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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 오래전에 베르나르베르베르 <파피용>+개미 스페셜 에디션을 사두었습니다. 사두기만 하고 그간 서재에 꼽혀있었습니다. 요즘 세상이 숨을 조여옵니다. 간만에 기발한 상상력의 책이 생각납니다. 호시신이치의 플라시보시리즈도 좋습니다. 단편들은 간간히 읽고 있습니다. 장편소설은 베르나르베르베르소설 만큼 머리를 자극하는 소설은 없습니다. 파피용을 서재에서서 꺼내옵니다.
검은색 철 케이스가 상당히 매력적입니다.
내부도 상당히 고급스럽습니다. 별것 아니지만 푸른빛이 강한 종이로 덮여있습니다. 열린책들에서 상당히 공을 들인 티가 납니다.
저의 탑승번호는 004505입니다. 상상력 위대한 모험에 초대 되었습니다. 기대됩니다.
파피용의 뒤쪽에는 베르나르베르베르 원작의 <개미>가 있습니다. 만화책입니다. 에스프레소를 한잔 만들어 내옵니다. 간단한 쿠키도 만듭니다. 흔들의자에 앉아 첫장을 넘깁니다.
이브 크라메르 역시 텔레비전 뉴스를 보았다. 텔레비전을 보면 쉽게 기분을 바꿀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의 불행을 지켜보면 자기 자신의 불행을 잊을 수 있었다.
일러스트가 좋습니다.
일러스트는 뫼비우스가 그렸습니다.
그는 예쩐에 아버지와 나누웠던 대화를 떠올렸다. 그는 아버지에게 이렇게 물었다. <고통은 왜 존재하는 거죠?> <행동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란다. 불에서 손을 떼게 하려면 고통이라는 자극이 필요한 것처럼 말이다. 희귀병 중에 고통을 느끼지 못하는 병이 있단다. 눈으로 확인하기 전에는 상처를 느끼지 못하는 거지. 뜨거운 불판에 손을 올려놓고 있어도 아무렇지 않다가 살이 타는 냄새를 맡고 나서야 비로서
깜짝 놀라는 거야. 이<<무고통>>이라는 병에 걸린 사람들은 대부분 오래 살지 못하지.>
<인간이 자기 내부의 공간도 정복하지 못하면서 외부의 공간을 정복하는 게 무슨 소용일까? 우리 가슴 속에 있는 별에 다가가지도 못하면서 멀리 있는 별을 찾아가는 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고독하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겠소? 가끔씩 서로의 고독을 나란히 늘어놓을 수는 있겠지만 그 이상은 불가능하지요. 짝을 맺는다는 게 바로 그런 것 아니겠습니까? 함께하는 두 고독.부모와 자식. 아내. 정부가 있기도 하지만 결국 우리는 늘 외로운 존재지요.>
<이제 요리를 빨리 익히기 위해 잉걸불에 바람을 한 번 훅 불어 줄 때가 왔어요. 그럼 가장 가벼운 것들이 증발해 버리고 말죠.>
<현명하다는 것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뜻 입니다.>
<<역설>이라는 개념을 도입해서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밤보다는 낮에 더 잘 보인다고 생각하죠. 하지만 틀린 생각이에요. 낮에는 기껏해야 수십 킬로미터 정도 밖에 분간이 되지 않습니다. 게다가 하늘에 있는 구름과 대기층 때문에 우리 시야가 제한되죠. 하지만 밤에는... 밤에는 몇백만 킬로미터 떨어진 별들도 눈에 보이죠. 밤에는 멀리 보입니다. 우주를, 그리고 시간을 보는 겁니다.>
방식은 다르겠지만, 나도 당신과 똑같은 면이 있소. 나에게 밤은 <관조>의 시간이오. 나는 항상 잠들기 직전에 한가지 질문을 떠올리지. 다음 날 깨어나면 해답을 얻으리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오.
생각이 시간이나 공간보다 훨씬 위력적이라는 말씀이십니까? 그렇소. 난 그렇게 믿소.
