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홍바늘꽃...폐허가 된 곳에서만 피기 시작한다는 슬픔과 새로움을 의미하는 꽃. 처음엔 책 제목만 보곤 전쟁통에서 피어나는 사랑 이야기가 아닐까 했다. 난 그 사랑이 남녀간의 사랑이라기 보다는 좀더 근본적이고 초월적인 인간애라고 생각한다. 모성애와 부성애는 인류에게 최후의 최후까지 남아있을 감정이요, 사랑이라고 생각한다. 빌리는 줄리에게 모성애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였고(후에 디키라는 전쟁고아가 나타나면서 본격적으로 모성애가 발현되지만, 계기는 빌리라고 생각한다), 줄리는 빌리에게 부성애를 불러 일으키는 존재라고 생각한다. 전쟁통에서도 왜 저는 집에 가지 못하고 평화로운 피난처에 있어야 하는지 이해안된다며 과감히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택한 철부지 빌리는 혼자가 됨으로써 비로서 어른이 됐고, 자신과 같은 처지인 줄리를 만남으로써 정신적으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하게 된다. 둘만의 생활에 어느 정도 익숙해져 갈 쯤 아빠를 만날 기회를 얻지만, 줄리를 책임져야 한다는 의무에 빌리는 과감히 두눈을 질끔 감는다. 난 이 대목에서 '아버지'가 떠올랐다. 아버지라는 위치에 서면 많은 기회를 버려야 할 때가 있다. 과감히 직장을 옮기고 싶어도, 회사 때려치우고 자신만의 꿈을 향해 걷고 싶지만, 자신을 바라보는 처자식 때문에 하루에도 몇번씩 사표를 쓰고 싶은 걸 참아가며, 시대에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자신을 채찍질하며 살아가는 아버지의 위치에 서 있는 빌리가 보였다. 아빠에게 돌아가고 싶다. 아빠에게 돌아가면 적어도 유년의 그 청록은 다시 살아날 수 있다. 비록 조금은 빛이 바랬을지언정, 아빠의 그늘에서 다시 기댈 수 있다면 나는 다시 아이로 있을 수 있다라는 마음이 있었을텐데 그는 새로운 자신의 위치를 인정하고 순응하기로 했다. 줄리를 책임지므로써.. 이것은 줄리도 마찬가지였겠지. 이모의 집으로 연락 한 통만 하면, 자신은 곧 옛날의 그 예쁜 소녀로 돌아갈 수 있다. 지금 이렇게 배급장부를 붙들고 먹을 것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거리에서 붙잡힐 위험때문에 하루에도 몇 번씩 주위를 살피며 살지 않아도 된다 라는 생각을 했었을텐데 말이다. 히틀러의 폭정속에서 결국 빌리와 줄리는 살아 남는다. 비록 죽을 뻔한 위기를 겪지만, 이 위기야 말로 진정한 자아실현의 과정이였다고 생각한다. 전쟁고아 디키는 아프기 시작한다. 이 아이를 돌보기 위해서는 자신의 희생을 감수해야 한다. 폭격이 떨어지는 거리에 자신을 내몰아야 한다. 한 인간의 생명을 책임진다는 것은, 자신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도박과도 같은 것이리라. 빌리와 줄리는 이 희생을 감수함으로써 인간으로써 가장 빛나는 순간에 접어들게 된다. 인간이 한 인간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희생한다는 것은, 예수의 그것과도 같고 부처의 그것과도 같음이라. 비록 그 숭고함 뒤에 빌리와 줄리는 헤어져야 했지만, 이 희생은 둘의 인생에 큰 영향을 미쳤음이 틀림없다. 빌리와 줄리를 보며,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의 세이타와 세츠코 남매가 생각났다. 비록 세이타남매는 끝내 죽음을 맞았지만, 그 남매의 고통과 빌리와 줄리의 고통이 다르지 않았다고 생각했기에 읽는 내내 장면매치가 심하게 되곤 했다. 