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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아웃사이더도 아니고 아웃사이더적인 삶을 지향하는 것도 아니지만, 독서경험에 있어선 늘 아웃사이더들의 영역을 기웃거리는 것을 보면 아웃사이더란 것도 내가 가진 수많은 아이덴티티 중의 하나일 것이란 생각을 해본다. 비록 그것이 적극적 동조나 공감으로 발휘되어 지지는 않지만, 책을 통해 만나는 아웃사이더들의 삶은 언제나 내게 연민과 뒤섞인 다난한 감정을 불러오는 것은 사실이다. 안타깝지만 어찌해볼 수도 없는 삶들을 나는 그저 관망만할 뿐임에도, 아웃사이더의 얘기를 읽는 것은 그들의 삶만큼은 아니어도 편하고 밝은 독서체험은 분명히 아니다. 그렇기에, 이런저런 이유로 당분간은 마음 답답하게 만들 것만 같은 독서는 좀 지양하리라는 스스로의 다짐에도 불구하고 나는 또 하나의 아웃사이더 얘기를 집어 들고야 말았다. 그러나 다행히 이 책은 온 세상이 허망하게 느껴지는 듯한 우울이나 깊은 연민이 느껴지는 것과는 다른 의미와 감동을 선사해 주었다. 이 책에 등장하는 12명의 주요 아웃사이더적인 인물들은 현대에서 아웃사이더라하면 흔히 연상되는 암울한 이미지나 개념들이 아닌, 그들만의 분명한 ‘소신’과 그것을 목숨 걸고서라도 지켜내려는 개인의 의지가 어느 정도인지에 따라 선별되었기 때문이다.
콜린 윌슨이 그의 대표저서 <아웃사이더>에서 언급했던 아웃사이더들의 특징에 모두 공감하는 것은 아니지만, 나 역시도 ‘아웃사이더’라면 어느 정도는 현 사회체계와 대립된 존재들이어야 한다는 점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여기 등장하는 사람들은 유교신분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모두 중인이상의 계급에 속해있었다. 그들이 모두 환로의 길에 나서서 성공을 했던 것은 아니었고, (어떤 경우는 스스로의 선택으로 과거나 벼슬과는 상관없는 삶을 산다)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삶을 향유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그들의 개별적 삶이 일부나마 기록으로 남겨지고 먼 훗날에서나마 역사책에서 다시 회자될 수 있었던 것도, 신분제 사회에서 나서 죽을 때까지 먹고 사는 문제만 오롯이 걱정하며 육체적 생산활동으로 왕정신분사회구조에서 토대가 되었던 기저층은 아니었기 때문일 것이다. 어쩌면 그들이 목숨까지 걸며 지키고자 하였던 '소신'이란 것도 조선시대에는 가진 자만이 누릴 수 있었던 관념론적 호사가 아니었을까.
그러나 조선과 아웃사이더라는 서로 아이러니하기 이를 데 없는 제목을 붙여가며 12명의 조선시대의 선비들을 한 카테고리로 묶은 저자의 의도는, 그들의 삶이 태생적 신분권력의 혜택과 물질의 풍요로부터 얼마나 괴리되어졌는지보다는, 주류의 담론이나 정치적 이념과는 평행선을 걸었던 그들만의 소신이 그들의 인생을 어떻게 괴롭혔는가, 그럼에도 왜 그들은 그 뜻을 끝까지 굽히지 않았던가에 더 주목한다고 밝히고 있다. 그러한 저술 의도로서 선별한 조선의 아웃사이더 선비들은 제목만큼이나 아이러니하게, 소신을 지킴으로써 정신적인 호사는 누렸을지언정 그로 인해 오히려 더 험난하고 굴곡진 삶을 살아야했다.
이 책에서 다룬 대부분의 인물은 자신이 옳다고 생각했던 길을 고집스럽게 걸었던 사람들이다. 신념이 강하다 보니 다른 사람과 화합하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그래서 그들의 인생 역정은 굴곡이 매우 심했다. 그들의 삶이 반드시 바람직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바람직스럽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 저자의 '여는 글' 중 발췌
저자가 밝힌 바와 같이 수록된 12편의 조선시대 완고한 선비이야기들은, 강한 신념이 불러일으킬만한 거부감이나 답답함, 그리고 시대가 주는 수난에 오롯이 홀로 맞서야했던 그들 인생의 처연함이 아닌 색다른 감동을 선사한다. 이것은 저자가 사(史)적 기록물만을 가지고 이들의 삶을 추적하고 조망해낼 때, 그러한 부정적인 측면보다 그들이 지녔던 신념의 무게에 더욱 집중하고, 그것이 현대사회를 사는 우리에게 불러올 긍정적 의미를 환기시키려는 의지를 부단히 피력해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이 책은 지나간 고집불통 조상님네들 이야기를 들추어내 준 것에 멈추지 않고, (뒷표지에도 나왔드시) 우리에게 당당히 '나는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가?' 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것이다.
