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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문학의 거장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뒤를 이을 적임자로 지명했다는 사람. 이 책의 저자 랄프 이자우. 미하엘 엔데의 작품 <모모> 를 너무 재미있게 읽은 나로서는 이 책또한 읽기 전에 많은 기대를 하고 읽은 책이었다. 아주 두꺼운 책의 두께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
저자는 아홉 살배기 딸에게 들려줄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하지만 조금은 생소하고 들어보지 못한 지역에 대한 단어와 신들에 대한 이야기로 아홉살배기 딸에게 들려줄 이야기로 적합한것인지는 잘 모르겠다. 영화로 제작된다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하지만 대단히 치밀하게 구성된 추리소설임에는 틀림없는것 같다. 1권의 페이지 수가 장장 p.453이다. 작은 사전에 비례할 두툼한 책. 제목 그대로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에 대한 내용이다.
쌍둥이 남매 제시카와 올리버는 어느날 집에 있다가 경찰들이 들이닥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되는데, 그 경찰 말인즉, 박물관의 경비원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폴락이 중요한 무언가를 훔쳐갔다고 한다. 그런데 정작 중요한 것은 쌍둥이 남매는 아버지 폴락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아버지에 대한 잃어버린 기억. 그 이유는 무엇일까... 하지만 옥상 창고에서 아버지의 일기를 발견하고, 아버지를 찾기위해 쌍둥이 남매는 박물관에 몰래 잠입하게 되는데..
재밌는 추리소설이 그렇듯. 이 책도 금방 금방 읽히게 되었다. 아니, 금방 읽어버리지 않으면 궁금해 견딜수 없어서 계속 보게 되었다. 현재 우리의 기억은 아주 사소한 것들을 금방 잊어버리게 된다. 잊어버림으로서 너무나 많은 것들을 잃어버리는 것이다. 환상 소설이라고 말하는 이 책의 내용은. 정말 그럴 만하다.
나는 사실 기억력에 약하다. 특히 초등학교 3학년 이전의 기억은 거의 없도고 봐도 무방하다.. 왜 이리 기억력이 약한걸까.. 아니면 소중히 기억을 해보려 노력을 해보질 않아서 인지도 모르겠다. 생각해보면, 아주 소소한 기억도 소중한데 말이다.
"운명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아요. 우리가 포기하지 않는 한 처음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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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의 환상문학작가 랄프 이자우의 이 책은 쌍둥이 남매가 등장하고, 남매의 기억속에 없는 '아버지'가 박물관의 고대유물 크세사노 황금 상을 훔쳤다며 경찰이 집으로 찾아오는 것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동생 올리버가 미술적으로 재능이 있고, 누나인 제시카가 수학적으로 재능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준것을 제외하고는 이 남매의 가족사나 주변인의 이야기없이 수수께끼 투성이로 시작된 이야기는, 실제 역사와 고대의 암호문, 고고학적 지식들이 쏟아지며 점점 흥미진진하게 변화한다. 왜 아버지라는 존재가 남매와 주변인들의 기억속에 없는 것이며 저명한 고고학자였던 아버지가 어쩌다 박물관의 경비를 맡게되었는지, 아버지를 배신했다는 이중얼굴은 누구이며 지금 어디에 계신건지 등등 초반부터 팍 터져주는 수수께끼는 환상문학을 좋아하는 독자의 가슴을 두근두근 뛰게 만들어준다.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 크세사노가 지배하는 잊혀진 기억들의 세계와 '기억과 과거'를 빼앗김에 따라 엉망진창이 되어가고 있는 현실세계를 번갈아 보여주는 형식은 어떻게 보면 상당히 유치할 수 있겠지만, 고대 사학적인 지식들과 독자의 두뇌회전을 풀 파워로 돌리게 만드는 복잡한(?) 수수께끼 풀이는 유치는 커녕 집중도를 높여주기만한다. 인류가 과거를 잊어감에 따라 환상의 세계와 현실세계 둘 다 지배하려는 크세사노의 힘은 강해지고, 이를 저지하려는 남매의 이야기는 쉬지않고 달리고, 달려나가는 느낌을 준다. 역사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이를 잊는 현대의 문제점을 콕 집으면서 '잊지말고 지키고 잊지말고 보존하자' 라는 메시지를 남기고 있는듯하다. 아무튼, 스토리자체는 다소 뻔하고 가족적이며 예고된 감동을 보여주지만. 개인적으로 그게 또 참 좋았다. 아무리 뻔한 이야기라도 이렇게 고대학적 지식과 역사와 신화를 절묘하게 기믹해 놓으니 오히려 세련된 느낌도 든다. 크세사노의 비밀을 밝히려는 수수께끼들이 다소 머리를 아프게하긴하지만, 난 충분히 재미있게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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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음, 일단 이 책에 대해서는 뭐랄까, 내가 아직 환상문학이라는 장르에 대해 정확히 모른다는 점을 전제로 두어야 할 것 같다. 열 아홉권의 해리포터시리즈를 읽기는 했지만 해리포터 시리즈도 환상문학계열인가? 어쨌든.
