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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대와 20대엔 그랬다. 달달하고 가슴이 말랑말랑해지는, 사랑과 이별의 시가 내 곁에 있었다. 세상의 모든 사랑이 그곳에 있었고, 세상의 모든 이별이 시 안에 있었기에 다양한 시들을 인용하며 울고 웃었다. 하지만 사랑이 완성되었다는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나는 시와 멀어졌다. 시를 읽지 않는다고 해서 내 삶이 달라지지 않고, 시를 읽는다고 해서 내 마음이 풍요로워지는 것은 아니니까. 그나마 공감할 수 있는 사랑시를 읽으면 마음이 편안할 수 있다. 하지만 사랑시도 읽지 않는 내가 갑자기 뜬금없이 세상을 향해 다양한 소리를 내는 시를 접하는 건 쉽지 않다. 오늘 하루 편안하면 그만이고, 오늘 하루 내 삶이 타인에 의해 무시되지 않으면 그만 아닌가? 근데 왜 시를 읽으며 마음이 불편해야 하고, 두려움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이승하의 시는 그렇다. 읽는 동안 결코 편안하지 않다. 고구마를 먹은 듯 목구멍이 콱 막히고 답답하다. 아름답고 평화로운 세상만 보고 살아도 힘든 이 세상을, 왜 글로, 글자로 불편함을 감수해야 하는 것일까? 결코 쉽지 않은 시를 읽으며 왜 껄끄러움을 느껴야 하는 것일까? 예전의 나였다면 이런 것을 감수하지 않는 쪽을 택했을 것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생각했을 테니까. 하지만 생각한다. 적어도 내 아이들이 살아가야 할 세상이 지금보다는 나았으면 좋겠다는. 내가 이런 시를 읽는다고 세상이 좋아지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아이들에게 말하고 싶다. 당연하게 받아들인 세상의 체계나 현상에 침묵하지 말고 끊임없이 “왜”라는 의문을 품어야 한다고. 세상엔 당연한 것이 없고, 당연하기 위해 겪게 되는 숨은 노력이 있다는 사실을 아이들도 알면 좋겠다.
이 시집은 『폭력과 광기의 나날』, 『공포와 전율의 나날』에 이은 광기 3부작의 마침표다. 시인이 30여 년 동안 맺어온 정신병원과의 인연, 교화 사업 강사로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을 다니며 나온 결과물이다. 시집 1부는 무기수와 사형수에 관한 시로 이 사회의 모순이 어떻게 수인의 모습으로 나타나는가를 보여준다. 2부는 누이에 대한 시들이다. 폐쇄된 병동에서 청춘을 보낸 누이의 모습은 시를 읽는 이로 하여금 슬픔을 자아낸다.
1997년 12월 30일 그들은 그의 머리에 큰 헝겊주머니를 씌웠다. 그들은 흰 휘장을 열고 그를 작은 방 마루에 앉혔다 천장에 달려 내려 온 올가미를 그의 목에다 조심해서 걸었다 휘장을 닫았다 저편 벽 밖에서 누가 동그랗게 생긴 것을 눌렀다 마루가 덜 커덕, 아래로 젖혀졌다 그는 툭 떨어져 공중에 매달렸다 그 들은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워 물었다 10분이 지나 희 가운 을 입은 이가 청진기를 들고 작은 방으로 들어갔다
그날 23명이 죽었다
인간의 법이 생명을 추구하고 있다 들판의 풀처럼 자신의 의지에 의해 태어나지 않은 이 세상 모든 목마른 목숨들
한 순간 인간이 미쳐 피비린내를 맡을 수도 있을 것이다 파리한 파리..... 파리 목숨
사형을 선고한다 오래오래 인간의 목숨을 빼앗고 싶어 완전범죄에 골몰하는 우리 밖의 우리
우리나라는 1997년 12월 30일 이후 사형 집행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사형을 집행하는 게 맞는 것인지, 아닌지에 대해서는 끊임없는 논란이 있지만 사형 또한 또 다른 살인이라는 것이 무섭다. 시를 읽으며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가 모르는 상황에서도 다양한 감시와 폭력에 노출되어 있노라고. 모든 시를 꼭꼭 씹어 먹을 수 없고, 모든 시를 해석하는 건 쉽지 않지만 느낌으로 읽어도 괜찮다고. 아직은 갈 길이 먼 시집이다. 그래도 나는 읽는다. 내가 지금 느끼는 이 느낌 그대로를 믿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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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 블로거님의 글을 읽고 구매한 시집이다. 각종 사연으로 죄값을 치르기 위해 감옥에 갖힌 죄수들의 입장에서 쓴 시가 1부이고, 정신과 치료를 위해 입원한 누이를 위해 안타깝게 바라보며 쓴 시가 2부이다. 제목은 미셀푸코의 [감시와 처벌]에서 따왔는데, 어차피 감옥 안이나 감옥 바깥이나 사람들이 사회생활을 하는 순간부터 완벽한 자유란 없는 것 같다. 감옥 바깥에서 사는 사람들은 일시적인 자유, 혹은 작은 자유를 누리는 것일뿐이다. 인간은 판옵티콘의 체제속에 살고 있는 한, 권력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푸코의 말이 점점 더 실감이 나는 시대가 되었다. 각종 매체와 기기의 발달로 개인 정보는 대충 어느 정도 유출이 된 상태이고, 몰래 해킹한 개인정보 뭉치들이 여기저기서 돈으로 거래되는 세상이고, 왠만한 정보는 서로서로 공유한다는 게 하나도 이상하지 않은 시대가 되었다. CCTV가 곳곳에서 찍고 있고, 하늘에서는 인공위성이 보고 있고, 버스나 택시를 탈 때도 카드로 찍고, 음식을 먹든지, 물건을 사든지 모두 카드로 결제한다. 카드 사용내역만 추적하면 카드사용자의 일상은 모두 저절로 알 수 있는 세상이다. 감시의 나날 속에 살고 있는 현대인들, 감옥 속에 살고 있는 죄수들, 정신병원에 갇혀 사는 마음이 아픈 사람들...
