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전

리뷰 (1)

한줄평
평점 분포
  • 리뷰 총점10 100%
  • 리뷰 총점8 0%
  • 리뷰 총점6 0%
  • 리뷰 총점4 0%
  • 리뷰 총점2 0%
연령대별 평균 점수
  • 10대 0.0
  • 20대 0.0
  • 30대 0.0
  • 40대 0.0
  • 50대 9.0
리뷰 총점 종이책
오래된 미래를 연상시키는 너무 훌륭한 책...
"오래된 미래를 연상시키는 너무 훌륭한 책..." 내용보기
오랫만에 멋진 , 책다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헬레나 호지 여사가 썼던 유명한 책 '오래 된 미래'를 연상시킨다. 호지여사가 라다크의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지속가능한 태고적 자연스러운 삶, 그러나 인도의 지배하에 놓여지면서 소위 서구물질문명에 의해 선진화(?) 문명화(?) 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어 가버린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의 삶에 대해서 라다크에서 그 원주민들과 함께 오
"오래된 미래를 연상시키는 너무 훌륭한 책..." 내용보기

오랫만에 멋진 , 책다운 책을 읽었다. 이 책은 헬레나 호지 여사가 썼던 유명한 책 '오래 된 미래'를 연상시킨다. 호지여사가 라다크의 자연과 어우러져 사는 지속가능한 태고적 자연스러운 삶, 그러나 인도의 지배하에 놓여지면서 소위 서구물질문명에 의해 선진화(?) 문명화(?) 되면서 철저하게 파괴되어 가버린 히말라야 라다크 지역의 삶에 대해서 라다크에서 그 원주민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살아가면서 담담히 기술했던 것처럼...이 책도 엘리자베스 토마스씨가 남부아프리카 칼라하리 사막에 사는 부시먼족들과 함께 오랜 세월을 같이 살면서 그들의 자연스럽고 평화롭고 행복했던 지속가능한 삶의 문화에 대해서, 그리고 독립국가인 나미비아가 생겨나고 정부가 세워지고 이어 어설픈 기독교적 서구 물질문명이 들어오면서 사회가 선진화, 문명화(???)되면서부터 그들 자신의 자랑스러운, 오랜세월동안  지속되어 왔던 삶의 방식이 깡그리 파괴되고 그들의 정체성마저 뿌리채 빼앗겨 버리고 급속하게 사회 최빈곤층으로 몰락해버린 부시먼들의 슬픔에 대해서 담담하게 기술하고 있다.

 

이 책은 '오래 된 미래'처럼 우리에게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엘리자베스 여사가 우리에게 던지는 수많은 화두들....우리는 과연 진보하고 있는 것인가....부시먼은 스스로를 부시먼 (관목숲 속 사람들)이 아니라 순수한 사람들, 가치있는 사람들이란 의미의 주/와족이라고 부른다. 이렇듯 순수하고 가치 있는 삶을 수많은 세월동안 영위해 왔던 존엄한 사람들을 오늘 날 가치없고 비루한 빈민으로 전락 시킨 서구 물질 문명, 기독교 문명은 과연 무엇인가...? 아프가니스탄에서 생쇼를 연출했던, 또한 몽골, 미얀마등지의 가난한 아시아 국가들에서 떼거지로 몰려가 광신적인 기독교 선교활동을 펼치고 있는 역사가 극히 일천한 한국 개신교의 타민족, 타국가에서의 우월적 자세와 시혜적 태도의 전도 활동에 대해서도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는 책이다....

 

사족: 원제목은 극히 담담한....<The Old Way (오래 된 삶의 방식..)> 인데 우리나라 제목은 좀 섹시하게 <슬픈 칼라하리>로 뽑았다. <The Ancient Future (오래 된 미래)>처럼 원제목을 그대로 한글로 직역했더라면 더 좋았을 것이다. 제목의 의도적인 변형이 참 아쉽다. 그러나 너무 멋진 책이고 또한 드물게 번역도 아주 매끄럽고 세련되어서 읽는 즐거움을 더해 주었다.