<마지막 희망은 탈출이다>라는 말, 또 <언젠가 인류는 다른곳에, 가능하다면 다른 방식으로 정착할 것이다 >라고 하던말, 이것들 말고 가브리엘이 한 말도 있는 것 같네요. 어느 날 저녁에 그가 나한테 <모든 것은 역설이다. 그리고 진정한 지혜라는 것은 이러한 역설을 인식하는 것이다>라고 하더군요.
그렇지만 난 성공한게 없는 사람이 아닙니까. 해고당한 엔지니어니까.... 맞군. 질투할 대상은 아니지. 하지만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는 인간형은 두 분류로 나눌 수 있소. 성공하는 인간과 실패하는 인간.
다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도 다 그렇게 생각했을걸. 페스트,콜레라,세계대전,노예제도가 있었던 과거에 살았던 사람들은 최악의 시대라는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모든 세대마다 예전보다는 나아졌고 다음 세대에는 더 나아질 것이라고 믿어. 어쩌면 결국 상황은 언제나 똑같을지도 몰라. 단지 우리 시대는 더 많은 정보를 접할 수 있기 때문에 더 끔찍하게 생각되는거지. 그러니까 냉정하게 바라볼 필요가 있어.
그런데 왜 항상 거짓말쟁이들과 못난 놈들이 승리를 하게 되지? 왜 항상 최악의 인간들이 법을 만들게 되는거야? 사람들에게는 노예 기질이 있으니까. 사람들은 자유를 요구하면서도 정말로 자유가 주어질까 봐 전전긍긍하고 있어. 반대로 권위와 폭력 앞에서는 안도감을 느끼지.
사랑이라는 길을 좇아서는 안 된다. 사랑 때문에 사람을 죽일 수도 있고 사랑한다는 명분으로 저열한 행동을 저지를 수도 있다. 단 한 가지 확실한 길은 빛을 따라가는 것이다.
쥐의 근성 말이다. 이기주의와 약육강식의 법칙이지. 자기 이익에만 급급하고 약자들은 죽게 내버려 두는 것 말이야. 예전 지구의 사람들은 그런 생각으로 살았단다. 그래서 어떻게 끝이 났어요? 아마도 ... <요한계시록>대로 됐겠지.
연달아 <개미>도 읽기 시작합니다.
개인적으로 개미를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곤충을 싫어합니다. 표지가 마음에 안 듭니다.
이 한 문장을 읽는 데에 걸리는 몇 초 동안 지구상에 사람은 40명이 태어나지만 개미는 7억 마리가 생겨난다
벨로캉 도시 내부지도.
즐겁게 읽었습니다. <개미>는 좀 아쉬운듯 결말이 났습니다. <파피용>은 챕터별로 나누어 져 있습니다. 삽화도 있습니다. 읽으면서 지루한 감이 덜합니다. 군더더기의 설명없이 필요한 부분들만 써 냈습니다. 인간에 대해 다시금 돌이켜 생각하게하는 소설입니다. 많은 종교인들이 즐겁게 읽었으면 하는 소설이기도 합니다. 여운을 즐기기 위해 꿈을 꾸기로 합니다. 침대에 눕습니다. 이불이 포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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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베르의 과학지식과 성서의 절묘한 조화, 모태신앙이 바닥에 내재 되어 있는듯하다. 읽는 내내 머리에서는 한편의 SF영화 처럼 장면 장면이 영사 되어졌다. 그 만큼 사실적이며 과학적으로 묘사 되어 있다. 누구든 이 책을 손에 쥐는 순가 베르베르의 무한상상에 도취 되어 버리고, 왜 베르베르의 이름을 내가 기억하고 있어는지 왜 많은 평론가들이 극찬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나 또한 이 책을 놓는 순간 역시 베르나르야 하며 감복했다. 우주 범선 미래판 노아의 방주 어쩌면 이것이 현실화 되는 날이 올 지도 모른다. 베르베르의 무한상상에 빠져들 각오 된 분이라면 베르나르의 매력을 알고 싶은 분은 한 번 도전해 보시라. 우리 지구도 새로운 행성에서 찾아온 신인류에 의해 시작 되었는지 모른다는 상상을 그와 같이 공유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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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르나르베르베르는 참 독특한 작가이다..개미때부터 타나토노트,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등 참 독특한 책을 썼다.
