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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의 목적은 광고를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재 자신의 삶에 대해 불만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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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동료가 이 책을 읽어보라 추천을 해 주어서 곧장 책을 주문해 읽고는 이제 막 마지막 책장을 덮고 느낌이 가시기 전에 리뷰를 쓴다. 저자는 책 전반에 걸쳐서 자신의 결정에 대해 반신반의했던 것 같다. 물론 말로는 확신하고 너무나도 불태우기를 잘 했다는 자평을 하고는 있으나 스스로 심리치료를 받는 등 뭔가 충동적으로 일은 저질러놓고 스스로 괴로워했던 것은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러면서 자신의 판단이 옳다고 계속 믿기 위해서 브랜드에 대한 공부를 열심히하는 등 노력을 기울였던 것 같다. 과시하고픈 성향 때문에 브랜드를 찾다가 브랜드 없는 삶을 택했다는 것을 과시하려는 퍼포먼스와 책 발간. 일관된 면은 있는 것 같다.
이 사람은 브랜드 전문가가 아니다. 다만 브랜드를 좋아했던 사람이고 브랜드와 관련된 프로모션 일을 했던 것이지 브랜드 및 마케팅 이론가는 아니다. 이 책을 쓰기 위해 많은 조사를 했던 것 같지만 아마추어 냄새가 풀풀 풍긴다. 물론 조사래봐야 도서관에서 브랜드 관련 책들을 읽어보고 그 중에서 자신의 논리를 보강할 수 있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인용한 것 뿐이지만 말이다. 최소한 나도 이 사람의 논리를 반박할 수 있는 자료들을 찾아서 더 많은 분량으로 인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책을 읽어보고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좋은 구절도 많고 나름대로 재미도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어리석음에서 깨닫고 남들은 아직까지 브랜드의 허상에 속고있는 무지몽매한 백성들이라는 생각을 하고있는 것 만으로도 이 책의 저자는 아직 어린애라고 생각한다. 이 사람은 브랜드를 쓰고 싶은 중독에 걸려있다가 브랜드를 쓰지 말아야 겠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게 된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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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브랜드없는 세상을 살 수 있습니까?'
쿠션좋은 00침대위에 펼쳐진 극세사의 ㅁㅁ자리 이불위에서 기상한 나는 시린이를 위해 만들어졌다는 치약을 대한치과협회에서 인증했다는 치솔위에 손톱만큼 짜내어 양치를 한다. 라이스비누에 세수를 하고, 페이싱 폼으로 다시 얼굴을 씻어야 개운해지는 느낌을 얻게 된다. 아, 잊었다. 양치와 세수 이전에 눈을 뜨자마자 냉장고에서 제주에서 솟아났다는 생수를 마시고, 변기에 앉아 볼 일을 보며 담배를 한 대 피운다. 기상후 10분동안 나는 8개의 브랜드제품을 사용했다. 이후 스킨과 로션, 에센스, 그리고 향수를 뿌리고 출근준비를 하면서 더욱 많은 브랜드를 바르고 걸치며 하루를 시작하는데, 그 하루는 거의 브랜드를 도배하듯 포장하며 살아가게 된다. 눈을 뜨면 세상은 말한다.
' Welcome to Brands world.'
이 책의 원제목은 Bonfire of the Brands 즉, 브랜드 화형식이다.
다시 말해 루이비통을 태울 수 밖에 없었던 명품만을 고집하는 소위 '된장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자신과 브랜드 사이의 관계에서 자신의 자아상을 확립하며 살았던 그는 어느날 그 인위적 관계가 지속적인 만족감을 안겨주지 못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유명 브랜드의 제품이 가득하고, 명품도 상당한 자신은 마땅히 행복해야 하는 것이 당연할텐데 오히려 허무함을 느끼게 되고, 급기야 속았다는 각성을 하기에 이른다. 자신을 옆에 두어야 행복해지고, 더 나은 삶을 누리게 된다는 브랜드제품들과 그 광고들의 거짓말을 수십 년 동안 믿어왔던 자신을 되돌리기 위해 '나는 브랜드 중독자다'라고 선언하게 된다. 술과 약물중독자들이 그들을 가까이 하지 않듯 브랜드를 멀리하기로 결심하고, 지금껏 구입했던 브랜드 제품을 태우게 되는데 화형식 전후에 자신에게 일어난 여러가지 에피소드와 느낌을 일기형식으로 풀어내었다.
