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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제목이 《시》여서 시란 뭘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가장 먼저 생각나는 건 소설보다 짧다예요. 소설을 생각하다니. 소설이라고 해서 시와 먼 건 아니기도 합니다. 아니 어떤 글이든 그렇군요. 시가 아니더라도 시처럼 쓸 수 있지요. 그래도 시는 말을 길게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요즘 글을 길게 쓰지 않아서 시를 저절로 알게 된다는 말도 하던데. 그런 곳에 시를 쓰고 시집을 내는 사람도 있지요. 그게 쉬워 보이기는 해도 막상 쓰려면 잘 안 되기도 합니다. 써야지 하고 쓸 수도 있지만, 어느 순간 찾아오기도 하는 듯해요. 오래 글을 쓰려면 찾아오기를 기다리면 안 된다는 말도 하던데. 그 말 맞지요. 글은 자꾸 써야 쓸 게 떠오르기도 합니다. 말도 하면 할수록 많이 하게 될까요. 저는 목소리를 내서 하는 말보다 쓰는 말을 더 합니다. 말로 하는 것보다 글로 말하는 게 편하고 바로 말하지 않아도 되어서 좋습니다(이 말 처음 하는 게 아니군요). 말은 잘못하면 주워담기 어렵지요. 글로 말하려면 잠시 멈추고 생각하잖아요. 얼굴이 보이지 않아서 함부로 말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런 사람은 적을 거예요. 저는 그렇게 믿습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이제 열한 살 된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어린이가 하는 말이야 말로 시다 말하는데 정말이네요. 이런 어린이가 많아야 하는데 어쩐지 요즘은 얼마 없을 것 같습니다. 저는 어릴 때 어땠는지 생각나지 않습니다. 어떤 소설에 나온 아이는 시를 썼어요. 그 아이 보니 부럽더군요. 그 아이가 시를 쓴 건 아버지와 자연 때문이기는 했어요. 바람한테는 바람 아줌마라 하고, 여러 가지에 이름을 붙였어요. 사물에 이름 붙이는 거 하면 떠오르는 사람 있지요. 빨강머리 앤입니다. 앞에서 말한 소설에 나온 아이는 에밀리예요. 그 소설 쓴 사람은 《빨강머리 앤(풀색 지붕집 앤이라 해야 할까요)》을 쓴 루시 모드 몽고메리예요. 에밀리를 말한 건 에밀리한테는 늘 시가 찾아와서입니다. 에밀리가 둘레에 마음을 늘 썼기 때문에 그런 것 같네요. 그런 에밀리한테 시가 찾아오지 않은 때도 있어요. 아니 바람 아줌마가 보이지 않았을 때던가. 그때 에밀리를 가르친 선생님이 에밀리한테 말을 합니다. ‘보이지 않는다고 사라진 게 아니고 그건 네 안에 있다’ 고. 자신 안에 있는 건 쓸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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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차에서 눈을 감고 잠들려고 해도 아무리 노력해도 헛짓이다
눈꺼풀이 1밀리미터는 쳐져서 다니는 요즘인데 힘내야지 나의 다짐에도 반응하지 않는 몸과 머리에 덜컥 겁이 난다
이렇게 재야에 숨어있는 대단한 시인을 보면서 난 오늘도 나의 미래를 포기한다. 가당키나 한 일인가. 시인을 꿈꾸는 것이 현상유지! 현상유지! 하다가 일보후퇴~ 일보후퇴~ 생활에서 나오는 함민복 스러운 시인이다............... 좋다. 귀하다 무겁고 또 무거운 시들이 가볍게 나를 공중부양한다
-시인- 권력은 언어에서 나온다는데 언어에도 권력이 있다는데 한마디 말이 천리를 갈 줄 알아 그 말 타고 사람들이 천지를 돌지만 돌아와 주절주절 내뱉는 말이 시발이란다 시에도 발이 있다면 저절로 달아나는 말이 될 텐데 거지 같은 내 말은 먹을 게 없다 유곽 같은 집이면 어떤가 오늘 같은 밤이면 겁도 없이 제멋대로 가자는 대로 내버려둔다 계곡을 지나 광야를 지나 바다에 이르러 마침내 해 뜰 때까지 비루먹은 내 말이 퀭한 눈으로 토씨 하나 제자리 찾을 때까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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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99 소를 키우면서 쓴 노래, 아이한테서 배운 노래 ― 시 조인선 글 삼인 펴냄, 2016.5.15. 8000원 여기 소를 치는 아재가 있습니다. 소치기 아재일 텐데, 소를 치는 아재는 소를 먹이고 소를 돌보다가 소를 내다 팔며 살림을 꾸리는 동안 시를 쓴다고 합니다. 소치기 아재한테 소는 살림을 꾸리는 바탕이면서 시를 짓는 발판이 됩니다. 