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론보다 이단이 논리적인 뒷받침이 되는 이론에는 더욱 강하던가. 그 뒷받침으로 사용되는 이론이 사실이든 아니든간에 말이다. 교묘히 양국의 국민들의 감정을 농락하면서 천황하의 우익의 영향을 결국 일본 전국가적 차원으로 확대시키고, 더불어 책임운운에 지친 피해국가의 국민들의 감정까지 그들에게 이득이 되는 쪽으로 입맛에 맞추는 데 기가 막히게 잘 진행해 가고 있는 현상황에 대해 가해자, 피해자 양 쪽 입장 모두에게 경각심을 일깨워줄 수 있는 필독서라고 하겠다. 일본제국의 식민지 전쟁의 피해자인 다른 아시아국가와 우리(남북 분단전 일에 의해 강제이주한 재일동포 포함)가 가해자인 일본의 입장에서는 지극히 당연히 인식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믿고 있었던 것들에 대해 전후, 그리고 오늘날까지 점 점 더 큰 힘을 얻으면서 천황하의 일본이 일본인에게 정착시키는데 성공한 관점은 무엇이며, 그 관점에 대한 엄청난 위기의식을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무엇보다 우리가 감정의 논리에 휩쓸려 단순히 가해자 일본에 대한 악감정에만 의지한 채 좀 더 현실을 직시하기 위해 노력하지 못했던 사이에 일본제국의 피해자의 입장인 우리 역시 전후 일본이 내세운 말도 안되는 논리에 휩쓸려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귀찮으니, 서로 수치니 덮어두자. 양국의 밝은 미래를 위해서라도 역사를 청산하는 것이 낫다고 외치는 경제대국 일본의 입장에 정치적, 외교적 이유로 같이 손을 들어주고 있는, 여전히 전쟁의 아픔을 겪고 있는 우리나라와 여러 아시아국의 현 사정에 대해 각 국가간의 이익이 얽히고 섥힌 정치경제의 문제부터 시작하는게 아닌, 인간으로서 진정한 전쟁의 책임을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 것인가에 대해서 서술하는 데 나치하, 그리고 현재의 독일과 피해자인 유태인의 관계와 사건을 같이 들어 대담을 나누고 있다. 어쩌면 전후 유태인의 피해자들이 겪은 그 아픔을 지금 우리가 흡사한 모양으로 겪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욱하는 감정의 문제가 아닌 과거와 현상황에 근거한 제대로된 인식을 갖추는 것이며, 그러기 위한 하나의 큰 도움판으로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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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재일 조선인' 2세로 일본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 대학에서 불문학을 공부하고 현재 도쿄경제대학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1971년 <재일교포 유학생 간첩단 사건>으로 옥고를 치른 서승/서준식의 동생으로 국내에서도 많이 읽힌 <나의 서양미술 순례>의 글쓴이면서 '재일'이라는 존재 조건 속에서 네오 내셔널리즘의 발흥 등 일본 사회의 허위와 모순을 끈질기게 고발한 서경식 선생과 도쿄대학 철학과에서 가르치고 있으며 [일본의 전후 책임을 묻는다]라는 책에서 전쟁 희생자들의 증언과 그들에 대한 기억을 무화시키려는 일본 내셔널리스트들의 논리의 허구성을 통박한 바 있는 다카하시 테츠하(高橋哲哉)간의 "전쟁의 기억을 둘러싼 대화"를 모은 책이다.
특히 일본에서 점점 네오 내셔널리즘이 대두되고 평화 헌번의 요체를 이루는 교전권을 포기한 헌번 9조의 수정을 기본으로 한 '일반국가론'이 힘을 얻어가고 있는 상황에서 이 둘은 전쟁의 기억을 다시 되새기면서 일본의 전쟁 책임 인정 및 책임자에 대한 처벌, 피해자에 대한 보상, 그리고 전쟁 피해자에 대한 진정한 사과를 통해 동아시아에 평화를 정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꾸준히 하고 있다. 다만 이 들의 주장은 일본 내에서 점점 소수가 되어 가고 있는 듯 하다.