브랜드를 태워버리기로 결정한 이유는 선언적 의미의 그것보다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브랜드를 남들에게 줄 수 없다는 강한 집착때문이라고 책에서 고백하는 저자의 글 속에서 '내 모습'을 수없이 발견했는데 무척 당황스러웠다. 이 책을 읽기전까지 '브랜드광'이라는 '선입견'을 그에게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뭐 어때? 나만 그런가?'라는 반문을 수없이 던져보지만 윤택한 삶을 위해 브랜드를 사용하는 것을 넘어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에 대해 '어림짐작'을 하는 수단으로 이용하고 있었던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저자는 'No Brands'를 선언하기 위해 화형식을 감행하게 된다. 블로그에 실리는 그의 글엔 수많은 여론과 언론의 찬반양론을 양산하게 되고, 화형식에 임박하면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조차 모르는 패닉상태에까지 빠지게 된다. 책의 후반부에서 주목할 점은 그를 포장했던 브랜드를 태워버리기까지의 고통스러운 갈등상황을 이야기한 것보다 화형식이후 더 이상 브랜드 제품을 사용하지 않으면서 생활하는 저자의 'No Brands Life'에 있다. 그가 규정한 브랜드는 제품을 떠나 브랜드화된 상점과 마트 그리고 프랜차이즈 회사까지 광범위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필요한 모든 것은 갖추었지만, 그것을 보여주고 함께 향유할 사람이 없었던 사람, 영화[나는 전설이다]의 윌스미스만큼이나 고독하고 힘겨운 하루하루였다. 그만큼 세상은 이미 브랜드에 점령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메트로폴리탄의 도시속에 움막을 짓고 홀로 사투를 벌이고 있었다. 잠시 책을 멈추고 만약 그와 함께 'No Brands Life'에 동참한다면 어떤 생활을 하게 될 것인가? 나도 할 수 있을까? 생각할 여지 없다. 난, 못한다.잠깐의 고민조차도 내게는 카오스chaos 그 자체였기 때문이다.
그와 나의 차이는 아마도 그가 브랜드에 염증을 느꼈다는 것이리라. 더 이상 자신을 속여온 브랜드를 몸에 걸치고, 먹으며, 방문하기를 멈춘 것이다. 그것은 '내가 숲으로 들어간 것은 내 인생을 오로지 내 뜻대로 살아보기 위해서였다'고 말하며 월든 호숫가에 오두막집을 짓고 최소한의 간소한 생활을 하면서 이른바 '자발적 가난'이 가져다 주는 풍요로움을 추구하며 살다 간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우의 소극적 저항과 다를 바 없다고 느껴졌다.
이 책은 필요 이상으로 많은 제품으로 둘려싸인 이 세상 속에 살고 있는 나에게 '하루 하루 나의 뜻대로 제대로 살고 있는가?'하는 화두를 던져주었다. 또한 브랜드와 광고, 그리고 명품을 바라보는 시선은 확실히 예전과는 또 다른 느낌으로 다가옴을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결심이 변하지 않기를 기원하며 이 삼년 후, 'NO Brands Life'를 살고 있는 저자 닐 부어맨의 또 다른 책 'After Bonfire Of The Brands'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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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9월 17일, 여기는 런던 도심의 한 광장. 광장 한가운데에서는 무언가가 활활 타오르고 있다. 유난히 구경꾼이 많은 화형식이다. 태우는 품목이 무엇이기에?