줄리의 집 지하실에 그들만의 보금자리를 만들던 날의 둘의 마음과, 세이타와 세츠코가 버려진 방공호에 자리를 잡은 후 반딧불이를 잡아 그 안을 밝혔을 때의 그 감정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안전하다. 평화롭다' 전쟁은 사람을 황폐하게 만든다. 순수를 잃어 버리게 하고, 사랑을 잃어 버리게 만든다. 인간이라는 점을 잃어 버리게 만든다. 추악한 이 전쟁은 아직도 세계 곳곳에서 성행되고 있다. 그리고 그 곳에는 분홍바늘꽃이 만개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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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홍바늘꽃 제목만으로는 책의 내용을 전혀 가늠할수 없었다. 하지만 보통 때는 휘귀해서 일부러 찾아 수집하기도 힘들지만 불이 나서 폐허가 된 땅에서 자라는 꽃이라하니 이책을 다 읽고 난 지금은 왜 제목이 분홍바늘꽃이어야하는지 알게된다
히틀러의 2차 세계 대전을 다룬 많은 책들을 만나면서 유대인의 입장에서, 같은 독일국민으로서, 또한 독일의 동조자였던 이탈리아시민으로서 많은 억압과 고통속에서 숨죽여 투쟁했던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적나라한 모습들을 만났었다. 하지만 이책은 전혀 다른관점의 전쟁이야기였다. 1940년 9월 7일 처음 폭격이 시작된 이래 57일밤 동안 끊임없는 공격으로 2만명의 사람들이 죽었고 100만명이 넘는 사람들이 집을 읽었던 암흑에 싸인 도시의 한복판에 놓여있다 쉽게 짐작하지 못할만큼 두 소년과 소녀에 비친 일상적인 생활들로 채워져 있었다.
소년 빌이 소녀 줄리를 만났건 밤새 지하철역에서 밤을 보낸후 다시 어딘가로 향해야하는 새벽시간이었다. 전쟁의 한복판에 놓여있던 런던에서 아이들은 모두 어딘가로 피난을 가야했다. 그래서 빌은 웨일스의 한 농가로 줄리는 캐나다로 향해는 배를 탔다. 웨일스에서 지루한 하루하루를 보내던 빌은 군대에 갔던 아빠가 휴가를 맞아 집으로 온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무작정 런던으로 온다. 줄리 또한 캐나다로 가기위해 탓던 배가 어뢰공격을 받아 침몰하는 바람에 다시 런던에 남겨지게 된것이었다.
이렇게 하여 런던에 남겨진 두 소년과 소녀는 자신들을 어딘가로 피난보내려 하는 어른들의 시선과 히틀러의 공격으로부터 둘이 있어 서로 의지하며 런던에서 보통의 생활을 하는 사람들과 함께 공존하게 된다. 밤이면 사람들은 지하철역등 많은 대피소에서 히틀러의 무차별적인 공격앞에 포근한 보금자리였던 집이 무너져 내리고 마음이 파괴되어가는 현실속에서 웅크리고 있지만 새벽의 여명이 밝아오면 그들은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항상 전쟁하면 어둡 깊숙한 두려움에 익숙해 있었던 터라 제시간에 맞추어 버스가 다니고 물품 보급이 시작되고 노점상을 중심으로 시장이 형성되고 있는 사람사는 냄새가 물신 풍겨오는 모습이 전쟁의 한가운데 놓여있는 사람들이라 생각하기엔 참으로 낮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혼자가 아니어서 둘이어서 너무나 다행스러웠던 빌과 줄리는 폭격으로 자신의 집이허물어지고 이모의 집이 파괴되는 아픔앞에서도 맞설수 있었다. 불이 난 폐허에서 새로운 생명의 싹을 틔우는 분홍바늘꽂처럼 그들의 첫사랑도 그렇게 시작되고 있었던것이다. 격한 상황속에 놓여있던 두 소년과 소녀의 순순한 마음이 서로를 의지하며 어른들이 초래한 그 전쟁에서 희망을 찾아가고 있는듯 하다.
