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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 명의 제왕이 읽은 책들의 정치적 의미를 찾아서...
"열 명의 제왕이 읽은 책들의 정치적 의미를 찾아서..." 내용보기
세자가 공부하는 교재는 소학, 효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대학연의, 상서(尙書), 주역, 예기, 춘추좌전, 통감강목 등이었다.(신명호 지음 ‘조선의 왕’ 37 페이지) 국왕이 공부한 교재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세종대에 사서, 삼경, 춘추, 통감강목, 대학연의, 송감(宋鑑), 사기, 통감속편, 성리대전 등이었다. 성종은 예기, 근사록, 정관정요, 한서, 고려사, 국조보감 등을 추가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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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자가 공부하는 교재는 소학, 효경, 논어, 맹자, 중용, 대학, 대학연의, 상서(尙書), 주역, 예기, 춘추좌전, 통감강목 등이었다.(신명호 지음 조선의 왕’ 37 페이지) 국왕이 공부한 교재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 세종대에 사서, 삼경, 춘추, 통감강목, 대학연의, 송감(宋鑑), 사기, 통감속편, 성리대전 등이었다. 성종은 예기, 근사록, 정관정요, 한서, 고려사, 국조보감 등을 추가했다.

 

그 후 교재는 국왕의 취향에 따라 더 추가하기도 하고 빼기도 했다. 영조 대에는 소학, 심경, 대학연의보, 동국통감, 성학집요, 절작통편 등이 중시되었다.(심재우, 한형주, 임민혁, 신명호, 박용만, 이순구 등 지음 조선의 왕으로 살아가기’ 131 페이지)

 

윤희진의 제왕의 책에서 구체적 내용을 살펴보자. 이 책에는 10 명의 군주가 즐겨 읽은 책이 나온다. 한 사람의 고려 왕과 아홉 사람의 조선 왕이 즐겨 읽은 책이다. 고려 왕 광종의 정관정요, 조선 왕 태종의 대학연의, 세종의 자치통감, 성종의 소학, 연산군의 춘추, 선조의 주역, 효종의 심경, 영조의 예기, 정조의 서경, 고종의 효경, 조선책략 등이다.

 

광종은 정관정요를 읽은 뒤 연호를 선포하고 스스로 황제를 칭해 강력한 군주가 되겠다는 뜻을 간접적으로 드러냈다. 당나라의 역사가 오긍이 지은 정관정요에는 당 태종이 신하들의 간언을 잘 받아들이는 명군으로 그려져 있다.(‘정관: 貞觀은 당 태종 이세민의 연호다.) 그런 까닭에 고려의 신하들은 광종이 이 책을 애독하며 집권 초기 신중한 모습을 보이는 것을 보며 광종이 자신들의 말을 잘 듣는 현명한 군주가 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27 페이지)

 

광종은 후주 태조의 왕권강화 작업에 깊숙이 관여했던 쌍기를 데려와 과거제를 도입, 집권 세력의 물갈이를 시도했다. 이는 무인 출신 호족들과 그 자제들의 정계 진출을 제도적으로 막는 장치였다.(28 페이지)

 

대학의 의미를 풀어쓴 대학연의는 독서를 즐기지 않았던 무장 태조가 밤중에 이르도록 자지 않고 읽은 책이자 조준이 이복동생 방석에게 세자 자리를 빼앗기고 울분을 참지 못하던 이방원에게 권하며 이것을 읽으면 나라를 다스릴 수 있습니다.”라고 말한 책이고 세종이 100번도 더 읽었다는 책이다.

 

대학은 정호, 정이 형제가 예기에서 중요 구절을 발췌해 편찬한 책이다. 대학연의는 진덕수가 대학과 자치통감강목을 종합해 지은 책이다. 경제통 조준은 정조전과 함께 조선 개국공신의 하나였으나 정도전과 다른 길을 걸었다. 정도전이 방석을 지지한 것과 달리 이방원을 지지한 것이다.

