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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적인 것을 알아내려는 노력은 부질없다. 믿음은 주관적 경험에서 비롯된다. 신념이란 개인적인 것이다. 그런 걸 평가할 기준은 없다. 언제든 어떤 형태로든 변하기 쉽다. 그 무엇보다도 믿음이란 개인의 문제다. 무슨 생각을 하건 그 생각을 누구에게 노출할 의무도 없으며, 반대로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강요하거나 주입받을 까닭도 없다. 믿음도 신념도, 그라고 영적이라고 말하는 것들 모두 변하지 않는 어떤 진리라는 가공된 이름으로 함께 엮고 꼬을 이유가 없다. 진리는 진리고 진리가 아닌 것들은 각자 자신의 신념과 믿음과 그 밖의 개인적인 차원에서 존중받을 이유가 있지만 개인적인 영역에 머무를 때 그렇다.
과학이 필요한 이유는 모르는 것을 알아내기 위해서다. 증명된 것, 확실한 것, 세상에 존재하는데 우리가 감각적으로 혹은 본능적으로는 알아내지 못하는 것들을 알아내는 것이다. 그 앎이 확실하다면 그 앎을 통해 새로운 것들을 꾸준히 만들어낼 수가 았다. 컴퓨터와 우주선과 유전자 조작 농산물 등 우리 생활에 이제는 필수불가결한 거의 모든 물건들이 그 자연의 규칙을 알아낸 덕분에 존재하게 되었고 해가 뜨고 별이 빛나는 아름다움의 정체가 무엇인지도 대략이나마 알게 되었다. 밤하늘 가득 빛나는 별들의 실체가 우리가 눈에 보이는 것과 다르다고 해서 별들이 우리에게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니까 과학은 과학인 채로 과학 이외의 것들과 섞어 희석시킬 이유가 없다. 아는 데까지 현재 인류가 가진 기술 문명이 증명하고 있는 것꺼지는 적어도 종교가 개입할 이유가 없다. 종교적 이유로 증명된 과학적 사실을 왜곡시키지 말아야 한다.
도킨스가 9.11 을 겨냥해 종교를 비판했다면, 내가 도킨스처럼 강한 불신론자도 아니라 하더라도 911 테러를 종교적 영역 내에서 합리화시킨 그 종교의 잔혹성에 대해 같은 생각이다. 만일 테러가 믿음을 기반으로 한 것이라면 근원적인 믿음 그 자체가 아무리 신의 뜻이고 성적인 것이고 이런 저런 긍정적인 이유를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 그릇된 믿음에 대한 비난은 당연한 귀결이다. 그같이 많은 생명을 앗아간 이유가 만일 종교적 이유에서라면 말이다.
도킨스가 신념에 대해 그리고 사람에 대해 아주 편협한 관점을 갖고 있는 듯하다 77
작가는 도킨스가 짜증난다며 이렇게 썼다. 이런 공개적인 비판을 보면 작가가 어떠한 논리로 그 편협성을 설명하는지 구체적 근거를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설명은 허술하다. 그저 과학적으로 단순하게 환원시킬 수도 없는 믿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과학자의 눈에 과학이 단순할 지 모르지만, 과학은 결코 단순하지 않다. 오히려 반대다. 독자로서 과학은 너무 복잡해서 아무리 기를 쓰고 이 책 저책을 옮겨다니며 읽어도 이해하기도 어렵다. '단순하게 환원'시킬 수 없는 '믿는 것들'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해서는 저자는 설명이 없다. 그러니까 설명할 수 없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독자를 납득시킬 수 없고, '단순하게 환원시킬 수 없는', '존재하는 것들'에 대해서는 저자 자신은 그것을 믿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뭘 주장하려는 건지 모르겠는데, 갑자기 그 초월에 대한 열정은 아름다운 창작물의 원동력이 된다는 것이다. 처음엔 이 책이 과학 도서인줄 알았는데 에세이에 가까웠고, 그렇다면 생각의 흐름을 따라 짜임새 없이 생각나는대로 이말 저말 적을 수도 있는 글이라는 것을 받아들일 수는 있는데 나는 당췌 과학이 아닌 초월적 존재에 대한 열정이 아름다운 창작물의 원동력이 돈다는 것과 도킨스의 편협성이 어떤 관계가 있다는 건지 알 수 없다. 저자는 거의 같은 어조로 신념이란 믿음이며 상상의 나래라고 알맹이 없는 동어반복을 반복하는데 설득력이 없고 양비론에 대한 저자의 주장을 논리적으로 뒷받침해주지도 못한다.
so what? 주장하고자 하는 게 무엇일까. 그동안 종교의 이름으로 행한 엄청난 파괴에 대해서 과학도 파과적인 무기를 만들어냈으므로 마찬가지다 라고 말하고 있는데 이것 또한 도킨스의 어떤 주장을 비판하는 건지 모르겠다. 종교가 행한 파괴는 신의 이름으로 필연성을 부여하고 정당성을 획득했지만 과학이 파괴에 기여한 건 단지 수단이었을 뿐 과학 그 자체의 목적이 아니지 않은가. 도킨스의 주장은 인간과 인간 혹은 인간과 동물간의 교감이나 정서적이고 정산적인 모든 활동을 부정한 것이라는 건가?