시 속에서는 감옥 안에서의 답답하고 힘든 나날들을 그리고 있고, 정신병원에서는 미치지 않았어도 미칠 것 같은 나날들을 그리고 있다.
별유천지비인간
때 되어 밥 주면 밥을 먹고 때 되어 약 주면 약을 먹고 한없이 선량해진 누이 아무 것도 갈망하지 않으니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니 네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병동은 천국인가 비인간(非人間)들의 별유천지(別有天地)인가 병동 바깥 저 비좁은 지상은 지옥인가 굶주린 야수들의 숲인가 무인도 같은 표정으로 유인원 같은 낯을 들고 아, 매일 보아도 낯선 얼굴 얼굴들, 저 가면들
"아픈 데는 없니?" 고개를 끄덕끄덕 아무렴 아프지 않겠지 아픈 데가 없어 너는 산 주검인 동시에 죽은 생령(生靈)이니 확인하러 다시 오마 누이야 지금부터 한 달 뒤가 종말의 날 이후가 아니라면
별유천지비인간(別有天地非人間)은 이백의 시에 나오는 신선의 세계를 일컬음인데, 이 시에서는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을 인간이 아닌 야수라고 표현했다. 신선이나 야수나 인간이 아니긴 마찬가지이지만 그 차원은 완전 다르다. 선계의 비인간과 지옥계의 비인간... 인간적이지 못함을, 아픈데도 없는, 아니 아픈 것도 모르는, "산 주검인 동시에 죽은 생령(生靈)"이라고 한 것은 딱 맞는 표현인것 같다. 한 달 뒤에도 종말이 오지 않는다면 다시 오겠다는 오빠의 말이 가슴 아프다.
이승하 시인은 [폭력과 광기의 나날], [전율과 공포의 나날]에 이어서 이 시집을 냄으로써 광기 3부작을 완성하였다. 갇힌 자들, 소외된 자들, 버려진 자들의 분노,증오, 상처, 포기, 탄식 등을 생생한 언어와 벼려지지 않은 원시의 언어 그대로 표출함으로써 그 판단을 고스란히 독자의 몫으로 남겼다.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기도 싫어하고, 보기도 싫어하며, 자신들과는 전혀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감옥과 정신병원의 나날들... 어쩌면 지인 몇 사람만 건너면 상관이 있을 수도 있는 사람들의 나날들... 죄수인 사람들의 인권도 지켜줘야 하냐고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도 있지만,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고 했던 말처럼, 약자의 최일선에 있는 사람들의 기본권을 지켜주기 위한 시인의 절절한 마음이 가슴으로 와닿는 아픈 시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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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뒷마당에 저혼자 피어 있는 해바라기꽃과 함께)
제목이 인상적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소수의 권위자에 의해 늘 이런 세월을 보낸 것 같다. 자신있게 자유롭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거미줄에 걸린 불쌍한 파리처럼 우리는 늘 감시당하고 있다. 혼자일 때라도 그동안 교육 받은 사회적 양심에 감시받고 있다. 자유란 구름처럼 허망해 보인다.
미셜 푸코의 책 제목을 따 시집의 제목으로 정한 이 책은 2부로 나뉘어져있다. 1부는 시인이 봉사활동 다닌 교도소와 구치소, 소년원에서 보고 들은 것을 시로 썼다. 2부는 제망매가다. 30년동안 신경정신과병원에 입원한 누이를 면회하면서 그 안에 갇혀있는 모든 누이들을 위해 쓴 시다.
시인이 다녔던 장소는 폐쇄적이다. 인위적으로 갇혀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시로 남겼다.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을 것 같은 그들의 삶을 기억해주고 싶은 것이 시인의 마음이다. 시인이 만난 사람들은 우리가 사는 세상에서 격리조치를 받은 반항아들. 이들은 사람들이 사는 세상을 벗어나 담 안으로 들어갔다. 그들의 이야기를 시인이 보이는대로 들리는 대로 받아썼다.
