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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흐... 빈센트 반 고흐... 왠지, 핏줄이 땡기는 그... 어느 날부터인가, 그를 괴롭히던 환청이 내게도 들리는 듯 했다. 밤이었다. 새벽이었다. 한낮이기도 했다. 귀를 팠다. 귓부리가 얼얼하도록, 고막이 시큰거리도록 귀를 후벼팠다. 그러다 문득 생각했다. 고흐도... 이렇게 괴로운 날들을 보냈겠구나. 듣고 싶지 않은 것들이 들리는 괴로움에 고통스러워하다 귀를 잘라냈겠구나. 일방적인 애착관계가 형성되었다. ... 고흐를 만나다, 이 책을 읽으면, 고흐를 만날 수 있다. 메릴린의 시는 이전에 보이지 않던 고흐 그림의 숨겨진 비밀을 알려준다. 눈부신 빛의 색채, 그 세계로 이끈다. 명멸하는 노랑과 파랑, 선연한 붓자국의 세계로 나를 인도한다. 나는 네덜란드의 운하 한 줄기가 되어 책 속을 흐른다. 붓꽃과 테라스와 우체부 룰랭의 턱수염을 흐른다. 노경실의 짧지만 깊이있는 글은, 울컥... 내 마음 어딘가를 건드린다. 이 책... 무겁다. 진중하다. 혼자 읽기 아깝지만, 혼자서만 간직하고 싶기도 하다. 고흐... 왠지 그의 육신은 흙이 되지 못했을 것 같고, 그의 영혼은 쉬지를 못하고 있을 것 같다. 어딘가를 떠돌고 있을 것 같다. 고흐... |
![]() 불멸의 화가, 그의 뜨거운 작품을 책으로 만나다
고흐를 만났다. 아니, 고흐의 그림을 만났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 것이다. 이 책을 통해서 그의 작품을 만났고 어제 고흐전을 통해 그의 그림을 다시 만났다. 책에서 보았던 우체부 룰랭의 초상, 씨 뿌리는 사람, 밀짚모자를 쓴 자화상이 눈에 띄어 반가웠다. 그러나 정말 이상하다. 그림을 보고 온 것이 분명한데 나는 불멸의 화가 고흐를 만났다는 생각이 드니 말이다. 그와 나 사이에는 많은 말이 필요 없었고 시조차 읊을 필요도 없었다. 그의 그림들을 묵묵히 들여다보면 그의 붓끝을 통해 그의 마음이 오롯이 녹아있음이 보인다. 그에게 묻고 싶은 말이 많았으나 둘 사이에는 그저 깊은 침묵만이 흐를 뿐이었다.
이 책을 읽으며 평소 미술전시회에 관심이 없던 내가 고흐전은 꼭 가보리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를 찾아간 날은 공교롭게도 휴관이어서 그를 만나보지 못했다. 설레는 마음으로 동생과 함께 어제 그를 다시 찾아갔다. 전시회를 다녀오면 서평을 더 잘 쓰거라 생각했었는데 그건 나의 오산이었다. 그의 일생과 작품 세계에 대해 새로운 것을 많이 알게 된 건 사실이지만 이상하게도 그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나의 마음은 무거워지고 가슴이 자꾸 뭉클거리며 아파졌다. 왜 그의 그림이 아닌, 그의 무거운 삶이 자꾸만 내 깊숙이 파고드는 것인가. 왜 그는 전시장의 조명만큼처럼 암울한 삶을 살다간 것인가. "누구든 예술가가 되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나쁘지 않다. 마음속에 저절로 활활 타오르는 불과 영혼을 가지고 있다면 그걸 아무도 억누를 수가 없다. 이처럼 나에게는 그림을 그리는 일이 구원과 같은 것이다. 내가 그림을 그리지 않았다면 지금보다 더 불행했을 테니까." (39쪽) "지나간 삶의 기억들, 이별한 사람들이나 죽어버린 사람들. 영원히 지속될 것 같던 시끌벅적한 사건들…… 이 모든 것이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것처럼 기억 속으로 되돌아올 때가 있습니다. ……나는 지금처럼 앞으로도 고독하게 살아갈 것 같습니다. 내가 진정 사랑했던 사람들도 망원경을 통해 희미하게 바라보는 수밖에는 달리 방법이 없습니다." (102쪽)
