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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사회비평서로 많이 읽었던 책의 장르중 하나가 『또 하나의 문화』에서 부정기적으로 출간되던 책들이었다. 이음책방에서 『또 하나의 문화』이름으로 꽂혀있는 이 책을 발견하고는 반가워서 구입하다. 학교를 졸업하고 생활에 안주하면서 비판적인 시각들이 점점 무뎌지게 되고 그러다보니 어느 틈엔가 잊혀져갔던 『또 하나의 문화』였다. 199년부터 2007년까지 신문등에 칼럼으로 기고했던 글들을 2007년도에 묶어낸 책이다. 그 당시 발생한 사회적인 문제들을 날카롭게 분석하고 비평한 내용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특히 소비 상업주의 시대에서 자기정체성을 잃고 방황하는 청소년들의 문제를 사회가 어떻게 감싸 안고 나갈 것인가에 초점을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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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각 신문과 잡지에 올렸던 글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그만큼 깊이와 일관된 흐름을 기대했던 나의 생각과는 좀 다른 형태의 책이었다.
그래도 현장에서 일하시는 분 답게 아주 구체적이다.
그리고 '이런 학교가 존재하고 있구나!' 하면서 읽는 내내 놀랐다.
새로운 정권이 들어섰다.
3불정책이 폐지되고, 평준화도 사실상 유명무실해질 것이라 한다.
교육기회의 평등은 퇴색하고, 수월성과 경쟁력이 더욱더 중시될 것이다.
입시지옥과 감옥같은 학교 생활에서 숨막혀 하던 학생들에게는
더욱 암울한 미래가 닥친 것이다.
이 책은 이러한 시대에 오아시스처럼 희망을 넌지시 제시해준다.
입시과 경쟁이 아닌, 살핌과 돌봄이 피어나는 학교.
교사를 하면서도 적응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학생들을 바라보고 있자면
마음이 아픈 적이 많다. 하지만 나 개인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이루지 못할 거란
패배감에 고통스럽다.
작은 실천이 중요한 것같다. 혁명이 아니라, 작은 돌봄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저자는 나에게 깨우쳐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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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마을이다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또하나의문화 펴냄 2007.11.22
2013년 당시 중학교 3학년 이었던 딸아이는 대안학교를 가고자 했었다. 빡빡한 학교 수업에 대한 스트레스도 있었겠지만 그것보다 지옥의 링에 올라가는 것에 대한 큰 두려움이 아이의 선택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쳤으리라 본다. 스스로 어떤 학교가 좋은지를 검색하고 알아보던 차에 여행학교 로드 스꼴라로 아이는 최종 결정했다. 그곳에서 주최하는 1박 2일 여행에 참가해 큰 기쁨을 누리는 듯 했다. 언니 오빠들과 함께 여행 하면서 보고 듣고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겁다 하였다.
그러나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로드 스꼴라가 아닌 일반 고등학교에 진학했다. 다시 사회로 되돌아야 할 때 많은 것들을 감수해야 하는데 자신이 없다면서 자신이 원하는 공부를 위해서는 대학진학이 필수인데 정부에서 인가하지 않은 학교를 나와 검정고시를 보고 대입을 준비해야 하는 과정을 치를 자신이 없다고 했다. 아이와 함께 갔었던 하자센터의 모습은 어떻게 변했을지 아이가 그때 결정을 변경하지 않고 여행학교에 입학했더라면 아이는 지금의 세월을 어떻게 꾸미고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며칠 전 아이에게 물어보니 다시 대학으로 돌아와야 하기도 하고 지금 다니는 대학에서도 (새발에 피일 수 있겠으나) 친구들과 공유하고 의논하고 함께 이야기 하기를 하고 있다며 괜찮다고 사양했다.
1970년대 불우한 환경 탓에 공장에 다녀야 했던 학생을 일컬어 근로 청소년이라고 불렀다. 행복한 학생과 불우한 청소년의 이분법적인 발상이다. 1980년대에는 착한 학생과 불량한 청소년으로 대립 구조는 여전히 진행중이었다. 2000년대에는 많은 아이들이 불량 청소년화가 되어 가고 있다. 빠른 속도로 분화되어 버려서 경험은 부족하고 서로 공유할 수 있는 것도 부족하여 서로의 생각이 조율되지 않아 학교 강의실은 무너지고 있다.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학업에만 매진해야 하는 아이들은 쇠창살 없는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이 자유를 잃은 삶을 살 수밖에 없다.
