서 서방의 모습을 볼 때, 그리고 그 밥 한 술마저 곱게 주지 않고 냉담한 비난을 섞는 모습을 볼 때, ‘옛날에 먹고 사는 건 정말 목숨과 직결되는 일이었구나.’하고 비로소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소설 마지막에 최 참판댁 재물은 윤보와 일행이 의병자금으로 쓸어가지만 토지문서는 조준구 손아귀에 남아있게 된다. 이 부분을 보고나서야 제목 ‘토지’를 이해하게 된다. ‘토지’는 최 참판댁이 예부터 관리하던 재산 중 땅을 말하며, 이제는 조준구에 빼앗긴 땅이고, 서희가 되찾아야하는 땅이다. 또한 조준구가 서희에게 땅을 빼앗았듯 조선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으니, 사실상 조준구가 일본을 상징하고 서희가 조선을 상징한다고 볼 때, ‘토지’는 조선 혹은 한국 그 자체를 일컫는 것이다. 앞으로 시대의 흐름 속에서 서희가 어떤 역경을 딛고 나아갈지, 어떻게 조준구에게 복수하고 땅을 되찾을지, 그리고 일본에게 빼앗긴 나라를 되찾는 순간 서희의 마음이 어떠할지가 궁금하고 기대된다. 고작 스무 살도 안 된 이 양반네 꼬맹이 처자, 물론 그 당시엔 혼인이 가능할 때라지만, 저 위에 나열된 흐름을 받아들이고 헤쳐 나갈 능력이 있을까. 같이 도망친 마을사람들과 함께 어떤 이야기가 그려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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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편으로 갈리다 역병과 흉년이 휩쓸고 간 평사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모진 겨울 뒤에도 봄이 오듯이 남은 삶을 이어간다. 역병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집은 최참판댁일 것이다. 윤씨 부인을 비롯해서 봉순네, 김서방까지 최참판댁을 떠받치던 기둥같은 사람들이 역병으로 허무하게 사라졌다. 재물과 권력의 빈자리가 생기면 그 빈자리를 차지하려는 사람들이 생기게 마련이다. 윤씨 부인이 살아계실 때는 변방에 쭈그려 앉아 눈치를 봐야했던 조준구는 이제 그동안 숨겨왔던 야욕을 대놓고 드러낸다. 서울에서 홍씨부인과 아들 병수를 데리고 와서 윤씨 부인이 쓰던 안방을 차지한다. 나중에 서울에서 하인들까지 데려온다. 당연히 서희는 조준구, 홍씨부인과 대립한다, 길상이, 봉순이, 수동이는 서희편을 들고 조준구와 홍씨를 미워한다. 이런 난세에 기회를 잡아보고자 설치는 자들이 있기 마련이다. 바로 삼수다. 삼수는 조준구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 서희와 조준구의 대립만큼 최참판댁의 하인들 사이에서도 서희편과 조준구편의 대립이 심해졌다. 조준구와 삼수의 횡포 하여튼 삼수는 최참판댁에서 소외되어 있었던 위치에서 난세를 이용해 최참판댁에서 강력한 권력을 가진 위치로 변했다. 마치 조준구와 비슷하다. 조준구는 역병이라는 난세 덕에 최참판댁을 차지할 수 있었다. 조준구는 뒤에서 삼수를 조종하고 삼수는 행동대장 역할을 한다. 최참판댁에서 이러한 변화를 평사리 사람들은 주의깊게 지켜보고 있다. 왜냐면 평사리에서 최참판댁의 위치는 중요하기 때문이다. 평사리를 포함해 이 근방에서 최참판댁의 토지를 얻어 농사를 짓지 않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서희가 불쌍하다고 생각했지만 그들에게 더 중요한 것은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차지한 이후에 자신들에게 미치는 영향이었다. 삼수는 최참판댁에서의 권력을 마을로 확장시킨다. 삼수는 최참판댁의 토지에 대한 권한을 이용하여 자신에게 호의적인 사람들과 아닌 사람들을 차별한다. 특히 평소 눈독들이고 있던 봉기의 딸 두리 때문에 흉년에도 봉기네 집에 많은 혜택을 준다. 욕심많은 봉기는 이 혜택을 거부하지 않는다. 하지만 두리를 삼수에게 줄 생각은 없다. 이 안이한 생각 때문에 두리는 음흉한 삼수에게 성폭행을 당하게 된다. 봉기는 땅을 치고 슬퍼했으나 이미 일은 벌어진 후였다. 대부분의 마을 사람들은 삼수의 횡포를 속으로 미워했다. 하지만 봉기와 두만 아버지는 삼수의 호의를 거부하지 않고 동조했다. 최참판댁 하인들처럼 마을 사람들도 두 편으로 나누어진 것이다. 윤보는 두만 아버지의 이런 기회주의적인 면을 비난하지만 두만 아버지 입장이 이해되지 않는 건 아니다. 두만 아버지는 삼수를 좋아하지 않지만 자신의 가족이 피해를 보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조준구와 삼수의 횡포는 심해진다. 이 두 사람의 횡포를 함께 받은 불쌍한 사람은 삼월이다. 삼수의 꼬심으로 삼월이는 조준구와 삼수의 밤노리개감으로 전락한다. 삼월이는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지만 자신을 버리지 않겠다는 조준구의 사탕발림 약속을 믿으며 하루하루를 살아간다. 