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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는 인물이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담임선생님, 지금 어떻게 지내고 계실까? 어렸을 적 크면 다시 찾아보고 싶은 선생님 중 한명이 바로 그 분이었다. 당시 연세가 꽤 되셨으니 지금 살아계신다면 일흔이 훨씬 넘으셨을 텐데, 언젠가 섬으로 가셨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 후 더 이상의 소식을 듣지 못했다. 특별히 그 선생님이 생각나는 이유가 뭘까? 사실 워낙 어렸을 때라 그 선생님이 내게 어떻게 대해 줬는지도 제대로 기억나지 않는다. 단지 굉장히 인간적이었던 느낌이 어렴풋이 난다. 당시 워낙 개구쟁이였던 난 학교에서도 사고를 많이 치고 다녔다. 그래서 그 분께 귀뺨을 맞은 기억도 난다. 그렇지만 아이들을 대할 때, 그 분은 차별을 두고 대하지 않았다. 또 집에 가정방문을 오신 적이 있는데, 시골이라 부모님은 밭일을 나가시고 내드릴 것이 없어 냉수 한 잔 드렸어도 쭉 들이켜고 가셨다. 그리고 날 데리고 구멍가게에서 아이스크림을 사줬던 기억이 난다. 사실 특별히 이 분께 인생의 나침반이 될 만한 무언가를 배웠는지도 모르겠다. 왜 이 책을 읽으며 이 분이 기억났는지도 의아스럽다.
소설은 주인공을 놓고 그녀와 접한 사람들이 그녀를 바라보는 시각으로 진행되어 나간다. 소설 속 그녀는 모든 이들에게 매력적인 인간이다. 그녀와 가까이 한 이들은 모두 그녀에 대해 호감을 느낀다. 이는 그녀가 하는 행동을 보면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녀는 부모를 일찍 어린 자신에게 춤으로서 희망을 준 그를 찾아 머나먼 이국땅까지 왔다. 하지만 호세는 에이즈라는 엄청난 병에 걸려 힘겹게 병마와 싸우며 죽을 날만을 기다리며 지내고 있다. 그런 그를 위해 그의 소원이기도 하고 보고 싶어 하는 어머니가 사는 고향 땅 마이에미로 가기 위해 전혀 알지 못하는 땅에서 차를 구해 뉴욕에서부터 머나먼 여정을 떠난다. 단순히 소설 속 내용으로만 보면 아름다운 우정에 관한 이야기로 보일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상황이라면 어떨까? 에이즈란 병, 일반 병과 달리 사람들이 이 병에 걸린 사람들 근처에는 가까이 가기를 꺼린다. 그런 그를 교코는 전혀 거리낌 없이 대하고 그를 위해 최선을 다한다. 어렸을 적 어두운 자신에게 희망을 줬다는 이유로 말이다. 만약이라는 말이 우습지만 나라면 과연 그랬을까? 모르겠다. 쿄코와 같은 경험을 한 적이 없기 때문에 노코멘트하겠다.
에스페란사, 과연 희망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까? 도대체 이것이 무엇이기에 교코는 일본에서 머나먼 미국까지 갈 생각을 했을까? 사람을 살게 하는 힘, 그렇게 부르면 되려나? 위대하다. 한 사람을 변화시킬 수 있고 살릴 수 있는 힘이 있다. 그러기에 교코 역시 그런 희망을 전해 준 호세에게 감사한 마음을 전하기 위해 죽어가는 그를 위해 무엇이라고 하려고 한 것이 아닐까. 그것이 그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한 것 같다. 희망을 갖고 사는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도 그 영향력을 미치나 보다. 그렇기에 그녀를 만난 모든 사람들이 그녀를 보고 어떤 긍정적 힘을 느끼지 않았나 싶다. 희망은 그런가 보다. 호세 자신은 몰랐겠지만 자신이 누군가에게 가르쳐 준 작은 것 하나가 그에게는 삶을 버틸 수 있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이 될 수 있다. 결국 호세 역시 죽기 전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 같지만. 사람에게 이처럼 희망은 중요하다.
