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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우구스티누스와 톨스토이의 '고백록'에 버금가는 걸작. 세계 3대 고백 문학으로 평가 받는다는 루소의 '고백론'을 읽고는 생각에 잠겼다. 굴곡 많은 삶에 대한 변명 같아 보이기도 했고, 생의 마지막을 예감하며 제 삶을 정리하는 이의 비장함이 느껴지는 듯도 했다. 개인의 삶을 옳다/그르다 식으로 평가하는 건 옳지 않을 뿐더러 불가능하기도 하다. 그러나 우리는 너무도 쉽게 그리고 자주, 자신의 잣대를 활용해 감서 남을 재단하려 든다. 루소의 시대도 그랬다. 그의 사상은 논란을 낳았다. 게다가 그의 삶은 정적들이 활용하기에 적절한 형태를 하고 있었다. 자연적 본성을 계발하는 전인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 제 자녀는 모두 고아원에 맡기다니. 이는 오늘날에 이르러서도 긍정적인 이야기를 듣기 힘든 대목이다. 이 책이 그의 모든 불가사의(?)한 삶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다만 본인이 직접 나서서 제 삶을 변론한 만큼 다른 이의 서술에 의존할 때보다 그의 입장에 조금 더 다가설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에게 제공한다.
"나는 전례가 없었고, 앞으로도 그 성취를 모방할 사람이 전혀 없을 작업을 시작하려 한다. 나는 나와 같은 사람들에게 한 사람을 완전히 자연 그대로 보여주려고 한다. 그 사람은 바로 내가 될 것이다."
책의 서두에서 그는 자신의 삶이 이룬 성취에 대한 자부심을 드러낸다. 동시에 기록이 여과없이 자신의 삶을 보여주게 될 것임을 강력한 어조도 선언했다. 이어지는 내용들은 첫 문장의 단단함에 부합했다. 마치 제 삶을 지켜내겠다는 결의에 찬 듯한 문장으로 그는 자신의 약점과 치부까지 고스란히 드러냈다. 그도 사람인지라 스스로를 변명하고자 안간힘을 쓰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완벽을 지향하나 결코 완벽할 순 없었던 인간 루소의 진면목이 고백록에 여실히 담겨 있었다.
내가 느끼기에 그는 일종의 애정결핍에 시달리고 있는 듯했다. 태어나자마자 어머니를 여의고 아버지로부터도 떨어져 거의 홀로 크다시피 한 그였다. 그가 받은 교육은 초보적인 수준에 불과했는데, 떠돌이에 버금간다 싶을 정도로 거처를 옮기고 일 또한 맡았다가 관두길 반복했던 건 이 때문이지 않나 짐작이 갔다. 교육은 지식도 가르치지만 스스로를 제어하는 능력 또한 가르치는데, 루소는 이를 배울 기회가 별로 없었다. 평생토록 지속된다 할 수 있는 바랑부인과의 미묘한 관계 또한 어린시절 경험한 결핍을 원인으로 설명할 수 있을 듯해 보인다. 바랑부인은 그의 후견인이자 부모였고 연인이기도 했다. 그녀를 향한 걷잡을 수 없는 마음은 마치 애인을 대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하고 있었다. 루소가 보여준 약초에의 몰입 등은 그가 품은 감정이 깊이를 헤아리기 힘든 수준의 사랑이었음을 짐작케 한다. 볼테르와 흄의 반감을 사고, 그림과 두드토 부인 등으로부터 절교 편지를 받는 등 그의 인간관계는 순탄치 못했다. 나중에 형식적으로 결혼식을 올린 테레즈와의 관계 역시도 평범치만은 않아 보인다. 사랑을 갈망하지만 사랑에는 서툴고, 욕망을 통제하는 데는 실패했으면서도 본능을 잘 다스리는 것의 중요성을 설파한 루소. 훗날 그가 정신착란에 빠져들고 모두를 적으로 여기게 된 건 현실과 이상 사이의 어마어마한 격차를 극복하지 못한 탓이 아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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