피난을 보낼려는 어른들의 시선을 피해 빌과 줄리는 반쯤 무너져 내린 이모의 지하 은신처에 찾아든다. 하루 이틀 그들의 은신처는 참으로 포근하고 따뜻하다. 하지만 불완전한 그들의 첫사랑만큼이나 언제 다가올지 모르는 히틀러의 공격앞에 그들의 은신처는 너무도 위험해 보이기만한다. 새로운 식구로 맞이한 디키의 병으로 새벽일찍 빌은 우유를 찾아 거리를 헤매이고 마침내 자는듯 죽어있는 부인앞에 놓여있던 우유주전자를 들고 달려왔건만 그들의 안식처는 이미 무너져 내린후였다. 미친듯 구조요청을 하고 있는 빌리의 모습속에 험한세상 함께 했던 동지이며 친구이며 연인을 잃어버린 아픔이 고스란히 전해져 오며 나 또한 그 아픔속으로 밀려들어가게 된다.
이제 전쟁은 끝났다 빌은 피난중 줄리와 함께 바라보았던 세인트폴 대성당을 이젠 혼자 바라보고 있다. 잡초가 무성하게 자라 상처가 아문 지금의 모습을 바라보며 자신의 마음속에 간직되어있는 줄리를 사랑했던 마음과 둘이어서 그나마 다행이었던 전쟁의 상처를 아직도 달래고 있는듯하다. 폐헤속에 다시피어나는 분홍바늘꽂처럼 이 세상에 사랑과 희망이 존재함을 다시는 전쟁이라고 하는 아픔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고 있는게 아닐까 싶어진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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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이름을 가진 꽃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꽃 이름이 참 묘한 조화를 이룬다. 분홍색, 하면 여성스러움, 고귀함 등이 떠오른다. 바늘하면 아픔, 고통을 상징한다. 바늘이 상징하는 것은 치유도 있다. 고귀함과 고통이 만나 어떤 이야기를 들려줄까 궁금했다. 너무나 예쁜 이야기가 만들어졌다. 히틀러가 일으킨 전쟁, 1차 세계대전, 런던이 배경이 되었다. 하루에도 몇 번씩 들리는 싸이렌 경고음, 조금있다 들리는 폭탄 터지는 소리와 사람들의 신음소리, 그리고 아이들의 울부짖음, 길거리에는 엄마 찾는 떠돌이 아이들이 있다. 그 한 가운데 런던 지리를 전혀 모르는 줄리와 방공호와 집, 강, 거리를 너무나 잘 아는 빌이 만난다. 이들 역시 가족이 어디 있는지 알지 못하는 떠돌이 아이들이다. 부모와 멀리 떨어지기 싫어 외국으로 아이들을 보내는 배에서 탈출에 성공한 줄리, 살기 위해 가족이 뿔뿔이 흩어진 빌은 서로의 보호자가 된다. 아이가 혼자 길거리를 다니면 수용소에 갇히게 된다는 것을 잘 아는 이 아이들은 서로의 부족을 채워주며 일을 해서 돈을 벌어가며 숨어 다닌다. 안전한 숨을 곳을 찾은 아이들에게 찾아온 아기 디키 역시 부모를 잃어버린 아기다. 디키를 돌보며 지하에 살게 된 아이들, 아기 디키가 아파 빌이 우유를 구하러 간 사이 이 집에도 폭탄은 찾아든다. 이로 인해 줄리와 디키를 잃게 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떠는 빌, 이 사건을 계기로 가족을 만나게 된 줄리, 아이들은 사소한 오해로 헤어지게 되고 몇 년 후 전쟁은 끝난다. 줄리와의 추억을 더듬으며 같이 살았던 집을 찾은 빌은 불난 곳에만 핀다는 꽃 분홍바늘꽃을 보게 된다. 흐드러지게 핀 분홍바늘꽃을 보면서 줄리가 있었기에 험하고 아플 수 있었던 전쟁의 한 가운데서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 수 있었음을, 아기 디키가 있음으로 전쟁의 추억이 따듯할 수 있었음을 추억하게 된다. 전쟁이 있어 사람의 소중함과 가족의 소중함이 더 절절이 와 닫는다. 아픔이 있음으로 치유가 있고, 눈물이 있음으로 더 많이 웃을 수 있음을 절절히 말한다. 