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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는 중국의 철학자 자오팅양과 프랑스의 작가 레지 드브레가 이메일로 주고 받은 대화를 담은 책이다. 1961년생인 자오팅양과 1940년생인 레지 드브레가 만나 이메일로 대화를 주고 받게 된 것은 2011년 5월 제 1차 프랑스 중국 문화 원탁 회의를 계기로 해서이다. 자오팅양은 서양 철학에 능통하지만 자신을 중국의 철학자라 생각하고 레지 드브레는 젊은 시절 카스트로와 체 게바라의 초청을 받아 쿠바 혁명에 가담한 이색 경력의 소유자이다.
*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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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를 통해서 이 시대에 생각해볼 수 있는 '상실'의 진정한 의미들, 그리고 동양과 서양의 사상적 소통의 이야기, 그리고 사상적 맥락이 통섭으로 이어져서 진정 이 시대를 걱정하고 앞날을 염려하며 겨냥하는 것의 의미에 대해서도 생각해보는 특별한 시간을 가져볼 수 있어서 오랜만에 마음과 머리가 모두 뜨거워지는 독서시간을 가질 수 있어서 행복했습니다.
이 책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는 자오팅양과 레지 드브레, 즉, 중국의 철학자와 프랑스의 사상가가 펼치는 근대적인 사유의 힘, 그리고 그 한계에 대한 안목, 또한 그러한 사상적 고뇌들을 통해서 동양과 서양이 그 경계를 허물고 서로 소통하고 사상적 맥락이 맞닿아 있음을 이야기해주고 있어서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이 책의 이야기에 접근하는 저 자신을 발견하고 놀라며 기뻐하는 마음을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사상가인 레지 드브레는 체 게바라와 같이 혁명을 주도했다고 평가되는 사상가라고 합니다. 그러한 그가 '문화대혁명'을 냉철한 관점으로 이야기하는 중국의 자오팅양을 만나서 그 사상적인 교류를 하게 되는데, 언제나 민중을 길들이고자 하는 '권력'과 '체제'에 대해 어떠한 대응을 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도록 만들어주는 책내용이 되어주어서 반가웠습니다. 12통의 편지로 오간 사상의 자유로운 교류와 그로 인한 시너지의 힘! 이러한 특별함이 이 책 내용으로 녹아나왔기에 더욱 특별한 마음으로 이 책을 마주하고 또한 진지하게 책 내용 속으로 빠져들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이 책의 제목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에 공감하는 마음을 가지며 사상의 자유로운 통섭에 놀라움과 감탄의 느낌을 나눌 수 있었고, 더불어서 사상들이 가지는 본질적이고 원천적인 힘과 영향에 대해서도 곱씹어보는 시간을 가지게 되어서 그 무엇보다 반가웠습니다.
이 책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를 통해서 즐겁게 사상과 그로 인한 득과 실, 이 시대에 대한 진단과 앞날을 위한 고민들까지 모두 잘 들여다보고 같이 고민하는 순간을 만날 수 있어 행복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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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명의 동과 서를 가르기 이전, 지식인이라면 문화권 사이의 건널 수 없는 강을 한탄하기 전에 보편이라는 이름의 배로 무해통항을 향유할 방법은 없는지 먼저 고민할 만합니다. 인류의 공영과 해방, 자유, 평등, 깨끗한 환경의 혜택 등은 누구나 공감을 보낼 수 있는 가치입니다. 