타카하시 테츠하가 말했듯이 삼무주의(三無主義 : 젊은 층의 행동 양식을 지칭하는 말로 무책임, 무기력, 무관심을 일컬음)라든지 미이즘(me-ism : 자기 중심적인 사고 방식이나 행동 양식을 가볍게 지칭하는 말)이 젊음이와 학생을 지배하고 있으며(p.32) 자연적 시간의 논리(Chronology)에 의해 점점 전쟁의 기억이 잊혀지고 있으며 역사를 책의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해 나가려고 하는 시도가 있다고 말하고 있다. 이에 대해 타카하시 테츠하는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저항하는 아나크로니즘(Anachronism)을 그 대안으로 제시하고 있으며(p.57) '과거의 극복'이란 이름 아래 역사를 딱 잘라 정리하려는 시도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고(p.44) 주장하고 있다. 그런데 과연 역사를 책 페이지를 넘기듯이 갱신하려는 시도가 잘못된 것인가에 대해서는 의문을 품을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과거는 계속 극복되지 못하고 잊을만 하면 계속 되풀이 될 것 이라고 생각한다. 피해자에 대한 확실한 보상과 사과가 있다면 '과거의 극복' 또한 인정해야되지 않을까?
그 밖에 인상 깊은 것은 1936년에 독일 함부르크 시에 있는 거대한 전쟁 기념비를 그대로 세워 둘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한 논쟁이 있을 때 함부르크 시 당국은 이 기념비를 그대로 두고 다른 한쪽에 이것을 대항하는 반전 기념비를 세운다는 방침을 발표했다고 합니다. 즉 "낡은 기념비를 부수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적대시한 나머지 나치의 선전 도구가 어떠했는지를 비판적으로 보는 데 필요한 증거물을 없애는 것이어서 바람직하지 않다"는 이유였다는데(p.85) 이런 관점을 보여준 함부르크 시 당국의 견해에 정말 놀랄 따름이다.
그리고 우에노 치즈코(上野千鶴子) 교수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도 있다.(p.134) 내가 봉사활동 하는 <하자센터> 센터장인 조한혜정 교수와 친분이 있어서 <하자센터>에도 많이 오는 분인데 서경식 선생과 다카하시 교수는 우에노 교수에 대해 일본 국민으로서 주권자로서의 책임이 문제되는 장면에서 그것을 비켜 가기 위해 젠더나 직업이나 지위라는 다른 측면을 가져오는 논의는 옳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으며 특히 내셔널리즘의 철저 비판을 지향하는 우에노 씨답지 않게 묘하게 일국적/일본 중심적인 관점에 서 있다는 지적이 일리가 있어 보인다. 역시 우에노 치즈코 교수도 이런 약점이 존재하는 것을 보면 여성 지도자/지식인 풀이 얼마나 메말라 있는지 다시 한 번 깨닫게 되었다.
본인의 경우 야구장, 축구장, 농구장에 갈 때 경기 전에 하는 국민의례를 무시하는데 사실 국가가 나한테 해준 것이 무엇이 있다고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야 하는 것일까? 특히 우리 나라의 경우 이승만 개새끼처럼 혼자 살기 위해 한강 다리를 폭파하고 도망친 놈도 있고 박정희, 전두환처럼 말 하기도 더러운 새끼도 있고 현재 2MB처럼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나라를 운영하는 놈도 있다. 그래서 나는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는데 이는 미국에서 판례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1943년 독일 및 일본과 전쟁이 한창일때 바네트(Barnet)가의 사람들이 국기에 대한 경례를 거부하였는데 연방최고재판소는 지적/정신적 자유를 보장한 합중국 헌법 수정 1조, 14조를 근거로 국기에 대한 경례의 의무화를 위헌이라고 하여 경례 거부를 인정(p.183)했는데 이렇게 미국이 타락하지만 마지막 희망을 놓치 않는 이유는 법이 바로서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우리 나라의 경우는 법이 과연 중심이 잡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이 책은 200쪽에 불과할 정도로 양이 적지만 <나의 서양미술 순례>같은 쉬운 에세이 책으로 생각하고 읽는다면 이 책의 무게에 눌릴 가능성이 있다. 이 책은 절대 가벼운 주제를 다루고 있는 책이 아니므로 마음의 준비를 하고 읽는다면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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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을 비롯하여 과거 일본 제국주의의 식민통치를 경험한 나라의 국민이라면 굳이 설명해주지 않아도 일본의 우파 세력들의 '망언계보'를 알고 있을 것이다. '위안부 제도는 국가사업과는 무관했다', '식민지배는 아시아 후진국들의 근대화에 공헌했다' 등등의 발언은 이제 너무나 식상한 변명이 되어버려 누구도(적어도 일본을 제외한 피해국들의 국민들은) 그에 혹하지 않지만, 문제는 '객관적 진실이 무엇인가'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과거의 죄에 등 돌리려는 가해국의 반정의(反正義)적 행태와 그로 인해 다시 한 번 상처 입는 피해자들의 통탄스러운 한(恨), 나아가 앞으로 전개될 역사의 행로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위안부 김순덕 할머니를 위시한 역사상의 증인들의 스스로 하나 둘씩 그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단절의 세기'를 넘어선 '증언의 시대'이다.
