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도서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 에 담긴 변상욱 대기자의 글에는 소탈하면서 품위가 느껴지는 향기가 느껴진다. "우리도 봄처럼 휘청거리며 주저앉다 결국 우리의 길로 가면 됩니다. 봄빛이 되어 바람이 되어 그렇게 갈 것입니다." 라는 글을 보며, 마치 늦봄의 아스라한 마음과 함께 겸허히 삶을 맞이하는 그의 시선을 마주할 수 있고, "지친 나를 위로할 사람은 나였습니다.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으며 위로했습니다." 라는 소담한 고백을 보며 그의 진솔한 모습과 동시에 나 자신에 대해서도 담담히 돌이켜 볼 수도 있었으며, "누구의 삶이든 강하고 또한 슬프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라며 쓴 그의 결혼식 축사를 보며, 삶에 대한 경건한 시선과 연륜을 느낄 수 있었다. 섣부른 위로나 구체적인 조언을 남용하지 않고, 모름을 인정하고 삶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 담긴 그의 수필집 『인생, 강하고 슬픈 그래서 아름다운』을 찬찬히 만끽할 수 있어 좋았다. p.s. YouTube 영상 - 세바시 미니 인터뷰 [변상욱 CBS 대기자] - 대한민국에서 신사로 산다는 것은 [변상욱 CBS 대기자] - 세바시 139회 - 변상욱 - 맘마이스 75회 방송 - 신천지, 줄지 않는 이유는? - 싸이판2 p.p. 팟캐스트 방송 ▷ 심용환, 변상욱의 역공(역사공부) ▷ 변상욱의 이야기 쇼 - CBS ▷ 변상욱 기자수첩 - CBS ============================== 송구하게도 저는 아직 살아가는 것의 이유에 대해서, 어떤 것이 진실되이 살아가는 것인지에 대해서 답을 구하지 못한 채로입니다. 제게 삶은 여전히 모호하며 이유도 없이 시작해 뜻도 없이 끝나 버리는 조금은 허무한 것입니다. 그리 슬프지도 않고 또 그다지 기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때로는 즐거웠고 때로는 아름답기도 했으니 그거면 된 거라 여기며 스스로를 위로하곤 합니다. 다만 삶에게 진지하고 싶었고 어느 순간에는 삶도 나를 진지하게 대하고 있음을 느꼈다는 것이 이 책에서 이야기할 수 있는 전부인 듯합니다. 어느덧 봄이 왔고 깊어 갑니다. 봄은 그렇게 떠났고 또 그렇게 올 겁니다. 어쩌다 한 번은 어쩌다 잠깐은 내가 봄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이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 여러분. 변상욱 드림 2016년 3월 20일 p 006, 007 송구하게도 나는 아직 살아가는 것의 이유를 모릅니다 프롤로그 ============================== 나도 한때 수도사의 길을 로망처럼 간직했던 날들이 있었습니다. 나는 화살처럼 살고 싶었습니다. 온 삶을 던져 어떤 큰 목표를 향해 거침없이 달려들고 싶었습니다. 과녁에 꽂힌 화살이 마지막 남은 힘으로 부르르 떨며 자신의 존재를 알리듯 그렇게 말입니다. 날아가 온몸을 꽂아야 할 그 목표물이 뭐냐면 물으면 그때는 거창하게 대답했겠으나 이제는 아닙니다. … 무엇보다 중요한 건 무위의 명중이 땅을 일구고 그물을 던지고 망치질을 하며 이 땅을 살아가는 누구에게나 존재한다는 걸 알아차리는 일입니다. 우리의 어머니, 우리의 형제, 우리의 이웃이 그렇게 오늘도 활을 당기며 살아갑니다. 그래도 당신의 과녁이 무엇이냐 내게 물으면 겨우 답할 수 있는 건 나는 내 밖에 목표물을 둔 것이 아니라 이제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하고 싶고 내가 누구인지를 확인했다면 내 삶으로 그 영혼을 보여 주고 싶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영혼을 증명하는 것이 살아가는 것에서의 명중이 아닐까 하는 것이죠. 그것을 내 자신을 찾는다고 표현하든 내 자신을 이루어 간다고 하든, 기억할 것은 우리는 늘 우리 자신을 만들어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생은 계속되는 자기 창조의 경험입니다.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세상 그 어디에 완제품이 되어 버린 우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습니까? 살아 움직이고 변하는 건 우리의 숙명입니다. 