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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돌아가면 기다리는 이 하나 있을지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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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돌아가면 기다리는 이 하나 있을지니 집을 떠나 먼 길을 헤매고 돌아오면 아득하게 그간 길 위에서 부딪힌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사건 사고들이 꿈속에서 한바탕 무성영화처럼 지나가는 밤을 맞게 되리라. 희뿌염하게 밝아오는 신 새벽,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이부자리 위에서 깨어나 허망하게 깜박이는 전깃불에 눈 씻고 내 돌아온 자리가 떠난 자리였음을, 돌고 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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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곳에 돌아가면 기다리는 이 하나 있을지니


집을 떠나 먼 길을 헤매고 돌아오면 아득하게 그간 길 위에서 부딪힌 수많은 인간 군상들과 사건 사고들이 꿈속에서 한바탕 무성영화처럼 지나가는 밤을 맞게 되리라. 희뿌염하게 밝아오는 신 새벽, 아직 온기가 가시지 않은 이부자리 위에서 깨어나 허망하게 깜박이는 전깃불에 눈 씻고 내 돌아온 자리가 떠난 자리였음을, 돌고 돌아 다시 제 자리로 돌아왔음을 새삼 느끼리라.

사십 여년의 긴 여정을 거쳐 그간의 고단한 세상사를 풀어내는 자리가 바로 떠난 자리였음을 깨닫게 해 주는 이청준님의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라는 소설집은 더 이상 구원과 용서의 자리로 상징되는 고향의 의미를 상실한 현대인들에게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자리가 바로 “어제”였으며 “오늘”이고 또한 “내일”이라는 자뭇 의미심장한 깨우침을 준다. 작가가 ‘소설질’이라 폄하하는 그 기나긴 여정 끝에 우리에게 보여주는 것은 광복과 6. 25, 4. 19와 5. 16 그리고 80년 5월의 광주와 87년 6월 항쟁을 거쳐 2002 한일 월드컵으로 하나 되는 격변의 세대 속에 하나하나 살아있는 인간군상의 모습, 즉 나의 조부모와 부모를 거쳐 나에게 이르는 기나긴 피돌이의 여정이다.


왜 우리는 그곳을 잊었는가?

알차게 엮인 이 소설집을 손에 들고 그 묵직함을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필자 혼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라는 쓸데없는 위안을 해 본다.

일곱 편의 단편소설과 네 편의 에세이 소설은 그 한 편 한 편이 주는 삶의 무게가 만만치 않기 때문이다. 작가는 이 책을 읽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잊고 있는 그곳을 조심스레 보여주려 한다. 우리가 그곳을 잊은 이유는 아픔 때문이라는 것을 글을 써 내려가는 작가도 그 글을 읽는 독자도 알고 있다. 그러나 애써 그것을 드러내려 하지 않는 것 또한 그 아픔 때문이다. 비상식적인 역사 속에서 우리는 모두 얼마간의 부채의식을 지녀왔고, 조부모와 부모로부터 상속받은 부채에서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자유로울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 땅 대한민국에 사는 한 말이다.

그러나 그것을 이제와 말해본들 무엇하랴? 그 아픔의 역사에 작가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화해를 시도한다. 바로 ‘잊음’을 통해서 말이다.


“그런 이 동네에 저 지하실을 되살려 놓으면 그거야말로 지금까지 잊고 지내온 험한 내력을 죄 되살려 놓는 일 아니겄어? 그래서 새삼 동네사람들 마음을 이쪽저쪽 시끄럽게 갈라놓으면 무슨 좋은 노릇이 생기겄어. 우리가 다 죽고 난 뒷세상 일이라면 몰라도 그 시절을 직접 살아낸 사람들이 이쪽저쪽 입 다물고 지낼망정 아직도 서로 이웃해 살고 있는 마당에! 어느 시절 어느 한쪽에 그럴 힘이 있다고 제 편에 이로운 것만 골라 살려서 쓰겄냔 말여”  

                                                         P134-135 [지하실] 中


“우린 그렇게 살아왔어! 한동네 이웃간에 서로 그렇게 지내 왔길래 한집 지하실로 서로 다른 위험을 피하러 찾아가는 일도 생기지 않았겄어!” 

                                                         P127 [지하실] 中


우리는 이렇게 “잊음”을 통해 “아픔”을 치유하는 작가의 길을 따라 나서게 된다.


왜 우리는 그곳을 ‘다시’ 잊어야 하는가?

“혹은, 조국을 세 번 잊은 사람 이야기”라는 부제가 달려 있는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라는 소설 속에 등장하는 주인공은 그토록 바라던 조국과 혈육을 찾은 뒤 조국을 다시 한 번 잊으려 단절을 시도한다. 그 영문을 알 수 없어 우두망찰하는 아우에게 주인공은 “용서”하기 위해 다시 그곳을 잊으려 한다는 뜻 모를 말만 남길 뿐이다.

용서하기 위해 잊어야 한다는 생경한 대위의 공식을 만들어낸 작가는 그것이 받아들이고 감싸 안는 행위임을 우리들에게 상기시키며 그간 우리의 현대사에서 민초들이 각박한 삶 속에서 잃을 수밖에 없었던 정신적 가치의 부활을 시도하는 노력으로도 해석될 수 있을 것이다.


“자네. 내가 어렸을 적 고국을 떠난 뒤로 그 조국을 두 번씩이나 잊어야 했다고 한 말 기억하는가? 처음 한 번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조국과 조국의 전쟁을 용서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런데 이제 나는 다시 세 번째로 조국을 잊어야 했고, 잊어가고 있는 참일세. 이번엔 여기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종생까지 살아가야 하는 내 삶을 용서하기 위해서 말이네”

                                         P78-79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中


고향, 이제는 돌아가야 할 그곳

이청준이라는 작가에게 고향은 그 의미가 각별한 곳이다. 그간 작가의 소설쓰기의 여정을 살펴보면 작가는 항상 무엇인가에 결핍을 느끼고 있었으며 그 근원을 찾아 헤매는 여정 속에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남도소리의 한 자락 끝을 잡고 헤매던 [남도사람 연작]<서편제, 선학동나그네 등>뿐 만 아니라. 언어에 대한 근원탐구인 [잃어버린 말을 찾아서], 그 외 인간의 존재이유를 탐구했던 [자유의 문],[소문의 벽]등 여러 편의 소설을 관통하며 그에게 글쓰기를 강요했던 중요한 힘을 바로 부재, 결핍에서 오는 막을 수 없는 욕망에서 찾을 수 있다.

이청준 문학의 중요한 획을 긋고 그 결핍의 해소를 모색한 작품은 [눈길]과 [축제]로 이어지는 과거와 고향, 그리고 부모 자식 간의 화해와 용서를 구하는 작업의 결과물이다.

