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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에어컨을 하루종일 빵빵하게 틀어대도 다들 헉헉대던 이번 주, 회식도 없었고 퇴근시간도 “칼”이었으며 금요일 황금연휴까지 끼어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글을 두 편 밖에 올리지 못한 까닭은 “이한우의 군주열전” 을 읽느라 바빴기 때문이다. 두 번 이상 읽을 만한 책과 고전 위주로 고르고, 교보나 영풍에 가서 직접 보고 찜을 한 뒤 YES24 에서 구입하는 나만의 기준에 본 시리즈는 미달이었기 때문에(그래도 골드와 로얄 회원 둘 중 하나를 항상 유지한다), 도서관에서 모두 빌려다 보았다. 태종과 세종 편은 올해 초에 읽었고, 지난 주말부터 성종 편을 잡고 읽기 시작해서 드디어 정조 편까지 레이스를 끝냈다.
조선왕조의 역사를 대표적인 군주 6명을 통해 훝어보겠다는 기획의도는 시오노 나나미의 “로마인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로마공화정 지도자 및 황제 순으로 연대기적 구성으로 15권이 완간된 “로마인이야기” 는 역사학자가 기록하는 역사의 부담감을 훌훌 벗고 독특한 인물분석과 사건분석 및 평설, 그리고 일본인 여성으로 갖고 있는 역사관과 남성관을 얼버무려 가벼운 수다와 재밌는 이야기식으로 펼쳐나가 대성공을 거두었다. 조선일보 기자인 저자 이한우는 저널리스트라는 입장에서 조선 역사에 접근한다. 그가 조선역사와 군왕의 리더십을 분석하는 무기는 조선왕조실록이다. 각 권 마다 4000여 쪽에 달하는 두꺼운 분량이 책을 든 손을 압박해 온다. 아쉬운 점은 사진출처만 마지막 페이지에 한 장 달랑 있을 뿐, 책을 쓰는데 필수적이라고 할 참고문헌이나 각주는 찾아볼 수 없다는 점이다. 이는 조선왕조실록을 주된 텍스트로 하되, 저자의 의견과 가치관이 듬뿍 담겨있는 저작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요인이기도 하다. 아니, 태종 편부터 정조 편까지 다 읽고 나면 정말 그렇게 생각이 된다. 이한우는 조선왕조를 왕권 vs 신권, 훈구 vs 사림 이라는 기본적인 얼개를 통해 파악한다. 학계에서 푸대접을 받았던 권력형 군주 태종과 세조, 숙종이 (본인 표현에 의하면) “재평가” 되면서 절대권력을 손에 쥐었던 임금이 곧 유능한 임금이라는 등식을 만든다. 반면 학계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고 신하들의 의견을 존중했던 성종과 정조는 (역시 동일한) “재평가”의 덫에 걸려 폄하되고 있다. 저널리스트의 글은 쉬워야 된다는 평소 생각에 맞게 두꺼운 분량의 책 6권이었지만, 다 읽는데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조선왕조에 그다지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고, 그 조그마한 관심도 TV에서 방영하는 인기사극을 더 재미있게 보기 위한 이유에 지나지 않았던 터라, 본격적인 조선왕조 공부는 꽤나 재미있었다. 더구나 딱딱한 논문을 써대는 교수님들의 글도 아니고, 조선일보의 대표적인 논객으로 이름 높은 저자의 글솜씨를 감상하면서 덤으로 날카로운 인물평까지 얻을 수 있었다. 이문열의 평역 삼국지가 현실권력자인 조조를 높이 평가하면서 한 왕실 종친이라는 타이틀과 명분을 내세웠던 유비에 대한 냉정한 평가로 유명하다면, 이한우의 군주열전 역시 역사라는 무대에서 권력을 두 손으로 움켜잡고 마음껏 누리고 간 군왕과 지도자들에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현실권력을 지향한 대표적인 “호모 폴리티쿠스” 군왕인 태종과 숙종에 대해서는, 절대권력에 반드시 따르기 마련인 독선과 오만, 주위의 희생을 별반 문제삼지 않고 넘어간다. 