루이뷔통 가방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아디다스 스니커의 줄무늬가 보이고, 랄프로렌 점퍼와 라코스테 티셔츠는 한 무더기나 된다. 사서 입기에도 아까운 저것들을 도대체 왜 불에 태우고 있는가! 미치지 않고서야 할 수 없는 짓이라는 생각이 드는 찰나, 바로 그 미친 인간이 눈에 들어온다.
이름은 닐 부어맨. 자신을 ‘명품 중독자’라 칭하는 남자다. 알코올이나 마약 중독만큼이나 무서운 ‘브랜드 중독’을 경험하고, 중독 상태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오늘의 행사를 기획했다. 화형식이 있기까지 186일간의 과정을 온라인 상에 일기처럼 올리기 시작, 이는 많은 네티즌과 언론의 관심을 끌었고 찬반양론을 불러일으켰다. 차라리 기증을 하라며 욕을 퍼붓는 사람,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라며 지지를 보내는 사람, 태울 거면 자기에게 선물해달라는 친구까지 가지각색의 반응이 뒤따랐다.
그 어떤 비난보다도 닐 부어맨을 괴롭혔던 건 브랜드를 미치도록 사랑하는 자기 자신. 하루에도 몇 번씩 결심을 포기할까 고민하고, 진짜 아끼는 녀석들은 몰래 숨겨두는 꼼수도 써본다. 하지만, 중독에서 벗어나려면 브랜드 소비를 ‘줄이는’ 것이 아니라 ‘없애는’ 방법밖에 없음을 깨닫고 브랜드 제품들을 골라내기 시작한다. 처음엔 단순히 명품 가방, 옷, 신발 정도로 예상했던 브랜드의 범위가 칫솔, 샴푸, 비누 등 생활필수품 거의 모두를 포함한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닐 부어맨 그리고 독자는 함께 느끼게 된다. ‘이거 장난이 아닌데. 일이 커지겠어…’
이 기록은 더 이상 닐 부어맨이라는 특정인의 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엇인가를 사들이는 우리, 즉 ‘소비자’ 전체에 대한 기록이다. 명품 중독자가 아니니 당신은 빼달라고? 브랜드는 명품에만 붙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공간에도, 당신의 손에 쥐어진 마우스에도,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우는가?>라는 책에도 브랜드가 붙어 있다. 브랜드라는 이름 아래에서 결코 자유로울 수 없는 우리의 소비행태와 심리에 대한 기록을 이 책은 가볍지도 지루하지도 않게 다루고 있다. ‘소비자 행동론’ 등의 개론서나 마케팅 이론서를 접하기 전에 보면 좋을, 기본서 정도의 역할은 해낼 수 있을 만큼.
이런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거부감을 줄만 한 요소가 몇 군데 있다. 일단, 한 개인의 브랜드 중독을 극복하기 위한 것치고는 들어간 비용이 장난이 아니라는 것. 온갖 명품들을 깡그리 태워 없애는 ‘화형식’밖에는 방법이 없었을까? 자신이 내뱉은 말의 파급 효과가 예상보다 커져서 그만두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화형식을 진행한 느낌이 든 것은 나뿐일까?
한편, “소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경고”라는 평가도 있기는 하나, 그의 행위를 정당화하고, 기삿거리로 팔아먹기 위한, 과장된 수식어처럼 느껴진다. 모든 브랜드를 끊고, 시장이나 중고상을 뒤져 대체 용품을 찾아내고, 내뱉은 말을 지키겠다고 치약까지 만들어 쓰는 닐 부어맨의 모습은 우습기까지 하다.