재미있었다가 없었다가 그랬다. 묘한 느낌이랄까. 재미있다고 느껴지는 부분에서는 페이지수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르게 지나갔었고, 재미없다고 느끼는 부분에서는 전혀 진도가 안나갔었다. 곰곰히 그 이유를 생각해보면 음...이런 것이 아닐까 싶다. 일단, 상당히 호기심이 당기는 내용의 주제들이 이었다. 고대 박물관, 잃어버린 기억들, 고대 신화 도시, 바벨탑과 같은 전설의 이야기, 기원전 대홍수 사건, 쐐기문자, 아틀란티스...등등. 어느날 사라져버린 고고학자 아버지를 찾아나서는 용감한 남매, 이 모든 소재와 설정이 흥미를 부추기는 요소임에는 분명할 것이다. 그럼에도 다소간 지루하다거나 어렵다고 느꼈졌다. 그것은 너무 낯선 이름들, 너무 많은 사건의 복선, 난데없는 신비 이야기, 상상이 잘 되지 않는 장면 묘사, 뭔가 짜맞추기 위한 느낌이 드는 암호들...그러한 요인 때문에 책에 집중하기가 쉽지 않았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유럽과 동양의 문화적 배경이 달라서 상상의 폭이 좁은 것일수도 있다는 생각을 했다. 그들에게는 쉽게 떠올릴수 있는 상상의 풍경들이 내게는 잘 떠오르지 않는다든가 하는 것 말이다. 아니면 나의 상상력 결핍인가. 또 한편으로는 이 책이 두 권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니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시말해 2권에 얘기를 풀어나가기 위한 전초 작업이었으므로 다소 지루할수 있었다는 생각인 것이다. 작품중에 거론 되는 생소한 이름들 때문에 계속 뒤척여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다.
한 번 집중력이 떨어져 버리고 나니, 악순환은 계속된 듯 싶었다. 등장인물들이 어디선가 갑자기 불쑥 나타났다는 느낌이 그랬으며, 올리버 위기 상황에서 난데없이 도와주고 사라져버리는 어떤 인물들의 설정도 좀 그랬다. 전체적으로 뭔가 매끄럽다기 보다, 주섬 주섬 끼워 맞춰 나간다는 느낌이라고 할까... 이 점에 대해서도 사실, 고도의 집중을 해서 보았다면 매끄러웠을수 있었을지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게는 악순환의 연속이었다. 점점 뭐가 뭔 얘기인지 몰라지다가, 결국 나중에서야 아, 그러니까 크세사노가 뭔가 성질이 다른 두 세계를 정복하려는 거고, 올리버가 어쩌다보니 그에 반군 대장이 되었다는 뭐 그런 거구나, 정도로 이해되었다. 어려운 단어나, 눈에 익지 않는 단어들에 익숙한 환상문학 독자가 보기에는 또 다른 재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나는 조금 어려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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낚시를 좋아하시는 분들이 즐겨 쓰는 우스갯소리로 ‘물고기의 기억력은 3초’라는 말이 있습니다. 미끼를 물었다가 치도곤을 당한 물고기가 금방 돌아서서 다시 미끼를 물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런데 물고기도 종류에 따라서 기억 정도가 다를 수도 있다는 실험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세계일보 2014년 7월 3일자 기사, “물고기 기억력은 3초? 최장 12일!”). 아무튼 물고기의 기억력과 비교해보면 분명 뛰어난 인간의 기억력은 신의 선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인간의 기억이 완벽하지 않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합니다. 그것은 생존을 위한 인간진화의 결과 때문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즉, 기억을 왜곡해서라도 낙관주의적으로 생각하고 기억하는 긍정적 편향을 가지도록 진화된 것이라는 것입니다. 탈리 샤롯은 “낙관편향은 미래에 틀림없이 닥쳐올 고통과 고난을 정확하게 지각하지 못하도록 우리를 보호하고, 인생의 선택권을 제한된 것으로 보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줄 것이다. 이런 낙관편향을 유지하기 위해 뇌는 무의식적 망각을 설계해두었다. 그 결과, 스트레스와 불안이 줄면서 몸과 마음이 더 건강해져 행동하고 생산하려는 동기가 강해진다.”라고 설명한 바 있습니다. (탈리 샤롯 지음, 설계된 망각, 16쪽; http://blog.yes24.com/document/7310686) 과잉기억증후군을 앓는 질 프라이스는 뇌종양으로 수술을 받은 어머니가 위기에 빠지는 과정, 당뇨를 앓던 남편이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겪은 고통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밖에 없는 자신의 초능력이 오히려 저주스러웠을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기억을 선별하는 능력은 내 마음의 작용방식과는 거리가 멀었다.”라고 한 특별한 재능이 그녀에게 고통을 준 원인이었습니다.(질 프라이스 지음, 모든 것을 기억하는 여자, 163쪽; http://blog.yes24.com/document/7334212)”