 

태조는 세자로 방번을 주장했고, 신하들은 방번은 절대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방석이 타협안으로 선택되었다. 저자는 대학연의를 임금이 되는 과정에서 많은 무리수를 두어 아버지를 비롯 여러 신하들의 외면을 받은 태종이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하들의 마음을 얻기 위해 열심히 읽은 책으로 풀이한다.(55 페이지)

 

세종이 즐겨 읽은 책은 자치통감이다. 세종은 제왕이 뒤기 위한 체계적인 교육을 받지 못한 채 왕이 되었다. 즉위 두 달이 채 안 된 시절에 경연을 연 세종은 첫 책으로 선택한 대학연의 공부를 4개월만에 마쳤다. 양녕대군이 6년이 걸렸으니 4개월은 그 1/18의 시간에 불과한 짧은 시간이다. 대학연의 이후 세종이 선택한 책은 북송의 사마광이 19년에 걸쳐 완성한 총 291권의 역사서인 자치통감이다. 당시 조정 신하들은 대학, 중용 등 경서를 금과옥조로 삼고 연구할 뿐 역사서는 소홀히 다루었다. 세종은 누구보다 자치통감의 역사적 가치와 정치교재로서의 가치를 높이 평가했다.

 

성종은 소학을 즐겨 읽었다. 훈구세력들을 압박했으나 이른 죽음을 당한 예종의 뒤를 이어 열세 살의 잘산군이 왕이 된 것은 훈구세력들 입장에서 이미 성장한 월산대군보다 어린 잘산군이 수월해 보였기 때문일 것이다.(선왕 예종의 아들 제안대군은 네 살의 어린 나이였다.) 성종은 경연에서 소학을 공부하겠다고 한 첫 임금이었다. 성종이 소학을 읽겠다고 한 지 20여일만에 폐비 사건이 일어났다.

 

폐비 논의가 시작되던 무렵 승정원에서 다음 경연에 읽을 책으로 사서와 대학연의를 추천했다. 성종은 소학을 주장했다. 대학연의에 따르면 부부 불화의 일차 책임은 성종에게 있다. 수신이 이루어지지 않아 제가에 실패한 것이기 때문이다. 소학에 따르면 문제의 원인은 교화가 이루어지지 않은 중궁 탓이다. 성종이 소학을 강조한 해가 재위 7, 8년 무렵인 것도 흥미롭다.

 

김종직으로 대표되는 사림파를 본격적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신호탄으로 해석할 수 있다. 김종직의 제자인 김굉필이 심히 아낀 조광조에 이르러 소학은 개인의 실천을 위한 책에서 사회적 실천을 위한 책으로 의미가 확대되었다. 연산군은 춘추를 즐겨 읽었다. 건국 이래 궁궐에서 원자의 자격으로 태어난 왕은 단종 이후 연산군이 처음이다.

 

세종까지는 조선 건국 이전에 태어난 왕들이었고 문종은 아버지가 충녕대군이던 때에 태어났으니 궁 밖에서 태어났고, 예종은 아버지가 수양대군이던 시절 태어났으니 역시 궁 밖에서 태어났다.(109 페이지) 연산군이 태어난 것은 생모 윤씨가 후궁에서 왕비로 발탁된 지 3개월 후다. 춘추는 노나라의 역사서다.

 

선조가 즐겨 읽은 책은 주역(周易)이다. 선조는 이황, 기대승, 이이 등 최고의 성리학자들로부터 대학, 소학, 논어, 맹자, 시경, 서경 등 유학의 기본서들을 착실하게 배워나갔다. 난세 때문이었는지 선조는 임진왜란 이후 주역에 몰두했다. 다른 책은 거의 읽지 않고 오직 주역만 읽은 것이다. 선조가 주역만 읽자 이를 비난하며 다른 책을 권하는 신하들도 있었다. 선조는 주역을 마음 다스리는 용도로보다 사물에 접응(接應)하는 역학용으로 보았다.

 

효종은 심경을 주목했다. 남송시대의 진덕수가 마음 수양을 목적으로 쓴 심경의 핵심 내용은 경()이다. 효종이 심경을 선택한 것은 산림(山林)에게 손을 내미는 정치적 제스처였다. 효종은 10만의 정예군만 있으면 북벌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러나 전란으로 황폐해진 조선에서 10만의 군사를 기르는 것은 쉽지 않았다.

 

효종이 북벌에만 올인해 민생을 돌보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김육(金堉)의 제안을 받아들여 충청도와 전라도 지역에 대동법을 실시해 경제를 살리기 위해 애썼다. 효종이 심경을 선택한 것은 북벌을 위해서였다. 물론 효종의 북벌과 송시열의 북벌은 달랐다. 효종의 북벌은 군사적인 것이었고 송시열의 북벌은 명나라의 은혜를 잊지 말고 우리의 힘을 길러 국교를 단절하자는 명분론적인 것이었다.