 

-----------------------------------------------------------------------

 

<책속의 글들>

 

내게 그곳과 그 사람들을 찾아간 경험은 마치 타임 머신을 타고 먼 과거로 여행을 떠났던 것처럼 심오한 의미를 지닌다. 그것은 태고의 방식, 즉 현재의 우리를 있게 했으되 지금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생활방식을 똑똑히 목격한 것 같은 느낌이었다. 또한 그것은 우리가 여태까지 알아 온 것중에서 가장 성공적인 문화였으며 태양과 비, 더위와 추위, 바람과 산불, 식물과 동물의 번식의 엄중한 지배를 받는, 태고의 문화를 직접 목격한 것같은 느낌이기도 하다. 생활방식을 문화라고 부를 수 있다면, 그리고 생활의 안정도와 장수를 문화의 척도라고 한다면 말이다.

 

가령 여행할 때는 우림에서처럼 흩어져 다닐 수 없었다. 말썽이 생기면 기어오를 나무가 가까이 없기 때문이었다. 대신 전투 시의 군인들처럼 한줄로 늘어서서 다녔는데, 지휘자가 맨앞에 서서 위험한 것이 있는지 살폈다. 휴식을 위해 멈추면 다른 동물들처럼 둥그렇게 모여 앉았다. 포식자를 피하는 방법으로 원형대형을 취하는 게 효과적이기 때문이었다. 들판의 소나 양은 가까이 붙어 눕되 저마다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전선 위에 앉은 새들은 태풍이 오는지 볼 수 있도록 양쪽을 바라본다. 보통 침대에서 자는 우리 집의 개도 주인과는 다른 방향을 보며 잠드는데, 개가 생각하기에 그렇게 해야 방안의 모든 방향을 파악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개는 처음에는 주인과 같은 쪽을 바라보며 눕더라도 나중에는 방향을 바꿀 것이다. 포식자에 대한 경험을 가슴 속에 간직하고 있는 우리 인간들은 후방에서 있을 공격의 위험을 감지하기 위해 오늘날까지도 원형 대형을 좋아한다.

 

나는 캠프에서 한 시간동안 혼자 걸어 나가 늪지대 가장자리의 키가 큰 풀숲에 앉아서 바람에 풀이 움직이는 소리와 몇 마일 떨어진 곳에서 들려오는 뭔가 헉헉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다. 하늘은 흐린 잿빛이다. 곧 해가 질 것이다. 나는 끝없이 펼쳐진 노랗거나 은빛이 나는 풀들과 풀숲의 검은 덤불을 바라보면서, 이 바람이 나를 만나기까지 수천마일을 불어 왔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어쩌면 바람은 어딘가 감추어져 있는 부시먼의 야영지 위로 불어 갈지도 모른다. 사방으로 수백 마일씩 펼쳐져 있는 광활한 초원에 한점이나 다름없는 어딘가의 그곳을 향해...........바람이 멈춘다. 공기가 정지한 것같다. 해는 지고 있으며, 서쪽하늘은 노랗게 물들어 있다. 추운 밤이 다가오고 있다. 이곳까지 온 길을 기억해서 밤이 되기전에 돌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

 