알코올 중독을 극복했다는 것은 술을 끊었느냐가 아니라 술을 조절할 수 있느냐의 문제다. ‘브랜드 중독’ 역시 중독의 범주에 포함된다면 이 기준에서 벗어나서는 안 된다. 닐 부어맨의 행위가 네티즌의 찬반양론을 이끌어 내며 ‘브랜드 소비자’로서 각자의 소비행위를 돌아보게 한 점은 긍정적이다. 하지만, 그의 186일간의 사투(아마도 그에게는?)에는 건강한 소비가 빠져있다. 그의 병명은 ‘명품의 과소비’였지 ‘브랜드 소비’가 아니었다. 병의 원인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극단적인 처방을 내린 결과는? ‘아니, 왜 굳이 그렇게까지…?’하는 의문과 함께 ‘아깝게…쩝…’이라는 씁쓸함을 독자에게 남겨줄 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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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겨보는 프로그램 중 하나인 W 에서 닐 부어맨의 그 장면을 보여준 적이 있다. 닐 부어맨이 모든 브랜드를 태우던 그 장면.
처음에 책을 읽기 시작했을 땐 굳이 그럴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조금씩 자신의 생각을 개선하고 사치라 생각되는 브랜드만 태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던 것이다.
이 책은 닐 부어맨의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그 과정을 담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그의 생각에 공감하게 되었다.
나는 결단력이 부족한 종류의 사람인데 끊임없이 유혹에 흔들리는 편이다. 유혹을 견뎌낼때도 있지만, 바로바로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다가 흐지부지되는 때도 있다.
어쩌면 닐 부어맨도 그랬을지 모른다. 자신을 평생동안 옭아맸던 그것들로부터 한번에 달아나려면, 모든 기억을 다 버릴 순 없으니 모두 태워버리자는 것일지도 모른다.
이것은 이래서 남기고 저것은 저래서 남기면 나중에 눈에 띄었을때 또 다시 자신이 모든 것들을 반복하게 될까봐, 그게 두려워서 그렇게 다 태워버린 것일지도 모른다.
이 책을 읽고, 그래서 어쩌자고 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런 사람은 정말 어쩔 수 없는 거고
이 책을 읽고, 아- 변하자 하고 생각하는 사람은 닐 부어맨이라는 한 사람을 통해서 인생을 변화시킬 기회를 찾은 사람이라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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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자극적인만큼 책의 내용 또한 자극적이다. 저자가 루이비통같은 명품브랜드들의 상품들을 불태울 수밖에 없었는지에 대한 항변글이기도 하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소비사회의 행태에 대한 고발이기도 하지만, 나는 그의 행동을 전적으로 동의하고 싶은 생각은 없다. 그렇지만 저자가 말해주고 싶어하는 우리 사회의 비뚤어진 명품소비사회에 대한 변화에 대해서는 많은 부분 동의해주고 싶다.
이 책은 저자가 브랜드 화형식을 하기로 마음먹고 6개월의 준비기간과 그 이후에 대한 두가지로 크게 나뉘어져 있다. 6개월의 준비기간동안의 일기형식으로 서술된 내용이 주요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화형식 이후의 저자의 삶을 그려내고 있다. 책을 다 읽는 지금도 나는 저자가 '브랜드'에 대한 정의를 굳이 강박관념을 가지면서까지 정해야하는지는 의문이 든다. 저자의 지나친 강박관념이 그에게 무슨 도움이 될지 걱정스럽기도 했다.
그의 어린 시절에 브랜드가 지니는 영향을 강력하게 받아서, 그의 명품브랜드 중독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그의 부모님은 합리적이고 이상적인 소비생활을 지닌 지극히 평범한 삶을 살아오셨다. 하지만 학창시절 변변한 브랜드를 가지지 않은 저자는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아픈 추억을 가지고 있다. 하나의 잘나가는 브랜드를 지님으로써 친구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그는 브랜드가 주는 힘에 점점 의존하게 된다. 그 길로 들어선 그는 명품브랜드만을 좇는 청년으로 성장한다.
