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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짧은 소설은 불륜을 소재로 하지만 불륜이 옳은지 그른지 따지기 위해 쓴 책 따위가 아니다. 불륜은 인간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는 어떤 특질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소재일 뿐이다. 예나 지금이나 인간들은 항상, 어디서나, 누구와든 징글맞게 불륜 행각을 벌였다. 소설의 두 주인공 안나와 구로프처럼 우리 둘은 참 특별한 사람이고 우리의 사랑은 둘도 없을 갸륵한 사랑이라고 단단히 착각하면서. 그러나 책을 읽는 모두가 알고 있듯이 두 사람은 지극히 세속적이고 또 평범할 따름이고, 둘의 사랑은 모든 조건들이 우연히 맞아 떨어지면서 시작된 미친 우연일 따름이다.
선택의 기로에 놓인 두 연인은 이제껏 보여주었던 한심한 태도를 버리고 과감해지기만 한다면 행복에 다다를 수도 있겠지만, 체호프는 짖궂게도 골 아프게 고민만 하는 두 사람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이야기의 종결을 한없이 유예해 버린다. 일생일대의 관문 앞에만 서면 꼭 무너져내리는 우리의 모습처럼. 분명히 내 얘기가 아닌데 내 얘기 같은 이야기를 만나고 싶다면 안나와 구로프의 한심한 사랑 이야기를 한번 읽어보시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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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호프의 작품들은 연극을 보게 될 때마다 찾아 읽었던 것 같다.그래서인지 여러 작품을 읽기는 했으나 '체호프'를 떠올려 볼 때 무어라 말을 해야 할지 망설여졌나 보다.물론 '단편'을 아주 재미나게 쓴다는 것과 대부분의 희곡작품들이 아주 재미있다는 것은 알고 있지만 말이다.펭귄에서 출간된 '사랑에 관하여'단편집을 통해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었다는 것을 알았다.'사랑'에 관한 여러 색깔의 이야기였던 것 같은데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에 대한 감상이 없다.어쩌면 '불륜'이란 시선으로 읽었던 것은 아닌지...해서 이렇게 오롯하게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만으로 대하고 보니 뭔가 선명하게 보이는 것들이 생겼다.우선 결말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톨스토이는 이 작품에 대해 혹평을 했다는데...나는 결말이 너무도 인간적이라 마음에 든다.그들의 삶이 행복할지,불행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르니까 말이다.
15쪽
"(...) 조금만 지나면 해결책을 찾아 새롭고 아름다운 인생을 시작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두 사람 다 분명히 알고 있었다.끝은 아직 멀고도 멀었다는 것을,그리고 가장 복잡하고 힘겨운 일이 이제 막 시작되고 있다는 것을" /59쪽
'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 속에 등장한 일러스트 가운데 가장 마음에 든 그림이었다.늘 그렇지는 않지만 민음사에서 출간되는 고전의 그림은 소설 속 내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있다는 느낌을 받을때가 있는데,'개를 데리고 다니는 여인'을 읽으면서 내가 상상한 소설의 느낌과 드미트리,그리고 안나의 모습이 저 일러스트에 가장 가깝다고 느꼈기 때문인것 같다.게다가 저들이 서로 막 사랑을 시작했을 때는 서로의 모습을 온전히 보여주려 하지 않는 듯한 느낌으로 해석이 되었고,결말로 이어질때는 흰색으로 비워져 있는 색깔이 어떤 식으로든 채워질지도 모른다는 상상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가 없었다면 불륜도 사랑일까? 라는 관점으로 바라봤을 텐데.그림(?)덕분에 안나와 드미트리의 사랑이 왠지 측은해 보였다.드리트리가 고백한것처럼 규범 속에서 살아가는 공적인 삶이 있다면,오로지 나만의 삶도 있어야 하지 않을까에 대한 절규처럼 느껴졌다고 해야 할까.. 누군가는 항변할지 모른다? 가정이 행복하지 않다고 원치 않는 남자와 결혼을 했다고 모두가 다 이탈을 생각해야 하느냐고? 그러니까..그런 질문은 그냥 각자의 몫으로 생각해야 겠다.잘못이라면 안나도 드리트리도 사랑을 너무 늦게 알게 된 것일뿐일테니까. 