그들은 (부시먼) 태고적부터 칼라하리에서 살아왔다고 했다. 처음에 나는 이 이야기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들은 글을 읽을수도 쓸 수도 없는 무지한 사람들인 반면에, 나는 대학교육을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모든 역사자료들은 부시먼이 칼라하리로 쫓겨 들어 갔다고 기록하고 있었고, 나는 그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았다. 그렇지만 훗날 과학적인 조사에 따르면 부시먼의 말이 옳았음이 증명되었다. 칼라하리에는 언제나 사람들이 살고 있었으며, 백번 양보하더라도 후기 구석기 시대부터, 어쩌면 그보다 훨씬 오래 전부터 살아왔음이 밝혀졌다. 물론 부시먼은 그들보다 강한 외부인들이 강제로 농장으로 만든 칼라하리의 경계지역에서도 살아 왔다. 외부인들은 그들을 노동자로 만들어 임금도 주지않고 철저히 착취했다. 농장주의 땅에 부시먼이 살고 있지 않거나 달아난 경우에는 칼라하리 내부로 들어가 부시먼을 노예로 잡아왔고, 부모가 아이들을 되찿으려고 자동차 바퀴자국을 따라올 것을 예상하고는 아이들을 무자비하게 납치하기도 했다. 만약 농장주의 땅에서 부시먼이 살게 되면, 그들을 노예로 삼는 과정은 유럽의 귀족들이 사용했던 방법과 비슷했다. (어쩌면 더 잔인했을지도 모른다) 외부인들은 넓은 땅에 닥치는대로 죽죽 금을 긋고 농장을 만들었다. 그 과정에서 그는 하찮은 야생동물들을 다루듯 부시먼을 대했다. 노예와 마찬가지로 그들에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그들에게 식량과 물이 필요했기에 다른 곳으로 떠날 수가 없었다. 그렇다. 부시먼에게는 '다른 곳'이 없었다. 오직 칼라하리 뿐이었다. 간혹 저항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농장주가 무자비하게 처단했다. 백인 이주자들 중에는 부시먼을 사냥하는 스포츠로 삼아, 웅덩이에 잠복하고 있다가 물을 마시러 오는 부시먼을 향해 방아쇠를 당기는 일도 있었다. 노예가 되거나 땅을 빼앗긴 대부분의 부시먼은 농장에서 일하는 것외에 달리 방도가 없었다. 야생동물대신 가축이 들어오고, 농부의 가축이 야생식물을 뿌리까지 먹어치우는 가운데 부시먼의 식량공급은 현저히 줄어들었을 것이며, 수렵채집 생활을 했던 이들은 식량을 구하기 위해 죽도록 일을 해야만 했다. 농장주는 그들에게 누더기 옷과 옥수수죽 정도만을 주었다. 농장에서 키우는 동물이 죽으면, 부시먼과 농장의 개들이 그 시체를 함께 나눠 먹을 수 있었다. 이러는 가운데 부시먼은 자신들이 아주 오랫동안 최고로서 존재했던 세계를 빼앗기고는 급속하게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우리는 텐트, 침대, 침낭, 접이의자와 테이블, 지도, 나침반, 카메라, 필름, 녹음기, 참고서적, 노트, 펜, 잉크, 연필, 소독약, 뱀에 물렸을 때 사용하는 해독제, 브랜디, 통조림상자, 말린 식량 상자, 접시, 냄비, 프라이팬, 칼, 포크, 숟가락, 담배, 성냥, 여분의 타이어, 자동차 부품, 자동차용 튜브, 타이어 패치, 기중기, 연장상자, 크랭크, 모터오일, 휘발유 드럼통, 물통, 노란 비누, 수건, 행주, 치약, 칫솔, 코트, 스웨터, 바지, 부츠, 운동화, 셔츠, 속옷, 양말, 안경, 안전핀, 가위, 바느질 도구, 쌍안경, 총알, 라이플 총을 갖고 여행을 시작했다. 반면에 주/와족은 (부시먼족) 나뭇가지, 가죽, 타조알, 풀이 전부였다.