12편마다 등장한 선비님들의 소신의 색깔과 성향은 모두 다른 것이다. 그럼에도 그들의 소신은 그들에게 있어 하나같이 존재이유 Raison d'être 였다는 공통점이 있다. 대부분 정치나 담론으로부터는 완전히 소외될 수 없었다는 신분으로 말미암아, 그들이 지닌 소신은 오롯이 혼자만의 것일 수는 없었고 사회적/정치적 무게를 지녔었다. 이 무게로 인해 그들은 남을 해하기도 하였지만, 대부분은 자신과 가족의 삶에 해를 입혔다. 현대사회에서 각 개인이 지닌 소신은 이렇게까지 대의나 공익적 가치를 지향하지는 않을 것이다.(심지어 그런 소신을 공식적으로 피력해야할 할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서도 위선된 소신을 많이 목격할 수 있다) 그리고 꺾으려 하면 휘어지기보다는 부러지마고 마는 강인함보다도, 다같이 화합과 조화를 이루어낼 부드러운 융통성이 더 절실히 요구되어진다. 경제적 뒷받침만 전제된다면, 자기 의지대로 사는 것도 비교적 쉬울뿐더러, 그렇게 산다고 해도 사회나 타인에게 폐를 끼치지 않는다면 개성의 일부로서 긍정적으로 비쳐질 수도 있다. 그렇게 물질문명을 바탕으로 한 개성이 중시되고 다양화되어짐에도, 현대인들은 자신의 존재이유와 정신적 가치실현의 동기는 점점 잃어가는 듯하다. 콜린 윌슨이 현실에만 안주하고 거기서 얻어지는 것들로만 만족을 취하기에 다른 깊이나 혼돈은 지닐 수 없다고 비판하였던 부르조아들의 모습은 바로 나를 비롯한 대부분의 현대인들의 모습일지 모른다고 생각해본다. 그들은 선뜻 표면적인 사회의 아웃사이더를 위험한 존재로 간주하고 비판하지만 자기 삶의 영역에선 물질적 가치를 더욱 중시함으로써 자신이 지닌 본래의 존재이유에서는 멀어지는 Self-아웃사이더가 되는 것이다.
그렇기에, 존재의 이유를 소신으로서 당당히 지켜나갔던 옛 선비들의 이야기를 읽고나도서, 삶에 달관하지 못한 체 아둥바둥 쫓기듯 살고 있는 Self-outsider인 나 역시 왜 사냐는 누군가의 질문에 이렇다 할만한 답을 찾지 못해 여전히 머쓱한 웃음 밖에 지을 수 없을 것 같다. 먹고 사는 문제가 훨씬 나아진 이 시대에도 '어떻게' 먹고 사느냐에 더욱 집착하는 우리들에게 소신과 신념은 여전히 정신적인 호사일 수 밖에 없는 것일까. 이런 아이러니한 자괴감이야말로, 저자가 언급한 평범치 않던 이들의 삶에서 얻게되는 색다른 감동인 듯하여 씁쓸한 기분이 든다. 이 책의 등장하는 12명의 인물 중 남명학파 선비였던 정인홍이 11세에 지었다는 시 하나가 두고두고 마음에 남는다. 멈추어진 탑 같던 조선에 비해, 지금 우리가 사는 현대는 높이 자란 소나무가 되어 그들을 초라하다며 넓은 그늘로 덮을 수 있을지. 반대로, 언급된 모든 외롭던 선비님들이야말로, 돌탑처럼 정체된 삶을 사는 우리들은 닿을 수 없는 높은 그늘일지 모른다. 그들의 소신은 외로웠지만, 그 외로움마저 우리들에겐 실현조차 어려운 이상(理想)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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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고 짧은 외로운 솔이 탑 서쪽에 있으니 탑은 높고 솔은 낮아서 서로 가지런하지 않네 오늘날 외로운 솔이 낮다고 말하지 마오 솔이 자란 다른 날에 탑이 도리어 낮으리
정인홍 시 <성호사설> 수록
▼▼▼ 'In the wild north' by Ivan Ivanovich Shishki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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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에 대한 우리의 생각은 어떠할까? 주위를 겉도는 사람? 주류와 어울리지 못하는 외톨박이? 왕따? 이런 생각이 강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런 ‘아웃사이더’가 없었던들 이른바 ‘인사이더’라는 것이 있을 수 있었을까? 그리고 과연 ‘아웃사이더’를 위와 같은 개념에 한정지어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것은 우리의 낡은 관념이 아닐까?
하리수, 홍석천.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용기’라는 말을 갔다붙인다. 하지만 그것은 그들을 위하는 진정한 마음이라 이야기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 ‘용기’라는 말 속에 어느새 그와 같은 이들을 ‘아웃사이더’라 생각하는 것이 깔려 있기 때문이다. 그들이 진정 바라는 것은 무엇일까? 평범함, 그것이 아닐까? 그들의 행동을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일어나는 평범한 일로 생각해주기를 그들은 바라지 않을까? 그들은 자신만의 소신이 있었고, 그 소신을 밀고 나갔다. 그 소신이 사회에 큰 해악을 끼치지 않는 이상 우리가 왈가왈부할 자격은 없는 것이다. 그러니 ‘용기’라는 말도 어찌보면 우리의 편견이 낳은 오만한 말인지도 모른다. 우리 역사 속 인물들이 그것을 충분히 가르쳐주고 있다.
이 책은 자신과 자신이 살고 있던 사회에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생을 값지게 살았던 조선의 남자들을 다루고 있다. 비록 ‘아웃사이더’란 제목이 달려 있지만, 저자는 이 책에 실린 인물들이 역설적으로 ‘아웃사이더’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다. 실제로 책 속 인물들 가운데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인물들이 적지 않기 때문에 이미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붙이기가 이상할 뿐더러 이들의 소신 있는 삶을 주류와 동떨어진 삶이라고 단정지을 수 있을 만큼 우리가 삶을 제대로 살고 있는지에 대해서 나는 적지 않은 의문이 든다. 또한 우리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아웃사이더’들의 시선에서는 거꾸로 우리가 ‘아웃사이더’들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들이 ‘아웃사이더’가 아닌 것은 이들의 삶이 평범하기 때문이다. 삶이 평범한 이들에게 위와 같은 개념을 지닌 ‘아웃사이더’라는 말을 붙일 수 있을까?
여기서 우리는 ‘아웃사이더’라는 말이 지닌 의미를 달리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저자는 무엇 때문에 ‘아웃사이더’가 아닌 이들에게 ‘아웃사이더’라는 제목을 붙였을까? 책 속의 인물들은 지극히 평범한 인물들일 뿐이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가는 방법이 그리 평범하지 않다. 그리고 남들이 보기에 꽤나 미련하다 싶을 만큼 자신의 소신을 철저히 지켜나가는 면을 보여준다.