우리나라는 지난 20년 동안 사형집행이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사형수들은 존재한다. 감형 된다고 해도 무기수. 담을 벗어날 확률은 지극히 적다. 시인은 교화활동을 하면서 만난 많은 재소자들을 통해 아무도 기억해주지 않았던 이들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일곱개의 철문을 지나야만 나올 수 있는 깊숙한 곳에 사는 사람들의 사연은 철문의 수 만큼이나 깊을 것이다. 안에 있는 사람들이 바라는 것은 우리의 일상에서 가장 소박한 행동, 가령 전화해서 배달시켜먹는 음식, 스스로 끓이는 라면, 짧은 산책들. 시인은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일상조차 어떤 이에게는 가장 큰 소원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라고 한다.
부디 억울한 사람이 갇혀지내는 일이 없었으면. 하지만 사람이 하는 일이 늘 그렇듯이 언어가 통하지 않아서 오랜 세월동안 정신병원에 갇혀지내야했던 찬드라 구릉의 이야기는 가슴아프다.
한 시인에 의해 담 밖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신들을 기억하고 있다는 사실을 안다면 그들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까. 위로가 된다면 교화되는 걸까. 아무 것도 모르면서 시인의 시를 통해 담 안에 있는 이들의 짧은 머리카락과 푸른 수감자옷을 떠올려본다. 그리고 그들에게도 있을 가족들과 어린 시절, 친구들 같은 평범한 것들. 죄를 만든 이 세상의 불합리함 같은 것들.
2부는 여동생을 면회하기 위해 다녔던 폐쇄병동 이야기다. 그곳에는 바깥에서 비정상이라는 판정을 받은 사람들이 모여 산다. 그들은 '입원과 퇴원'을 반복하면서도 자신이 왜 그곳에서 지내야하는지를 모르는 천진한 사람들이다. 그들이 말하는 바깥에 사는 사람들에게 벽 안 쪽에도 우리들과 똑같은 사람들이 우리들과 같은 밥을 먹고 잠을 자며 살아가고 있음을 기억하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시인이 보는 그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세상의 슬픔을 다른 사람에 비해 더 많이 먹는 사람들이다. 세상의 고통을 더 무겁게 지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래서 그들의 슬픔과 고통을 스쳐지나지 말아달라고, 기억하라고 소리친다. 시를 통해.
심해의 물고기들 스스로 빛을 낸다 빛을 내어 길을 찾고 먹이를 찾고 짝을 찾고 적을 피한다 완벽하게 어두운 세상에서 엄청난 압력을 견디면서 살아간다 물고기처럼 띄엄띄엄 외따로 떨어져 외로움을 못 견뎌 발광하는 수많은 사람들 빛을 만들며 살아가는 골병든 우리
-심해에서 발광하다, 부분-
도저히 어떻게 할 수가 없어 미쳐버린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인 혼들이 썩어가는 늪지 같은 요양원에 가보신 적이 있습니까? 춤을 대신한 구타 노래를 대신한 고함 어머니를 대신한 알약의 세상 그런 세상에서 이끼처럼 음습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춤과 노래와 어머니는커녕 빛도 소금도 바람도 없는 곳에서 읽히는 시가 있다면 한밤중에라도 큰소리로 읽어 들리리다 E-mail로 지금 바로 전송해 드리리다
흡사 위문편지처럼 그들에게 읽힐 시를 쓰는 시인을 찾아서 천 리 길 마다않고 저는 이 순간부터 걸어가야 하는 것입니다 가는 도중에 병이 날지언정 꽁꽁 얼어붙은 혼들을 하나씩 지필 불씨 같은 시인을 만나기 위하여
-시인을 만나기 위하여, 전문-
시집 전체에는 벽안에 갇힌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져있다. 우리가 잊어버린 사람들, 하지만 우리와 같은 사람들이기에 누구든지 기억해야 하고, 시인은 그 일에 자신이 적합한 것을 알아서 오랫동안 그들의 이야기를 가슴에 모아서 시집으로 펴냈다.
모두들 자기만의 목적을 갖고, 자기만의 방식으로 글을 쓰고 있다. 내가 이 시집으로 처음 만나본 시인은 기억하기 위해 시를 쓰고 있는 듯 했다. 우리가 세상에 살아가는 이유는 누군가의 기억에 아름답게 남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는 이 시집은 아름답고 눈물겨웠다. 좋은 시집을 읽게 해주신 세나님(mind3na),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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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하 시인의 시를 읽고 있다 보면 가슴이 저린다. 아픔이 가득한, 절규하는 시적아자의 마음 움직임이 내 마음을 떨게 한다. 왜 이리 극단적인 언어들이 그의 언어가 되어야 하는가? 작품 속에는 벽 속에 살고 있는 이야기가 많다. 그들의 아픔이 많이 그려진다. 그가 그리는 사람들 중에 더러는 억울한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세상이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저자는 감싸 안고 있다. 왜 그는 작품 속에 나오는 이들의 대변자가 되고 있는가? 그들을 위해 가슴앓이를 하고 있는가?
저자의 길이 못내 궁금하기까지 하다. 그 쪽에서 아픈 기억을 가지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밀려온다. 누이의 기억들이 아린 마음이 되었으리라. 말 못할 사정으로 벽 속으로 들어간 벗들의 마음이 이입되었으리라. 사형수들이 빚어내는 그 빛깔을 그는 토로해 낸다. 그 빛깔은 적갈색의 무게를 가지고 있다. 그것이 흰색으로 변할 때 저자는 자신의 몫을 다했다는 느낌이리라. 그들이 처한 무게의 현실이 시적자아의 언어 위에 넝쿨이 되어 채색되고 있음을 본다.