그러나 증언의 시대를 살아가고자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피해자들일 뿐, 가해국 일본은 여전히 그들의 증언을 진실로 받아들이지 않은 채 현재 상황을 '반동의 시대'로만 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 책은 바로 이러한 상황에 대한 문제의식을 토대로 동경대학의 두 지식인인 서경덕과 타카하시가 나눈 대담을 글로 옮긴 것이다. 그들은 사죄와 보상이라는 단계를 거치지 않은 채 모든 것을 자연적인 시간의 흐름에 묻어 은폐하려는 일본의 비겁함을 다양한 근거와 사례들을 들어 비판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가해국 일본'이라는 단어가 야기할 수 있는 또 다른 전체주의를 향한 우려와, 그럼에도 부정할 수 없는 전체로서의 실체에 어떻게 접근해야 하는가에 대한 조심스러운 논의를 병행함으로써, 독자로 하여금 사죄에 대한 요구가 '일본=나쁘다'와 같은 단순한 방정식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며 보다 깊이 있는 고찰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자각하게 한다. 그리고 이러한 제반 논의 끝에 그들은 '우리의 대화가 앞으로의 동아시아에 신뢰와 평화가 정착할 수 있는 기반이 되기를 바란다.'는 희망적인 어조로 끝을 맺고 있다.
체계적으로 계획해서 쓴 글이 아닌 대담이다 보니 '기억과 증언-애도와 심판-책임과 주체-단절과 연대-상황, 그 이후'라는 구성은 후에 추가된 마지막 단원을 제외하면 기준이 다소 불분명하고, 각 단원에서 중복되는 내용도 일부 있다. 또한 논의의 많은 부분은 대다수의 사람들이 동의할 수 있는 의견이지만, 그런 만큼 '자기 비판적인 판단의 책임이 강하게 요구된다.'와 같이 지나치게 이상적일 뿐 현실적인 강구 방도가 없는 당위적 서술에만 그치는 내용 또한 심심치 않게 보인다. 그렇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당위적 대응'이 무엇인지조차 갈피를 잡지 못한 채 분열되어 있는 일본 사회 내에서 이와 같은 양심적 대담의 시도는 (아무리 사소한 당위적 서술이라 해도) 그러한 상황을 타개하는 초석의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최근 한국의 이 대통령은 "더 이상 일본에 과거 사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공식선언한 바 있다. '과거에 얽매여 미래로 나아가지 못해서는 안 된다'라는 이 대통령의 논리는 미래의 평화구축을 위한 전제를 부정함으로써 자연적 시간의 흐름에 묻어가려는 일본의 비겁함을 방관하고 아시아에 신뢰와 평화가 정착될 가능성의 싹을 잘라버리는 행위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이 책이 일본의 독자뿐만 아니라 한국의 독자들에게도 다시금 '역사의 정의는 바로 세워져야 한다.'는 당위 의식을 상기시켜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