나한테도 그런 마음이 있어야 하는데, 갈수록 왜 나약함만 들까. 희망을 품고 사는 이가 되어야겠다. 부정은 현실 그 앞을 보지 못하게 한다. 그런 마음은 계속 들수록 좌절만 되고 자꾸만 넘어질 것 같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긍정이라는 힘을 내포하고 있는 희망을 가져야겠다. 소설 속 인디언 주술사는 미래를 현재에 있는 것이 없어지고 새로운 것이 만들어지는 것이라고 말했다. 나란 사람은 실체도 보이지 않는 현실에 무언가를 잡고 놓치지 않기 위해 산다. 이제 그런 거 다 놓고 보다 나은 나를 만들어 나가고 싶다. 모르겠다. 미래가 뭔지도 사실은 모르겠다. 하지만 희망은 그 미래를 만들어 나가는 힘이 된다고 믿는다.
끝으로 편견을 갖지 말아야겠다. 여기 나오는 에이즈 환자를 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나를 보게 된다. 나 역시 그런 편견으로 가득한 사람이 아닐까. 깊은 고뇌 속에 내 안에 있는 뿌리 깊은 그런 마음들을 없애야겠다. 힘들지만 노력해야지. 그런 자세, 그런 마음. 따뜻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 꼭 필요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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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 세미나를 위해 서울행 새마을호 기차에 몸을 실었다. 어제 마신 술로 몸은 무거웠지만, 차장 밖으로 지나치는 여름의 짙은 녹음에 마음이 약간 들뜬다. 창문 옆으로 스치는 그 짙은 여름이 진짜일까하는 의심마저 들었다. 짙은 녹음을 내뿜는 여름날이 너무나 아름다와 보인다. 차창 밖으로 보며, 어울리지는 않지만 <비스티 보이즈="">의 음악을 들었다. 이 악동들의 앙앙거림은 오랜만에 들었던 터라 마음이 즐거워 진다. 그리고나서 [인상깊은구절] "미래는 지금, 이미 벌써 당신의 손에 있다... 길 위에 있을 때만 미래가 있다." 나는 지금부터도 어딘가를 향하는 길 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교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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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성면에 있어서 이미 널리 퍼진 형태인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그 글이 나온 시기를 볼 때 글 속에 등장하는 각각의 인물들의 시선으로 바라본 교코의 모습을 묘사한 것은 참 신선했습니다. 토파즈는 각각의 인물들이 비슷비슷한 일들을 겪으면서 어떤 형식 - 앗 !!? 생각이 안 나네요. - 을 따라서 죽 묘사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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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표지가 달랐다. 동화책같이 예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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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춤이라고는 고등학교 1학년때 예술제 준비를 하면서 안움직이던 몸을 놀리던 기억밖에 없고, 이사도라 덩컨이나 하물며 프리츠라(만화 '스바루'에 나오는 최고의 발레리나)의 전위적인 춤을 보면서 가슴이 덜컹 거렸던게 전부이다. TV를 틀면 나오는 잘나가는 가수들의 현란한 몸짓은 그저 'dance려니...'했다.(춤과 dance의 뉘앙스의 차이는 실로 엄청나다!) 그러던 나에게 한마리 나비같은 교코가 호세를 아냐고 물었고, 나는 뉘엇뉘엇 동쪽을 가르켰다. 내일 아침 해가 뜨는 곳으로.
댄서이자 트럭운전수이자 일본인 소녀 교코는 어릴 적 기억속의 친구를 찾고 있다. 이것이 소설의 전부 이자 내용. 결국 친구를 찾느냐? 대답은 yes or no. 친구를 찾으러 미국이란 나라까지 물건너 온 교코는 많은 사람들을 만난다. 어찌보면 이건 교코와 그의 주위를 둘러싼 몇몇 사람들의 이야기인지도 모르겠다. 아주 따스하지도 그렇다고 천박하지도 혹은 차갑지도 않은 낯선 뉴욕의 거리. 무라카미 류는 자신의 소설 속 주인공에게 언제나 가공할만한 용기 보따리를 선사하곤 한다. 무모하리만치 한가지 목표만을 안고 뉴욕으로 떠듬떠듬 찾아온 교코가 놀라웠다. 부러웠다. 열정을 간직한채로 살아가는 건 얼마나 황홀한 삶일 수 있을까? 혹은, 슬픔일까. 교코의 나지막한 음성이 들리는 듯 헀다. 한편의 로드무비인 이 소설은 시종일관 교코를 중심선에 놓고 그 주위를 동그랗게 에워싼 사람들의 시점으로 이야기를 펼쳐 나간다. 점점 원의 중심으로 다가가는 소설의 전개는 교코와 그의 친구 호세의 우정이 얼마나 애틋했었는지 보다는, 소녀 교코의 땀과 노력 그리고 열정과 순수함에 좀 더 초점을 맞추고 있는 듯 하다. 그리고 호세.
