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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D 제임스는 작가적 지명도에 비해 우리나라에선 너무 무시되는 감이 있다. 알라딘을 검색해 봐도 그녀의 작품은 그나마 구할 수 있는 게 이 소설과 동서미스터리로 나온 '검은 탑'뿐이다. 2006년 그녀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알폰소 쿠아론 감독의 영화 '칠드런 오브 맨'이 우리나라에 소개되기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원작은 커녕 그녀의 다른 작품마저 나오지 않고 있다.
위 그림에서 보듯 PD JAMES의 해외에서의 평가는 이러한데, 왜 이렇게 그녀는 국내에서 무시되고 있는 것일까? 팬으로서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 쓰고 있는 이 책에 애착이 많다. 그나마 제대로 된 번역으로 만나볼 수 있는 그녀의 유일한 작품이기도 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 역시도 그저 흔한 미스터리로 치부되고 그나마 평가도 그리 호의적이지 않은 것 같다. 모처럼 만나볼 수 있는 P.D 제임스의 작품이 이런 평가를 받고있다 보니 이 작품을 위해 정말 두 팔 걷고 나서지 않을 수가 없게된다.
버니 프라이드가 죽은 아침 코딜리아는 베이커루 지하철 노선이 고장을 일으킨 탓에 람베스 노스 역에 발이 묶여 사무실에 삼십 분 늦게 도착했다.(p.11)
소설은 이렇게 시작한다. 레이먼드 카버는 '소설의 승패는 모두 첫 문장에 달려 있다.'라고 흔히 말하곤 했는데, 내겐 이 소설의 첫 문장이 성공적으로 보인다. 독자의 눈길을 확 잡아당길 뿐만 아니라 삼십 분 일찍 도착했다면 버니를 살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라는 암시가 은밀히 깔려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 삼십분 때문에 코딜리아의 인생은 확 달라져 버린 것이다. 그렇게 어떤 운명을 결정하는 것이 세상의 작은 우연이라는, 삶이 가진 어떤 아이러니한 속성마저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
이렇게 코딜리아는 아침에 출근하자마자 사립탐정 사무실을 공동경영하고 있는 버니 프라이드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그가 언제 죽었는지는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소설의 첫 문장은 그가 그 30분내에 결정했음을 암시하는듯 하다.) 그는 유서를 남겼는데, 그것은 그가 암에 걸렸기 때문에 병으로 죽기 전에 자기가 스스로 목숨을 끊어버렸다는 것이었다. 그는 코딜리아에게 등록되지 않는 권총 한 자루도 남긴다. 버니의 죽음에 미스터리한 점은 없다. 하지만 버니의 죽음으로 코딜리아는 그동안 자기가 속해있던 버니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세계속에서 완전히 추방되어 버린다. 살고 있는 집도, 단골 가게도 그리고 늘 해오던 사립탐정 일 조차도 이제는 예전과 완전히 달라져 버린다. 집에선 쫓겨나고 단골 가게는 환영하지 않으며 사립탐정 일에 대해선 만나는 사람마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며 그만두기를 권하는 것이다.
버니가 죽자 모든 게 달라졌다.
그렇게 그녀는 이제 자신이 여자라는 걸 곳곳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확실히 자각하게 된다. "여자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란 말은 이 소설의 원제이기도 하지만 코딜리아가 만나는 사람마다 그녀에게 하는 말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그녀에게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물론 이것은 작가의 의도이다. 문제는 버니가 죽고 나서 그녀가 겪는 일이라는 것이다. 버니의 죽음으로 그녀는 완전히 버니를 중심으로 돌아가던 세상에서 이탈해 혼자가 되었다. 혼자가 되어 이제 세상을 마주해야 하는 그녀에게 세상은 그녀가 여자라는 사실을 자꾸만 자각시킨다.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중반 부분, 그녀가 의뢰로 인해 케임브릿지에 갔을 때 그녀는 새삼 아버지를 떠올리게 된다. 강압적이고 무책임했던 아버지는 그녀를 내내 자기 곁에다 가두어 두었다. 코델리아는 아버지가 아니었으면 자기도 이 자유로운 도시의 일원이 되었을 거라 생각한다. 하지만 아버지는 그 곳으로 가는 것을 차단시켰고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를 중심으로 도는 삶을 살았다. 그리고 바로 버니를 중심으로 도는 세상으로 들어간 것이다. 그러니까 코델리아는 태어나서 남성을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벗어나본 적이 없는 인생이다. 그녀의 어머니는 그녀를 낳고 한 시간 안에 죽었다. 그녀는 모성이란 걸 경험해 보지 못했다. 이건 그녀가 남자가 중심인 세상에서 남자가 부여한 인격체로 살았다는 의미도 된다. 그것을 대표적으로 드러내는 것이 바로 버니에게 배운 탐정의 기술이다.