포도를 수확해 으깨든 포도나무에 매달린 채로 놔두든 세상과 만난 포도는 그냥 포도로 남지 않고 술로, 술 비슷한 것으로 변해 갑니다. 죽은 듯 멈춰 있지 못합니다. 숙명입니다. 그렇다면 나는 무엇이 되어 가는 중일가요? 여러분은 무엇이 되려 하십니까? p 016 ~ 019 생말로에서 활을 쏘다 CHAPTER 1 - 길 위에서 세상을 바꾸다 ============================== 흔히 우리는 다른 이들을 향해 모순된 감정을 품습니다. 어떤 때는 차이를 부정하며 '그래 봤자 너도 똑같아, 너나 나나 똑같은 인간이라고' 하며 동일시로 몰아갑니다. 그런가 하면 차이를 강조하며 막아설 때도 있습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야, 내 방식이 옳아' 라고 선을 그으려 하죠. ![]() 이 두 욕망은 서로 부딪히고 갈등하지만 여행과 여행에서의 만남은 이 두 욕망을 화해시키고 균형을 잡아 줍니다. 내가 성장해 온 문화와 풍토로는 가당치 않지만 달리 살아온 이들의 입장에서는 얼마든지 다를 수도 있는 것들이 많습니다. 그걸 알아차리는 경험과 느낌은 참 멋지고 소중합니다. 그 경험을 얻기 위해 떠날 먼 곳으로의 여행에서 준비할 것은 겸손함입니다. 인류학자인 레이몽드 카롤이 설파한 대로 "타국의 문화를 분석하면서 얻는 가장 큰 이로움은 …… 깊은 상처에서 비롯된 문화적 오해를 타자에 대한 매혹적이고도 무한한 탐구로 변모시킨다는 것" 입니다. p 021, 022 낯선 곳의 매혹 그리고 욕망 CHAPTER 1 - 길 위에서 세상을 바꾸다 ============================== 오래전부터 전해 오는 이야기를 떠올렸습니다. 절망에 빠진 젊은 수도승이 가르침을 구하고자 인생 끝이 얼마남지 않은 사막의 스승을 찾아갔습니다. "저는 평안을 찾고자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젠 생각할 힘조차 없습니다. 저에게 더 버티어야 할 희망이 있는 겁니까?" …… "수도 생활을 한 지 얼마나 되었지?" "한 10년 되었습니다." "10년이라……. 난 이 수도복을 입은 지 이제 70년일세. 하지만 아직 단 하루도 평온한 적이 없었어. 10년? 10년이란 말이지!" 그런데 이런 절망적인 이야기를 들은 젊은 수도승은 퍼뜩 깨달은 바 있어 기운을 내 자기의 길을 떠났다고 합니다. 70년 내내 하루도 빼놓지 않고 힘들었던 이야기 속 노스승에게선 왜 평온함이 느껴지는 것일까요? 살펴보면 노스승은 불완전한 자기 자신과 자신의 불안함에 스스로를 일치시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반면 젊은이는 그런 자신으로부터 벗어나려고 애썼던 것이죠. 불완전하고 불안한 것은 사실이자 진실입니다. 그런 진실을 떨쳐 내려 애쓰니 정말 불안한 삶이 되지 않겠습니까? 위험한 일입니다. 불안하고는 함께 토닥거리며 살 수 있지만 진실도 아닌 화려한 갈망과는 어울리기 쉽지 않습니다. 자기혐오나 절망, 죄책감이 짓누르고 위협할 것입니다. 70년을 수행해도 온전한 평화와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면 존경할만도 못 하고 누구에게 내세울 것도 못 되는, 어쩌면 부끄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노스승에게 그런 건 중요하지 않은 모양입니다. 없으면 그만이지 없는데 뭘 어쩌겠으며 부족한 건 부족한 거지 뭘로 감추겠습니까? 불안하니 불안한 사람으로서 살면 되고, 평온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도 구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살면 됩니다. 그렇게 왔고 그렇게 갈 것입니다. 꽃샘추위에 떠밀린 이 땅의 봄이 불안스레 휘청대며 이리저리 떠밀리다 공원 여기저기 주저앉아 있습니다. 그러나 봄은 봄, 결국 온 천지에 내려앉을 것을 우리는 압니다. 우리도 봄처럼 휘청거리며 주저앉다 결국 우리의 길로 가면 됩니다. 봄빛이 되어 바람이 되어 그렇게 갈 것입니다. p 033 ~ 035 새벽 남 몰래 봄 처녀를 만나다 CHAPTER 1 - 길 위에서 세상을 바꾸다 ![]() ============================== 꼭 꽃밭에 가야 무위자연無爲自然을 만나는 건 아닐 거라 생각합니다. 궁극에는 사람 사는 도시도 자연이 아닙니까? 무위자연의 깨달음도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어마어마한 존재가 아닐 겁니다. 도道를 구하기 위해 멀리 떠난 젊은 두 제자의 이야기를 들려 드리죠. 깊은 산속에 홀로 거하고 있는 훌륭한 스승이 계신다 하여 산길에 들어 헤매다 개울을 발견하고 목을 축이러 다가섰습니다. 