박지원. 사실 그가 살았던 당시의 사회에 대한 비판은 그만 한 것이 아니었다. 의식이 있는 지성인들은 누구든 그들이 살고 있던 사회에 대한 끝없는 애정과 냉철한 비판 의식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박지원은 그것을 유머와 비속한 언어와 같은 매우 독특한 방식으로 표현했던 것이다. 그러니 같은 비판이라도 다른 이들의 눈에서 본다면 “어허! 어디서 버릇없이…….” 라는 소리를 들을 수도 있는 것이다.
심노숭. 사실 웬만한 조선의 선비들은 심노숭만큼 아내와 가족들에 대한 뜨거운 사랑을 지니고 있었다. 이것은 그들이 남겨놓은 글의 참뜻을 읽다보면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하지만 조선의 선비들은 그러한 감정을 쉽게 드러낼 수 없었다. 반면 심노숭은 자신의 사랑을 과감하게 표현하였고, 그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예사롭게 비치지 않았을 뿐이다.
우리는 조선이 어떤 나라인가를 잘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송시열은 조선 후기의 대학자이자 정치가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만약 부인에게 어느날 자신의 부인을 사랑하는 지극한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출하여 “오! 이씨! 그대를 사랑하오!” 라고 말했다면, 그러한 상황이 쉬이 납득이 가겠는가? 그런데 사실은 그렇게 못할 것도 무엇일까? 그리고 송시열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이것이 바로 편견의 무서움이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이런 편견이 드는데, 하물며 조선은 오죽했겠는가? 물론 송시열은 저렇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조선이라는 사회는 자신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사회였다. 오죽하면 이름조차 그대로 부르는 것을 피해 자나 호, 그 밖의 다른 호칭으로 부르게 했을까? 그러니 자신의 감정을 있는 그대로 표현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어려운 일이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감정을 억제했을 뿐, 감정을 숨겼다는 것은 아니라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조선의 선비들의 삶을 그렇게 단순히 바라봐서는 안 된다. 글의 행간(行間)의 묘미는 바로 거기에 있으며, 그것을 찾아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 의미에서 박지원이나 심노숭은 특이한 삶을 산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행간이라는 장치를 불필요하게 여겼을 뿐이다. 인간의 감정을 숨기는 것, 하고 싶은 말을 속시원하게 하지 못하는 것을 그들은 답답하게 여겼을 뿐이다. 그러니 이들의 삶을 ‘아웃사이더’라고 부르기는 어려운 것이다. 다만 그 방법이 통념과 다를 뿐이다. 이들도 그저 평범한 한 사람일 뿐이다. 그러나 이들을 평범하지 않은 사람으로 부르는 이상 이들은 이미 (좋은, 또는 나쁜 의미이건) 신격화한다. 그들은 이렇게 봐주기를 원하지 않을 것이다. 이들은 자신의 방식을 고집스럽게 밀고 나갔고, 자신의 소신을 끝까지 지켰다. 이들에게는 하늘이 두 쪽 나도 아닌 것은 아니었다. 그것을 이상하다 할 수는 없지 않을까? 어쨌든 그것은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는 이들에게는 단순하게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적지 않은 공감과 매력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모습을 통해 현실의 나에 대한 비판을 하기도 할 것이다.
그런데 여기에는 중요한 함정이 있다. 저자가 이 책에서 이들의 삶을 아름답고 의미했다고 했을 뿐 전적으로 옳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았음에 유념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현실에 순응하고 타협하는 삶을 그리 좋지 않은 삶이라 단정짓는 것 또한 또 하나의 낡은 관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지나친 소신은 어찌 보면 고집으로 비칠 수도 있는 것이다. 윤휴의 경우를 보자. 그는 분명 명분이 옳았으며, 드높은 기상과 소신을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자신의 의견을 고집스럽게 밀어붙이기만 했다. 그것은 어찌보면 그만의 고집일 수도 있는 것이다. 당시 청나라는 무서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북벌의 결과를 장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명분에 집착해서 그런 현실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다. 그 소신은 참으로 드높았지만, 그의 소신이 옳다고 이야기할 수만은 없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사람이란 그저 평범하게 살아가는 이들일 뿐임을 다시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람들은 평범하게 보이든 비범하게 보이든 모두 장, 단점을 지니고 있으며,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늘려 더 나은 삶을 살기를 원한다. 그런 삶에 ‘아웃사이더’니 ‘인사이더’니 하는 구분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 지극히 평범한 사실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수많은 편견, 고정관념이 생겨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면 평범한 삶이란 무엇일까? 이상과 현실의 조화가 아닐까? 이상과 현실의 조화. 어려운 것이 아니다. ‘현재 나의 현실은 이렇다. 그러나 나는 이런 꿈을 가지고 있으며,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내가 가지고 있는 장점과 단점을 파악하여, 단점을 줄이고 장점을 늘려 서서히 그 꿈을 이뤄나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꿈의 나의 삶은 물론 내 주위, 크게는 내가 사는 이 나라의 발전에 밑거름이 된다면 그야말로 나의 삶은 아름답고 의미있다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이상 더 나은 이상과 현실의 조화가 있을까? 박지원은 ‘법고창신’(法古創新, 옛 것을 법으로 하여 새 것을 만든다)이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그 말의 참뜻은 무엇일까? 바로 평범함이다. 우리는 어제의 삶을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며 또 내일을 살아갈 것이다. 그게 특이한 삶인가? 보통 사람들의 삶이 다 그렇지 않은가? 이 책은 그 점에서 적지 않은 가르침을 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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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대로 살아가기란 사실 쉽지 않다
어쩌면 아웃사이더란 명칭보다 선각자에 가까운 조선의 아웃사이더 ..이같은 분들을 지금도 만나볼수 있을까?