[눈길]에서 며느리의 집요한 추궁에도 불구하고 아들에 대한 보호를 그치지 않는 노모와 뒤돌아 누워 흘리는 눈물로서 노모에 대한 용서를 비는 아들의 모습 속에서 한참을 헤매다 돌아와도 따뜻하게 맞아주는 고향을 작가가 화해와 용서의 자리로 정의했음을 알 수 있다.

이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는 그간 작가가 그려왔던 ‘고향’이라는 단순한 화해와 용서의 자리가 좀 더 발전하여 우리 민족전체의 삶의 근원, 즉 신화와 설화의 자리로 격상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개인적인 추체험의 영역으로서의 고향은 화해와 용서의 매듭을 묶고 푸는 자리로서 역할을 다 하지만, 이 고향의 개념이 신화. 설화의 자리에 오르면서 신화의 원형적인 모성이 발휘되는 공간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신화는 세계는 산 자와 죽은 자, 인간과 신과 자연이 의좋게 공존하는 곳으로 용서와 화해, 포용과 어울림의 어머니가 거하는 곳이다.

이 책에 실린 [천년의 돛배]와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에서 작가의 이야기가 신화로 탈바꿈하는 글쓰기를 목격하는 것 역시 이 책을 손에 쥔 독자들이 느낄 수 있는 큰 즐거움이리라


황톳길, 남도의 들녘

이 소설집을 처음 받아들고 면지에 일자를 기록하면서 내 머릿속에 떠오른 이미지는 붉은 황토였다. 남도의 들녘으로 차를 몰아가다보면 눈에 들어오는 생경한 풍경 속에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은 잘 익은 고구마빛의 붉그레한 황토였다. 320페이지가 넘는 분량의 도톰한 이 책의 외관은 끈끈하고 찰진 황토에서 끄집어낸 고구마처럼 알차다. 수확이 끝난 가을밭에서 수수하게 피어오른 한 줄기 구절초처럼 표지를 장식하고 있는 김선두 화백의 거침없고 투   박한 글씨체와 그림도 이 책의 아름다움을 더하는 요소이다.

따지고 보면 작가의 그간 주옥같이 아름다움을 발하는 소설들도 모두 이 남도의 붉은 황토 속에서 자양분을 받아 이루어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이 소설집의 차분한 표지 디자인과 면지의 컬러설정은 이 책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다. 오래 지니기에는 양장본의 제본이 휠씬 유리하지만 그것 또한 작가의 작품이 가지는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을 터, 투피스 정장의 화장이 짙은 여성이 쥘부채를 쥐고 판소리 한 대목 부르는 것처럼 어울리지 않을 것이렸다. 내용과 형식적인 아름다움이 잘 조화 된 편집체재에도 박수를 보내고 싶다.


꿈 깨면 길 잃지 말고 집으로 바로 오너라!

현실-꿈-현실로 이어지는 환몽구조는 우리나라 가장 오래된 서사구조중 하나이다. 꿈속의  삶은 즐거울 수도, 괴로울 수도 있지만 중요한 건 그것은 지상에 발 디디고 서는 현실이 아니라는 점이다. 꿈에서 깨어날 때 우리는 어디로 가야할 지 몰라 서성이며 혹은 방황하기도 한다. 소설집의 서두에 실린 발문에서 문학평론가 김윤신 선생이 말했듯이


“하늘과 땅이 아득하여 앞이 보이지 않을 때, 제일 먼저 보고 싶은 것의 하나가 이청준씨 소설이오”


라며 간절한 길찾기를 했다. 하늘은 꿈과 이상이요, 땅은 현실이라 할 때 우리가 갈 곳 잃어 헤매는 중이라면 이청준님의 소설은 나침반이요, 지도라 할 수 있으리라. 긴 방황의 끝에 돌아온 그곳은 대문간을 지키고 섰는 어머니가 장명등 하나 밝히고 있는 곳, 멀리서 그 노란 불빛만 봐도 위로가 되는 곳이다. 이 책을 선택하는 모든 이들은 이제 길 위에서 외롭지 않으리니 이만하면 이청준님 또한 사십 여년 간의 소설쓰기를 통해 큰 산 하나를 만든 것이 아니겠는가?

그 산을 오르는 내내 바라 볼 불빛 하나 얻게 된 것 만으로도 이 책을 가슴에 품을 수십 가지 이유를 아우를 수 있으리라.


“선X야! 엄니다. 그 동안 너 혼자 우리 식구 멕여 살리느라 참 고단했지야! ... ... 나도 몇 년 전 아펐을때 꿈 많이 꿨니라. 그때 부처님 덕분으로 좋은 데 많이 구경 댕겼다. 그랑께 니도 꿈꾸는 동안이라도 맛난 것 많이 묵고, 쉬엄쉬엄 좋은 데 구경 많이 하거라, 그라다가 꿈 깨면 길 잃지 말고 집으로 바로 오니라... ... 꼬옥! 우리 집 기둥아.”                 P248-249 [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 中


g****6 2007.12.17.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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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각의 기억, 희망의 다른 이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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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불에 타지 않았더라도 이미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졌던 것이나 다름 아니라는 말씀에 번쩍 실감이 났다. 이어령 교수 이야기이다. 차와 사람이 파도처럼 스쳐간 것은 섬처럼 서 있던 그곳을 지나간 시간의 흐름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 정도가 없어져 줘야 다른 것들에 겨우 눈을 돌릴 거'라며 살신성인한 거라고 덧붙였다.   스스로의 행위를 감히 '소설질'이라고 말할 수 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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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불에 타지 않았더라도 이미 우리 마음속에서 사라졌던 것이나 다름 아니라는 말씀에 번쩍 실감이 났다. 이어령 교수 이야기이다. 차와 사람이 파도처럼 스쳐간 것은 섬처럼 서 있던 그곳을 지나간 시간의 흐름과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나 정도가 없어져 줘야 다른 것들에 겨우 눈을 돌릴 거'라며 살신성인한 거라고 덧붙였다.

 

스스로의 행위를 감히 '소설질'이라고 말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거목 중 하나인 이청준 작가는 어른의 잠언이란 게 무엇인지 이 작품을 통해 보여준다. 우리가 살아온 발자취를 소설의 양식으로 표현한 극치일진대, 그것이 바로 '잊음'에 대한 애수이다. 비숫한 무게감을 가진 사실 중 기억해야 할 것이, 90년대 말의 텅빈 밥솥 같은 것밖에 없는 나같은 젊은 세대는 응당 동의할 순 없다. 차라리 아픈 기억을 되살리며 누구에게든 혹은 무엇에게든 앙갚음하고 싶었던 '채 할아버지'와 더 닮았을 수도 있다.

요는 이렇다. 이 비극 무대의 배우와 관객 모두 결국엔 '우리'의 모습이라는 것이다. 둘다 극장형 폭력이었지만, 2001년 미국의 슬픔과는 다른 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리고 여기에서 다시 이청준 작가에게 돌아온다.

