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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신문에 말도 안 되는 소리가 실려있다. 흥.. 야들 또 시작이네. 참, 이렇게 말도 안 되는걸 신문에 낸다고 누가 믿을까? 나는 그렇게 넘어갔다. 그런데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니 다들 그 기사에 대해 말한다. 그거, 사실 아냐 하고 말하니, 신문에까지 실려있는데 사실이라고 입에 거품을 문다. 왜 사람들은 그렇게 빤한 것을 사실이라고 믿을 수 있을까 보수언론에 실린 다분히 정략적인 기사들을 보고 나서, 그것이 진실이라고 철썩 같이 믿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이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더군다나 그들이 이 사회에서 지도층에 속한사람들인걸 확인할 때마다 난 그들의 인식을, 의식을 비웃기만 했다. 조금만 생각해보면 알 수 있는걸,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10권의 책으로 저자는 그런 일이 일어나는 이유가, 우리들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증거를 토대로 터무니없는 믿음을 만들어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잘못된 믿음과 결정은 개개인의 일상은 물론이고, 모두에게 파급효과가 큰 사회적인 결정에도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우리가 어떻게 이러한 믿음을 형성하고, 결정을 내리는지를 밝혀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가 이러한 오류를 범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누구에게나 잘못된 방식으로 증거를 찾고 판단하는 성향과 오류를 범하는 우리의 타고난 성향을 상쇄시켜줄 비판적인 사고능력을 배우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래서인지 저자는 책에서 우리가 오류를 범하는 이유와 그 해결방법에 대하여 많은 예를 들어가며 설명해주고 있다. 저자는 우리가 잘못된 믿음과 결정을 내리는 오류를 범하는 이유에 대하여 여섯 가지 요인으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첫째 요인은, 우리 인간들이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야기는 우리의 삶에 즐거움을 더해주고, 상상을 자극하며 감동까지 선사한다. 인간은 근본적으로 통계학자가 아니라 이야기꾼이기 때문에 통계수치보다는 상대방이 하는 이야기에 더 믿음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무엇인가 결정을 내릴 때 가장 중요하고 믿을만한 정보는 통계수치라고 저자는 말한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또 상관없는 것에서 연관성을 찾으려 하기 때문에 통계자료를 이용하더라도 이런 자료들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파악해야 한다. 사람들은 자신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수많은 통계자료들을 왜곡하고 조작하기 때문이다. 오죽했으면 거짓말에는 평범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자료 이렇게 세가지가 있다고 했을까 두번째 요인으로 우리는 끊임없이 확인하고 싶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은 확인을 받으려는 타고난 성향 때문에, 우리가 가지고 있는 기존의 믿음이나 기대를 지지해주는 정보에만 선택적으로 주의를 기울인다. 믿음과 모순이 되는 정보는 외면하거나, 비판적으로 뜯어보거나 아예 무시해 버린다. 똑똑한 사람들이 이상한 것들을 믿는 이유는, 그들이 바보 같은 연유로 갖게 된 믿음을 방어하는데 아주 뛰어나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셋째는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확률과 우연의 일치가 우리의 삶에서 하는 역할을 잘 모른다고 한다. 우리는 지성과 각고의 노력으로 환경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운이 우리의 일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인간은 원인을 중시하는 동물이며, 모든 일에서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욕망이 내면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고 한다. 그 욕망이 너무 강하다 보니 아무 이유 없이 우연하게 일어난 일에서까지 원인을 찾기도 한다. 결국 삶의 많은 일들이 무작위적으로 일어난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고 본질적으로 무작위적인 현상에 다른 원인들을 갖다 붙이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넷째는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자신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인식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자신의 기대와 욕망에 따라 보고 있다고 한다. 우리가 세계를 인식하는 방법에 깊은 영향을 미치는 두요인은 기대와 바램이며, 이전의 경험들에서 비롯된 기대나 보고자하는 열망이 있지도 않은 무언가를 보게 만든다고 한다. 우리가 물건을 사는 이유는 그것이 유용하기 때문이듯이, 우리가 믿음을 간직하는 이유는 흔히 이 믿음을 뒷받침해주는 증거 때문이 아니라, 이 믿음이 마음을 편안하게 만들어주기 때문이다. 어떤 바램을 가지고 결정을 내리거나 믿음을 형성할 때 우리는 편향된 시각을 가지기 쉽다. 또한 미래를 예측하고픈 강한 욕망으로, 근본적으로 예측이 불가능한것을 예측할수 있다고 믿게 될수도 있다고 한다. 