멀쩡한 두 다리로 혼자 거닐면 징벌을 받는다 “독보가 금지되어 있는 것을 모르는가?” 사방에 철창과 철문, 담장 위에는 가시철망 망루에는 조명탑, 곳곳에 CCTV 자유는 무덤으로 갔고, 시간은 박제되어 있다
죄를 지었으니 벌을 받아야 한다면 저 담벼락 바깥에 있는 사람들 모두 여기 들어와 있어야 하리 안이나 밖이나 감금과 감시의 나날 예나 지금이나 무전유죄의 나날 (단체 행동을 해야 합니다 中에서)
세상이 자조적으로 그려져 있다. 그 자조 속에는 아픈 현실이 나타난다. 죄수가 되어 감금과 감시의 나날을 살고 있는 자들의 무게가 그려진다. 하지만 그들의 죄가 밖에 있는 자들의 죄와 별로 다르지 않다고 한다. 돈과 힘이 담을 가르는 기준이 되고 있는 현실, 그 절망의 자리를 그는 말한다. ‘무전유죄의 나날’이라고. 하여 시간은 머물러 있고 자유가 사라진 공간에서 그들은 머물러 있다고.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 먹고 음식값을 다 내지 못했다는 죄 하느님이 벌을 내릴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식당주인의 신고로 죄인이 된다. (감금과 감시 中에서)
벽 속에 있는 사람의 경우를 구체적으로 한 편 보여준다. 장발장과 같은 이들이 벽 속에 들어가 있으면서 세상에 격리되고 있다고 말한다. 하나의 예이겠지만 세상이 얼마나 가진 자들의 횡포가 심한가를 말한다. 자유와 평등이 사라진 세상에 대한 조소 담은 시적자아의 시선을 만나다. 이러한 시선이 세상을 깨끗하게 하는데 조금의 도움이 될까? 생각해 보는 마음에 그리 빛이 비치지 않음을 느낀다.
힘없는 부녀자 일곱 명을 그대는 왜? 별다른 원한관계가 없는 사람을 왜? 평소에 주변 사람들에게 그렇게 친절했다면서 왜?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 사람은 사람을 살려 왔다 깊이 병든 사람일지라도
병든 혼들이 떠돌아다니고 있는 이 사바세계에서 그대와 나 얼마나 악업을 쌓고 있는가 (사람이 어떻게 사람을, 사람은 얼마든지 사람을 中에서- 사형수에게-
저자가 많은 지면을 할애하고 있는 사람들의 마음이다. 그들에 대한 물음이고, 세상에 대한 물음이다. 왜 그리 살인이라는 극단의 일들이 생겨났는가? 살리는 것이 인간의 주된 일인데, 왜 죽이는 일을 서슴지 않았는가? 인간들이 얼마나 죄를 더 지어야 하는가? 그들의 마음을 헤아려 보면서 그들의 아픔에 마음을 주고 있는 저자를 본다. 각박해져 가는 세상을 바라보고 있다.
내 사랑 내 자랑아 꿈꾸어 보렴. 어린 시절 우리는 세상의 주인이었다. 우리를 위해 떠오르는 아침 해와 지는 저녁노을 우리를 위해 웃는 꽃들과 우는 풀벌레들 세상은 그때, 폭소 속에서도 눈물겨웠다. (누이의 초상2 中에서)
어린 시절 누이의 고왔던 기억을 떠올리고 있다. 이것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담은 근원이 되지 않을까 여겨진다. 이 마음에서 출발한 긍정의 노래가 참으로 눈부시게 다가온다. 맑고 깨끗하다. 세상의 주인이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시적자아를 위해 존재하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것이 세상을 통해 아픔으로 드러난다.
울고 있구나 누이. 벽 속에서 사는 내 누이야//누가 너의 몸을 더듬은 것이냐/아무도 가보지 않은 처녀림을 누가 벌목한 것이냐//희디흰 벽 속에 사는 누이야/너는 바깥을 향해 울며 외친다/저 좀 살려주세요, 저 좀 구해주세요/너의 외침에 귀 기울이는 이 하나 없는 세상 (울지 말아라 내 누이야 中에서)
누이의 벽 속에 갇힘은 시적자아의 고통이요, 절망의 시간이었을 듯하다. 그렇게 만들어간 세상에 대해서도 분노의 목소리가 있다. 차가운, 견딜 수 없는 공간에 있는 갇힌 자의 마음을 헤아려 보는 일은 다름 아닌 절규다. 이 절규의 가장자리에서 모든 갇힌 자들에 대한 사랑이 잉태 되지 않았나 생각되어 진다. 구속된 자의 감시, 그리고 그 결과에 다한 책임을 묻고 있는 일들을 직시하고 있는 시적자아의 목소리를 우리는 듣는다.