혹여 좌파 지식인으로서 젊은 시절 커리어 대부분을 보낸 분들이라면, "혁명", "자유", "민주주의" 등의 화두(말 그대로 화두더군요)로 보다 속 깊은 대화를 나눌 수도 있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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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철학자 자오팅양과 프랑스의 작가이자 매체학자이자 체 게바라와 함께 라틴아메리카 혁명에 직접 참여한 전적이 있는 인물인 레지 드브레의 열정 가득한 서신을 담고 있는 책으로 무척이나 흥미진진한 내용을 담고 있다. 동서양의 두 학자들은 다소 많은 나이를 뛰어 넘으며 서로의 사고를 솔직하게 서신으로 주고 받았다. 많은 걸 상실한 시대에서 편지도 그 중 하나가 아닐까 싶은 데 그외 무엇을 상실한 채 살아가고 있는지를 이 책을 통해 깨우칠 수 있었다. 이 책은 중국어판 제목과 프랑스어판 제목이 다르다. 또한 한국어판 제목도 보시다시피 다른 데 조금은 대립을 뜻하는 듯한 제목들이란 공통점은 있는 듯 하다. 과거에 비해 비약적으로 발전한 기술과 민주주의라는 허울 좋은 정치이념을 통해서 얻게 된 건 실질적인 면에서는 양극화의 문제가 가장 큰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많은 소시민들은 결코 깊게 생각하지 않으며 그저 매일 똑같은 생활을 반복하며 지나치고 있다.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민주주의는 누구에게나 공정할 것 같지만 결코 그렇지 않음을 이 책을 통해 확신할 수 있었다. 겉으로 보면 누구나 자유롭다. 허나 그 이면을 들여다 보면 결코 그렇지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저자 자오팅양이 말하길 현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는 자유와 자주 개념과 결별하고 자신의 의지대로 살아가지 못하는 데 이는 자본과 기술이 공모해서 인간의 생활을 통제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과거에 비해 현저히 편한 일상을 살아가고 있지만 여전히 우리는 더욱 편한 생활을 도모하고 있다. 여기엔 결코 멈춤이 없다는 것이 함정이지 않을까... 나는 자오팅양이 말한 사람들의 이기적 계산 때문에 공동으로 유리한 결과를 만들 수 없다는 것에 전적 동의하며 현재 우리나라 정치인들의 태반이 이런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두 저자가 들려주는 혁명에 관한 부분도 무척 흥미로웠는 데, 오늘날에 있어 혁명을 대신하는 키워드가 바로 민주주의라는 드브레의 주장은 과히 과장이 아니라고 생각되어졌다. 두 사람의 논쟁이 담긴 이 책을 읽으면서 좀 더 깊이 있게 알아야겠다는 내용들도 많았지만 알면 알수록 더욱 분노가 치미는 느낌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자오팅양의 이야기에 더욱 동감을 할 수 있었고 내용도 더 이해하기 좋았던 것 같다. 두 저자의 지적 대화를 통해서 한층 성숙한 소시민이 될 수 있는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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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 게바라의 평전을 보면서 <레지 드브레>란 이름을 본 적이 있다. 그때는 그냥 그랬다. 체의 자신을 극기하는 삶의 방식에 놀라느라, 그가 그렇게 볼리비아에서 스러졌다는 사실이 안타까워 다른 부분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다 우연히 이 책에서 <레지 드브레>를 보았다. 반가운 이름이었고 궁금했다. 혁명의 현실에 뛰어든 지식인. 혁명 지도자, 동지였던 체를 잃고, 혁명의 전선마저 잃고 수감되었다 국제적인 지식인들의 구호활동에 의해 풀려나 프랑스로 돌아간 지식인. 그의 혁명에 대한 생각이 궁금했다. 실제 혁명의 현장을 경험한 사람으로서 혁명에 대한 그의 생각이 어떻게 변했을지도 궁금했다. 자오팅양은 누군지 몰랐다. 처음에는 그저 레지 드브레란 이름 때문에 펼쳐보았다. 사실 펼쳐보았다 덮었다를 무수히 반복하며 읽기 어려워했다. 불편했다. 솔직한 심정은 불편함으로 시작했었다.
