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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스 안에 처박아 둔 책들을 좀 뒤져 보니, 그래픽 노블로는 마침 이것과 '더 리그 오브 익스트라오디너리 젠틀먼(2003년작 영화 '젠틀맨 리그'의 원작)이 눈에 띄었다. 이 책을 구입할 당시에는 그런 걸 전혀 신경쓰지 않았는데, 지금 앨런 무어의 서문(과 다른 서지 정보)을 보니 이게 1981년작이었다. 나로서는 상당히 의외였다. 딱히 그 시대적 배경을 염두에 두고 작품을 음미한 적은 없지만, 제법 예전 연도의 산물이거나, 아니면 탈냉전 탈이념의 구도가 완전히 굳어진 1990년대의 '자식'이라고 생각했는데(따라서 영화 제작 연도와도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1980년대라면 정확히 이런 류가 나올 법한 시대배경과 일치하기 때문이다. 그게 정상이지 뭐가 이상하냐고? 그건 그렇지. 허나 나로서는 이 작품 특유의 익센트릭함이, 자신의 출신 배경과 묘한 엇박자를 이루는 타이밍상의 미묘함에 있다고 항상 느껴 왔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작품이, 시대를 초월하는 보편성(좌파적 보편성이긴 하지만)을 획득하는 것이고 말이다. 보편성이라는 말이 마음에 안 드는 이는, '초딩성'으로 바꿔 받아 들여도 좋다. 그래픽 노블이라는 장르에 대한 폄하와는 아무 상관 없이, 이 작품의 위대함은 바로 그 '초딩성'에 있기 때문이다. 지금 내가 예스에서 상품 검색을 해 보니, 시공사에서 번역해 낸 한국어판도 시중에 나와 있는가 보다. 요즘은 워낙 시장의 다양성과 볼륨이 예측 못 할 속도로 확대되고 있는 중이라, 이제 이처럼 무엇무엇이 굳이 해외 외출이나 아마존 따위를 거칠 것 없이 모국어의 외피까지 덮여 있는 채로 입수 가능한지 일일이 업데이트, 혹은 구체적으로 확인 못 하는 것도 별로 부자연스럽지만은 않다. 한국어판에 저 무어의 서문까지 다 잘 번역되어 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영문판은 (당연히) 무어의 창조주적 고뇌와 컬러풀한 입김이 물씬 느껴지는 서문이 실려 있어, 작품의 역사적 독해까지(그게 굳이 필요하다면) 가능하게 해 주고 있다. 그는 "대처 수상(얼마 전에 죽었다)이 제 3기 집권을 향해 진입하며, 보수의 가치는 다음 세기에서도 그 호흡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라며 강변하고 있고, 타블로이드 신문은 에이즈 환자를 수용소에서 관리할 것(영어로 수용소라고 하면, 나치의 유태인 수용소라고 할 때 그 단어 컨센트레이션 캠프라는 어구를 언제나 사용한다. 따라서 직접적으로 반 나치 정서를 청자에게 환기함)을 주장한다."며, 자신이 살고 있는 '람보의 시대'의 질식할 것만 같은 숨막힘을 토로하고 있다. 이런 말을 굳이 하지 않아도 작품은 제 할 말을 풀 익스텐션으로 독자에게 전달하는데 성공하고 있지만, 그의 이런 육성을 들으니 자못 비장감이 더하는 효과는 있다. 뭐 그 정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