표지와 띠지를 통해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소설가라는 저자의 독특한 이력이 홍보에 쓰이는데, 이례적으로 대학에서 과학과 인문학(문예 창작)을 함께 가르치는 교수로 임용되었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책은 전반적으로 저자의 박식함을 곳곳에서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가 궁극적으로 주장하는 것은 과학과 함께 신의 영역을 함께 남겨놓자는 것이다. 그러면서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들 중에서 많은 사람들이 신을 믿는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숫자로 보여준다. 하지만 저자가 책을 가득 채우는 과학적 지식들은 파편화된 지식들이고 저자가 주장하는 영적인 부분과 자연스럽게 연결되지 않아 억지스럽게 보인다. 모래알처럼 과학적 지식고 주장이 별개로 따로따로 굴러다닌다는 느낌이 들었다. 리처드 도킨스가 '짜증'스럽다는 개인적인 의견을 피력하고, 분명 과학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은 신의 영역으로 남겨두어야한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였음에도 저자는 생기론자과 기계론자들을 분류하여, 한 발 물러나 그들의 주장을 소개하는데, 전자는 생명에는 특별한 속성이 존재하며, 뒤죽박죽 섞인 조직과 화학물을 생명력으로 충만하게 만들어 주는 어떤 비물질적 영적 초월적 힘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 초월척 힘은 물리적 설명을 뛰어 넘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이러한 생기론자들과 반대되는 주장을 하는 기계론자들은 궁극적으로 물리학, 화학의 법칙을 통해 살아 있는 동물의 모든 작용을 이해할 수 있다고 믿는다는 것이다. 따라서 창조론자들의 생각에 힘을 싣는 건 아니다. 다만 과학이라는 틀로 세계를 보고자 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몸을 여러 개의 코일 스프링, 움직이는 공, 추, 지렛대 등이 모여 있는 집합체로 바꿀 수 있다는 생각(159)'하는 기계론자라 칭하는 점을 주목할만 하다.
그럼 우리의 정신은? 우리의 정신은 그저 쿨롱의 법칙이나 명령에 따라 화물과 전기신호의 형태로 정보를 전달하고 저장하는 끈적거리는 신경세포들의 집합체인 뇌에 불과하단 말인가? 기계론자들은 우리를 둘러싼 자연법칙을 고려하고 세계가 물리적인 속성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전제하면 고성능 컴퓨터가 인간의 생각과 행동을 완벽하게 예측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160 정신이 무엇인지는 아직 모두 밝혀지지 않았다. 우리가 알지 못하는 것은 신의 영역이라고 생각하고 그곳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자유이다. 과학자로서의 저자는 독자에게 책을 통해 올바를 정보를 줄 책임이 있고, 인문학자(소설가)로서의 저자는 독자에게 책을 통해 감동과 교감을 줄 필요가 있다. 저자는 자신이 알고 있는 사실을 두서없이 마구 나열하여 과학적 정보를 전달하는 데 실패했고, 또한 논리적이거나 자신의 생각을 잘 전달해 감동을 주는 일에도 그리 성공한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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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에 관한 우리 시대의 스타 스티븐 호킹 박사가 별세하셨다. 그 유명한 <시간의 역사>는 90년대에 읽은 듯하고, 우주의 시작과 끝이 없을 수도 있다고 한건지 빅뱅으로 시작해서 블랙홀로 끝난다고 한건지 지금은 그저 아리송하기만 하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면 저 창공 너머 미지의 시공간의 세계는 언제나 경외롭다. 과학으로 접근하는 서양과는 다르게 정신으로 관조하는 동양의 우주관 역시 예사롭지 않다. 어릴 적에 읊조리던 천자문의 하늘천 따지 검을현 누를황 집우 집주 넓을홍 거칠황~ 天地玄黃宇宙洪荒 (하늘은 검고 땅은 누르며, 우주는 넓고 거칠다)! 그 속에 우주의 이치가 담겨 있음을... 우주(宇宙)를 한자로 보면 둘 다 집을 뜻하지만 그 특성이 다르다. 宇는 지붕(宀)과 기둥(于)으로 이루어져 집의 모든 공간(space)을 의미하며, 宙는 지붕(宀)과 유래·원인·까닭·이유(由)를 합쳐 예로부터 지금까지 이어져온 시간의 개념을 내포하고 있다. 이 둘을 합치면 거칠고 아득하게 넓은 시공간의 우주가 된다. 중국 동한 시기의 장형(張衡)은 '우의 끝은 무극(無極)하고, 주의 끝은 무궁(無窮)하다'고 했으니 지금의 서양적 우주관과 그닥 달라 보이지 않는다.
이번에 읽은 책의 주제는 우주(宇宙)다. <엑시덴탈 유니버스 The Accidental Universe>! 그대로 번역하면 <우연의 우주>가 되겠는데, 우주 분야의 과학적 지식을 다룬 책이 아니라 우주를 소재로 한 일종의 에세이라 하겠다. 하버드대와 MIT에서 교수를 맡고 있는 저자 앨런 라이트먼(Alan Lightman)의 이력을 보면 상당히 이채로운데, 그는 MIT에서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교수직을 맡은 최초의 인물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객관적 사실을 중시하는 과학자로서의 이성을 바탕으로 우주를 바라보는 인간의 감정을 꽤 철학적으로 풀어낸다. 과학으로서의 물리적 우주와 창조주(종교)의 영역인 영적 우주, 생명의 출현이 '우연'히 탄생한 것이란 것을 증명하는 다중 우주, 우주의 대칭성에서 체화된 미적 감각, 과학과 종교가 어떻게 우리의 정신 속에 함께 공존할 수 있는지, 거대하고도 덧없는 자연의 본질과 인간의 욕망, 질서와 합리성이 존재하는 우주와 인간의 비합리성, 과학의 진보가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고 있는 현상 등등 과학과 인문의 경계를 흥미롭게 넘나들고 있다.
