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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영향을 받지 않았다면 지금 우리의 삶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역사에 ‘만약’이라는 가정이 존재치 않기에 이와 같은 질문에 대한 답은 하기 힘들지만, 우리의 역사에 일본이 미친 영향력이 작지 않은 것만은 사실이다. 지금도 일본은 우리보다 앞선 위치를 점하고 있다. 하물며 직접 지배권을 행사하던 이전에는 어떠했겠는가. 종이 호랑이로 전락해버린 중국 그리고 너무도 멀게만 느껴지는 서양의 몇몇 국가들과 비교했을 때 일본은 지리적, 문화적으로 가까우면서도 앞서 있는 국가로 여겨지곤 했었다. 당시로선 선각자라 칭해지던 이들이 일본을 수학장소로 선택했던 게 당연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개화파로 분류되는 많은 이들이 실제로 그러하였다. 그렇지만 일본으로 유학을 떠났던 여성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아마도 남성 중심적인 기술 탓이리라. 이 책은 잊혀진 여성들의 역사에 대한 조명이다. 이제는 고령이 되었고, 어쩌면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이들을 찾아 떠나는 저자의 발걸음을 상상해 보게 된다. 그녀의 앞에 앉아 있는 이들은 암울했던 시대에 그나마 나은 삶을 살았던 인물들이다. 역사에서 기록하고 있는 몇몇 여성들이 일제에 친밀히 협력했다 하여 그들마저도 모두 친일 세력으로 치부할 순 없겠지만, 안타깝게도 그들 중 많은 수는 자신이 속한 나라에 대한 자각을 지니지 못한 체 지난 세월을 살았던 듯 했다. 민족보다 계급이 앞서는, 이와 같은 질서는 지금도 여실하여 부유한 이라크인들의 경우 자국이 바람 앞 등불마냥 흔들림에도 불구하고 이웃 나라로 이주해 호화로운 생활을 영위하고 있지 않았던가? 하지만 그보다 더욱 마음이 아팠던 사실은 그들에게 열린 길이 그리 넓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시대는 불과 100년 전이다. 지난 100년, 세상이 급속히 바뀌었음을 고려한다 하여도 그들 대다수가 가정학과를 비롯한 소위 여성에게 잘 어울린다 여겨지는 분야의 학문을 하였으며, 귀국 후 교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는 사실은 오늘날과 비교했을 때 그리 달라 보이지 않았다. 각종 고시에서 여성들의 합격률이 치솟는 요즘이기에 사회는 여풍(女風)을 걱정한다고도 하나, 그 외의 분야에서 여성들이 경험해야 하는 무력감에 대해 많은 이들은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다. 왜 여풍이 특정 분야에서만 가시적일까에 대한 고민이 부재한 탓이다. 100년 전에도 여성들이 우리와 비슷한 삶을 살았고, 특히 일본 유학의 기회를 잡았던 이들이 ‘현모양처’라는 일제에 의해 정립된 모형을 실천하는 집단이어야만 했다는 사실은 씁쓸했다. 자신들의 제국주의 이념을 철저히 체득해 추후 아이들을 출산, 양육하는 입장에 섰을 때 활용해주길 바랬던 일제의 무지막지함이 문득 무섭게 느껴진다. 역사는 닮은 꼴일 때가 많다. 마치 몇 십 년 전에 유행했던 스타일이 오늘날 새로이 각광받는 것처럼, 일본에서 공부하고 돌아온 게 벼슬마냥 여겨지던 지난 날은 오늘날 미국 유학에 대한 환상으로 확실히 부활했다. 미국에서 이름 모를 대학을 졸업하는 것이 우리나라 유수의 대학 졸업보다 낫게 여겨지는 사회 그리고 영어라면 껌뻑 죽어 심지어 우리말보다 영어를 먼저 가르치는 세태까지, 왜 우리는 강자 앞에 굴복하다 못해 우리 자신의 것마저 놓아버리려 드는 것일까? 미국에서 체득한 가치관이 우월한 것으로 여겨지는 현재의 모습은 일본에서 미국으로 그 대상이 바뀌었다는 것을 제외한다면 많은 부분에서 이전과 닮아 있다. 그리고 어쩌면, 여성 상위시대를 부르짖는 요즘이지만 한 세기 전 일본에서 공부했던 여성들이 그러하듯 미국에서의 공부 기회를 손아귀에 쥐었던 오늘날의 여성들도 특정 이데올로기에 사로잡혀 있는 것은 아닐지 싶은 생각을 해 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