상실의 시대... 무엇을 상실했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그들이 편지로 나눈 토론을 책으로 엮어 낸 것인 듯 하다. 중국 사상가와 프랑스 사상가의 대화라니 중간에서 번역하는 사람이 가장 힘들 것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학문 용어를, 그리고 말투를 어떻게 번역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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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들은 독자들에게 아주 친절하다. 서문에서 철학자 자오팅양은 송인재 교수의 번역에 대한 신뢰를 드러내며 독자들에게 믿음을 준다. 이 서문만으로도 책에 훨씬 집중 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프랑스 판으로는 <Du ciel A la Terre> 하늘과 땅 사이 이고, 중국어 판으로는 <두 얼굴의 개념兩面之詞>다. 한국어 판의 이름이 가장 가슴에 와닿는다.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이 책의 시작은 혁명에 대한 생각에서 시작되었으나 근대화로 민주주의로, 다시 관계이성으로 웹으로 종교로 세상이 모든 문제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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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번째 편지는 트레이회의에서 살짝 이야기 나눈 '혁명과 반혁명' 문제에 대해 자오팅양이 언급을 하면서 시작된다. 체와 레지 드브레의 볼리비아 혁명을 이야기하며, 중국의 혁명 영웅과 무장 혁명, 문화혁명에 대해 이야기 한다. 혁명에 유혹당하지만 신중히 바라보고, 이성적 판단을 한다는 그는 혁명에 대해 인성의 존재론적 비극성을 이야기 한다. 혁명의 마지막이 항상 비천한 인성으로 인해 성공의 목전에서 결국 후퇴한다고 보고, 개개인의 이성은 인정하나 집단의 이성은 비이성의 결과로 귀결된다 보았다. 이상에 의해 움직인 대규모 집단 행동은 그 자체가 비이성적이라 사회의 대규모 혼란을 야기한다고 보았다. 그는 이제까지 혁명에서 논제로 삼은 것이 '변하는가 변하지 않는가'라 말하며, 자신은 중국 사상서 <역경>의 모든 일은 변화하고 있고, 변화는 모든 사물의 존재 방식이라는 사싱에 따라 어떠한 변화가 합당한 것인가를 가장 중요한 문제로 본다한다. 혁명의 정의를 고대 중국의 '하늘을 따르는' 혁명의 개념에 따라 중국 역사에는 3번의 혁명이 있었다고 보고, 1911년 3번째 혁명에서 중국이 근대국가로 변모했다 말한다. 하지만 중국의 근대국가로의 국가 건설은 완성되지 못한 것으로 보며 그 이유로 중화 제국의 거대한 유산을 직접 계승함을 든다. 중국이 다민족 다문화 국가임을 말하며 이를 보완하기 위해 대가족의 통일성을 수립하려 '천하일가'라는 관념을 이야기한다. 중국의 관점에서 혁명은 충분한 이유가 반드시 필요하다 말한다. 하지만 서양의 혁명은 필연적 이유에 의해 발생한 혁명이 아닌 이상이 이끈 능동적 행위라 말한다. 그리고 의도된 혁명이야 말로 근대성 자체라 한다. 이 근대라는 이름이 준 각종 혁명은 수많은 위대한 성과와 다양한 부작용을 낳았으며, 그 중 하나를 생활이 의미와 생활의 실제가 분리되는 문제임을 말한다. 그리하여 근대의 혁명과 창조성이 인간 자체에 대한 혁명으로 다시 인간 자체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것을 염려한다.
이에 대해 드브레는 격정에 찬 어투로 혁명에 대해 이야기 하고 있다. 자신이 받은 혁명의 역설적 대가는 지적 능력과 정신이 오랫동안 마비 되었음을 말하며, 혁명에는 술에 취하듯 흥분되는 요소와 규율과 진압의 요소도 있음을 말한다. '크메르 루주'의 출현과 문화대혁명의 결과가 본래 이상과는 차이가 있음을 말하며 '혁명은 항상 쇠락할 때 자기 부정을 하며 정반대의 모습으로 변모됩니다.'(p.42)라 말한다. 그들의 혁명에 대한 관점의 차이에 대해 혁명이 일어난지 200년이 지난 프랑스와 아직 혁명의 지점에 있는 중국, 그들이 살고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관련된 문제일 수도 있다 말한다. 자오팅양은 변하지 않는 인성이 비천함에 슬퍼하지만 자신은 인성이 변하지 않음에 기쁘고 안심한다한다. 그는 비이성적 집단행위가 바로 '지성주의'이며, 혁명은 현대사회에서 희열을 느끼는 최후의 원천이자 꿈으로의 최후의 보루라 한다. 유럽에서 혁명은 꿈이 아니다. 어떤 이에게는 유물, 또 다른 이에게는 착각이며 모두 박제가 되었다. 지금도 혁명을 하자는 이가 있으나 이는 이미 끝난 꿈이라 말한다. 그리고 현대사회에서는 이 혁명을 대체할 키워드로 민주주의가 등장했다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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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사람은 다섯번의 편지 교환을 더 하며 편지를 마친다. 레지 드브레의 혁명에 대한 생각이 궁금해서 펼쳐 든 책이었으나 오히려 현대 중국의 모습을, 민주주의를 최고의 가치로 삼는 우리의 현재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민주주의가 기술이지 가치가 아니라 말한다. 그러나 현대 사회에서 모든 가치의 정점에는 민주주의가 있는 듯한 말을 하고 실제 그리 쓴 책도 본 적이 있는 나로서는 너무나 생경한 의견이다. 그리고 깨달았다. 타인의 생각을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이면 내 생각을 다른 누군가가 지배한다는 말이 떠오른다. 민주주의를 사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가치를 가질수는 있지만 민주주의는 정치 기술 중 하나일 뿐이며, 그 자체로 가치를 가지지는 않는다. 민주주의는 만병통치약이 아니다.