난 사실 화가와 그림에 대해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음악계에서 바흐와 헨델이 쌍벽을 이루듯 미술계에서 고흐와 고갱이 그런 사이라는 것뿐. 둘 중 누가 귀를 자르고 자화상을 그렸는데 그게 고흐인지 고갱인지조차도 헷갈리던 나였다. 인터넷으로 고갱의 작품을 검색해 보니 고흐의 작품과는 확연히 달라서 실소를 하였다. 이 책에 나오는 고흐의 작품은 그가 머물렀던 장소를 시기별(네덜란드→ 파리→ 아를→ 셍레미→ 오베르 시기)로 구분하면 더욱 쉽게 이해할 수가 있다. 그는 자신의 짧은 생을 예감이라도 한 듯이 그의 혼과 정열을 그림에 온통 쏟아부었다. 아를과 셍레미 내의 정신병원조차도 그의 붓을 꺾을 수는 없었다. "예술은 질투가 심하다. 자신이 가벼운 병 따위에 밀려 두번째 자리를 차지하게 되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그래서 나는 이제부터 예술의 비위를 맞출 것이다. 그래서 너는 곧 좀 더 만족스러운 그림을 받아보게 될 것이다." (78쪽) "물감을 묻힌 붓을 한번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바람과 태양과 들판에서 대단한 것을 그려내려는 욕심 없이 그저 그리는 것, 그 일에 몰두해서 캔버스를 채워 나간다. 그것이 진실된 것, 본질적인 것을 잡아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61쪽)
그의 천재성이 그를 미치게 한 것일까. 하늘에 미치다 못해 하늘로 훌쩍 떠나버린 무심한 사람. 그러나 불멸의 화가란 명성 그대로 몇백 년이 지나고 나서도 그는 우리 가슴과 그의 작품 속에 살아 있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시 속에서도 살아 숨 쉬고 있다. 든든한 후원자였던 동생 테오와 주고받았던 편지가 700편에 가까웠다고 한다. 책에 수록된 고흐의 편지글이 무척 인상 깊었는데 그 글을 통해 삶에 대한 통찰력과 그림에 대한 열정, 고뇌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자신의 귀를 자른 다혈질에 반미치광이 천재 화가로만 여겼던 것이 나의 편견이었음을 깨닫게도 되었다. 그의 열정은 작열하는 태양 그 자체였다. "삶은 이런 식으로 지나가 버리고, 흘러간 시간은 되돌아오지 않는다. 이처럼 일할 수 있는 기회도 되돌아올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나는 언제나 맹렬히 작업한다." (69쪽) (고흐에 관한 정보는 반 고흐전 사이트 http://www.vangoghseoul.com 에서 발췌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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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그린 두 번째 그림은 바깥에서 바라본 어떤 카페의 정경이다. 푸른밤 카페 테라스의 커다란 가스등이 불을 밝히고 있다. 그 옆으로 별이 반짝이는 파란 하늘이 보인다. 밤 풍경이나 밤이 주는 느낌 혹은 밤 그 자체를 그리는 일이 아주 흥미롭다."
고흐의 그림으로는 밤의 테라스가 먼저 떠오른다. 한쪽벽에 걸려있는 그의 작품이 우리가족과 함께 한지가 꽤 여러해 지난거같다. 하지만 그 그림에 대한 깊이는 절대적으로 부족했었다.