그런데 어디 조준구 같은 인간이 믿을만한 인간인가? 조준구와 삼월이의 불륜현장을 발견한 홍씨부인에게 삼월이는 엄청나게 맞는다. 그러기를 몇 번, 삼월이는 정신이 온전치 못한 것 같다. 불쌍한 삼월이. 홍씨부인은 서희에게 종종 도발하지만 서희가 만만치 않다는 걸 파악한다. 수동이는 끝내 죽는다. 김훈장과 조준구는 가끔 심심하여 만나기는 하지만 점점 둘 사이는 멀어진다. 이제 최참판댁의 실질적인 지배자 더 나아가 평사리의 실질적인 지배자는 조준구가 되었다. 역병과 흉년 뒤에 조준구와 삼수의 횡포에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삶은 점점 힘들어진다. 러일전쟁, 을사보호조약 러일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했다. 그래서 조선에서 일본 세력이 커지게 되었다. 이동진은 러시아편에 섰다가 러시아쪽에 갔다는 소문이 있다. 아마 아관파천이 이즈음 일어났을 것이다. 결국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다. 김훈장은 한 줄기 희망을 걸고 조준구에게 의병관련 의논하러 갔으나 조준구 같은 인간이 어디 그런 것에 조금이라도 관심가질 인간인가? 나라보다 자기의 안위를 먼저 걱정하는 놈인데. 김훈장이 갔다간 후에 조준구는 신변에 위협을 느껴 다음날 서울로 간다. 죄인의 아내로 자식들과 떠도는 비참한 삶을 살던 임이네는 용이의 아내가 된다. 임이네만큼 삶에 대한 의지와 생명력이 강한 사람도 드물 것이다. 어떤 비참한 상황에서도 삶에 대한 욕심과 의지가 강한 여자다. 그게 어떤 방식이든 상관없이. 마치 질긴 생명력을 가진 쇠비름같은 여자이다. 임이네는 용이의 아들까지 낳아서 떳떳한 용이의 아내의 위치를 차지하고 만다. 하지만 용이의 마음은 예전부터 월선이에게 있다. 월선이는 나루터에서 용이를 기다리고 용이는 가끔 월선이를 찾아간다. 어릴 적부터 시작된 이들의 애틋한 사랑은 계속되고 있다. 이미 마흔을 넘은 나이인데도. 봉선이 열여섯이 되었고 길상이도 스물이 넘었다. 이성에 눈뜰 나이이다. 봉선이는 길상이에게 추파를 던지지만 길상이는 피한다. 길상이는 여동생같았던 봉선이가 여자로 다가오는 것이 당황스럽고 책임질 자신이 없다. 둘은 서로에게 관심은 있지만 어설프다. 구천은 길상이를 찾아와 별당아씨의 죽음을 알린다. 불쌍한 별당아씨. 하지만 어쪄랴 별당아씨의 선택이었으니. 구천이와 구천 아버지는 원하지 않았지만 최참판댁의 몰락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서희는 어린 나이에 비장한 각오를 한 것 같다. 조숙해졌고 조준구와 홍씨부인을 증오한다. 말수도 적어졌다. 윤씨 부인은 죽기 전에 서희에게 만약을 위해 장롱을 받치는 농발 위치에 무언가 놓은 것 같다. 바로 그건 은덩이인 것 같다. 그 은덩이는 평사리 의거 후에 간도로 이동할 때 요긴하게 사용된다. 평사리 의거 역병과 흉년, 그 뒤에 이어지 조준구의 폭정은 평화로운 평사리 마을 사람들의 인내심을 한계까지 끌어올린다. 역병과 흉년보다 오히려 조준구의 폭정이 더 마을 사람들을 자극했으니라. 물을 끓이다가 끓은 점이 넘으면 수증기가 생기고 물은 미친듯이 끓는다. 을사보호조약으로 곳곳에서 의병이 발생하고 더불어 양반들에 대한 증오가 퍼져갔다. 이제 폭발할 내부와 외부의 화약재는 충분해졌다. 누군가 성냥으로 그어주면 바로 폭발이다. 이런 때에 서울에 목수일하러 갔던 윤보가 거지차림으로 돌아왔다. 윤보의 출현은 성냥, 즉 방아쇠 역할을 했다. 그래서 평사리 의거는 별 문제없이 진행되었다. 마을 장정들은 밤에 횟불을 들고 최참판댁에 들이닥쳤고 삼수가 문을 열어주었다. 길상이의 귀뜸으로 서희와 봉선은 방에 있었다. 조준구와 홍씨는 도망쳐 사당 바닥 아래에 숨었다. 삼수는 그것을 알았으나 모른 척 하고 나중에 그 덕을 받으려고 한다. 의거를 일으킨 사람들은 동이 트기전에 재물들을 가지고 물러갔다. 조준구와 홍씨는 삼수덕에 목숨을 건졌다. 하지만 조준구는 일본군이 조사하러 오자 삼수가 주동자라고 하여 삼수는 죽인다. 조준구라는 인간은 정말 나쁘다. 삼수는 억울하겠지만 자업자득이다. 장정들이 사라진 마을은 썰렁하다. 일이 날 것을 감지하고 피했다가 돌아온 두만 아버지와 봉기는 평사리 의거에서 버림받았다는 외로움에 동병상련의 마음이다. 전에 조준구의 눈밖에 났던 한조 또한 억울한 죽음을 당한다. 임이네는 아들 홍이를 데리고 월선네로 가서 산다. 임이네의 이 이기적인 삶에 대한 의지는 인정해줘야 할 것이다. 월선이는 용이를 걱정하다가 어느날 밤에 용이가 월선이를 찾아온다. 그리고 부산을 통해 간도로 가는 배를 타는 계획을 털어놓는다. 서희, 봉선이, 월선이, 임이네, 이동진의 아들, 용이와 길상이 등은 길상이의 계획에 따라 간도로 가는 배를 타는데 성공한 것 같다. 길상이는 간도에 가면 결혼하자며 봉선이를 꼬셨지만 봉선이는 끝내 오지 않는다. 봉선이 소리를 배우려나? 1부 4권은 이렇게 끝난다. 어부지리? 먼저 임이네를 언급하고 싶다. 임이네는 죄인의 아내로 아이들과 떠돌아다니는 비참한 생활을 한다. 