그런데 저 위에서 배추잎 한 조각이 떠내려오는 것이 보였습니다. 순간 두 제자의 얼굴에 잠시 실망의 빛이 스쳐 지나갔습니다. "여보게, 여기도 아닌가 보아……." "그런 거 같지?" ……. 그때였습니다. 산 위에서 누군가 뛰어 내려오며 다급하게 외쳤습니다. "여보시게, 여보시게 거기 그 배추잎 좀 잡아주시게." 두 젊은이의 얼굴이 다시 환하게 밝아졌습니다. 배추잎 하나 간수 못 해 주으려고 산길을 허둥대는 노선사에게서 왜 푸근함과 신뢰가 느껴지는 걸까요? 대교약졸大巧若拙이라 합니다. 큰 지혜로움은 어리숙해 보인다는 것이고 중국 선불교 3대 조사인 승찬의 신심명信心銘도 지극한 도는 결코 어렵고 복잡한 것이 아니 라는 말로 가르침을 시작합니다. 도道란 삶에 녹고 어우러져 구분이 되지 않는 평범한 것이 될 때 올바로 닦고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자연도 그러하리라 생각합니다. 자연스러운 척 애쓰면 자연스러울 리 없듯이 자연만 찾아 머무른려 한다면 거기가 자연다운 자연은 아닐 수도 있을 겁니다. 내가 스승께 얻어 이웃들에게 적어 주곤 하는 '글에서 말로, 말에서 침묵으로, 침묵에서 삶으로' 도 아마 그런 맥락일 거라 생각합니다. 지금 내가 선 이 자리에서 깊이 내려가 세상의 진실을 만나고 싶습니다. 그날 밤 반가운 비가 내렸습니다. 적당히 습기를 머금은 바람은 몹시 정겨웠습니다. 머리는 맑고 가슴은 고요해지며…… 나는 나를 내려다봤습니다. 지친 나를 위로할 사람은 나였습니다. 부드럽게 나를 쓰다듬으며 위로했습니다. 캐나다 그곳이 전원이고 아름다운 일터라면 여기 이렇게 비 내리고 바람불고 가난한 마음들이 피어 있는 이곳도 전원일 거라 위로했습니다. 지금은 흐릿해도 이렇게 이 길을 따라가다 보면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축복이고 살아 있음이 이리도 성스러운 일이라던 가르침에 고개를끄덕이게 될 날이 올 것입니다! p 045, 046 나는 꽃밭에 사노라 CHAPTER 1 - 길 위에서 세상을 바꾸다 ============================== 신랑 신부 두 사람을 하객과 부모들 앞에 세우고 눈을 감으라 했습니다. 그리고 양가 부모님에게는 반듯하게 잘 키워 주셨다고 인사를 하고 하객들에게는 두 사람을 늘 지켜보며 도와주십사 부탁했습니다. 이제 하객들이 눈 감을 차례입니다. 누구에게 빌든 무엇에 걸고 약속을 하든 눈을 감고 두 사람의 행복을 빌고 있으라 부탁한 뒤 신랑 신부에게 눈을 뜨고 모인 사람들을 둘러보라고 시켰습니다. 여기 모인 사람 어느 누구도 그저 평범한 삶을 산 사람은 없어. 늘 힘들고 혼란스럽고 견딜 만큼 견디며 온몸으로 삶을 밀어 여기까지 온 거야. 누구의 삶이든 강하고 또한 슬프고 그래서 아름다운 것이다. 사람을 대할 때 외모나 지위를 보지 말고 그 삶의 무게를 느끼며 대하도록 해. 그렇게 사는 것이 옳다. 결혼식에 이렇게 찾아와 준 사람들을 기억하고 길손이 되어 찾아오면 따뜻한 밥 지어 대접하고 기쁘고 어려울 때는 찾아가 함께하도록. 양가 부모에게 절을 하고 축가를 들은 뒤 그들은 행진에 나섰습니다. 잘 살 것입니다. 잘 살아야 합니다. 행복하게 사는 것, 그것이 우리의 꿈이고 생명 있는 것들을 향한 하늘의 뜻이라 생각합니다. p 068 내 인생의 첫 주례 CHAPTER 2 - 어깨에 손을 올리면 가슴 아파 오는 이름 ============================== 공부는 '사람 되는 공부'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몸의 수련과 지식 수양이 어떻게 해서 구분되지 않고 '공부'라는 하나의 단어 안에 뭉뚱그려지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불교나 유교의 공부는 지식을 머릿속에 담는 것이 아니라 몸에 새겨 넣는 방식입니다. 그릇으로서의 몸이 갖춰져야 지식도 올바르게 쌓아 갈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자세를 바르게 하고, 집중해 졸지 않으며, 앉고 일어서고 걷는 것에 먹고 씻는 것까지 모두가 몸 만드는 공부에 해당하고 마음 만드는 공부에 포함됩니다. … 결국 사람의 공부, 사람 공부는 초심初心입니다. 나도 어느새 노년으로 다가서고 있습니다. 노년은 지혜롭고 쉴 수 있는 줄 알았는데 가까이서 보니 아닌 듯합니다. 나이를 먹어 간다는 것은 인정하되 더 성숙해지려 노력하지 않고 더 배우고 이해하려 마음을 열지 않으면 그건 늙는 것이 아니라 '늙어 버리는 것'이 됨을 알았습니다. 사람들의 속마음을 들여다보니 늙어 버리고 있는 사람의 나이는 존중의 대상도 되지 못하고 존경심을 자아내지도 못했습니다. '늙은, 오래된'의 독일어 형용사는 'alt'입니다. 