세상의 갑질에 대한 아픔을 벽 속에 있는 사람들을 통해 세상에 들려준다. 저자는 벽이라는 공간을 상극의 것들을 갈라놓는 것으로 인식하면서 그 상극이 별로 다르지 않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세상에 부끄러움이 많은 자들을 질타하고 있다. 독자의 한 사람으로 그의 아픔에 동질성을 느끼지는 못하지만, 언어를 통해 아픔만은 뼈저리게 다가오는 것을 바라보고 있다. 읽는 내내 마음이 무겁다. 읽고 나서 가슴에 먹먹하다. 대상이 되는 분들은 얼마나 저린 가슴일까 생각하니, 머리가 하얘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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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의 가족 이야기가 있다. 누이동생인가 그렇다. 지하실에서 안 좋은 일을 당해 정신이 이상해진 듯 하다. 거식증에 걸리고 정신병원에 가게 된다. 그 순수한 누이동생의 추억이 가슴에서 저려온다. 소설 채식주의자가 떠오른다. 꼭 그 주인공에 관한 이야기인 듯 하다. 먼저 가게 된 누이동생에 대해 안타까움이 남고 또 그리워함이 시 속에 머문다.
지하실에서 그런 일이 없었더라면 누이동생은 아직도 기분 좋게 웃고 현재에 머물러 시인의 가족들과 함께 만날 수 있었을텐데 싶다. 누구에게나 가슴 아픈 추억과 과거. 잊혀지지 않고 어떻게 해야 슬픔이 풀릴까 싶은데 시 속에서 절절함이 보인다. 누이동생도 평범한 어린 시절이 있었을텐데 싶다. 시인도 어떻게 막을 수 없었다는 게 참.
봄과 가을과 계절, 그리고 사랑을 노래한 시집이 아니라 우울하고 또 감옥에 갇힌 죄수들과 죄가 없는 외국인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다 실제 있었던 일을 노래한 것이다. 노래는 못 부르지만 시로서 많은 이들에게 알리고자 썼나보다. 죄가 없는 외국인, 말이 안 통해서 정신 병원에 갇힌 사람. 감옥에도 죄가 없는 사람들이 있겠지. 어떻게 살까? 그리고 죄를 지은 사람들. 과연 감옥에서 죗값을 치루고 있는 것인가. 사죄하고 매일 용서를 빌면 그들은 구원을 받을까? 모든 죄인들이 그 안에서 용서를 빌고 있을까. 도덕적인 정신이 해이한 죄수들. 그들은 어떻게 다뤄야 하나. 남만 탓하고 가족만 탓하는 죄인들. 그들은 왜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일까. 나름 그들도 한 부모의 사랑받는 자녀였을텐데. 문제 있는 죄인은 그렇게 다 학대를 받았을까 궁금하다. 이 책을 보고 나서 '나는 가해자의 어머니입니다.'라는 미국인이 쓴 책을 읽고 싶어졌다. 죄인들은 태어날 때부터 나쁜 짓을 한 것은 아닐텐데 대체 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아무도 관심갖지 않을 법한 죄인들과 감옥들, 그리고 정신병원에 갇힌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 시로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런 사람들에 대한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그리고 온통 하얗다면 그렇게 깨끗한 이미지보다 미칠 것 같은 공포 속에 사로잡힐 수 있다는 것도 느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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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천문화사에서 나오는 시집들은 대부분 쉬운 시는 아니었다. 하지만 시에 대해서 어느 정도 경지에 올라와 있거나 시에 대해서 공부를 해보겠다고 생각한 사람은 실천문화사에서 나온 시집들을 한두 권 정도는 읽는 것이 좋다고 본다. 이번에 이승하 작가의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이라는 왠지 모르게 두려운 시집을 읽게 되었다. 시의 제목을 보고 두려운 생각을 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닌가 싶다. 감시, 처벌 이라는 단어가 주는 말의 뉘앙스 때문일 것이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조선말기 일제에 의해서 강제 점거당하는 역사적 진실의 시간을 거쳐 몇 번의 혁명과 민주항쟁, 시위를 거쳐 민주화 시대에 도착을 한 나라이다. 일제치하에서는 일본경찰에 의해 감시와 처벌을 받아왔다. 그 후에도 일제가 아닌 같은 동포에 의해서도 감시와 처벌을 받아왔고, 알게 모르게 우리는 지금도 감시를 받으면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단어가 조합된 시집의 제목을 보고 누구라도 나와 같은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싶다. 