질 프라이스의 경우를 보더라도 망각은 분명 신의 축복이라고 할 만합니다. 하지만 망각을 신의 축복이라고 여기는 우리는 한편으로는 꼭 기억해야 할 것들을 잊어버리는 것을 안타까워하기도 합니다. 가까이는 최근에 일어난 세월호 침몰사고로부터 멀리는 일제의 침략으로 고통 받은 36년을 기억하여,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최근 급진 우경화하고 있는 이웃 일본의 행보를 의심스러운 눈길로 볼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제2차 세계대전 기간 동안, 유태인으로 대표되는 인종말살정책을 강행했던 나치의 만행에 대하여 후세의 독일이 보여준 참회와 재발방지를 위한 노력을 보면, 일본이 보여 온 망설임과 눈가림은 피해국들의 포용을 얻어내기에는 어림도 없는 행보였다고 할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본은 자위권을 확대하는 등 전쟁 이전으로 돌아가자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는 의심을 받기에 충분한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신의 축복을 너무 많아서 일까요?
망각이라는 신의 축복을 지나치게 받아서 생긴 나라 안팎의 사건들을 보면서 독일의 동화작가 랄프 이자우의 판타지 소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을 읽어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동화라는 수단을 통해 돈과 시간의 노예가 된 현대인을 비판한 철학가’로 평가받고 있는 독일의 동화작가 미하엘 엔데가 자신의 후계자로 지목한 랄프 이자우의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은 ‘기억’과 ‘망각’을 화두로 삼고 있습니다. 이 작품을 통해서 저자는 사람들이 그 존재의 본질을 잊어버리고 망각해버린 것들이 미래에 무서운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음을 경고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2차 세계대전 기간 중에 저질렀던 끔찍한 만행은 독일인이라면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라는 것을 은연중에 강조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쌍둥이 주인공을 통하여 가족들과의 행복했던 기억과 사랑의 기억들 또한 우리가 살아가면서 시나브로 잊어버리는 것 중 하나라는 점을 깨닫게 하고 있습니다.
876쪽에 이르는 만만치 않는 분량과 장르문학의 특성을 고려하면 조심스울 수 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출판사에서 내놓은 줄거리를 요약하는 정도라면 적절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열일곱 살난 쌍둥이 남매인 제시카와 올리버는 느닷없는 찾아온 경찰관들이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 경비원으로 일하던 아버지가 고대 유물 크세사노 상과 함께 감쪽같이 사라져 용의자로 지목되었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쌍둥이에게는 아버지라는 존재가 기억되어 있지 않습니다. 다만 집안에 남겨있는 사진이나 물건들에서 아버지의 존재를 느낄 수 있을 뿐입니다. 두 사람은 아버지의 일기장을 통해 아버지가 원래 저명한 고고학자였으며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부활한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 크세사노의 음모를 알고 이를 막기 위해 크세사노가 지배하고 있는 잃어버린 기억 속의 나라인 크바시나로 갔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제시카가 현실 세계에 남아서 바빌로니아의 전설을 파헤치고 크세사노의 계략을 막기 위한 전략을 세우는 동안에, 올리버는 아버지를 찾기 위해 박물관 안의 바빌로니아 유적 ‘이슈타르의 문’을 통해 환상 세계 크바시나에 들어가게 됩니다.