중국의 역사를 알면서도 무의식중에 중국이 다민족국가라는 생각을 잊었다. 엄청난 수의 소수민족이 모여 있으나 왠지 단일 민족 국가일 것 같은 생각이 무의식 중에 깔려있었다. 이는 아마도 하나의 중국을 말하는 중국의 강력한 정책과 그 과정에서 생산된 수많은 언론들에 의해 뇌리에 새겨져 있어서 그런 듯 하다. 자오팅양은 중국이 다민족, 다문화의 합중국임을 말한다. 서양책이 중국에 번역된 것이 중국책이 나온 것보다 많다고 한다. 그만큼 중국은 서양을 '내화'하고 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이 진정한 내화일까? 받아들이고 중국에 맞춰 고쳐서 사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보고 버리고, 사용하기 좋은 것만 가져다 쓴 후 서양을 '내화'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자오팅양은 민주주의가 데모크라시에서 퍼블리크라시로 변모할 것이라 말하고, 레지 드브레는 미디어 크라시 로 변모할 것이라 말한다. 다른 듯 하지만 아주 유사한 두사람의 새 용어에 민주주의의 부정적인 면이 더 드러남을 느끼는 것은 내 착각일지도 모른다. 레지 드브레의 의견에 찬동하면서도 더 쉽게 이해되고, 더 빨리 납득되는 쪽은 자오팅양의 의견임을 느끼며, 유교주의의 사상이 뿌리 깊이 내 내면에 박혀 있음을 느낀다. 한국인의 집단 무의식이 중국인과 비슷함이 있음을 어쩔 수 없이 납득하고야 만다. 제국주의에 반대하는 것이 '천하일가(天下一家)'사상이라니 일견 모순된 말이나 아시아 인이라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란 느낌이 드니 말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현대의 사상보다 내 원형에, 내가 가진 집단 무의식을 깨달으며 읽게 된다.
혁명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해, 세계금융시장에 대해, 그리고 나를 이루고 있는 원류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해 준 책 <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 였다.
(이 리뷰는 예스24 리뷰어클럽을 통해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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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4.19와 5.16을 혁명으로 볼 것인지 군사 쿠데타로 볼것인지를 놓고 왈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는 프랑스 혁명가로 알려진 레지 드브레와 중국 자연스럽고 문화적인 혁명으로의 발판을 놓은 고대 중국의 혁명처럼 자오팅양은 혁명 역시 변화를 위한 선택임은 두말하면 잔소리 이지만 어떤 혁명이 되었건 과거와는 달리 전지구화(글로벌화)에 대처할 방법과 자본주의와 기술 보편화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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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는 혁명을 통해 변화한다. 혁명이란
권력자가 스스로 변화하는 것이 아니라, 피 권력자가 권력을 탈취하여 권력을 교체하는 것을 말한다. 역사를 보면 많은 혁명이 일어났지만, 모든 혁명이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혁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다수의 국민들이 동조 해야만 가능하다. 때문에 피 지배계층의 먹고 사는 문제에 빨간 불이 커졌을 때, 일어날
확률이 높다.