 

그는 일곱 편의 글 속에서 기억하기에 대한 동어 반복으로 잊어버리기를 제시한다. 먼 곳으로 시집을 왔지만, 월드컵은 4년마다 계속 되지만, 지하실은 없어졌지만, 벼루는 숫돌판이 되었지만, 그리고 문주란은 피고 지지만 기실 잊어야 하는 애상은 누구에게나 절절하다. 하지만 분명한 게 있다. 그 잊어버렸다는 기억이 다시 새로운 희망으로 발음된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이제껏 살아온 것이라며 하얀 머리카락을 휘날리고 있는 것이다.

 

'뿔난 엄마' 김수현 작가의 유난스레 많아진 독백이 헌화하는 다섯 살 꼬마 아이의 마음과 맞닿아 있는 점이 바로 여기라고 생각한다. 잊어버렸다는 그 기억, 그것만큼은 잊을 수 없기에 새로운 구름판이자 풀어진 운동화 끈이 되는 것이다.

순서는 아는 바 그대로다. 다시 질끈 동여매고 뛰어서 밟는 도약의 순간을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이것이 단순한 수사학으로만 들리지 않는다면, 나는 동시대에 이 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이 꽤 잘하고 있는 짓이란 다짐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w******1 2008.02.14.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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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라는 질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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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히스토리도 아니고 스토리도 아닌 것. 그 중간에 모호하게 놓여있는 것. 마치 꿈처럼. 이청준에게 소설은 무슨 제4의 정부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상 속으로 꾸며낸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달리 말해야 할 듯하다. 그에게 소설은 저 진흙탕 속의 현실정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며 더 강렬한 꿈이다. 그는 현실을 떠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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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란 무엇이냐. 그것은 히스토리도 아니고 스토리도 아닌 것. 그 중간에 모호하게 놓여있는 것. 마치 꿈처럼. 이청준에게 소설은 무슨 제4의 정부 같은 거창한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상 속으로 꾸며낸 그런 이야기도 아니다. 어쩌면 이것은 달리 말해야 할 듯하다. 그에게 소설은 저 진흙탕 속의 현실정치를 넘어서는 그 무엇이며 더 강렬한 꿈이다.

그는 현실을 떠나서 소설을 쓴 적이 없다. 그러나 절대로 현실에 그대로 내려앉기 위해서 소설을 쓰지도 않았다. 새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는 그런 그가 담담한 어조로, 쉽게, 그러나 우리들 세상에 대해 놀라울 정도로 철저한 성찰적 시선으로, 따져묻고 개입하고 변화시키려 하는 그런 소설이다.

우리는 무엇을 잊고 사는가. 대한민국은 그야말로 집단 기억상실증에 걸려 있는 것은 아닌가. 그래서 그들은 오로지 현재만을 살아가는 메멘토들은 아닌가. 더 나쁜 것은 역사를 오로지 자신들의 구미에 맞게 소환해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지하실'이란 소설은 그래서 널리 읽혀지고 거듭 물어져야 하는 소설이다.

담담한 어조로, 세상을 향해 내려왔다하나, 이청준 소설은 여전히 쉽지 않다. 하지만 그것은 현학적이라거나 관념적이라거나 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그는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고 말하면서 '아무 것도 잊어서는 안 됨'을 말한다. 그의 소설을 읽으면서 우리는 몰입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깨어있어야 하고 비판해야 하고, 그리고 변화하고 실천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

그가 일찍이 써낸 소설들을 그대들은 읽어야 한다. 적어도 "당신들의 천국"은 꼭 읽어두어야 한다. 그 소설이 성취한 것은 물론 그 소설이 좌절한 것까지 읽어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이청준은 정확히 한국형 작가라 할 수 있다. 그는 정확히 자신이 살았던 국가에 대해서 대항-글쓰기를 시도한 작가며 그 성취와 한계가 모두 그러한 자기과제에 대한 성실함과 관련된다.

이 소설집을 읽으면서 생각해보라. 오늘날의 소설과 그의 소설은 어떻게 다른 것인지를. 그가 폐암을 앓고 있다는 사실이 가슴 아프다. 도대체 소설가라는 직업은 얼마나 저주받은 직업인가, 얼마나 멀리 아득한 곳까지 나아가서 망가지면서 깨어있어야 하는 일인가를 생각케 한다. 그가 건강을 회복하기를 바란다.


 

부기: 이 글을 쓰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7월 31일 이청준 선생은 안타깝게도 세상을 뜨셨다. 그의 소설들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기를, 그의 사상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울려 퍼지기를 희망해본다. 부디 영면하시기를....  

s***3 2007.12.17.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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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혀지지 않기 위해 소설을 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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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소설 인간연습이 생각나기도 했고, 디아스포라 기행이란 책이 다시 한 번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 역시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책 말미에 에세이 소설 형식으로 담겨 있었던 소설가의 역활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부채처럼 남아 있는 역사에 대한 아픔을 이렇게라도 고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들여다 보면 우리의 일제시대, 6.25,그리고 맥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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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읽었던 소설 인간연습이 생각나기도 했고, 디아스포라 기행이란 책이 다시 한 번 생각나기도 했다. 이 책 역시 소설이라고는 했지만 책 말미에 에세이 소설 형식으로 담겨 있었던 소설가의 역활이란 것이 무엇인가에 대한 저자의 고민과 부채처럼 남아 있는 역사에 대한 아픔을 이렇게라도 고백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책을 들여다 보면 우리의 일제시대, 6.25,그리고 맥시코로 버려지게 된 동포들, 그리고 고려인으로 불리어지는 우리의 또 다른 동포들에 대한 역사의 아픔을 사람들을 통해 이야기 하고 있었다.눈으로 보여지는 역사적 과오들이 청산되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직도 그 역사를 오롯이 살아 온 사람들에 대한 가슴어린 사과와 반성이 있었는가를 물어 본다면 그렇다라고 말 할 수 없을 듯 하다. 적어도 그러한 느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저자 역시 그곳을 잊을 수 밖에 없었다고 말 하는 고려인에 대해 맥시코로 타의에 의해 가버리게 된 그들의 목소리를 담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에세이 소설을 통해 소설가로서 고민 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알게 된 것도 이 책을 읽는 기쁨 중에 하나였다. 바보 같은 생각이지만 소설가들은 어떤 마음으로 글을 쓰고 과연 독자들에게 무얼 말하고 싶은 걸까 라고 생각을 하는 경우가 있었는데....

작가의 에세이 소설을 통한 이야기들은 소설가는 단지 글을 잘 만들어 내는 사람이 아닌 누군가의 목소리를 대신 내어 줄 수 있는 역활을 해 줄 수 있어야 하고,그래서 위로가 되어 주기도,용기가 되어 주기도, 무언가를 고민 할 수 있게 만들어 줄 수 있는 위치여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해 주었고, 저자 역시 그런 소명을 담으려 노력하고 있음을 이 소설의 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느낄 수 있었다.