제시카가 박물관의 연구원인 미리암의 도움으로 옛 바빌로니아 지역에서 출토된 점토판 조각의 쐐기 문자를 연구하며 암호를 풀어나가는 동안 크바시나에 들어간 올리버는 여러 가지 모험을 겪으면서 크세사노가 왕으로 군림한 이후 벌인 여러 가지 악행들과 온 세상을 장악하려는 크세사노의 야망을 분쇄할 방법을 찾기 위하여 노력합니다. 작가는 올리버와 제시카가 같은 목표를 찾아 애를 쓰는 과정을 엇갈려 서술하고 있습니다. 결국 쌍둥이 남매는 무의식과 꿈을 통해 서로에게 중요한 정보를 주고받으면서 크세사노의 진짜 이름을 찾아내 그 이름을 세 번 부르면 그를 물리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을 읽는 독자들은 우리에게는 비교적 생소한 바빌로니아 문명이 등장하고, 현실과 가상의 세계가 뒤엉켜 있어 이야기의 줄기를 가늠하기 어렵다는 독자도 있는 듯합니다. 조앤 롤링의 <해리포터>나 존 로널드 루엘 톨킨의 <반지의 제왕>처럼 아예 가상의 세계를 무대로 이야기가 전개되면 오히려 쉽게 이야기에 빠져들 수 있는 것과는 다르다는 말씀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실과 가상을 뒤섞어 이야기를 지은 것을 저자는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난 뇌리에서 쉽게 잊혀지지 않는 글로 독자를 끌어들이는 것을 대단히 중요하게 생각했다. 그러나 제시카와 올리버의 이 소설은 단순히 흥미로운 책 이상이여야 했다. 이 책은 기억이 우리의 삶에 얼마나 중요한지 보여주어야 했고, 무관심과 관용의 부재를 질타하는 호소여야 했다.(1권 445쪽)” 그러기 위하여 저자는 ‘이 책에서 많은 역사적 사실을 인용하면서 또한 몇 가지는 평범하지 않거나, 전혀 새로운 관계로 설정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새로운 지식을 만들기 위해 ‘사실들’을 연결하는 일은 언론매체들도 완벽하게 해내지만, 지루하다는 느낌 밖에는 남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실들에 대한 인식을 날카롭게 하기 위하여 상상의 인물을 등장시키고 우리들에게 잘 알려져 있는 것들을 아주 세밀하게 연결시켜서 분리하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결국 무엇이 진실이고 무엇이 상상 속의 산물인지 헷갈릴 수도 있습니다만, 진실과 상상의 산물을 구분해보려는 시도는 책읽기에 더한 즐거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또한 저자는 “내가 이 책으로 몇몇 독자들을 고고학의 세계로 유혹했다면 다행으로 여기고 싶다.(1권 448쪽)”라는 속내를 감추지 않고 있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의 핵심은 성서에 나오는 반전설적인 바빌론의 존재를 증명한 로베르트 콜데바이(1855. 9. 10 ~ 1925. 2. 4)의 고고학적 성과에 기반을 두고 있습니다. 독일의 건축가이자 고고학자인 콜데바이는 1899년 3월 26일부터 남부 이라크에 있는 바빌론의 유적지의 발굴을 시작해서 18년에 걸쳐 거의 중단 없이 발굴을 이어갔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가장 극적인 발견물은 마르두크 신전 기단(基壇)이었는데, 이것은 지구라트라 불리는 계단 모양의 유구(遺構)로서 그 위에 천문관측대가 있었을 것이라고 합니다. 또한 근처에서 놀라울 정도로 잘 설계된 우물이 딸린 아치형 구조물을 발견하였는데, 그것이 세계 7대 불가사의의 하나인 바빌론 공중정원의 유허(遺墟)라고 믿었다고 합니다. 그밖에 이 도시의 거대한 성채, 유명한 이슈타르 대문의 증거 및 마르두크의 신전에 다다르는 대로를 발견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출토된 이슈타르 대문은 현재 독일 베를린의 페르가몬 박물관에 복원되었던 것이 작가의 상상력을 불러일으킨 것 같습니다.
사실과 작가의 상상을 구분하는 것은 독자의 몫이라고 앞서도 말씀드린 바 있습니다. 먼저 ‘기억은 인간의 머릿속에 존재하는 동안만 변화한다(1권 191쪽)’는 니피(유리로 만든 벌새로 상대의 마음을 읽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의 설명은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생각합니다. 올리버가 크바시나에서 활약하는 동안 도움을 주는 엘레우키데스는 자칭 소크라테스의 제자인데, 자신을 기억하는 사람이 아무도 없기 때문에 크바시나에 오게 된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플라톤을 냉소적으로 비판하는 엘레우키데스 이외에 아리스티포스, 크세노폰, 안티스테네스, 알키비아데스 등 그가 소개하는 소크라테스의 제자들은 구굴검색을 통하여 확인할 수 있지만 엘레우키데스는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이외의 곳에서는 볼 수 없는 것을 보면 작가가 만들어낸 인물인 듯합니다.
장르소설을 읽는 맛은 작가가 예고하는 힌트를 놓치지 않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에서 중요한 힌트는 비교적 초기에 볼 수 있습니다. 제시카와 함께 문제를 푸는데 도움이 될 인물목록을 만들어가는 과정에서 미리암은 기원전 3세기에 수메르왕의 호칭은 ‘동서남북의 왕’이란 의미를 담은 ‘루갈-안-업-다-림무-바’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이를 들은 제시카는 아버지의 일기에서 읽은 글 가운데 있는 크세사노의 황금상 밑에 적혀 있다는 ‘세상의 왕’이라는 호칭을 기억해냅니다. 이 이름은 결정적 순간에 결정적 작용을 하게 됩니다.