그 분들의 의지에는 두손 두발을 다 들것만 같다
시대의 벽에 굴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고집대로 살아온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던 소신파 선비 이옥, 죽은 아내에게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숭 ,손자의 육아 일기를 남긴 이문건 등등 총 12명의 아웃사이더중에서도 유독 기억에 남는 분들이 계셨다
읽는 내내 느꼈지만 자신의 생각과 삶에 충실했던 사람들의 삶속에 우리가 흔히 느낄수 없는 인간 냄새와 존경심이 마구 우러나오는건 이러한 분들이 역경을 뚫고온 그 험한 여정을 바라보며 홀로 싸웠지만 진실로 당당해 보였던 또다른 까닭이 숨어있다
이 경외감마져 느끼게 하는 아웃사이더는 그 시대의 진정한 삶을 사랑한 분들이자 천지에 부끄럼이 없는 분들이란 점이 공통의 분모가 그것이였다
때론 나답다는 것이 무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이렇게 나를 잃고 휩쓸리는 현대인에게 차분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으며 문명의 발달이 가져온 편리속에 진정 무엇이 옳은가 하는 자신의 생각보다 좋은 것이 좋은것이라는 편리주의로 치닫는 위험을 경고하는 듯이 느껴진다
또한 자신의 의미를 잃고 지내는 우리의 삶속에 일종의 경각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는 가치관과 사상은 우리에게 깨닫음이상의 결심 혹은 실천의 용기를 갖게 한다
진정 삶의 주인이 되어 무늬만 소신하지말고 인생의 참주인이 되어 살아가야 한다는 옛선인의 결연한 목소리가 아직도 들리는 듯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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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신에 목숨을 건 아웃사이더들의 이야기”
「…그들의 삶이 반드시 바람직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없으며, 바람직스럽기 때문에 그들의 삶을 조명하는 것도 아니다. 일반인들에게서는 찾아볼 수 없는 특별함을 간직하고 있었던 사람들의 이야기는 색다른 감동을 준다. 때로 의미보다 감동이 삶에 훨씬 더 큰 활력소를 제공한다...」 이 글을 쓴 저자의 의도라고 볼 수 있다. 의미보다는 감동이 삶을 더 풍요롭게 해준다는 그 말에 전적으로 동감을 표한다. 한 권의 책을 읽는 동안 자신의 뜻을 묵묵히 따랐던 그들의 모습이 환영처럼 내 앞에 나타나고는 했다. 그들의 모습이 비록 화려한 모습은 아니었지만, 그 당당함에 고개가 절로 숙여지는 느낌은 지울 수 없었다. 이 책은 소신 있는 삶을 살아야했기에 아웃사이더로 자리 했던 12인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역사적인 사실을 전하고는 있지만, 개인적인 일을 더 크게 잡았기 때문에 역사책이라는 중압적인 분위기가 아닌 흥미로운 에세이를 읽고 있는 기분이 들기도 했다. 책을 읽을 때에는 막힘없이 한 호흡에 읽는 것이 또 하나의 묘미라고 생각하는 나는 이 책을 읽는 동안에는 그 즐거움을 한껏 누릴 수 있었다. 한 인물에 대한 이야기 안에는 해당인물의 고서나 주변인들의 이야기로 그 인물을 소개하는 부분이 있는데, 읽을수록 인물과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기도 했고, 좋은 인용 글을 읽는 기쁨까지 더할 수 있었다. 삽화들도 그 몫을 다 했음을 덧붙이고 싶다. 인물과 인물 사이의 중간에는 더 읽어보기라는 공간이 있어 해당인물 이외의 다른 인물들 혹은 인물이 살았던 시기의 역사적 사실을 넣어 이해를 넓히고 역사적 지식에 대한 막힘없는 습득을 도왔던 점이 좋은 구성이었다고 생각한다. 디자인도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는데, 사실 디자인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는 나로서는 표지부터 속의 구성까지 이 책을 접하는 기쁨이 매우 컸다고 말하고 싶다. 이 책의 내용 중 특히나 내 마을을 끌었던 인물들을 몇 소개하자면, 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던 이옥을 먼저 꼽을 수 있겠다. 정조는 우리가 알다시피 붕당정치의 폐단으로 왕권이 흔들릴 무렵에 왕의 자리에 오른다. 그의 아버지 사도세자가 노론의 입김에 아비 영조의 손에 죽음에 이르렀던 사실만으로도 왕권이 위태로웠던 시기를 추론하기란 어렵지 않다. 노론의 반대를 물리치고 왕이 되었던 정조는 왕권강화를 위한 정책들을 내어놓았는데, 문체반정이 그 일부라고 볼 수 있다. 문체반정의 내용은 차치하고 나라의 정책 결정이 선량한 한 개인에게 얼마나 많은 파급을 미칠 수 있는지 엿볼 수 있는지, 왕이나 정책결정자의 입장이 아닌 개개인의 입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된 것 같다. 자신의 문체를 사랑한 이옥이란 사람이 그 뜻의 굽힘을 포기한 대가가 지나치게 컸던 것은 아닐까하는 외로운 생각이 들어 한참을 생각에 빠지기도 하였다. 자신을 최고의 문인으로 믿었던 요절 시인 이언진도 기억에 남는 인물 중 하나다. 중인들은 조선시대에서는 특수한 존재로써 평민보다는 높은 지위를 양반들에게는 업신여김을 당해야하는 사람들이었다. 조선이 번창하면서 이러한 사람들의 수도 그 지위도 나날이 불어가고 상승하였는데 그들의 의식만큼 시대는 인정해주지 않았기 때문인지 그 상황을 분개하는 이들도 적지 않았던 듯하다. 신라의 6두품이 정치보다는 학문이나 종교에 심취했던 것처럼 이들의 한도 글이라는 통로를 통해 표출된 것은 아니었을까...이 중 이언진은 당시 최고의 문학가 연암에게 굴하지 않을 만큼 그 자신의 재주를 뽐내었는데 말뿐인 것은 아니었던지 자신의 냉대에 병약했던 그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연암은 그 죄책감을 담는 글 한편을 남겼다. 이를 통해 유추해 볼 수 있는 그의 실력은 안타깝게도 그 자신이 불살라버린 것으로 볼 수 없어 더없이 안타까울 수밖에 없다. 