그러던 그는 존 버거의 '사물을 보는 시각'이라는 책을 읽으면서 그의 소비행태에 회의감과 함께 분노를 느끼기 시작한다. 브랜드에 중독되었음을 자각하면서 그의 브랜드상품을 불태우기로 결심한다. 그가 알콜중독에서 벗어난것처럼 브랜드중독을 벗어나기 위해 6개월이라는 준비기간을 가진다. 그 기간을 가지면서 그의 블로그에 일기형식으로 글을 남기게 되고, 그 글들은 네티즌들에게 공격의 대상이 되었다. 그럼에도 그런 글들이 그의 결심을 흔들리게 하지는 않았다. 브랜드의 허황성을 알리기 위해 그는 많은 브랜드관련 서적을 읽었으며, 그의 논리는 꽤 설득적이다.
우리 사회는 광고에서 나타나는 브랜드의 이미지를 매일 접하면서 살고 있다. 광고업계와 기업에서는 브랜드이미지를 사람들에게 공통적으로 부여되기를 원하고, 그것은 그 브랜드를 선호하는 소비자가 생성되길 원하는 말이 된다. 곧 그것이 이윤창출의 큰 이바지를 하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들의 상품을 보기좋게 광고하는 것은 소비자를 위해서가 아닌 그들을 위해서라는 의미가 된다. 이 점을 저자는 논리적으로 설명하면서 브랜드가 가지는 허황된 이미지를 버리라고 말한다. 그가 브랜드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도 필요했으리라고 본다. 무척 괴로워하며 글을 적어나간 흔적이 엿보여 안쓰럽기까지 했다.
우리나라에서 루이비통백 중 유명한 백을 '3초백'이라고 부른다. 길거리에서 3초마다 볼 수 있는 백이라 붙여진 별명이다. 이런 몰개성화는 내가 학창시절의 '이스트팩'의 가방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그 가방은 교복과 더불어 학창가방이라고 불리울만큼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통일된 학교가방을 보여줬다. 지금은 젊은이들이 매는 가방에서 찾아볼 수 없을 정도로 유행에서 떨어진 브랜드가 되었지만 말이다. 브랜드에 민감한 사람은 유행을 쫓기 마련이다. 이런 모습은 우리나라에서 유행은 곧 몰개성화를 뜻하는 것이 되버렸고, 우리는 그것을 당연시하며 남들을 따라한다. 그에 따른 소비성향은 과소비로 이어질 수 밖에 없다. 이 정도면 중독이지만.
저자는 남들을 평가하는 기준으로 그 사람이 몸에 지니고 있는 브랜드에서 찾는다고 한다. 과연 나도 상대방을 평가하는 기준이 브랜드가 아니었는지 생각해보게 된다. 나는 우선 명품브랜드라고 불리는 몇몇 가방브랜드를 지닌 여성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 여성이 가지고 있는 모든 가방이 명품브랜드라면 만나고 싶은 생각이 추호도 생기지 않을 것이다. 명품브랜드를 떠나서 몰개성적이고, 과소비성향이 짙게 보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그 돈으로 책을 사보지 않을까라는 생각까지 해보면서 말이다.
소비는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된다고 한다. 돈을 지출해야 기업들이 살고, 기업들이 살아야 나라경제에 도움이 되며, 그 도움은 다시 국민들에게 돌아간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부의 분배를 정부에서든 기업에서든 적절하게 취한다면, 굳이 이런 논리를 펴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한쪽으로 치우친 부의 분배로 인해 경제활성화에 도움이 되지않음을 알지만, 사람들의 이기심과 욕심은 끝도 없나보다.