이들이 손에 쥔 권력을 갖고 부국안민(富國安民)과 국태민안(國泰民安)을 꾀했기 때문이다. 만장일치로 한민족 역사상 최고의 성군(聖君)으로 꼽히는 세종 편에서는 기존의 의견을 따르면서 세종의 인간적인 고뇌를 부각한다. 읽는 이 독자의 입장에서 저자의 의도를 조금씩 알게 되는 시점은 3권 성종 편부터다. 도식적으로 비교해서 로마제국의 안토니누스 피우스처럼 좋은 시절을 타고난 억세게 운 좋은 국왕이었던 성종의 태평성대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이후 조선역사를 흔들게 될 사림들의 붕당정치의 씨앗이 뿌려지는 시기였다. 그리고 저자의 붓끝은 훈구세력 vs 사림세력의 싸움에서 정확히 사림세력의 목구멍을 날카롭게 겨눈다. 개국과 정난을 통한 피흘림 속에 정권을 잡고 한 줌 밖에 안 되는 친인척과 인맥들이 조정의 요직을 독점한 채로 부패와 음모의 정치를 펼쳐나가며 백성들의 고생과 원망에는 굳게 귀를 막았던 훈구세력들에게 저자는 놀라울 정도로 덤덤하다. 그들의 잘못과 역사적 과오에 대해서 놀라울 정도로 지면을 아낀다. 대신 훈구세력에 대한 환멸과 분노를 머금고 초야로 돌아갔다 중종시대 조광조의 화려한 등장과 함께 조선 정치에 핵심세력으로 자리잡는 사림에 대해 저자는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비난과 책잡기에 몰두한다. 선조 편 174쪽에서 175쪽을 보자. “세상을 선악(善惡)으로 가른 다음 피아(彼我)를 명확히 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급진개혁론자들의 하수(下手)다운 인식론이다. 이들은 흔히 남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하다. 그들에게 자기 자신은 선이고 자신과 다른 모든 것은 악이다. 특히 노장 그룹보다는 소장 그룹에서 쉽게 나타나는 병폐다. 세상의 불의가 깊을수록 이런 급진개혁론의 도식은 더 단순하고 과격해진다. 이들이 당파를 지으려는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마치 조선일보의 사설을 읽는 느낌에 기분이 팍 더러워지고 책을 그만 읽고 반납해 버릴까하는 생각까지 했었다. 그러자니, 지금까지 읽은 태-세-성-선(의 절반까지)이 아깝고, 남아있는 숙종과 정조 편까지 다 읽은 다음 판단을 내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 계속 읽었다. 그러나 저자의 사림에 대한 비난은 갈수록 더해만 간다. 조선의 기득권 세력이었던 훈구세력을 노장 그룹에 현실주의적인 중도라 평하고, 이들에 대한 도전을 통해 역사를 만들어갔던 비기득권 세력이자 소장 그룹이자 개혁주의자였던 사림들이 만들어 놓은 붕당정치가 결국 조선의 임금과 나라를 허수아비로 만들었다는 식의 평가야말로 저자의 표현대로 “세상을 선악으로 가른 다음 피아를 명확히 하고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에게는 엄격한 하수”의 짓거리가 아닌가? 본질적으로 유학자였자 선비였던 이들이 과거에 급제한 후 조정에 나아가 왕을 받들어 정치를 해나갔던 유교국가 조선왕조에서 이들의 역할을 부정한다는 것은 일본이 우리의 역사를 깎아 내리는 전형적인 수법이 아닌가? 저자는 정조의 개혁에 대해서는 무덤에 누워있던 임금이 분노해서 벌떡 일어날 정도로 악랄한 비판을 서슴지 않으면서도 자기 마음대로 대신들을 갈아치웠던 숙종 임금을 지존이자 절대군주로서의 카리스마를 뽐냈다고 평한다. 