...우리가 안식을 주리라~술잔을 내려놓고 붓을 등뒤에 내려두고 그 낡은 구두도 벗어버리고 맨발로 오라~오라~아무것도 쥐지 않은 손으로 오라~ 아무에게도 요동치지 않는 심장으로 오라~흐르는 눈물을 닦지말고 그대로 오라~맨발로 오라~~ 이 글을 외우기라도 하듯이 읽고 또 읽고...그림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 이제는 고흐작품에 대한 설명을 내집에 오는이들에게 입이 닳도록 내뱉어질거 같다.
책 속에 담겨있는 그의 작품들을 보고 있노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는 표현이 맞을까? 미술을 유난히 못했던 내게는 부러움의 대상이 미술쪽으로 유능한 친구들이었다. 손재주를 타고 났음에도 그림만은 뜻대로 하지를 못했던거 같다. 그래서 전시회 한번 제대로 가보질 못했던것일까? 우리 아이들에게만은 되물림을 ??해주고 싶지 않음인지 이러한 서적들이 눈에 많이뛴다. 서당개 삼년이면 ~그러한 말들이 대변이라도 해주듯이 작품들을 보면 볼수록 익숙해지면서 좋아지기 시작했다.
노란색 계열과 어우러진 강한 색채감이 시선을 끄는건지 ..처음에 고흐의 작품이 그랬다. 내가 알지못했던 그의 작품속으로의 여행을 다니면서 그는 왠지 슬퍼보인다는 생각이 들었다. 두꺼운 느낌..뭉퉁한 느낌...
고흐는 그림을 그리지 않을 때에는 그림을 그리기위해 걷는다고 한다. 아를의 공원입구라는 그림에서 그의 생활을 엿볼수 있기도 하다. 반고흐의 의자를 보면서는 왠지 생각하는 의자인가 싶은 착각을 불러일으켰다. 우리집 거실 한켠에 놓여있는 아이들 벌칙용 의자로 활용하고 있는 생각하는 의자... 그런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의 의자는 아를의 태양이 왕처럼 앉아 있다고 얘기해주고 있지만말이다.. 어디에서든 고흐의 작품을 보면 무척이나 반가울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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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에 고흐 작품전을 한다는 광고를 본적이 있다. 고흐하면,사실 그의 강렬하고,독특한 색체가 돋보이는 작품들과 그의 광기어린 열정적인 예술적인 삶 때문에 나는 개인적으로 그를 좋아하고,또한 그에 대한 호기심이 많은 편이다. 그래서,그에 대한 책인 이책 "고흐를 만나다"가 무척 읽고 싶었다. 읽고 싶었던 만큼 기대감이 컸던 나는 읽으면서 이책에 대해서 독특한 글로 인해서 색다른 느낌과 또한 그의 많은 그림들을 볼수 있어서 아주 만족 스러웠다.
전에 미술책을 읽으면서,거의다가 어느 한 예술가에 대한 책이 아니라,어느주의나,어떤 시대 같은 여러화가들을 같이 묶어서 설명한 책들만 읽었었는데,이책 처럼 고흐 한 사람에 대한 책처럼 어느 한 예술가에 대한 책은 처음이라 아주 뜻깊었다. 어느 한 화가에 대한 작품들만 볼수 있는 전문적인 책이란 점이 가슴설레게 했고,여느 다른 책처럼 예술품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아니라,예술품에 대한 간결한 작가의 시나,고흐가 남김 간결한 말로잡다한 글들을 과감히 생략하면서,오직 그의 작품위주로 실려있는 이책은 예술작품에 대한 감상이 작가의 펜대에 의해 획일적으로 쓰여진게 아닌,책을 읽는 독자가 유스럽게 그의 작품을 감상하도록 한 점이 무척 독특하면서도 마음에 들었다.