호세 찾아 삼만리를 하며 교코의 곁을 떠나지 않는 것 한가지는 바로 '춤'이었다. 어릴 적 자신에게 춤을 가르쳐준 호세, 오래 전 잊고있던 나의 꿈이 떠올랐다. 아직 놓아버리지도 그렇다고 누구에게 꺼내보이지도 못한 나의 예술에 대한 열정. 교코는 마치 분신같았다. 작가, 혹은 어떤 댄서 소녀, 혹은 세상 사람 누군가, 혹은 우리 자신.
사람은 누구나 저마다의 꿈을 안고 살아간다. 치열하게 하루하루 살아간다. TV청소년 드라마에서 주임이 학생에게 "이 쓰레기 같은 자식!!"이라고 말할 수 있을 만큼의 진짜 '쓰레기'인 인생은 하나도 없다. 얼마나 절박한 삶인가, 얼만큼 절실한가, 열정의 양은 저 태양과 비례하는가.
이제 이 리뷰의 제목의 답을 할 수 있겠다. 춤은 아무나 추나? 그런걸 나한테 물어보면 안되지. 그러나 이렇게 어리숙하고 미더운 나라도 대답할 수 있는 것 하나, 세상에 존재하는 온갖 형태의 예술은 모짜르트만 하는 게 아니라는 말씀. 가령 그것이 벙어리 여가수의 노래소리라 해도 예술, 이 마음의 진동에 다가오는 방법은 세상 사람 누구나 가지고 있다는 말씀.
교코를 읽으며, 역시 여름이었던 것 같다. 아니, 혹은 겨울? 나름대로 절박한 계절속에서, 치열한 삶, 교코. 아주 좋은 기억으로 이 내 가슴속에 남아 있게 됐다. 오늘 한번 더 그녀를 만나고 싶다. [인상깊은구절] 댄서는 본능적으로 살이 찌는걸 싫어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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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으로 무라카미 류는 천재라고 생각한다. 그의 소설적 재능 뿐만 아니라 영화감독, TV 프로그램 진행자, 여러방면에서 박학다식하며 다재다능한 모습을 보여주는 그가 너무 부럽다. 흔히 류의 소설엔 섹스, SM, 마약들이 꼭 등장한다고 기대(?)하는 독자가 이 책을 선택했다면 과연 실망을 했을까? '교코'에는 류의 공동적인 코드였던 것이 전혀 등장하지 않은 순수한 작품이다.
'교코'는 영화로 만들어 지기도 했으며(물론 본인이 직접 감동을 맡았다) 류 소설의 절정을 보여 준 수작이다. 각 장의 타이틀이 등장인물들의 이름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동시에 화자가 바뀐다. 이렇게 화자가 계속 바뀌면서도 자연스럽다니 놀랍다. 역시 그는 천재였다. '교코'를 읽기 전엔 무라카미 류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제발 삼가 하길 바란다. [인상깊은구절] 옛날부터 나는 조금이라도 걱정거리가 있으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될 정도로 마치 세계가 무너져내리는 듯한 불안에 사로잡힌다. 아마도 부모를 일찍 여읜 탓인거 같다. 세계는 언젠가 갑자기 무너져내리는 것, 나도 모르는 마음 깊은 곳 어딘가에서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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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류의 소설은 처음 읽은 것 같다. 다른 작품들을 아직 읽지 않아 섣부른 판단을 하면 안되겠지만, 일단 이 <교코>를 읽고 무척이나 감동했고, 삶에 에너지를 공급받은 기분이었다.
