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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MBC에서 토요일 밤에 하는 《느낌표》의 〈아시아 아시아〉라는 코너에서 네팔 사람들의 사는 모습을 보여준 적이 있었다. 화면은 극빈한 삶을 살고 있는 그들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 주면서 진행자는 그래도 사람들이 스스로 느끼는 행복감은 세계 1위라는 멘트를 했었다. 하지만, 그들이 내보낸 화면에는 이미 문명화된 시각, 혹은 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의 시각이 이미 개입되어 있었다. 아니, 그것을 보고 있던 나 역시도 이미 그러한 시각이 배어 있었던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당시에 내가 가졌던 생각을 『진리의 다른 길』은 조금이나마 바꿔준 것 같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행복'의 개념조차 우리는 너무나 자기중심적으로만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라는 것이다. 이 책은 물론 거기서 범위를 더 넓혀서 우리가 현재 '진리'라고 일컫는 것들에 대한 회의와 그렇다면 어떻게 미래를 꾸려가야 할 것인가에 관한 작자의 연구를 담고 있다.
1. 지식의 한계- 처음부터 브룸필드는 진리라는 것이 대다수의 합의(특히 서구 문명의 합의)로 구성되어 있는 가변의 것이기에 역사나 과학은 한계를 가질 수밖에 없다고 역설한다. 게다가 서구 문명은 그런 것을 인정하려고 하지 않기에 문제가 생긴다고 브룸필드는 말한다. 진리에 대한 착각과 인간 중심적 사고가 문제를 더욱 악화시킨다는 것이다. 진리가 가변적이고, 권위에 의해 복종한다는 생각은 최근 프랑스 구조주의 철학가들이 화두로 제시하여 상당부분 논란이 되었던 부분이라 그렇게 신선하지는 않았다. 특히 서구중심의 관점을 비판한 에드워드 사이드의 『오리엔탈리즘』에서도 이미 그러한 문제 제기가 이루어진 터였다. 특히 역사와 관련된 부분은 얼마 전 읽은 이성시의 『만들어진 고대』라는 책에서 접한 경험이 있었다. 이성시는 에릭 홉스봄의 '전통의 창출' 개념을 빌려와서 서구 문명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 일본에서도 '전통'마저 명확한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만들어진'다는 주장을 담고 있었다. 하지만, 서구 과학, 특히 고전 과학에 대한 비판은 새로웠다.
2. 세계관의 변화와 교육의 중요성 - 서두에서도 언급했듯이 현재 세계의 가장 불합리한 점은 인간 중심적 혹은, 문명 중심적 틀로 세계를 바라본다는 것이다. 브룸필드는 이를 경계하고 공생의 태도를 견지할 것을 권고한다. 게다가 그는 마우리족이나 간디 등의 예를 들면서 그들의 삶의 지혜를 본받기를 주장한다. 현대 의학의 한계를 역설하며 공동체적 개념으로서의 건강을 상정하고, 간디의 비폭력과 슈마허가 제시한 농민들의 삶으로부터 얻는 교훈을 통해 사람 중심의 새로운 정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갈 것을 주장한다. 우리는 탐욕을 버리고 최적의 삶을 위한 부드러운 원칙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너무 부족하지도 너무 지나치지도 않은 중도의 조화로운 지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간디나 슈마허 같은 사람들이 내는 영혼의 목소리는 우리를 이끄는 잣대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론 부분에서 그는 이러한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기 위해서는 교육의 역할이 중요함을 역설하고 있다. 학생들로 하여금 지식의 상호 연관성을 배우게 하고, 스스로의 '내적 지식'을 발휘하여 상상력과 창조성을 끌어내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다양한 관점에서 열린 사고를 하도록 교육하기를 주문하고 있다.