 

다 읽고 난 후 말미에 있었던 에세이 소설을 먼져 읽고 앞장을 넘겼어도 재미있었을 것 같은 생각을 했다.

이제는 자꾸 잊혀져 가려 하는 우리의 역사 속의이야기들을 그래서 자꾸 우리에게로 보내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소설가는 그렇게 아픔을 가진 누군가의 목소리를 세상으로 끌어 내어 주어야 하기 때문에...

 

 

 

w*******i 2007.12.13. 신고 공감 1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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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천국은 잊혀지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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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는 단순한 내용의 재미와 더불어 작가가 숨겨놓은 그 무엇?을 찾는 일일것이다. 더욱이 우리 현대소설의 살아있는 발자취라 칭송받는 작가 이청준의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의 작품들 속에 드러난 시대적 배경과 아픔은 고스란히 독자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며 궁극적으로 현대사에서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꿈꾸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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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작품을 읽는 재미중의 하나는 단순한 내용의 재미와 더불어 작가가 숨겨놓은
그 무엇?을 찾는 일일것이다. 더욱이 우리 현대소설의 살아있는 발자취라 칭송받는
작가 이청준의 작품이라면 더할 나위가 없다.
그의 작품들 속에 드러난 시대적 배경과 아픔은 고스란히 독자들의 가슴속에서 살아
숨쉬며 궁극적으로 현대사에서 당신들의 천국이 아닌 우리들의 천국을 꿈꾸도록
만들고 있다.
이 책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에서 그는 현재를 사는 우리 삶에 대한 문제제기와
그 치유의 모습 그리고 더불어 작가로서 그의 삶에 대한 성찰을 담고 있다.
7가지 단편을 통해 역사적 굴곡을 거쳐온 우리의 현실을 내보이고, 그 속에서
우리에게는 잊혀진 주인공이 가진 삶의 회환과 눈물을 조명하고 그 문제를 풀어가는
모습들을 담는다. 4개의 에세이 소설은 그런 역사적 아픔을 바라보는 작가 자신의
역할과 그러한 내용을 담는 작가로서의 정신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 책속 단편인 [그곳을 다시 잊어야했다]의 유 세르게이, [태평양항로의 문주란설화]속
프란시스코 꼬로나의 할아버지가 품었던 조국에 대한 갈망과 원망, 그리고 용서와
그리움속에서 우리는 역사를 바라보는 새로운 시각을 느낄수가 있다.
살아남기위해, 조국과 조국의 전쟁을 용서하기위해, 그리고 자신의 삶을 용서하기위해
자신이 그토록 그리던 조국을 잊여야 한다는 그들의 말이 아직도 가슴을 아프게 한다.
과거의 역사는 역사일뿐이라고 이미 지난일이라고 치부했던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것은 단순히 현재의 우리가 가진 생각일 뿐이었다. 그들이 가진 아픔과 상처는 아직도
여전히 진행중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지하실], [이상한 선물], [천년의 돗배] 에서 역사적 사실속에서 오늘을 사는 우리가
느끼는 배우는 점은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 (P. 133) 라고 얘기하듯
배려하고 감싸주는 따스함일 것이다. 허물을 덮는것이 아니라 인정하지만 굳이 들추지
않는 따스한 용서의 마음이라고 할수 있을것이다.
[부처님은 어쩌시렵니까]에서는 고향에서온 편지를 연상시키는 이송의 부모님들의
말에 눈물이 떨구게 한다. 
"..꿈깨면 길 잃지말고 집으로 바로 오니라.." ,
"..더이상 자책하지 말고 그만 일어나거라."(P. 250)
에세이소설에서는 작가의 지하실에 묻힌 역사를 신화로 부활시키는 것이 작가의,
문학의 역할이라고, 또 오늘을 사는 우리의 모습이 조국을 떠나 다른 삶을 산
많은 사람들의 모습이기에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이야기 한다.
 


 
이런 말이 떠오른다.
'내가 헛되이 보낸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렇게도 바라던 내일이었다'
 
오늘을 사는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역사를 살아간 과거 그들의 모습이다.
잊지 말아야 할것은 오늘 우리의 모습에서 빼앗겼던 잊고 싶었던 과거의 그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에게 그 나라라는게 대체 무엇이었으며, 무엇이어야 하는지' (P. 231)
의미를 찾는 아픔을 간직한 그들을 위해서라도 그들의 내일을, 아니 우리의 내일을
위해서라도 우리가 살아갈 오늘을 다시금 되돌아보고 헛되이 보내지 말라고 이야기 한다.
미처 알지못했던, 그곳을 다시금 잊어야 하는 그들의 아픔을 조금은 이해하고
오늘을 어떻게 살아야할지 자신을 돌아보게 해준 작가에게 감사의 말을 전하고 싶다.
e****e 2007.12.13.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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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청준의 경륜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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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소설집’의 홍수를 보면서 그다지 기쁘지만은 않았다. 왠지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을 보는 듯 반복되는 소재와 고만고만한 이야기들. 그래서인지 이청준님의 새 소설집에 대한 첫 인상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는 그런 우려를 넘어 작가의 경륜과 구성의 묘미에 또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집이었다.   그간 사실적인 시각으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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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요즘 ‘소설집’의 홍수를 보면서 그다지 기쁘지만은 않았다. 왠지 가수들의 리메이크 앨범을 보는 듯 반복되는 소재와 고만고만한 이야기들. 그래서인지 이청준님의 새 소설집에 대한 첫 인상도 의심스러웠다.

  하지만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는 그런 우려를 넘어 작가의 경륜과 구성의 묘미에 또다시 감탄할 수밖에 없는 작품집이었다.

  그간 사실적인 시각으로 시대의 아픔을 담아내던 작가의 시선이 공동체의식을 근간으로 하는 ‘신화’로 이동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즉 ‘소문의 벽’에서 ‘소문’이라 지칭할 수 있던 이야기들이 시대의 아픔을 대변하는 이야기였다면, <이상한 선물>이나 <지하실>에서 발견한 ‘소문’은 부정적인 의미를 벗어버리고 따뜻하고 긍정적인 ‘신화’로 거듭나고 있었다.

  계간지 『문학의 문학』창간호에도 실려 있는 <이상한 선물>을 다시 읽으면서 작가의 이러한 변모를 따라가 봤다.

 

 

 

  어느 정도 사회적으로 성공한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에 마을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신화적인 인물이 되어 버렸다. 이러한 부담을 아는지 모르는지 어릴 적 서당에 있던 ‘심지연’이란 벼루를 선물로 받게 된다.