어원을 따져 거슬러 오르면 '키우다'라는 의미의 'alere'가 있고, '높다'라는 의미의 'altus'가 등장합니다. 그래서 독일어 '늙다'의 어원은 '자라다, 위로 끌어올리다, 영양을 공급하다' 라는 말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젊음을 최상의 가치로 여기는 시대에 젊음을 따라가고 흉내 내느라 노년의 삶이 바쁘기도 한 요즘입니다. 근육을 키우고 힙합이나 브레이크 댄스, 랩을 익힌 노인들이 텔레비전에 자랑스러이 비춰지기도 합니다. 울퉁불퉁한 근육을 키우고 젊은이들의 춤을 배우고 스마트폰으로 요리조리 재주도 펼 줄 알면 요긴하긴 하겠지만 역시 노년은 '높이'와 '깊이', '품어 안기'에서 그 가치를 찾을 수 있습니다. 그것이 세대를 이어 가며 나이 든 사람이 세상에 펼쳐야 할 책임이자 과제이기도 할 겁니다. 그래서 사람 공부는 평생을 이어 갈 일입니다. p 132, 136, 137 공부가 가장 어렵고 즐겁다 CHAPTER 4 - 나는 이렇게 듣고 배웠다 ============================== 무도를 좇는 과정은 지금 돌이켜 봐도 '공부가 가장 즐거웠다'라는 표현이 딱 들어맞는 듯합니다. 무도의 진면목을 찾기 위한 궁구는 어느새 평소 짬짬이 들여다보던 불교의 선禪의 세계와 이어졌고 다시 춤의 세계로, 음악으로, 글씨로 나의 관심을 이끌었습니다. 그것들 안에는 가락과 리듬과 템포가 있었고 한결같이 정중동静中動, 동중정의 이치와 미학을 담고 있었습니다. 무엇보다 마음의 세계가 있었습니다. 검도에서 가르치는 바 칼은 눈이고, 눈은 마음입니다. 그리고'마음은 눈이고 눈은 다시 칼'이었습니다. 모든 게 칼이고 모든 게 마음이었습니다. 그래서 검도 수련의 시작은 매듭을 묶는 것부터임을 알았습니다. 상의의 안쪽 고름, 바깥 고름, 하의, 호구와 호면에 달린 끈과 머릿수건까지 묶어 나갈 때, 손을 움직여 묶지만 마음으로 묶어 나가는 법부터 다시 익혀야 했습니다. 그러노라면 어느 날인가는 문득 끈을 묶는 것만으로도 적멸의 세계로 빠져들고 얼마나 황홀했던지……. 상대를 존중하며 예를 갖추고, 격렬하게 부딪치는 것도 깨뜨리는 것이 아니라 뜨겁게 어울리는 것임을 알게 되고, 내가 이기려 했던 상대는 멋진 승부가 쌓여 가면서 고맙고 소중한 사람들로 다가왔습니다. 마음이 있는 곳에 사람이 있었고 사람의 길이 있었습니다. 사람들은무술을 수련했다 하면 이소룡이나 이연걸처럼 맨손으로 다수를 제압하고 젓가락으로도 검술을 펼쳐 몇 명 정도는 가볍게 물리친다는 판타지를 떠올리지만 그건 아닙니다. 검법이나 권법을 배우러 도장에 가는 사람에게 내가 충고하는 말은 '도장에서 첫날 배운 것이 그 무술의 처음이자 끝임을 잊지 말라'는 것입니다. 기초絶藝가 궁극에 이르면 최상의 절예絶藝가 되는 것입니다. 검도는 바른 자세로 칼을 똑바로 들어 올려 똑바로 내려지는 것이 시작이고 전부입니다. 아무리 현란한 검법이라 한들 그 궁극의 단순함이 갖는 위력과 아름다움을 따라가지 못합니다. 태극권을 십 년, 이십 년 수련해도 노사老師께 가르침을 받을 때 지적받는 한 가지는 입신중정立身中正, 미려중정尾閭中正…… 결국 중정中正, 몸에서 불필요한 힘을 빼고 바로 세우는 것입니다. 검도에서도 마찬가지로 중정을 최선의 가치로 가르칩니다. 몸의 중정뿐 아니라 칼에도 중정이 있어 나의 중심축과 상 대의 중심축을 잇는 가상의 정중선이 있습니다. 정중선을 지 키고 빼앗는 것에서 승부가 가려지기에 고수들의 멈춘 듯 보 이는 교착 상태는 치열한 정중선의 싸움이기도합니다. 그렇게 항상 몸의 중정을 유지하며 그것을 축으로 하여 몸을 돌리고 기울이고 몸에 맞춰 팔다리를 휘두르는 것이 무술이고 힘을 최대한 효과적으로 운용하고 공수의 균형을 잡는 것이 곧 무술의 요체입니다. 골프를 즐기시는 분이라면 세계 최고의 프로 골퍼가 멋진 스윙을 가르쳐 달라는 부탁을 받았을 때 "아무것도 필요 없고 그저 머리를 더 처박으면 된다” 고 답했다는 에피소드를 바로 이해하실 겁니다. 엉덩이를 빼 치켜들고 머리를 고정해 공에 집중할 때 이뤄지는 것이 바로 중정입니다. 또한 간과할 수 없는 것이 몸의 중정을 가능케 하는 마음의 중정입니다. 정중선은 물론 고착된 것이 아니라 겨루는 상대가 있으니 가변적인 것입니다. 상대와 겨루자면 불안하고 두렵고 상대의 수가 의심스럽고 상대의 견제에 놀라기도 하지만 그것들을 순간순간 떨쳐내는 것이 마음의 중정입니다. 상대의 칼날 밑에서 건, 주먹 앞에서건 손발과 다리는 바빠져도 마음은 질주하면 안 되는 것이죠. 자신의 내적 고요함이 중정으로 세워져 있지 않으면 손발도 어지럽고 반응속도도 느려집니다. 몸과 마음의 중정이 합치될수록 상대의 동작이 눈에 빤히 보이고 느리게 보여 허점이 드러납니다. 흔히 동체시력이라고부르는 것이 이런 것일 겁니다. 