이런 문제를 직시하고 대안학교를 생각하는 모임이나 학무모들이 많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의 가장 큰 걱정은 재정 문제이다. 학비가 비싸 마음이 있어도 쉽게 진학할 수 없다. 정부에서 인가를 해주지 않아 아이가 대안학교를 가기를 그만 둔 것과 마찬가지로 정부의 지원이 없어 학비가 비싼 것이 학부모들의 발목을 잡는 경우도 종종 있었을 것이다. 학교를 살려 아이들이 학교가 다만 배움의 공간이 아닌 일과 놀이 그리고 학습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다.
대안학교가 더 많이 만들어지고 아이들의 작은 복합 공간에서 먹고 자고 학습하고 가정 형편과 상관없이 서로를 돌보는 따뜻함이 있는 학교와 마을이 만들어진다면 사회는 안전하고 서로를 신뢰하고 행복한 삶이 존재하리라 믿는다. 이런 사회가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반드시 정부가 제도권 학교에서 소화해 내지 못한 아동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1인당 교육비가 주어지는 제도가 자리 잡는 것이 급선무다. 사교육 시장으로 고통 받는 아이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도 다양한 학교는 필요하다. 아이들이 학교를 선택하고 서로를 보듬어 줄 수 있는 학교와 마을을 꿈꾸어 본다.
책이 쓰여진 시기를 보았을 때 강산이 변할 만큼의 시간이 흘렀음에도 큰 변화없는 교육의 틀이 안타깝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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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자 센터에 관한 이야기, "왜 지금, 청소년?"을 읽고 너무 감명을 받아 조한혜정의 다른 책들에 손을 뻗기 시작했다. 하자센터가 생긴 지 딱 10년 -그러나, 나는 그들이 그 때 하던 고민을 지금 하고 있다.- 그래서 최근의 글을 읽어 보고 싶은 생각이 들어 이 책을 골랐다.
나라의 세태는 그다지 변한 것 같지 않고, 여전히 암울하고, 여전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하지만 조한혜정은 10년 전에 비해 약간의 방향을 수정한 것 같다. 바로 마을 이야기 (사실, 10년 전 글과 이 책 사이에 다른 책들을 아직 안 읽었기 때문에 그녀의 생각의 변화를 시대의 흐름에 따라 파악하지 못했음을 밝힌다.)
이 책을 읽고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작은 마을, 작은 학교를 많이 많이 만들자는 것. 그 이유는 아이들이 서로 돌봄의 공동체를 경험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이들 하나하나가 소중하게 인식되어 질 수 있는 공동체를 경험하며, 이를 위해서는 마을과 학교의 규모는 당연히 작아야 한다.
저자가 성미산 학교 학부모들에게 당부한 내용도 참 인상 깊다. 우리가 보통 우리나라 교육의 문제라고 하는 주입식 교육이나 입시 교육의 문제점을 비판하여 생각이 좀 깨인 사람들 사이에 유행하는 '비판적 사고력'에 대해, 이것도 아니라고 한방을 날린다.
그래서 나는 성미산 학교 학부모들이 너무 '비판적 창의성'을 강조하지 않으면 합니다. 이 팍팍한 경쟁 사회, '시장'의 자유만을 인정하는 신자유주의 시대에 '살아남는 자'는 무엇보다 마음의 고향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주변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고 있다는 확신, 학교의 모토처럼 '스스로 자라면서 서로를 살려 낼 줄 아는' 돌봄적 창의성을 가진 아이들일 겁니다. (p 220)
아이들이 그렇게 자라면 참 좋겠다. 자신들이 사랑받는 존재이며, 그 존재 자체만으로도, 우수한 성적이나 뛰어난 창의성을 드러내지 않더라도 이미 소중한 존재라는 것... 생각만 해도 흐뭇해지는 마을이다. 그리고 학교다.
칼럼집이라 짧은 글들의 조합으로 되어 있어 논리적인 전개나 깊이의 부족 등이 약간 아쉽고, 글마다 반복되는 것이 있는 것을 빼고는 대체적으로 만족스러운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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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한혜정 선생의 칼럼집, <다시, 마을이다 - 위험 사회에서 살아남기> 에는 안타까움이 가득하다.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근대적 사고 방식이 지배하는 딱딱하고 남성적인 문화 속에서 커나가는 아이들에 대한 안타까움 말이다.