이 점에 있어서 저자는 브랜드 없는 상품을 선택하기 위해 처절한 몸부림을 친다. 사실 브랜드 없는 상품을 찾기란 이 시대에서 어려운 일이 아닌가. 저자가 정의하는 브랜드 없는 상품이 정말 현명한 소비를 하는 것인지는 의문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이런 노력은 그에게 있어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일처럼 보이기는 한다. 이 책을 펴냄으로써 그의 노력이 평생 갈지는 모르겠지만, 설사 그렇지 못할지라도 예전처럼 브랜드중독은 돌아가지 않을듯 싶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저자처럼 브랜드상품을 사지 않을것이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저자의 과거모습처럼 브랜드중독은 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은 해본다. 사실 내가 생각하는 나는 꽤 합리적인 소비성향을 지녔기에 유명브랜드 상품을 구입할 때 가격과 품질에 대한 비교끝에 구매를 한다. 그렇기에 저자의 이런 피눈물나는 노력이 안쓰럽다. 그리고 화형식은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행동이지만, 저자의 행동에 뜨거운 박수를 보낸다.
끝으로 이 책의 마지막의 표지에서 광고된 '럭셔리 코리아'을 읽어보면 대한민국의 명품중독현상에 대해서 논하고 있다. 같은 맥락에서 읽어보면 우리들의 모습에서 반성을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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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참 자극적이다. 한 남자가 명품 중독에 걸렸다고 스스로를 진단, 가지고 있는 명품을 모두 불태웠다. 믿기 힘든 이 화형식은 많은 사람들과 방송국, 안전을 위한 소방대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루어졌으며, 이 일을 전후로 쓴 그의 일기가 출판되었다.
루이비통이란 이름만으로도, 명품에 관심있는 전세계 사람들과 명품업계와 광고업계에 종사하는 많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나 또한 명품에 대한 관심, 다소 난폭하고 격렬한 시위처럼 보이는 화형식을 치룬 그, 나의 소비형태에 대한 반성등을 계기로 이 책을 선택하여 읽게되었다.
일반인인 우리로서는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많다. 먼저 왜 그는 그 많은 명품을 불태웠냐 하는 점이다. 쇼핑중독에서 벗어나기 위해 소지하고있는 모든 브랜드 제품을 불태운다? 그 후에는 모든 생활용품에 브랜드 네임이 없는 것만 사용한다니, 심지어 전화와 가스까지도! 차라리 그 돈을 다른 사람에게 주는 것이 낫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생각을 한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비난했고 힐난했다. 그러나 그는 끝까지 이 화형식을 거행했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브랜드 없는 삶을 계속 살 것이라고 한다.
두 번째로, 혹시 그는 다른 사람의 이목을 쓸기 위해 이러한 화형식을 거행한 것이 아니냐는 점이다. 물론 이 부분에서 자신있게 NO라고 답하지는 못하겠다. 하지만 단순히 그가 이목을 끌기 위해 한 행위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의 아버지는 화재진압과 관련된 일을 하시는데 그의 심리치료사와 나 또한 그가 그에 대한 반항같은 의미로 불태우는데 집작하는게 아니나 하는 생각이 든다. 또 평소 명품으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고 내세우려고 했던 그의 행태를 보아 주변의 이목을 받는 것을 싫어하지 않는 듯하다.
여기서 그에 대한 간단한 소개를 하면, 그는 패션업계에 종사하는 사람이다. 24시간 모든 것을 브랜드와 연관지어 생각하며 심지어 지나가는 사람에 대한 평가나 취향을 브랜드를 통해 결론짓는 사람이다. 초등학교(혹은 중학교) 입학 당시 아이다스 운동화를 신은 친구들이 자신이 비메이커 신발을 비웃는 것을 보고, 메이커에 집착하기 시작, 결국은 아디다스를 신으로 섬기는 신자 같은 광적 증상을 보인다.
그런 그가 변했다. TV를 끊고 모든 광고 메세지로 부터 벗어나고자 한다. 하루에 몇 천가지의 광고를 보며 살아가는 21C의 우리가 마냥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같다. 이 책을 보면서 수많은 광고와 (광고는 단순히 TV CF만 있는 것이 아니다) 쇼핑하고 싶은 마음(지름신)의 유혹에서 벗어나려 부단히 애를 썼다. 사실 2007년 작년 한 해 동안, 과소비가 심했다. 즉, 꼭 필요하지 않은 쓸데없는 것을 많이 샀다. 마치 내가 그 물건을 쓰면, 내 생활이 바뀔 것 같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다. 잠시 기쁨을 느끼지만 곧 허무감을 느끼게 된다. 소비를 할 때에는 잠시잠깐의 만족감보다는 실용성을 염두에 두어야겠다는 다짐을 또 한 번 했다.