‘심지연’은 마을 사람들의 십시일반 갹출하여 장만한 벼루로 ‘심지연의 보이지 않는 신통력과 음덕 때문’에 ‘그 벼루에 먹을 갈아 글씨를 배운 학동들 중에 마음이 비뚤게 자란 아이는 하나도 없었’다. 6.25의 어수선한 상황에서 ‘심지연’의 존재여부를 잊었던 마을 사람들은 황당하게도 다시 ‘심지연’을 기억해 냈고, 이를 ‘나’가 보관하고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서당 훈장의 아들인 상투영감이 찾아낸 벼루는 ‘우리가 기억해온 그런 물건이 아니었’다. ‘크기도 그렇고 모양새도 그렇고. 황 선생(나)을 비롯해 이 동네 인물들을 길러낼 만한 음덕을 지닌 벼루라기엔. 동네 사람들 앞에 내놓을 수가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 이유로 ‘실물을 곧이곧대로 내보여줄 수 없다면 누군가는 이 동넬 위해 밖에서 그걸 지녀줘야 하지 않’느냐는 상투영감의 요청으로 ‘나’는 ‘심지연’을 갖고 고향을 떠나게 된다.

‘그림자 도둑 이야기’나 ‘도깨비 할배’를 이야기 하던 상투영감은 ‘나’에게 이런 말을 한다. “허고 보니 우리 후인들 또한 그걸 알면서도 지금껏 당신을 그런 사람으로 여기며 그렇게 말해 온 게야. 그런디 황 선생도 알다시피 오랜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우리 동네에 전해오는 그런 기인, 재주꾼, 초인격 인물들 이야기가 어디 그 당신 뿐인가. 혹은 만인이 우러러볼 의기나 덕망으로, 혹은 누구처럼 빼어난 글공부나 전문 기예, 심지언 남다른 풍모나 기행으로 해서까지……. 어찌 보면 이 동네 사람들 모두가 각기 한 가지씩 제 역할을 맡아 살아온 격이랄까. 왜 그랬는지 이제 임자도 알겄지만 그게 세상살이고 이 동네 사람살이 꼴이었다면, 거꾸로 저 몹쓸 도둑이나 노름꾼, 패륜아 무리까지도 나름대로 사람살이의 반면거울을 삼을 수 있었으니께. 그래 나도 지금껏 상투쟁이 소릴 들어가며 짐짓 이 꼴로 고집스런 세월을 살아온 것 아니겄는가.”

‘나’는 처음 예정대로 촬영차 ‘무위사’에 들러 그곳을 유명하게 만든 ‘설화’를 듣는다. 하지만 증거물이 없는 이야기만 신화처럼 떠도는 그곳에서 스님은 말한다.

“글쎄, 제 맘속에다 그걸 지녔으면 눈에도 보일 수 있었겄제.”

돌아오는 길에 상자를 열어보니 그곳엔 ‘심지연’이란 벼루대신 숫돌판이 들어 있었다. ‘나’는 ‘그 돌판 조각이 진짜 벼루로 변하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듯’ 할 뿐이었다.

 

 

  사실의 눈으로는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을 감상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상한 선물> 외에도, 사실 이면에 존재한 우리 민족의 恨(천년의 돛배,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과 이데올로기 이전에 존재하는 공동체 삶의 덕(지하실)을 담고 있는 작품들도 충분히 감동적이었다. 다른 소설집에서 느꼈던 아쉬움이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에서는 ‘역시 이청준’이구나 하는 감탄으로 변했다. 작가의 보다 깊은 경륜을 느낄 수 있는 좋은 작품집이었다.

 

 

 

 

덧붙임 : 표지디자인 및 책구성이 아주 예쁘다^^*

k*****7 2007.12.10. 신고 공감 1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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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의 품같은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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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고인이 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가 다시 살아나 펜을 들어 새로이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청준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의 글을 평소에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영화 <서편제>를 통해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으니 솔직히 표현하자면 모른다고 하는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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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 읽은 후 미니 감상평


이제 그는 더 이상 이 세상 사람이 아니다. 고인이 된 그의 글을 읽고 있노라니 그가 다시 살아나 펜을 들어 새로이 글을 쓰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사실 이청준 선생님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그의 글을 평소에 좋아하는 편도 아니었다. 그를 알게 된 것은 영화 <서편제>를 통해 어렴풋이 아는 정도였으니 솔직히 표현하자면 모른다고 하는 편이 맞겠다. 6·25전란, 4·19와 5·16을 거쳐 80년 광주항쟁의 비극에 이르기까지 많은 세월을 살다 가신 선생님의 소설은 깊이 또한 남다르다. 그 지난한 역사를 다 글로 담기에는 부족하였으리라 생각한다. 마지막까지 글을 쓰고 싶어 하셨던 선생님의 마음이 이 책을 통해 고스란히 느껴졌다. 이 책은 총 11편의 소설로 이루어 졌는데 총3편의 중편('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지하실''이상한 선물')과 총4편의 짧은 소설('천년의 돛배''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부처님은 어찌하시렵니까?''조물주의 그림'), 그리고 총4편의 에세이 소설('귀항지 없는 항로''부끄러움,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소설의 점괘(占卦)?''씌어지지 않은 인물들의 종주먹질')이 실려 있다.


총 11편의 소설이 ‘천년의 돛배’와 에세이를 제외하고는 비슷한 느낌을 받은 소설이었다. 나의 개인적인 느낌을 말하자면, 어머니의 품이 느껴지는 ‘천년의 돛배’가 가장 좋았다. 뭔가 특별함이 느껴지는 소설이었다. 돛폭도 없이 매일 항상 그 자리에 떠있는 바위 배에 대한 사연을 아이가 엄마에게 듣는 내용으로 사연은 슬펐지만 아이에게 엄마가 자장가를 불러주는 듯한 평온함이 느껴졌다.  천년의 돛배의 사연이란 섬에서만 살았던 엄마는 딸만큼은 육지로 시집을 보내고 싶어 했다. 억지스레 딸을 육지로 시집을 보내놓고 홀로 섬에 남았던 엄마는 이제나 저제나 딸이 올까 기다리다 지쳐 죽고, 딸 역시 엄마가 계신 고향에 가지 못하고 바위 배가 되어 오지도 가지도 못하고 애타게 그리다 죽게 된다는 내용이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은 천년이 지나도 항상 그 자리에 남을 것 같다. 저기 저 돛폭도 없이 머무는 바위 배처럼 말이다.