인간은 합리성을 찬양하고 비합리성을 사랑한다. _<법칙의 우주>에서..._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글은 제목과 같은 '우연의 우주'였다. _이 글은 2011년의 베스트 에세이로 시드니 어워드 Sydney Award 수상했음_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우주는 하나밖에 없다고 생각했는데, 우주론 분야의 새로운 발견(특히 암흑에너지 dark energy)과 사고방식(영원한 급팽창 이론과 끈 이론 등)이 극적으로 펼쳐짐에 따라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물리학자들은 우리 우주가 터무니없이 다양한 속성을 갖고 있는 엄청나게 많은 우주에 불과하다는 '다중우주(multiverse)' 개념을 지지하는 모양이다. 이 개념이 옳다면 우리가 생명에 우호적인 우주에 살고 있는 이유를 창조자의 자비심에 의존하지 않고도 설명해 낸다. 우리의 존재(생명의 출현)가 그냥 우연히 우주 복권에 당첨된 거와 같은 우연의 결과(우연의 우주)일 뿐이라는 거지. 그렇다면 지금까지 오직 반증 가능할 때에만 과학적이었던, 관찰과 측정에 의한 자연의 법칙 탐구에 기본적인 변화를 필요로 하게 된다. 이런 증명할 수 없는 이론들에 대해 충분히 아름답고(elegant), 또 우주를 잘 설명할 수 있다면 그 이론이 굳이 실험적으로 검증될 필요가 없다고 주장도 나오기 시작했단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체험은 신비다. 신비는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요람이 자리 잡은 근본적
감정이다." 아무리 과학이 발달했다하더라도 우리가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저자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알려진 우주와 미지의 우주, 그리고 그 사이에 존재하는 인간의 감정을 잘 엮어내고 있다.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 너머가 바로 기이함,
예측 불가능성, 그리고 생명이 자리하는 곳이라는 견해에 공감 아니할 수
없더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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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시덴탈 유니버스 】 앨런 라이트먼 / 다산초당
인간의 몸은 소우주라고도 한다. 마음 역시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도 만들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우주를 뜻하는 단어 ‘universe’를 그 어원을 따라 풀이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상태’가 된다. 천국도 지옥도 결국 내 마음 안에 하나로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이 책의 지은이 앨런 라이트먼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소설가이자 이론물리학자로 소개된다. 우리처럼 문과와 이과로 분리해서 계속 그 길로만 가게끔 유도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두 길을 동시에 가고 있다. 두 길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문학에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 때 이미 독자적으로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시를 썼다. 문학, 과학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현재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교수직을 맡은 최초의 인물이다. 우주를 논하는 그의 글들 속에서 문학적 향취를 함께 느끼게 된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주에 관한 일곱 가지 관점을 펼쳐 보인다. 우연의 우주, 대칭적 우주, 영적 우주, 거대한 우주, 덧없는 우주, 법칙의 우주, 분리된 우주 등이다.
‘영적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를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는 질문도 필요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3이상이 기적과 영원불멸의 영혼,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름 있는 무신론자들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책과 선언을 물밀 듯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낸 주요 원동력인 과학과 함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각기의 힘을 유지하면서 인류의 정신 속에 공존하고 있다.
지은이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과학과 양립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종교적 믿음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여정의 첫 단계는 내가 과학의 ‘핵심 교리’라 부르는 것에 대한 진술로 시작되었다. 과학의 핵심 교리란 다음과 같다. ‘물리적 우주(physical universe)의 모든 속성과 사건들은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그 법칙들은 우주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핵심 교리’를 진술하고 나서 신에 대한 잠정적 정의를 내린다. “나는 신은 물리적 우주와 에너지를 지배하는,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라고 정의 내려 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은 물질과 에너지의 바깥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신은 양립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자이면서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마음의 갈등이 없을까? 최근 한 연구에서 미국 최상위권 대학에 몸담고 있는 1700명에 가까운 과학자들의 면담을 통한 결과를 보면, 그중 25퍼센트가 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원자력공학 교수인 이안 허치슨은 지은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주는 신의 행위로 인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연법칙이란 신이 이 세상에 명령을 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기술하는 것이죠. 나는 기적이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뢰 할 수 있는 지식이 과학만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 같은 경우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죠.”
현대과학은 우리 감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속속들이 밝혀내고 있다. 융합된 인간의 지식들은 그 비밀들을 해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이다. 우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앨런 라이트먼의 관점은 기존의 과학적 견지만 고수하는 우주에 대한 견해와 다른 면이 있다. 우주안의 인류, 인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주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체험은 신비다. 신비는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요람에 자리 잡은 근본적 감정이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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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엑시덴탈 유니버스 】 앨런 라이트먼 / 다산초당
인간의 몸은 소우주라고도 한다. 마음 역시 하나의 우주라고 할 수 있다. 존 밀턴은 『실낙원』에서 “마음은 지옥을 천국으로도 만들 수 있고, 천국을 지옥으로도 만들 수 있다”는 글을 남겼다. 우주를 뜻하는 단어 ‘universe’를 그 어원을 따라 풀이하면, ‘모든 것이 하나가 된 상태’가 된다.
