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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학창 시절의 추억이 어린 그리운 책이다. 三浦綾子(미우라 아야코)의 작품은 <빙점>을 먼저 읽었고, 그에 감명을 받아서 그의 자서전격인 <길은 여기에>도 읽게 되었다. 그 때는 몇 번을 되풀이해서 읽으면서 큰 감동을 받았었다.
그러나 너무도 많은 세월이 흐른 탓일까? 三浦綾子라는 이름과 <빙점>, <길은 여기에>에서 받은 감동은 머리에 남아 있지만, 내용은 거의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저 학창 시절의 추억을 회상하며 이 책을 구입했을 뿐이다.
이 책은 범우사에서 1998년에 발행한 2판 12쇄다. 1판이 1976년에 나왔다고 하니 어쩌면 내가 학창 시절에 읽었던 책이 이 책인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책을 소장하고도 서너 달이 지나도록 책을 펼치지 못했다. 그 이유는 몹시 분주한 생활 탓도 있지만, 옛 판형인 탓인지 글씨가 작아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 답답함 때문에 읽을 엄두가 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책을 예전에는 어떻게 그렇게 열독을 했을까? 세월과 함께 몸과 마음도 시들었다는 것을 실감했다.
이 책은 三浦綾子와 그 주변 사람들이 대부분 실명으로 등장하고 있다. 17세에 초등학교 교사가 된 그녀가 종전이 되자 좌절감으로 교단을 떠나고 이어서 병마에 시달리다가 신앙을 찾게 되고 결혼까지 하는 과정이 그려져 있다.
그녀가 교단에서 좌절감을 느끼게 된 이유는 2차대전에서 일본이 패망하자 점령군인 미군의 지시에 의해 교과서를 지우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 때 지운 내용은 일왕을 칭송하고 연합국을 비난하는 내용들이었을 것이다. 학창 시절에 이 부분을 읽을 때도 나는 그 장면에 공감할 수 있었다. 시국이 바뀌자 공책이나 달력을 지운 경험이 내게도 있기 때문이다.
4월 혁명에 의해 이승만 정권이 붕괴되었을 때 나는 초등학생이었다. 그 때는 어려운 시절이라 대부분의 집에는 변변한 달력이 없었다. 대통령인 이승만과 자유당 국회의원이 함께 있는 한 장 짜리 달력이 붙어 있었다. 또, 1년에 한두 번씩 국회의원이 찾아와서 공책을 나누어 주었는데, 그 공책에도 이승만의 사진이 있었다.
혁명에 의해 이승만이 실각하자 담임선생님은 공책에 있는 이승만의 얼굴을 X표로 지우라고 하면서, 집에 가면 달력에 있는 얼굴도 지우라고 하셨다. 우리는 신이 나서 집의 달력에 X표를 했고, 부모님은 착잡한 표정으로 그것을 바라보시던 것이 생각났다.
그리고 생각나는 것이 이 구절이었다. "눈이 온 날, 교정을 가로질러 간다. 똑바로 걸어가겠다고 목표를 정해서 그걸 바라보며 걸어간다. 목표한 데까지 와서 뒤돌아보니 똑바로 걸어온 줄 알았던 발자국이 이리저리 휘어져 있다."
나는 교단에 선 뒤에 학년말 마지막 시간이 되면 이 구절을 들려주면서 학생들과 함께 반성을 하곤 했다. 그러면서도 이 구절을 어디서 읽었는지는 잊고 있었는데, 이 책에 있는 내용인 것을 새삼스레 알게 되었다.
이 책은 1부는 '패전 속의 흐느낌'이라는 소제목으로 三浦綾子가 교단을 떠난 뒤 병마에 시달리기까지의 과정이 담겨 있고, 2부는 '주님의 품으로'라는 소제목으로 신앙에 귀의하는 과정이 담겨 있으며, 3부는 '따스한 햇살이'라는 소제목으로 마음에 안정을 찾고 결혼하는 과정이 담겨 있다. 학창 시절에는 이 책의 모든 과정을 감동적으로 읽었다.
그러나 지금은 2부에서부터 마음이 흔들렸다. 예전에는 그녀가 신을 찾고 귀의하는 과정을 긍정적으로 보았는데 이제는 마냥 그렇게 보이지 않아서 자신도 모르게 거부감이 들은 듯하다. 그 이유는 우리 사회의 기득권으로 성장한 기독교와, 심지어 서울시를 하나님께 바친다는 등 허무맹랑한 발언을 하는 고위 공직자로 인해 부정적인 시각을 갖게 된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 책을 다른 사람에게 권하고 싶은가? 그럴 가치가 있는가? 잘 모르겠다. 분명한 것은 예전같은 감동은 느끼지 못했고, 신앙 이야기가 나오자 거부감이 떠오르면서 책을 덮고 싶었다는 사실이다.