 

기해독대(己亥獨對)1659년 효종이 송시열과 단 둘이 마주앉아 북벌에 대해 논한 일을 말한다. 이 독대 이후 두 달만에 효종은 급서(急逝)했다. 효종은 심경을 마음을 다스리는 책이 아닌 정치적 목적으로 대했다.

 

영조는 예기를 즐겨 읽었다. 영조는 임인옥사(壬寅獄事)와 깊이 관련된 인물이다. 임인옥사는 1722(경종 2) 노론 측에서 세 가지 방법을 이용해 경종을 시해하려고 했다는 목호룡의 고변을 계기로 일어난 사건을 말한다. 임인옥사는 삼수옥(三手獄)이라고도 한다. 자객을 시켜 살해하는 대급수, 독약으로 죽이려 한 소급수, 숙종의 유언을 빙자해 폐출시키는 평지수를 말한다.

 

숙종의 유언이란 숙종이 노론 대신 이이명과 가진 독대에서 연령군(명빈 박씨 소생으로 숙종의 3)과 연잉군(영조)을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이 음모에 연잉군이 가담했다. 연잉군은 역적의 수괴였다. 그러나 경종은 그를 죽이지 않았다. 고립된 연잉군을 구한 것은 영의정 조태구를 비롯한 소론 온건파였다.

 

경종 재위시 왕위를 세제(世弟)인 연잉군에게 넘기라는 주장을 한 노론 4대신을 법으로 처단하라고 한 김일경을 연잉군이 왕이 되어 국문할 때 김일경은 스스로를 신()이 아닌 나:라 칭해 영조를 국왕으로 인정하지 않는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영조가 사도세자에게 애써 대리청정을 시킨 것은 대리청정이 임금이 아플 때 통상적으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노론이 주청하고 자신이 받아들인 대리청정이 결코 역모가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려 한 것이다.

 

예기는 영조가 읽다가 눈물을 흘린 책이다. 영조가 예기를 논하다가 임금이 죽고 세자가 탄생했다는 대목에 이르러 경종을 생각하며 흘린 눈물은 그리움과 죄책감의 눈물이라기보다 자신을 변호하기 위한 정치적 눈물 즉 악어의 눈물이라 할 수 있다. 자신들의 힘으로 영조를 왕위에 앉혔다고 생각한 노론은 영조를 압박해 소론에게 정치 보복을 가하려고 했다.(소론 강경파는 경종 독살설을 확신하며 영조를 왕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영조에게 소론은 경종 처단 역모 연루로 고립된 자신을 구해준 사람들이었다. 영조는 노론 대신 소론 온건파의 손을 들어준 정미환국을 단행했다.

 

정조는 서경을 즐겨 읽었다. 영조 31년 강경 소론들이 벌인 나주벽서 사건을 계기로 영조는 노론으로 돌아섰다. 노론을 이를 계기로 소론을 역적으로 몰아붙였다. 사도세자는 영조와 노론의 생각이 동의하지 않았다, 피비린내 나는 정치보복을 막으려 한 것이다. 정조는 강력한 국왕 중심의 정치의 실마리를 서경에서 찾았다. 서경은 요, , 탕왕, 문왕, 무왕의 말을 기록한 고전이다.

 

노론은 늘 임금에게 요순시대를 본받으라는 말을 했다. 정치는 신하들에게 맡기고 임금은 유학 공부에 전념하라는 말이다. 정조는 서경을 재해석했다. 정조와 남인은 서경 해석에서 뜻을 같이 했다. 가장 훌륭한 임금으로 평가받는 요순도 흉작에 분발하여 천하 사람을 바쁘고 시끄럽게 노역시켰고 정밀하고 엄혹하여 천하 사람들을 공손하게 움츠리고 떨게 하여 일찍이 털끝만큼도 감히 거짓을 꾸미지 못하게 한 정치가였다는 것이다. 정조는 서경을 근거로 노론과 다르게 요순을 도덕적 모범자로서의 국왕이 아니라 정치의 한복판에서 권력의 중심을 잡았던 적극적인 정치가로 본 것이다.