올리버가 크바시나에 들어갔을 때 처음 만난 니피는 스스로의 결정에 따라서 크바시나를 방문한 인간인 올리버와 아버지를 고엘름이라고 부릅니다. ‘구원의 영웅’이라는 뜻을 가진 고엘름이 크바시나에 나타나서 크세사노의 폭압으로부터 기억들을 해방시켜줄 것이라는 소문이 수천년 전부터 있었다는 것입니다. 고엘름 올리버는 특별한 존재임이 틀림없습니다. ‘날아다니는 네덜란드인’이라는 배의 폰 오라니엔 선장이 생전에 저지른 행동으로 많은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다고 후회하는 모습을 보면서, 올리버는 처음에 희생자였던 선장이 나중에는 죄를 저지른 자가 되었기 때문에, 그의 죄가 면해질 수는 없겠지만 억지로 죄값을 치르는 것보다는 가슴 깊이 반성하는 것이 더욱 값지고 중요하다고 판단하게 됩니다. 그래서 “크세사노의 힘을 막을 수 있게 도와주신다면 선장님이 하신 행동으로 인해 눈물을 흘린 사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다시 웃음을 찾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선장을 설득하게 됩니다. 이처럼 상황을 제대로 이해하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도 올리버가 특별한 사람이기에 가능한 것 아닐까요?
올리버는 그를 도와주는 많은 기억들과 함께 크세사노에게 억류되어 있을 아버지를 찾아 나섭니다. 그 과정에는 인간 의식의 저변에 깔려 있는 사고와 꿈들이 살고 있다는 모르굼의 진흙수렁도 있습니다. 이곳에서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현인 레벤 니아가가 해준 “기억과 망각, 너의 세계와 나의 세계 사이에는 균형이 존재한다.(2권 188쪽)”라는 말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이 구절은 작가가 책읽는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결정적 메시지가 아닐까요? 또한 제시카와 미리암이 사건을 추적해가는 과정에서 나치와 관련된 사람들의 기억들을 비롯하여 세상의 모든 독재자에 관한 흔적을 지우려는 크세사노의 음모를 발견하게 됩니다. 크세사노는 바로 ‘간절히 갖고자 하는 생각들을 모두 가져가리라’라는 자신의 예언을 실행에 옮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자신이 잃어버린 기억의 세상 크바시나와 기억을 만들어내는 사람들의 세상을 모두 지배하는 자리에 오르려는 것입니다. 올리버와 제시카는 크세사노의 야망을 어떻게 막아 인류를 구원하게 될까요?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을 통하여 우리는 신의 선물 ‘기억’과 신의 축복 ‘망각’이 제대로 균형이 잡혀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교훈을 다시 새겨봅니다. 우경화로 치닫는 일본의 보수주의자들이 꼭 읽어볼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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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은 인간에게 기억과 망각이라는 두개의 선물을 동시에 주셨다는 이야기를 들은적이 있다. 매순간 있었던 일들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면 무지 피곤했을텐데 망각에 의해 적당히 잃어버릴 수 있다니 두개의 선물에 감사해야하는걸까? 하지만 전혀 엉뚱하게도 기억해야할것은 잊고 잊어야할것은 기억하게 된다면 얼마나 황당할까? 이 책은 그렇게 사람의 기억속에서 잊혀진 존재들이 분명 어디선가 존재하며 분명 필요할때가 있다는 이야기를 두 쌍둥이 남매의 잃어버린 기억의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에서 이 세계를 모두 지배하려는 크세사노의 정체를 밝혀 내기 위한 흥미진진한 과정을 통해 이야기하는듯 하다. 쌍둥이들은 둘의 감정이 서로 공유된다고 들었다. 올리버는 예술적인 면이 뛰어나고 제시카는 기계적인 방면으로 뛰어나 둘의 장점은 아버지를 찾고 크세사노를 찾는데 놀라운 능력을 발휘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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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주전까지 한집에 같이 살고 있던 아버지를 까마득하게 잊은 남매 느닺없이 들이 닥친 경찰들이 박물관의 조각상을 훔친 범인으로 아버지를 지목하면서 남매는 자신들에게 아버지가 있었음을 그것도 불과 2주전까지도 같이 있었음을 알게된다. 어떻게 그렇게 까맣게 아버지들 잊을 수 있을까?