이런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심리학을 전공하고 광고 마케팅 분야에서 일해보고 싶다. 아니면 아프리카 오지에 가서 살던가 해야지... 그렇게 되면 광고와 브랜드의 거짓(허구성)에 속지 않을 것 같다.
매일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가는 오늘 날의 우리는, 두 눈을 씻고 매일매일 콩깍지를 벗겨내야지! 저 물건이 없어도, 나는 행복할 수 있으며 존재 할 수 있다. 아빠가 늘 하시는 말씀, 명품을 쓴다고 그 사람이 명품이 되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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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하는 삶 현대를 살아가는 대다수의 현대인이 하는 생활모습이 아닐런지. 공급자와 수요자로 구성되는 현대사회에서 소비는 하나의 큰 문화이자 가치라고 생각한다.
현대는 이미 브랜드가 없는 제품은 찾아보기도 힘들뿐더러 브랜드 네임이나 인지도가 적은 경우는 수요가 줄어드니 생산도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럴수록 기업들은 광고와 브랜드화에 치중하게 되고 광고에 물든 우리들은 광고가 말해주는 이미지에 길들여지고 그에 따른 소비를 하게 되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혹은 자신이 만족하기 위해서 혹은 둘다이기도 하고
남에게 자신을 어필하기 위해서 명품과 브랜드 제품만을 구매한 닐 부어맨은 스스로를 찾고자 명품 화형식을 치룬다. 스스로를 찾기 위한 길은 생각만큼 쉽지 않았음을 시간적인 순서로 솔직한 그의 심정을 적어내려가면서 보여주고 있다. 브랜드가 없는 제품을 구입하기란 브랜드 없는 제품을 믿고 사용하기란 얼마나 어려울까...
그의 글을 읽으면서 진짜 최소한의 소비만 있는 생활은 어떨까하는 고민이 들었다. 먹을 것 입을 것 유희거리 등등 어른들 말씀처럼 예전에는 이렇지도 않았다는데 어느새 나라는 인간은 여가시간 대부분을 소비생활로 보내고 있음을 깨달았다. "내가 소유한 물건이 역으로 나를 소유하는 일은 없을것이다."라던 그의 말처럼 나도 어느샌가 지배당하고 있는건 아닌지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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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를 하며 수저부터 시작하여, 가전제품과 가구까지 모두 새로 구입하게 되었다. 별다른 정보가 없던 나로써는 한 브랜드를 왕창구입하는 걸 선택했다. 부모님과 함께 쇼핑을 하였는데, 부모님 역시 찬성하셨다. 그리하여 가구는 A사, 가전제품은 B사, 주방용품 C사, 나머지 생활용품은 D사식의 쇼핑을 하게 되었다.
발품을 많이 팔지 않아도 되고, 브랜드 제품이라는 인식때문에 신혼집에 두었을 때 꽤 마음에 들었다. 주위의 친구들 또한, 발품을 팔며 하나하나 장만하는 친구보단 가구나 가전을 어떤 브랜드로 했는지 물어보는 친구가 대부분이었다. 브랜드 = 가치 가 성립한 것이다. TV나 잡지 광고에 자주 노출이 되는 브랜드를 선호하게 되고, 이는 곧 나의 가치를 높여줄 것이라고 믿게 된다.