미인박명이라고 이토록 천재적인 재주를 가진 이는 하늘도 그 재주를 부러워하기 때문인가 그 절명에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실천하지 않는 학문은 하지 않겠다던 행동파 유학자 정인홍의 이야기는 오늘날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지나치게 꼿꼿한 정인홍의 성정은 결국 자신의 붕당에게로 화살을 돌리는 결과를 초래하고 말았지만, 그의 의리 있는 행동은 분명 칭송받을 만하다. 요즘 조폭의 세계를 미화시켜 진짜 사나이의 모습이 와전되었지만, 이렇듯 권위와 속세의 권력에도 동하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나아간 그가 진짜 사나이의 모습이 아닐까...89세의 노인이 저잣거리로 끌려가 참수당하는 모습을 회상하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의 붕당정치란 이토록 인정머리가 없는 것이었는지...예나 지금이나 정치란 참으로 사람의 정이 마르는 불모지 같다는 생각이 든다. 또 다른 이로는 아내가 그리워 죽은 아내를 생각하며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승, 손주를 직접 기르고 육아일기를 남긴 이문건 등 당시 사대부로써 생각할 수 없는 일을 해낸 사람들도 기억에 남는다. 당연한 귀결이기도 하겠지만, 조선시대의 이런 남자들이 소신 있는 남자들이라 현재에 칭할 수 있는 것은 당시 조선의 시대가 남자들만의 세계였음을 다시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이 되어서 여자인 나로서는 씁쓸한 기분이 들기도 했음을 부인할 수 없다. 이 책을 읽기 얼마 전에는 이수광의 『잡인열전』이라는 책도 흥미롭게 읽었는데, 최근 이와 비슷하게 시도되고 있는 새로 쓰는 역사가 한창인 듯하다. 왕의 이야기가 아닌 아웃사이더로 살았지만, 소신 있게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던 사람들, 또한 민초들의 이야기와 잡인들의 이야기들이 역사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된 것은, 아마도 이 시대의 요구를 말해주고 있는 듯하다. 소신 있게 살기가 힘든 시기이기 때문일까...이 책이 주는 감동이 우리에게 이처럼 크게 다가오는 것과 조금 씁쓸한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것을 보면 말이다. 한 시대의 주류가 되지는 못했지만 삶의 의미를 누구보다 깊이 있게 받아들였던 그들의 이야기에 관심을 가져보는 것은 어떠할지, 우리의 삶이 누군가의 관심으로 얼룩지지 않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 나아가기를 원하는 사람이라면 느끼는 바가 다르리라는 생각이 이 책을 권하는 이유가 되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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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웃사이더들은 어느 시대이건 있기 마련이지만, 조선시대의 아웃사이더라고 하면 누구를 꼽아야 할지 쉽게 감이 오지 않았다. 학문의 범위도 제한적이었고, 무엇보다 예를 중시하는 분위기가 깊게 퍼져있는 속에서 남과 다른 길을 가는 것이 가당키나 한 일이었겠나 싶은 의구심도 들었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은 이 책을 읽으면 곧 없어진다. 소신을 굽히지 않은 조선 선비 12명을 바로 만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나 '아니오'로 자신의 의견을 분명히 말하기가 꺼려지는 세상, 가운데서 줄타기를 하지 않으면 손해보는 것 같은 세상일수록 소신의 가치는 빛난다. 너무 튀지 않고 중간만 가면 된다는 말이 자조적으로 쓰이는 요즘, 자신이 생각한 바를 강직하게 밀고 나가며 굽히지 않은 줏대를 보여주시는 이 분들의 얘기는 더욱 의미가 깊다. 물론 그 과정에서 타인과 부딪치며 불이익을 당하기도 했으며, 때로는 강한 성격으로 남을 다치게도 했었다. 순기능만 있는 것이 아니고 역기능도 존재했던 소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분들의 얘기가 긍정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주장의 당위성과 함께 그만큼 희소성의 가치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12분의 아웃사이더 중에는 과거에 합격을 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정조의 문체반정 시대에 낡은 문체를 썼다는 이유로 번번이 충군되어 젊은 날들의 기회를 놓쳐버린 이옥이 있었다. 의식이 없으며 가벼울 뿐만 아니라 사람의 감정을 투영하여 쓴 글을 매우 좋지 않게 보았던 정조는 이옥 외에도 여러 명을 지목했었다. 다른 이들은 반성문을 제출하고 문체를 고쳐 현실과 타협했지만, 끝내 이옥은 자신의 문체를 버리지 않아 성공의 가도를 달릴 수도 있었던 기회를 놓쳐버렸다.
중인의 신분이었지만 글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이언진도 기억에 남는다. 어려서부터 문장을 짓는 데에 남다른 재주가 있었던 이언진은 계급의 벽으로 역관 이상은 올라갈 수가 없었지만, 통신사의 자격으로 일본에 갔을 때조차 멋진 시를 지어내 일본인들을 감탄케 할 만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랬던 그가 인정받고 싶어하던 단 한 사람인 박지원은 그의 글을 보고 대단치 않다는 평가를 내리고, 이언진은 약한 몸에 정신적 충격을 받아 젊은 나이에 요절하고 만다. 뒤늦게 박지원은 그를 추모하며 '우상전'을 지어 이언진의 재능을 재평가했다. 그러나, 그는 이미 세상에 없으니, 도도한 성품은 신분의 벽과 함께 그의 실력을 세상에 펼치는 것에 방해물이 되고 말았다.
이외에도 스승 조광조의 죽음을 겪은 후 고향에 소쇄원을 짓고 선비들과 교류하며 다시는 정계에 진출하지 않았던 양산보, 의리와 실천력을 중시하여 강직한 말과 행동을 서슴지 않았으나 인목대비의 폐비를 주도했다는 죄목으로 처형을 당한 정인홍, 오로지 북벌을 위해 남은 인생을 걸었지만 사문난적으로 몰린 윤휴의 일생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시사한다.
