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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밌고 즐겁게 문학을, 그들의 놀이터에 놀러가보자!
Axt
![]() ![]() ![]() ![]() ![]() ![]() ![]() ![]() ![]() (우선 악스트의 창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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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 이름만 봐도 들뜨게 하는 작가분들이 대거 참여하신 잡지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표지부터 깔끔하니, 줄줄이 나열된 이름과 정면을 응시하는 천명관 작가의 얼굴이 보인다.
작가들과 평론가들이 쓴 솔직한 리뷰에서부터, 던져진 주제에 에너지 가득 담긴 그림들, 이우성 시인의 재밌는 뮤비 리뷰, 잡지커버 인물인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특히 주목!!), 전경린, 배수아, 김경욱 작가들의 단편, 그리고 이기호, 김이설, 최정화 작가의 연재소설까지(백가흠 작가의 사진 찍는 실력도 감각적인 듯 해요. 멋진 사진들도 감상할 수 있지요).
너무 풍성하고 푸짐한 이 문예지는 무게감에 비해 담겨 있는게 매우 두둑하다.
지금의 한국문학은 왜 외면 당하는지, 왜 문학을 좋아하는 건지 의문의 질문을 가끔 듣거나 하게 될 때가 있었다. 하지만 악스트에서 시원하게 답을 해준다. 대담한 질문에 답을 던져주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해주길 바라는 마음에서 천명관 작가를 창간호의 커버인물로 선정한 게 아닌가 어림짐작하게 만들 정도로 그의 인터뷰는 여러 길을 열어주는 역할을 하는 것 같다.
흥분과 설렘에 자꾸만 횡설수설하게 만든다.
흔히 문단 밖에 선 독자나 작가 지망생들은 그 견고하고 단단한 벽에 부딪히기도, 좌절하기도, 어렵다고 외면하기도 했다. 또는 그 안의 현실을 상상해보며 꿈을 꾸기도 환상을 품기도 했을 것이다. 작가, 뭔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같고 꿈을 직업으로 삼고 살아가니 부럽기도 하면서(무엇보다 월요병이나 출퇴근, 야근의 압박은 없을 것 같아서), 나와는 많이 동떨어진 세계라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예술 각 분야를 업으로 삼는 사람들이라면, 이러한 일종의 편견이나 선입견 등을 느껴보지 않았을까. 물론 그 안엔 사실도 있고, 사실이 아닌 것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과 소통할만한, 그들의 세계를 짐작할 만한 그 어떤 게 작품 뿐이었다면 독자가 먼저 찾아보지 않는 한 그 길 또한 막힌거나 다름 없을 것이다. 그렇다면 세상엔 재밌고 멋진 작품들이 그렇게 많은데, 왜 한국문학은 유독 어렵다고 느끼게 하고, 더 소프트하고 심플한 외국문학을 찾게끔 하는 것일까. 분위기도 한 몫 하는 것일까.
하지만 문학에 목마른 독자들이 곳곳에 존재할 것이다. 문학을 좋아하고 사랑하는 사람들이 분명 많이 존재할테지만, 그들은 종종 사회의 벽 앞에서 멈춰설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렇게 독서와 사유의 시간을 박탈당한 것일 수도. 밥벌이가 우선인데 문학을 찾아볼 겨를이 있을 수가 있나,
그래서 악스트의 창간이 반가운 것이다.
난 종종 문화예술 계통의 아이러니를 느낀다. 왜 예술을 하려면 배고파야 하고, 열정만 가지고서 임해야 하는가. 어쨌든 다 먹고 살자고 하는 짓인데, 왜 정당하게 맡은 일에 정당한 페이를 요구하면 속물로 지칭되는 것인지. 예술을 하려면 몇 년간은 그렇게 굶주려야 한다는 식의 사고방식, 예술을 하려는 열정이면 충분하다는 식으로 눈과 귀를 막고 갈취해가는 그러한 행태가 참 불편하고 어이가 없었다. (청춘이라고, 젊기 때문에 이정도는 겪어봐야 된다는 건 참...)