전쟁이야기가 따듯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해 준 책이며, 아이들의 눈으로 본 전쟁은 어른들의 시각과 많이 다를 수 있다는 것도 알 수 있었다. 가슴이 아리면서도 따듯한 무언가가 마음에 남아 따듯한 전쟁 영화를 한편 본 듯한 느낌이다. 전쟁을 좀 색다르게 해석하게 하는 책이어서 좋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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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전쟁 또는 내전과 관련된 동화책을 몇 편 읽었다. 대개는 가해자의 입장이거나 피해자의 입장에서 상대를 미워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었다. 아니면 적어도 전쟁의 참상을 등장인물의 눈을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목적이 뚜렷한 것들이었다고나 할까. 그러나 이 책은 그런 여타의 책들과는 약간 다른 듯하다. 뭐랄까. 전에 읽었던 책들이 의식적으로 접근한 것이었다고 치면 이것은 순수한 인간 문제를 다룬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정확히 표현을 못하겠으나 그런 비슷한 느낌이라는 걸 말하고 싶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런던 대공습이 있던 때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소년과 소녀의 생존기라고 이름 붙일 수 있는 이야기다. 물론 그들 사이에는 사랑도 있었지만 편안한 세상에서의 사랑과는 차원이 다른 그 어떤 것이리라. 그랬다. 어차피 고모네 집에서 아빠와 더부살이를 해야 했던 빌에게 집이란 그저 구속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래서 전쟁 중에 아이들을 다른 곳으로 피난시키라는 지시에 따르는 고모를 원망하며 계획된 것은 아니지만 혼자 떠돌게 된다. 그러면서 차라리 어른들의 간섭을 받지 않고 혼자 자유롭게 사는 편이 낫다며 스스로를 위로한다. 그러나 가장 견디기 힘든 것은 외로움이었음을 줄리를 만나고 난 후 자신에게 말하기도 한다.
어느 모로 보나 자신과는 처지가 다른 듯한 줄리를 만나지만 전쟁터에서, 그것도 보호자가 없이 떠도는 아이들 입장에서는 빌이나 줄리가 다르지 않다. 아니 오히려 빌이 줄리를 보호하는 입장이 된다. 전적으로 빌에게 의지하는 줄리를 위해 최선을 다하는 빌의 모습은 믿음직스럽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의 보호자가 없을 때까지만이다. 아니,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줄리의 보호자가 나타나기 전까지다.
공습으로 폐허가 된 줄리 이모의 지하실에서 숨어 지내던 빌과 줄리는 비록 힘들지만 스스로 무엇인가를 해내고 자신들의 힘으로 살아가게 되었다는 것에 뿌듯함을 느끼며 그럭저럭 잘 살아가고 있었다. 그러나 하필이면 빌이 우유를 구하러 떠난 날 그나마 서 있던 건물이 무너지면서 지하실도 사라지고 만다. 그 와중에도 빌은 오로지 줄리를 살려야겠다는 생각으로 사람들에게 달려가고. 그렇게 간신히 구한 줄리에게서, 죽었을 거라 생각했는데 고맙게도 살아있는 줄리에게서 들은 충격적인 말 때문에 줄리에게서 떠나고 만다. 아니 어쩌면 줄리 주위에 있어 봤자 신분과 생활의 차이로 인해 그의 사랑이 받아들여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쉽게 떠났는지도 모르겠다.