이러한 시를 만들어 낸(?) 시인은 과연 누구일까? 궁금했다. 그의 이름은 이승하. 그 전에도 시를 좋아해서 많은 시집을 구입해서 읽었는데 처음 듣는 이름 같기도 하고 한 번쯤은 그의 이름이 실린 시집을 읽은 것 같기도 하다. 특히, 『폭력과 광기의 나날』이라는 제목은 낯설지가 않았다. 하지만 읽어본 적이 없다. 한 번 읽은 시집은 꼭 흔적을 남기곤 하는데 찾을 수가 없다. 이름과 시집이 낯설지 않은 걸로만 결론을 내려야 할 것 같다. 그의 시들을 차례차례 다 읽고 나서 제목만 목차에서 읽어봤다. 왠지 모르게 죽음이라는 단어와 밀접한 관계가 있는 그런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시 제목이 아니라 시 안의 구절 속에서도 ‘죽음’이라는 의미를 찾아낼 수 있었고,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어떤 공간이 나오면 그 공간에서는 ‘답답함’을 느낄 수 있었다. 벽 안쪽과 벽 바깥쪽을 구분 짓는 시에서도 구분에 따른 답답함과 단절에 따른 고독한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또 어떤 시에서는 세계 2차 전쟁 당시 생겼던 아우슈비츠를 통해 깊은 슬픔을 느낄 수 있었다. 대부분 희망보다는 절망과 슬픔, 고독을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내가 느낀 감정들이 이 시집에서 뿜어져 나오는 진짜 실체의 감정들인지는 잘 모르겠다. 시인의 책 속에 담긴 시들을 뱉어냈을 때의 감정이 맞는지 아닌지는 잘 모르지만 내가 느낀 건 모두 이야기했다. 「출소」 라는 시를 읽으면서 아, 그렇구나. 정말 그렇구나! 라는 말이 마음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런데 이 ‘출소’는 보통 우리가 생각하는 출소가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죽기 전에 유언처럼 말했다”라는 시의 구절도 그렇고, “입관식”, “수의”라는 단어를 사용한 점도 그러한 생각에 보태기를 한 셈이다. 왠지 죽음과 관련된 출소가 아닐까. 죽기 전에는 출소를 할 수 없는 어떤 사람이 사형을 당했거나, 아니면 자연사로 죽음을 맞이한 출소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죽음을 통한 출소를 통해 자신이 죽인 사람에게 사죄를 하고 싶어 하는 마음도 엿볼 수 있었다. “내가 죽인 사람이 저승에서 기다릴까요. 만나면 무슨 말로 용서를 빌어야 할까요” 이 구절을 통해서 ‘후회’라는 감정도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아가 이 죄인이 왠지 모르게 종교에 귀의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상상이지만. 종교에 귀의하면서 자신의 행동을 후회하고 후회하는 모습을 나는 이 시에서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이 시집 안에 있는 시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라고 하면 할 수 있다. 하지만 몇 편만 추려서 이야기해볼까 한다. 다 이야기하면 왠지 스포일러가 되는 것 같아서… - 이것도 범죄가 되는 거 아닐까? - , 스포일러는 되고 싶지 않네요. 「 감금와 감시」라는 시를 통해서 우리의 현실을 보는 것 같았다. 이 시에서 말하는 존재란 과연 뭘까? 사람. 인간…, 일까? 아니면 그 외의 존재들. 또한, 음식 값 조차 내지 못해서 죄인이 되어버린 이 시대 하층민들의 삶을 볼 수 있었다. 마치 프랑스의 작가인 위고가 지은 소설 속 주인공인 장발장의 모습이 겹쳐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더 이 시가 처절하게 보이는 건 “분식집에서 라면 한 그릇을 먹고 / 음식 값을 다 내지 못했다는 죄”에 대해서 우리가 우러르고 받드는 신인 하느님조차 벌을 내려야 할지 고민을 하는 상황에서 인간이 신고를 통해 죄인을 만들어버리는 상황 때문이다. “하느님이 벌을 내릴까 말까 고민하던 사이 / 식당주인의 신고로 죄인이 된다” 이 시대는 어쩌면 하느님보다 인간이 더 우위에 서 있는 존재가 아닐까? 그래서 이 시의 첫 구절을 이렇게 시작했는지도 모르겠다. “존재가 존재를 감금한다” 하지만 그 다음 시 구절은 잘 이해가 안 된다. “존재는 존재를 변호 못 한다” - 왜 일까? 변호를 못한다는 뜻이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겠다. 감금은 할 수 있으되 변호는 못한다는 것은…. 이 시에는 한국의 현실도 만날 있다. 행색이 어려울 수 있는 어떤 이국에서 온 여인. 아마도 이 여인은 코리안 드림을 꿈꾸면서 왔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서의 현실은 녹록치가 않은 것이다. 