 

고종은 효경과 조선책략을 즐겨 읽었다. 신정왕후의 뜻을 따라 고종은 효경을 첫 교재로 받아들였다. 신정왕후는 고종의 양모다. 조선책략은 1881년 수신사로 일본에 갔던 김홍집이 귀국할 때 가지고 와 고종에게 직접 바친 책이다. 저자는 황준헌이다.

m******1 2020.01.05.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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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대로 찾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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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심양일기를 읽으며 궁금했었다. 왜 그는 심양에서 조차 <서경>을 공부했을까?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런 책을 찾았다. 과연 임금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을까...   <제왕의 책> ‘제왕’과 ‘책’이라는 특별한 두 존재의 만남을 소재로 우리 역사의 역동적인 현장들을 새롭게 찾아가는 교양서이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각자의 철학에 의해 책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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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현세자의 심양일기를 읽으며 궁금했었다.

왜 그는 심양에서 조차 <서경>을 공부했을까?

 

그런 질문에 답하기 위해 이런 책을 찾았다.

과연 임금들은 어떤 책을 읽으며 공부를 했을까...

 

<제왕의 책> ‘제왕’과 ‘책’이라는 특별한 두 존재의 만남을 소재로 우리 역사의 역동적인 현장들을 새롭게 찾아가는 교양서이다.

서로 다른 상황에서 각자의 철학에 의해 책을 선택한 10명의 왕, 그 왕의 통치 스타일이 역사의 장면 장면과 맞물리면서 임금들의 생각을 알게 하는 책이다.

 

 

<소학>을 읽었던 성종과 <상서>를 읽었던 정조 등등 

그런 책을 통하여 .....그 시대를 애써 헤쳐 나가려던 임금들의 고민을 알게 되었다

s***h 2009.05.13.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제왕의 책>과의 특별한 만남~!
"<제왕의 책>과의 특별한 만남~!" 내용보기
책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제목에 '책'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싶으면 웬지 한번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제왕의 책>을 만났다.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감을 품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 제목에 '책'이라는 글자가 있었던 탓도 있지만, 제왕이 좋아했던 책들, 제왕이 주로 읽었던 책들은 무엇이었을까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주로 접했던 역사서에서 다루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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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좋아하기 때문일까? 제목에 '책'이라는 글자가 박혀 있다 싶으면 웬지 한번 더 눈길이 가는 것은. <제왕의 책>을 만났다. 책장을 펼치기 전부터 기대감을 품었던 이유는, 앞서 말했듯 제목에 '책'이라는 글자가 있었던 탓도 있지만, 제왕이 좋아했던 책들, 제왕이 주로 읽었던 책들은 무엇이었을까에 관심이 갔기 때문이다.

 

그러고보니, 내가 주로 접했던 역사서에서 다루었던것은 주로 인물에 관한 것이었다. 인물의 업적이나 행적을 주로 다루었는데 이번 책에서는 거기다 '책'이라는 요소가 가미되어 웬지 모르게 들떴던것 같다. '제왕'과 '책'이라는 특별한 두 존재의 만남, 그 속으로 들어가보자.

 

이 책에서 나는 광종, 태종, 세종, 성종, 연산군, 선조, 효종, 영조, 정조, 고종을 만났다. 책속의 대부분의 왕들은 우리가 수없이 접했던 드라마속, 영화속, 소설속 인물들과 겹친다. 그래서 더 읽기가 수월했던지도 모르겠다. 소설이나 드라마에서 만난 인물들은 재구성된 인물이긴 해도 역사의 뼈대-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서에 기록된 진실-는 왜곡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역사서를 누가 기록했느냐에 따라, 우리가 모르는 그 어떤 역사의 이면이 숨겨 있을지도 모르겠지만.

 

사실 처음에 책을 읽을땐 조금 딱딱하다는 생각이 들었더랬다. 국사 교과서를 읽는듯한 느낌이랄까. 딱딱하고 교과서적인 문체가 조금은 지루하기도 했다. 그런데, 몇장을 넘기고 책속에 빠져들자, 중간 중간 일화도 언급되고, 내가 알지 못했던 왕에 대한 부분에서는 눈이 빛나기 시작했다. 역사서라 그런지 교과서적인 문체를 벗어날수는 없었지만, 저자가 제왕과 그 책에 관련된 내용을 조사하느라, 얼마나 많은 시간을 들였는지 알것 같았다. 더불어 몰랐던 역사의 또 다른 면을 들여다 보았다는 점에서 웬지 모르게 뿌듯했다.