이 책의 지은이 앨런 라이트먼은 독특한 이력의 소유자이다. 소설가이자 이론물리학자로 소개된다. 우리처럼 문과와 이과로 분리해서 계속 그 길로만 가게끔 유도하는 분위기와는 사뭇 다르게 두 길을 동시에 가고 있다. 두 길에서 괄목할 만한 업적을 남기고 있다. 어릴 때부터 과학과 문학에 재능을 보여 고등학교 때 이미 독자적으로 과학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동시에 시를 썼다. 문학, 과학 분야에서 여러 권의 책을 내고 현재 메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교수직을 맡은 최초의 인물이다. 우주를 논하는 그의 글들 속에서 문학적 향취를 함께 느끼게 된다.
지은이는 이 책을 통해 우주에 관한 일곱 가지 관점을 펼쳐 보인다. 우연의 우주, 대칭적 우주, 영적 우주, 거대한 우주, 덧없는 우주, 법칙의 우주, 분리된 우주 등이다.
‘영적 우주’에 대해 이야기하는 챕터를 “우리에게는 해답이 없는 질문도 필요하다”는 말로 시작한다. 한 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4분의 3이상이 기적과 영원불멸의 영혼, 그리고 신을 믿는다고 한다. 최근 들어 이름 있는 무신론자들이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하는 책과 선언을 물밀 듯 쏟아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종교는 인류의 문명을 만들어낸 주요 원동력인 과학과 함께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과학과 종교는 각기의 힘을 유지하면서 인류의 정신 속에 공존하고 있다.
지은이는 과학자이면서 동시에 인문학자라는 것을 강조하면서, 과학과 양립이 가능하다고 여겨지는 종교적 믿음의 종류를 체계적으로 정리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 여정의 첫 단계는 내가 과학의 ‘핵심 교리’라 부르는 것에 대한 진술로 시작되었다. 과학의 핵심 교리란 다음과 같다. ‘물리적 우주(physical universe)의 모든 속성과 사건들은 법칙의 지배를 받으며, 그 법칙들은 우주의 모든 시간과 공간에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것이다.”
과학의 ‘핵심 교리’를 진술하고 나서 신에 대한 잠정적 정의를 내린다. “나는 신은 물리적 우주와 에너지를 지배하는, 법칙에 얽매이지 않는 존재라고 정의 내려 본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신은 물질과 에너지의 바깥에 있는 존재라는 것이다. 따라서 과학과 신은 양립이 가능하다는 견해를 갖고 있다. 그렇다면, 과학자이면서 신의 존재를 믿는 이들은 마음의 갈등이 없을까? 최근 한 연구에서 미국 최상위권 대학에 몸담고 있는 1700명에 가까운 과학자들의 면담을 통한 결과를 보면, 그중 25퍼센트가 신의 존재를 믿고 있었다. 메사추세츠 공과대학교의 원자력공학 교수인 이안 허치슨은 지은이에게 이런 말을 했다고 한다. “우주는 신의 행위로 인해 존재합니다. 우리가 ‘자연법칙’이라고 부르는 것은 신에 의해 유지되고 있습니다. 자연법칙이란 신이 이 세상에 명령을 내리는 일반적인 방식을 기술하는 것이죠. 나는 기적이 역사 속에서도 일어났고, 오늘날에도 실제로 일어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신뢰 할 수 있는 지식이 과학만이 아니라는 것이 저의 관점입니다. 예를 들어 그리스도 부활의 증거 같은 경우 과학적인 방식으로는 접근이 불가능하죠.”
현대과학은 우리 감각으로는 보이지 않는 숨겨진 우주의 비밀을 속속들이 밝혀내고 있다. 융합된 인간의 지식들은 그 비밀들을 해체하기 위해 더욱 노력할 것이다. 가속도가 붙을 것이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그 우주 안에서 인간의 위치, 존재감에 대한 생각이다. 우주에 대한 연구는 인간이 지구라는 별에서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돌아보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앨런 라이트먼의 관점은 기존의 과학적 견지만 고수하는 우주에 대한 견해와 다른 면이 있다. 우주안의 인류, 인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우주를 동시에 바라보게 한다.
“우리가 겪을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체험은 신비다. 신비는 진정한 예술과 과학의 요람에 자리 잡은 근본적 감정이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말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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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한 사건도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은 책읽기에도 적용되는 것 같습니다. 우연한 사건이 일어날 확률을 설명한 데이비드 핸드의 <신은 주사위놀이를 하지 않는다>에서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졌다는 이야기를 읽은데 이어, 역시 우주가 우연히 만들어진 것이라는 이야기를 담은 앨런 라이트먼의 <엑시덴탈 유니버스>를 읽게 되었으니 말입니다. 이런 우연한 사건은 가능성이 그리 낮아보이지는 않습니다. 우연히 일어날 수도 있지만 의도적으로 읽기도 하니까 말입니다. 그리고 보니 지금 읽고 있는 닐 다그레스 타이슨의 <스페이스 크로니클> 역시 우주에 관한 이야기가 되는군요.