이 책은 프랑스 혁명가와 중국의 철학자가 학술회의에서 만나 서로의 의견을 편지로 남긴 것을 송인재 교수가 옮긴 글이다. 두 분의 대화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최소한 두가지 혁명에 대해서는 알아야 할 것 같아서
정리 하였다. 우선 중국 문화 대혁명이다. 1966년부터 1976년까지 10년 동안 중국 지도자 모택동 주도로 실시된 극좌사회주의
운동으로, 전근대적인 문화와 자본주의를 타파하고 사회주의를 실천하자는 운동이었는데, 모택동이 홍의병이란 민간조직을 이용하여 정적 제거 및 탄압, 출판, 문화, 학계, 정계 등의
지식인을 대거 숙청하는 계급투쟁을 벌였으나, 경제는 파탄 나고, 부정부패는
만연하는 등 총체적 난국에 빠지며 혁명은 끝났지만, 후대들은 동란의
10년이라고 평가한다. 다음은 프랑스 대혁명이다. 1789년부터 1794년까지 5년동안 시민계층(볼테르, 몽테스키외, 루소 등에 의해 계몽이 됨)들이 불합리한 구제도를 타파하고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찾기 위한 운동에 성공하여, 모든 차별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법 앞에 평등하고, 세계평화를 위한 박애주의로 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탄생시켰다. 아이러니 하게 대혁명이라는 이름은 같은데, 내용을
살펴보면 본질이 판이하게 다르다. 중국의 대혁명은 반란의 일종으로 보이고, 프랑스
대혁명이 진정한 혁명으로 보인다. 프랑스 대혁명의 결말로 봐서는 혁명 너머에는 민주주의가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과연 혁명과 민주주의의 연관성은 얼마나 되고, 혁명이 노동자나 농민들까지
아우를 수 있으려면 적절한 term은 얼마나 될까?
자오팅양에 의하면, 혁명은 이상에 근거해서
현실 변화를 강행하지만, 혁명이 성공을 눈앞에 두고도 늘 실패로 돌아간 것은, 실망만 안기는 인성의 현실 때문이라고 하였다. 혁명은 많은 것을
바꿀 수 있지만, 인성만은 바꿀 수 없다고 하면서, 혁명적
파괴가 반드시 혁명적 건설로 이어지지는 않는다고 하였다. 이 말을 정리해 보면, 혁명은 큰 뜻을 품고 시작되지만 초심을 잃게 되는 것은 인성 때문이고, 혁명이
좋은 점도 있지만 나쁜 점도 있기 때문에 꼭 필요한 경우에만 해야 하다는 것 같다.
이에 도브레는 인성이 변하지 않는다는 것에 상당한 긍정을 부여하였다. 변하지 않는 인성이 일관성과 인류의 기본적 동일성을 유지시키기 때문에 과거와의 대화도 가능 하다고 하였다. 혁명은 현대 사회 공간에서 희열에 도취하는 최후의 원천 중 하나이자 꿈을 이끌어 내는 최후의 보루이기 때문에
필요하다는 것 같다.
좁은 소견으로는 자오팅양이 말하는 인성은 혁명할 때 리더 그룹의 인성을 이야기 하는
것 같고, 도브레는 혁명에 동참하는 다수의 Follower를
말하는 것 같다. 철학이나 혁명을 공부하지 않는 독자로 두 분의 심오란 토론이 형이상학적으로 들린다. 중국의 대혁명과 프랑스 대혁명이 다르듯, 두
분의 생각도 다른 것 같다. 동의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다른
의견을 개진하고 있지만, 본인의 주장을 설득하려 하지 않고,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하며, 지식의 유희를 즐기는 것처럼 보인다. 악어가 포악하고 길들이기 어렵지만, 악어
사육사들은 악어에 대해 잘 알기에 악어 입에 머리를 넣은 여유를 보이는 것처럼, 이 두 지식인들이 벌이는
유희가 부럽다.
중국이란 나라는 지구의 탄생과 동시에 패권을 이어왔던 나라이다. 근대에 이르러 미국이나 영국에게 이백여 년 동안 선두 자리를 내 주었지만, 중국을
통일 했던 진시황처럼 천하통일을 꿈꾸는 걸출한 시진핑이라는 리더가 나타나 중국을 개혁하고 있는 중이다. 우리가 시진핑이라는 리더에 대해 주목해야 할 이유가 있다. 민주주의를 표방하고 있는 서방국가들은 선거를 통해 리더가 선출되지만, 각
정당이나 언론, 이익단체들의 견제를 받기 때문에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 하기 어렵다. 그러나 중국은 공산당이 만들어지고 나서 홍군이 결성되고, 나중에
중화인민공화국이 생겼기 때문에, 국가주석<군사위원회
주석<당서기가 권력 순위이고, 때문에 국군이 존재 하지
않는다고 한다. 시진핑의 경우 당 서기, 군사위원회 주석, 국가 주석의 위치에 있기 때문에 무소불위의 권력을 가지고 있으나, 다른
리더들과는 달리 사리사욕보다는 국익을 우선시 하기 때문에 우리가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중국은 자오팅양이 말하는 3가지 혁명보다
시진핑의 혁명이 중국을 탈 바꿈 시켜 패권을 다시 잡지 않을까 생각한다.