그러면서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 몸을 파는 등의 밑바닥 인생을 체험한다. 그러다가 용이의 아이를 배었다. 그리고 용이의 아내가 되어 다시 예전처럼 토실토실 살이 찐다. 죄인의 아내가 자신들보다 더 풍족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에 마을 아낙네들은 시샘으로 임이네를 미워한다. 게다가 용이는 얼굴과 풍채가 좋아 마을 아낙들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당연히 시샘이 있을수밖에. 그런데도 임이네는 굴하지 않고 겸손해하지 않고 자신의 행복을 은근히 자랑한다. 그래서 마을 아낙들과 임이네의 한바탕 싸움이 벌어진다. 용이의 아내가 된 임이네는 용이를 사랑했다기 보다 철저히 자신의 삶의 질과 지위를 높이기 위해 용이를 이용했다고 볼 수 있다. 임이네 입장에서는 칠성이가 죄인이 된 것은 자신의 잘못이 아닌 것이다. 칠성이 때문에 비참한 신세가 되었고 용이의 아내가 되고 아들을 낳아서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의 질을 회복한 것은 임이네 입장에서 잃었던 것을 다시 찾은 당연함이었을 것이다. 임이네는 떳떳하게 자랑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임이네가 칠성이의 아내였을 때도 마을 아낙들은 임이네의 미모와 행복에 부러움과 시샘을 느꼈다. 그런데 죄인의 아내가 다시 예전과 같은 삶의 질을 회복하는 과정을 바라 보는 아낙들은 편하지 않았으리라. 마을 아낙들은 임이네에 대한 시샘에 '권선징악'이라는 덕목이 더해져 임이네에 대하여 증오에 가까운 감정을 느꼈을 것이다. 이건 후덕한 두만네 역시 느꼈던 것 같다. 하지만 칠성이의 죄를 임이네에게까지 지우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것보다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라는 것이 임이네에 대한 마을 아낙들의 증오에 대한 실질적인 이유일 것이다. 자신들이 갖지 못한 아름다움과 삶에 대한 강한 의지를 임이네는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보통 아낙같으면 팔자려니 체념했을 것이다. 하지만 임이네는 아니었다. 자신의 삶의 질 회복을 위해서 임이네는 무슨 짓이든 할 각오가 되어 있었을 것이다. 비장함을 넘어 이건 임이네만이 가지고 있는 자유스러움이다. 칠성이의 아내였을 때에도 임이네는 용모좋고 풍채좋은 용이에게 추파를 던졌었다. 임이네의 이런 자유스러움과 개방성이 진정 마을 아낙들이 부러워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임이네의 복귀에 마을 아낙들은 세상은 공정하지 않다고 임이네는 어부지리라고 비난하지만 임이네의 복귀는 운이라기 보다 임이네가 성취한 것에 가깝다. 임이네는 그만큼 자신의 삶에 대한 열정이 강했고 이기적이었다. 너무 이기적이고 잘나서 문제지만. 용이가 평사리 의거로 사라지자 낯두껍게도 홍이를 데리고 월선이를 찾아간 것도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이건 낯이 두껍다기 보다 자신감일 것이다. 평사리 이거로 용이의 생사가 불확실할 때에도 임이네는 입이 미어터지게 밥을 먹었고 코를 골며 잠을 잤다. 임이네는 자신의 삶은 자신의 뜻대로 살겠다는, 자신이 편한대로 세상을 이용하겠다는 생각이 강한 것 같다. 이런 임이네의 자유스러움, 개방성, 과감함은 전통적인 유교사상, 예의범절에 반하는 것이다. 그래서 평사리 사람들은 임이네를 좋게 보지 않았지만 그 이면에는 부러움이 있었을 것이다.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접수한 것 또한 어부지리라고 마을 사람들은 수군거린다. 조준구의 경우는 임이네의 자유스럽고 과감한 도발과는 좀 다르다고 생각한다. 임이네는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기 위해 남에게 피해를 주지는 않았다. 즉 임이네는 죄를 지어가면서 자신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지 않았다. 조준구같은 겨우는 마치 기생충같은 전략이다. 기생충은 스스로 먹이를 잡는 노력을 하지 않고 숙주에 침입하거나 알을 낳아서 먹이를 해결하고 숙주를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경우도 있다. 이건 삼수도 마찬가지다. 임이네는 어느 정도 스스로의 노력과 약간의 운과 기회 포착을 이용했다. 하지만 조준구는 아니었다. 조준구는 스스로의 노력보다는 남의 것을 불법적으로 강탈하여 자신의 삶의 질을 높이려고 한다. 조준구는 이미 전에 평산, 귀녀, 칠성이의 최참판댁 접수공모를 알고 뒤에서 평산을 은근히 지원했던 전적이 있다. 그 공모사건으로 최치수는 죽었지만 결과적으로 그 공모사건은 실패했고 주모자 세 사람은 모두 처벌받았다. 조준구는 그 후에 숨죽이며 기회를 노린 것이다. 