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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이 빛나는 밤 해바라기의 강렬한 황금색과 자화상이라는 친근한 작품들로 처음 명화를 접하게 되고 알아가게 된 화가 빈센트 반 고흐 살아생전 그림을 한점도 팔지 못했다는 말에서 그의 고단했던 삶을 상상해 볼 수 있게 된다.
얼마전부터 시작된 시립미술관에서의 그의 전시가 큰 이슈가 되면서 더욱 더 높아진관심으로 그의 작품 뿐만 아니라 인생 이야기를 만날수 있었던 기회가되었다. 네델란드에서 태어나 프랑스 프로방스에서 머물며 작품생활을 했던 그시절 그리고 그가 자살한후 6개월이라는 시간동안의 이야기를 동생 테오가 들려주는 이야기였다. 두 형제는 어려서부터 참으로 각별한 사이였던듯싶다. 동생 테오의 지원으로 작품활동을 계속할수 있었다 라는 것이 내가 가지고 있던 두 형제의 이야기였었는데 그들에게 있어 형의 존재,동생의 존재가 서로에게 삶의 근원이며 원동력이 되고 있었음을 새로이 알아가게 되었다. 서로 떨어져 지내며 주고 받은 편지들로 구성된 이야기를 읽어 내려가며 폴 고갱과의 동거, 너무 빨리 앞서간 작품세계로 인해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외면당했던 그의 인생에서 그의 가족들과 동생은 항상 그리움의 존재들이 되고있었다.
유독 작품애기를 안하고 있는 이 책에서 감자를 먹는 사람들 이라는 작품에 대한 언급은 자주 등장한다. 가난한 사람들이 그의 모델이 되었고 아름다은 자연 풍광들이 그의 화폭을 차지했기때문이 아닐었을까 싶다. 이상적 예술혼을 불태웠던 그가 큰 상실감을 가져다 주는 현실세계로인해 발작과 입원이라고 하는 삶의 고통속에서도 위대한 작품을 남길수 있었던 것은 그의 열정과 동생 테오가 옆에 있어 가능하지 않았을까, 동생 또한 형 빈센트가 있었기 때문에 그토록 열심히 그의 인생을 걸어왔구나 생각해본다.
빈센트 사후 6개월이란 시간동안 테오가 한것은 그의 작품을 정리하고 모으고 세상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몸부림이었다. 다가오는 죽음의 그림자 앞에서도 형이 대중들에게 인정받는 모습을 보고싶었던 그는 끝내 그 모습을 보지 못한채 형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테오에게 있어 한줄기 빛이 되었던 그의 아내 요한나 하지만 빈센트에게는 지독한 절망감을 안겨준 존재였다. 그 요한나로 인해 빈센트의 작품들이 테오의 희망과 사랑이 드디어 빛을 발하기 시작 하고 있다. 전적으로 서로를 믿고 의지하는 그 형제관계속 한가운데 존재했던 요한나는 빈센트의 발자취를 더듬어가는 작품과 편지속에서 테오를 찾고 있었다. 두사람의 뜨거운 형제애를 만난 지금 그 두사람의 열정이 녹아있는 작품을 쉽게 마주할수 있는 현재가 너무도 감사하게 생각되어진다. 조만간 그들의 사랑을 확인해볼수 있는 작품들을 만나러 가야지 하는 기대감으로 더욱 소중한 시간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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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고흐의 작품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이 언제쯤이었을까? 기억은 가물거리지만, 그의 그림을 꽤나 좋아했고, 어느 곳에서 그의 그림을 만날 때면 흐뭇해하기까지 했었다. 그러다가 [반고흐 영혼의 편지]라는 책을 통해 어느 정도 가까이 다가가려고 노력도 했던것같다. 그런데 나는 그의 작품에는 빠져들면서도 정작 그림을 그린 고흐에게는 마음을 열 수 없었다. 그것은, 귀를 잘라버린 후 그린 자화상이 내 머리속에 깊이 박혀있어서였는데, 그를 이해하지 못해서였다기보다(그렇다고 이해하는 것도 아니지만) 자신의 귀를 잘라버릴 수 있는 사람이 무서워서였기 때문이기도 하다.
반고흐를 이야기할 때면 언제나 그의 작품 외에 항상 회자되는 소재가 그의 동생 테오일 것이다. 빈센트와 테오가 끊임없이 나누었던 편지를 통해 빈센트 반 고흐라는 인물에 대한 이야기가 가지를 칠 수 있었기때문이겠지.