정중은 우리의 일상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마음은 허둥대고 주변의 시선과 허언에 휘둘리고, 정신없이 퍼먹고, 권태로움에 재미를 좇고, 시간과 사람을 허투루 대한다면 자신의 정중을 다시 생각해 볼 일입니다. 정숭은 종교에서는 더욱 심각한 문제입니다. 불교의 좌선도 정중이고, 팔정도八正道도 정중의 확장입니다. 올바로 보며, 올바로 생각하고, 올바로 말하고, 올바로 행동하는 것, 올바로 목숨을 유지하고, 올바르게 부지런히 노력하며, 올바로 기억하고, 올바로 마음을 안정하는 것이 팔정도입니다. p 140 ~ 145 들꽃에도 정중正中이 있다 CHAPTER 4 - 나는 이렇게 듣고 배웠다 ============================== 어떤 후배가 '우울'이 깊을 대로 깊어 뭘 어쩌면 좋겠냐고 물어왔습니다. 의자에 앉아 머리를 쥐어 뜯어선 풀 수 없는 것이 삶이어서 그랬습니다. 골치 아프게 고민만 했을 듯싶은 니체도 "가능한 앉아서 지내지 마, 자연속에서 자유롭게 몸을 움직이면서 얻은 게 아니라면 어떤 사상도 믿지 마, 몸이 뛰어든 게 아니면 믿어선 안 돼" 라고 했습니다. 금욕에 사색만 했을 사상가 헨리 데이비드 소로도 한없이 걷고 또 걸었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이렇게 걸으면 말로 설명하기 곤란한 만족감이 내 몸 안에 깃든다. 피곤하면서도 새롭게 태어난 느김이다" 라고 고백했습니다. ![]() 마크 트웨인은 담배를 수천 번 끊었습니다. 수천 번 실패했다고요? "Oh, no." 수천 번 시도했고 그때마다 어김없이 성공했던 겁니다. 맘먹기 나름이고 생각하기 나름입니다. 담배 이야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어떤 여자 후배가 새해 목표를 뭐로 세울까 하기에 담배를 끊어 보라 했습니다. 못내 아쉬운 모양이기에 금연에 성공하면 미백 화장품을 주겠다고 상품으로 내걸었습니다. 이미 금연을 놓고 생각한다는 건 끊고 싶은 생각이 있는 것이지요. 생각에 따라 의지가 일고 의지에 따라 방법은 나오는 것입니다. 자기 몸을 믿으십시오. 우리의 몸은 놀라운 것입니다. 마음이 동하면 실천하고 실천은 언제나 몸으로! 몸을 구체적으로 움직이십시오. 그러면 구체적인 답이 나옵니다. p 148 ~ 150 몸을 믿고 몸으로 답을 찾아야 CHAPTER 4 - 나는 이렇게 듣고 배웠다 ============================== 복잡한 세상사에 시달리다 물러서서 강가에 앉아 귀를 기울이면 가야 할 길과 가지 말아야 할길, 내길이 옳다는 아집과 그에 맞선 분노와 원망이 뒤엉켜 흐르는 소리가 들립니다. 소리가 들린다 해서 어떤 게 옳은지 판단이 서고 해결책이 나오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소리라도 듣는 것이 어딥니까. 멀리 내다보는 혜안도 가져야겠지만 눈앞의 일이 급한 건 어쩔 수 없기도 합니다. 막을 것은 힘닿는 한 막아야겠지만 모 아니면 도라고 죽기 살기로 싸울 것까지는 없는 일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은지를 두고 모두 자기의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강보다 더 넘쳐흐를지도 모를 일입니다. 다만 필요한 건 모두가 자기 자리를 잠시 떠나 강으로 나서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리고 귀를 기울여 들은 다음 자신을 돌아보고 그다음은 각자 알아서 하면 되리라 생각합니다. 한치의 오차도, 모자람도 없이 꽉 채운 진실만이 존재해야 하는 건 아니라 하잖습니까? 인간을 넘어 하늘마저도 그렇다고 노자는 이야기합니다. 천망회회 소이부실 天網恢恢 疏而不失, 하늘의 그물은 성기어 다 새어 나갈 것같이 보이나 그렇다고 놓아 보내는 것 또한 없다는 뜻입니다. 오늘 못 이루면 내일 이뤄질 것이고 이제는 어긋나도 언제고 제자리로 돌아온다고 하니, 부채 바람으로 달래며 기다릴 것은 기다려야 할 것이고 나아가야 할 일은 나가 하면 될 것입니다. p 154, 155 강은 역류를 품고 흐른다 CHAPTER 4 - 나는 이렇게 듣고 배웠다 ============================== 만일 우리가 평생에 이룬 일들, 벌인 일들을 한 장면으로 볼 수 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요? 내가 영향을 끼쳐 바뀌어 버린 것들, 아무 소용도 없는데 몸부림친 것들, 날 미워한 사람, 내가 미워한 사람, 나에게 환호한 사람, 나를 까맣게 잊어버린 사람……. 