‘천년의 돛배’도 마찬가지지만 그러고 보니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지하실’‘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등 고향을 중심으로 이루어진 소설이 대부분이다. 고인은 늘 고향을 가슴에 안고 그리워하며 살았던 사람 같다. 조국이란 도대체 무엇이 길래? 평생을 아니 죽어서까지 발자국을 남기게 하는 걸까?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에서도 전쟁으로 인해 평생을 타국에서 지내야 했던 유일승씨는 살아남기 위해 조국의 말도 색깔도 잊어야 했던 그였지만 결국 되돌아가고 싶은 곳은 조국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장 가슴 아픈 고향에 대한 그리움은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였다. 꼬로나의 할아버지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중에 조선 남해안 양민들이 포로로 끌려가 일본 노예시장을 거쳐 머나먼 타국(멕시코)에 팔려갔다. 그럼에도 바다에서 바다로 흘러 핀다는 하얀 문주란 꽃을 보며 자신의 처지를 생각한 할아버지는 어쩌면 이곳에 핀 꽃밭이 제주도(한국)에서 흘러 온 것일수도 아니면 반대로 한국에까지 흘러갔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늘 고향을 마음으로 그리워하며 세상을 떠났다 하셨다. ‘지하실’역시 고향 집을 복원하면서 살아난 지하실에 얽힌 옛 사연의 이야기로서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던 소설이었다. ‘이상한 선물’도 그랬지만 서로 알고 있지만 덮어두면 더 좋은 일들이 많은 것 같다. 아니 지금도 우리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 같다. 성조씨가 그를 탓하며 하는 말처럼 눈길을 바꿔 보면 세상일이란 사람 따라 세월 따라 다 그렇게 달라 보이는 법이고 지난 일이 그리 소중하다면 내일 또 지난날이 될 오늘 일이 우리한텐 더 소중하니까. 그게 어쩌면 서로가 마음 편하게 살아가는 법이라 한다.  

         

이 소설을 통해 조금 더 그의 작품을 탐독해 보고 싶은 심리가 생겼다. 어쩌면 지금도 이 소설을 다 이해하지 못했는지도 모른다. 자꾸 여운이 남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이 소설뿐만 아니라 깊이가 느껴지는 책은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읽어봐야 그 소설의 참맛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소설이 이 소설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l*********g 2009.05.20.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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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의 세상으로 가는 인간의 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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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청준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신화의 세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의 세상이자 신을 닮은 인간의 터전이다. 때문에 그곳에서는 너무나 인간적인 신들의 행패가 벌어지고 너무나 놀라운 인간의 기적이 신들을 희롱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곳은 인간의 고향이자 쫓겨나고 체면 구겨진 신들의 유배지다.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과 이브의 집터가 거기에 있고 뱀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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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이청준 소설집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

 

신화의 세계는 인간의 모습을 한 신들의 세상이자 신을 닮은 인간의 터전이다. 때문에 그곳에서는 너무나 인간적인 신들의 행패가 벌어지고 너무나 놀라운 인간의 기적이 신들을 희롱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곳은 인간의 고향이자 쫓겨나고 체면 구겨진 신들의 유배지다. 선악과를 먹기 전 아담과 이브의 집터가 거기에 있고 뱀들의 꾐에 유일신이 이후로 골치가 아파진 곳도 그곳이다. 수많은 신화가 있고 그 안에서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신인(神人)들이 득실댄다.

 

신화의 세계가 문학과 만나면 그곳은 실제적인 것과 상상적인 것이 서로 만나는, 현실 세계와 공상 세계 사이 어디엔가 놓여 있는 중립지대가 된다. 문학은 평범한 일상 경험을 있는 그대로 충실하게 묘사하면서도 일상 생활에서는 볼 수 없는 온갖 ‘신기한’ 일이나 ‘상상적인’ 일이 일상의 그것처럼 비일비재하게 벌어지고 일어나는 곳에 자리한다. 문학하는 이는 그래서 신인이 된다. 현실의 낮은 땅에 상상력의 높은 하늘을 이어 붙이는 작업이 곧 작가의 일이다.

 

적어도 오늘 소개하려는 소설집의 작가는, 내 생각이긴 하지만, 신인이다. 그는 누구보다 고약한 신들의 횡포에 맞장을 떴고 분노한 인간의 대꾸를 가감 없이 신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그런 그가 지난 7월의 끝날에 인간의 외피를 벗었다. 신과 인간의 경계에서, 그의 고백처럼 40년 ‘소설질’로 인간을 감싸 안으며 ‘타락한’(낙원에서 쫓겨났음으로) 세상에서 한 가닥 구원의 빛을 지켜내려 했던 이청준은 우리 문단의 신인이라 불러도 조금도 부끄럽지 않다. 그의 유작이 된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열림원)를 읽고 난 지금 필자는 절대 그를 잊지 못한다.

 

이청준 말년의 중단편과 에세이 소설이 실린 책은 바로 그 신화의 세계를 가리키는 지도다. 신들의 세상으로 가는 길을 안내해주는 영험한 지도라는 말은 아니다. 신들의 실패로부터 열린 인간의 세상에서 잊혀지고 빼앗긴 인간의 본성, 곧 신들을 닮은 신성의 자리를 찾아가게 해주는 지도라는 말이다. 그곳은 바로 인간의 고향이다. 인간의 뿌리와 기원이 있고 그 인간의 삶의 원형이 수태되고 다시 묻히어 있는 그곳으로 가는 지도를 이승의 마지막 무렵에 이청준은 우리에게 남겨주었다.

 

돌아가지 못하는 고향에 대한 절절한 희원과 한이 돛폭도 돛대도 없는 돛배의 전설로 남은 <천년의 돛배> 설화는 반드시 돌아 가야할 고향에 대한 역설적 희구다. 죽어 넋이라도 고향에 가려했던 멕시코 에니켄 농장의 동양인 노예는 그래서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로 살아나 제주도의 문주란을 닮은 하얀 그리움으로 멕시코만의 모래사장에 피어났다. 그 불우한 망국인의 한은 지금도 대서양과 태평양의 거친 물살에도 검은 꽃씨로 부유하고 있을지 모른다.

 

고향(조국)을 빼앗기고 또한 그 기억의 전부를 깡그리 잊어야만 살 수 있었던, 유일승-노일승-유 세르게이로 살아야만 했던 한 망국인은 오죽했으면 겨우 찾은 조국을 ‘다시 잊어야만 했’겠는가. 그는 마치 조정래의 <오 하느님>의 한 인간을 떠올리게 한다. 조선인이면서 일본 군인으로, 소련군에서 다시 독일군으로, 시베리아 전선에서 북유럽 전선으로,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다른 나라의 전쟁터에 끌려가 생존을 견디어야 했던 한 징병군인의 삶이나 유일승의 삶은 신의 장난질이라고 밖에는 달리 생각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의 삶에서 그저 한스런 역사를 탄할 수 있을 뿐이다. 신이 분탕질로 인간을 희롱할 때, 인간은 그런 신에게 겨우 구원을 간청할 수 있을 뿐인 이 노릇을 어찌하란 말인가. 영화 ‘밀양’의 모티브가 됐던 이청준의 <벌레이야기>는 그토록 싸가지 없는 신에 대한 인간의 당찬 거역이다. 졸고 ‘신을 용서할 수 없었던 여자이야기’의 한 문장을 보자.

 

“내가 그를 아직 용서하지 않았는데 어느 누가 나 먼저 그를 용서한단 말이에요. 그의 죄가 나밖에 누구에게서 먼저 용서될 수 있어요? 그를 용서할 기회마저 빼앗기고 만 거란 말이에요.”(벌레이야기)

 

『점잖게 말해 신은 얄궂다. 솔직히 말해 자식 죽인 놈보다 더 밉다. 인간의 규약인 법이 사형제를 고집하며 받는 비난은 김 집사의 말처럼 신의 권리이기 때문이 아니라 다 같이 존엄한 인간이기에 함부로 죽일 수 없다는 인간애의 발로다. 물론 참회하는 자는 아름답다. 용서하는 영혼은 그가 감내한 고통의 무게가 크기에 더욱 값지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것이어야 한다.