그들의 대쪽같은 성품을 갈아 좀 둥글린다면 정책의 수행 면에서도 부드럽게 굴러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다. 그래도, 고집스럽게 소신을 밀고 나간 덕분에 그들의 삶은 최소한 구차하진 않았다. 개인적인 영달을 위해 못본 척, 못들은 척 해야 하는 일이 많은 현대인일수록, 이들의 기개와 곧은 성품을 마주하며 당황함과 동시에 스스로의 삶을 되돌아보게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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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문체반정에 반기를 들었던 이옥 죽은 아내에게 수십 편의 글을 남긴 심노숭 자신을 최고의 문인으로 믿었던 요절 시인 이언진 손자의 육아 일기를 남긴 이문건 친구의 죽음에 과거를 포기한 박지원 스승의 죽음에 평생을 은둔한 양산보 극진한 효심으로 소설 「구운몽」을 지은 김만중 의리와 실천으로 무장한 행동파 유학자 정인홍 일평생 오로지 북벌을 꿈꾸었던 윤휴 경세에 목숨을 걸었던 김병욱 온몸으로 천주교에 맞섰던 김치진 개화와 척사 사이에서 제3의 길을 걸었던 이건창 최근 조선 시대에 대한 관심이 늘어가서 조선 시대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는 책들에 자주 손이 가고 있다. 체계적으로 알아보기 보다는 그냥 관심이 가게 되는 책들을 이것저것 읽어보고 있는 수준이라 그리 많이 알아가고 있다고 생각되진 않지만 그래도 꽤 재미를 느끼게 된다. ‘소신에 목숨을 건 조선의 아웃사이더’는 조선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 중 제목처럼 소신에 목숨을 건 사람들만이 아닌 독특하고 특이한 혹은 유별나다고 말할 수 있는 삶을 살아간 사람들과 제목 그대로 시대의 한계와 여러 어려움들 속에서도 자신만의 입장을 잃지 않으려고 했던 12명의 삶을 짧게 훑어보고 있다. 선정의 기준이 의문스러울 때도 있지만 대체적으로는 이해할 수 있을만한 선정이었다. 몇몇은 잘 이해되지 않았지만 그걸 트집 잡고 싶진 않다. 그때도 그렇고 지금도 그렇지만 시대적 정치적 사회적인 강요에 휘둘리거나 타협하기 보다는 각자의 방식으로 자신의 신념을 지키려고 했던 이들의 삶은 그리 순탄치 않은 삶이 대부분이고 쉽고 편한 방식을 뻔히 알면서도 그걸 택하지 않음으로 괴로움과 힘겨움을 겼게 될 뿐이지만 그럼에도 지켜야만 했던, 혹은 세상과 싸워야 했던 이유를 알아가면서 무엇을 지켜야할 것인지 그리고 어떤 삶을 살아가야 할 것인지를 반성해보고 생각해보게 된다. 유난히 도드라진 삶을 살아간 12명의 삶을 살펴보면서 그 시대가 어떤 시대였는지 함께 알려주고 있기도 해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으며 어려운 내용이 아니라 쉽게 읽을 수 있어 좋았다. 12명의 삶만이 아니라 조선 시대를 살아간 사람들의 삶 또한 함께 다루고 있기 때문에 가벼운 기분으로 읽을 수 있었지만 그렇게 읽다가도 시대와 세상과 다퉈가면서 점점 지쳐가고 쓰러져가는 그들의 삶 때문에 안타까운 기분이 지워지지 않게 된다. 지금 시대에는 어떤 이들이 소신과 신념을 지켜가며 세상과 다투고 힘겨워하고 있을까? 그들이 지쳐가지 않고 더 질기게 싸워나가길 바란다. 그리고 그들에게 손가락질을 하는 것이 아닌 응원하고 힘을 주는 사람이 많은 사회이길 꿈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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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책에서만 보던 인물들 혹은 전혀 모르는 인물에 대해 새롭게 발견한 책. 권력과 부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소신대로 살다 간 '조선의 아웃사이더양반'이라고 해야겠다. 지금과 비교하면 양반계층이었기에 소신대로-출세를 포기하거나 뜻을 두지 않고 공부에만 전념한다거나- 사는 것이 가능하지 않았을까? 그 식솔들이 가난과 굶주림으로 고통받아도 말이다. 만약 지금 소신대로 살다간 부양책임 소홀로 이혼사유가 되지 않았을까?
그래도, 그들의 삶을 통해 인간이 경제적 동물이 다가 아님을 배운다.비록 가난할지언정, 불의와 나쁜무리들과 타협하지 않는 것, 그것으로 인해 고통을 당해도 양심껏 소신껏 살 수 있는 그래서 큰소리칠수 있고 그것이 소인배들을 부끄럽게 만드는 것임을 느껴본다.