그러므로 조준구가 최참판댁을 접수한 것은 겉보기에는 어부지기 같지만 그건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막을 안다면 조준구는 오래전부터 최참판댁에 욕심을 부렸고 은밀히 기다렸다. 뜻하지 않게 역병이라는 재앙이 조준구에게 그 기다림을 단축시켜주는 고마운 역할을 했다. 그리고 조준구의 장점은 기다릴 줄 안다는 것이다. 조준구는 홍씨부인과 다르게 서희의 성미를 건드리지 않는다. 스스로 나서서 위험을 자초하지 않는다는 게 조준구의 장점이다. 사람들은 임이네의 복귀나 조준구의 최참판댁 차지를 바라보며 세상이 망하려 한다느니, 정의가 사라졌다느니, 어부지리 라느니 입방아를 찢으며 수군거린다. 하지만 드러나지 않은 내막을 안다면 그건 어부지리라고 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임이네나 조준구는 끊임없이 무엇을 획득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있었다. 그런 가운데 운이 따랐고 그 운을 잡았던 것이다. 다만, 조준구는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방식이라는 게 나쁘다. 조준구는 그런 의미에서 악인이다. 몰락의 원인은 내부에 있다 매우 어지러운 시기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강대국들의 권력싸움에서 러일전쟁으로 일본이 승기를 잡았다. 그리고 결국 을사보호조약이 맺어져서 나라가 없어지게 된다. 이런 어지러운 정세에 대하여 김훈장과 조준구 사이의 대화가 몇 번 있었다. 그리고 조준구가 서울로 가서 사람들과 한 대화에서도 이런 시절에 대한 여러 얘기가 나온다. 하지만 각자 자신의 한계를 넘지를 못한다. 김훈장은 나라 잃은 슬픔에 의거를 계획해보지만 양반으로서 권위의식을 넘지 못한다. 조준구라는 인간은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과 안위를 최우선시 하고 오히려 일본에 빌붙어볼 기회를 엿본다. 이런 인간은 제발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으면 좋으련만(마치 그분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각자 일본편, 러시아편 등에 서서 개혁을 얘기하지만 공허하다. 조선이 힘이 없어서 그런다고 안타까워할 뿐이다. 조선이 원래 힘이 없었을까? 일본의 힘이 강해서 을사보호조약이 체결되었을까? 역병과 흉년때문에 평사리 의거가 일어났을까? 이런 것들이 어느 정도 영향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 원인은 내부에 있다고 생각한다. 조선 500여년동안 쌓이고 쌓인 양반과 비양반 사이의 갈등과 불평등, 부당함은 조선의 내부를 갉아먹는 기생충이 되었다. 이 기생충은 이제 조선의 내부를 거의 다 갉아먹은 상태였다. 이런 비대해진 내부의 기생충 때문에 빈사상태인 조선은 약한 외부의 충격만으로 무너지게 되어 있다. 마침 양반에 대한 권위가 추락하고 있다. 평사리도 마찬가지다. 역병과 흉년에 이은 조준구의 횡포로 마을 사람들의 불만은 폭발할 지경인 끓는점에 이르렀다. 하지만 그 누구도 먼저 나서려 하지 않는다. 그 때 윤보가 왔다. 그리고 윤보의 등장은 방아쇠가 되어 평사리 의거가 일어났다. 을사보호조약이나 윤보의 등장은 방아쇠의 역할을 해서 썩을 대로 썩은 조선과 최참판댁을 몰락시켰다. 역사를 살펴보면 몰락과 멸망의 원인은 내부에 있다. 마치 바싹 마른 풀에 작은 불씨가 붙은 것과 같다. 그 들불은 마른 풀을 집어삼키며 바람따라 멀리멀리 갈 것이다. 그리고 불길이 꺼진 후에 그 검은재를 거름삼아 파릇파릇한 새싹이 돋아날 것이다. 이제 무대는 평사리에서 간도로 옮겨졌다. 간도에서 평사리 사람들의 삶이 어떻게 펼쳐질지 궁금하고 걱정된다. 4권의 중반부부터 빠져들었다. 저자의 글솜씨는 대단하다. 묘사를 뛰어넘어 마음을 움직인다. 내가 평사리에 살다온 것 같다. 만약 길을 걷다가 용이를 만나면 할 얘기가 많다. 윤보와는 밤을 새며 술을 마시고 싶다. 아무튼 저 정주학의 선비들과 왕실에 밀착된 명문 거족들의 준령르 타고 뻗어내린 줄기에는 두 개의 지류가 있다. (중략) 전자는 무위하고 후자는 종양(腫瘍)으로써 왕실 붕괴, 국가 파탄의 촉진제가 될 것이지만 수구 사상에서는 정예한 근위병(近衛兵)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러면 이 두 줄기를 타고 뻗어난 들판, 그 들판을 메운 서민들은 어떠했을까. 한 마디로 이들은 모두 수구파다. 생리적으로 수구파다. 수만 동학이 개혁을 부르짖고 일어섰으나 시초부터 그들은 인륜 도덕을 강렬하게 내포한 집단이었으며 그들의 기치는 위국진충(僞國盡忠)이며 소파왜양(掃破倭洋)이었던 것이다. (60~61쪽) -> 서민들이 모두 수구파라는 문장에 충격을 받았다. 지난 4.11 총선의 암울한 결과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식자들뿐만 아니라 서민들이 즐겨 쓰는 도리(道理)라는 말이 이는데 자식된 도리, 부모된 도리, 사람의 도리, 형제의 도리, 친구의 도리, 백성의 도리, 이 도리야말로 생활의 규범이다. 