 

그러나, 저자 역시 말했든 이 책을 덮은후 아쉬운 점도 있었더랬다. 고려시대의 왕들을 많이 다루지 못했으며, 책속에서 다루고 있는 인물들은 우리가 자주 접했던 왕이라는 점이다. 좀 더 많은 인물에 대해 알고 싶은 것은 나만의 욕심인건지. 그리고 또 하나 아쉬었던 점은 제왕들이 어떤 책을 주로 읽었는지 이 책을 통해 알수는 있었지만, 책의 비중보다는 왕의 행적이나 업적의 비중이 더 높았다는 점이다. 물론 이 점은 달리 해석해 볼 수도 있다. 이러 이러한 책으로 인해 이러한 업적을 남겼다고 말이다. 자료의 제한과 공부 부족이라는 현실적인 장벽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저자의 말을 접하며, "내 말이~"라고 혼자서 안타까워해보지만, 그래도 이 책으로 인해 제왕의 책이라는 이색적인 부분에까지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게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있지 않았나 싶다.

 

왕들이 읽었던 책들은 많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었다. 역대 제왕들에게 책이란 흥미위주로 읽거나 지식이나 교양을 얻는 매체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어쩌면 그건 당연한건지도 모르겠다. 제왕이라는 자리에서 바라본 책은 '책이상의 그 무언가'의 가치를 지닌 존재였을꺼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왕들은 그 책을 통해 통치술을 배우고, 처세술을 익힌다. 왕들이 접했던 책들은 다양했지만, 읽은 책들은 비슷했다. 그 중에서도 왕들이 좋아하고 자주 접하고 거론했던 책들을 하나씩 꼽고 있어 그 책들에 대해 자세히 알 수 있는 계기도 되었다. 실제로, 각장이 끝날때마다 왕들이 주로 읽었던 책에 대해서 두페이지 정도로 소개해 주고 있다. 그 덕분에 그 책이 왕에게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뿐만이 아니라, 그 책 자체에 대해서도 알 수 있어 좋았던 것 같다. <정관정요>, <대학연의>, <자치통감>, <소학>, <춘추>,<주역>, <심경>, <예기>, <서경>, <효경/조선책략> 의 책들은 사실 대부분이 생소했는데 이 책의 도움으로 조금이나마 지식을 쌓을 수 있어 의미있는 시간이었다.

 

어떤책을 읽으냐에 따라 통치스타일이 달라지고, 사상이 달라지니 제왕의 책은 그저 책이 아니라는 생각이 강하게 든다.

 

가장 인상깊게 읽었던 부분은 '세종'에 관련된 부분이었다. 훈민정음을 창제했던 분이어서 그랬던 탓도 있지만, 방대한 독서량을 보면서 '역시'라는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 분이셨기 때문이다. 본인 스스로 경서는 모두 100번씩 읽었고, 딱 한가지 책만 30번 읽었으며, 경서 외에 역사서와 기타 다른 책들도 꼭 30번씩 읽었다고 했다. 한번 읽은 책은 다시 집어들지 않고, 그나마 두세번 읽는 책들이라고 해봐야 잘 이해되지 않고 난해해 두고 두고 보려고 놔둔 책 몇권이 고작인 나로서는 '우와'라는 말이 절로 나올 수 밖에.

또한, 다른 왕들과 달리 세종이 정독한 <자치통감>은 중국 북송의 사마광이 군왕의 통치에 도움을 주기 위해 48세 때 시작해 죽기 직전까지 무려 19년 동안에 걸쳐 완성한 역사책으로 총 294권에 이른다는 것이다. 10권, 20권짜리가 아닌 294권짜리 <자치통감>을 정독하고 더 나아가 이 책에 주석을 단 <자치통감훈의>편찬을 주도했다니, 예사 인물이 아니었음에 틀림없다.

백성을 생각하는 마음이 뛰어나신 분이신데다, 많은 업적을 남기신 분이시라 이미 존경하고 있었지만, 이번기회에 또 다른 부분을 보고서 깨닫는바가 크다.

 

이렇듯, 책속에서 나는 제왕과 그 제왕의 책을 만난다. 때론 실용서로, 때론 정치적 도구로 사용되어진 이러한 제왕의 책들을 보면서 책이 인간에게 주는, 독서가 인간에게 주는 힘에 대해 느끼며, 많은 생각들을 해본다. 그런데 책을 덮으면서 든 엉뚱한 생각하나. '그런데 제왕들은 이런 책들만 읽었을까?'

내 눈에 비친 이런 책들은 머리아픈 책들인데, 역시 책들도 주인을 잘 만나야 되나 보다. <제왕의 책>과 함께한 역사여행은 '제왕'과 '책'이라는 특별한 만남처럼 나에게도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다.

p******1 2007.12.25.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