멋진 시작이다! 이 동화 여행에 몰입할 수 있도록 작가는 초반부터 화끈하게 독자들을 어두운 박물관에 우리를 숨어들게 만들었다. 때로는 박물관이 살아있다라는 영화속에 있는듯..... 파랑새를 찾아 길떠난 남매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때로는 오즈를 찾아나서는 도로시와 그의 친구들이 연상되기도 한다. 마냥 어렵기만 했던 비유의 천지인 천로역정의 해설서 같기도 하다.... 또한 우리가 미처 알지 못한 고고학의 세계로 안내하는 모험서이기도 하다.
멋진 이야기의 시작만큼 이야기 전개도 특이하다. 기억의 신 크세사노가 현실세계와 잃어버린 기억들의 세계인 크바시나 모두를 지배하기 위한 음모가 진행중임을 알게된 올리버와 제시카의 아버지는 몸소 크바시나로 침투한다. 그런 아버지를 구하기위해 올리버도 아버지가 남긴 주문을 통해 크바시나로 사라지고 현실세계에 남겨진 올리버의 누나 제시카는 크바시나로 사라지는 순간 그들에 대한 기억조차 사라진 채 막연히 아버지와 남동생을 찾으려 고군 분투한다.
누군가에게 잊혀진다는 것은 "사라짐"이라는 공포감을 느끼게 한다. 그 사라짐이라는 서글픔이 만들어낸 크바시나라는 세상속에서 잊혀진 기억들이 각자의 모습으로 살아간다. 누군가의 소중했던 애장품, 한시대를 품미했던 나폴레옹이 걸쳤던 코트, 소크라테스의 많은 제자중 후세의 누구도 기억하기 힘든 제자, 아이들과 함께 뒹굴고 놀던 곰인형들.... 깊은 잠속에서 깨어났을 때 미처 기억나지 않는 꿈들의 조각들도....모두 크바시나에 여전히 그들을 사랑했던 소중한 그들의 기억을 품은채 살아가고 있다.
단순한 동화라고 하기엔 이책은 상당히 심리학서 같다. 우리가 기억을 어떻게 처리하는 지....그 기억들이 어떻게 떠돌다 사라지는지 그 기억들이 정말 사라진 것인지 아니면 앙금이 가라앉아 있듯 어딘가에 머물다 바람한조각에 휘~~~ 다시 되살아나는지....
하찮기만 한 많은 그 기억이라는 편린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면 어떤 외로움과 단절이 있을지 상상하게 한다. 1권의 모험만으로도 충분히 스릴과 긴장감이 넘쳤다. 두꺼운 장서이긴 했지만 그 모험이 한순간도 지루하지 않았다. 마지막장을 덮어두었지만 2권의 새로운 모험을 위한 짧은 숨고르기다. 2권이 무척기대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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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 랄프 이자우 (비룡소)
책을 읽고 난후 환상의 세계에서 빠져나오느라 멍한 상태로 있었다. 책을 매개로 해서 난 또다른 세상을 만날 수 있었고, 그 책을 통해서 작가의 넓은 정보, 추리 세계를 엿볼수 있어 그또한 새로운 기쁨으로 다가왔다. 인류의 역사는 수없이 많은 일들이 일어나고, 그 사건들이 하나의 점이 되어 점점이 사라져버리고, 또다른 사건으로 점철되는 것이다. 우리는 우리 이전의 그들의 일들을 그들이 남긴 문서나, 유물, 유적을 통해서 희미하게나마 들여다 볼수 있고, 그리고 알지 못하는 영역은 상상, 추측이라는 수단을 통해서 메꾸어 간다. 그렇다면 우리가 기억하지 못하는 많은 일들은 지금 어디에 있는가? 이런 질문을 작가는 던진다. 하루하루 바쁘게 일상생활에 쫓기다 보면 정작 소중한 것을 놓치는 경우가 많다. 작가는 그점을 이야기 하고 싶었던 것이다. 일상속에서 조금씩 희미해져버리는 소중한 추억과 기억들이 어딘가에서 자신들의 존재를 알리기위해 몸부림을 치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달라고 말이다.