책의 내용과 상관없는 시진핑을 언급한 이유는
피를 부르지 않는 혁명은 단 한번도 없었다. 피를
최소한으로 하기 위해서는 혁명이 아래서부터 일어나는 것 보다는, 훌륭하고 강력한 리더십을 가진 리더가
혁명을 하는 것이 훨씬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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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실의 시대, 동양과 서양이 편지를 쓰다>는 정치, 문화적 혁명기를 거친 중국과 프랑스의 두 지성 자오팅양과 레지 드브레 교수의 학술 세미나에서 받은 영감을 그대로 우편이라는 형식을 빌려 토론을 이어간 내용을 정리하여 묶었다. 사실 제목에서 느껴지는 헛헛함, "상실의 시대"라는 무거운 주제가 현대의 문화, 정치, 학술 등 인류의 새로운 혁명에 한계를 느끼게 만드는 자본 앞에 적당히 공감하게 된다. 두 개의 서문과 여섯 번 그러니까 열두 통의 편지를 묶은 토론 편지다. 형식을 보면 전에 읽었던 일본 시인 다니카와 슌타로와 신경림 시인의 서신으로 주고받은 연작시를 묶어 펴낸 <모두 별이 되어 내 몸에 들어왔다>가 생각난다.
이 책은 첫 편지, 서신을 통한 토론의 시작은 자오팅양의 혁명에 대한 주제로 시작되고 있지만 읽다 보면 어느 정도의 주제에 대한 동류의식은 있지만 자오팅양이 주제를 정하고 질문을 던지면 레지 드브레가 답변과 약간의 사유를 곁들인 정도로 보인다. 난상토론이나 주제에 의한 광범위한 관념적 이야기가 펼쳐지거나 하지는 않다. 어쨌거나 서두에 살짝 언급하고는 있지만 혁명가로서 무언가 일조하고 싶었는지는 몰라도 혁명에 뒤에 숨어 탁상공론을 했다는 자오팅양 스스로의 폄하나 총알이 빗발치는 혁명의 전선에 체 게바라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는 드브레 교수의 차이부터 혁명이 가지는 관념은 출발이 다르다.
또 자오팅양은 서신에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많은 학자와 선조 고사를 인용하면서 주장을 펼치는데 개인적으로 중국 특유의 역사에 뿌리를 둔 자부심이 노골적으로 드러난달까? 암튼 이런 부분 역시 드브레는 부드럽게 그래서는 안된다고 받아친다. 동양과 서양의 여러 혁명을 거치면서 동서양의 공유할 수 있는 문화적 한계를 가감 없이 이야기함과 동시에 현대가 나아가고자 하는 바는 "변화"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떻게 변하는 가"가 중요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혁명을 넘어선 현대 문화적 사조에 대한 두 지성인의 토론은 내겐 사실 어려운 주제였음을 미처 깨닫지 못 했다.
"'선조의 진정한 지혜는 사고방식에 있는 것이지 규정과 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다. 즉 가장 좋은 것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지혜다. 더 좋은 것을 보고 배우지 않는 것이야 말로 선조의 지혜를 위배하는 것이다.' 한편 근대에 들어서는 줄곧 옛날의 지식을 버리자는 혁명의 외침이 있었습니다." 117쪽
"실제로 저는 선생님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 상식을 표현할 때 헤라클레이토스나 헤겔, 그리고 다른 학자의 어록을 인용하면서 이론적 치장을 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시간이 흐르면서 갖가지 '주의'(선생님 말씀대로 그것들은 의미가 모호하고 천진난만한 추상적 개념들입니다)와 이론 간의 경쟁, 자기과시에 다소 조롱 섞인 냉소를 보냈습니다." 121쪽
글 : 두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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