다섯째로 지나치게 단순화 하여 쉽게 떠오르는 정보로 결정을 내리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람들은 질문을 할 때, 그 틀에 따라 선택을 달리 한다. 일반적으로 이득이 보장될 때는 위험을 피하는 쪽으로 선택을 하지만, 손실이 있을 때는 위험을 무릎 쓰는 쪽으로 기꺼이 도박을 한다. 가능한 선택을 할 경우 다양한 방식으로 틀을 만든 후 자신의 선택이 달라지는지 확인해야 한다. 심적회계, 사후확신편향, 과신오류, 직관적인 판단 등이 단순화 전략을 맹신하게 만들고 있다고 저자는 말한다. 마지막으로 사람들은 잘못된 기억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기억을 확신하는 이들은 자신의 기억이 실제와 똑 같다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의 기억은 시간이 흐르면서 새로운 경험이 쌓이면, 이 경험이 과거의 경험에 대한 기억을 변화시킨다. 이렇게 기억은 과거를 재구축하고, 재구축이 이루어질 때마다 기억은 진실에서 점점 더 멀어지지만 우리는 이것을 인식도 하지 못한다고 한다. 저자는 우리들의 믿음과 결정에 관여하는 많은 오류들에 대해서 이야기 하지만, 중요한 오류는 이 여섯 가지라고 말한다. 대부분의 오류는 우리의 진화과정과 욕망, 생각을 단순화 시켜야 할 필요성에서 생겨났지만, 이러한 오류들을 인식하는 것이 우리의 믿음과 결정을 향상시키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대중매체가 어떤 것을 사실이라고 이야기할 때 과학적인 자료나 연구결과는 보여주지 않는다고 한다. 내용이 선정적이어야 시청률이 높아지고 또한 어떤 목적이 있을 때 자신들의 의도한 바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란다. 필요할 경우 그들은 쉽게 조작이 가능한 일화적인 증거에 의지한다. 그러나 개인적인 증언을 객관적이고 믿을만한 증거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우리의 기억을 믿을 수 없기 때문 이라고 한다. 또 증거가 많다고, 질이 높은 증거는 아니며 실험이라고 해도 엄격하게 통제된 실험이 아니라면 결코 믿을 수 없다고 한다. 흔히 사람들이 사이비 과학을 믿는 것은 우리의 정서적인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 때문이다. 기분 좋게 만들어주고, 위안을 주며, 삶을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강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의 사고와 결정을 향상시키는 최고의 길은 비판적이고 회의주의적인 접근법을 취하는 것 이라고 한다. 즉, 이렇게 우리가 범하는 오류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회의적인 사색가가 되라고 말한다. 원제가 Don’t Believe Everything You Think인 이유이기도 하다. 회의주의자는 현실에선 부정적인 의미로 받아들여지지만 정확히 말하면 무언가를 믿기 전에 엄격히 조사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도 언제나 마음을 열어두는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가 회의적인 태도를 취하지 못하는 것은 회의주의자가 되려면 불확실성을 삶의 중요한 일부로 받아들여야 하는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확실성과 모호함을 싫어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가 보고 들은 모든 것을 믿지 못할 때 조금은 삶이 피곤하리란 생각이 든다. 그렇지만 순간순간의 나의 믿음과 결정이, 종래에는 나의 미래를 결정하고 또한 어떻게든 사회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니 회의주의자가 되는 것도 필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무슨 일인가를 결정할 때 오류를 범하기 보다는, 차라리 동전을 던져 운에 맡기는 것이 낫다는 것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이 책을 읽은 가치는 있다는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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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감각적 지각력은 가능하다. 집에 귀신이 들 수도 있다. 이따금씩 사람들은 악마에게 홀린다. 텔레파시로 서로 통할 수 있다. 외계인들이 지구에 방문한 적이 있다. 산 사람도 죽은 자와 소통할 수 있다. 이런 잘못된 주장들을 믿는 사람들은 얼마나 될까? 갤럽에서 조사한 결과 이런 현상들 중에서 최소한 한 가지를 믿는 사람이 73%나 되었다고 한다. 유명 펀드매니저의 말만 믿고 주식투자를 했다가 낭패를 당한 경우를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다. 텔레비젼에 소개된 비과학적 이야기에 솔깃했던 경우도 많다. 저자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생각의 오류를 저지르는 경우가 많음을 지적하고 그 이유를 분석한다. 수많은 사례와 연구결과를 제시하면서 생각의 오류 유형을 다음 6가지로 제시한다. <생각의 오류를 범하게 만드는 유형> 1. 통계수치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더 솔깃하다. 2. 내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3.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음을 간과한다. 4.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잘못 인식하곤 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해서 생각한다. 6. 인간의 기억은 가끔 부정확하다. 일반 사람들이나 미디어는 때로는 잘못된 믿음을 퍼뜨린다. 