그녀는 그렇게 아버지와 버니라는 남자 중심의 사회에서 남성이 부여하는 정체성을 가지고 살아왔다. 그런데 이제 아버지에 이어 버니까지 죽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그녀는 남성을 중심으로 한 세상에서 떨어져 나왔고 이제 스스로 자신만의 정체성을 만들어가야할 과제를 떠안은 것이다. 의미심장한 것은 버니가 그녀에게 남근의 상징이라 할 수 있는 권총을 남겼다는 것이다. 코델리아는 그것이 자신을 남성의 세계에 묶어두려는 구속임을 자각하고 있다. 그래서 본능적으로 그것을 지니는 것을 두려워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사립탐정이란 직업은 계속 유지하려 든다. 그건 버니가 물려준 것이지만 권총처럼 두려워하지 않는다. 물론 자기 자신이 제일 잘 하는 일이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도 그건 사립탐정이 가진 본질이 '관찰자'이기 때문이다. 사립탐정의 본질은 바로 '변화의 목도'에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잘 정의했듯 사립탐정이 하는 일이란 끝내 자기가 알았던 것들이 모두 변질되어 버렸음을 확인하는 것에 다름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남성의 세상에서 떨어져나와 이제 스스로의 정체성을 확립해야 하는 코델리아에게 있어 사립탐정은 그 무엇보다 자신에게 적합한 일이 된다. 작가 제임스는 흥미롭게도 겨우 그녀와 한 시간 밖에는 세상에서 함께 하지못한 어머니가 그것이 그녀에게 정말 어울리는 일이라는 것을 계속 말하고 있다고 상상하는 그녀의 모습을 보여준다. 부재한 모성이지만, 부성과는 다른 모성으로 부터 받는 상상으로서의 위안은 그녀에게 남성적 세계에서 부여되는 의미가 아니라 여성적 세계에서 부여되는 의미로 사립탐정 직업이 가지는 의미가 새롭게 바뀌었다는 걸 드러내 준다.
이제 새로이 의미를 찾은 사립탐정은 코델리아에게 남의 비밀을 파헤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정체성을 되찾는 탐색의 과정이 된다. 그레이엄 터너에 따르면 인간의 인식은 언제나 이분법적이라서 하나를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그 대상 자체로서는 불가능하고 언제나 그 반대되는 것을 통해서 밖에는 못한다고 한다. 그러니까 인간은 어둠을 통해 그 반대되는 빛을 정의하고 천국을 통해 그 반대되는 지옥을 정의한다는 것이다. 이건 코델리아에게도 그래도 적용된다. 그녀가 새롭게 자각하는, 아니면 세상이 끊임없이 그녀에게 자각시키는 '여성'으로서의 새로운 자신만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하여 그녀가 우선적으로 관찰해야 하는 일은 바로 남성 세계의 진실이다. 때문에 작가는 사려깊게도 그녀의 첫 임무가 바로 아버지가 아들의 자살 원인을 파악하는 의뢰로 시작하게 만든다.
굳이, 프로이드의 오디이푸스를 언급하지 않아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는 남성적 세계의 가장 근본적인 모습이라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여기서 '자살'이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버니의 자살이 의뢰인의 아들 마크의 자살로 반복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소설을 읽으면 버니와 마크의 상징에 있어서의 공통점이 드러난다. 그 공통점은 바로 진짜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버니의 의미와 의뢰인 아버지 로널드 칼렌더와의 관계에서 마크의 의미이다. 버니는 아버지의 연쇄이지만 사실 그 연속이라 볼 때 아들의 위치를 차지한다고 볼 수도 있다. 그렇게 버니와 마크를 다 아들의 위치에 놓아두면 이들의 공통점은 보다 분명해진다. 케임브릿지 일화에서 보듯이 코델리아의 아버지는 완전히 그녀의 인생을 쥐고 흔들었던 독재자였지만 버니는 코델리아를 하나의 인격체로서 존중해준다. 따라서 그만큼 아버지에 비해 덜 남성적이다. 마크도 그렇다. 아주 냉혹하고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는 인간성 따위도 내던져 버릴 수 있는 아버지에 비해 마크는 아주 도덕적인 아들이다. 즉, 그만큼 덜 남성적이다. 말하자면 버니와 마크는 완화된 혹은 약화된 남성성이다. 그런데 그들은 모두 죽었다. 하나는 자살이고 하나는 타살, 즉 살해된 것이다. 작가는 일부러 이들의 죽음 원인을 다르게 했다. 그 이유는 버니와 마크가 공히 약화된 남성성을 가지고 있어도 그 차이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버니에 비해 마크는 훨씬 더 여성적인 것(마크가 여장을 한 채 발견된 것이 이것을 명확하게 드러내고 있다.)에 가깝다는 것이 소설 속에서 드러난다. 결국 이것이 마크가 살해를 당한 주된 이유인 것이다.