어쩌면 너무 두렵고 부담스러워 시선을 피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파노라마를 미리 볼 수 있다면 삶에 대한 태도와 진지함이 달라질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 삶을 알아야 죽음의 신비를 들여다볼 텐데 삶은 아직 잘 모르겠고, 죽음을 알아야 삶을 바로 알 것인데 죽음도 모르니 따지고 보면 뭐 하나 제대로 알고 사는 것도 아닌 셈입니다. 사람의 존재가 몸과 감각, 지각, 의식, 마음이라고 하는 것들이 일정 기간 동안 결합되어 어느 정도 일관성 있게 지속되다 흩어지는 자연현상의 일부라고 한다면 그런가 싶고, 영혼이 있어 하늘나라로가 다음 생인지 영원한 생인지를 산다면 그것도 위안이 되겠다 싶군요. 아니 또 살아야 하나 왠지 부담스럽기도 합니다. 종소리도 여운을 끌다가 사라지니 듣기 좋은 거고, 나뭇잎도 졌다가 다시 나니 반가운 고로, 사람도 끝이 있고 또 시작이 있으리라 싶습니다. 사라질 때 사라질 것이니 살아 있는 겁니다. 그런가요? 역시 잘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모르는 걸 대하는 태도가 문제의 핵심이 아닌가 싶습니다. 유명한 물리학자 두 사람, 아인슈타인과 덴마크의 닐스가 벌인 논쟁은 그래서 늘 머릿속에 남아 있습니다. 아인슈타인 : 우리의 이론은 경험을 표현하기엔 너무나 빈약해! 닐스 보어 : 그게 아닙니다. 경험은 우리들의 이론에 비해서 너무나 풍요로운 거예요. 양자역학의 문제를 다루다가 똑같이 어쩔 수 없는 무지無知에 맞닥뜨린 두 사람의 태도가 대조적입니다. 도대체 파악이 어려울 만큼 불확실하고 좀처럼 틈을 보여 주지 않는 절대 진리 앞에서 한 사람은 깊은 고뇌로 힘겨워하지만 다른 한 사람은 신기해하며 갸우뚱거립니다. 계곡 시원한 물웅덩이에 뒷걸음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는 노인과 벼랑에서 환호성과 함께 물로 뛰어드는 장난꾸러기를 떠올리게 합니다. 그렇게 생각하고 그렇게 잊고 그렇게 살아갈까 합니다. 나기도하고 죽기도 한다니, 그리워도 하고 잊기도 한다니 얼마나 신기한 일 입니까? p 156 ~ 159 사는는 게 무얼까 CHAPTER 4 - 나는 이렇게 듣고 배웠다 ============================== 벌새란 작은 새는 신체 구조상 큰 몸에 턱없이 작은 날개를 가진데다 몸의 형태도 유체역학상 날아다니는 것이 불가능한 구조라고 합니다. 그런데 벌새는 구조와 역학이란 말은 알지도 못하고 생각해 본 적도 없습니다. 그래서 그냥 날아다닙니다. 본인이 비행기처럼 날아야 할지, 헬리콥터처럼 날아야 할지 정체성도 정리가 되지 않았습니다. 비행기도 모르고 헬리콥터가 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비행기처럼 날아다니다 헬리콥터처럼 공중에서 잠시 멈추기도 합니다. 그냥 날아다닙니다. 우리도 그냥 살아 봅시다. 힘든 만큼 힘들고 쓸쓸한 만큼 쓸쓸합시다. 고통이 내 것이긴 하지만 나 자신은 아닙니다. 그것도 손님이니 맞이해 함께하면 하는 것이고 때가 되어 떠나면 보내는 것이죠. p 182, 183 구름이 묻고 산이 답하다 CHAPTER 5 - 예술에게 인생을 묻다 ============================== 왜 거대한 슬픔 앞에서조차 좌우 이념과 정파적 대립이 등장하고, 왜 결국 본질인 인간 존재의 생멸과 존엄함보다 그것이 우위에 오르는 것일까요? '지식은 시대마다 다르고 한 시대의 사고방식은 그 시대의 배경구조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푸코의 명제대로 정말 우리는 어떤 경우에도 좌우, 진보·보수, 영호남의 이분법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이 물음의 답은 우선 비겁한 국가와 언론이겠지만 그것만은 아닐거라 생각합니다. 우리도 그 답의 하나는 아닌가 생각합니다. 우리의 분노와 절망이 애매했기 때문이고 우리가 국가에 예속된 피지배자이고 언론에 휘둘리는 비주체적 소시민이었기 때문은 아닌가 하는 것이죠. 그렇게 우리는 숱한 죽음들의 기억을 소멸시켜 왔습니다. 멀리는 동학부터 가까이는 해고 노동자들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우리의 기억에 머물지 못하고 지워진 죽음들이 많습니다. 안타까운 죽음들을 기억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그 죽음들을 멀뚱히 바라보다 잊어 가는 자신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를 조종하는 국가와 언론 등 왜곡된 함에 맞서는 것 입니다. 