과학이나 논리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 있다고 이야기하면서 그 주장을 뒷받침하는 한두 가지의 스토리를 제시하면 우리의 귀는 솔깃해지기 때문이다. 여기서 맹신과 오판이 생기게 된다. 심리학적으로 이런 현상을 설명한다면 인간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으려는' 성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즉 자신의 생각이나 입장을 미리 정해 놓고 거기에 맞는 정보만 받아들이는 셈이다. 서양의 과학적 합리주의에 바탕을 둔 분석적 접근법을 강조하는 책이다. 논리적 오류들을 불러오는 심리적 성향을 설명하면서 이런 오류에 빠지지 않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것은 바로 증거와 검증에 바탕을 두고 의사결정을 하는 과학적 접근법이다. 우리가 진실이기를 바란다고 그것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의심하고 또 의심하는 회의적 사색만이 오판을 피하는 길이라는 점을 저자는 강조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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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신문은 미국의 다우 코닝사에서 만든 실리콘 보형물을 이용해서 유방성형수술을 받았다가 부작용으로 피해를 입은 국내 피해자들이 제작사로부터 배상을 받게 되었다는 이례적인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2/24/2011022400942.html). 그런데 매사추세츠대학의 토마스 키다교수는 2006년에 쓴 <생각의 오류>에서 이 사건의 본질을 일화적 증거에 의지하는 성향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50쪽). 어쩌면 생각의 오류를 지적하기 위한 자료를 검토하면서 거꾸로 자신의 생각에 오류가 생긴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습니다.
2007년에 소개된 <생각의 오류>가 비교적 늦게 눈에 띈 까닭은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만, 2008년 즈음 시작한 사고의 편향화를 기록한 자료를 탐구하고 있는 까닭에 빠트릴 수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저자가 인용하고 있는 사례들 가운데 꽤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것은 저자가 관련분야의 문헌을 두루 섭렵하고 있는 까닭으로 보입니다. 예를 들면, 보른홀트와 두벤이 같이 쓴 <알을 낳는 개; http://blog.joinsmsn.com/yang412/9167274>, 셔머의 <왜 사람들은 이상한 것을 믿는가; http://blog.joinsmsn.com/yang412/9606250>, 램튼과 스토버의 <거짓나침반; http://blog.joinsmsn.com/yang412/9668852> 등등이 떠오릅니다.
저자는 ‘자신의 생각이라고 함부로 믿어서는 안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증거가 있다기 보다는 무언가를 믿고 싶어서 믿는 일이 흔하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따라서 진실을 확인하기 위해서는 회의적 사색가가 되기를 권하고 있습니다. <생각의 오류>에서 저자는 생각에 오류가 일어남으로써 일어난 사건들을 소개하면서 그 원인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다음과 같은 천성이 오류를 불러오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천성은, “1. 통계수치보다 이야기를 더 좋아한다, 2. 확인하고 싶어한다, 3. 삶에서 운과 우연의 일치가 하는 역할을 잘 이해하지 못한다. 4. 세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6. 잘못된 기억을 갖고 있다.”로 요약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기치료나 대체의학과 같은 분야를 사이비과학으로 분류하고 여기에 쓰여지는 막대한 자금은 낭비되는 것이라고 일축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각광을 받고 있는 이들 요법을 이용하는 분들에게는 청천벽력과 같은 일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하지만 과학에서는 검증 가능한 가설을 만들어 이 가설이 틀렸음을 입증하거나 맞았음을 입증하는데 반하여, 사이비과학은 흔히 부정적인 증거가 있을 때에도 가설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적지 않은 분량의 책을 읽으면서 저자가 지금쯤 이 책을 썼거나 혹은 개정작업을 한다면 2008년 대한민국에서 일었던 제2차 광우병파동을 어떤 시각으로 접근하고 분석했을까 궁금해집니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증거를 편향적으로 평가한다. 우리의 관점을 지지해주는 증거에는 특별히 주의를 기울이지만, 중요해도 우리의 믿음과 상충되는 증거들은 무시하거나 외면해 버린다. 실제로 자신의 믿음을 지키려는 욕망으로 인해 상충적인 증거와 직면해야 하는 상황을 피하는 경우도 흔다다. 자신과 생각이 같은 사람들하고만 관계를 맺거나 지향점이 비슷한 잡지와 책만 찾아 읽는 다는 것이다. 예컨대 진보적인 사람이든 보수주의적인 사람이든 상대편의 견해를 이해하기 위해 반대 성향의 잡지를 찾아 읽는 일은 거의 없다.”라는 부분에서 공감하면서도 그런 편향성을 보이지 않으려고 내 생각과 다른 자료들도 적극적으로 찾아 읽었다는 변명을 내놓습니다. 하지만 그 근본에는 내 생각과 다른 주장이 담고 있는 허점을 찾아 논리를 무너뜨리려는 욕심을 담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반대성향의 자료를 찾아 읽는 사람은 거의(?)없다는 저자의 주장도 약간은 지나친 감이 없지 않아 보입니다.
