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윌리엄 블레이크의 시를 영시로 조금 배웠기에 반가운 마음에 샀다. 전작 진주 귀고리 소녀도 재미있게 본 이유도 있었고...
나름대로 영국의 당시 모습을 묘사하려고 애쓴 듯하지만 전작에 비해 결말이 너무 평범하다고나 할까. 조금 실망감이 들었다. 블레이크가 말하고자 했던 영국사회의 비참함은 수박겉핥기가 되어버린 듯 얄팍했고 그저 블레이크와 한 소녀, 소녀의 인연에만 신경을 쓴것 같다.
결혼마차가 장례식 마차가 되어버리는 바닥생활의 비참함을 블레이크는 얼마나 몸서리치게 묘사했던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기에는 꽤 부족하다고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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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귀고리 소녀》에 반해서 《버진 블루》를 읽었었다. 그리고 나는 곧바로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여자의 글재주에 푹 빠져들었었다. 한참을 기다린 것 같았다. 다음 작품이 기대되었던 것은 전작들속에서 느낄 수 있었던 황홀한 것들을 다시한번 느껴보고 싶었던 까닭이기도 했다. 우연하게 《진주귀고리 소녀》를 영화로 보고 나서 어찌나 실망을 했던지... 항상 그렇다. 글이 주는 그 묘한 매력을 영화속에서 온전하게 찾는다는 게 무리라는 걸... 이 책이 나왔다는 소개글을 보았으면서도 쉽게 다가가지 못했던 것은 어쩌면 트레이시 슈발리에라는 작가의 작품이 주는 유혹감을 좀 더 느껴보고 싶어서였는지도 몰랐다. 책을 손에 쥐고 내가 느꼈던 설레임은 정말 아무도 모를 것이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책을 읽으면서 내가 그 설레임을 점점 잊어가고 있었다는 걸 알았다. 전작들에 비해 긴장감도 덜하고 녹아있는 감동 또한 그리 많지 않았다. 지식과 감동을 함께 전해 줄 수 있는 작가라는 말에 적극 동의를 표하던 나의 기대에 못미치는 작품이었다고나 할까?
1792년 3월 런던으로 이사오는 토머스 켈러웨이 가족의 이야기는 시작되어진다. 그의 아내 앤 켈러웨이와 딸 메이지, 그리고 아들 젬... 이렇게 네명의 가족이 엮어 갈 런던이야기. 그 이야기속에는 내가 읽어보았던 전작들과 마찬가지로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가고 있다. 하지만 아쉬운 것은 분명하게 선이 그어지는 주제의식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거다. 그 역사적인 배경속에서 만날 수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이번에는 그리 크게 와닿지 않았다는 말도 되겠지만 옮긴이의 말처럼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삶을 조명해 보고 싶었다면 그것 역시 그다지 밝게 혹은 분명하게 조명처리가 된 것 같지는 않아 보였다. 차라리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을 글을 통해 당시의 사회적인 풍자를 읽어냈다고 하는 편이 더 옳은 것 같다. 내가 읽어보았던 작품들에 비해 촘촘하게 느껴지는 그런 긴장감(손에서 책을 떨어뜨리고 싶지 않은 그런...)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는 말이다. 책장을 덮고 다시한번 제목에 눈을 돌려 보았다. 시인이라면 윌리엄 블레이크를 말할 것이고 서커스라면 필립 애스틀리를 말하는 걸거라는 생각을 한다. 책속에서 느껴지는 두사람의 정신세계는 어딘가 모르게 같으면서도 다른 듯한 느낌을 준다. 글속에서도 말했듯이 무형의 그 어떤 것에 꿈과 이상과 환상을 불어넣어 그 시대의 군중들에게 정신적인 지주로 그려내고 있다고는 하지만 왠지 내게는 그리 크게 와닿지 않는 설정처럼 보여졌다.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의 생활속에서 두개의 쳇바퀴처럼 달라붙어 굴러가는 아이들 젬과 매기.. 세상에 대한, 이성에 대한, 그리고 보이고 들리는 모든 것들에 대한 호기심이 한컷 부풀대로 부푼 나이의 아이들이 그들의 부모가 살아내고 있을 현실속의 시간들을 이해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시인과 그 아이들이 나누는 선문답같은 대화속에서 얼핏 얼핏 보여주고 싶어하는 것은 무엇이었을까? 단순히 경험에 의해 버려지는 순수에 대한 욕망이었을까? 아니면 경험으로 인하여 버려질 수 밖에 없었던 아이들만의 순수를 말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한적한 시골마을에서 도시로 올라왔던 젬과 메이지가 도시속에 동화되어가며 잃어버리고 있던 것들이 오히려 도시에서만 자란 매기에게는 어떤 새로운 의미로 재탄생되어지는 것 같다.