부디 아픔에 대한 기억이 힘없고 소외되어 그늘 속에서 살아가는 이웃들 앞에, 우리가 쌓아 온 차별과 우월 의식의 실상 앞에 우리를 세워 우리 자신을 똑바로 볼 수 있도록 해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를 가두고 형제자매를 가두었던 좁고 차가운 벽을 허물고, 더 진실하고 정직한 세상으로 나아가도록 이끌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아니, 우리 스스로를 넘어섬으로써 우리가 그 희생들을 더욱 값진 것으로 만들어야겠습니다. p 196, 197 우리의 절망과 분노가 애매했기에 CHAPTER 5 - 예술에게 인생을 묻다 ============================== 예전에 스승께서 빨랫줄 이야기를 해주신 게 기억납니다. "어이 이사람아, 어떤 빨랫줄은 튼튼하게 잘 버티고 어떤 빨랫줄은 시원찮아 끊어져 버린다고 생각하면 안 되는 거야. 끊어지지 않았으니 버티는 걸로 보이겠지만 언제고 버틸 수 있는 한계를 넘어서는 짐이 널리면 도리 없이 끊어지는 거라구. 쉽게 끊어진 듯 보이는 빨랫줄도 버틸 수 있는 데까지는 버틴 거야. 세상 모든 줄이 저마다 버틸 만큼 버티고 있는 거지. 내가 버틸 만큼 버티듯이 다른 줄 또한 제가 버틸 만큼 버티고 있는 걸세. 어떤 줄이 나보다 먼저 끊어졌다고해서 그 줄을 약한 줄이라고 말하지 말게. 그 줄도 끊어지기 직전까지 버틸 수 있을 만큼 버텼다네. 그러니 결코 약한 줄이 아니지……. 세상에는 약한 줄로 없고 따라서 강한 줄도 없어. 그런 것은 자네 머릿속에만 있는 거야." 끊어진 줄에도 높고 낮음이 없고 나희덕 시인이 시 '속리산'에서처럼 산꼭대기 오르기보다 더 힘들고 고달픈 것이 산 아래서 밥 끓여 먹고 사는 세상의 인간사인데, 어떻게든 살아 보겠다는 이들의 실수나 잘못을 그리 탓할 것도 없으리란 생각입니다. 어느 시인이 산의 정상은 해발로만 재는 것이 아니라고 설파했던 걸 기억합니다. 산의 정상은 해발로 가장 높은 곳도 아니며 앞질러간 다른 이가 올라서 굽어보는 그 자리도 아닙니다. 더 이상은 오를 수 없다고 포기하려는 자신을 일으켜 세워 한 걸음 더 내딛은 그 자리가 그에게는 정상의 자리인 것이죠. 우리는 그렇게 정상을 밟고 또 빫아 여기까지 왔습니다. 내 옆의 그 사람 역시 그렇게 숨넘어갈 듯 정상을 넘고 넘어 지금 그 자리에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불완전함을 인정하되 용기를 잃지 않고 자신을 긍정해 주고 인정해 주며 앞으로 나아가는 것, 그것이 멋진 인생의 시작입니다. 세상을 제대로 살려면 참고 견디어야 하지만 무엇보다 자신의 부족함과 모자람을 참고 견디어야 합니다. 인생에 대해, 사람에 대해, 자신에 대해 긍정하며 살아가는 것은 세상을 바꾸는 힘이 됩니다. 행여라도 "내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야"라고 말해선 안 됩니다. 남에게도 그리 말하지 마십시오. 그저 지난번 일을 실패했는데 이번 일도 실패했을 뿐입니다. 다음 일에 실패한다는 보장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실패한 인생이라고 스스로를 설득한다면 다음번도 실패할 가능성은 높아지겠죠. 그러니 왜 그래야 합니까? 실패하거나 실수를 저질렀을 때 자신을 비난하고 부정하면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고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몸이 굳어버릴 것입니다. 당연히 실수가 반복될 개연성이 크죠. 그러니 왜 그래야 합니까? 실패하거나 실수를 저릴렀을 때 자신을 비난하고 부정하면 실수를 두려워하게 되고 다음 기회가 왔을 때 몸이 굳어버릴 것입니다. 당연히 실수가 반복될 개연성이 크죠. 그러니 왜 그래야 합니까? 호주의 유명한 프로 골퍼 그렉 노먼이 1996년 세계 최고의 골프 대회 중 하나인 마스터스 대회에서 초반에 잘하던 경기를 망치고 결선에서 무너졌을 때 인터뷰에서 남긴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졌죠, 오늘은 졌습니다. 그래도 저는 승리자입니다. 다만 오늘 이기질 못했을 뿐입니다." 왜 내일도 지려 합니까? 상대가 이겼다 해도 그 승리는 영원한 것이 아니듯이 오늘 내가 패배했다 해도 그 패배는 나를 영영 묻어 버릴 만큼 치명적이지 않습니다. 내가 그리 믿지만 않는다면요. p 200 ~ 202 정상을 밟고 또 밟아 CHAPTER 5 - 예술에게 인생을 묻다 ============================== 뒷짐 지고 우리 땐 이랬지 저랬지 하며 거들먹거린 날들이 부끄러워집니다. 억새도 그러하고 가로수 잎도 그러하듯, 시대의 맨 앞줄에서 길을 트고 장애를 걷어 내는 것이 해야 할 일인데 죄스러울 뿐입니다. 힘을 얻어 나의 여행을 이어 갑니다. 도움이 되지는 못하고 되려 얻어 가려니 고마우면서도 부끄러운 일입니다. 