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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사, 바빌론에 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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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독특할 줄이야.. 올해 운이 참 좋다.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여럿 만나고 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 내용도 수수께끼 같다. 그런데 이게 그냥 헛소리같은 넌센스가 아니라 카프카 느낌?의 독자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끊임 없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다. 뒤렌마트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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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렌마트의 명성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독특할 줄이야.. 올해 운이 참 좋다.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한 작품을 여럿 만나고 있다. 제목부터 범상치 않은 작품. 내용도 수수께끼 같다. 그런데 이게 그냥 헛소리같은 넌센스가 아니라 카프카 느낌?의 독자가 도대체 무슨 뜻일까 계속 궁금하게 만드는, 끊임 없이 생각해보게 만드는 글이다.

뒤렌마트에 대한 설명을 찾아보니 : 뒤렌마트는 전통적인 비극을 부정하며 현대 사회에 적합한 것은 희극뿐이라는 인식 아래 희비극이라는 새로운 희곡 양식을 개척했다는 평을 얻었다. 비극적인 인간의 운명과 사회의 현실을 기괴하고도 극단적인 과장을 통하여 역설적으로 부각하고 있다. - 라고 적혀있다. 이 작품도 딱 이런 철학에 부합한다. 분명히 비극적인데 또 희극적이다. 지난번 읽은 고골식 풍자랑도 어느 정도 맞아떨어진다고도 생각한다. 더 이상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가능한 것은 패러디, 아이러니, 그로테스크 같은 것들뿐이다.

분명히 이 작품은 기괴하다. 느닷없이 무에서 창조된 소녀가 천사와 지구에 착륙한다. 왕은 전왕과 하나의 모습이고 이 둘은 거지 아키만도 못한 진짜 거지이다. 형리와 내기를 하는 장면이나, 모두가 소녀를 거부하는 마지막까지.. 도대체가 무슨 이야기인지 도통 알 수 없겠다 싶으면서도 동시에 다 나랑 내가 사는 사회의 모습 같아서 엄청 익숙하다. 김정은이 몸 져 누워있는 건지 아닌지, 전광훈 목사가 설치고, 코로나 확산은 날로 심해지고, 집값은 천정부지로 올라가고 - 글쎄? 어쩌면 내가 살고 있는 현실이 더 기괴하고 우스운 것 같기도 하다.

이 작품에서 가장 재미있었던 부분은 바빌론의 왕 네부카드네자르와 거지 아키의 동냥질 내기이다. 도대체가 누가 거지이고 누가 왕인 건지.. 요즘 내가 생각한 것과 많이 흡사해서 더 그 대목이 크게 와닿았다. 비천한 것은 고귀한 것이고, 고귀한 것은 비천한 것이다. 완전히, 100%는 더 이상 없다. 조금 더 이야기를 진행시켜보자면.. 다소 위험한 말이지만 내 눈에는 전광훈 목사 패거리와 태극기 집회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악당으로만 보이진 않는다. (아무것도 아닌 '모래'같은 거지가 지껄일 소리이니.. 너무 미워하진 말아달라) 저 집회 참가자들이나 교인 대다수가 50-70대인 거 같다. 대충 1950-70년생이라는 셈. 전쟁 통 혹은 전후, 독재 시대 때 태어나 온갖 말도 안 되는 것들을 눈뜨고 보아야 했으며, 그 북새통에서 어떻게든 살아남아야만 했던 사람. 5월 민주화운동 때 전두환이 어떻게 했는지, 그리고 아직까지도 너~~무 잘 살고 있을 정도로 비합리적인 세상. 그런 세상을 어떻게 제정신으로 말짱히 살아갈 수 있겠으랴.. 아무리 착한 아이도 폭력을 계속 당하다 보면 어느샌가 미쳐버린다. 할튼 이렇게 못 볼 꼴 보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어느새 늘그막 노인이 되어 있고, 이제는 나 같은 젊은이에게 밀려 골방으로 들어간다. 이런 사람들을 전광훈과 태극기 집회 지휘자는 이용하는 것 같다. 그동안 억눌러가며,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울분을.. 그동안 비합리적인 것을 합리적으로 이해하기 위해 어떻게든 발버둥 치며 살아가던 사람들은 전광훈을 만나 그 합리성을 집어던진다. 그리고 모든 합리성을 배격하게 된다. 그래서 이런 사람들은 무슨 말을 하던 요지부동이 된다. 지난번 서울에서 이들 집회를 지나친 적이 있는데 저들의 목소리를 들어보니.. 그것은 목소리가 아니라 짐승의 울부짖음에 더 가깝더라. 그건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아니다. 그저 고함과 외침에 불과하다.. 과일을 계속 상온에 두면 과숙하다가 썩어 터져버린다. 저 패거리들이 내지르는 신음소리 같았던 함성을 듣고 있자니 어쩌면 저 광기의 힘을 뒤집어 사용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과일이 썩어 터져버리기 전에 그 숙성해가는 고름이 차는 에너지를 좋은 쪽으로 방향을 바꿔 폭파시키는 것이다. 카프카의 글 중 <작은 우화>라는 게 있다. 처음에는 아무것도 없던 곳을 달리던 쥐가 길이 생겨 좋아하더니 이 길이 점점 좁아져 종국에는 고양이 입속으로 들어간다는 내용이다.