각설하고 ,
악스트의 시작은 카프카로부터 비롯되었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 카프카 -
악스트의 마지막 장, 편집위원들의 말을 들여다보자.
자기 안의 고독을 일깨우기 위해 사람들은 책을 읽습니다. 아직도 책이, 문학이 그런 생명력을 가지고 있음을 믿기 때문에 『Axt』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도끼는 무엇을 쪼개고 가르는 무기가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 가슴에 품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이기 위해 도끼를 들었습니다. 조금 덜 지루하고 재미있는 일을 하고 싶은 것뿐입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하고 글 쓰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놀이터를 만들어보고자 합니다. 끝까지 살아남은 책의 운명을 존중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들고 있는 도끼가 가장 먼저 쪼갤 것은 문학이 지루하다는 편견입니다. 『Axt』는 지리멸렬을 권위로 삼은 상상력에 대한 저항입니다.
우리는 매혹당하기 위해 책을 읽습니다.
나눌 수 있는 쾌락을 나누고 싶습니다. 개인적으로 한국소설, 그 중 단편은 특히나 여느 다른 나라의 문학과 비견하여 결코 뒤지지 않게 훌륭하다고 생각한다. 우연히 방문한 한 블로그에서 등단한 어느 시인이 자신의 창작품을 올려놓은 것을 보았다. 그는 청탁이라든지, 등단이라든지 제도에 묶여 있는 문단의 현 세태가 문학의 지평을 넓히는데 걸림돌이 되고 있다며 탄식하였다. 이는 악스트에 실린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 내용의 어느 부분과 맞닿아있다고 생각해볼 수도 있다.
(등단, 문학상 등 더이상 그들만의 리그라고 불리지 않아야 되지 않을까 싶다.)
매년 등단한 작가들만 해도 수백명이 될 텐데. 여전히 작가를 꿈꾸고 잘 읽고 잘 쓰는 이들이 넘쳐날 텐데. 진짜 작가라고 불릴 수 있는, 문예지 지면의 한 켠을 차지할 수 있는 작가들은 얼마나 될 것인가. 이름만 작가이지 청탁이 들어오지 않아 다시 등단을 해야 하는 경우는 또 어떠한지.
그래서 이에 따른 문단의 현실을 두고 천명관 작가의 돌직구는 어찌나 시원스러운지, 정말 이렇게 말해도 되나 싶을 정도이다. (궁금하시다면 악스트의 창간호를 구독하여 읽어보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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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팟캐스트라든지, 어플이라든지 접근이 용이한 매체가 늘어나고 있다. 문학 관련 팟캐스트의 등장도 무척이나 반가웠다. 단순히 책을 팔기 위한 도구만이 아닌, 각자의 개성을 가진 매체를 통해 듣는 작가들의 생생한 목소리를 통해 궁금증을 풀었고, 친밀감을 더했다.
익숙치 않던 작품과 작가의 목소리와 이야기로 마냥 멀리 떨어진 것처럼 느껴졌던 세계와의 거리가 조금씩 좁혀진 것이다.
내가 몰랐던 것들, 멋진 문장들, 재밌는 이야기들. 읽을 거리가 많아질수록 기쁘고 괜스레 뿌듯해진다.
악스트가 멋지고 재밌게 시작한 처음처럼 앞으로도 이만큼만 유지되기를, 또한 그들이 말한 것처럼 작가들은 물론 독자들과의 소통도 잘 이뤄지는, 기꺼이 위로와 격려의 판이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또 바란다.
한 가지 바람을 덧붙여보자면, 시 또한 이러한 문예지가 탄생되어 새롭게 독자들에게 다가설 수 있음 얼마나 좋을까 싶다. 횡설수설, 앞에서는 한국문학이 독자들에게 외면 당하기도 한다고 하였지만 그래도 소설만큼은 애정 듬뿍 담긴 독자들의 손길이 이어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반면에 시는 어떠한가. 내 주변만 보아도 시는 왠지 어렵고 더더욱 그들만의 리그라는 이미지가 많이 각인되어 있는 것 같다.