타이슨은 인간이 등을 바닥에 대고 자는 유일한 동물이기 때문에 하늘을 바라볼 수 있었고, 그래서 우주에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다고 하였습니다. 관심을 가지만 앎이 늘기 마련입니다. <엑시덴탈 유니버스>는 그렇게 늘어난 앎을 쉽게 정리하고 있는데, 저자가 이론물리학과 인문학을 겸비한 까닭에 과학은 물론 인문학 영역까지 넓히고 있습니다. 저자는 우주를 7개의 범주로 나누어 설명하는데, 신기하게도 첫 번째 주제는 우연입니다. 역시 우주는 우연히 탄생하였다는 것입니다. 이어서 대칭적, 영적, 거대한, 덧없는, 법칙적인, 분리된 우주라는 관점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그밖에도 우주에 관한 수많은 관점이 존재할 것이라고 하는데,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우주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우주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엑시덴탈 유니버스>에서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 영원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덧없는 본질 사이에서 빚어지는 충돌, 인간의 존재가 그저 하나의 우연에 불과할 가능성 등을 논하고 있습니다. 결론을 미리 말씀드리면 우주와 인간이 탄생한 것은 신이 창조한 것이 아니라 우연이라는 입장을 견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종교적 관점도 버릴 수는 없는 것 아니냐는 중도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리처드 도킨스처럼 과학적 논증을 가지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려는 사람이나, 물리적 우주를 이야기하면서 물리학적 증거와 알려진 자연법칙을 거스르는 내용을 제시하는 사람도 모두 짜증난다고 합니다. 전자의 경우는 우리가 아직 신의 존재를 증명할 수도 반증할 수도 없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증명할 수 있을 때까지는 판단을 유보하는 것이 맞다는 생각 같습니다. 후자의 경우는 당연히 세상이 일관된 자연법칙에 따라 움직인다는 믿음 때문인 것이겠지요.
책을 읽다가 “과학의 역사는 곧 자연법칙을 점진적으로 발견하고 수정해나가는 과정이었다.(84쪽)”라는 흥미로운 부분을 발견했습니다. 뉴튼이 공식화한 중력의 법칙은 대부분의 영역에서 아주 정확하지만, 20세기 초에 아인슈타인에 의하여 보완되어야 했고, 현재는 양자물리학에 의하여 추가로 보완되어야 하는 부분이 있다는 것입니다. 데이비드 핸드는 과학의 결론이 변할 수 있다는 점, 즉 과학의 진리가 절대적이지 않다는 것이 과학의 본질이라고 설파하고 있기도 합니다. 그리고 보니 종교는 불변의 진리를 내세우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책을 읽을 때는 저자의 주장에 몰입하여 동조하지 말고 비판적 시각으로 읽는 것이 좋다는 <비판적 책읽기>를 최근에 읽었습니다. 물론 이 책을 읽기 전에도 책을 읽을 때 의문을 달아두는 편이기도 합니다. 이 책에서도 의문이 드는 부분이 있었습니다. 사랑의 본질이나, 신의 존재,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 등이 종교적 영역에 맞는다는 저자의 생각에 동의할 수가 없었습니다. 신의 존재는 그렇다고 쳐도 사랑의 본질은 철학의 영역일 것 같고, 전쟁에서 누군가를 죽이는 것은 윤리도덕의 영역에 속하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과학자들 가운데 신의 존재를 믿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의외라고 생각합니다만, 어떻든 종교와 과학 모두를 위한 공간을 두고 있다는 저자의 양시론(兩是論)은 난처한 상황을 면하려는 속셈은 아닌가 싶어 짜증(?)이 나는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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뜻밖의 우주 [엑시덴탈 유니버스]
어린 시절에는 강경옥의 [별빛 속으로] 같은 만화책을 보며 밤하늘의 별이 빚어내는 SF적인 요소에 환호했다. 우주에 대한 환상은 우주인, 혹은 만화 속에서 고생담을 거쳐 영웅이 되는 주인공의 이미지가 다였다. 고등학교에 가서 "지구과학"을 공부하면서는, 이렇게 머리 터지게 어지럽고 어려운 걸, 왜 배워야 하나. 내가 대학에만 가봐라, 절대로, 다시는 이런 "류"의 책은 보지 않으리라, 했다.
내가 원하는 재미있고 흥미롭고 환상적이기만 한 것들을 골라 보다 보니, 어느새 바보가 되어 있더라... 알맹이는 전혀 없는 공갈빵만 먹다가 이제는 그 단맛과, 텅 빈 속이 질리기 시작하더라. TV 속에서 과학자들이 나와 한담처럼 툭툭 던지는 초끈이론, 상대성 이론 들을 알아먹지 못하는 내가... 참 못나 보이더라.
우리가 사는 동안에 우주를 직접 밟아볼 날이 올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적어도, 우주의 기원과 더불어 내가 발딛고 살아가는 지구의 기원 정도에는 관심을 기울여야 하지 않을까. 우주라는 것은 너무도 멀고 어렵고 딱딱하게만 느껴져서 쉽게 다가갈 수 없을 거라 생각했는데.
[엑시덴탈 유니버스]는 뜻밖의 우주의 모습을 보여준다. 소설가이자 이론물리학자인 엘런 라이트먼 덕분에 우주에 대한 흥미가 조금 솟아올랐다고 할까. MIT 최초로 과학과 인문학 교수에 동시 임명된 이력에 끌리기도 했고, 그 이력을 디딤돌 삼아 그의 책을 읽는 동안, 과학과 인문학의 충돌이 일어나지 않는 것에도 궁금증이 생겨났다. (하나의 예로,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처럼 과학적 논증을 가지고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증명하려 드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짜증이 난다.(...) 나에게는 영적인 삶과 과학적인 삶을 이해하기 위해 그런 구분이 필요하다. 내 안에는 종교와 과학 모두를 위한 공간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우주와 물리적 우주 모두를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이 각각의 우주는 자기만의 힘을 지니고 있다.-93)
과학의 발달로 우주는 이제 더이상 미지의 공간이 아니게 되었지만 그러면서 더더욱 많은 논쟁의 씨앗을 낳았다. 1장 <우주의 우연>에서는 다중의 우주, 다중의 시공간 연속체, 3차원 이상의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하지만 작가는 단 하나의 우주만 존재한다고 해도 일부는 보이고 일부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어한다. 우리 주변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우주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우주에 관한 서로 다른 수많은 관점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책에서는 그 일곱 가지 관점을 탐험한다. 과학과 종교, 영원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덧없는 본질 사이에서 빚어지는 충돌, 인간의 존재가 그저 하나의 우연에 불과할 가능성, 현대 기술이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도록 단절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우연의 우주, 대칭적 우주, 영적 우주, 거대한 우주, 덧없는 우주, 법칙의 우주, 분리된 우주.
