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을 통해 붉은 수수밭을 본 후, 다시 영화를 보았다. 열권의 책보다도 한편의 영화라더니, 정말 이 작품의 경우, 책 보다는 영화가 더 감동적이었다. 물론 더 진한 감동을 얻기 위해서는 책을 먼저 읽고, 영화를 보아야겠지만, 어찌되었든, 영화가 훨씬 감동적이었음을 말하며, 위진아오(할아버지)라는 인물을 들어 짧은 감상문을 적어본다. 위진아오(할아버지)는 책속에서는 영웅으로 그려졌으나 영화 속에서 매우 인간적으로 그려졌다. 제일 먼저 가마를 들고 가는 할아버지의 모습은 소설과 별다를 바가 없다. 노래를 부르면서 흥겨워 하는 모습은 마치 어린 아이 같다. 그런데 가장 큰 차이를 보여주는 장면은 바로 도적이 나오는 장면에서다. 소설 속에서는 총이 있는데도 겁 없이 도적을 향해 마구 걸어갔지만 영화 속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한다. 바닥에 앉아서 주얼의 눈치만을 살폈다. 도적이 등을 돌리고서야 비겁하다면 비겁하다고 할 정도로 뒤를 덮친다. 그리고 주얼의 눈치를 다시 살핀다. 이 모습에서는 소설 속에 보았던 영웅적 기질은 전혀 없다. 그리고 술을 먹고 주얼을 찾아오는 첫 장면은 주인공에 대한 실망감을 던져 준다. 소설을 먼저 본 나는 남자 주인공이 나중에 사령관이 되어야 할텐데 어찌 저런 모습을 보일까 하는 생각을 했기 때문에 실망감이 먼저 든 것이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았다면 이것이 가장 사실적으로 인간 심리를 묘사한 것이 아닌가 한다. 그리고 다시 주얼이 도적에게 잡혔다가 풀려나자 그는 도적의 두목을 찾으러 달려간다. 그리고 그 두목과의 대결에서 그는 영웅이라기보다는 분노를 참지 못해 무작정 일을 저지른 한 남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구차하게 생명을 구걸하는 장면과 머리 위에서 총성이 울리자 두 눈을 질끈 감고 숨죽이는 주인공은 소설과 매우 대조적이다. 이 장면은 소설 속에서 위진아오 사령관이 런부관을 향해 총을 쏘는 장면과 매우 흡사하다. 그러나 소설 속의 런부관은 머리 위에 총알이 날아오는 것은 신경도 쓰지 않는다. 심지어 콧노래를 부르고 길가에 있는 꽃을 꺾어 향기를 맡아보기까지 한다. 나는 이 두 장면에서 어디에 박수를 보내야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소설 속의 장면은 영웅이라는 것, 즉 중국의 전통적 소설 양식에 따르는 데에서 생겨난 일종의 과장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면에서 나는 영화 속에 나오는 주인공의 행동이 더 사실적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시 장면을 바꿔 할아버지가 주얼을 찾아가 행패를 부리는 곳을 보자. 이 장면은 소설 속에 나오지 않는다. 이 영화가 소설과 다르다는 점을 알기 위해서는 반드시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주인공은 여기에서 고량주에 오줌을 누기까지 한다. 그리고 나중에 주얼을 안고 방으로 들어간다. 이 부분에서 우리는 무엇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단지 고량주에 오줌을 섞으니 맛이 좋았다 라는 것보다는 우리가 만약 그 상황이었다면 그렇게 행동하지 않았을까 하는 것을 상상해야 하지 않을까. 다시 시간이 지나서 라오한의 복수를 다짐하는 곳으로 가 보자. 여기에서는 앞서 말했듯이 영웅적 기질이 보인다. 그러나 이것은 영웅적 기질이라기보다는 분위기에 휩쓸려 불타는 인간성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이라고 할 수 있는 일본군과의 전투 장면과 죽어 있는 주얼을 보는 장면을 보자. 이 부분에서 주인공은 소설과 너무나도 다르다. 소설 속에서는 군대를 지휘하고 사격의 일가견이 있는 주인공으로 그려지지만 영화 속에서는 무작정 돌격했다가 주위 모든 사람들이 희생당하고 아들과 함께 유일하게 살아남은 힘없는 인간일 뿐이다. |
| 살아가면서 무엇이 옳고 무엇이 그른가는 어쩌면 정해지지 않은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삶에 모범답안에 억매여 있지만 한번쯤 의심을 해봐야 할 것들이라는 생각이 든다. 할머니가 위 사령관을 선택한 것은 그 시대에 약간은 빗겨진 선택일지 모른다. 하지만 삶에 선택에서 우선적으로 이루어져야 할 것은 자신의 솔직한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삶의 도덕이라는 것은 반 정도는 다른 사람의 눈을 통한 가치 판단일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개인의 고뇌와 상황을 정확히 고려하지 않은 눈을 통한 것이라는 말이 된다. 그것에서 조금 자유로워도 되지 않을까? 사람들은 할머니가 위 사령관을 선택한 것에 대해 아버지를 통해 비꼬는 부분이 나온다. 이것 역시 그들은 그녀가 아니기 때문일 것이다. 마지막에 할머니가 위 사령관의 아이를 낳은 것에 대해 그것이 자신이 저지른 죄일까 하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마지막 순간에 할머니의 미소는 삶의 대답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살아가면서 역사는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지만 사람들은 살아갈 수밖에 없고 이 소설은 역사 이전에 삶이라는 것에 더 많은 비중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자신이 직접 하지 않은 일엔 타인의 상처에 무디지 않나 생각이 든다. 사람의 살을 벗겨버리는 명령을 내린 사람은 계속 살아가지만 공포에서 사람의 살을 벗겨버린 사람은 결국 죄의식에 미쳐버리고 말았다. 사람들은 그가 미쳐버리기 전에 그에 대해 욕을 해댄다. 하지만 그 상황에 자신이 그였다면 과연 어떠한 선택을 할까? 때론 그저 살아가기 위해 선택을 해야 한다는 것을 잊고 산다. 그가 미치지 않았다면 그는 평생 나쁜 사람이겠지. 이야기는 주인공이 할머니의 영웅담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에 귀 기울이는데서 그 시대와 매개되어 시작된다. 결국 할머니는 얼마나 큰일은 한 것일까? 일본군을 타도하기 위해 어떠한 행동을 할지부터 떠올리게 되는 것은 왜일까? 시대를 인식하고 나면 그 일을 통해 사람이 그 일에 얼마나 참여했는가가 나에겐 그렇게 중요하게 생각 되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오히려 위 사령관이나 아버지가 직접적으로 그러한 일에 관련되어 있다. 할머니는 그들을 이어주는 매개체적인 역할을 한다. 하지만 힘든 시절을 힘든 일들을 가장 당당한 모습으로 견디어 낸 할머니가 더 대단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살아간다는 것과 죽는 것은 어떠한 의미를 주는 것일까? 때론 자신의 소중한 사람들을 잃었을 때 그들을 다치게 한 작자들을 막기 위해 또는 상처를 주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려한다. 삶에서 소중한 것들은 살아가는 의미를 주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계속 상흔이 보이는 책들을 읽으면서 살아간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된다. 사람들은 상처를 받지만 살아간다. 왜 사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살아 있기 때문에 살아가는 것일까? 하지만 분명한 것은 우리는 상처의 아픔보다 살아가는 것에 의미를 두고 살아간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