천재를 제신의 노여움으로 감수하듯이 무자비한 수탈 속에서 가난도 이별도 견디어야만 하고 도리를 준열한 계율로 삼아온, 이 자각(自覺) 없이 고행해온 무리가 조선의 백성이요 수구파의 넓은 들판이다. 조선 오백 년 동안 씨뿌려놓은 유교사상의 끈질긴 덩굴이며 무수한 열매인 것이다. (62~63쪽) 그리하여 이 나라는 지금 미거하고 우매한 백성으로 치부되어 일본의 희롱을 받고 있는 것인가. 중원의 대국 청나라가, 동방의 예의지국인 조선의 명맥이 바람 앞에 등불이란 말인가. 역사는 진정 정신문화의 종말을 고하고 물질문명의 흥성을 도모하고 있는 것인가. (중략) 물질문명의 시대는 흉기부터 앞장세우며 오고 있는 것이다. 정신문화의 시대는 척박한 가난의 살림을 안고 가고있는 것이다. 그러나 반대로 오고 있는 자는 또 갈 것이요, 가고 있는 자는 다시 올 것이다. 다시 올 때까지 산맥과 지류는 마멸되고, 한 시대는 가고 한 시대의 사람도 가고 사물만이 남을 것이다. (64~65쪽) "개 모래 묵듯이 시부리고 저븐 대로 시부리라. 바웃돌을 차믄 느 발만 아플 긴데." (81쪽) "야무지게 해라. 우짜든지 사램이란 지 하기 나름이니께. (85쪽) -> 두만이를 윤보를 따라서 서울 보내면서 두만네가 한 말. 바람이 없는 아침 강물은 깊이 잠들었다가 미소하며 깨어난 아기 얼굴처럼 맑고 순해 보였다. (88쪽) "내가 우때서. 삼신이 맨든 이 꼬라지하고 손님이 맨들어준 곰보딱지말고는 베릴 기이 하낫도 없지." (90쪽) 그 간절한 발원을 들으신 세존께서는 중승자자(衆僧自恣)의 날인 칠월 십오일을, 그러니께 백중날을 택하시고 이날 시방불승(十方佛僧)한테 백미(百味)의 반식하고 오과(五果)를 공양하면은 망모에 대한 비원이 성취될 것이라, 뿐만 아니라 과거 현재 칠세(七世)에 이르기까지 망부모는 아귀도에서 사함을 받게 될 기고 천인(天人)이 사는 곳에 가서 복락(福樂)을 누릴 것이라 하싰더란다. (100쪽) -> 백중날이 이런 날이구나. 빈부귀천 할 것 없이 늙음과 젊음의 차별 없이 슬픔도 하나, 바람도 하나다. 망자의 극락왕생은 바람이요 뜬구름같이 덧없는 인연의 슬픔이다. (101쪽) 대꾸 없이 월선이는 용이를 남편으로 치부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해본다. '언제 내가 그이하고 귀밑머리 마주 풀었노. 귀밑머리 마주 푼 사람은 강청댁 아니가. 그라고 자식 낳아준 사람은 임이네고. 아무 상관없는 사람이다.' (105쪽) 당장은 좋을지 모르지마는 남헌티 몹쓸 짓을 하믄 옳은 죽음 못하여. 세월이 보를 갚은 법이여." "그렇다믄 이 세상에 억울한 사램이 어디 있겄소. 참말로 세월이 보를 갚는다믄 천년이라도 기다리겄소." "그런다고 머 착한 사램이 고생 안 험다 할 수는 없제. 그것은 전생의 죄 아니까아? 그래도 제 마음만 청백 겉으믄 무서울 기는 없일 기고 마음도 편헐 기고오." "나쁜 짓 하는 사램들은 맘이 안 편할 기라 그 말이요?" "수풀에 앉은 새맨치로 맘이 안 편한 사램도 있일 기고 편헌 사램도 있일 기지마는 없보를 받을 적에도 마음이 편하까아?" (119쪽) -> 착한 사람은 복을 받지 않고 악한 사람은 벌을 받지 않는 현실에서 위안이 될만한 말이다. 절에서는 안거(安居)라 해서 여름철에 탁발을 하지 않고 중들은 수도를 한다는 것이다. 아무래도 벌레들은 여름철에 성하기 때문에 모르게 밟아죽이는 일이 허다하므로 살생계(殺生戒)를 범할까봐 중들은 나돌아다니지를 않고 하안거(夏安居)를 한다는 것이다. (132쪽) -> 하안거 하는 이유가 이런 거였구나.ㅎㅎ '이슬만 먹고 사는 죄 없는 벌레니까. 사람들처럼 욕심부리고 싸우지도 않지. 그리고 여름이 가면 죽는 슬픈 신세니까 말이야.' 매미가 울음을 뚝 그쳤다. (132쪽) "그 동안 연달아 사람이 주어 나갔어! 새삼스런 일도 아니지 않느냐? 이 집에 귀신이 들어 그렇다고들 하더구나!" "으흐흐 ...." "정말 그렇다면 나는 귀신하고 싸울 테야! 신령님네 살려주시오. 살려주시오 골백번 그래 봐야 아무도 살려주진 않던걸. 구구하고 치사스러워." 놀라며 봉순이 쳐다본다. (147쪽) 하늘과 땅덩어리느 끝과 끝을 꽉 물려놓은 것처럼 몇천 몇만의 겁(劫)을 그러하였는지 완강하게 팽팽하게 정지하고 있었다. 세월은 도시 어느 통로를 거쳐서 지나가고 있는 것일까. 삼월이 애기를 낳았고 수동이 죽었다. 그게 세월이란 말인가? (165쪽) -> 나는 움직임이 시간의 흐름, 세월이라고 생각한다. '생각할수록 모르겠어. 섣달 그믐날 밤 잠을 자면 눈썹이 희어진다지 않어? 그래서 꼬바기, 음, 자정까지 있어도 말이야. 어디 세월이 찾아와서 한 해를 보내고 떠난다는 작별 인사를 한 일이 있었나? 어째서 세월을 간다 하는고? 정월 초하룻날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 하는데 마찬가지 아냐? 세월이 찾아와서 한 해 동안 함께 있게 되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어? 