우주에 대한 다양한 방식의 접근은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나들며 현대물리학과 철학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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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시덴탈 유니버스>은 MIT 최초로 과학과 인문학 교수에 동시 임명된 앨런 라이트먼이 들려주는 가장 아름답고 인간적인 우주에 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다. 이 책의 저자 앨런 라이트먼은 소설가이자 이론물리학자이다. 그는 프린스턴대학교에서 물리학을 공부했고 캘리포니아공과대학교에서 이론물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81년부터 다양한 테마의 에세이와 단편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해 현재 여섯 권의 소설, 두 편의 수실집, 한 편의 시집, 그리고 과학 관련 서적을 여러 권 펴냈다. 책 <엑시덴탈 유니버스>는 2011년 시드니 어워드 '베스트 에세이'를 수상했다. 그는 하버드대학교와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 교수를 맡고 있고, 매사추세츠공과대학교에서는 과학과 인문학에서 이중으로 교수직을 맡은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이 책의 1장 '우연의 우주'에서는 다중의 우주, 다중의 시공간 연속체, 3차원 이상의 우주가 존재할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저자는 단 하나의 연속체, 단 하나의 '우주'만 존재한다고 해도 하나의 우주 안에도 일부는 보이고 일부는 보이지 않는 여러 개의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고 주장하고 싶다고 말한다. 우리 주변에는 과학으로 설명할 수 있는 물리적 우주와 과학으로 설명할 수 없는 마음의 우주가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이 세상에는 분명 우주에 관한 서로 다른 수많은 관점이 존재한다. <엑시덴탈 유니버스>는 그 중 일곱 가지 관점을 탐험한다. 이 탐험을 통해 우리는 과학과 종교 사이의 대화, 영원을 갈구하는 인간의 욕망과 자연의 덧없는 본질 사이에서 빚어지는 충돌, 인간의 존재가 그저 하나의 우연에 불과할 가능성, 현대 기술이 세상을 직접 경험하지 못하도록 단절하고 있는 상황에 대해 생각할 수 있다. 나아가 거대한 공간 속에 서 있는 작은 존재로서, 우주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지에 대한 답을 찾을 수 있다. "우리는 기본적으로 이 우주가 우연의 결과물이며, 계산도 불가능하다는 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른 우주가 존재한다는 것도 믿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에겐 다른 우주를 관찰할 수 있는 방법도, 그 존재를 입증할 방법도 없다. 따라서 우리가 관찰한 세상과 머릿속에서 추론한 세상을 설명하려면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어야만 한다. 어디서 많이 듣던 소리라고? 신학자들은 입증되지 않은 것을 믿는 데 익숙하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그렇지 못하다. 사실 증명할 수 없는 것을 믿어야 하는 다중우주이론은 과학의 오랜 전통과 심각하게 충돌한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이라고는 다중우주를 예측한 이론들이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에서 검증 가능한 다른 예측을 함께 내놓기를 바라는 것밖에 없다. 하지만 그런 경우에도 수많은 다른 우주는 계속 추측의 영역에 머물 것이다." 저자는 인간이 어째서 자연에 널리 퍼져 있는 대칭에 매력을 느끼며, 왜 그런 대칭을 흉내 내서 무언가를 만드는지 묻는 것은 인간의 정신과 자연을 따로 구분 짓는 실수일 수 있다고 말한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자연과 똑같은 존재일지도 모른다. 우리의 뇌 역시 자연에서 발달해 나왔다. 저자는 과학이 지식에 이르는 유일한 길은 아니며 시험관과 방정식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흥미롭고 중요한 질문이 존재한다는 콜린스, 허친슨, 깅거리치의 주장에도 동의한다고 말한다. 예술이라는 광대한 분야는 분명 과학으로는 분석할 수 없는 내적 경험을 다루고 있다. 역사와 철학 같은 인문학은 만장일치의 해답이 존재하지 않는 질문을 던진다. 예술가와 인문학자들은 해답보다는 질문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경우가 많다. "나는 우리가 물리적 증거 없이, 그리고 심지어 가끔씩은 증명할 방법조차 없이 오로지 신념에 근거해서 받아들이는 것이 있다고 믿는다. 어떤 특정 소설의 결말 부분이 좀처럼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이유를 우리는 꼬집어 말할 수 ㅇ벗다. 우리가 대체 어떤 상황에서 아이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희생하는지도 증명할 수 없다. 우리는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도둑질하는 거이 과연 옳은 일인지 그른 일인지 증명할 수 없고, 심지어는 '옮음'과 '그름'의 정의에 대해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우리는 우리 삶의 의미가 무엇인지, 심지어는 삶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기는 한 것인지도 증명할 수 없다.(...) 