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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과 여성의 결합만이 새 생명을 탄생시키는 방법은 아닐지도 모른다. 아직 우리가 그 방법을 찾아내지 못하였을 뿐. 인류의 상상력의 끝은 어디일까? 소설이나 영화 등을 통해 접하는 세계에 종종 나는 경악을 하곤 한다. 하지만 그 경악은 한 개인의 창작물에 대한 존경만을 담고 있는 경악이 아니다. 그와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머릿속으로만 그려지던 게 현실화되는데 왜 경악을 하느냐고 누군가 내게 묻는다면 나는 이런 대답을 하고 싶다. 인간의 상상력이 언제나 긍정적인 결과를 낳았던 건 아니지 않냐는… 생각해 보라. 우리가 만든 사이보그에 의해 우리 자신이 종속 당한다면 혹은 내가 알고 보니 누군가의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목적에서 만들어진 존재였다면? 이런 상상이 결코 유쾌하지만은 않으리라는 건 자명한 사실이다. 이 책은 인간 창조를 둘러싼 참으로 광범위한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고 보면 인류는 생명 과학이 오늘날처럼 각광 받기 전에도 존재론적인 고민으로부터 자유롭지가 않았다. 정자와 난자의 만남에 의해 자신이 생겨났다는 사실은 이미 과학적인 진리이지만, 내가 어디로부터 비롯되었으며 어디로 가는가의 심오한 질문에 그와 같이 답을 한다면 아마도 밋밋한 느낌만이 들 것이다. 어쩌면 그래서 신화, 종교, 소설 등 갖가지 기제를 활용하여 우리는 우리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 그토록 노력해 왔나 보다. 그런데 그 노력이 모두 아름다운 것만은 아니었다. 이미 대부분이 익히 알고 있는 프랑켄슈타인 박사의 이야기만 놓고 보더라도 이는 분명해진다. 죽은 시체를 되살리는 놀라운 능력이 만들어낸 건 2미터 8센티미터의 거대한 키를 가진 괴물이었다. 그리고 이 괴물에 의해 프랑켄슈타인 박사와 수많은 지인들은 목숨을 잃는다. 하지만 혐오스러운 외모를 지닌 이 피조물을 괴물로서 정의한 것은 다름 아닌 우리 인간이었다. 태초에 인간의 악(惡)이 있었기에 그와 같은 끔찍한 결과가 도래한 것이다. 올더스 헉슬리의 『멋진 신세계』라는 작품에선 더더욱 끔찍한 장면과 만나게 된다. 이 작품에서의 창조된 생명들은 프랑켄슈타인 박사가 만든 피조물처럼 겉모습에서부터 ‘헉!’ 소리가 나는 무언가가 풍기지는 않는다. 하지만 이 작가가 그려낸 유토피아는 공장 컨베이어 벨트 시스템에 대한 예찬론과도 같아 인간의 잉태마저도 컨베이어 벨트에서 이루어진다. 출산의 고통으로부터 자유로운 여성으로서 이는 극찬(?)할만한 것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인간을 하나의 노동력으로 바라보고 소모품마냥 부려야만 하는 사회의 특성을 유지하고자 소설 속 사회는 소름 끼치는 짓을 행한다. ‘엑스레이를 쪼이거나 추위 또는 알코올에 노출시켜 세포 분열을 억제하고 하류 계급에 적응할 수 있도록 성장과정을 통제한다(p 159 중에서)’는 부분을 읽으며 나는 특정 목적에 맞는 인류를 양산해 내는 사회에 대해 상상해 보았다. 태어나는 그 순간부터 모든 운명이 정해져 있는 삶은 얼마나 무료할까? 아니, 단순히 무료하기만 하면 양호한 것이리라. 생각해보면 이미 우리는 시험관 아기 시술 등 과학기술의 도움을 얻어 인간을 만들고 있다. 여전히 보건복지가족부 앞에서는 우리는 비록 성공이 보장되지 않더라도 인간과 자연에 친화적인 태도를 버려서는 안 된다. 과학자들은 정치적인 결정에 영향을 미칠 힘이 없기 때문에 긍정적인 변화를 위해 다른 방법을 사용해야 한다. 즉 과학기술에 관한 전문지식을 이해하기 쉽게 알려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가 추구하는 목적이 염려스러운 결과를 초래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들도록 해야 한다. 그것이 이 책 『인간, 아담을 창조하다』를 통해 이루어진다면 이 책을 지은 우리에게는 더없이 좋은 일이다. (p 397-8 중에서) 과학기술은 퇴보보다는 진보할 가능성이 더 높다. 다만 그 과학기술을 이용하는 것은 인간이며, 그렇기에 과학기술은 결코 중립적인 상태로 존재할 수만은 없다. 적절한 견제책이 필요한 까닭은 바로 여기에 있다. 인간이 과학기술을 통해 질병을 치료하고 심지어 인간을 만들어내는 놀라운 방법에 눈을 뜨게 된다고 할 때, 그것을 향한 무조건적인 추종이 이루어지지 않도록, 적어도 한 번 정도는 우리가 하려는 행위의 의미를 생각해볼 수 있도록 만드는 목소리를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내길 꿈꾸고 있었다. 작가의 그 꿈이 이루어진 후에라면 아마도 인류는 제대로 된 인간을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