아들의 죽음의 반복을 원형적으로 바라보면 여기에 종교적 은유가 깔려있음을 보게 된다. 즉, 작가는 '아들의 죽음'을 통해 기독교에 있어서의 하나님과 예수의 관계를 가져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건 서양문화에서 가장 바탕이 되는 것이 바로 기독교라는 것을 생각해 보면 당연하다고 할 수 있다. 코델리아가 관찰하는 그 남성성의 근본에는 바로 기독교의 남성적 하나님이 놓여있다. 그 하나님과 예수의 은유적 관계가 바로 소설속에서는 칼렌더와 마크의 관계로 나타난다. 냉혹한 야훼와 자애로운 예수의 이미지로 말이다. 그런데 자연을 사랑하며 아주 도덕적인 예수 마크는 결국 죽임을 당한다. 그가 보다 더 여성적이라는 이유로... 결국 칼렌더에게 야훼의 이미지가 겹쳐진다는 것은 코델리아에게 있어 남성적인 것은 결코 받아들여져야 하지 않을 것, 그렇게 근본 부터 뒤엎고 다시 새로이 시작해야 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녀는 다른 대안을 찾는다.
그것은 바로 '여성으로서의 신'이다. 우리는 이 소설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만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또한 반복되고 있음을 본다. 코델리아가 상상적으로 의지하는 어머니와 마크의 진짜 어머니가 바로 그것이다. 그런데 코델리아가 애초부터 여성임을 자각하지 못했을 때 그렇게 남성적인 세계에 완전히 함몰되어 있었을 때, 그 어머니는 부재했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녀가 남성의 세계에서 멀어지고 점점 더 여성으로서의 자아를 되찾아가자 부재했던 어머니의 존재가 점점 현실적인 존재가 되고 결국에는 그녀 앞에 최종적으로 모습을 드러낸다.
이렇게 어머니. '아버지로서의 신'에 완전히 대칭되는 '어머니로서의 신'이 코델리아의 자각과 더불어 현실적인 존재가 되어가는 것은 참으로 흥미롭다. 코델리아가 점점 더 여성으로서의 자신에 대한 자각이 커짐에 따라 남성성으로서의 신이 얼마나 무자비하고 비윤리적인 존재인가가 드러나는 것도 흥미롭다. 결국 이 모든 것에 작가 제임스가 이 소설을 통해 제시하는 대안이 있지 않을까 한다. 즉, 남성성으로서의 신의 자리에 새로이 여성성으로서의 신을 정립 대체하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여성성으로서의 신'은 소설 속에서 코델리아의 아버지와 그녀의 관계, 컬렌더와 마크의 관계로 나타났듯이 더이상 서열로 이루어지는 권력관계가 아니다. 그것은 소설의 후반부에 코델리아와 마크의 진짜 엄마의 관계로 극적으로 드러나듯이 '연대감이 기반이 된 동등한 관계'이다.
그렇게 작가 제임스는 새로이 정립해야 할 '여성성으로서의 신'은 무엇보다 어떤 권력도 서열도 없는 오로지 동등한 인격끼리의 관계여야 하며 연대감만이 이 관계를 이어주는 유일한 기반임을 적극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그리고 이건 이 소설을 통해 제임스가 말하려는 진짜 주제이기도 하다.