태풍이 지나쳐 간 가을, 가로수 잎에서 나는 살아 있기에 희망이 있고 희망으로부터 살아갈 힘을 길어 올려 하루를 밀고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그리며 고개를 숙입니다. 고맙고 미안합니다. p 213 점점 팍팍해져 가는 세상 CHAPTER 5 - 예술에게 인생을 묻다 ============================== ![]() ============================== 불행하게도 우리의 조선왕조 이후의 전개는 시민 민주주의가 등장한 유럽과 달랐습니다. 제국주의의 식민 독재, 해방 후의 군부독재가 이어지며 민주화가 유보된 것입니다. 왕권에서 시민 민주주의로 이행되지 못하고 정치적 독재가 이어졌습니다. 이 때문에 사회에서의 안정된 기반 마련과 성공은 법과 규범보다는 권력과의 인연, 학벌, 지역과 혈연에 대거 의존하게 되었고 이 권력 질서로부터의 이탈은 사회적 낙오로 이어지는 위험을 내포하는 그런 사회가 이어진 것입니다. 시민들의 자율적인 규범과 자제와 절제, 상대에 대한 존중과 최소한의 매너는 똑똑한 척하다가 정 맞는 지름길, 법과 질서 지키다 저만 손해 보는 사회가 이어져 갔습니다. ![]() 그렇다면 시민으로서의 자유와 신념을 억누르며 생기는 우울과 긴장, 상실감을 해소할 반대급부로의 해방구는 어디에 마련됐을까요? 마구 퍼마시는 술자리, 뇌물과 로비가 오고 갈 은밀한 룸살롱, 관료적이고 군대스러운 직장 문화, 가부장적 위세와 폭력 아마도 그런 곳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시대적 배경 속에서 한국사회는 서로를 존중하며 전체를 위해 자신을 적절히 양보하고, 자율적인 규제와 견제가 이탈자를 견제할만한 예절과 매너를 뿌리내리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그리하여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신사로 살고자 하면 어찌해야 하는 가' 라는 존재론에 가까운 고민이 생겨난 것입니다. p 278, 279 21세기의 매너란? CHAPTER 7 - 남자, 그리고 여자를 만나다 ============================== 이전 시대라고 해서 사람들의 욕망이 폭발하지 않았던 건 아닙니다. 당연히 어느 시대나 사람은 욕망하고 일탈하며 세상을 꾸려 갔습니다. 지금 시대와 과거가 다른 것은 돈을 벌어 맘껏 쓰고 누려야겠는 욕망이 일부가 아닌 모든 보통 사람들을 짓누르고 뒤덮지는 않았었다는 점일 겁니다. 지금은 어린아이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또는 학자건 종교인이건 모두가 물신주의에 젖어 든 세상입니다. 부자의 졸부 행위가 점잖게 타이를 대상이 아니라 지극히 부럽기만한 그런 세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물론 이를 거부하거나 어떻게든 되돌려 보려는 노력들이 세상에는 존재합니다. ![]() 21세기를 행복하게 살아 내는 모습은 어떤 것일까요? 쫙 빠진 승용차로 질주하고 스마트폰으로 무장하고 와인 잔을 부딪치는 것? 과연 그럴까요? 정말 스마트폰이 우리를 스마트하게 만들어 준단 말입니까? 21세기 우리 곁에 있는 한량들의 모습은 기술적이기보다 인간적이었으면 좋겠습니다. 기술과 지식을 모두의 소박한 행복을 위해 사용하려 애쓰고, 물질과 안락함 속에서 부유함을 누리려 하지 않고 밀란 쿤데라의 한량처럼 자연을 거닐고 별빛 꿈속에서 풍요로움을 찾는 사람이면 좋겠습니다. 아놀드 베넷이 확신하던 한량들처럼 다른 이들을 돕고 곤궁한 이들에게 재능을 나누며 살아가는 멋진 한량이었으면 좋겠습니다. 21세기 우리가 기다리는 신사, 숙녀들이 무리를 지어 비처럼 쏟아지면 좋겠습니다. p 282, 283 신사와 한량 CHAPTER 7 - 남자, 그리고 여자를 만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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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믿고보는 변상욱 대기자... 오로지 정확한 펙트를 바탕으로 날까롭게 비판하는 기자... 권력에 무릎꿇지않는 기자... 현재 사건들을 정확하게 바라보는 시각... 진짜 멋진 기자님입니다... 이분의 글은 그냥 믿고보는거죠.. 그리고 가장힘들었을때 이분 에세이집 우리 이렇게 살자 라는 책에서 많은 힘을 받았고.. 다시 일어날수있는 계기를 만들어주었죠... 이 책도 힘을 얻는 그런 책이라 생각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