맛있는 책이라고 표현한 것은 책의 내용이 짧았기 때문이다. 달고 맛있는 음식은 먹고 나면 배고픔과는 상관없이 감질나고 더 먹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이 작품 <교코>도 그랬다. 여행갔다오면서 차안에서 읽은 책이었기에 더욱 그랬는지도 모른다. 장편소설이라고 쓰여져 있긴 하지만 단편소설로 분류하고 싶다. 그만큼 짧은 내용 안에 여러 가지 생각을 차곡차곡 예쁘게 담아놓고 있었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의 소설은 보는 이를 재미있게 만들어준다. 그리고 이 작품의 백미라 할 수 있는 다중 1인칭 관찰자 시점은 한 인물 교코에게로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어있다는 점에서 더욱 특별하다. 교코는 아이돌격 존재는 아니다. 하지만 평범하면서도 구원을 받은, 한명의 반짝이는 존재로서, 더욱 부각되는 것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가는 이는 주변의 사람들을 감동시킨다. 말로서 설득하거나 열심히 증명해서가 아니라 그 사람의 행동 그 자체가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키게 되는 것이다. 비록 실제로 교코와 같은 인물을 주위에서 찾기는 힘들지만, 신빙성이 높은 이야기로서 희망을 갖게 해주는 것이다. 비록 교코의 여행이 아주 행복한 결말을 얻지는 못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교코가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많았다고 할지라도, 교코는 자기의 주관대로 행동을 했으며, 자신을 구원한 호세에게 자기가 할 수 있는 마지막 선물을 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비록 쓰러져가는 패배자의 삶일 지언정, 자신이 베푼 덕행. 자기가 하고 싶은 일을 남과 공유하고 이를 전파시킨데 대한 보답을 받고 죽은 호세 또한 교코가 찾아와준 것에 대해 책망할 수 없었으리라.
내용이 짧았던 게 무척이나 아쉽다. 일단 이 작품을 시작으로 무라카미 류의 작품들도 돌아볼 생각을 갖게 되었다. 짧으면서도 완성도가 높았던 작품 교코, 2002년에 읽은 책 중 베스트로 꼽을 수 있을 것 같다. [인상깊은구절] 일본 여자가 쿠바의 춤에 기쁨을 느낀다니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일이다. 소중한 옛 친구라고, 랠프가 그녀에게 호세라는 존재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 이야기해 주었다. 지금 교코는 호세를 위해서, 나에게 모욕당한 호세의 명예를 회복시켜 주기 위해서 춤을 추고 있다. 나는 사실을 이야기해 주어야 하는가?교코>교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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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제가 일본소설을 처음 접해보면서 읽은 책인데요 처음에 읽었을 때는 당연히 작가가 여자일 거라고 생각했을 정도로 필체같은게 섬세하달까 그런 느낌이에요. 그래서 전 무라카미 류가 굉장히 순수한 필체로 글을 쓰는 사람인 줄 알고 다른 책들을 읽고는 놀랄 수 밖에 없었답니다. ^^ 아시는 분은 아시다시피 무라카미 류의 다른 대부분의 책들은 잔인함과 노골적인 성적 묘사가 많이 나오고 에세이같은 경우도 엄청 직설적이거든요. 이 책의 특징이라면 작은 제목마다 화자가 다르다는 거 같아요.