일러스트를 그린 하비에르 사발라의 '여인들에게 바친다는 말은 그래서 더더 공감이 가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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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년 전에 이 소설을 읽었다. 오래전에 읽은 책이 늘 그렇듯 흐릿한 기억이라 다시 떠올려 볼 겸 다시 읽었는데 완전 새로운 소설 같았다. 11년 전에 쓴 리뷰를 살펴보니 불륜 이야기에 실망을 했다면서 불륜이지만 ‘인간의 진실을 찾아서 간다는 게 마음에 들었다.’란 내 리뷰를 보면서 경악했다. 25살 때 읽은 이 단편은 그때는 이렇게 다가왔는지 모르지만 37살에 애 둘을 아줌마의 시선으로 본 불륜은 완전 다르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굳이 정정하자면 인간의 진실이라기보다는 모든 걸 헤쳐 나갈 용기를 지닌 마음의 진실이라고 해야겠지만 말이다. 어디선가 들었다. 평생 한 사람을 사랑하며 사는 게 쉽지 않은 일이라고. 부부는 의리로 사는 거라고. 결혼 5년 차에 접어드는 나는 벌써 그 말을 이해하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다른 사람을 사랑하고 싶어서, 의리가 아닌 사랑을 위해 불륜을 저지르는 용기는 없다. 아마 스스로에 대한 도덕적 판단을 수긍하지 못해 내 스스로가 말라버릴 것이다. 거창하지만 불륜에 찬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적어도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있다면 배우자에 대한 예를 갖춘 후에 새로운 사랑을 찾아야 한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두 남녀의 사랑이 곱게 보이지 않았다. 서로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고 볼 수 없었기에 진부한 삶 속에서 하나의 빛처럼 서로가 운명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서로의 가정을 배신한 채 이루어지는 만남에는 어떠한 동의도 할 수 없다. 설령 그들의 결혼 생활이 불행하고, 이제야 제대로 된 배우자를 만났다고 하더라도 그것으로 불륜을 정당화 할 수 없다는 생각이 확고했다. 그렇더라도 이런 가정을 해보게 된다.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이 현실에 나타난다면 내가 어떤 선택을 하게 될지에 대해서 말이다. 분명 한번쯤 마음이 흔들릴 것 같기도 한데 나는 분명 마음을 숨길 것이고 절대 행동으로 옮기지 않을 것 같다. 내 인생과 가족 구성원으로서의 인생을 나눠본다면 둘의 균형이 적절할 때 원만한 행복이 그려진다. 하지만 그런 균형이 맞춰질 때만 행복한 것도 아니고, 나에게 꼭 맞는 사람이 나타나기만을 기다리는 것도 능사가 아니다. 그런 운명적인 만남이 있어 결혼을 했다면 더 할 나위 없겠지만 어떤 사랑이 되었든 유지하고 지켜가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이 소설 속의 두 남녀의 사랑이, 둘이 꼭 함께 해야 행복하겠다는 절절한 마음이 들지 않았다. 삶의 권태와 배우자에 대한 회의감으로 가득 찬 그들에게 서로를 발견한 사실만으로도 인생의 희망이 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서로를 만나기 전의 삶도 결국은 그들이 선택한 인생이다. 이상하게 이들에게는 그런 책임과 예의가 따를 때 서로의 존재를 인정해 주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하지만 저자는 그들의 앞날이 혼란과 답답함으로 절정에 이르렀을 때 소설을 끝내 버린다. 모든 판단을 독자에게 넘겨버리는 저자가 영리한 건지 무책임한 건지(저자가 불륜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구분이 되지 않을 정도였다. 저자가 이끌어가는 결론을 독자가 지켜보는 게 아닌 ‘네가 이 소설의 주인공이니, 알아서 하라’는 듯이 끝내 버려서 나도 모르게 ‘헉!’ 소리를 내 뱉었다. 그럼에도 그들의 다음이 상상이 되지 않고, 상상하기도 싫은 내 모습에 그냥 있는 그대로 유보시켜 놓기로 했다. 알아서 개척해 가겠지 싶은 마음도 들다가도, 엄청난 혼란에 시들해져 버렸을지 몰라 하는 마음의 갈래에서 결국은 회피해 버리고 싶었다. 현재를 사랑하기에도 벅차고, 내 옆에 있는 사람을 사랑하기에도 버겁다는 이유 때문이라 여겼다. 그만큼 현재의 사랑에 충실하면 어떤 상황이 오더라도 내 판단은 확실해질 테니까. 이게 이 소설을 읽은 나의 결정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