사실 아쉽기는 하다. 몇몇 목회자나 권력자의 망언이나 비리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어떤 종교에 대해 거부감을 갖게 되었다는 현실이……. 좀더 세월이 지난 뒤, 기독교가 지금처럼 오만하지 않은 세월이 오거나 내가 좀더 너그러워진다면 이 책을 다시 읽고 싶다. 지금과 같은 권력이 있는 세상에서는 내 마음이 이 책을 제대로 평가할 평정심이 없을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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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시절, 어려웠던 가정 형편 탓도 있지만 부모님께 용돈을 받아쓰면 내가 하는 일에 제안을 받을 것 같아서 나름대로 벌어 쓰기로 다짐했다. 그렇다고 아르바이트를 꾸준히 했던 건 아니라 수중에 돈이 항상 모자랐다. 전공 과목을 공부하기 보다는 책 읽는 게 좋아 도서관에 자주 들르면서, 책을 사지도 않고 이렇게 많이 빌려 볼 수 있다는 게 좋았다.
1학년 때 학교 도서관에 들어서서 서가의 양이 얼마나 되나 가늠해 보았다. 호기 넘치게도 '여기에 있는 책을 다 읽으려면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하고 생각했던 기억이 난다. 당시는 지금보다 책 편식이 심하지 않아서 탐나는 대로 여러 종류의 책을 빌려 보았지만 그래도 역시 문학 코너에서 자주 기웃거렸던 것 같다.
미우라 아야꼬의 [이 질그릇에도]는 학교 도서관에서 만난 수필이다. 내 블로그 제목처럼 나는 항상 나를 '질그릇'이라고 표현하기 때문에 어쩐지 그 책에 끌렸다. 물론 책 내용에도 깊이 매료되었다. 그로부터 몇 년이 흘러 직장생활을 하다가 잠시 쉴 때였다. 아야꼬의 책을 한 번 더 보고 싶어서 인터넷에서 찾아 주문했다. 기쁜 마음으로 책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받고 보니 잘 못 주문했었더라. 나에게 온 책은 또 다른 수필 [길은 여기에]였다. 잘 못 주문한 책, 그러나 내게는 정말이지 선물 같은 책이되었다.
미우라 아야꼬는 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소학교 선생님으로 7년 동안 근무했다. 그녀는 자기가 맡은 아이들마다 일기장을 하나씩 마련해놓고 날마다 그 일기를 쓰는 매우 성실한 선생님이었다. 다정다감하기 보다는 엄한 선생님이었어도 사랑이 담긴 교육을 할 줄 알았다. 그러나 그녀는 일본이 전쟁에서 패한 후 교단에서 물러났다. 미군의 명령에 따라 그동안 믿고 가르쳤던 교과서의 내용을 먹으로 지워나가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그녀에게 혼란을 가져왔던 것이다.
어느 쪽이 옳으면, 한 쪽은 그르다는 생각. 자기가 믿고 따라왔고 강단에서 아이들을 가르쳤던 그 내용이 그를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그녀를 내내 괴롭혔다. 무엇이 옳은지도 모르고 가르치기 보다는 차라리 그만두는 게 낫겠다고 생각하고 교단에서 물러났다. 그 후로 얼마 안 있다가 폐결핵으로 쓰러지게 된다. 그때 그녀의 나이가 스물 넷, 꽃다운 나이였다.
그 후로 12년을 침상에 눕게 된다. 패전 후라 나라의 사정도 좋지 않고 집안의 경제도 넉넉하지 않았지만 부모 형제의 따뜻한 돌봄과 주변의 도움으로 치료를 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아야꼬는 침상에 누워 더 큰 방황을 시작했다. '어떤 것이 옳은지 모른다'는 생각은 '아무 것도 믿을 수 없다'는데 이르렀고 마침내 '왜 살아야 하는 가'하는 질문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녀는 매우 허무적으로 변해갔지만 그렇다고 실존주의에 빠지지 않았다. 그것 역시 인간이 만들어 낸 하나의 사상 아닌가, 하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런 그녀를 변하게 만들었던 건 어릴적 동무 '마에카와 다다시'였다. 나이는 두 살 많았는데 그도 역시 폐병을 앓고 있었다. 아야꼬가 병을 앓는다는 얘기를 듣고 병문안을 오면서 둘의 관계는 시작된다. 다다시는 원래 의학도로 똑똑한데다가 매우 진실한 사람이었다. 자기 병이 자기를 곧 죽게 만드리라는 것을 알고 삶의 의미를 잃어가는 아야꼬에게 자신의 생명을 대신 주리라 마음을 먹었다. 그러나 아야꼬는 쉽사리 마음의 문을 열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인 다다시에게 오히려 고루함을 느끼거나, 모욕을 주는 말을 서슴없이 했다.