그래도 사람들은 한 해가 가고 한 해가 온다고 말들 한단 말이야. 날마다 해는 동쪽에서 서쪽으로 가고, 그게 세월이란 말일까? 그래서 사람들은 늙어가고 죽고 또 아이가 태어나고 자라는 걸까? 세월, 시간, 그게 뭐길래?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또 지고 사람이 죽고 아이가 태어나고, 알 수 없군. 정말 윤회라는 게 있다면 왜 사람이나 짐승이나 벌레나 초목이나 그런 것들이 빙빙 돌아야 하는 걸까? 세월은 바람일까? 바람이 사람들을, 이 세상에 있는 것을 어디로 자꾸 몰고 가는 걸까?' -> 중고등학교 때 나도 병수와 비슷한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왜 사람은 태어나고 죽고 또 태어날까? 그 무엇을 위해서 이런 태어나고 자라고 죽는 것을 반복할까? 하기는 동학내란의 불씨를 안고 뛰어든 전봉준이 미리부터 군량미, 병기를 저장했던 것도 아니었고 돈 많은 사람들이 뒷배를 보아주었을 리도 만무다. 함에도 수만의 백성들은 백의종군했던 것을 생각할 때 유교사상이 빠질 수밖에 없는 함정이라고나 할까, 너 죽고 나 죽자가 아니오 나만 죽겠다는, 그것도 의관을 바로하여 욕됨이 없이 죽겠다는, 결국 김 훈장이 몇 사람의 유생과 더불어 떠난 것도 그 자신으로서는 죽을 자리를 찾아간 셈이라고 할밖에 없다. (194쪽) 장날이믄 짐승가죽이랑 녹용이랑 약초랑 가지오는데 아닌게아니라 모두 조선 사람들이었소. 야금바리고 부지런하고, 나라서만 좀 뒷배를 보아주믄은." "당장 발등에 떨어진 불도 못 끄는데 그럴 엄두가 났이까." (206쪽) -> 월선이와 용이가 간도 얘기를 하는 부분이다. -> '환(幻)이었다.'는 무슨 뜻일까? 환(幻)은 변하다, 미혹하다, 허깨비, 요술의 뜻인데. 허깨비 같다. 우금치(牛金峙)의 싸움이란 축멸왜양(逐滅倭洋)의 기치 아래 재기포(再起包) 한 동학군의 최후 결전으로서 시산혈해(屍山血海)를 이룬 처참한 패전을 말한다. "양반이라면 치를 떨던 위인이, 그러나 그 자신은 상민의 배신으로 죽었으니, 녹두장군도 그러했고." (257쪽) "세상이 부끄러워 홀로 이곳에 사네." "......" "핍박받는 상놈, 농민들을 이끌고 나간 내가... 내 처자식은 그 상놈들 손에 잡혀 죽었으니 어찌 세상이 안 부끄러울 수 있겠나." (258쪽) '실은 내 속에 이는 원한도 진정 그게 원한인가 믿을 수 없구나. 불민한 너를 위한 아픔도 진정 그게 아픔인가 믿을 수 없구나.' (272쪽) 아픔이나 원한이나 인간사에서 그 모든 생각보다 더 깊고 큰 것이 있었습니다. 그게 허무가 아니옵니까? (272쪽) 언론이 되살아났다고 해서 권리까지 되살아난 것은 아니다. (277쪽) 아, 아닌말로 하인놈을 붙어 달아난 별당아씨만 하더라도 얼매나 얼매나 요조했다고? 어디 펭생 언성 한분 높이시까. (286~287쪽) -> '요조'라는 단어가 이때도 쓰였구나. '오래간만에 돌아와 보니 시시로 변하는 기이 세월이라 카지마는 산천은 예나 마찬가지로 좋구마. 이 좋은 고장을 버리고 내 참 많이도 떠돌아댕깄고나. (302쪽) '사람으 사는 이치가 이러저리하고 여시여시하다고 글쟁이들은 말도 많더라마는, 날씨도 개인 날 흐린 날 눈비 오고 바람 불고 노성별력 치고 하듯이 사람으 살아가는 펭생도 그 같은 거 아니겄나. 그런 거를 낚싯대 들고 강가에 앉아서, 그거는 좀생이 겉은 인생인 기라. 사시장철 개인 날만 있다믄 그기이 어디 극락이겄나. 산천초목도 사람도 다 말라죽어부리는 지옥이지 머겄노 말이ㅏㄷ. 그러니 비 오고 바람 불고 눈 오는 그기이 땅을 다스리는 하나님의 이치이듯이 사람으 경우도 매한가지 이치일기니 우찌 낚싯줄이나 내리놓고 가만 있겄노. 용천지랄을 해보는 기다. 사나아 자석으로 태어나서, 하기야 상놈으로 태이나서 받은 거는 천대밖에 없다마는 내가 그래도 이 강산에 태어났이니 아, 멩줄이야 탄탄하게 태이났지. 용천지랄을 하다가 아무래도 그러크름 죽는 기이 나한테는 걸맞을 기구마. 용천지랄을.' (303~304쪽) -> 이후로 윤보는 정말 '용천지랄'(마구 법석을 떨거나 꼴사납게 날뛰는 모습을 욕하여 이르는 말)을 한다. 그러다가 죽는다.ㅠㅠ "흠, 천지개벽도 안 하고 내 안티자리가 고스란히 남아 있는 거를 본께 반갑구마. 산천이야 말이 없지마는 간사스러븐 사람보담야 낫제." (309쪽) '양반님네들, 날장구라도 치야 할 거 아닙니까! 굿 뒤에 날장구라도 치야 할 것 아닙니까! 체멘하고 염치를 목심보다 중히 여기는 양반님네, 나라 뺏긴 거는 안 부끄럽고 왜놈한테 빌붙은 역적놈 목 베자는 거는 부끄럽다 그 말심입니까?' (339쪽)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언제나 남을 해칠 함정을 파놓고 있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금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난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밝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 (349~350쪽) -> 조준구의 말이다. '토지'라는 단어가 나왔다! <단어> 아라사: 아, 그것도 짐작이 안 가시오? 