그렇다면 소치기 아재한테는 ‘시란 소’ 또는 ‘소란 시’ 같은 말을 할 수 있을까요? 이슬이 오고 메뚜기가 앉아 있고 개구리가 뱀이 아이들이 나왔다 내가 보이고 성난 아버지와 무덤 속 조상들이 보였다 그렇게 막막한 세월이 선명해지자 풀을 베어 소에게 먹였다 (풀) 우리 집 뒤꼍에는 무화과나무가 있습니다. 한 그루인지 여러 그루인지 알 길이 없으나, 이 무화과나무는 새 가지를 죽죽 뻗으면서 씩씩하게 자랍니다. 해마다 무화과알을 잔뜩 베풉니다. 우리 집 나무가 없던 지난날에는, 그러니까 무화과나무 같은 나무 한 그루 없이 도시에서 좁다란 겹겹집 한 층을 얻어서 지낼 적에는 나무 한살이를 몰랐습니다. 더욱이 무화과나무에서 무화과알이 어떻게 맺는지 몰랐고, 이 무화과알을 사람뿐 아니라 벌이며 나비이며 풀벌레이며 딱정벌레이며, 게다가 파리랑 모기까지 얼마나 좋아하는가를 몰랐어요. 우리 집 무화과나무가 없던 지난날에는 나무 열매는 새가 더러 나누어 먹는다고, 때로는 멧짐승이 나누어 먹는다고 여겼어요. 우리 집 나무를 곁에 두면서 이 나무를 늘 바라보니, 나무를 둘러싼 너른 이웃과 살림을 들여다볼 수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분도 저희하고 마찬가지가 되리라 생각하는데, 마당이나 뒤꼍에 나무 몇 그루를 돌본다면 이 나무를 늘 바라보면서 이 나무하고 얽힌 이야기를 둘레에 조곤조곤 들려주기 마련이에요. 시를 쓴다면 바로 ‘우리 집 나무’ 이야기를 쓸 테고, 이 나무 가운데 무화과나무를 가만히 지켜본다면 ‘무화과나무’하고 얽힌 이야기를 가만가만 쓸 테지요. 선거가 끝나자 사람들이 죽어갔다 그래도 나는 크리스마스트리를 만들었고 아내와 아이들은 거기에다 웃으며 방울들을 달았다 드라마 속 사랑은 여전히 돈지랄이었고 걸그룹의 자태는 아슬아슬하게 매혹적이었다 뉴스는 사람들이 몰라도 될 것들만 보여주었고 (그날 이후) 시집 《시》(삼인 펴냄,2016)를 읽으면서 시 한 자락을 둘러싼 이야기를 곰곰이 돌아봅니다. 책이름부터 더도 덜도 아닌 “시” 한 마디인 시집을 읽으면서, 소치기 아재한테는 언제나 소가 시일 뿐 아니라, 바로 이 소한테서 숱한 이야기를 길어올리는 하루가 흐른다고 느껴요. 이 시집을 읽으면서 시를 헤아리는 우리로서는 우리가 저마다 다른 곳에서 저마다 다른 삶을 짓는 마음으로 시를 받아들이겠지 하고 생각합니다. 책 살 돈으로 그 짓을 하고 자유와 해방을 외쳤다 간신히 졸업하고 폐인이 됐다 시를 쓰고 또 썼다 소도 키웠다 마흔이 가까워 아내를 만나기 전 배운 베트남 첫 말은 안녕이었다 (청춘) 시집 《소》를 써낸 아재한테는 베트남에서 온 곁님이 있고, 둘 사이에서 낳은 아이가 있다고 해요. 이러한 집살림도 고스란히 시로 태어납니다. 그리고 열한 살 된 딸아이가 문득 아버지한테 여쭌 말 한 마디가 새롭게 시로 일어나요. 그러니까 시란 삶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시란 삶’이면서 ‘삶이란 시’라고 할까요. 여기에 ‘시란 사랑’이면서 ‘사랑이란 시’라고 할 만하지 싶어요. 스스로 사랑하는 삶이 시로 태어납니다. 스스로 시로 쓰고픈 이야기가 언제나 사랑스러운 삶으로 흐릅니다. 사랑하는 곁님을 둘러싼 이야기가 시로 거듭나고, 이 시를 되새기면서 삶을 새롭게 가꾸어요. 사랑하는 아이하고 주고받은 이야기가 시로 피어나며, 이 시를 곱새기면서 삶을 싱그럽게 짓습니다. 차를 몰고 가는데 이제 열한 살 된 딸아이가 물었습니다 아빠, 돈이 중요해? 동물이 중요해? 둘 다 중요하지 아빠, 사람이 없으면 돈도 필요없잖아 (철학) 열한 살 딸아이는 아버지한테 삶을 물었습니다. 사랑도 함께 물었습니다. 그리고 사람을 함께 물어요. 아버지는 열한 살 딸아이가 묻는 말에 제대로 대꾸를 못한 채 얼버무리지만, 아이는 똑부러지게 말하지요. 이러는 동안 아버지는 아이한테서 시를 배웁니다. 따로 스승을 두어서 시를 잘 쓴다기보다, 곁에 사랑스러운 숨결이 있기에 이 사랑스러운 숨결이 문득 건네는 이야기를 받아서 시를 조용히 씁니다. 돈은 어디에 쓸까요? 돈은 얼마나 써야 할까요? 돈을 얼마나 벌여야 할까요? 번 돈은 어떻게 쓰면 즐거울까요? 어쩌면 우리는 이 대목을 늘 잊는지 모릅니다. 아이를 잘 가르치고 싶어서 돈을 많이 벌어야 하지 않을 수 있어요. 아침 낮 저녁으로 아이하고 부대끼면서 모든 삶하고 살림을 즐거이 가르칠 수 있어요. 맛나거나 대단한 밥을 멋진 밥집에서 사다가 먹는다고 배부르지 않아요. 라면 한 그릇이라 하더라도 노래하면서 끓이고 웃음을 지으면서 먹으면 배부를 수 있어요. 시를 쓰면서 사랑이 됩니다. 사랑으로 되살아나면서 시를 씁니다. 시를 쓰면서 씩씩한 사람 하나로 다시 섭니다. 씩씩한 사람 하나로 다시 서면서 새롭게 시를 씁니다. 2017.9.26.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