저자는 일반인의 믿음에 대중매체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조지 부시 대통령이 미국 내 마약이 사회적으로 커다란 문제라는 점을 지적한 이후 미국 내 신문과 방송들은 평소보다 세배나 많은 량의 뉴스를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 매체가 심령술, 유령의 존재 등과 같이 불가사의한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을 내보낼 때, 이런 현상을 과학적으로 부정할 수 있는 논리로 무장하고 있는 뛰어난 회의주의자들은 출연시키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내용이 선정적이어야 시청률이 올라가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서 전해지는 왜곡된 진실을 제대로 파악하기 위해서는 관련된 자료들을 가치중립적으로 찾아 읽어 대조해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할 뿐 만아니라 자신의 생각의 중심이 한쪽으로 편향되지 않도록 사고의 무게를 더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본다면 생각의 오류를 가져올 수 있는 원인이 무엇이 있는지 헤아려 둘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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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각의 오류에 관한 책이다. 무언가에 대한 판단, 의사결정, 믿음이 형성될 때 나타날 수 있는 오류에 대해서 몇 가지로 분류하여 사례를 적어 두었는데, 대부분 많은 공감을 했다.
책을 딱 읽고 나니, 기억에 남는 것은... Skeptical(회의주의), 자기 합리화,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자 하는 성향, 기억의 변신(?)같은 것들.
당연히, 나는 어땠을까?에 대해서 떠올려 본다. 어떤 판단이나 의사결정에서...나는 악착같이 자기 합리화를 했고, 믿고 싶은 것만 믿거나 보고 싶은 것만 보는 기염을 토했던 경우가 많았던 것 같다.
개선이 쉽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자각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2. Skeptical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본다. (굳이 회의주의,라고 표현하기 싫은 것은 그 어감때문이다.--;;) 책에서는 skeptical에 대해서, 어떤 증거를 찾기전까지 확신하지 않지만 마음을 열어두는..뭐 그런 식으로 표현해 놓았다.
이것을 인간 관계에 옮겨보자. 누가 뭐래도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신뢰' 혹은 '믿음'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신뢰나 믿음을 갉아먹는 것이 '혹시...''설마...'하는 의심, 즉 불확신이다.
나는 여기서 살짝 의문이 생긴다.
일단 확신이 생길때까지 믿음을 보류해 두는 것이 맞을까, 아니면...먼저, 믿음으로 굳건히 다져놓은 다음에 '설마~'하는 여지가 없게 하는 것이 맞을까?
책의 이론을 적용해본다면 전자가 맞을 것이다. 그런데 그 '설마~혹시~'하는 사이에 이미 사람은 저만치 멀리 가버린다.(뭐가 맞고 틀리다,라고 말하고 싶은건 아니고...--;;) 좀..아이러니컬하다.
#3. '생각의 오류'는 좋은 책이다. 다소 두꺼운 책을 읽으며 재미있었던 이유는 조금 더 현명하고 슬기로워지고 싶은 생각도 한 몫 했으리라.
나는 이 책을 읽고 조금 다른 생각을 해본다.
책에 나오는 것처럼, 어떤 상황에서 이러한 오류에 빠지지 않고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마찬가지로...조금 아둔할 수도 있었으면 좋겠다. '혹시~''설마~'하는 마음으로 흔들리지 않고 우직한 신뢰와 믿음을 보여 줄 수 있는 사람이고 싶다.