ps>손자를 키우면서 쓴 육아일기인 '양아록'를 남긴 이문건 이 제일 인상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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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서 외면되는 비주류의 소신있는 삶을 엿보다]
역사에서 주류로 다루어지는 인물들은 분명 역사의 한 줄기를 흐름을 타고 있는 사람들이다. 같은 길을 걷고 있든 다른 길을 걷고 있는 큰 획을 긋는 인물들에 대한 평가는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지금까지의 역사적 흐름이다. 이 책은 그 흐름에서 제외됨직한 비주류 사람들의 소신있는 삶을 엿본다는 점에서 호기심이 인다. 주류와 비주류의 차이는 남겨진 자료와 평가를 ?v해서도 알 수 있다. 소개되는 인물을 보면 익숙하기보다는 낯선 사람들이 많다 .그만큼 역사의 저편에 위치한 사람들이되 이런 인물들을 구지 다룬 작가의 취지를 살피면 역시 이 인물들에게서 나름의 줏대있는 삶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정조라고 하면 조선사에서 세종과 견주어 비교되는 성군이다 .정조의 여러 정책 중에서 문체반정에 대해 반기를 든 사람이 있다고 하니 발 이옥이라는 인물이다. 문제반정이라 하면 일종의 정갈한 형식의 문장을 최고로 치는 것으로 정조는 새로운 사상과 문물을 받아들이는 혁신적인 왕이었음에도 문체에 있어서는 고지식한 면을 유지했던 것 같다. 당대 최고의 문인으로 손꼽히는 연암 박지원의 문체도 비속하다고 여겼으니 더 말해 무엇하랴..과거시험을 통해서 문체가 비속하다는 수치를 당한 이옥은 문체를 바꾸는 대신 자신의 문장을 지속적으로 사용했다고 한다. 그것은 정조의 문체반정에 대한 반기이기도 하지만 자신의 문체에 대한 소신을 가지고 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의 문체를 평한다는 것이 얼마나 주관적인지 알기에 문체의 비속함으로 낙인 찍혀 출세는 커녕 순탄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는 점이 씁쓸하다. 소개되는 12명의 인물 가운데 도특한 인물이 여럿있다. 유교를 내세운 조선에서는 충효는 물론 남녀간의 구분도 명확했다. 그 가운데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면서 글을 쓰는 이가 있었으니 바로 심노승이라는 인물이다. 그의 글은 당시의 시대상에서는 납득되기 어려운 것이었다. 남자가 죽은 부인을 그리워하고 쓰는 글마다 그런 그리움만 담겼다면 포부없는 대장부라 여겨졌음은 너무도 자명하기 때문이다. 그가 과연 이렇게 글을 쓸 수 있었던 힘은 무엇일까? 부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은 남들의 눈도 성리학에도 구속되지 않았는가 보다. 유일무이한 작품군을 형성한 인물이라고도 하겠다. 또 한 명의 특이한 인물이 있으니 손자를 육아하면서 그 과정을 세밀하게 기술한 이문건이라는 인물이다. 어머니도 아니고 아버지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손자를 키우면서 커가는 과정과 키우면서의 어려움과 서운함까지 모두 담고 있다니..자식을 키울때는 바삐 일하면서 그 소중함을 모르다가 느즈막히 나이가 들어 손자를 얻게 되면 그제야 어린 아이가 크는 즐거움과 신기함을 느끼게 된다고 한다. 그래서 부모님에게 첫손주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특별한 존재가 된다는 말은 들었다. 이문건에게도 그랬을까 ?그래도 그런 손자 육아책을 써낼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기에 참으로 독특한 인물로 여겨진다. 옳고 그름을 떠나서 자신의 소신으로 일관했던 사람을 보면 천주교가 조선에 유입되는 것을 결단코 막고자 혼혈을 기울였던 김치진, 의리 하나만을 가지고 남인의 중심으로 온갖 비난을 받고 광해군의 모든 책임을 짊어졌던 정인홍이라는 인물도 인상적이다. 이 둘의 행동이 옳고 그름을 떠나서 철새처럼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자리를 옮기는 정치인들에게는 소신있게 사는 삶으로는 자극제가 되지 않을까 싶다. 이 외에도 절친한 친구의 죽음 때문에 평생 벼슬을 멀리한 연암 박지원, 어머니를 위해서 유배지에서도 어머니를 위로하는 글을 쓴 효심의 사나이 김만중, 스승의 죽음때문에 벼슬에서 물러서 소쇄원을 짓고 평생 은둔하면서 살았던 양산보, 개화도 척사도 아닌 중립적인 입장에서 자신의 주장을 펼쳤던 이건창, 경세만을 위해서 살았던 김병욱...모두 역사의 주류는 아니었지만 소신있게 자신의 삶을 살다간 인물들임에는 틀림없다. 소신과 의리가 부재하는 현실에서 이런 인물들의 삶을 보면서 많은 생각을 갖게 한다. 역사는 항상 승리자와 강자의 입장에서 기술되지만 그 이면에는 그러한 역사의 흐름이 형성 지속되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목소리가 있었음을 말이다. 자신의 이익을 쫓아 너무도 쉽게 변하는 사람들이 많은 지금은 비주류이더라도 이렇게 소신있게 사는 사람들을 너무도 필요로 하는 때가 아닌가 생각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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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를 살아가며 사람들은 여러가지 모양으로 구분짓고 집단을 가른다. 그러다 보니 다수파와 소수파가 생기고 주류와 비주류로 나뉘고 권력을 가진 자들과 그렇지 못한 자들로 구분지어진다. 다수에 속하는 자들은 권력을 장악하지 못하고 주류가 못되더라도 상대적인 박탈감이 적어 그속성을 유지하기 쉽고 소수라도 주류의 문화를 주도하고 권력을 소유하면 자신이 소수라 하더라도 그것을 더 큰 자랑으로 여긴다. 하지만 소수에 비주류이면서 권력조차도 소유하지 못하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는 그것을 유지하기에는 많은 사회적 유혹과 물리적 정신적 공격에 그 소신을 유지하기가 쉽지 않다. 목숨과 세상의 명예를 포기하면서도 자신의 소신을 꿋꿋이 지켜 후세에라도 그가치를 인정받는다면 좋지만 후세에 오히려 시대의 흐름에 거역하거나 어이없는 망상에 사로잡혔다는 평가를 받으며 조롱거리가 될 경우도 있을 터이니 자신에 대한 믿음과 신념이 굳건하지 못하면 쉽지 않은 결정일 것이다. 