그래서 첨엔 무슨 내용인지 의아했는데 읽다 보니깐 각각의 사람이 이 책의 주인공인 교코에 대해 쓴 거더라구요. 이런 전개방식도 특이하고 신선했지만 이 소설의 매력은 무엇보다 교코가 이 소설에서 굉장히 매력적인 인물이란 거 같아요. 동양인 여자로 자신에게 춤을 가르쳐준 호세란 인물을 찾아 다니는 과정은 정말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구요 나중에 호세는 에이즈 환자로 죽음을 맞이하게 돼지만 슬프다는 생각보다 감동적이란 생각이 더 많이 들더라구요. 다른 무라카미 류의 작품이랑은 좀 다른 류의 작품이지만 그래도 전 이 책을 읽고 무라카미 류의 팬이 되버렸답니다. ^^ [인상깊은구절] 미래는 지금, 이미 벌써 당신의 손에 있다. 그 의미를 알 수 있었다. 나는 여태 어딘가로 향하는 길위에 있었다. 지금도 그렇고, 뉴욕에 왔을 때도 정말 그러했다. 어딘가로 향하는 도중인 것이다. 옛날에는 그것이 피로하고 초조했지만 이제 괜찮다. 길위에 있을 때만 미래가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부터는 어딘가를 향하는 길위에 놓여 있을 것이다. 길위에 있는 자는 안정감이 없고 늘 불안하지만 아마도 어떻게든 되어갈 것이다. 호세가 가르쳐준 댄스가 마치 살아 있는 생물처럼 내 몸속에 들어 있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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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교코(Kyoko) - 무라카미 류 기지촌에서 살던 8살짜리 여자아이가 그 부근의 미군을 만나 춤을 배웠다. 일찍 부모를 여읜 숙부손에 자란 여자아이가 무엇이 그리 힘들었을까냐만은, 우연찮게 접한 그 춤, 차차차, 룸바, 등등의 쿠바의 전통 춤들을 배운 어린 소녀에게 그것은 구원, 그리고 희망이었다. 그렇게 선물받은 자신의 이름이 세겨진 발레슈즈를 다 큰 성인이 되어서도 간직한채, 오로지 하지 못한 감사의 인사를 전하기 위해 미국행을 택한 그녀. 그것이 이 이야기의 시작이자, 끝나지 않을 여정이다. 무라카미 류의 에세이를 읽고 흥미를 느낀 나는 그의 소설을 집어들었다. 그의 에세이에서 유독 자주 등장했던 이 책은, 장편소설이라는 이름에 무색하게 책 자체만으론 읽기 쉬운 장편소설이다. (단편이 우스우리 만큼 얇은 두께다.) 이 책을 다 덮은 후엔, 여느 동화 속 이야기나 다른 소설들처럼 어떠한 엔딩이 정해져있지 않다. 물론 어떤 이야기의 시작이 있다면 끝이 있고, 대체로 그 끝은 독자들의 마음을 편히 하기위한 또한 원성을 듣지 않기 위한 포장된 해피엔딩이다. (->바로 이것때문에 사람들은 현실에서 굉장한 상처를 얻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책에서는 지극히 현실적인 경계와 모험에서 공감대를 불러일으킨다. 물론 교코라는 여성 캐릭터가 굉장히 자존적이고, 독립적인 캐릭터라는 점에서 존경스럽기까지하다. 하지만 이 책에서 내가 느낀건, 이 여정에서 만난 이들의 관점적인 시각에서의 현실과, 그들에게 닥친 지극히 현실적이고 동화스럽지 않은 일들, 그리고 끝나지 않은 이야기까지. 춤에 대한 깊은 묘사와 함께 깊이를 느낄 수 있는 세세한 표현법에 나는 류에게 감탄했다. 또한 인종적시각, 그리고 민감한 성적인 부분까지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아무렇지도 않게 서술해나가는 것을 보면서, 또 다른 그의 소설이 궁금해지기까지 한다. 이 책에서 미래에 대한 그리고 춤에 대한 철학적 의미가 마지막에 등장하는순간, 그래, 어쩌면 교코가 그 춤이라는 자체가 왜 그녀자신에게 구원이었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또한 가장 감명깊었던 것은, 호세(바로 그 춤을 알려준 장본인)가 바이러스처럼 이 어린 일본소녀에게 자신의 춤을(더 깊게들어가면 쿠바전통춤이 되겠지) 남기고 갔다는것에 대해 느끼는 장면인데, 이 책을 원작으로 영화화가 됐다던데, 기회가 되면 꼭 봐야겠다는 생각이다. 어쨌든, 끝나지 않은 그녀의 여정과, 앞으로를 위한 나의 여정을 위해. 멈추면 미래는 없다는 이 책을 쓴 류에게 건배를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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