ps. 써 놓은 리뷰를 읽어보니, 가관이다.뭔 소린지...--;; 조금 더 산뜻한 글쓰기를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우리에겐 믿고 싶은 것만 믿는 성향이 있다. 37p
우리의 인지구조는 본래부터 일화적인 증거(이야기)에 끌린다. 53p
새로운 정보 중에서 기존의 믿음과 일치하는 것만 액면 그대로 받아 들인다. 245p
월급이든, 선물 받은 돈이든, 도박에서 딴 돈이든 모든 돈을 똑같이 취급해야한다. 307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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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에서 누군가 쫓아오는 걸까. 찬바람이 그의 곁을 맴돈다. 걸음은 급격하게 빨라지고, 바람은 그를 조금씩 조금씩 조인다. 가로등 하나 켜지지 않은 좁은 골목길. 비 내린 직후, 질척거리는 진흙 때문에 한 발 한 발 떼기가 쉽지 않다. 그 때 그의 곁에 누군가가 나타나 따뜻한 손을 내민다. 어서 오라고, 힘든 걸음을 자신이 도와주겠다고. 그는 선택해야 한다. 조금 더 힘든 걸음을 내딛을 것인가, 아니면 그 손을 잡고 그 곳을 빠져나갈 것인가.
세상과 미디어는 끊임없이 불안과 공포를 양산해낸다. '청소년은 마약과 폭력으로 물들었다!'. `머지 않아 중동세력이 전 세계를 잠식시켜 버릴 것이다.', `아름다운 미국의 가치를 수호해야 한다!' 사람들은 눈을 멀고, 청력을 잃어버린다. 다문 입은 더 이상 말을 뱉어내지 못한다. 당신은 아무런 이유도 없이 공포에 떨어야 한다. 실체가 잡히지 않는 공포의 대상을 증오하고 그에게 저주를 퍼붓는다. 우리의 관심이 시들해지면 그것은 실체를 드러낸다. 그것은 괴물일까, 꿈 속에 나타날까 두려운 흉칙한 모습을 한? 아니다, 그것은 사람이다. 당신과 똑같은 모습을 한 사람. 그것은 일상이다. 우리가 매일매일 마주치는 그저그렇고 그런 일상 중 하나. 그것은 인생이다. 각자 인생 모두가 자신에게 가장 소중하듯이.
배리 글래스너의 `공포의 문화`를 읽은 뒤, 이 `생각의 오류`를 봤다. 허약한 근거를 바탕으로 한 믿음이 강력한 무리를 형성하면, 그것은 일종의 폭력이나 다름없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믿고 있는 이야기 대부분이 비과학, 비논리를 바탕으로 한다. 이것은 진중권의 말처럼 이성보다는 감정이 앞서는 동양 특유의 구술문화가 한몫을 하는 것. 아들을 낫기 위해서라면 어떤 잔인한 일이라도 서슴치 않는다. 병원에 가면 받을 수 있는 치료를 검증되지 않은 의학치료로 대체하다 애꿎은 사람이 죽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신으로 가득찬 세계는 때로 누군가에게 물리적인 폭력보다 더 강력한 타격을 입힌다. 그것은 슬금슬금 당신의 이성을 갉아먹는다. 그리고 그것은 타인에게 쉽게 전이된다. `생각의 오류`에서는 보통 사람이 저지르는 오류를 여섯 가지로 정리해 보여준다.
1. 통계자료보다 입에서 나온 이야기가 더 솔깃하다. 2. 내 생각에 의문을 품기보다 확신하려 든다. 3. 세상에는 운과 우연으로 이루어지는 일도 있음을 간과한다. 4. 나를 둘러싼 세계를 잘못 인식하곤 한다. 5. 지나치게 단순화해 생각한다. 6. 인간의 기억은 이따금 부정확하다.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믿고 싶은 것만 믿게 만드는 생각의 오류`는 단지 믿고 싶어하는 인간의 허약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책에서도 저자는 사람이란 존재가 분명한 존재가 있다기보다 무언가를 믿고 싶어서 믿는 일이 흔하다고 지적한다. 여섯 가지가 전부는 아니겠지만, 위에 나온 주장과 풍부한 예시는 상당히 그럴듯하다. 무엇보다 25년이 넘는 연구를 통해 저자가 처음 낸 책이라는 점에서 믿음이 생긴다. 그는 회의주의자 답게 주장을 펼칠 때가 그냥 그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탄탄한 밑그림을 그려놓은 다음, 뼈대를 세운다. 그러고 나서 아주 자세하게 논리의 구조물을 완성시킨다. 그덕에 읽는 독자는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이 아닌 정말 제대로 된 말을 들을 수 있다.