3. 실현 가능성에 대한 의문- 헬레나 노르베리-호지의 『오래된 미래』를 보고 난 후에도 같은 느낌이었다. 이미 우리 사회는 서구 문명이라는 거대한 패러다임 안에 들어와 있는 것이다. 라다크 사람들 역시도 문명의 이기 앞에서 굴복해버린 모습이었고, 더구나 라다크의 어린이들은 이런 상황에서 그들의 부모들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찌 되었건 그들은 급변하는 세계에 적응하지 못한 결과를 낳았으니 말이다. 이 책에서도 그런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물론 어느 정도 그들의 지혜를 배우고 본받을 필요가 있다는 것은 동의한다. 하지만, 변화에 적응하지 못해 뒤쳐진 그들의 삶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 것인가? 다시 앞으로 돌아가서 네팔 사람들의 행복이 과연 이미 문명이 침투해버린 지금 상황에서 가능할까? 게다가, 사랑의 공동체를 건설하자는 브룸필드의 견해는 다분히 이상적이다. 서구 문명에 대한 맹목적인 추종 혹은, 진리에의 맹목적인 복종을 경계하자는 그의 의견은 물론 심각하게 고찰되어야 할 부분이다. 하지만, 프랑스 구조주의 학자들의 한계와 마찬가지로, 그럼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란 도대체 무엇이냐는 물음에는 대답하기가 쉽지 않다는 한계를 그 역시 극복하지 못한 듯이 보인다. 결국은 다시 서글퍼졌다. 이 책을 그저 순순히 받아들일 수 없을 만큼 나 역시 이미 현실에 승복해버렸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브룸필드가 말했듯이 희망은 얼마든지 있다고 믿는다. 다시 한번 최장집 교수가 했던 말을 되씹으며 이 글을 마친다. 역사는 이상과 현실의 끊임없는 투쟁이라고..... [인상깊은구절] 물론 근대 서구 사회가 자신들의 앎의 방법이 제한되어 있다는 명제를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은 일이다. 왜냐하면 서구는 그들의 과학적 방법이 다른 이해 체계와는 질적으로 다른 질서 체계를 갖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인들은 과학이 실재를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창이라고 배웠다. 시간에 대한 단선적인 시각과 과학에 대한 절대적인 믿음이 결합하여 역사란 과거에 고정된 실재, 역사의 주인공들이나 이후의 관찰자들의 어떤 인식에도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라고 쉽게 믿었던 것이다. |
| 우리가 처한 입장에서 생각해 보자. 우리는 동양적 원리들, 상보와 관계의 원칙들을 수많은 순간들의 축적인 전통 속에서 만들면 살아왔었다. 문지방에 기어가는 조그만 벌레를 죽이려다가도 웬지 그러면 안될 것 같은 어쩌면 집단적인 무의식 같은 것을 우리가 그리 오래되지 않는 과거만 해도 가지고 있었다. 나라는 존재의 가치가 세상과 그 속의 사람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중요한 만큼이나 내가 자리한 것으로 인해 나 아닌 다름 사람들에게 해(害)와 악(惡)이 될 수도 있음을 명심했었다. 그래서 항상 내가 그럴 수 있으려니 하는 마음으로 이웃의 실수를 바라보며, 그들의 행복을 같이 기뻐했다. 우리는 자연이었으며, 자연도 우리를 이질화하지 않았다. 그러나, 잘 살게 되고, 과학적인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고 하는 우리에게 행복은 어디로 사라져 버렸나? 왜 우리는 우리 조상들보다 많은 것을 똑바로 알고 있다는 은근한 자만을 가슴에 품고 있으면서도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으며, 왜 이리 힘들며 극심한 괴리감을 느낄 수 밖에 없는가? 단순히 과학이 우리의 중심에 자리잡은 시간인 300년과 그 이전의 시간을 비교하는 것은 어설플 수도 있지만, 가히 우리는 시간 축적이 가지는 엄청난 무게와 질량을 충분히 느껴야 하며, 그 무게가 던져주는 보다 진실된 정신세계와 생활태도를 다시 복원해야 한다. 어느덧 벗어나게 된 그 길로 다시 돌아가기 위한 안내를 이 책을 통해 받아 볼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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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에도 수많가지 길이 있다고들 한다. 물론 지식으로 가는 길은 무궁무진하다. 허나 지금 세상에 지식으로 가는 길은 남들이 개척해 놓은 길. 몇가지 밖에 없다.
이책에서 다루는 것 또한 새로운 길이 아닌 그저 다른 길일 뿐이다. 내용면에서보면 아주 가슴에 와닿고 '흐음' 이라는 탄성이 조금씩 새어나오나 새로운 길은 아니다. 책의 제목과 같이 그저 지식의 다른 길 을 적었을 뿐이다. 헌데 참 편하게 읽을 수 있다. 책의 재질이 조금 색달라(허접함?) 책의 내용과 어울린다. 물론 책의 내용이 고급스러우면 고급스러운 재질로 된 책을 읽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 허나 이책처럼 책의 내용과 책의 재질이 어울리는 책은 보지 못한 것 (살아온 생, 읽어온 책이 작아서..)같다.
한권 구입해 두고두고 읽어도 읽을 때 마다 색다른 느낌과 생각을 하게 만드는 책이다. 지식의 길이아닌 지식의 다른길이라서 그럴지 몰라도 딱!딱! 박혀있지는 않은 책이다. 편하게 읽을 수 있고 남들에게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책[지식의 다른길]
과거와 현재. 미래. 지도자. 과학 등등 수많은 이야기를 펼쳐놓았고 절묘한 짜임새로 만들어진 책이며 진정 지식의 다른 길이다.
2003년도에 구입하였고 아직도 책을 알고 있다면 내가 이책을 마음에 들어한다는 것. 그래서 다시금 읽을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