 

주/와족의 결혼은 외가 거주 풍습과 깊은 관련이 있었다. 나이나이 전역에는 550명 밖에 살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근친결혼을 피하기 위해 세심하게 주의를 기울였다. 결혼상대가 한정되어 있으므로 대부분의 아이들은 은!오레 (물이있는 지역의 소유권) 를 가진 무리의 상대와 어려서 약혼 할 수박에 없는데. 여자아이는 아기일 때 대개 10대 초반의 남자 아이와 약혼을 하게 된다. 소녀가 충분히 자랄 때까지 두사람은 부부관계를 갖지 않지만, 섹스가 결혼을 하는 이유의 전부는 아니다. 젊은이는 아내의 가족을 위해 사냥을 해야하고, 자신과 아내에게 걸을 수 있는 아이들 셋이 생길 때까지 계속 사냥을 해줘야 한다. 하지만 이런 규칙은 비슷한 여러 부족들의 풍습과 마찬가지로 딱히 정해진 것은 아니다. 아이들의 터울이 보통 네살 정도이며, 여섯살이 되어야 남의 도움을 받지 않고 멀리까지 이동할 수 있다.

그렇다면 아이 셋이 모두 살아 남는다면, 남자는 아내의 가족과 14년에서 15년은 함께 살아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더욱 오래 함께 살아야 한다. 아내 집안에 대한 봉사의무를 거의 마칠 무렵이 되면 그의 사냥기술은 절정을 지나고, 딸들이 있다면 그 아이들이 결혼을 할 나이가 될 것이므로, 남자는 이제 자신과 아내가 나이듦에 따라 도와 줄 사윗감을 생각할지도 모른다.

 

건기에 절반 이상이 그러하듯이 물웅덩이가 마르면, 그 웅덩이의 물을 썼던 사람들은 그 집단가운데 누군가가 주인이거나, 주인의 친척인 다른 웅덩이를 향해 일열로 걸어간다. 그리고 그곳에 당도하면 그들은 그곳의 친척들을 만나고, 그들과 함께 식량과 물을 나누어 먹는다. 그러므로 은!오레는 재산이 아니라 생명이고, 그들에게 은!오레의 개념은 영혼 깊이 박혀있는 무엇이었다. 영양도 사냥꾼에게 쫓기다가 언제나 돌아가는 웅덩이에 자기만의 은!오레시 (은!오레의 복수형)를 갖고 있다고 했다. 사람이 죽으면 그 시신을 무덤에 묻을 때 은!오레를 마주 볼 수 있도록 했다.

 

단백질을 얻기 위해 굳이 사냥을 할 필요는 없었지만, 그들은 항상 사냥을 했다. 사냥은 흥미진진하고 즐거운 일이어서 그들의 삶에서 매우 중요했다. 동물의 시체를 훔치는 것도 흥미를 자극하기는 하지만, 사냥과는 비교도 되지 않을만큼 시시한 일이었다. 인류는 육식동물과 마찬가지로 사냥의 욕망을 유전으로 물려 받는 모양이다.

 

노파는 혼자서 딸과 딸의 아이들을 날라야 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하이에나들이 호시탐탐 기회를 노렸을 테지만, 노파는 끝내 가족의 안전을 지켜냈다. 적자생존이라는 말에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들을 위한 희생심도 포함 된다. 오늘날 그들의 할머니 덕분에 그 두아이는 어른이 되어 자식을 낳고, 할머니의 가족애를 이어가고 있다.

 

우리 가족은 먹지 않을 것은 어느 것도 총으로 쏘아 잡고 싶지 않았다. 그것은 윤리적인 판단이기도 하거니와, 어쨌든 그곳에 살고 있는 온갖 종류의 생물들에게 우리는 손님이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었다. 그곳의 주인은 그들이지 우리가 아니라는 생각을 가지라고, 아버지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말씀하셨다.

 

인류학자인 미건 비즐의 조사에 따르면, 주/와족은 사자를 가리켜 말할 때 '질투'라는 단어도 사용했다. 주/와족 사이에서 불화를 일으키는 가장 큰 원인은 질투가 분명했지만, 그렇다고 해서 사자가 사람들로 하여금 질투심을 느끼게 한다는 의미는 아니었다.