그의 많은 작품들중 사람들에게 많이 알려진 유명한 작품과 또한 덜 알려진 작품까지 망라한 이책은 그리 두껍지 않은 두께로 인해 자칫 지루하기 쉬울 두께가 아니어서 좋았고, 또한 얇은 두께만큼 글들을 생략하고 오직 그의 작품위주로 실려 있어서,예술품에 대한 감동이 더욱 진하게 느껴졌다.
고흐의 작품들을 보면,강렬한 색채,특히 노란색 계열의 물감을 많이 사용한 점과 두껍게 칠한 색으로 인해 붓의 움직임이 진하게 느껴지는공통점이 있는것 같았서, 그의 독특한 작풍(style)을 느낄수 있다는 개인적인 생각을 해본다. 그의 그림을 보면 개인적으로 고흐의 예술에 대한 열정과는 정반대로 생전에는 인정받지 못했던 천재화가의 쓸쓸한 불행한 삶이 느껴져서 특히 기억에 남는다.
모처럼 고흐의 작품을 아주 생생하게 느껴지는 책을 만나서 아주 즐거웠던 순간 이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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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행히도 그림에 대한 재능은 전혀 타고나지 못했다. 아주 간단한 그림조차 어린 아이의 손놀림처럼 보이기 일쑤니까. 하지만 그만치 아름다운 그림에 대한 열망은 강한듯 하다. 좋은그림, 훌륭한 그림을 찾아내는 안목은 모자랄지라도 아름다움에 대한 끌림은 감동으로 다가온다.
이번에 만나게 된 책 '고흐를 만나다' 에서는 여태 읽었던 다른 미술잡지와는 또 다른 느낌을 전해주었다. 미술관 산책을 하는듯한 다른 도서와는 달리 이 책은 고흐에게 성큼 다가선 기분을 안겨준다. 처음 책을 받아보았을때 얼핏 살펴본 느낌은 '시와 그림이 있는 풍경' 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게 시는 다소 어려운 것이기에 읽기에 부담스러운 책이 되지 않을까 살풋 걱정스럽기도 한다.
하지만 책은 나를 놀랍게 만들었다. 시와 짧은 에세이, 그리고 고흐의 편지글로 이루어진 이 책은 읽는 내내 감동을 불러일으킨다. 맥엔타이어의 시는 그저 아름다운 자연에 대한, 삶에 대한 읊음이 아니라 고흐의 그림을 풀어주고 더한 감동을 주며 그림을 이해할수 있도록 도와준다. 한구절 한구절 그의 그림에 대한 내가 미처 느끼지 못했던 부분을 새겨주고 알려주고 있다.
"요즈음 이런 생각이 자주 든다. 사람이야말로 모든것의 뿌리라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물감과 석고만으로 작업할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속에서, 즉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작업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예술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 -27쪽. 고흐의 편지글 중. 이렇게 함께 적혀있는 짧은 구절들의 고흐의 편지글 속에서 그저 그의 그림이 주는 아름다움만이 아닌 그의 삶이 비춰지는 그림을 조금 더 온전히 이해할 수 있다. 조금은 거친듯한 투박한 그의 붓터치 속에서 느껴지는 부드럽고도 강한 그의 열망을 느낄수 있게 만드는 그의 편지글과 시는 한편의 짧은 에세이와 함께 향기로움을 가져다 준다.
책에는 여태 소개되었던 그의 작품 중 내게는 낯선 그림들이 실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틀에박혀있던 생각이 아닌 좀 더 다양하게 그를 이해할 수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많은 그림이 실려있지는 않지만 그저 아름다운 그림한편의 감상이 아닌, 보다 깊이 그림을 이해하고 만날수 있게 만들어준 책에 참으로 감사하고 싶다.