당신은 이런 논리적이고 과학적인 의견이 하찮다고 느낄지 모른다. 세상은 과학만이 아닌 감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반박할지도 모르겠다. 하여간 이 세상의 모든 예술은 바로 그 점을 다루고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공포영화에는 귀신을 믿지 못하는 자가 귀신에 쫓긴다는 일종의 법칙도 있지 않던가. 그들은 끊임없이 논리적인 사람을 공격한다. 세상 허투루 살지 말라고 충고한다. 과연 누가 허투루 살고 있는 것일까. 내가? 아니면 당신이? 보통 사람들은 회의주의자를 냉소적이고 트집거리만 찾아내는 사람이라 여긴다. 긍정적이지 못하고, 늘 불평만 늘어놓은 투덜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회의주의자란 무언가를 믿기 전에 증거를 찾아내서 평가해보고 싶어하는 사람일 뿐이다. 철저한 회의를 거치지 않은 믿음은 광신이나 맹신에 그치고 만다. 그 광신이 당신을 사각형의 세계에 가둔다. 공포에 찬 당신이 아무리 바쁜 걸음을 옮겨도, 결국 마주치는 것은 거대한 벽면이거나 날카로운 모서리 뿐이다. 탈출구는 없다. 애당초 마련되지 않았다. 그 좁디 좁은 사각형의 세계에 갇혀 당신은 세상을 보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방식으로 사람과 세계를 논한다. 이건 과연 옳은 일인가. 거울이 있다면 당신의 얼굴을 비춰보라. 행여나 공포에 질려있지는 않은가. 실체가 잡히지 않는 두려움에 벌벌 온몸을 떨고 있지는 않은가. 그렇다면 저자가 내미는 그 손을 잡아라. 이미지와 거짓으로 가득차 진실이 소멸되어버린 세상에서, 당신이 구원받을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바로 회의하고 또 희의하는 것이다. 토마스 키다가 지은 `생각의 오류`는 바로 그것을 가르쳐주는 책이다. 누구에게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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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의 말대로 정말 우연히(확률적 사건) 내용의 본질이 유사한 책을 거듭 접하게 되었다. 저술자의 저작 의도는 다소의 차이가 있으나 인간의 인식작용의 오류, 통계 및 과학적 오류, 작위적인 오류 등을 설명하는 비판적 사고의 중요성에 대한 내용들이다.
생각의 오류는 이들을 포함하여 12장에 걸친 만연된 인식의 오해와 오류에 대해 정리하고 있어 외부에 의한 기만이나 도구의 그릇된 활용으로 야기되는 오류를 성찰하는 저술들과는 방향을 달리하고는 있다는 측면에서 의의를 가진다 하겠다. 저자는 우리 인간들의 믿음에 대한 내면적인 근원적 요소와 이에 영향을 미치는 외부요인과의 관계를 통하여 발생하는 다양한 형태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1장에서 3장까지 초입부에서는 사이비과학이 미치는 사회적 문제점과 과학적 시각이 갖는 의미에 대해서 할애하고 있다. 이들에 대한 예로서 자폐증에 대한 치료법으로서의‘소통촉진법’이나 과학의 모양을 하고 있는 주술과학, 초심리학등의 과학적 통제실험의 부재나 검증이 불능한 가설, 근거 없는 일화(一話)적 증거등 반복적인 증거가 존재치않는 엉터리 과학의 실체를 소개하고 있다. 그리고 제4장부터 12장까지 총 9개장에서는 인간의 심리를 기저로 하는 오류의 양태(樣態)들을 설명한다. 그 첫 번째는 우리 인간들의‘운(運)’과 ‘우연’에 대한 인식의 오류를 지적하고 있다. 정말 확률적 우연에 불과한 사건에도 어떤 초자연적 힘 덕분이라고 억지의 의미를 부여하는 심리상태속에 환경을 통제하고자하는 인간심리가 있음을 통계적 실험을 통하여 입증하기도 하며, 또한 “우연한 사건들을 계기로 미신적인 생각과 패턴을 갖게 되는 조작적 조건화 과정”을 분명하게 보여주기도 한다. 그리고 저술내용의 주요 본질적 주장으로 파악할 수 있는 우리 인간들의 ‘기대하던 것만 보는 오류’가 흥미롭게 소개된다. “우리의 눈은 마음이 이해 할 준비가 되어 있는 것만 본다”는 베르그송의 인용으로 시작되는 믿음의 오류는 우리의 인식작용이 얼마나 취약한가를 여실히 입증하여 준다. 볼 때마다 방향이 달라져 보이는 입방체, 세계무역센타 참사 현장의 사진에 나타난 형상의 억측,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의 일화에 이르기 까지 흥미로운 여행을 인도한다. 