아라사하고 일본이지 누구긴.(37쪽) 아라사는 러시아인듯. 봉창: 골방이지만 뒷벽에 봉창이 하나 있었고 해질 무렵이면 (167쪽) 봉창은 여닫지 못하도록 봉해놓은 창문. 결전(結錢): 그런데 한 가지 결전(結錢)을 내지 말자고 조선팔도에다가 포고문(布告文)을 냈다 카는데 그거 하나 잘한 생각이라. (237쪽) 결전(結錢)은 논밭에 물리던 세금의 부가세로 받는 돈이라고 한다. 핵짚세기: 핵짚세기란 짚 속의 벼를 훑어낸 줄기만 가지고 삼는 신발이다. (238쪽) 조상(彫象): "길상이놈을 길렀으면 천수관음을 조상(彫象)할 수 있었을 게야." (268쪽) 조상은 그린다는 뜻 같다. 날장구: 부질없이 공연히 치는 장구 열냥쭝: 이 말을 봉순이로부터 전해들은 서희는 열냥쭝은 될 성싶은 은덩이 하나를 보내왔다. (389쪽) <의문> 1) "저 세가 만발이나 빠지 죽을 놈이."(11쪽):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 2) 유만부득: "저 목이 뿌러져 죽을 놈이 앰한 소리를 해도 유만부득,"(11쪽): 유만부득이 뭘까? 3) 풀어버린 귀밑머리가 서러운 젊은댁네 (101쪽): 왜 서러울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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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를 읽노라니, 지금의 우리들의 삶과는 다른 100여 년 전으로 훌쩍 시간여행을 떠나게 된다. 고개를 갸웃거리기도 하고, 이야기에 홀딱 정신을 팔기도 한다. 땅에 붙박인 운명을 지고 태어난 평사리의 사람들, 그 삶의 살풍경들이 가슴 깊이 파고든다. 역병이 휩쓸고 가뭄 뒤에도 살아남은 사람들, 그 메마른 땅에서도 한줄기 생의 불씨를 키우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목덜미를 잡아끌며 옴짝달싹 못하게 한다. 그토록 바라던 양아들 한경을 얻은 김 훈장, 수동의 죽음으로 더욱 활개를 치는 조준구의 횡포, 그리고 서희에 대한 병수, 길상에 대한 봉순의 애틋한 마음들과 더불어 용이와 월선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호기심을 끌었다. 물론 2권에서 깔린 조준구의 한조에 대한 잔인한 보복의 결과도 확인하였고, 구천, 환의 이야기가 다시금 눈길을 끌었다. 하지만 <토지 1부 4권>의 이야기는 진정으로 평사리를 떠날 수밖에 없는 일련의 사정들을 풀어놓으면서 팽팽한 긴장감과 호기심 속에서 혼란의 시대를 생생하게 펼쳐주었다. 서희와 조준구의 팽팽한 기 싸움, 솔직히 이미 한쪽으로 치우친 상황, 역전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도 볼모처럼 별당에 갇힌 서희, 하지만 여전히 당찼다. ‘포악스럽고 음험하고 의심 많고 교만한 서희’라지만 자신의 야심과 집념, 그리고 명석함으로 한 수 위인 서희의 이야기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지 기대될 수밖에 없다. 기회를 엿보면서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을 쥐락펴락하며 몸을 움츠리고 있는 서희! 참으로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하지만 이번에 특히 주목한 것은 ‘임이네’다. 줄곧 그려진 임이네는 진정 ‘잡초 같은 질긴 생명력’의 대명사라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끈질긴 생명력, 그 잔인하도록 꿈틀거리는 생의 욕망은 절박함의 또 다른 외침으로 들리고, 그 몸부림이 조금은 애틋하게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분명 그녀가 팔자 운운하며 기구한 삶을 푸념하지만 그 와중에도, 오롯이 자신의 지금을 살아내는 모습이 자신의 운명에 확고하게 맞서게 될 서희의 또 다른 모습처럼 다가왔다. 조금은 모나게 도드라질 수 있는 ‘임이네’의 모습은 불안한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무력하게 허물어질 수 있는 내게 강한 어조로 말하는 듯하다. ‘보라, 내 주변의 그 어떤 상황에 아랑곳하지 않고, 고개 들고 떳떳하게 내 질긴 운명을 고스란히 맞이하겠다’고. 내 안에 도사리고 있을 ‘임이네’의 본능을 끌어내고 싶어진다. 이 봄날, 생이 마구 마구 움트는 날것 그대로의 삶에 나 역시 충실하게 살아내고 싶은 충동이 꿈틀거린다. 여전히 선과 악의 대립으로 책을 읽게 된다. 그런데 평사리 의거 속 삼수의 이야기를 통해 박경리 작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게 된다. 악의 생리에 대한 일침이라고 할까? 삼수의 죽음이 악의 궁극을 보여주는 듯하다. “어리석은 삼수. 