미학, 도덕률, 철학과 관련된 질문들은 예술과 인문학을 위한 질문이며, 뭐라고 꼬집어 말하기 어려운, 전통 종교의 일부 관심사와 맥을 같이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저자는 신념, 그리고 초월에 대한 열정은 인류가 만들어낸 수많은 정교하고 아름다운 창작물의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한다. 인간이 종교라는 이름으로 타인에게 엄청난 고통과 죽음을 가했던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하지만 이 점은 과학도 마찬가지다. 특히나 20세기 이후 물리학자, 생물학자, 화학자들은 수많은 파괴적인 무기를 만들어냈다. 과학이나 종교 모두 좋은 일에 쓰일 수도 있고 나쁜 일에 쓰일 수도 있다. 우리 인간이 그것을 어떻게 사용하느냐가 문제일 뿐이다. 인간은 과학을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고 농업을 발전시키고 물질적 풍요를 키우고 소통의 속도를 높였듯이, 종교적 열정에 이끌려 학교와 병원을 짓고 시와 음악을 만들고 아름다운 사원들을 건축했다. "넓은 의미로 보면 신념이란 그저 신의 존재를 믿거나 과학적 증거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훨씬 뛰어넘는 개념이다. 신념이란 때로는 완전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에 자신을 기꺼이 내던지겠다는 의지다. 신념이란 자신보다 훨씬 큰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믿음이다. 신념이란 때로는 고요함을 존중하면서도 때로는 열정의 충만의 물결에 올라탈 줄도 아는 능력이다. 이것이 곧 예술적 충동이자 상상력의 나래이며, 영롱하게 반짝이는 이 이상한 세상에 온전히 참여하는 일이다." "내 안에는 종교와 과학 모두를 위한 공간이 존재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영적 우주와 물리적 우주 모두를 위한 공간도 존재한다. 이 각각의 우주는 자기만의 힘을 지니고 있다. 자기만의 아름다움과 신비를 간직하고 있기도 하다. 한 목사가 최근에 내게 말하기를, 과학과 종교의 공통분모는 경이감이라고 했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저자는 자연에서 보이는 모든 증거가 그렇지 않다고 말하고 있음에도 우리가 계속 불멸을 갈구하고 분명 무언가 영원불변의 존재가 있으리라 열렬히 믿는 것은 인간이라는 존재가 안고 있는 심오한 모순이라고 말한다. "우리의 바람과 희망에도 결국 필사의 운명에서 벗어날 길이 없다면, 혹시 그 덧없는 운명만이 품을 수 있는 나름의 아름다움과 웅장함이 존재하지는 않을까? 우리는 잠깐 스치고 지나가는 삶을 극복해보겠다고 몸부림치고 목 놓아 울지만, 그런 덧없음 속에서 무언가 웅장함을 찾을 수는 없을까? 덧없다는 바로 그 사실로부터 비롯되는 존재의 소중함과 가치가 있지 않을까?" (/ '5장 덧없는 우주' 중에서) 저자는 자연법칙은 합리성과 이성의 힘에 대한 우리의 신념을 가장 정확하게 표현해준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자연법칙에서조차 인간은 서로 모순되는 양면적인 욕망으로 흔들리고 있다. 우리는 질서를 좋아하지만,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드는 것도 좋아한다. 우리는 예측 가능한 것을 좋아하지만, 예측 불가능한 것도 좋아한다. 우리는 때때로 옥에 티 같은 일이 생기기를 바란다. 저자는 지금부터 100년 뒤엔 우리가 부분적으로는 인간, 부분적으로는 기계인 모습을 하고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고 말한다. 전자 귀를 달게 될지도 모르고 눈에는 X선과 감마선을 볼 수 있는 특수한 렌즈가 들어갈지도 모른다. 22세기가 되면 휴대폰에서 레이저 홀로그램으로 서신을 교환할 수 있어서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3D 영상을 보며 대화하게 될지도 모른다. 어쩌면 뇌 속에 직접 컴퓨터 칩을 이식해 인터넷의 거대한 정보에 곧바로 접속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요즘 사람들이 스마트폰과 화상통신에 적응하는 것처럼 우리 대부분은 이런 새로운 삶의 방식에 적응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이런 기술에 동반되는 심리적 변화는 좀 더 미묘하게 나타나며, 어쩌면 이것이 더욱 중요한 부분인지도 모른다.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우리는 육체와 분리된 기계와 장치를 통해 세상을 경험하는 일에 차츰 익숙해지고 있다. 얼마 전에 비행기에 타기 위해 줄을 서서 기다리는데 내 앞에 있던 한 젊은 여성이 거울을 보며 몸단장을 하고 있었다. 머리도 빗고 립스틱도 바르고 뺨에 분도 바르고. 이 모두가 수천 년 동안 계속 되어온 여성의 의식이다. 하지만 그 여성이 사용한 ‘거울’은 진짜 거울이 아니라 자가 촬영 방식으로 설정해놓은 스마트폰이었다. 여성은 디지털화된 자신의 이미지에 반응하고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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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서적의 외모를 내세웠지만, 속은 말랑말랑한 에세이를 품은 책이 있습니다. 과학과 인문학의 경계를 넘어서며 인간의 내면 그리고 인간 외의 고차원적인 생물체의 존재유무 까지도 일깨워 주는 책 《엑시덴탈 유니버스》입니다. 제목과 표지만 놓고보면 영락없는 과학서입니다. 하지만 소제목을 펼쳐보는 순간 종교적인 어쩌면 그 보다도 높은 영역을 들여다보는 내용이 될 것이란 짐작을 해봤습니다. 그도 그럴진데 우연의 우주, 대칭적 우주, 영적 우주, 거대한 우주, 덧없는 우주, 법칙의 우주, 분리된 우주인 7개의 소제목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기 때문이죠.