소설에서는 주인공 쌍둥이인 올리버와 제시카가 어느날 우연히 경찰관의 방문을 받는것으로 부터 시작한다. 그들은 아버지에 관한 기억이 어느새 하얀백지가 되어버린 까닭을 찾기 시작한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투성이에서 조금씩 실마리를 풀어가던 올리버와 제시카 그들은 아버지가 남긴 일기장과 여러 자료들을 통해서 박물관에서 벌어지는 일의 심각성을 깨닫게 된다. 아버지를 찾아나선 올리버, 잃어버린 기억을 되찾기 위한 어머니의 머리핀을 가지고 이슈타르문앞에 서게되고 그는 잃어버린 기억의 나라 크바시나로 들어가게 된다. 한편 남겨진 누나 제시카는 박물관 직원 미리암의 도움을 받아서 사건을 조금씩 풀어간다. 크바시나의 지배자는 바로 크세사노로 고대 바빌로니아의 신이다. 크세사노는 살아있는 기억속의 세상과 잃어버린 기억의 세상을 모두 지배하기 위해서 그는 하나씩하나씩 기억을 잡아간다. 잃어버린 기억의 세계에서 수많은 기억들은 크세사노의 억압속에 새로운 구원자 고엘름이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다. 그가 바로 올리버였다. 올리버는 유리새 니퍼, 코퍼, 엘레우키데스, 레벤, 페가수스등의 도움을 받아서 크세사노의 수격대원 파추추들의 공격을 물리치고 마침내 아버지를 만나게 된다. 그리고 사건의 핵심인 크세사노의 진짜이름을 찾아내게된다. 올리버가 실마리를 푸는 동안 아버지는 다시 지상의 세상으로 나아가게 되고 미리암과 제시카와 함께 박물관에서 크세사노의 진짜이름을 알아낸다. 크세사노의 하수인인 야노스 하임덕의 정체가 낱낱이 드러남으로서 크세사노의 계획은 하나씩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세상의 왕인 루갈-안-업-다-림무-바를 크게 세번 외치면서 황금상인 크세사노의 지배야욕을 물리친다. 간단하게 줄거리를 요약했지만 중간중간에 들려주는 성경이야기, 고대 문명, 이라크이 유물 발굴등의 이야기들이 또다른 사슬고리를 만들어가면서 새로운 세계를 만들어갔다. 토마스가 사건 해결을 위해 헤르만을 설득하기 위해 들려주는 이야기를 하자면 "대홍수에 대해 지구의 모든 대륙에 수백 가지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한자의 舟에서 八숫자는 대홍수를 모면한 사람의 숫자와 정확히 일치하지." 하나의 사건이 개별로 나누어진것이 아니라 연결고리를 가지고 우리도 모르게 우리 주의를 에워싸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오늘 나의 소중한 일상이 내일이면 조금씩 기억의 뒷자락으로 희미해져가버리고, 보다 많은 시간이 흐른뒤에 난 까맣게 지워버린는 오늘이 되는것이다. 이번 책을 통해서 나의 기억속에 잊혀진 것들이 무엇이 있는지, 그리고 그들의 소림없는 아우성에 귀를 기울여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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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줄거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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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시대의 유머나 책은 그 세태와 문화를 그대로 반영한다. 요즘처럼 빠르게 변화하는 현대사회에서는 지나간 것을 챙기기보다는 현재와 미래에 대한 관심이 지대하여 우린 쉽게 과거를 흘려버리고는 한다. 아마도 그 때문일까? 이런 환상소설이 나온것은? 회색 인간들이 우리의 시간을 빼앗아 가는 '모모'에서처럼 크세사노는 우리가 쉽게 흘려버리고 잊어버린 기억을 그대로 가지고 가버린다. 쌍둥이 제시카와 올리버의 아버지인 토마스 폴락은 박물관의 경비로 일하다, 크세사노상과 함께 사라진다. 아버지를 찾아온 경찰을 만나면서 쌍둥이 남매는 자신들이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음을 깨닫게 된다. 크세사노상과 함께 사라진 아버지에 대한 기억. 둘은 아버지를 찾아 나서게되고, 올리버는 직접 아버지와 똑같은 방법으로 뛰어든다. 그리고,,, 제시카는 올리버를 기억하지 못한다. 단지, 올리버란 동생이 있었을 것이라는 추측과 아버지와 올리버가 같은 길을 가고 있다는 추측으로 제시카는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올리버는 새로운 세계에서 아버지를 찾기 위해 크세사노와의 싸움을 하게된다. 아직 1권이어서 그들의 모험은 그야말로 시작에 불과하다. 제시카는 아버지가 일하던 박물관에서 미리암이라는 동지를 만나서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가고, 올리버는 크세사노의 세상에서 새로운 경험을 하면서 그 속에서 잊혀진 동지들과 함께 수수께끼를 풀어나간다. 올리버가 만나는 나폴레옹의 쟈켓, 소크라테스와 대화하던 제자, 인도 공주의 장난감 새, 페가수스, 그리고 올리버가 어렸을 때 교실바닥에 떨어뜨려 나무바닥 사이로 떨어져 잊어버린 붓 등은 모두 사람들이 하찮게 잊어버린 기억들 속의 물건들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올리버가 동화되어 갈수록 현세에서 올리버에 대한 기억은 사람들에게서 점차 잊혀진다. '과거'를 하찮게 여기면서 더이상 '박물관'도 멀리하는 사람들. 박물관의 전시된 귀중한 물건이 없어져도 며칠 새에 잊어버리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에 반해서 올리버와 제시카의 노력은 잊어버린 아버지를 찾는다는 점에 있어서 가족소설이기도 하고, 멋진 모험이 있는 환상소설이기도 하다. '잃어버린 기억의 박물관'은 현재와 미래의 자신의 이익과 평안을 위해서 바쁘게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한 경종을 울리기 위해 쓰여진 소설이라는 생각이 든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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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에는 그렇게 쓰라고 해도 절대 스스로 써지지가 않던 일기인데, 나이가 들면서 자꾸 무언가를 메모하고 기록하는 습관이 생겼다. 아무래도 어릴 적에 비하면 기억해야 할 것도, 기억하고 싶은 것도 많아진 탓이겠지. 게다가 더이상 기억력이 나에게 신뢰를 줄 수 없는 탓도 있을 것이다. 자고 일어나면 잊어버리는 하룻밤의 꿈들, 뒤돌아서면 이내 잊어버리는 일상들, 눈에서 멀어지면 머리에서도 잊혀지는 사람들. 누군가에게 기억되지 못한다는 사실, 그것만큼 서운하고 쓸쓸한 일이 없을텐데, 그렇게 기억해줘야 할 사람이 정신없이 잊고 살 때 그 기억들은 어디에서 숨쉬고 있을까.