장르의 특성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냥 마냥 바라보는 것이다.
이러한 시 문예지도 생기면 어떠할까,
하는 소망과 아쉬움이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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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잡지는> 예스블로그 이벤트 100명 모집에 당첨 되었다.
<잡지 읽은 소감> 내가 생각하는 잡지는 미용실에서 시간때우기용이자 눈요기용이다. 잠시 기다리는 시간에 몰입도 되지 않으니 잡지가 제격이었다. 책을 좋아하는 독자 입장에서 문예잡지를 만나고 보니 반가웠다. 표지부터가 창간호라선지 인지도 높은 선정이 탁월했다. 제목은 '책은 도끼다' 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음을. 읽지 못한 책이라해도 제목만 아는 경우가 어디 한 두권이랴. 뭐든 잘 사용하면 유익하고 그렇지 않을 때엔 무기라는 본분에 머물뿐.
시중의 잡지는 칼라 화보가 많으면서 약간의 차이지만 두꺼웠다는 느낌이라면 여기는 화보가 많지 않으면서 얇다. 천명관 저자가 이 달의 표지 모델이자 집중 인터뷰가 있다 보니 화보가 몇 장 있다. 찰나의 미학인 사진이 빛을 발하는 순간이었다. 각도나 여백미를 살리면서 때로는 인물을 크게 부각시키면서 천명관 작가의 매력이 돋보이는 구성이었다. 내 눈엔 천명관 작가가 가수 김C로 보이기도 했다는.
소설을 위한, 책소개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독일어로 '도끼'라는 뜻의 이 잡지는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잡지라는 기능에 충실하다. 처음엔 글씨가 작아서 애를 먹었다. 무척 작은 글씨라기보다는 잡지라는 책의 사이즈에, 비하면 글씨가 중앙에 몰아서 배치되었다. 상하좌우의 여백미가 있어서 전체적으론 깔끔한 인상을 주지만 상대적으론 글씨가 중앙에 몰려 있어서 작다 라는 생각을 할 수 밖에 없었음을. 이런 면에서 적당한 배치를 하는게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성을 보면 Πreview/파트가 젤 먼저다. 14명의 리뷰가 등장하는데 여기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글씨는 작지 더구나 읽은 책은 아니지. 냉철한 리뷰, 비장한 리뷰, 조근조근한 리뷰 등 각자의 색깔이 있는 리뷰였고 엄선된 분들이었겠지만 책을 읽어보지 못한 독자의 입장에서는 뭔소리래? 싶은 마음도 적지 않았음을 밝힌다. 비단 여기뿐 만이 아니고 블로거들과의 소통에서 리뷰를 읽어도 뭔소린지 알 수 없는 경우와 같음을. 리뷰란 모름지기 같은 책 같은 공감 같은 책 다른 관점을 보는 일이라 생각하는데 읽어 보지 못한 책을 리뷰를 통해서 읽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려면 비교적 쉽게 써야하지 않나...
전경린 작가는 여러 권을 책을 통해 느낀 모호함이 여전했다. 배수아 작가는 리뷰로만 접했는데 어렵다는 이야기가 많았는데 그닥 어렵나? 싶은 마음과 끝이 애매한 결론이었다. 김경욱 작가는 동화처럼 과는 다른 조금은 냉소적인 느낌을 받았다.
내가 기억에 남는 건 이기호 작가와 김이설 작가였다. 공교롭게 둘다 책을 접하지 못했으나 그 제목과 리뷰는 읽어 봤다. 여기서 글을 대해보니 이기호 작가의 책을 찾고 싶구나, 김이설 작가의 글은 리뷰의 느낌하고 같다. 주인공인 여자의 삶이 얼마나 비루할 수 있는지, 그럼에도 삶은 계속되어진다는 것. 삶이 구질구질하다고 그냥 감 떨어지기를 기다리는게 아닌 좀 하층민의 천한 삶일지라도 살아내는 것.