이책에서는 조선 중기 이후 기존의 사대부들이 가지는 사상이나 이념과는 달리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목숨과 명예를 걸고 살았던 이들을 소개하고 있다. 물론 12명의 인물들 중 굳이 이들을 아웃사이더로 분류하기에는 무리가 있는 인물들도 있다. 친구를 위해 과거를 포기한 박지원이나 어머니를 위해 당시의 양반으로 선 쉽지 않은 한글 소설을 쓴 김만중, 의리와 실천이라는 소신을 지키다 역사에 폭군을 보좌한 간신의 한명이라는 오명을 쓰게되는 정인홍의 경우 자신의 소신을 가지고 세상의 비판이나 고언을 이겨내고 유혹을 이겨내고 오명을 각오하고서도 자신의 판단을 밀어 붙였더라도 아웃사이더라는 이름을 붙이기엔 어색하다. 또한 뛰어난 학문을 가졌지만 일평생을 오로지 청에 대한 복수의 일념으로 북벌을 꿈꿨던 윤휴나 자신의 목숨과 재산을 바쳐 천주교에 맞섰던 김치진과 같은 이들은 아웃사이더라고 부른다 하더라도 세상의 시류와 당시의 상황에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거스르려고 했던 인물들로 비춰진다. 물론 세상과 역사의 흐름이 모두 옳았다고 할 수 없고 그들이 지키고자 했던 절의와 신념이 무가치 한 것은 아니지만 지금과 같은 시절에 결과만 놓고 봤을 때 그 의미가 퇴색돼 버렸다고 할 수 있다. 계몽군주에서 문체반정과 같은 모습을 통해 전제군주의 길로 가는 정조에게 온갖 탄압과 고난을 받으면서도 자신의 문체를 지켰던 이옥이나 죽은 아내를 위한 사랑을 노래하는 심노숭, 세상이 인정하지 않는 자신의 글을 한탄하며 최고의 문인임을 자랑하는 이언진 등 지금도 그들에 대한 평가가 어려운 많은 이들이 하나의 사상과 국가만을 위해 유지되어 지던 조선 후기 집권층들의 관념과 새로운 사상과 외부의 자극에 새로운 문화와 질서가 탄생하는 혼란의 시기에 그것이 옳든 그르든 자신의 소신을 지키기 위해 노력한 선비들의 모습은 훗날 그들이 조롱거리가 된다고 하더라도 햇볕과 권력만을 위해 부평초처럼 떠 다니는 요즘의 정치가나 주류라고 목에 힘을 주는 이들의 모습에 비춰보면 훨씬 가치있어 보인다. 근래들어 우리 역사를 다루는 책들이 민족의 자존감을 위해 고대사의 찬란한 정복역사에 촛점을 맞추기도 하지만 우리가 잘 살피지 못해 뭍혀있던 작고 가벼워 보이지만 많은 것을 생각케 하는 주제를 다룬 책들도 많아졌다. 이모든 노력들이 우리역사를 통해 독자들의 삶과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를 넓고 풍성하게 해 주는 노력이라 반갑게 느껴졌다. 다만 이런 시류에 편승해 무리한 구분짓기와 상업적인 모습은 경계돼야 하지 않을까 싶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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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보고있으면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모든 사람이 '예' 할 때 혼자서 '아니오' 할 수 있는 사람, 모든 사람이 '아니오' 할 때 혼자서 '예'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한 TV광고가 생각난다. 물론 이런 사람들은 그렇게 말한 대가로 왕따(?)를 당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책은 제목부터가 심상치 않았다. 제목을 먼저 딱! 봤을때 "아웃사이더??? 조선에도 그런 사람이 있었단 말이야?" 라고 생각을 했다. 내가 생각하는 조선은 성리학의 배경에서 어떤 사람이 일을 하나 추진하면 나머지 사람들은 졸졸졸 따라가는 그런 모습을 이때까지 생각했었다(물론 편견이었지만..) 그런데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은 당당히 '소신'을 지켜가면서 해낸 사람들이 조선에도 있었단 말이야?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라서 상당히 관심이 갔었다. 그리고 원래 사람들이란 모두가 예 할떄 아니오라고 말하는 튀는(?) 사람들에게 더욱 관심이 가는 법이다.
이 책을 한장한장 넘기면서 내가 알지 못했던 역사 인물들을 만날수 있어서 신선했었다. 한분을 소개하자면 자기 아들이 죽자 그 손자인 수봉이를 대신 길렀던 이문건. 이분은 정말정말 대단했다. 손자인 수봉이를 위해 그 시대에 육아일기 까지 다 쓰다니. 나로서는 그 시대에 육아일기가 있을줄은 상상도 못한 일이었다. 물론 아들이 죽자 아들에게 주지 못했던 모든 기대와 사랑을 손자인 수봉이에게 너무 과하게 주어서 수봉이가 약간의 반항(?)을 해서 그분의 마음을 많이 아프게는 했지만...!! 역시 이분.. 조선의 '아웃사이더' 다우셨다.
그리고 두번째로는 <구운몽-김만중>에 대한 이야기이다. 이제 고등학교를 졸업할 나이인 나에게 이 <구운몽>소설이 아니 반가울수가 없다. 고1, 고2, 고3 문학시간에는 항상 구운몽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구운몽이라는 소설이 자기 어머니를 위한 소설이었는지는 정말 몰랐었다. 김만중의 아웃사이더를 읽었을때는 그 글 하나하나에 어머니에 대한 생각으로 효심스러운 아들을 엿볼수 있었다. 그리고 나는 이때까지 구운몽의 소설이 한글소설로만 알고있었는데 이 책에는 [구운몽이 정말로 한글로 지어졌을까?]라는 의문이 제기되어 나의 상상력을 더욱 자극시켜 주는 계기가 되었다.
나는 이 책을 다 읽고 곰곰히 생각해보았다. 만약 이 아웃사이더 12분이 다른 시대에 살지않고 다 똑같은 시기에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나는 가끔 사극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많이 해왔다. 예를들어 허준이랑, 상도랑, 장금이랑, 이산이랑, 주몽이 등등... TV에 방영했던 사극드라마 주인공들이 다른 시대에 살지않고 똑같은 시대에 사는.. 다소 엉뚱한(?) 상상을 한적이 있었다. 그것처럼 이 12분도 같은 시기에 살았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이런 '아웃사이더'같은 생각을 하면서 나는 이 특별한 12남자에게 자신의 신념과 함께 소신을 지키려 했던 행동에 박수를 주려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