인간의 끊임없는 미래에 대한 예측의 시도는 본질적으로 예측 불가능한 것을 이해하겠다는 어리석음으로 다트를 던져 결정한 의사(意思)보다 그 확률이 높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거짓을 사실로 치부하려는 심리를 집어낸다. 48시간 이상의 미래에 대한 기상예보는 기상관측소의 전문가나 일반인들의 예상이 다를 바 없다는 것이나, 주식 가격의 예상, 거시경제에서의 경기 예상 등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인간 심리의 모순인지를 생각게 하기도 한다. 이 외에도 우리가 사용하는 인지(認知)전략에는 판단을 내릴 때 긍정을 위한 검증전략을 사용하여 자신의 생각을 뒷받침하는 증거만을 채택하는 오류를 보게도 된다. 즉, 자신의 믿음을 지지해 주는 증거에만 주의를 기울이는 자기충족적 “필터 메커니즘”의 작동으로 그릇된 판단을 강화하는 우를 범하기도 한단다. 간편추론에 의해 발생할 수 있는 오류, 손실혐오라 불리는 인간본연의 심리, 심적회계, 불완전한 기억으로 인한 심각한 오류등 불완전한 우리 인간들의 심리적 기반으로 야기되는 각종 사고의 오류등이 흥미롭고 다채롭게 소개되고 있다. 마이클 셔머의“왜 사람들은 이상 것을 믿는가”와 저자가 소개를 하고는 있지 않지만 이 저술의 통계적 분석의 예에서 많은 유사성이 존재하는 한스페터 베크보른홀트의 “알을 낳는 개”가, 그리고 올리버 색스의 “아내를 모자로 착각한 남자”를 읽은 독자에게는 보다 넓은 의미에서의 인간 인지작용의 오류를 이해하는데 도움을 줄 것 같다. 거짓과 진실의 판단, 우리를 곤란에 빠뜨리는 사고의 오류들에 대한 명쾌하고 냉정한 사고 지침서라 할 수 있다. 보다 건강하고 지적인 판단을 하고 싶은 독자라면 읽어보아야 할 필독서라 추천하고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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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신기하기만 했다. 어쩌면 이렇게도 내가 저지르는 오류들을 잘 짚고 있는 것인지. 어쩌면 이렇게도 내가 착각하고 있는 바를 잘 설명하고 있는 것인지. 놀라울 지경이었다. 그런데 자꾸 읽다 보니, 이런 현상이 내게만 일어나는 게 아니라는 것을 말해 주고 있는 책이었다. 나 같은 사람이 나 같지 않은 사람보다 훨씬 많아서, 너무 많아서, 그래서 우리들이 저지르는 오류와 잘못이 걱정스럽다는 심정으로 깨우치고 다독이는 책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처음의 놀라움은 약간의 부끄러움을 불러일으켰다. 내가 나름으로는 잘난 척을 해왔지만 그게 다 내가 편하게 생각하고 싶은 대로 생각해 왔던 것이라는 것을 알고 나자, 스스로에게 민망했던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방향이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근거나 어떤 일에 대한 평가들이 내 위주로, 내 이익 위주로, 내 편리 위주로 이루어졌던 것이라는 깨달음은 이 책 속의 어떤 부분처럼 절대로 편한 깨달음이 아니었다. 불편했고 회피하고 싶어지고 무시하고 싶은 것이었다.
그런데 책장을 넘겨갈수록 도리어 내 마음이 편해지고 있는 것을 알았다. 사실, 그 편안해짐의 근거 또한 이 책의 작가가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내가 내 편한 쪽으로 생각할 수 있는 틀을 발견하게 된 까닭이다. 내가 보고 싶은 대로, 내가 원하는 대로 책을 읽게 된 것이다. 어쩌라고, 그래서 어쩌라고 싶은 마음이 들면서, 나는 이대로 살아가련다, 착각이든 오류든 내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평가하련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지만 않는다면, 또 내가 손해를 좀 본들 어떠랴 싶은 그런 마음마저 들면서.
지적 교양인으로서 할 도리가 아니라는 것은 알겠다. 지적 교양인 따위 되지 않아도 좋겠다는 생각까지 드는 데야 더 말해 무엇하리. 끝없이 회의하고 묻고 가장 올바르고 합리적인 답을 구해야 하는 것이 배운 사람의 몫이라는 것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어쩌랴, 이미 그 고단함을 알아버린 것을. 그 고단함에서 도망치는 방법까지 알아버린 것을.