건물은 무너지고 불탔지만 거기에도 어김없이 잡초들은 싹을 틔운다. 특히 불이 났던 곳에서 자란다는, 평소에는 보기 힘들다는 분홍바늘꽃이 자라는 것을 보며 빌은 자신의 상처도 서서히 아물어가고 있음을 말한다. 사실 읽는 내내 왜 제목이 분홍바늘꽃일까 궁금했었다. 그와 관련된 이야기는 하나도 나오지 않았으므로. 그러다가 마지막에서야 간단하게 설명이 된다. 그러나 그 간단한 설명이 지금까지의 빌의 마음을 너무나 함축적으로 나타내준다. 비록 전쟁의 참혹함을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지만 지금까지 읽었던 누군가에게 쫓기거나 상대편에게 잡혀 죽을 위험에 처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라 전쟁으로 인해 생활이 변한 일반인들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심하며 읽을 수 있었던 점은 적어도 빌은 죽지 않았다는 확신 때문이었을 것이다. 빌이 화자로 등장하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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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탄 자리에 피어나는 희귀한 식물이 분홍바늘꽃이란다. 인터넷을 뒤지니 한국자생식물원에 군락이 있다고 하여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폐허에서 피어나는 꽃이라... 그러고보니 사랑과 닮았다. 숱한 가치들이 전쟁으로 사라지는 때에 유일하게 남아 살아가는 힘이 되어 주는 사랑. 판도라의 상자에서 찾아낸 희망의 또 다른 이름. 분홍바늘꽃은 1940년 런던대공습을 배경으로 한 열다섯 살 소년 빌의 사랑 이야기다. 엄마 없이 아빠와 고모집에 얹혀 살던 빌은 아버지가 참전하고, 고모에 의해 떠밀리다시피 '안전'한 시골인 웨일즈로 보내진다. 그러나 그는 다시 런던으로 숨어든다. 낯선 곳에서 그저 몸이 안전한 것은 진실로 살아있음과는 다른 것이었던가 보았다. 열다섯 소년에게. 그리고 역시 정해진 어딘가로 보내려고만 하는 어른들의 눈을 피해 떠도는 소녀 줄리와 만나 둘은 삶을 함께 한다. 죽음이 간단없이 몰려왔다 가까운 거리에서 노려보고 있는 그 상황이 빌에게 행복일 수 있었다면 줄리라는 아이의 존재 때문이었을 것이다. 둘은 아빠와 엄마를 각각 등지고 과거의 모든 것에 작별을 고한 채 폐허의 지하실에 온기 가득한 방을 만들고, 죽음조차 함께 맞이할 수 있는 공동생활을 영위한다. 나는 책을 보다가 다시 빌의 나이를 떠올리며, 보통의 어른들과 똑같은 의심의 시선으로 다음 장을 응시하기도 했지만, 그들은 다른 무엇 필요 없이 그저 함께 하는 것으로 행복해할 따름이었다. 전쟁, 배고픔, 굶주림, 추위가 맹위를 떨쳐도 변질되지 않는 아이들. 나이도, 공포도, 그 무엇에도 흔들리지 않는 사랑이란 것의 본질에 대한 예쁜 이야기. 이 책은 전쟁에 대해서도, 빌의 내면에서 일어났다 증폭되는 사랑의 감정에 대해서도 매우 담담하게 묘사한다. 처절한 호소를 하지 않고, 그저 삶이 어떻게 계속되는가를 이야기하며, 웃음이, 사랑이 어떻게 이어져 나가는가를 조용하게 들려준다. 삶을 파괴하는 것은 전쟁이 아니라 사랑의 상실이라는 이야기를. 엄마를 잃어버린 아이 디키를 위해 우유를 얻으러 나간 빌의 부재 중에 줄리의 머리 위로 집이 무너져내리고, 맨손으로 땅을 파헤치던 빌과 구사일생 목숨을 건진 줄리는 줄리의 부모가 등장하자 각각 다른 삶 속으로 이끌려 들어간다. "아무 일도 없었더냐."는 줄리 오빠의 질문과, "아무 것도 없었어."라고 한 줄리의 대답은 빌에게 전쟁보다 무서운 절망이 되었다. 늘 파괴자는 기성세대이다. 빌에게 전쟁보다 더 무서운 것은 어른들의 편협한 고정관념이었으리라. 마음이 지긋이 아팠다. 예쁜 책. 큰아이에게 읽혀보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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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빠르게 빙빙 돌아가서 얼룩처럼 보였다. 하늘과 풀이 번져 하늘색과 초록색 얼룩으로 보이고, 집과 울타리는 검은색과 빨간색 얼룩으로 보였다. 빌은 어찔어찔한 눈으로 줄리를 보았다. 줄리는 같이 움직이고 있기때문에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또렷하게 보이는 존재였다. 책의 표지에 나타난 줄리와 빌의 표현이다.