17세의 쌍둥이 남매에게 경찰이 찾아온다. 박물관의 경비원인 아버지가 유물을 훔쳐 사라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남매에게는 아버지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남매 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아버지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한다. 아버지의 일기장을 단서로 남동생 올리버가 크바시나로 모험을 떠난다. 크바시나는 '잃어버린 기억 속의 세상'이다. 누구나 진정한 자아를 잃어버렸을 때만 올 수 있는 곳, 마음에서 잊힌 것을 가지고 있는 사람만이 올 수 있는 곳이다. 그 세계에서 벗어나려면 누군가가 자신을 기억해줘야만 한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잊힌 사람들만 가는 곳이기 때문에, 그곳으로 떠나고 나면 세상에 남아있는 그와 관련된 모든 기억들이 사라지기 때문에 누군가가 자신을 다시 기억해 준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아버지를 찾기 위해 제시카는 이 세상에서, 올리버는 크시바나에서 아버지의 흔적과 단서를 찾아 다닌다. 그리고 그들은 그동안 아버지에게 너무 무심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크시바나에는 온갖 잊혀진 것들이 존재한다. 오랫동안 잊혀졌던 사람들, 새로 사버리는 바람에 없어도 아쉽지 않은 손때가 잔뜩 묻은 물건들, 지난밤 꾸었던 꿈들, 우리가 잊고 사는 역사적인 사실들 등. 분명 한때는 너무나도 소중했던 것인데 그렇게 쉽게 잊어버린다. 그리고 더이상 찾지 않는다는 것, 그것이 없어도 아무렇지 않게 살아갈 수 있다는 것. 책을 덮고 내 주변의 소중한 것들을 다시 한번 돌아보게 된다.
흔히들 이야기하듯이, 내일 모레면 서른인 사람이 아직도 스스로를 '소녀'라 부르고 있다. 그만큼 철이 덜 들었다는 말이 될 수도 있고, 여전히 꿈을 꾸고 있다는 의미도 될 것이다. 그래서 나는 판타지를 좋아한다. 같은 또래의 누군가가 아직도 유치하게 그런 걸 보고 있니, 하며 핀잔을 주어도 꿋꿋히 좋아한다. 아직 소녀인 나에게는 전혀 유치하지 않은 꿈과 모험이 가득한 이야기니까.
그런데 한가지 아쉬운 것은 판타지 문학이라는 것이 다른 장르와 비교하면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못 미친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는 정말 멋진 작품들도 있지만 환상문학의 대가로 꼽히는 미하엘 엔데를 제외하면, 많은 작품들이 장르 때문에 평가 절하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나름 국내 출판계에서 판타지 장르를 정착시켰다고 할 수 있는 이영도 작가 조차 그런 평가를 받을 정도니 말이다. 판타지 문학이라고 해서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모든 작품들을 평가 절하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더불어 더 많은 판타지 문학들이 쏟아져 나와서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나아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다.
아무튼 환상문학의 대가 미하엘 엔데가 발굴한 작가인만큼 랄프 이자우에게 거는 기대가 큰 것도 사실이다. 그리고 그 기대를 외면하지 않았다. 자신의 딸을 위해 작품을 쓰기 시작했다는 그의 말처럼, 이 책을 읽는 순간만큼은 어른의 안경은 벗어던지고 소녀, 소년의 눈으로 읽어보라. 그렇게 하면 판타지의 즐거움을 충분히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2008/01/10 by 뒷북소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