 

현세의 죄과가 단 한 번의 고백과 기도로 사면되는 그 구원의 세계에서 도대체 인간의 자리는 어디인가? 성경 몇 구절과 신을 인정하는 고백이면 벌써 천국에 이른 것을, 죽음보다 더한 고통을 이겨내며 용서에 이른 인간의 처절한 노력은 부질없는 짓이다.』

 


이처럼 신과 인간의 어긋남, 세계와 삶의 아귀 맞지 않는 부조리는 숙명이다. 하물며 인간들끼리 이념을 갈라 싸우고 죽여야 하는 인간계의 아귀다툼은 얼마나 처절한 숙명이란 말인가. 그럼에도 이청준의 시선은 따스하다. 각기 다른 이념의 무리를 피해 각자 다른 시기에 숨을 곳을 찾아드는 사람들의 기억이 묻히어 있는 <지하실>에서 작가는 그저 인간을 생각하고 추억할 뿐이다. 그 지하실에는 오직 사람만이 있을 뿐, 살육을 부르는 광기는 찾아볼 수 없다.

 

<벌레이야기>에서 유괴로 자식을 잃은 한 어머니의 용서와 겨우 찾은 평화가 신의 개입으로 지옥 같은 세상으로 변했다면, <조물주의 그림>에서는 한없이 황홀하고 아름다운 광경으로 남을 장면이 인간의 개입으로 무참한 지옥으로 바뀌고 만다. 전쟁 중에 홀로 살아남은 미친 소녀의 정지된 기억은 그 안에 인간이 끼어 있기에 지옥의 참상이다. 온갖 미움과 분노로 피 흘리는 인간 지옥의 참상은 분명 신들의 실패가 부른 비극이다. 마찬가지로 서로를 물어뜯으며 살아가야 직성이 풀리는 인간들의 모진 탐욕은 비극의 숙명을 짊어지도록 인간의 실패를 부른다.

 

“그 빌어먹을 인간, 이게 끼어들지 않으면 그냥 황혼녘의 산불처럼 한 장면 그림으로 끝날 건데, 인간이 들어서니 그 섭리자의 연출이 무색할 무서운 비극의 완성을 부르게 되잖아요.”(조물주의 그림)

 

인간과 신들의 어긋난 난장에 이청준은 서있다. 거기에서 그는 말을 다듬고 글을 빚어 갈라진 숙명의 골을 메운다. <부처님 어찌 하시렵니까?>하며 운명의 생채기를 꿰매고자 한다. 그러려다보니 에세이소설에서 고백하듯이 <귀항지 없는 항로>를 헤매야 하고 <부끄러움, 혹은 사랑의 이름으로> 불안해야만 하며 <소설의 점괘>처럼 현실의 삶이 그렇게 될까 두려움에 떨어야 한다. 그 뿐인가. 인간과 신들의 불화를 중재하기 위해 <씌어지지 않은 인물들의 종주먹질>을 참아내야 한다.

 

이청준의 문학은 그래서 신과 인간의 경계를 이어주는 메신저이기도 하고 그들의 다툼으로부터 적당한 간극을 유지시켜주는 초월적 공간이기도 하다. 때로는 인간의 편에서 신들의 고약을 성토하고 때로는 신들의 속내를 짐작하여 인간을 엄히 꾸짖는다. 중요한 것은 그 경계의 지점에서 늘 그는 중재자의 자세를 잃지 않는다는 것이며 그의 문학은 언제나 인간의 고향으로서 꿈과 희망의 시원으로 살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그는 고집스레 우리들에게 신화의 세상을 보여주고 시대의 신화를 들려준다.

 

비록 그는 이제 <천년의 돛배>를 타고 또 다른 신화의 세상을 여행 중일지라도 그의 문학은 <이상한 선물>의 심지연처럼 안의 것이 아니라 바깥의 것으로 존재하며 영원히 사라지지 않을 인간의 신화로 남아 있을 것이다. 그 신화가 있기에 인간은 다시 용서할 수 있으며 다시 화해할 수 있다고 필자는 감히 믿는다. 많은 작품이 영화로 만들어 졌듯이 영화가 주는 그 빛과 환상, 그리고 모험의 세계는 그가 떠난 후에도 계속될 것이다. 어쩌면 그는 지금 자신이 노래한 <선학동 나그네>가 되어 새로운 신화를 찾아 여행 중일 것임이 틀림이 없다.

 

오른쪽은 강진 해남 길, 왼쪽은 보성 고흥 길/길은 모두 노래로 이어지고 포구에서 사라지네/그러나 사라져선 안될 노래 하나/장흥 회진항에 묵었다 하니/거기 선학동 가는 길 서글픈 자루도 짊어지네/약국과 뱃길 묻다가 마침내 그 주막에 드네

 

어이 가리 어이 가리/산 첩첩 물 첩첩 다리 아파 어이 가리/해는 지고 달 드는데/주막 없어 어이 가리

 

- 남도, 모든 길은 노래더라

 

e******1 2008.10.13. 신고 공감 0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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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픈 근대사에 대한 씻김굿 한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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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4.19와 5.16, 광주항쟁, 그리고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참으로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다. 이토록 지난한 우리 근대사를 살아온 이청준님의 씻김굿 한판.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유길승 씨나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의 프란시스코 꼬로나 씨는 힘없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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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상처는 아물지 않았다.

 

일제강점기, 6.25전쟁, 4.19와 5.16, 광주항쟁, 그리고 올림픽과 월드컵까지 참으로 굴곡 많은 우리 근대사다.

이토록 지난한 우리 근대사를 살아온 이청준님의 씻김굿 한판.

 

'그곳을 다시 잊어야 했다'의 유길승 씨나 '태평양 항로의 문주란 설화'의 프란시스코 꼬로나 씨는 힘없는 조국으로부터 버림받은 인물들이다. 그럼에도 그들은 자신의 조국을 잊지 못하고 그리워한다.

 

일제강점기에 조국을 떠난 지난날의 소련 땅인 지금의 우즈베키스탄에 정착하게 된 유길승 씨. 그는 그곳에서 살아남기 위해 고국과 고향, 심지어 모국어까지 잊어야 했다. 그리고 6.25전쟁으로 동족 간에 피 튀기는 살육이 벌어졌을 때 두 번째로 조국과 조국의 전쟁을 용서하기 위하여 조국을 잊어야 했다. 이토록 오랜 세월을 힘들게 싸우다 88올림픽 방송을 보고 고국과 옛 고향의 가족을 떠올리고, 월드컵을 계기로 고국을 방문하게 된 유길승 씨. 하지만 "대한민국"을 연호하는 함성의 물결 속에서 지난날 소련의 혁명을 떠올리고 그 당시 살아남기 위하여 행한 자기기만에 한없는 부끄러움을 느끼며, "대한님국"의 함성에 동참할 수 없는 슬픈 자신의 모습을 본다. 그래서 다시 조국을 잊기로 한다.