그가 아무리 악독하다 한들 악의 생리를 몰랐다면 어리석었다 할밖에 없다. 악은 악을 기피하는 법이다. 악의 생리를 알기 때문이다. 그러나 역시 궁극에 가서 악은 삼수가 지닌 그와 같은 어리석음을 반드시 지니고 있다. 왜냐, 악이란 정신적 욕망에서든 물질적 욕망에서든 간에 그릇된 정열이어서 우둔할밖에 없고, 찢어발길 수 있는 허위의 의상을 걸치고 있기 때문이다.”(349)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 특히 한복의 이야기가 아직 덜 풀어졌다. 평사리 의거에도 참여하지 않은 이유가 아직 의문으로 남아있다. 왜 한복은 남았을까? 살인자의 아들이란 멍에에도 불구하고 올곧은 심성으로 평사리에 자리잡아가는 한복의 이야기에 눈길이 간다. 그리고 서희의 일행에 합류하지 않은 봉순이의 이야기가 과연 어떻게 전개될지 여전히 기대와 흥분을 드높아질 뿐이다. ‘가냘픈 희망’을 안고 고국산천을 떠나게 된 이들의 삶과 온갖 수모와 설움을 견디며 살아야할 남은 자들의 이야기를 어서 만나고 싶다. 이제 1부의 평사리라는 공간에서 벗어나 간도, 용정으로 확장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시작, 출발선처럼 느껴진다. 그들처럼 나 역시 갈 길이 험하고도 멀게 느껴진다. 2부, 3부로 전개될수록, 사람들의 이야기는 더욱 얼키고 설키며 더욱 생생하게 살아나 내 곁으로 다가올 것이다. 그들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다양한 사람들의 북적임을 살뜰하게 들여다보고 싶다. 다른 책들의 눈길과 손길을 외면하며 나 역시 싸워야한다. 이젠 내가 평사리에 붙박인 두만네 처지가 된 듯, 그럼에도 마냥 들뜨고 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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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3권을 읽고 한 1~2년 지났나? 그러면서도 일단 회사서 들고있긴 한데 회사 점심시간에 의외로 책 읽기가 쉽지가 않다. 뭐 이런저런 핑계거리로 밖에 안되겠지만 여튼 그래서 1부 3권 내용이 가물가물하기도 하고 4권의 앞부분은 제대로 기억 안 나기도 하고...... 재미는 있는데 속도는 안 나가는 그런 기분이랄까. 한자리서 어떻게든 훅 읽어야 하는데 <토지>라는 책이 또 그렇게는 안되네. 책 속에 나오는 사투리는 내 고향 사투리라 이해하는데 전혀 어려움은 없는데 텍스트로 읽자니 속도가 안 나가긴 한다. 아마 다른 도시사람들은 더 하리라 생각되네. 아무리 각주가 달려있다고 해도 진짜 이해안되는 사투리들이 어마무시 하니까...... 나는 박경리 쌤에게 감사해야 하나 ^^;;
4권의 주 이야기는 크게 뭐 이렇다할 것 보다 일본의 식민지배의 본격화와 최참판댁을 조씨가 휘두르는 상황, 그에 비해 서희는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는 안타까운 일들이 일어난다. 그리고 서민들의 삶은 더욱더 피폐해지고 인심은 갈수록 흉흉해진다. 시골이지만 목수 윤보는 일본인들에게 대항하고 일본 앞잡이인 조씨를 죽이려하지만 죽이는 데는 실패한다. 곶간만 털어서 일단 산속으로 숨는 그들. 세상이 복잡하게 흘러간다. 그리고 급박하게 흘러가기도 하고.... 개인적으로 4권에서 서희의 활약이 아직도 미미해서 좀 실망이랄까. 아직 애기씨니 그렇겠지만 드라마로 볼때의 서희는 어려도 강단이 있었고 조씨 부인인 홍씨에게도 대들 수 있는 강단이 있었는데 전혀 그런부분이 그려지지 않아 드라마 각색이 너무 된건가 싶기도 했다. 세월의 흐름으로, 시대의 흐름으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길상을 좋아하는 봉순의 마음아픔, 용이의 이기적인 마음등을 보면서 이것 참.... 그런 용이를 좋아하는 월선은 뭔 죄냐고..... 답답한 등장인물들의 일상이 이어지는 이야기 전개였다. 그래도 후반부에 드뎌, 행동하는 사람들. 서희와 길상, 그리고 용이등 많은 사람들이 간도로 넘어가면서 1부는 마무리가 된다. 앞으로 2부가 기대되는 구만..... 2부는 아무래도 이야기의 흐름이 더 빠르겠다 싶다.
너무 틈을 많이 주고 읽는 시리즈는 제대로 된 이야기를 엮어내지 못하건만 이 핑계 저 핑계로 너무 오래토록 <토지>를 잡고 있는 건 아닌가 모르겠다. 이제 겨우 4권 읽다니...... 아직도 갈길이 멀다. 그래도 나오는 등장인물들 한사람 한사람 영혼이 불어넣어져 있다보니 그들의 이야기 하나도 놓치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마음에 안드는 등장인물들이 더 많아서 성질은 나지만 시대상의 이야기인 만큼 그러려니 하며 읽어간다. 그 시대를 관통하며 지내온 우리네 서민들의 모습과 삶을 오롯이 보는 맛은 박경리 선생님의 멋드러진 사투리 글에서 더 빛을 발하는 듯 하다. 자.. 2부는 속도를 좀 올려보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