이 칼럼집은 조한 선생이 기고한 여러 매체의 글들을 모아 놓았는데, 그 내용은 거의가 비슷비슷하여 약간 실망스러운 구석이 있다. 하지만, 이 일관된 반복을 통하면 저자의 생각은 마치 많은 연필 터치를 통해 만든 소묘처럼 시각화 된다. 이 소묘 속의 여인은 오늘과 같은 세상에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릴 것인가? 생각해 보니 참 딱하기도 하다.
한국의 대표적인 페미니스트이자 세련된 취향을 선보이는 '조한'에게는 독선적이고, 마초적이며, 공공성에 대한 철학이라고는 도대체 찾아볼 수 없는 신자유주의 토건국가 대한민국의 모습이 역사의 시계를 거꾸로 돌려도 한참 돌리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종의 재앙일 것이다.
제목에서 느낄 수 있듯이, 저자는 대량생산, 대량소비의 몰취향의 도시에서 '마을'을 외친다. 자발적 참여와 소통이 모여 즐거움되고, 이를 통한 '관계'의 회복은 행복의 다른 이름이다. 대안 학교인 영등포의 '하자 센터' 아이들의 성장 경험들과 '성미산 마을'에서 벌어지는 공공성에 기반한 행복찾기에서 탈근대 시대의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하고 이야기하려 하는데, 난데 없이 돌아 온 개발 독재시대의 가치가 거대한 벽처럼 앞을 가린 셈이니 말이다.
아래는 아직 본격적인 재앙이 닥치기 전인 2003년의 글이다.
인간의 탄생은 축복만은 아니며, 역사는 진보하지 않는다. 인연이 있다고 해서 꼭 맺어지는 것이 아니며 삶은 끊임없이 변화할 뿐이다. 삶은 항상 무엇인가를 이루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는 그 자체로 의미있다. 끝없는 발전과 확장을 믿고 살아온 그간의 역사는 얼마나 폭력적이고 허무한가? 터무니 없는 낙관주의는 또 얼마나 많은 불행을 낳고 있는가?
근대의 끝머리에 선 인류는 이제 '지속가능한 생존'의 방식을 찾아 나선다. '지금'이 중요하고, 살아 있는 존재들 간의 '소통'이 중요하며, 태어날 아이들에게 들려줄 이야기가 중요하다는 것을 이제 깨닫는다. 130~131페이지.
울리히 벡이 말했다는 '위험사회'의 한 구석에서 조한혜정 교수를 비롯한 모든 '문화적 인간'들이 모여 심심한 위로의 공동체라도 만들어야 할 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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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가장 화두로 떠오른 것이 저출산과 고령화의 문제일것이다.
사회문제 특히 청소년문제에 오랜동안 관심을 가져왔고 후기
획일화된 교과과정을 배우고 또 오로지 시험과 대입을 위한
저자는 우리사회의 일그러진 난맥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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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모음집이라서 짧은 글 속에 깊이 있는 실천 방안이 담기지 못했고, 했던 얘기가 또 등장하는 편집상의 아쉬운 점은 있지만, 창의적인 얘기라 재미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사회 문제에 대해 보도되는 작은 조각만, 그것도 대충 보고 살아간다.
이 책을 통해 이 모든 것이 가정 해체, 교육 부실 때문임을 사회학자의 좀더 넓은 시선을 통해 알게 되었고, 새로운 희망을 품게 되었다.
약간은 삐딱하고 엉뚱한 조한혜정 교수. 인간에 대한 낙관적 희망이 눈부시다. 좀더 현실적인 기반을 단단히 내려 우리 사회를 변화시킬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회 문제에 대해 관심이 있는 학생, 젊은이라면, 자녀 교육에 대해 좀더 과감한 방법을 찾는 부모라면, 좀더 새로운 희망을 꿈꾸고 싶은 시민이라면 읽어보고 골똘히 생각해볼 만한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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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교에서 멀어지는 아이들 가족으로부터 소외되는 아이들과 부모 주인이 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소외되어 가고 있는 현대사회의 구성원들에게 대안의 메시지를 건네는 책이다.
저자의 생각 대부분에 공감한다. 또 대안학교나 대안 공간이 물론 더 많은 다양성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그 가치에 대해서도 인정한다. 하지만 여전히 대안학교는 일반 학부모가 선택하기에는 그 비용을 포함해 위험 부담 요소가 많다. 대다수의 아이들과 학부모들에게는 공교육 밖을 벗어나는 것이 버거운 선택일 수 있다. 그 점이 저자의 잘못이라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답답하다. 천천히 걸을 용기가 없는 이들, 혹은 걷고 싶어도 여건이 되지 않는 이들에게 남은 선택은 무엇일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