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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무 살 사랑을 시작하면서 사랑은 연민으로부터 비롯되는 게 아닌가 생각했습니다. 새로 사귀기 시작한 처녀의 내력을 듣고 있노라니 연민의 정이 솟아났고 마침내 사랑하는 마음으로 발전했으니 말입니다. 그런데 어떠한 인생일지라도 그 사람이 살아온 내력을 알게 되면 연민의 정이 생기지 않을 도리가 없을 것입니다. 우리의 인생이라는 게 고통스러운 여정과 다를 바가 없기 때문입니다. 오죽하면 인생을 일러 고통스런 바다라고 했겠는지요. 그러니 부처님 같은 분은 자비를 가장 앞에 내세우는 덕목으로 말씀하셨을 것입니다. 그리하여 사람 하나하나를 살펴보는 일은 감동을 받는 일이기도 하지만 고통스런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스님들을 비롯한 민초들의 삶을 다루고 있는 『만인보』24권을 읽으면서도 자주 통증이 동반되었습니다. 게다가 부귀도 영화도 누리지 못하고 허망하게 마무리되는 민초들의 인생은 참담하기 그지없습니다. 우리 둘레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덧없음입니다.
아침 이슬
쇤 기침소리 나오셨습니다 이른 아침 묘시(卯時 ) 전 벌써 인복이 어머니께서는 아래뜸 고래실 논에 가 계십니다 곱게 빗은 낭자머리 시집온 듯 단정하셨습니다
우북우북 자라난 나락 잎새 손 베일 서슬 나락 잎새 그 나락 잎새 끝 푸른 이슬방울들 털어 연신 바가지에 담으십니다
논두렁길 삼베 치맛자락 다 젖어 순 벙어리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털어 담은 이슬바가지 조심스러이 들고 돌아가 인복이 먹일 인삼죽을 끓이십니다
벌써 6년짼가 7년째인가 누워 있는 아들에게 봄에는 참꽃이슬 할미꽃이슬 여름에는 나락이슬 가을에는 국화이슬 단풍이슬 받아다 인삼죽 닭죽 끓이시고 심지어는 징그러운 뱀도 잡아다 푹 고아내 약물을 내십니다
이승의 지성이 저승의 무정이신지
끝내 그 인복이 폐병 끝 눈감았습니다 그 인복이 어머니 고씨 인복이 무덤에는 한번도 발걸음을 하지 않으셨습니다 어머니의 마음이야 숫제 낮 박새 밤 소쩍도 없는 무덤이셨습니다
덧없는 인생이라서 그런지 『만인보』24권에는 세속의 인연을 끊고 산으로 들어간 사람들의 생이 다채롭게 펼쳐집니다. 시인 자신 열여덟 새파란 나이에 출가하여 ‘일초(一超)’라는 법명으로 절집 생활을 하다가 환속한 경력이 있는 만큼 승려들에 대한 깊은 관심은 당연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인의 비판 정신은 뚜렷합니다. 이를테면 해인사 주지였다가 친일을 한 승려 이회광과 곽법경을 준열하게 꾸짖는가 하면(「그 두 사람의 수작」), 3․1운동 독립선언서 서명자 33인 중 불교승려 2명인 백용성과 한용운의 상좌들이 스승들과 함께 고통을 겪는 것에 대해 칭송합니다(「두 상좌」). 그런가 하면 아름다운 미녀 때문에 잠 못 이루는 사미승들도 다루고 있고(「뜬눈」), 금강산 자장암의 한암 스님과 덕숭산 수덕사의 만공 스님이 주고받은 편지(「서찰 육개월」)에 대해서도 들려줍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시는 시인이 어떤 승려를 높이 바라보고 있는지 확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가난한 제자들
신라로 돌아온 의상은 호화로웠다 문무왕이 스승으로 받들었다 그러나 의상은 도성을 떠났다
자지러지게 도성으로부터 먼 곳에 있었다
제자들도 왕족 귀족은 삼갔다 어린 노비였던 지통 찢어지게끔 가난한 부엌도 없는 방 한칸의 집 나무꾼 진정 상원 양원 표훈 이런 가난한 제자들을 가르쳐 화엄학 화엄사상 화엄종의 으리으리한 그 큰 난바다의 파도소리를 밤낮으로 창화(唱和)하게 만들었다
제자 표훈의 어머니가 세상 떠난 뒤 제자의 상심을 달래어 세상 떠난 제자 어머니의 망령을 위한 화엄경 법회를 열어주었다
문무왕 성 쌓기를 반대하였다 백성이 죽어갑니다 백성이 신음합니다 우리 백성을 혹사하지 마소서 평화는 성에 있지 않고 백성의 마음속에 있사옵니다
그는 산중에서 아늘거리는 잎새 밑에서 늘 세상의 아픔을 보았다 한 티끌로 세상을 보았다
일러 그런 것을 꽃이라 꽃들이라 하던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