"물감을 묻힌 붓을 한번 움직이는 것이 얼마나 신기하고 놀라운 일인가? 바람과 태양과 들판에서 대단한 것을 그려내려는 욕심 없이 그저 그리는 것, 그 일에 몰두해서 캔버스를 채워 나간다. 그것이 진실된 것, 본질적인 것을 잡아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가장 어려운 일이다. " -61쪽. 고흐의 편지글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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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흐를 만나다> 언제 한번쯤은 고흐를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을 항상 하곤 했다. 그건 우연히 알게된 그가 그의 동생에게 보내는 편지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열심히 노력하다가 갑자기 나태해지고, 잘 참다가 조근해지고, 희망에 부풀었다가 절망에 빠지는 일을 또다시 반복하고 있다. 그래도 계속해서 노력하면 수채화를 더 잘 이해하고 있겠지. 그게 쉬운 일이었다면, 그 속에서 아무런 즐거움도 얻을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야겠다." -반 고흐 세계적인 고흐가 동생한테 편지를 보냈다고 한다. (출처: 기억이 안나요;;)
세상의 유명한 화가도 이런 고민에 빠져 있었다. 마치 보잘 것 없는 나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세상의 모든 짐을 지고 살고 있는 듯 하며, 엄마한테 투덜거리고 있고, 혼자 화를 내기도 했다. 그와 나의 다른 점이 바로 역경을 바라보는 마음가짐은 아닐까? 그 후 나는 고흐에 관한 그림은 많이 보려고 노력하고, 그의 미공개 작품이 뉴스에 나오면 마치 어린 날의 “얼음땡”놀이를 하듯 얼어버렸다. 나는 고흐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뛴다. 그의 그림에 있는 색감, 붓을 질감, 구조, 그의 감각을 느낄 수 있는 그 기회조차 나에게 행복이라는 단어로 다가오고 있다. 그러면 그의 그림을 잘 설명할 수 있을 정도의 능력이 되어야하지만 나는 그런 능력조차 없다. 단지 그의 그림과 내가 같은 공간에서 숨 쉬고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한 것이라고 말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이번 기회에 <고흐를 만나다>라는 책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이 책은 단지 그림만 있는 것이 아니다. 고흐의 말과 고흐에 말에 대한 작가의 생각과 시가 그림과 어울려져 있다. 고흐의 말을 들 을 수 있는 것만으로도 나는 이 책에 가치는 실로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독자를 끌어들이는 듯 흡입력을 지닌 책, 그 책이 바로 <고흐를 만나다>가 아닐까 싶다. 나는 고흐가 한 말 중에 “아름다운 공원 입구”라는 작품과 함께 있던 말이 가장 인상에 남는다. “요즈음 이런 생각이 자주 한다. 사람이야말로 모든 것의 뿌리라는 생각. 그렇기 때문에 물감과 석고만으로 작업할 게 아니라 사람과 사람 속에서, 즉 사람의 온기를 느끼며 작업하는 게 더 가치 있는 예술작업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다.”- <고흐를 만나다> 중에서 그의 말처럼 인간의 중심이 되는 것을 잊고 사는 현실에 다시 인본주의에 대해서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지게 되었다. 죽은 후에 화가로써 성공한 고흐, 그가 그 당시에 얼마나 힘든 경제적인 상황에서도 그림의 끈을 놓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에, 신에 감사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마치 타임머신을 탄 것처럼 시간의 벽과 공간의 벽을 넘어서 나와 고흐의 만남이 가능케 했던 이 책은 읽기 전에도, 읽으면서도, 읽은 후에도 나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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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고흐를 좋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던 작품은 이 책의 표지로 사용된 '밤의 테라스'와 '별이 빛나는 밤'이다. 두 작품을 통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색을 지닌 물체들은 자체가 지닌 하나의 색깔 외에도 빛을 통해 빚어낼 수 있는 색깔이 수천수만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유독 파랑에 대한 집착을 강하게 보였던 나의 눈에는 고흐의 손길이 간 노랑에서도 - 하양 빛을 머금은 노랑색 별에서 조차 - 파랑 빛의 기운을 읽어내곤 했더랬다.