동생과 그토록 많은 편지를 지속적으로 나눌 수 있었던 데에는 분명, 빈센트와 테오가 단순한 형제애 이상의 것이 있었을터이다. 우리도 수많은 지인들과 연락을 하고 살지만, 자신의 내면상태를 그토록 솔직하게 고백할 상대가 있었을까를 생각해보면 그리 흔치 않을 것이다. 특히나, 연인도 아니요, 자신의 형제라니. 사실, 형제란 가깝고도 먼 사이가 아니던가. 그들의 나이가 한살밖에 차이가 나지 않으며, 빈센트의 화가로서의 생활을 지원해줄 수 있었던 것을 볼 때 그들은 형제이기 이전에 서로의 멘토이자 벗이었으리라.
그의 그림, 그의 편지들은 빈센트를 이해하는데 많은 자료로 사용되었지만, 정작 그와 많은 것을 나누었던 테오의 입장을 가늠했던 것은 없었던 듯하다. 왜냐면 우리의 관심은 위대한(혹은 비싼 값을 호가하는 그림을 그린) 화가의 생애만 궁금해했지 그의 동생에게까지 관심을 기울일 필요를 못느껴서일수도 있다.
소크라테스의 아내 크산티테, 클림트의 연인 에밀리 플뢰게, 모차르트의 아내 콘스탄체처럼 빈센트 반고흐하면 테오도리스 반 고흐를 빼놓고 이야기할 수는 없음에도 그들에 대한 관심은 언제나 빈약할 뿐이다. 그런데 이 책은, 테오가 이야기하는 빈센트 반고흐의 이야기면서 실제로는 테오에 관한 이야기라고 해도 될 만한 이야기이다. 어쩌면, 빈센트가 테오이고, 테오가 빈센트였는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그 둘의 관계는 서로를 닮아가고 있었다. 빈센트가 죽은지 6개월 뒤에 마치 형을 따라가듯 죽은 테오를 우리는 어떻게 보아야할까?
세상의 관심 밖에 있던 테오를 다시 세상의 관심 안으로 들여놓은 소설이라 생각된다. 더군다나 테오가 알고 있던, 고흐의 그림 모델들-가셰박사나 탕기영감-에 대해서도 알게 되어 자화상이 아닌 초상화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때마침 반고흐의 미술전이 열린다하는데 지리적여건과 개인적사정으로 보러 갈 수 없는 아쉬움을 이 책을 통해 약간이나마 위로를 받았음은 말할 것도 없다. 그림을 중심으로 전개된 빈센트의 삶이 아니라, 빈센트의 죽음 이후 테오가 주변 사람들에게 빈센트를 이해시키면서 자기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는 형식이다. 새로운 각도에서 바라본 빈센트, 아니 테오의 이야기에 한번쯤 빠져봐도 될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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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 고흐의 이야기나 그의 그림을 보면서,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인 테오가 언제나 궁금했었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로 생을 마감한 뒤, 결국 테오 역시 정신 이상을 보이며 죽어갔다는 짧은 지식만 가지고 있었기에 궁금증이 더 커져갔는지도 모르겠다.
이 책은 빈센트가 죽은 뒤 테오가 '오베르 쉬르 우아즈'에 도착해 그의 장례식을 준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빈센트는 결국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그림에 대한 열정도 그의 괴로움을 해결해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그의 후원자이자 동생이였던 테오는 그의 죽음을 믿을수도, 이해할수도 없었다.
비록 빈센트는 점점 괴로움에 빠지고, 테오는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꾸리며 둘의 생활이 어긋났음에도 불구하고, 둘의 영혼은 항상 이어져있었다. 그래서 빈센트의 죽음은 테오에게 엄청난 영향을 끼쳤을 것이다. 그래서 테오는 형을 위해 전시회를 준비한다. 하지만 쉽지 않다. 아직 빈센트의 이름은 알려지지 않았고, 큰 미술상들이 거부했기 때문이다. 결국, 테오는 자신이 전시회를 준비하기 시작한다. 그러면서 형이 그렸던 그림들을 하나하나 꼼꼼이 점검해 나가고 빈센트의 그림 안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내게 남은 마지막 기력이 빠져나가고 있다. 마치 그림 속 색채들이 나의 혈관에서 푸른빛을, 내 볼에서 창백한 장밋빛을, 내 눈동자에서 초록빛을 빨아들이기라도 하는 것 같다. 내 목을 낚아 채, 나를 앗아가는 것 같다. 내가 빈센트의 그림 모델이 되어준 적은 한 번도 없다. 그런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다. 한데 이제 와 그의 모습 안에서 흡사 거울을 바라보듯 나의 모습을 보고 있는 것이다.-147p>
성인이 되어 서로 엇갈린 길을 가게 된 형제일지라도, 두사람은 아마 한 영혼이였을지도 모른다. 그렇지 않고서는 빈센트 반 고흐가 죽은지 6개월만에, 마비증세와 신경증을 앓다가 테오 역시 죽을 걸 설명할 길이 없을 거다.