 

민담이나 성적인 농담 몇가지에 등장하는 요소들을 제외하면, 전체적으로 보아 주/와족에게 섹스란 그다지 큰 관심 거리가 아닌 것 같았다. 우리가 섹스에 몰두하는 것만큼 주/와족이 몰두하지 않는 것은 분명했다. 남녀간에, 주로 부부간에 나누는 분별있는 성행위만이 이들에게서 관찰되는 유일한 성행위라고 볼 수 있었다. 전세계 문화를 통틀어서 혼외 성행위를 금지하는 문화가 5%에 불과하다는 사실은 무척 흥미롭다. 우리 역시 최소한 문서상으로는 그러하다 ( 가령 다른 문화에서는 남자가 아내의 언니와 섹스를 할 수 있거나, 찾아온 손님에게 아내를 빌려 줄 수도 있다.) 이런 점에서 주/와족의 문화는 우리와 매우 비슷한 것 같지만 가장 큰 차이는, 그들은 규칙을 지키지만 우리는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와족과 그들의 살인 비율에 대해 말하면서 가장 중요한 점은 그들이 살인을 하지 않는다거나, 천성적으로 평화로운 사람이라거나, 우리 인류가 폭력적이지 않다거나, 폭력적인 친척 침팬지와 헤어진 후로는 폭력적이지 않다는 것이 아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주/와족이 인간이라는 동물이 할 수 있는 행동에 대해 너무나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그들은 분노와 공격적인 충동을 억누르는 방법을 잘알고 있으며, 그렇게 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 중요하다. 이런 우선순위가 없었더라면, 그들이 사회적 연대를 남달리 성공적으로 유지하지 못했을 것이다. 태고의 방식에 따라 살아 온 주/와족은 분노와 폭력를 매우 성공적으로 통제해 왔지만, 서구 문명이 나이나이를 장악한 1970년대 이후부터 그러한 매커니즘은 급속히 붕괴되기 시작했다. 경찰과 정부 관리들이 등장하고부터 기아와 음주, 약물, 질병, 가난이 그들을 압도하고 부터, 그들은 미치광이처럼 서로를 죽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알던 가족 전부가 적어도 한명 이상을 살인으로 잃었으며, 두명이상을 잃은 가족도 허다했다...

 

하지만 주/와족의 별자리가 모두 우리와 같은 것은 아니었다. 가장 중요한 별자리 하나는 너무 넓어서 1년에 한번 짧은 시간 외에는 볼 수 없었다. 그들은 이 별자리를 '츠슘'이라고 부르며, 레이아데스 성단과 아주 멀리 떨어진 두 개의 별자리를 포함했다....

 

그들은 영혼들이 특별히 행복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특별히 슬프지도 않다고 믿었다. 그들에게 사후 세계는 천국도 아니고 지옥은 더더욱 아니었다. 주/와족에게 사후 세계는 그저 다른 형태로 계속 존재하는 그 무엇일 뿐이다.

 

나는 후에 해가 뜨고 질 때면, 밤의 차가운 공기가 가시고 낮의 따뜻한 공기가 퍼질 때면 다른 때보다 소리가 더 잘 전달된다는 것을 알았다. 밤의 공기와 낮의 공기의 밀도가 다르기 때문이며, 소리는 밀도가 높은 차가운 공기속에서 더 멀리까지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는 새벽과 황혼에 지저귀는 것이다. 새들은 자기들의 노래가 가급적 멀리까지 들려, 자신의 영역을 최대한 많은 경쟁자들에게 알리기를 원한다. 새벽녘에, 잘 식은 땅위로 햇볕과 함께 따뜻한 공기가 빨리 퍼져 나갈 때 특히 그러한 때에 새들은 깨어나자마자 경쟁자를 생각하고는 열심히 지저귀는 것이다. 모여서 합창으로 소리를 내는 동물들은 멀리 있는 경쟁자들에게 다수임을 알리기 위해 그런다고 한다. 가령 사자나 늑대, 원숭이들이 여럿이서 소리를 내면 멀리 있는 경쟁자들에게 그런 메시지를 전달 할 수 있을 것이다.