" 강 이편과 저편 사이, 강 한복판에는 뭐가 있냐고 물으셨죠? 그 답은 세상이에요. 두 극단 사이에 놓인 것은 바로 우리 자신이에요" " 바로 그거야.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거란다. 우리 인간은 어떤 한가지 측면만이 아니라 그 반대 측면까지 갖고 있는 거야. 그 두가지 상극이 우리의 내면에서 섞이고 부딪치고 불꽃을 일으키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있는거야. 평화만 있는 게 아니라 갈등도 있고. 순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도 있어. 이것이야말로 우리가 꼭 알아야 할 삶의 교훈이란다. 그래야만 꽃한송이 속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247쪽)
사람들은,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 모두는 어쩌면 처해진 현실을 버리고 무시할 수 없기에 꿈을 꾸고 그것에 대한 환상을 바라보는 것인지도 모른다. 젬과 매기처럼 함께 있음으로 해서 은연중에 서로에 대한 깊은 관심을 느껴가면서 그렇게 이 한세상을 살아내는 건지도 모를 일이다. 약간의 실망감을 감추며 옮긴이의 말속에서 찾아낸 슈발리에의 말.. " 젬은 경험을 얻었고, 메이지는 순수를 잃었으며,매기는 순수를 되찾았다"... 소설의 내용을 요약했다는 이 짧은 말속에서 윌리엄 블레이크라는 시인의 삶을 조명했다던 말은 끝내 부정하고 말았다. 단지 이쪽(어른)도 아니고 저쪽(아이)도 아닌 채 육체와 정신의 모순을 어찌 받아들여야 하나 고민과 고민을 해야만 했을 청소년기의 이야기였다고만 기억되어질 것 같다. 시인의 말처럼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을 잃지 않은 채 살아가야 할 젬과 매기, 그리고 메이지의 미래가 밝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면서... /아이비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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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를 통해 16세기 네덜란드를 우리 눈앞에 정교함으로 펼쳐 보이며 너무나 아름답고도 슬픈 사랑이야기를 들려주던 트레이시 슈발리에, 그녀가 이번에는 18세기 조지왕 시대의 런던으로 우리를 초대한다. 섬세하고 정교하게 조각된 런던의 거리 풍경이 책에 담긴 활자 하나하나에서 선명하게 되살아난다. 중세풍의 멋스러운 건물들, 쉴 새없이 분주한 사람들, 그 한쪽에선 오늘 저녁 서커스 공연을 알리는 퍼레이드가 한창이고, 구경꾼들의 다양한 모습들도 함께 할 수 있다.
그렇게 복잡한 런던 거리 한복판에 짐을 가득 실은 마차가 등장한다. 도싯셔라는 작은 시골마을에서 의자만드는 일을 하며 살던 토마스 켈러웨이의 가족들이다. 세아들 샘, 토미, 젬, 그리고 딸인 메이지와 아내 앤 켈러웨이가 한가족을 이루지만 샘과 토미는 보이지 않는다. 그들이 살던 마을에 잠시 들렀던 필립 애스틀리의 서커스단을 도와준 토마스에게 애스틀리는 일자리를 주겠으니 런던으로 오라고 했고, 얼마전 아들 토미를 잃은 슬픔에 쌓여 있던 그들의 가족, 특히 아내 앤은 런던에서의 새 출발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그렇게 찾게 된 런던, 토마스는 어렵사리 필립 애스틀리를 만나지만 그는 토마스를 기억조차 하지 못한다. 그럼에도 필립은 토마스 가족에게 헤르쿨레스 빌딩에 있는 펠렘의 집을 소개해주고 그곳에 정착하도록 도와준다. 모든것이 낯설기만한 런던의 풍경은 소년인 젬에게 새롭기만하다. 그것은 메이지와 앤도 마찬가지... 이삿짐을 나르면서 첫만남을 가진 매기 버터필드, 도싯셔의 소녀들과는 다른 쾌활하고 활달한 그녀에게 젬은 조금씩 마음이 끌린다.