[고흐를 만나다]는 작품들에 대한 자세한 설명이 깃들여진 책이 아니다. 각각의 작품을 바라보는 메릴린의 시와 노경실의 단상, 그리고 고흐의 그림이 어우러진 작품집이다. 때로는 그림을 그리는 고흐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그림 속의 주인공이 되어 볼 수도 있다. 작품과 함께 실린 메릴린의 시들은 쉽게 읽어 내려갈 수만은 없었다. 한 줄 한 줄에 포함되어진 생각의 깊이를 따라가기엔 내 감정의 깊이가 너무 얇지 않은가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난 고흐가 참 좋다. 강렬한 터치와 소박한 정경의 어울림은 고흐 말고 어느 누가 이토록 아름답게 그려낼 수 있을까. 그는 거창한 문명을 주제로 작품을 구상하기 보다는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 속에서의 삶을 더 소중히 여겼으리라 감히 생각해 본다. 그래서 해의 영향력이 미치는 모든 사물과 삶을 이토록 어여삐 그려내지 않았을까. 텅빈 방, 농부의 휴식, 그리고 나무와 바위 등, 고흐의 시선이 머무는 모든 곳에 해와 별과 달인 자연의 빛이 머물고 그 옛날 그의 시선은 이제 나에게로 돌려진다. 그래서 나는 그와 같은 시선으로 그가 바라보았던 자연과 삶을 마주할 수 있게 됐다.
고흐의 작품 앞에서 나는 메릴린의 감정을 함께 나눈다. 이 책이 참 좋다. 그래서 얄밉다. 조금만 더 이 책이 컸으면 좋았겠다라는 욕심을 부려서이다. 고흐의 그림을 가질 순 없지만, 이렇게 스물 하고도 두 점의 그의 그림을 내 품에 품을 수 있어서 난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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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젯밤에 고흐를 만났다. 그의 그림을 보면서 처음으로 고흐와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새벽의 차디찬 기운이 옷 속으로 스며들 때 우리는 다음을 기약하며 헤어졌다. 아쉬웠다. 아침이 되자마자 다시 그를 만나러 갔다. 그러나 아무런 이야기도 나눌 수가 없었다. 아침의 또렷한 정신으로는 그를 제대로 만날 수가 없는가보다. 다시 밤을 기다려야겠다.
회색 펠트 모자를 쓴 자화상 (1887,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고흐만의 붓터치가 안면을 감싸고 있는 그림. 덕분에 그의 얼굴은 무표정했지만 어떤 움직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면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생동감 같은 것. 옆눈짓으로 무언가를 보고 있는 그, 약간 토라진 것 같기도 하고. 무엇을 보고 있는거지? 굳게 다문 입술, 그에게 물어보아도 대답해 줄 것 같지는 않다.
반 고흐의 침실 (1888, 암스테르담, 반 고흐 미술관) 삐뚤삐뚤한 방, 이런 방에서는 도저히 휴식을 못 취할 것 같다. 방이 너무 불안정해 보인다. 그래도 고흐에게는 편안한 곳이겠지. 그는 일부러 그의 방을 이렇게 그려냈겠지. 자신만이 이 편안한 공간을 누리기 위해서, 아무도 불편할 것 같아 찾아오지 않게 만들려고. 침대 위로 액자가 떨어질 것 같다. 똑바로 걸어주고 싶은데.
아를의 공원 입구 (1888, 워싱턴, 필립스 컬렉션) 왜 벤치에 앉아있는 사람은 모두들 검은 옷차림일까. 노랑의 길과 극명하게 되조되는 색감. 아마 9월과 10월의 어느 날이겠지. 나뭇잎이 햇빛이 많이 투과된 곳만 노랗게 물들어 있으니. 고흐는 외로웠다. 사람들과 함께 하고 싶었다. 그러나 정작 공원으로 나가니 함께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일부러 검게 표현했으리라. 자신보다 그들이 더 외로워 보이도록, 더 우울해 보이도록 말이다.