 

가죽 옷을 걸치고 풀로 지은 조그만 보금자리에 살거나, 영양의 발자국을 쫓거나, 활과 화살을 들고 있는 부시먼의 영화나 사진이 요즘 나온다면 , 그것은 현재의 모습이 아니라 어제의 모습을 재연한 것에 불과하다. 오늘날 아무도 태고의 방식에 따라 살지 않는다. 사진을 찍기 위해 가죽 옷을 걸치는 게 아니라면, 모든 부시먼은 지배 문화의 옷 (주로 남자들은 서양의 옷, 여자들은 아프리카 원피스)을 입고 있으며 아무도 수렵과 채집으로 살지 않는다. 그들은 구할 수 있으면 일자리를 갖고 있으며, 라디오를 통해 대중음악을 듣고, 그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고, 기독교에 어느정도 영향을 받았으며, 외부세계와 국내 정치를 이해하고 있다. 1950년대 우리가 찾아갔던 칼라하리 내부는 지금 여러 구역으로 나뉘었다. 전에 부시먼의 땅이었던 25,000평방마일은 재배치되어 일부는 사냥공원이 되었고, 나머지는 반투족 목축민들에게 배정되었다. 그 곳에 살고 있는 부시먼은 사냥공원에서 쫓겨 났으며, 반투족의 땅에서도 아무런 권리를 갖지 못하여 반투족이 원하는 대로 퇴거당했다........19도선과 20도선 사이의 작은 지역만이 우리가 알던 주/와족에게 남아 있을 뿐이다. 예전 나이나이의 웅덩이 14곳 가운데 5곳만이 현재 나이나이 보호지역이라고 부르는 지역안에 있다. 그 보호지역에 사는 주/와족 사람들이 나미비아에서 땅을 조금이라도 소유하고 있는 유일한 부시먼인 것이다. 나머지 사람들은 농장의 일꾼으로 백인의 농장에서 살거나 땅 소유권 없이 목축민 마을 주변에서 살아가고 있다. 아프리카 남부의 국가들에서와 마찬가지로, 부시먼은 나미비아에서도 가장 빈곤한 인종집단으로, 그리고 실업율이 가장 높은 사람들로 존재하고 있다.

 

우리는 이제 주/와족에 대한 우리의 문화적 시각을 심사숙고해야 한다. 우리는 그들을 부시먼이라고 부르는데, 우리가 그들을 처음 만난 곳이 수풀(Bush)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그들이 식량을 얻는 방식에 따라 수렵채집인이라고 부른다. 우리는 그들의 이름을 산족이라고 바꾸어 모양새를 좋게 하려고 했지만, 비록 그 이름을 붙인 것은 서구인이 아니라 코이코이족이라 할지라도, 그러한 명칭역시 우리의 문화를 반영한다. 하지만 그사람들은 먹을 것을 구하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규정하지 않으며, 궁핍이나 열악한 환경으로 자기들을 규정하지도 않는다. 대신 그들은 공동체 연대감으로 스스로를 규정한다. 그들은 자신을 '순수한 사람들', '가치있는 사람들', '다른 곳에 무기를 두고 온 사람들', '해를 끼치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부른다. '주'는 사람이란 뜻이며, '/와'는 비록 해석하긴 어렵기는 하지만 풍광이나 채집, 가난을 가리키지 않는 것이 틀림없다. 대신 그 단어는 그들이 함께 살며 서로와 하나가 되는 방식을 나타낸다. 수풀이나 (부시) 가난이나, 우리의 윤리적 잣대, 또는 식량 생산이 아니라 그것이야말로 주/와족을 진정으로 규정하는 것이다.

 

 

 

YES마니아 : 골드 j****m 2008.01.09.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