이렇게 이 소설 '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사실 이 제목은 제임스가 근본적으로 말하고 싶은 주제와 너무 어울리지 않는다. 원제인 '여성에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 보다 더 적합하리라 생각된다.)' 그냥 평범한 미스터리로 치부해 버릴 수 없다. 그냥 미스터리로 치부해 버리는 것은 제임스가 소설 속에 면밀하게 깔아놓은 장치들을 완전히 깡그리 무시하는 처사가 될 것이다. 이것은 그야말로 페미니즘 소설이다. 이 남성적 세계를 대체할 '여성적 신'이라는 대안 그리고 그 관계의 모습과 기반까지 아울러 다 들어있기 때문이다. 아가사 크리스티의 '애크로이드 살인 사건' 이후로 우리는 미스터리가 그저 훌훌 읽기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배웠다. 피에르 바야르에 따르면 미스터리 소설이야 말로 독자가 신경을 집중하고 내러티브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독자적으로 의미까지 세울 수 있는 멋진 장르라고 한다. 이 소설 역시 피에르 바야르가 말했던 것을 받을 자격이 있다. 이 풍부한 페미니즘의 의미가 이대로 묻히는 건 너무나 아깝다. 제대로 음미할 것을 권하고 싶다. 아울러 제임스의 다른 소설도 많이 국내에 소개되었으면 한다. 이 소설에서 보듯이 이대로 무시되기엔 너무나 아까운 작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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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탐정은 환영받지 못한다 밀리언셀러 클럽 073 P.D. 제임스 지음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의 계승자로 불리고 있는 미스터리와 서스펜스 분야 인기작가인 P. D. 제임스 (Phyllis Dorothy James)
하기는 기억을 더듬어 보더라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미스 마플을 제외하고는 여탐정의 이야기는 빈약하지 않나 싶다. TV 드라마로 본 기억이 있는 레밍턴 스틸에서도 여탐정을 신뢰하지 않는 현실을 깨기 위해 가상의 '레밍턴 스틸'이라는 인물을 내세워야만 하는 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실이라고 할 것이다. 이 이야기에서는 환영받지 못하는 여탐정인 등장하고 있다. 수녀원과 보호 시설을 전전하며 고아나 다름없이 성장하여 프라이드 사립 탐정 사무실의 공동 대표이던 코딜리아 그레이는 후견인이자 스승이었고 실제적인 대표이자 탐정인 버나드 G. 프라이드가 암발병으로 자살한 댓가로 탐정 버니를 잃고 하루아침에 탐정 사무소를 책임지게 되고, 이 탐정 사무실을 물려받고는 의욕적으로 첫 사건에 달려들게 된다. 이 방년 22세로 런던 유일의 여탐정이 된 코딜리아에게 주위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고, 우여곡절 끝에 들어온 첫 일거리는 명문가 외아들인 마크 칼렌더의 아버지가 의뢰한 아들의 자살 경위 조사인 것이다. 이 탐정으로서의 첫 사건, 명문가 로널드 칼렌더 경의 외아들인 마크 칼렌더의 자살 사건에 대한 진상 조사를 어떻게 성공적으로 이끌어내느냐에 따라 탐정으로서의 코딜리아의 생존이 달린 중대사인만큼 코딜리아는 버니에게서 물려받은 권총까지 챙기며 사력을 다해 임하게 된다. 코딜리아는 버니에게 배운대로 마크 칼렌더의 흔적을 찾아 모험을 감행한다. 그녀는 의욕을 불태우며 수사에 뛰어들지만, 사건 관계자 마크의 주변인물들과 친구 휴고 틸링과 소피 틸링, 이사벨 드 라스테리, 데이비 스티븐슨등의 인물들과 경찰까지도 그녀를 여자라고 냉담하게 무시할 뿐이고, 거기에 알 수 없는 누군가의 교묘한 수사 방해가 이어지며, 로널드 칼레더 경 측의 인물인 엘리자베스 리밍이나 조교인 크리스 런까지도 도움을 제대로 주지 않는 상황에서 코딜리아는 생명의 위험에까지 처하게 되는데…. 코딜리아가 이 모든 상황에도 불구하고 탐정으로서의 기지를 발휘하며, 첫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해 낸다는 것까지만 알려줄 수 있다. 나 역시 여타의 추리소설을 읽는 독자로서도 스포일러는 사양하고 싶기 때문이다. 작가 P.D. 제임스는 1962년의 첫 작품 『그녀의 얼굴을 가려라』부터 2005년 『등대』에 이르기까지 40년이 넘는 기간 그녀와 함께 한 시인 겸 수사관 애덤 달글리시 시리즈가 특히 유명하다고 하니, 애덤 달글리시 시리즈를 찾아봐야지~ 2014.3.27.(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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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많은 미스테리 소설이 쓰여져 왔지만 그 정면에 나서서 활약하는 탐정 중에 여탐정을 찾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오래 전에 쓰여진 책일수록, 그리고 그 탐정의 수사 방식이 미스 마플과 같은 안락의자형이 아닌, 활동적인 방식일수록 더더욱 그러하다. 그것은 미스테리 물이 다루는 사건들 대부분이 살인이나 강력 사건이므로 위험한 사건 현장을 누비고 다녀야 하는 직업인 탐정일을 여성을 주인공으로 하여 쉽게 풀어나가기가 어려워서 일 것이고 또한 사회적 통념 또한 그러한 여탐정의 롤에 쉽게 개연성을 주기 어려워서 였을 것이다.