 

자네 내가 어렸을 적 고국을 떠난 뒤로 그 조국을 두 번씩이나 잊어야 했다고 한 말 기억하는가. 처음 한 번은 이 땅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리고 두 번째는 그 조국과 조국의 전쟁을 용서하기 위해서였다고. 그런데 이제 나는 다시 세 번째로 조국을 잊어야 했고, 잊어가고 있는 참일세. 이번엔 여기 이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종생까지 살아가야 하는 내 삶을 용서하기 위해서 말이네.

 

프란시스코 꼬로나 또한 일제강점기에 태평양을 건너 멕시코의 에네켄 농장으로 온 이민 일 세대이다. 나라가 힘이 없으니 그 먼 타향으로까지 쫓기듯 흘러오게 됐다.

제주도가 고향으로 짐작되는 꼬로나 씨는 현지 마야여자와 결혼하여 정착하였으나, 종내는 그 땅에 동화도지 못하고 조국을 그리워한다. 그의 손자에게까지 전해온 등목질이나 그의 이름 꼬로나(가족들은 '고로나'라고 이야기한다.)의 유래, 그리고 그의 유골이 뿌려진 프로그레소 항의 문주란 군란에서 질기고도 모진 조국에 대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그러니 저의 할아버지는 고국에서와 같은 이 꽃밭과 바다를 바라보며 어쩌면 까마득한 고국과 자신의 처지를 떠올리곤 했는지도 모르지요. 자신도 이 문주란 꽃씨처럼 오랜 세월 저 넓은 바다를 흘러흘러 여기까지 건너온 신세로구나.... 아니면 반대로 이곳의 씨앗이 한국에까지 흘러갔을지 모르니 그 물길을 따라 언젠가는 당신도 그 씨앗처럼 저 바다 너머 고국땅까지 흐르고 싶으셨는지도....

 

유일승 씨나 프란시스코 코로나 씨나 그들의 아픔은 이제 이 땅에 남겨진 우리들의 몫이다. 그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보듬어주어야 할 의무가 이 땅에 사는 우리에게 오롯이 남겨진 것이다.

 

'지하실'과 '이상한 선물'은 고향에 대한 이야기이지만 그 주제는 사뭇 다르다.

 

6.25전쟁 당시 마을에 불어 닥친 이데올로기의 광풍. 이데올로기의 대립은 운명공동체였던 마을을 해체시키려 한다. 그리고 그 상징정 존재가 바로 지하실이다. 지하실을 통하여 집안의 종가 어른은 목숨을 구하였고, 세상이 뒤집힌 후 지하실에 숨어들었던 또 한 명의 인물인 윤호 아버지는 토벌대에 의하여 목숨을 잃었다. 그 지난날을 복원하려는 나에게 집안 형님인 성조씨는 이렇게 말한다.

 

아까도 말했지만 우리는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어. 자네나 우리 명조 아우처럼 일찍 마음이 열러 이 골을 떠나 살아온 사람들은 이래도 저래도 별 상관이 없으니 그런 일을 다시 들추고 따지려 드는 모양이네만, 이 나이가 되도록 동네 귀신으로 살아온 우리 같은 무지렁이들은.... 어느 시절 어느 한쪽에 그럴 힘이 있어 그걸 알아두면 이로운 일이 생기는지 모르지만 그 힘이 바뀔 때마다 우리는 살기가 더 불편해. 그래서 그냥 이렇게 살아. 그도 보통 힘든 세월이 아니었지만. 그래도 우리헌텐 그 편이 마음이 편하고 세상이 편했으니까.

 

'이상한 선물'에서 고향은 신화적 공간이자 마을 사람들은 신화적 인물들이다.

의원집 미친 아낙, 양물이 유난히 큰 장순, 귀신같은 솜씨의 불운한 노름꾼, 비극적 천재 씨름꾼 등. 자신들이 만들어 낸 신화 속에서 그 신화처럼 살아가는 사람들. 어쩌면 바로 그 신화 때문에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 더욱 사무치는 것이 아닐까?

 

'지하실'이나 '이상한 선물'처럼 결국 덮어버리고 묻어버리며 살아야 할 때도 있는 법이다.

 

이청준님의 글을 오래오래 계속해서 읽고 싶은 맘이다.

YES마니아 : 로얄 i********n 2008.06.06. 신고 공감 0 댓글 0
리뷰 총점 종이책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내용보기
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내가 나를 벗어나는 느낌을 얻는다. 내가, 이기적인 내가, 나 혼자가 아니며, 내 가족의 일원이고 내가 속한 사회의 일원이고 나를 키운 한민족 역사 속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읽는 동안, 저절로, 아, 내가, 보잘것없는 내가, 면면히 이어온 우리 역사의 한 가닥 흐름 위에 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이름없는 백성들조차.   소설
"잊으려 해도 잊을 수 없는 게 있다" 내용보기

이 작가의 소설을 읽고 있으면 내가 나를 벗어나는 느낌을 얻는다. 내가, 이기적인 내가, 나 혼자가 아니며, 내 가족의 일원이고 내가 속한 사회의 일원이고 나를 키운 한민족 역사 속의 한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읽는 동안, 저절로, 아, 내가, 보잘것없는 내가, 면면히 이어온 우리 역사의 한 가닥 흐름 위에 있다, 나뿐만 아니라 내 주위의 모든 이름없는 백성들조차.

 

소설 속 무슨 힘이라고 해야 할까. 다른 소설들처럼 긴박한 갈등관계도 없고 애절한 남녀 사랑도 돋보이지 않고 있는 듯 마는 듯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동네에서 늘 일어나고 있는 사소한 일상들을 말해 주고 있는 것 같은데, 그 이야기들이 전혀 가볍지 않고 턱없이 무겁지도 않으면서, 나 자신과 내 삶과 내 미래를 생각하게 하는지.

 

소설 사이에 실린 그림을 보는 맛도 근사하다. 나처럼 그림을 모르는 사람에게도 따뜻한 마음을 갖게 한다. 이런 그림들이 있는 곳이라면 일부러라도 가서 보았으면 좋겠다. 글쓰는 사람과 그림 그리는 사람의 깊고 깊은 사귐을 또 한 번 부러워한다. 

 

2008년 처음으로 읽은 책이 이 책이어서 기쁘다. 멀지 않은 시일에 이 작가의 전집을 몽땅 얻어야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나도 지금보다 더 어리석지 않은 노인이 되었으면 좋겠다.  

YES마니아 : 로얄 j***6 2008.01.02. 신고 공감 0 댓글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