빈센트 반 고흐의 열렬한 지지자이자, 아름다운 동반자였던 테오도뤼스 반 고흐.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의 밑바탕엔 테오의 영혼 역시 숨쉬고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앞으로 빈센트 반 고흐의 그림을 보게 될 때마다 테오의 모습도 함께 찾게 될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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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약간의 단편적인 이야기만이 떠오르는 화가다. 하지만, 그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반갑고 욕심나는 책이지 않을까 싶다.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란 생각은 든다. 그리고, 그에 대해서 좀 관심이 있던 사람들, 그래서 그의 작품을 챙겨서 봐 왔던 이라던지, 혹 그에 관한 이야기를 많이 읽어온 사람들에게는 더 흥미로운 책이지 않을까 싶다. 이 책은, 동생의 시선으로 쓰인 책이다. 책을 읽으면서, 정말 동생은 이런 느낌을 갖고 있었던 것일까? 라는 생각이랄지, 동생의 느낌으로 읽었는데, 작가가 의도해서 그런 느낌의 책이 쓰여진 것 같다. 생전에는 빛을 보지 못하고 자살해 버린 빈센트 반 고흐, 그의 죽음에 모든 걸 상실해 버린 동생 테오. 빈센트 반 고흐가 자살했다는 것도 이 책을 읽어서 알게 되었다. 또 그가 죽은 후 6개월 뒤에 그의 뒤를 따른 동생. 두 형제가 편지를 주고 받아서, 그 편지와 그림들로 재구성된 책이다. 조금은 독특한 형제애가 보여지기도 하고, 책을 덮고 나니, 빈센트 반 고흐에 대한 궁금증 혹 호기심이 새록새록 생기는 것 같다. 두 사람의 편지를 통해, 보여지는 이야기라서 그런지, 조금 아쉬운 점이 많았다. 뭐랄까, 고흐가 왜 미쳐야 했는지,... 기회가 되면, 그에 대한 책을 더 찾아 읽어보고 싶어진다. 미술에 문외한이라서, 그의 작품의 위대함을 잘은 모르겠지만, 자연을 사랑했다는 글귀가 기억에 남는다. 기회가 되면, 그의 작품을 실제로 만나보고 화가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공감해 보고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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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살로 생을 마감한 비운의 천재 화가 빈센트 반 고흐. 1세기 전 마치 그림이라는 광기에 휩싸여 모든 생을 불태워 버린 채 짧은 나이로 마감할 수밖에 없었던 그에게는 자신의 분신과도 같은 동생 테오가 있었다. 안타깝게도, 살아생전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그림들의 가치를 인정해주고, 어려운 살림 속에서도 보이지 않게, 혹은 금전적인 후원을 아끼지 않았던 테오의 헌신이 눈물겹다. 마치 알고 있는 주소가 하나뿐이라는 듯 빼곡히 써서 동생에게로 보내졌던 그 무수한 편지들을 추억하면, 지금도 우리는 빈센트와 테오라는 끈끈한 두 형제의 깊이를 알 수 없을 정도의 사랑을 느낄 수 있다.
예술가의 깊이를 헤아리기란 쉽지 않다. 지금은 하나의 문화적 코드로 정착한 ‘고흐’라는 존재를 당시엔 누구도 알아보지 못했고, 그 외면당한 고독의 슬픔을 유일하게 헤아려 주던 상대가 테오였기에 빈센트는 그토록 동생에게 의지를 했던 것이 아닐까. 두 사람은 단지 형제라고 정의 내리기에는 부족한, 뭔가 더욱 깊은 유대감이 깃들어져 있었다. 베일에 싸인 듯 신비롭고, 때로는 맹목적이며, 때로는 따끔한 질책과 충고도 아낌없이 토로할 수 있는 영혼의 반려자가 아니었을까 싶다.
빈센트와 테오의 죽음은 여러면에서 동일시되는 묘한 메시지가 있다. 지나치게 무거웠던 삶이 주는 중압감과 고통의 무게를 감내 할 수 없었고, 세상으로부터 외면당하는 아름다움의 근원을 무시할 수 없었다. 상처받은 자들에게 세상은 언제나 동일한 엔딩만을 선사하나 보다. 형이라는 한쪽 팔을 잃어버린 테오에게 세상은 더 이상 살아갈 가치와 의미가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비극적인 결말을 향해 달려가던 빈센트와 테오. 서로가 서로에게 거울이 되어 주었던 끈끈한 형제의 사랑이 부럽기도 하고, 마냥 슬프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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