우체부 룰랭의 초상 (1888, 디트로이트, 디트로이트 아트 인스티튜트) 풍성한 수염도 멋지고, 짙은 색의 제복도 멋지다. 아마도 동생 테오와 편지를 주고 받다가 우체부와 친해졌겠지. 무언가를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는 듯, 그러나 자세히 보면 그 눈빛에는 무언가가 비어있다. 일이 힘들었던 것일까, 아님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씨 뿌리는 사람 (1888, 오테를로, 크뢸러 뮐러 미술관) 발 아래 빌밭이 마치 파도처럼 석양에 넘실거린다. 지는 태앙인데 너무 찬란하다. 자신의 마지막 모습을, 가장 찬란하게 보여주고 싶었던 것일까. 마치 고흐 자신처럼.
바위들 (1888, 휴스턴, 휴스턴 미술관) 어떻게 바위를 그릴 생각을 했을까. 그러니까 고흐다운 것이겠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림이 없는 고흐와는 달리 나무는 바람 부는대로 제 몸을 향하고 있다. 나무에 이는 보라빛 바람을 잡고 싶다.
아이리스 (1889, 로스앤젤레스, 폴 게티 미술관) 노랑이 주조를 이루던 이전의 그림과는 다른 색감이 마음에 든다. 병실 창 밖에 피어있는 이 아이리스를 보면서 고흐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정적이거나 우울한 것 보다는 오히려 활기가 느껴지는 그림이다. 치료 덕분인가.
노란 하늘과 태양이 있는 올리브 숲 (1889, 미니애폴리스 아트 이스티튜트) 씨 뿌리는 사람에 등장하는 태양보다 덜 강렬한 태양. 반면에 대지는 꿈틀거리고 있다. 이전보다 색채가 많이 절제된 느낌이다.
연인이 있는 관목 풍경 (1890, 오하이오, 신시내티 미술관) 고흐에게 연인이 생겼기 때문일까. 그림의 분위기가 완전히 달라졌다. 색감도 싱그러운 톤으로 바뀌었다. 그의 거친 붓터치마저 부드러워졌다고나 할까. 다정히 걸어가고 있는 연인이 보이다.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앞모습이리라. 그들이 걸어와야 할 길이 그들의 앞에 놓여있다. 과연 그들은 얼마만큼 걸어갔을까.
클림트의 노랑은 "황금빛 유혹"이라 했다. 그렇다면 고흐의 노랑은 "열정과 갈망"이 아닐까. 그는 끊임없이 태양을 그렸다. 그는 달과 별을 밤에 뜨는 태양이라며 태양이 사라진 밤 하늘을 그렸다. 해바라기, 진정한 그의 자화상은 이것인지도 모른다. 쉬지않고 태양만 바라보는 해바라기꽃과 고흐, 그 열정이 닮았다.
2007/11/28 by 뒷북소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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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센트 반 고흐. 나는 그의 그림을 알기도 전에 그의 전기를 읽고 처음 만났다. 자신의 귀를 잘라버린 미치광이 화가에게 뜻모를 동정과 함께 호기심이 일었다고 해야할까? 그 이후부터 그의 그림들을 눈여겨 보기 시작했던 것이 그를 좋아하게 된 계기가 된 것 같다. 그리고 생각해보면 꽤 절묘한 순간에 그를 알았다. 그림하면 맑디 맑은 수채화를 쉽게 떠올리던 그 때, 왠지 모를 투박함과 거칠게 칠해진 물감의 유화들이 슬금슬금 매력적으로 다가오던 그 때, 그의 그림을 보았다. 무언가에 관심을 갖고(그것이 호감이든 호기심이든) 그것을 가까이 하면 친해지듯 나도 고흐와 그렇게 친해졌던 것 같다. 그림을 알지도 못했던 내게 두터운 캔버스를 들이댔던 한 미친 남자가 나는 좋았다. 단순히 그가 미치광이라는 이유만으로.