그리하여 파피용은 많은 기대를 했는데.. 약간은 실망이다. 한 소설내에서 너무 긴 기간대를 다루어서 그러한 것인가? 전반적으로 왠지 빈약하다는 생각이 많이 든다.
뭐 그렇다고 하더라도.. 결말은 참 인상적이었다. 내가 스포일러가 되는 것이 싫어 결말을 적진 않겠지만 결국은 동양의 윤회사상이 이 모든 세상이치가 아닐까 하지만, 이러한 내용이라면 크리스찬들이 별로 좋아하지 않을 것 같은데.. 반응들이 어떤지 모르겠네..
책소장을 즐기시는 분이라면 꼭 스페셜 에디션을 구입하시기 바란다. 양장에 그림까지 칼라여서 소장에는 그만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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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꺼운 양장이라 책보관은 용이해 보인다. 오래 갈 것 같다. 한편의 SF영화를 보는 느낌의 책이다. 역시 베르나르 베르베르이지만 약간의 아쉬움도 묻어나는 건 사실이다. 약간 허무주의적인 느낌도 있고 내가 믿는 종교와 약간 배치되서 약간 껄끄러운건 사실이다. 그래도 재밌게 보았다. 전쟁과 질병, 환경오염, 그보다는 인간들 사이의 반목과 질투로 인해서 암운만이 드리워진 지구를 탈출만이 마지막 희망이라는 생각으로 우주선 발명가 이브, 항해사 엘리자베트, 억만장자 가브리엘, 심리학자 아드리앵 등이 14만 4000명과 함께 새로운 지구를 찾아서 떠나는 약 1000년 정도의 이야기가 주된 내용이다.
창세기전의 극적인 재해석이라는 생각도 들고 또는 예전에 해보았던 창세기전이라는 게임의 내용도 생각이 난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고나니 지구도 이런식으로 성립된 것인가라는 생각과 탈출만이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하기전에 더 적극적으로 지구를 구하고자 하는 노력이 필요했던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이든다. 그래서 마지막에 한 말이 더 아이러니로 느껴진다. 영원히 탈출을 계속할 수는 없다... 그런데 파피용호에서도 보았듯이 아무리 심사숙고해서 폭력성이 없는 사람들을 뽑아도 인간 본성 자체에 내재되어 있는 파괴적인 본능은 여행의 거의 끝에 파피용호의 생존자를 단 6명으로 만들어 버렸다.(어차피 2명 밖에는 새로운 행성으로 못가지만) 이렇게 인간의 삶은 돌고 도는데 또 탈출할 것인가? 순수했던 파피용호의 생활에서도 범죄자가 생기고 축제가 생기고, 정치와 종교가 생기고 법이 생기고 그 밖에 삶의 관습등이 생기고 인간을 옭아매는 여러가지 제도가 생기는 이상에 나비는 나비가 아니다. 나비는 나방과는 달라야 한다.
각 챕터의 제목이 연금술적인 내용의 제목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아서는 뭔가 다른 의미가 있을 것도 같다.(단순히 멋으로 그런건 아니겠지) 뭐 새로운 재탄생 이런건가? 아니면 낮은 가치에서 더 높은 가치를 이루는 것...
난 이 소설에 나오는 인물 중에서 가브리엘 맥나마라가 좋다. 부자이지만 부자같지 않은 소탈함에 실패의 가능성 보다는 시도해 보았다는 일을 중요시 여겨서 일을 추진하고 현자와도 같은 느낌의 말도 그렇다.
"현명하다는 것은 똑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의식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은 언제나 무기력한 합의 속에 갇혀있는 다수의 뜻에 굴복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런 믿음을 갖는 건 좋아요. 하지만 지난 사건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았소. 가장 중요한 싸움, 바로 우리 자신의 어리석음과 싸워서 이길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이 아직 아무도 없다는 사실 말이오"
소설의 마지막은 완전 창세기의 패러디 개그 같지만(사틴->사탄, 이브->야훼) 베르베르식의 꿈은 언제나 유용하다. 또 언제 아는가 우리가 정말 살기 힘들어진 지구를 이렇게 엑소더스하는 날이 올지를 물론 그런날이 와서는 안되겠지만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