그렇지만 하나는 남는다. 내가 생각보다는 오류 투성이의 생각을 하는 사람이라는 것, 또 내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근거 없는 주장에도 쉽게 설득당하는 사람이라는 것. 그러니 이러한 나 자신을 알고는 있어야겠다는 것.(그래도 일부 걱정스러운 면들은 내가 저지르지 않는다는 것도 알게 되었으니 그것만 해도 어디인가.-예를 들면, 사이비과학이나 점성학이나 언론매체나 광고나 도박 따위, 또 우연을 가장한 필연 같은 것을 믿지 않는 것)
나라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보다 사람을 판단하는 눈이 좀 모자란다고 생각해 왔던 것에 대해서도 안심이 된다. 아마 내가 사람을 쉽게 판단하지 않으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하기야 좋은 사람, 나쁜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굳이 가려서 생각한다면 자신에게 이익이 되는 사람인가 손해를 끼치는 사람인가 그 정도의 구별이라는 뜻이겠지. 몰라서 속는 일도 없어야 하겠지만 잘못 판단해서 사람을 잃어버리는 것은 더 큰 잘못이 되는 일이리라.
책을 읽는 초반에는 내가 나를 바꿔야 할 방향이 보이는 듯했는데, 다 읽고 나니 굳이 바꾸지 않아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금 내가 느끼는 내 생각의 오류들이, 지난 날을 돌이켜 보았을 때 특별히 나쁜 결과를 가져온 기억이 없는 탓이다. 오히려 잘했다 싶은 기억이 많이 난다. 그 때 그 일, 그 때 그 사람이, 내게는 나쁜 것이 아니었으므로.
문제는 앞으로의 일이다. 나는 어떤 오류에서 벗어나지 않으려 할 것인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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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세상 모든 사람들은 자신만의 “생각“이란 것을 저마다 가지고 있다. 누구의 생각이 옳고 그른가는 정말이지 ‘생각하기 나름이다.’ 하지만 60억 정도 되는 지구상의 인구수를 생각할 때 ‘생각하기 나름’이란 애매모호한 말로 지구에 존재하는 사람들의 모든 생각을 정립시키기란 불가능해 보인다. 그래서 수많은 생각들을 모아 하나의 보편적인 생각(그나마 옳은)을 하나로 결집시키고자, 과학으로는 여러 가지 실험에 실험을 거듭하고 있고, 도덕적으로는 서로가 판단해주고 판단 받아 옳은 것을 찾아나가고, 수학으로는 숫자를 내고, 통계를 내어 집계를 하는 등 생각의 오류를 범하지 않으려는 이러한 인간 스스로의 노력으로 이제까지 우리는 많은 위대한 것들을 구축해 놓았다. 그리하여 많은 생각의 잘못들을 바로 잡을 수는 있었지만 지금 현대에 와서도 우리가 범하는 오류들은 끝이 없다. 왜냐하면 우린 불완전한 인간이기 때문이다. 책을 유심히 읽다보면 우리가 무의식중에 주변의 여러 환경요인으로 오염되는 생각의 오류들이 엄청나다는 검증된 사실에 깜짝 놀랄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우리가 오류적인 생각이라고 느끼고 있는데도 반대로 그 생각을 지지하는 믿음을 가지고 자신 스스로가 자유적인 행동을 억압한다는 사실은 더욱 놀랄만한 일일 것이다. 그런 서프라이즈한 모순된 모습을 우리는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자신의 강한 주관이 뚜렷이 있는 사람은 몇몇 군데에서 책속의 어느 부분은 인정할 수 없다고 할지도 모르겠다. 나도 그랬으니까. 이 책 또한 ‘작가 개인의 생각’이 곳곳에 실려 있으니까말이다. 그렇다. 어떤 것을 믿기 전에는 (이책을 칭찬하는 서평을 쓰고 있지만 행여 이책이라 하더라도) 한걸음 뒤로 물러서서 기준치를 정해서 요목조목 따져보는게 현명하다. 작가 또한 그렇게 말하고 있다.
책을 읽으면서 인간의 생각의 오류를 지적하여 그와 관련된 이런저런 통계를 끄집어 내고 우리속에 잠재되어 있는, 또는 평소 일상생활에서 저지르는 생각의 오류들을 인용, 증명하며 바로 잡으려한 토머스 키다 작가분이 존경스러웠다. 그 어느 누가 ‘생각의 오류’를 생각이나 한단 말인가. 생각에 그치지 않고 글로써 모든 이들과 공유하겠는가 말이다. 책을 읽고 많은 이들이 깨달아 안 바가 크다면 이 책은 사회적으로 공헌한 바가 크다고 할 수 있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