그렇게 살아가는 중에 어떤 난처한 상황에 맞닥뜨리고 한국말을 못하는 이국의 여인으로서는 자국인에게 이야기하지만 통하지 않음으로써 죄인이 되어 감시를 당하고 마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자신의 고향은 에베레스트가 있는 가장 높은 하늘을 지닌 나라 네팔인데…, 사지가 멀쩡한데 왜? 자신이 감시를 당해야만 하는지 이 상황이 답답해하는 것 같다. 「탈옥수의 하루」를 읽으면서는 조금은 재미있는 상상을 해봤다. 이 시는 탈옥수가 그려내는 드라마의 초안이 아닐까? 이 초안에는 탈옥수의 심리묘사만이 표현이 되어 있지만 나중에 탈옥수 외의 인물들이 가미가 되면서 완벽한 드라마 한편이 탄생이 되는 건 아닐까. 만약 이 드라마의 탈옥수에 적당한 배우가 있다면 누구일까? 강동원, 아니면 이승기. 이민우도 있지, 또 누구를 거론할 수 있을까? 이 시는 이런 상상을 하면서 읽으면 좋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본다. 하지만 또 다른 방향으로 읽어보면 탈옥수로서의 가슴 졸임에서 오는 답답함, 후회의 감정을 느낄 수도 있을 것 같다. 만약 억울한 일로 죄인이 되었다면 누명을 벗기겠다는 결심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탈옥수에게 길이란 이런 느낌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세상의 모든 길은 지금, 차단되어 있다” 그리고 자신 외의 모든 구둣발 소리는 이렇게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세상의 구둣발 소리는 모두 / 미행하는 이의 구둣발 소리 같다고” 여기에서도 감시라는 단어가 떠오르는 건 시집의 제목 때문이겠지. 미행이라는 단어에서 내뿜는 이미지도 ‘감시’일 테니 말이다. 「CCTV 아래에서의 생」을 읽으면서 이 시 제목에 딱 맞는 시가 아닐까 생각을 해봤습니다. 그러면서 현대인의 삶이지요. 엘리베이터 한쪽 천장을 보면 있어요. CCTV가. 거리를 걸어도 CCTV가 있고요. 자동차가 다니는 도로에도 CCTV는 매달린 채 자동차를 노려보면서 흔적을 남기기도 합니다. CCTV가 매달리는 건 우리가 삶에 매달려 시간을 달리는 것과 같다고 봅니다. 힘든 삶이죠. 그러면서 늘 감시당하는 삶이기도 하고요. 아마도 CCTV를 보는 그 장소에도 한쪽 천장에는 CCTV가 달려있어서 CCTV를 감시하는 사람들을 또 감시할지도 몰라요. 그러고 보면 뫼비우스의 띠처럼 보이기도 하네요. CCTV뫼비우스의 띠. 그 안에 현대인들은 누군가에게 감시를 당하면서 살고 있다는…. 서글픈 현실 이야기네요.
시를 어떻게 읽느냐에 따라 시가 어렵기도 하고, 쉽게 느껴지기도 하는 것 같아요. 저 이 책 읽으면서 시는 다 읽었지만 마지막에 있는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읽다가 말았습니다. 해설을 읽어버리면 그나마 쉽게 느껴지던 이 시들이 왠지 낯설게 느껴지면서 서로가 어색해지고 어려워질까봐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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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노래하는 말 250 벽을 헐어 다리를 놓고 싶어 노래해요 ― 감시와 처벌의 나날 이승하 글 실천문학사 펴냄, 2016.5.16. 8000원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실천문학사,2016)을 읽습니다. 2016년에 나온 시집은 이름부터 “감시와 처벌” 이야기를 드러냅니다. 2010년대에서 2020년대로 흐르는 오늘날은 1960∼70년대처럼, 또는 1980∼90년대처럼 사람들을 무시무시하게 짓누르거나 다그치지는 않는다고 할 만합니다. 언뜻 보면 평화로우면서 민주가 흐르고 자유롭기도 한 사회라고 여길 수 있어요. 그렇지만 물대포에 맞아서 죽는 사람이 있으며, 삶터를 빼앗기면서 죽는 사람이 있고, 고단한 삶을 이기지 못해 죽는 사람이 있습니다. 벽 저쪽에 있는 자들의 울음을 / 벽 이쪽에 있는 우리는 / 들을 수 없다 (벽) 닭들이 철망 밖으로 고개를 내밀고 / 세상 궁금하다는 듯 두리번거리고 있다 / 층층이 실려 있는 수많은 닭 / 죽으러 가는 중인지도 모른 채 / 하늘 올려다보는 닭 땅 내려다보는 닭 / 옆 차선 내 얼굴도 보고 / 도리도리 까닥까닥 고갯짓이 재미있다 (아우슈비츠 행 열차) 시집 《감시와 처벌의 나날》을 쓴 이승하 님은 벽 저쪽하고 이쪽 이야기를 적습니다. 벽 저쪽에서 우는 이들이 있는데, 벽 이쪽에 있는 이들은 그 소리를 못 듣는다고 합니다. 이와 마찬가지가 될 텐데, 벽 이쪽에 있는 이들이 하는 말을 벽 저쪽에 있는 이들은 못 듣겠지요. 벽 저쪽에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사는가를 벽 이쪽에 있는 사람은 도무지 모를 테고요. 거꾸로 벽 이쪽에 사는 사람들이 짓는 살림을 벽 저쪽에 사는 사람들은 하나도 모를 만해요. 