아빠를 만나기위해 런던까지 찾아와서 그리운 아빠가 바로 눈앞에 있고, 간절하게 아빠를 원하면서도 줄리를 떠날수 없었던 빌. 그는 줄리를 책임져야 한다고 생각했고, 줄리를 떠날수도 없었다.
줄리역시도 자신이 타려고 했던 배가 난파당해 부모님에게 자신의 처지를 알려야 하는 처지에 있음에도 빌을 위해 기꺼이 남기로 결심한다. 하지만 어린디키의 우유를 구하러 간사이, 줄리와 디키가 있던 보금자리는 폭격을 맞는다. 빌은 줄리와 디키를 구하기 위해 어른들에게 구조를 요청하고, 줄리는 부모님의 품으로 돌아간다.
전쟁속에서 서로에게 힘이되어주었기에 빌과 줄리의 사랑이 아름답게 결실을 맺기를 바랬다, 극한 상황이기에 서로에 대한 사랑도 간절할것이라고 생각했다. 이루지 못한 소년의 애틋한 사랑에 가슴이 아려왔다.
새로개간된 공터나 불탄 자리에 가장 먼저 나타나 꽃을 피우는 분홍바늘꽃처럼,빌에게도 새로운 사랑이 찾아황폐해진 폐허속에서도 빌에게도 사랑은 찾아올것이고, 전쟁의 상처를 딛고 꿋꿋하게 살아갈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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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는 1940년 가을, 독일군의 대공습으로 런던이 공격을 받던 때였다. 젊은 남자들은 군대에 입대하게 되고, 어린 아이들은 공습의 처참한 손길이 닿지 않는 시골로 모두 피신하게 된다. 빌 역시 아버지가 군대에 입대하고, 고모와 단 둘이 남게 되지만 빌의 뒷바라지를 힘겨워한 고모와 싸움 끝에 웨일스라는 시골로 멀리 떠나게 된다. 빌이 떠날때만 해도 공습이 심하지 않았고, 빌은 자신이 시골로 쫓겨나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지 못한다. 결국 도망치듯 빠져나와 아버지를 기다리기 위해 다시 런던으로 향한다. 하지만 빌이 알던 런던은 사라지고 없었다. 매일 이어지는 공습, 무너진 집, 생기없는 사람들속에서 빌은 어떻게든 살아가야 한다.
이 세상에 나만 홀로 남은듯한 처참한 느낌. 혼자 떠돌다 어른들에게 붙잡히면 고아원으로 가게 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 하루하루 불안하게 살아가던 빌에게 천사같은 줄리를 만난 건 어쩌면 운명이였을지 모른다. 줄리의 환한 웃음으로 빌의 마음마저 환해지고 둘은 남매처럼, 친구처럼 함께하게 된다.
외로움에서 벗어난 두 아이들은 잠시나마 '자유'라는 달콤함을 맛본다. 런던의 이곳 저곳을 마음대로 돌아다니고, 쉬고 싶을때는 쉬고...그동안의 외로움을 보상받으려는 듯 둘은 함께 이곳 저곳을 돌아다닌다.
처참한 전쟁속에서도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고,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공습에 피해받지 않은 식당은 영업을 이어나가고, 노점은 과일이나 식료품등을 팔기도 한다. 그런 노점에서 일을 도우며 사이좋게 하루하루 살아가는 두 아이들. 하지만 그런 자유도 길게 이어지지 못한다.