<나는 왜 루이비통을 불태웠는가>(미래의창,2007)은 브랜드 위주의 소비문화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책이다. 저자인 닐 부어맨은 어릴때부터 브랜드 제품만을 선호하다 브랜드 회사와의 회의 중에 과도한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기 시작했다. 결국 블로그에 글을 올리기 시작했고, 브랜드 제품 일색인 자신의 삶이 허무하기 시작했다. 2006.9.17일 닐은 브랜드 화형식을 거행했다. 많은 사람들과 TV카메라가 지켜보는 가운데, 자신의 브랜드 제품 21,345 파운드(약 4천만원 이상)을 불에 태웠다.
화형식날 조차도 구경꾼들은 닐이 태운 물품 중 남은 것을 찾으러 왔고, 시간이 지난 후 모두 가져가고 남은게 없자 사람들은 뿔뿔히 흩어졌다. 그 날 이후 닐은 브랜드 제품을 사지 않기 위해 노력하고 있고, 많은 돈을 절약하게 되었다. 예를 들면, 예전의 랄프로렌, 입생로랑, 라코스테, 비비안웨스트우드 등에서 1벌에 300파운드 정도에 구입했던 의류들은 자선시장이나 군수품점에서 6벌에 60파운드에 구입하게 되었다. 또한 아디다스, 나이키, 헬무트랭, 구찌에서 1켤레에 150파운드에 구매하던 신발은 구제 상점에서 20파운드짜리 운동화로 바뀌었다.
이런 변화가 저자의 삶의 질에 큰 변화를 차지한 건 아니다. 그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많긴 하지만, 자신은 태어날 아이를 기다리며 묵묵히 살아가고 있다. 그를 공격하는 사람 때문이 아니라, 닐 부어맨 자신의 목소리와 싸우고 있는 것이다. 책을 읽고, 잡지에 기고를 하며, 브랜드에 대한 이야기를 학문적으로 정리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는 걱정한다. 나는 여자친구의 임신으로 내가 이제껏 단 한번도 사용해보지 않은 유아용품들을 브랜드 없는 제품으로 구해야 하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또한 이 책이 출간된 이후에도 내가 과연 브랜드 없는 삶을 지속해나갈 수 있을지에 대한 스스로에 대한 불신감으로부터 도전을 받고 있다. ...(중략)... 무작정 스스로 깨닫게 하기보다는 아이에게 알아듣게 설명을 해줘야 할 것이다. 다른 친구들이 갖고 있는 물건들이 아무리 멋져보여도 우리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니라고 말이다. 내가 스스로 이를 깨닫는 데는 무려 20년의 시간이 필요했다. 나는 아이에게 어떤 물건을 사용함으로써 얻게 되는 기쁨과 그 물건에 붙어 있는 브랜드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음에 대해 분명히 말해 줄것이다.
브랜드는 매혹적이다. 매혹이란 남들의 부러움을 받는 행복감이다. 질시의 대상이 되는 것은 자신감을 얻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를 위해서는 당신을 부러워하는 사람들과 당신의 경험을 공유해서는 안된다. 그들이 당신에게 흥미를 갖게 될지언정 당신은 그들에게 관심을 보여줘서는 안된다. 그들이 꿈꾸는 행복 안에 매혹의 힘이 자리잡고 있다. 이것이 바로 수많은 매혹적인 이미지들이 실제로는 텅 비어 있고 초점을 잃은 이유이다.
책이 닐 부어맨의 개인적 경험만을 서술한 것은 아니다. 저자의 브랜드에 대한 철학과 학문적인 이야기를 자세히 서술하고 있다. 일상을 돌아보면 핸드폰에서 지금 사용중인 컴퓨터까지 브랜드 제품이 아닌것을 찾기 힘들다. 글쓴이가 책을 낸 이유는 본인처럼 모든 브랜드 제품을 태워버리자는 내용은 아닐 것이라 생각된다. 다만 브랜드의 진정한 가치를 알고 사용하자는 뜻이 아닐까. 소비주의와 물질 만능주의로 부터 독립하기 위해 고군분투 하자는 그의 메세지는 많은 반성을 안겨주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