이 책의 주인공인 코딜리아는 이러한 통념을 적극적으로 깨고 나온 모습은 아니다. 그렇게 성공하지 못한 탐정 사무소의 동업자 였으나 그 위치에 자리잡은 것은 얼마 되지 않았고, 또한 그 자리 역시 자신의 뛰어난 탐정 능력으로 쟁취한 것도 아니다. 어느날 파트너의 자살로 그 자리에 차라리 던져졌다고 표현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앉게 되었고 그 위치를 유지할 수 있을지, 아니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다른 일을 찾아야 할지 고민을 한다.
그러다가 우연히 맞게 된 한 의뢰에서 역시 자신의 소견과 능력을 적극적으로 발휘하기 보다 파트너의 조언과 과거의 추억 속에서 묵묵히 일을 할 뿐, 특별한 여성미를 뿜어내지는 않는다. 그러나 그녀의 차근차근한 수사는 여성 특유의 섬세함과 친화력으로 일반적인 남성 탐정과는 다른 방식으로 진행되고 그 와중에 여러 등장 인물과 관계 맺는 방식 역시 여성적인데 미스테리 팬으로서 이러한 과정을 읽는 것은 색다른 매력을 느낄 수 있다. 저자 역시 미스테리의 여왕 이라 불리웠던 사람이고 보면 그녀 자신이 여성이기에 그녀 만이 그려낼 수 있는 필치로 새로운 유형의 탐정을 그려내지 않았나 싶다.
큰 사건은 아니지만 작은 자살 사건을 수사하고 또 결말과 그 결말이 마무리지어지는 방식의 특이성 때문에 후반부는 책장을 어서 넘겨야만 했다. 스펙타클 하지 않으면서도 소소한 읽는 재미를 안겨주는 것이 기대했던 만큼의 성과는 있었던 책.
과연 코딜리아는 이후에 자신이 택한 직업에서 환영받을 수 있는 위치까지 올라갔을까? 그러기를 바래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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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원제인 An unsuitable job for a woman은 예전에 '여자에게 맞지 않는 직업'이란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지금 제목은 좀..어색하군요.
코델리아 그레이는 탐정치고는 많이 특이합니다. 셜록 홈즈나 포와로..아니 같은 여자인 미스 마플과 비교해도 강하지 않고 그렇게까지 지성미 넘치지도 않습니다. 이름이 주는(그레이gray회색)암울함도 작품내내 따라다닙니다.
그녀는 현장에서 조금이라도 정보를 얻어보려고 노력하다 수난을 겪고 무시당하며 울기도 많이 웁니다..
이 글은 사건의 맥락보단 등장인물의 행동묘사등에 많은 부분을 할애합니다. 그래서 단순히 추리만을 즐기는 분께는 안맞을 수가 있지요.
하지만 문학적인 감성은 그만큼 많이 녹아들어 있습니다. 추리외의 재미있는 표현(번역자가 많이 힘들겠네요)을 보면서 작가가 대단하긴 하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20대 초반에 추리소설에 빠질 무렵은 크리스티 여사의 본격추리가 좋았지만, 글을 잘 써보려고 한 순간부터는 이런 섬세함이 넘치는 글(물론 추리집중은 안됩니다)도 괜찮겠더군요.
또,작가가 여성이라 그런지 섬세한 아가씨(지만 풍파가 많아서 냉철한)로 묘사되어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현실감을 더해줍니다.
참,여자가 탐정이라 무시당한다는 면에선 피어스 브로스넌이 출연한 레밍턴 스틸과 맥락이 비슷하네요.
다만 결국 작가의 다른 작품 주인공인 댈글리슈랑 엮을라고 드는 것은 조금 잘나가다 삼천포로 빠지는 느낌이 듭니다... 끝까지 남성우월주의 사회에서 현명하게 성장하는 여성상을 바랬는데.
-처음 이 소설을 알게된 것은 만화책 명탐정 코난에서 작가의 추천 추리소설 에 나오는 소개를 보고서 입니다.. 적어도 이 소설을 읽으시면 왜 자살할때 손목긋는다고 꼭 안죽는지 알게 될 듯. (작중 인물인 하이바라(灰原잿빛 평원)의 이름의 유래도 그녀에서부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