젬은 경험을 얻었고, 메이지는 순수를 잃었으며, 매기는 순수를 되찾았다.
모든 것이 낯설고 작기만 하던 산골마을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런던 램버스, 당시 런던은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또다른 변화를 맞이하고 있었다. 그들의 옆집에 살던 시인 윌리엄 블레이크, 매기의 부모인 딕 버터필드와 베트 버터필드, 매기의 오빠 찰리, 필립 애스틀리와 존 애스틀리, 팰럼 아줌마... 켈러웨이 가족은 런던에서 이들과 색다른 경험을 하게 된다. 특히 젬과 메이지, 매기에게는 성장이라는 좋은 경험과 시간을 얻게 된다.
<시인과 서커스>는 특별한 사건을 통해 팽팽하게 스토리를 전개해나가는 작품이 아니다. 지극히 평범한 한 시골 가족이 공간적 사회적 변화의 시간에 휩싸인 런던에서 겪은 시선을 섬세하고 치밀하게 기록하고 묘사한 작품이다. 변화라는 시대적인 요구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 성장이라는 변화와 마주하게 된 소년소녀들의 모습이 이 작품속에 담겨진 커다란 두 가지 스토리로 전개된다. 그 두 변화의 중심에 시인이자 종합예술인으로 불러야 할 것간은 인물 윌리엄 블레이크가 있다.
젬과 매기에게 '반대' 만이 아닌 '균형' 이라는 새로운 교훈을 선물해주고, 메이지에게는 또 다른 특별한 경험속에서 도움을 준, 그리고 프랑스 혁명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들에게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우게 만든 주인공이 바로 윌리엄 블레이크다. 그가 젬과 메기에게 들려준 말속에서 우리는 많은 것들을 느끼게 된다. 우리 사회에도 꼭 필요해 보이는 균형이라는 새로운 패러다임...
'두 극단 사이의 긴장이야말로 우리를 우리 자신의 모습으로 있게 하는 거란다. 우리 인간은 어떤 한 가지 측면만이 아니라 그 반대 측면까지 갖고 있는 거야. 그 두 가지 상극이 우리의 내면에서 섞이고 부딪치고 불꽃을 일으키지. 빛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둠도 있는 거야. 평화만 있는 게 아니라 갈등도 있고. 순수만 있는 것이 아니라 경험도 있어... 그래야만 꽃 한 송이 속에서도 세상을 볼 수 있을 테니까.' - P. 247 -
누군가는 경험을, 누군가는 되찾을 수 없었던 순수를 얻고, 또 누군가는 순수를 잃었다. 또 누군가는 혁명이라는 시대의 소용돌이 속에서 외로운 투쟁과 변화를 몸소 겪어야 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 모든것이 어쩌면 사회를 발전시키고, 자신을 조금더 성장시키는 좋은 경험이 될것임에 틀림없어 보인다. 갈등도 있고, 어둠도 있지만 우리가 살아갈 수 있는 이유는 그 반대에선 빛과 평화가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이런 균형잡힌 시선이 있을때 블레이크의 말처럼 새로운 시선으로 멋진 세상을 볼 수 있을것이다.
<시인과 서커스>, 정교하고 섬세한 트레이시 슈발리에의 필력을 만끽 할 수 있었던 작품이다. 특별한 사건없이 이야기를 끌어갈 수 있는 힘은 아마도 발로 뛰어 얻어낸 철저한 고증의 노력과 천부적인 작가로서의 능력이 아닐까 생각된다. 윌리엄 블레이크의 시가 이야기 중간중간에서 또 다른 재미와 활력을 불러일으킨다. 이 작품의 원제인 <Burning Bright> 또한 블레이크의 시속에서 엿보인다. 마지막으로 그의 시를 읽으며, 그가 전해주는 삶의 교훈을 다시한번 되새겨본다.
Tyger! Tyger! burning bright 호랑이! 이글이글 불타는 호랑이! In the forests of the night, 밤의 숲속에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