그를 알면 알수록 그는 내 가슴을 아리게 만들었다. 언제나 혼자였던 남자. 아니 그는 스스로를 고립시킨 것일까? 부모의 따뜻한 사랑을 느끼지 못했고, 막역한 동생 테오에게마져 씁쓸한 형이 되어야 했고, 유일한 벗이던 고갱과의 큰 싸움으로 절교했으며 압생트에 취해 시력장애를 얻어야 했으며 화상들에게마져 외면당한 화가였다. 그림을 팔지 못하는 화가라는 애달픈 넋두리같은 인생을 살았던 남자다. 그러나 그림은 그를 좌절케하지 못했다. 오히려 그는 '그림' 으로 그 진저리 나는 인생을 살았던 사람이다. 더 안타까운 것은 고흐, 그는 그림으로 명성을 단 한 번도 누려보지 못하고 세상을 떴다는 것이다. 당대에는 아무도 돌아봐주지 않던 외로운 화가였다. 어쩌면 나는 그의 그림보다 그의 기구한 일생이 더욱 안쓰러웠는지도 모르겠다. 마치 소년소녀가장의 눈물겨운 수기를 읽고 마음에 잔물결이 이는 것처럼.
그의 그림 '밤의 테라스(1899)' 가 표지를 장식한 이 책 <고흐를 만나다>는 색다른 미술서적이었다. 고흐와 그의 작품에 관한 책은 적잖이 봐왔지만 대개 당시 작품을 만들던 때의 그의 일화나 그림의 감상과 이해를 돕는 책들이었다. 그런데 이 책은 그와는 아주 다른 느낌의 책이었다. 메릴린 챈들러 맥엔타이어의 고흐에 관한 시와 고흐 자신이 했던 말들.... 그리고 노경실씨의 단상들이 기록된 책이었다. 이 책은 그의 그림을 어떻게 감상해야 하는지, 고흐가 어떤 사람인지 말해주지 않는다. 음.... 뭐랄까? 고흐의 그림이 걸린 작은 방 안에서 커피를 홀짝이며 한 편의 시를 읽는 느낌? 여느 책들이 고흐와 그의 작품에 대해 백과사전같은 객관화된 정보를 주려한다면 이 책은 지극히 주관적인 감상을 허용하는 책이다. 그림에 관한 정보라고는 소장처와 시기, 작품 사이즈뿐이다. 이런 점으로 보자면 고흐에 대해 알고자 하는 이들보다는 그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조용하게 그를 추모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데 더 적합한 책이 아닐까 싶다.
그리고 이 책의 좋았던 점은 수록된 그림들의 색채가 선명했다는 것이다. 고흐 작품의 매력이라면 색채들의 어우러짐과 붓의 터치 아닐까? 그런데 그것이 잘 살아있어 코앞에 대고 보면 마치 물감냄새가 나는 듯했다. 그리고 그림을 비교적 크게 실어 조금 더 자세히 감상할 수 있었다. 하나 더 앞서 말한 것처럼, 고흐 자신이 직접했던 말들을 통해 그의 그림 열정과 인생관을 엿볼 수 있었다는 점이다.
지금 서울 시립미술관에서는 '반 고흐' 전이 성황리에 열리고 있다. 이 책을 덮고난 지금, 어서 그곳에 가서 그를 보고 싶어진다. 그는 불멸의 그림으로 남았다. 얼마나 많은 외로운 가슴을 달랠까? 무언가에 미친자들에게 결코 절망은 없노라 말할까? 생을 살게하는 단 하나를 열망하라고 말할까? 그는 그가 낳은 사각의 화폭 안에 절대 사그라지지 않는 고귀한 한 줄기 빛으로, 영원한 노란빛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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