다다시는 그렇게 5년 동안 아야꼬와 교제하면서 항상 진실했다. 뜨거운 사랑을 나누기 보다는 같이 책을 읽고 공부하며 잡지에 단가를 지어 내기도 했다. 그리스도에게로 그녀를 인도했지만 강요한 적은 없었고, 교회의 좋은 모습만 보여주기 보다는 연약한 모습도 보여주었다. 오랜 구도(求道)끝에 그녀는 세례도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지만, 다다시는 그녀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만다.
한때 삶을 비관하며 자살도 시도했던 그녀였지만, 죽으면서까지 자신보다 그녀를 먼저 생각해주었던 다다시를 생각하며 그의 몫까지 사는 것이 자신의 의무라 다짐하게 된다. 그가 살았더라면 어떻게 했을까? 그는 다른 사람을 위로하고 살려내는 일을 했을 것이다. 단가를 지어 잡지에 냈을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며 깁스 베드에 누워 꼼짝 하지 못하는 몸으로 희망을 잃은 사람들에게 엽서를 보내기 시작한다. 나중에는 다다시처럼 매우 진실한 사람을 만나, 지금이라고 해도 늦은 나이 38세에 결혼도 하게 된다.
자기 생각과 감정에 솔직한 그녀의 태도, 자신의 허물마저도 그대로 드러내며 고민했던 흔적, 그리고 변하는 모습. 그 주변에 있었던 진실하고 좋은 사람들의 이야기는 어떤 영화보다도 더 인간적이고 감동적이다. 그러나 식상하지도, 고루하지도 않다. 새벽녘까지 다시 한 번 읽어내려가면서 또 눈물이 흘렀다.
'왜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대답 할 수 없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은 할 수 없다. 나도 어렸을 때 허무적인 태도로 살았었다. 인생에 의미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하자 답을 내릴 때까지 고민을 멈출 수가 없었다. 4년 동안 방황하고서야 길을 만났다. 모든 사람은 나와 아야꼬처럼 생각 속에서 인생의 길을 걷는다고 느낀다. 생각 속의 길은 삶에 나타난다. 그녀는 그녀가 살아왔던 삶을 통해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길은 여기에'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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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저자가 패전후 겪게되는 심리적 혼란과 깊은 회의에 빠진 상태에서 폐결핵이 카리에스로 전이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 투병하는 가운데 그리스도의 사랑을 닮은 사람의 사랑을 계기로 회심하게 되는 과정을 가감없이 기술한 내용입니다. 일종의 자서전이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전쟁후 모든 신념이 무너지고 회의감에 빠진 그녀는 어쩌면 본질적으로 구도자의 삶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던 듯합니다. 상당히 관념적이고 철학적인 면모가 보여지네요. 인생의 허무함에 빠져 자살을 생각하던 사람이, 척추 기브스로 누워만 지내던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세우고 위로하는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었는지 이야기 해 줍니다.
가까운 도서관에서 빌렸는데 범우사 옛날 번역본이라 그런지 문장이 그리 매끄럽진 않습니다. 원본 자체의 문투가 그런지 일본어를 그대로 직역한 느낌도 들고요. 저자의 <빙점>이란 소설의 유명세만큼 유려하지는 않은 문장에 살짝 놀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지나치리만큼 진솔한 글이 그녀의 문장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있네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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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가 엄첨 맘에 드네요. 길은 여기에 다섯권 주문했는데 그 때문에 하루가 늦게 책을 받아 보게 되었는데... 급히 책 한권이 필요로 했거든요.. 누구 선물줄려고요 근데 그게 한권을 먼저 하루 빠르게 배송을 해주지 뭐예요. 감사감사... 고객의 맘을 알고 끊임없이 변화하려는 기업은 많이 발전하는게 우리사회에 유익하잖아요. 예스24 화이팅!!! 수고하세요. 추신) 어디 칭찬하고픈데 칭찬할 데가 없어 리뷰에 글을 올린 점 용서하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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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난 책벌레였다. 지금은 음악듣기에 열중하지만 어릴 때, 난 집에 있는 웬만한 서적들은 서너번씩을 읽었었지. 친구집에 가서도 나의 책사랑은 멈출 줄을 몰라 몇권씩을 힘들게 빌려오고 했었던 게 엊그제 같은데..난 이제 어쩔 수 없이 책을 멀리하는 재미없는 일상을 사는구나. 시력이 나빠진 이후에는 좋아하는 영화도, 내 흥미를 유발케 하는 시선 머무는 그것에도 지갑을 열 수 없는 현실의 안타까움. 길은 여기에는 사춘기 때 무척 감명깊게 읽어내려갔던 이슬같은 깨끗한 기억이 남아있는 여전한 보석같은 존재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