대피소의 어른들은 빌와 줄리를 자꾸만 구속하려 하고, 두 아이들은 나날이 이어지는 공습에 점점 지치게 된다. 날이 갈 수록 폐허가 되는 거리, 하루밤새에 죽어나가는 사람들...그리고 보호받을 곳이 없다는 불안감에 시달리는 빌과 줄리.
빌과 줄리는 서로에게 보호자였을 것이다. 두 사람이 처음 만났을 때는 그 사실만으로도 안심할 수 있었으나 결국 전쟁의 처참함속에서 불안감은 커져갔고 더 든든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게 된다. 결국 두 아이는 공습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줄리는 크게 다치게 되고 빌은 그게 자신의 잘못인양 괴로워하게 된다.
전쟁속엔 언제나 비참함만이 서려있다. 그리고 어른들의 전쟁으로 상처받는 건 어린아이들이다. 전쟁속에서도 자신들만의 자유를 찾아 마음껏 즐기는 줄리와 빌을 보며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게 되었다. 전쟁이 지나간 폐허속에서 제일 먼저 자라는 '분홍바늘꽃' 전쟁 속에서 아이들은 상처를 받았지만 분홍바늘꽃처럼, 전쟁의 상처를 딛고 씩씩하게 자랄 것이다. 그리고 아픈 유년기의 상처는 평생을 살아갈 추억이 되어 아이들은 지탱해줄 것이다. 전쟁 속에서도 아름다운 우정이 있다는 걸, 그리고 분홍바늘꽃이 피어난다는 걸 알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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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혼자가 아니어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다. 이제 나도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생겨서 주위 사람들이 자기네끼리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외로운 섬처럼 혼자 누워 있지 않아도 되는 것이다.
1. 줄거리 。。。。。。。
제2차 세계대전이 한창인 영국 런던. 전쟁이 지속되면서 영국 정부는 어린 아이들을 우선적으로 시골로 대피시키기 시작한다.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살던 빌도 그렇게 시골로 떠나는 기차에 올라타게 된다. 하지만 빌을 기다리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한 시골집에서 며칠을 머물던 빌은 아버지를 찾아 다시 런던으로 떠난다.
하지만 이미 런던 시내는 전장이 된 지 오래였고, 군대에 간 빌의 아버지는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빌의 앞에 새롭게 나타난 사람이 있었으니 빌처럼 피난을 가려다가 배가 침몰해 겨우 돌아오게 된 소녀 줄리였다. 누구 하나 믿고 의지할 사람 없는 전쟁의 한 가운데서 서로를 의지하며 버텨나가는 소년과 소녀의 이야기.
2. 감상평 。。。。。。。
내 방을 정리하시던 어머니가 책을 집어 드시더니 책장을 쭉 넘겨 훑어보신다. 읽으려고 그러시냐고 했더니 책 제목이 마음이 들어서 읽을 만한 책인가 해서 보셨다고 하신다. 제목이 썩 ‘예쁘게’ 지어진 책이다.
소년과 소녀의 순수한 사랑 이야기는 독자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 준다. 특히 전쟁이라는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고자 하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소년과 소녀 뿐만 아니라 이탈리아 사람이라서(이탈리아는 독일, 일본과 함께 2차 대전의 추축국 중 하나) 사람들에게 경원시 당하면서도 어눌한 영어로 빌과 줄리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해 주는 마르코, 부자지간인 큰 버트와 작은 버트 등은 전쟁이 반드시 인간을 잔인하게 만든다던가 하는 생각에 반대를 하는 인물들이다.
여기에 소년을 시점으로 하는 서술(1인칭 주인공 시점)은 소녀에 대한 소년의 미묘한 감정을 드러내는 데 매우 좋은 선택이었다. 자신이 정확히 어떤 감정을 갖고 있는지 조차 정확하게 알지 못하는 소년의 순수한 사랑은 잔잔한 미소를 짓게 만든다.
현대 작가들에게서 보이는 날카로움이나 세련됨은 좀 부족해 보이지만, 황순원의 ‘소나기’ 등에서 느껴지는 느낌이라고 할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