죽음으로 가는 줄 모르는 채 철망이 가득한 짐차에 실리면서 고개를 내밀며 바깥을 구경하는 닭이 참으로 많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철망이 가득한 짐차조차 타 보지 못한 채, 햇볕도 햇빛도 햇살도 한 번 누려 보지 못한 채 알만 낳다가 죽는 닭도 있어요. 알에서 깨어난 지 두어 달밖에 안 되지만 곧장 죽음으로 날아가서 사람들 밥상에 오르는 닭도 있지요. 아무도 구경 오지 않는 썰렁한 시화전 / 작품들 강당 한 구석에 어색하게 서 있다 / 어디로 갈까 어디에 처박혀 있다 어떻게 버려질까 // 그래도 꿈이 있구나 바리스타가 되고 쉐프가 되고 / 그래, 사랑하고 싶었고 사랑받고 싶었구나 (소년원에 가서 시화전을 보다) 닭장에 갇힌 채 죽는 줄도 모르고 죽는 닭하고,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우리들 삶은 얼마나 다르거나 같다고 할 만할까 하고 생각해 봅니다. 2020년대를 바라보는 오늘날 한국 사회는 참말로 ‘감시’가 없으며 ‘처벌’이 없다고 할 만한가 하고 돌아봅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는 그야말로 평화와 평등과 자유와 민주가 물결이 치는 아름다운 모습이라고 여길 만할까 궁금합니다. 시인은 묻고 또 묻습니다. 이러다가 시인은 그예 혼잣말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벽 저쪽하고 벽 이쪽이 서로 막혔기 때문이에요. 저쪽하고 이쪽 사이를 가로막는 벽이 아니라, 저쪽도 이쪽도 없이 서로 마음껏 오가거나 넘나들면서 어깨동무하는 다리가 놓이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혼잣말을 하듯이 시인 한 사람이 시를 적습니다. 사랑하고 싶은 아이들 꿈을 옮겨서 적습니다. 요리사도 되고 커피도 내려 보고 싶은 아이들 꿈을 듣고서 가만히 시 한 줄로 옮겨서 적습니다. 그리고 시인네 누이 이야기를 조용히 적습니다. 내 사랑 내 자랑아 돌아가보렴 / 어린 시절 우리는 만화가였다 / 재미있는 것뿐인 세상 / 구름을 보고 있으면 구름으로 변하는 세상/ 달을 보고 있으면 달을 따라 흘러가는 세상 / 세상은 그때, /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 (누이의 초상 2) 벽을 헐어 다리를 놓고 싶은 시인은 중앙대학교에서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일한다고 합니다. 이녁이 2016년에 선보인 시집은 2016년 가을에 천상병귀천문학대상을 받는다고 합니다. 눈물 속에서도 아름다웠다는 누이를 그리는 시 한 줄은 벽이 아닌 다리를 꿈꿉니다. 그지없이 착한 눈망울로 오늘도 밥 한 그릇을 고이 받는 누이를 바라보는 시 두 줄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는 숨결로 거듭날 수 있는 꿈길을 노래하려고 합니다. 때 되어 밥 주면 밥을 먹고 / 때 되어 약 주면 약을 먹고 / 한없이 선량해진 누이 / 아무것도 갈망하지 않으니 / 누구도 원망하지 않으니 / 네가 살고 있는 이 거대한 병동은 천국인가 (별유천지비인간) 벽을 높이 올린들 느긋하지 않습니다. 벽을 높이 올린 다음에 병조각을 촘촘히 박는들 걱정이 사라지지 않습니다. 병조각 벽으로도 모자라 경호원을 두거나 보안시설을 놓는다 해서 근심이 없어지지 않습니다. 총을 갖추고 탱크를 두며 미사일을 거머쥔다고 해서 평화로울 수 없어요. 들에서 일하는 시골지기는 맨몸에 맨발이기 일쑤입니다. 들에서 일하는 시골지기는 낫을 쥐어 풀을 벨지언정 총을 들어 누구를 쏠 일이 없습니다. 이 가을에 들에서 나락을 베는 시골지기는 아무런 무기가 없이, 아니 오로지 넉넉한 마음으로 즐거운 가을걷이를 꿈꾸면서 싱그러운 가을바람을 쐽니다. 시골에는 군대가 덧없어요. 논이나 밭을 지키는 군대란 없어요. 서울이나 부산을 지킨다는 군대이고, 청와대나 핵발전소를 지킨다는 군대이지요. 시골 논밭에 보안시설을 세우는 시골사람은 없어요. 햇볕이 드나들고 바람이 드나들며 풀벌레하고 멧새가 홀가분하게 드나드는 들이요 시골이요 마을입니다. 이곳은 전쟁무기 없이 언제나 너그러우면서 평화롭습니다. 세상의 모든 길은 지금, 차단되어 있다 / 세상의 구둣발 소리는 모두 / 미행하는 이의 구둣발 소리 같다고 // 지금, 세상의 하고많은 눈이 / 그대 그림자를 뒤쫓고 있다 (탈옥수의 하루) 작은 시인 한 사람이 노래하는 ‘다리 놓기’는 바로 시골사람다운 시골스러운 꿈이리라 생각해요. 감시와 처벌로 그악스럽게 억누르는 거짓스러운 평화가 아니라, 사랑과 웃음으로 어깨동무하면서 노래할 수 있는 참다운 평화를 바라는 꿈이 시 한 줄로 태어나지 싶어요. 슬프게 죽는 사람이 없기를 바라기에 시를 씁니다. 기쁘게 노래하는 이웃하고 손을 잡고 싶어서 시를 읽습니다. 안타깝게 죽는 사람이 사라지기를 바라면서 시를 씁니다. 아름답게 어우러지는 신나는 나라를 꿈꾸면서 시를 읽습니다. 2016.10.4.불.ㅅㄴㄹ (숲노래/최종규 . 시골에서 시읽기)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