결국 우주가 가지고 있는 힘은 과학을 정복하거나 탐구하는 것이 아닌, 자신을 탐구하고 내 삶을 움직이는 근원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내내 이야기 하고 있었습니다. 책에도 나오지만 종교와 우주와의 공통점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바로 ' 경이감, 초월적인 경험'이 든다는 것! 범접할 수 없을 만큼의 경외감이 들지만 소우주는 인간의 마음 곳곳에 깃들여 있다는 인간 중심적인 결론으로 도달하게 됩니다. 소설가이자 이론물리학자인 저자 '앨런 라이트먼'의 책을 읽는 내내 《마션》 의 저자 '앤디 위어'가 떠올랐습니다. 앤디 위어도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인이지만 개인 블로그에 글을 연재하던 중 소설이 발간된 케이스라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두 책은 비슷하면서도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습니다. 최소한의 물리학적 용어들을 걷어 내고 쉽게 우주를 탐구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책인거죠. 우리가 끈임없이 달과 화성, 그 이상의 행성을 탐험하고자 하는 것은 심심해서가 아닙니다. 우리와 다른 존재, 혹은 우주를 연구함으로인해 그 광활함 속에 먼지 같은 나 자신의 존재를 깨닫고 좀 더 겸손함과 아낌없이 자신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이토록 크고 먼 우주를 연구하는 것은 인간의 갈망을 실현하고, 자아실현을 할 수 있는 최전선의 일이라는 생각도 들 정도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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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는 천재인 것 같습니다. 과연 천재들이 남을 이해시킬수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며 책을 읽었습니다. 특히 지구과학 분야는 물리학을 기초로하고 있고, 물리학은 이해하기에 어렵기 때문에, 어떻게 독자들에게 설명할까 궁금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저자는 우주를 7개의 카테고리로 나누어 이야기를 풀어나갔습니다. 이론이나 원리를 소설처럼 설명하려 노력한 모습을 엿볼수 있어서 적당히 이해하며 볼 수 있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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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3 연우의 글] 신은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에 대해 누구나 한 번쯤은 생각해보았을 것이다. 학교에서 과학 시간에 배운 것과 교회에서 주장하는 것이 이토록 충돌하는 경우는 그리 흔치 않기 때문이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세상의 천지만물은 모두 다 신이 만들어준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맞서는 무신론자들은 모든 일들이 다 과학적인 원리에 기반 해서 일어난다고 주장한다. 양측의 주장에서 찾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공통점은 배타성이다. 상대방의 의견은 틀린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 과연 양측의 의견은 공존할 수는 없을까 신에 대한 관점은 크게 3~4가지로 나뉜다. 한 극단에는 무신론이 있다. 신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의견이다. 중앙에는 이신론과 내재론이 있다. 이 둘은 세부적인 내용은 다르지만, 신은 존재하지만 과학을 거스르지는 않는다는 공통점이 있다. 반대쪽 극단에는 개입론이 있다. 이 이론을 믿는 사람들은 신이 적극적으로 과학을 거스르고 기적을 만든다고 주장한다. 위에서 설명한 내용으로만 본다면 과학자들은 전부 무신론 아니면 이신론일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미국 최상위 대학의 연구자 중 25%는 독실한 종교 신자인 것으로 밝혀졌다. 이와 관련해서 한 과학자는 질문에 대해 이 질문이 과학의 영역인지, 신념의 영역인지 명확한 정의를 내린다면 과학과 종교에 대한 충돌은 생기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발언을 통해 추론할 수 있는 것은 과학을 통해 신을 증명해내는 것은 불가능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과학은 관측된 사실을 통해 명확한 원리를 밝혀내는 것을 즐긴다. 객관적인 증거가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종교는 전혀 다르다. 꿈에서 신을 봤다든지, 색다른 경험을 했다든지 하는 것은 오로지 개인의 경험이다. 이 경험은 다른 사람들과 나눌 수도 없고, 증명해낼 수도 없다. 과학과 종교를 동일선상에 놓고 비교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이다. 물론 여전히 과학과 종교를 비교하며 한 쪽을 무시하고 비하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리처드 도킨스가 대표적인 예시이다. 그는 우리가 적절한 환경을 갖춘 행성에서 살고 있는 이유가 신이 있기 때문이 아니라, 지구가 수많은 행성들 중 확률적으로 생명이 살아갈 수 있는 환경을 갖춘 행성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작가는 이 둘을 비교하는 사람들을 노골적으로 ‘짜증난다’라고 표현한다. 과학을 통해 종교를 반박하려는, 증명할 수 없는 주장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은 신의 존재를 두고 다른 사람들과 격렬한 토론을 나눈다. 모 아니면 도라는 식의 이러한 끝장토론은 대부분 감정만 상한 채로 끝난다. 서로의 주장을 인정하지는 않으면서도 그 주장을 반박할 결정적인 증거를 찾지 못해 결국 싸움으로 번지기 때문이다. 다행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런 증거는 영원히 나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신을 믿든, 믿지 않든 서로의 신념을 존중해주어야 한다. 진부하게 들리기 십상인 ‘관용과 이해의 자세’가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다시 깨닫게 되는 순간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