조정에 진출한 사림의 무리짓기와 공리공론에 대한 비판을 지겹도록 거듭하면서도 중종 임금 시절 권력을 전횡하면서 가렴주구를 일삼았던 문정왕후와 윤원형 등의 훈구파들에 대해서는 사실(事實)만 간략히 나열한 채 넘어간다. 원인에 대한 분석이나 비판 없이 결론적으로 일어난 사건에 대한 비난에만 열을 올리는 하수(下手) 저널리스트의 역사읽기 프로젝트는 실패로 끝날 수 밖에 없다. 선조 편을 다 읽고 초판이 인쇄된 날짜를 보니 2007년 2월 26일이다. 숙종 편은 2007년 8월 30일이다. 저자의 역사인식과 가치관이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아니 기다렸다는 듯이 이곳저곳에서 정신없이 터져나오는 정조 편은 2007년 10월 30일이다. 그로부터 두 달 후, 한국사회에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를 머리 속에 떠올리지 않고, 이것을 그대로 한 저널리스트의 한국형 리더십 찾기로만 받아들이기에는, 나는 조선일보를 너무 열심히 읽어왔다. (점심 먹으러 가는 식당 테이블에 항상 조선일보가 올라와 있는 이유만으로...) 정조 편을 왜 그리 서둘러 출간했던 것일까? YES 24 에 실린 정조 편 서평난에는 한 네티즌이 올린 글이 촌철살인으로 올라와 있다. “그냥 노무현이 싫어요 하면 될 것을 . . .” 현재를 지배하는 사람이 과거도 지배한다는 말이 있다. 두 손에 벨벳장갑을 낀 채로 현실정치에 참여하려는 언론집단과 여기서 녹을 먹고 사는 저널리스트는 보수와 진보의 대결에서 2번 내리 패배했던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군주열전” 혹은 “한국형 리더십” 이라는 허울 좋은 명분을 내걸고 역사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는 개혁군주와 선비집단을 애송이에 수신(修身)조차 안 된 인간이나 아마추어에 이상주의자라고 깎아 내린다. 지금 바로 이 자리에서 하고 싶은 말을 이들은 먼 과거를 지렛대 삼아 에둘러 말하고 있다. DJ와 노모가 정권 초기부터 정조 임금과 자주 비교되었기 때문일까? 엎어버리고 싶어 안달이 나 있는 한 민영방송사가 정조 임금을 주인공으로 내세운 드라마를 방영했기 때문일까? 기득권 세력의 악랄한 반대와 음모 속에 외롭게 투쟁하다 비명에 간 임금을 2007년 다시 한 번 부관참시(剖棺斬屍)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청와대에 입성한 지 5개월 만에 지지도 10% 대로 진입한 신임 대통령에게 어떤 조선 임금을 벤치마킹하길 바라는 것일까? 민주사회의 선출직 대통령이 저자가 극찬하고 있는 태종이나 숙종과 같은 리더십을 꿈꾼다면, 그 나라는 경찰국가로 회귀할 수 밖에 없다. 대학시절, 역사를 가르치시던 은사님은 자신이 저널리스트로 취급된다면 이는 굉장한 수치라는 말씀을 한 적이 있다. 그 땐 그냥 상아탑의 교수가 갖는 현장 저널리스트에 대한 일종의 견제 또는 같은 글쟁이로써의 라이벌 의식 같은 것 아닐까 하고 넘어갔다. 이제 저널리스트가 조선왕조실록이라는 하나의 텍스트를 가지고 자신의 이념적, 나와바리적 입장을 아무런 견제 없이 펼쳐내며, 절묘한 타이밍에 맞춰 출간한 역사물 한 보따리를 읽고 난 후, 평소 신중하고 분별 있으셨던 은사님이 왜 굳이 ‘수치’ 라는 단어까지 써 가며 잔뜩 흥분하셨던 이유를 알 것도 같다. 다음부턴 어렵고 딱딱하더라도 역사를 제대로 전공하고 가르치는 저자가 쓴 역사서를 읽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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