"아!" 쥐가 말했다. "세상이 날마다 좁아지는구나. 처음에는 하도 넓어서 겁이 났는데, 자꾸 달리다 보니 드디어 좌우로 멀리에서 벽이 보여 행복했었다. 그러나 이 긴 벽들이 어찌나 빨리 양쪽에서 좁혀드는지 나는 어느새 마지막 방에 와 있고, 저기 저 구석에는 덫이 있어, 내가 그리로 달려 들어가고 있다"――"너는 달리는 방향만 바꾸면 돼" 하며 고양이가 쥐를 잡아먹었다.

카프카 <작은 우화>

이 우화와 비슷하다고 말해도 될까? 점점 파국으로 달려가고 있을 때 방향은 바꾸되, 그 속력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래서 저 미친 패거리들을 보고 있자면 분명히 악하지만!(절대 이들을 옹호하는 게 아님을 알아달라) 그 광기 자체의 에너지를 보면 오히려 긍정적인 게 아닐까 싶다. 나는 엄청 얌전하다. 소리를 마지막으로 지른 게 언제인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침착하다. 어지간해서는 울지 않는다. 남자를 만나지도 않고 하는 일이라고는 출퇴근하는 거에 저녁 요가 수업, 독서, 음악, 영화가 전부이다. 쉽게 말해 조신한 삶이랄까. 하지만 그런 나는 속물이다. 내가 나를 너무 사랑해서 미치는 게 응당한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멀쩡하게 살아가는 것이다. 저 치들은 분명 안 그래도 살기 어려운 세상 더 힘들게 만들었지만.. 그건 내 탓도 있다고 생각한다. 나 같은 속물이 미치지 않고 제 자신만 생각하고 안온한 일상 영위하는 거만 생각했기 때문에.. 그래서 더 절박했던 사람은 결국 과일이 썩 어버리 듯 미쳐버린 것이다. 그래서 난 저런 사람들을 볼 때면 어쩐지 수치스럽다. 작품 속에서 쿠루비를 모두가 거부한다. 왕도 신학자도 시인도.. 이렇게 모두가 거부해 혼자 남겨진 쿠루비를 작품에서는 아키가 데려가지만, 현실에서는 아무도 데려가지 않고 이들은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미치광이가 되거나.. 이름 없는 뭔가가 되어서 그냥 사라져 버릴 것이다. 거지 아키와 쿠루비가 떠나는 모습을 보며 수치심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과연 있을까? 선과 악이 하도 많이 뒤집혀 버려서 이젠 뭐가 뭔지 알 수 없는 세상에서 손가락질이란 게 가능하기나 할까.

책 이야기는 않고 헛소리만 늘어놓았는데.. 심란해서 그렇다. 뉴스를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것 같다. 이런 내 결론도 뒤렌마트 식으로 그로테스크하다. 뉴스의 역할이 원래 뭐였길래 이제는 안 보는 게 정신 건강에 좋다고 생각하게 된 걸까? 그리고 안 본다고 해서 안 볼 수 있으며, 안 보는 세상에는 어떤 정신 건강이 있을까. 어려운 세상이다. 천사, 바빌론에 와 실패한 채 떠난다. 메시아가 도래하더라도 우리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y****5 2020.08.21. 신고 공감 0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