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도서관에서 눈에 띈 책. 양장본의 겉표지가 벗겨진 책은 색감이라고는 전혀 없었다. 그냥 검정 표지에 회색(은빛이라고 해야하나..)으로 쓰여진 단 한단어의 제목 '욕망'. 작가의 이름이 언젠가 한번쯤 들어본 것 같다는 생각에 집어 들었던 이 책. 1989년 '아내의 여자친구'로 제42회 일본 추리작가 협회상, 1996년 '사랑'으로 제114회 나오키 상, 1998년 '욕망'으로 제5회 시마세 연애문학상, 2006년 '무지개 저편'으로 제19회 시바타 렌자부로상을 수상하였다. 내가 기억하고 있던 작품 제목은 '아내의 여자친구'였다. 읽어본 적은 없지만 제목이 독특해서 한번 펼쳐 봤던 것 같은데.. 추리소설에 손을 내밀지 않았던 시절이었으니 그때는 그저 작가의 이름정도만 보고서 스쳐지나갔으리라ㅡㅡ
아무튼.. 어떤 작가인지 궁금해서 인터넷을 통해 찾아보던 중, 이 '욕망'이라는 작품이 '첫사랑', '천국의 책방'으로 잘 알려진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이 2007년 영화화 했다는 정보까지 알게 되었다. 연애 영화 장르에서 일가를 이뤄온 일본의 유명 감독. 사랑의 감정을 투명하면서도 감각적으로 표현함과 동시에 서정적인 영상이 빼어나기로 명성이 높은 시노하라 테츠오 감독의 손에서 만들어졌다는 사실에 네이버 영화에서 찾아봤는데, 거기엔 이런 이야기가 있었다. 덕분에 영화에도 급관심.. 영화 성공의 절반은 배우들의 공으로 돌려야 할 것이다. 소설 속 인물들을 완벽하게 재현해 냈다는 평가를 받고 있는 캐스팅은 '욕망'의 존재 이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라는 평가를 받았다. 여주인공 루이코를 연기한 이타야 유카는 열정을 숨긴 채 살아가는 여성의 심리를 눈빛 하나, 몸동작 하나에 실어 표현하는 재능을 발휘했으며 특히, 리얼한 러브씬에도 불구하고 청초함을 잃지 않는 매력이 인상적이다. 한편, 마사미로 분한 무라카미 준은 현재의 일본 영화계에서 없어서는 안되는 존재로 이번 영화에서는 성 불구라는 핸디캡을 평생 안고 살아가야 하는 위태로운 남성의 초상을 절도있게 훌륭히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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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로는 내 모든 것을 가져가 버린.. 욕망. 가질 수 없기에 더 간절한 미완의 러브 스토리! 라는 문구로 소개되고 있는 고이케 마리코의 장편소설 '욕망'은 정신적 사랑과 육체적 사랑 속에서 기쁨과 절망을 오가는 한 여성의 절절한 사랑을 그린 작품으로, 여성 심리를 섬세하게 이야기하고 있는 작품이다. 청초한 매력이 넘치는 루이코는 도서관 사서로 일하고 있으면서 같은 학교 유부남 선생 '노세'와 불륜을 맺고 있다. 은밀한 시간을 함께 보낸 후 한가롭게 공원을 산책하던 두 사람. 루이코는 우연히 그곳에서 중학교 동창인 '아사오'를 만나게 된다. 아사오와 함께 동행한 이는 나이가 많은 정신과 의사 '하카마다' 둘은 곧 결혼을 앞두고 있는 사이다. 아사오는 루이코를 결혼 피로연에 초대하고, 루이코는 그 자리에서 중학교 시절 첫사랑이었던 '마사미'와 재회한다.
저는 인간의 정신 자체를 믿지 않습니다. 내가 믿는 건 인간의 외면뿐입니다. 인간의 정신은 정말 보잘것없는 것입니다. 보잘것없으면서도 뻔뻔하고 논리성으로부터 동떨어진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경험해 온 작은 우연들은 이상하게도 그렇게 되어야 할 단 한 번의 순간을 놓치면 영원히 똑같은 순간은 찾아오지 않는 게 아닐까.
이야기에 공감이라는 틀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나에게 이 작품은 그다지 흥미를 유발시키지 못했다. 공감이 없는 상태에서 공감을 위한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야 했는데.. 내 책읽기가 아직 그정도는 아니라서 그런지.. 조금은 혼란스럽고 어렵게만 다가왔다. 조금이라도 더 밝은 이야기였다면.. 이라는 생각을 잠시 해보기도 했지만, 성불구자가 되어 사랑하는 여자와의 육체적 욕망을 채울 수 없는 남자와 그 남자를 애절하게 바라보는 여자. 그리고 그들과 삼각관계에 놓인 미모의 여자 친구와 그녀의 남편이 주인공으로 등장해, 각자의 운명 속에 드러나는 성과 사랑, 그리고 죽음의 그림자를 농밀하면서도 처연하게 담아내고 있는 작품에서 밝음을 바라는 건 어찌보면 그저 부족한 독자의 투정이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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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데.. 영화'욕망'의 가장 큰 미덕은 탁월한 심리묘사라고 한다. 그것은 겉으로 보기에 고요한 듯 하지만, 주체할 수 없는 욕망은 사랑의 화신이 되어 질투가 되고, 집착이 되어,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치명적 선택으로 치닫게 만든다. 섬세한 심리묘사가 보는 이의 가슴에 공명을 일으킨다면, 사려 깊게 담아낸 러브씬들은 영화가 품고 있는 스산한 사랑의 감촉을 그대로 느끼게 해주는 명장면이란다. 등장하는 러브씬들은 대사보다 더 많은 것을 몸으로 말해준다. 제법 리얼하게 표현되었으면서도 야하다는 느낌보다 처연하게 느껴지는 '욕망'의 에로티시즘은, 농밀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알고 있는 성숙한 관객들을 위한 배려로 여겨진다.
원작보다 영화의 소개가 더 땡긴다는 생각은 참 오랜만에 하는 것 같다ㅡ.ㅡ 작가는 후기에서 이 책이 일본에서는 미시마 유키오에 대한 오마주로 읽히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했다. 오로지 남자가 여자를 찾고 여자가 남자를 사랑하는 전통적인 연애소설로 읽고 있는 젊은 독자도 많을 것이라고 말하면서 어떤 식으로 읽히든 상관없다고 적어놓았다. 소설이란 본래 그런게 아니냐면서..
딱 하나 아쉬웠다. 작가의 말처럼 소설이란 본래 어떤 식으로 읽히든 그것을 읽는 독자의 마음에 따라 각기 다르게 해석되고 받아들여지는 것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먼저 술술 읽혀야 다음으로 생각을 발전시킬 수 있는게 아닐까 싶다.. 뭐, 부족한 독자의 투정이니 그러려니 하셨으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