“Ein Buch muß die Axt sein fur das gefrorene Meer in uns. ―프란츠 카프카 뒷 표지에 강렬하게 새겨진 문구. 그렇다 책을 읽는 일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일이며, 우리 안의 뭔지 모르는 것들을 받아들이는 일이 아닐까 한다.
공통적인 의견들인 책값이 너무나 저렴하다. 글을 쓴다는 일은 에너지를 쥐어 짜는 일. 그 에너지를 축적해 놓아야 하는 일. 그러자면 우선은 많이 읽어야하는 것. 자양분으로 축적되어 서서히 끄집어내는 게 쓰는 일이거늘 잡지중에도 품격이 있는 문예잡지가 문고판도 아닌데 너무 저렴한 거 아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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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에 친구님이 쓴 글을 보고 이 소설잡지 <악스트>를 알았어. 나는 한글로 썼지만 책 제목에 쓰인 건 ‘Axt’였어. 이 말은 영어가 아니고 독일말인가봐. 카프카가 쓴 말로 도끼를 나타내. 난 카프카가 한 말 안 지 얼마 안 됐어. 카프카는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말을 했더군. 카프카를 잘 알고 소설 많이 본 사람은 이 말 벌써 알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 카프카 학교 다닐 때 잠깐 들어봤지만 소설은 본 적 없어. 몇해 전에 평전을 보고 카프카가 어땠다는 걸 조금 알았어. 그 뒤에도 소설 못 봤군. 어렵다는 생각이 들어서 선뜻 보지 못한 거야. 이것을 보다보면 언젠가 카프카 소설도 볼 날이 올지. 그건 나도 모르겠어. 카프카 소설뿐 아니라 어려운 소설은 잘 안 보기도 해. 내가 가장 많이 보는 게 소설이지만,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됐어. 예전에는 잘 몰라도 보기는 했는데, 책을 보고 뭔가 써야 한다고 생각한 뒤로는 어려운 건 피하게 됐어. 이런 말 처음 하는 건 아니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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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렬한 햇빛을 뚫고 <Axt> 창간호가 도착했다. 처음 창간 소식을 접한 이후 출간을 무척이나 기다렸다. 얼마만의 읽는 문예지인지. 책 자체로는 예전에 읽었던 영화잡지<키노>가 떠올랐다. 일단 겉모습은 마음에 들었다. 유행하는 표현을 쓰자면 ‘고급진’ 느낌이 난다. 게다가 가격은 1,500원짜리 김밥 2줄도 안 되는 가격인 2,900원! 물론 중요한 건 겉보단 속임을 알고 있다. 우선 편집자 백다흠이 찍은 작가들의 흑백사진은 인상적이다. 14편의 리뷰는 읽은 책이 많지 않아 일단은 책부터 읽고 읽어야 할 듯싶다.
김민정 시인은 카프카의 문장에서 다섯 개의 키워드(책, 얼음, 바다, 도끼, 그리고 카프카)로 꼽았다. 다섯 개의 키워드로 그린 그림들이 실려 있는데 자꾸 들여다보게 된다. ‘Axt’가 ‘도끼’ 이외에 ‘Art & Text’인 이유일 것이다.
목차에서 관심이 갔던 글은 표지를 장식한 천명관을 인터뷰한 정용준의 글이었다. 천명관의 문학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들에 관한 말은 카타르시스가 느껴졌다.
임현의 「가능한 세계」와 김엄지의 「예지3」을 보고 두 작가가 동시에 일기 형식으로 소설을 썼군, 했는데 목차를 보니 ‘Diary Fiction’이었다. 처음 목차를 봤을 때 제대로 보지 않았던 것이다. 전경린, 배수아, 김경욱의 단편은 반가웠고, 장편의 시작을 알린 이기호, 김이설, 최정화의 소설은 기대를 품게 했다.
편집위원 이름 중 소설가 백가흠의 이름이 보인다. 백가흠과 백다흠은 형제다. 잡지를 만든 사람이 이 둘만은 아니지만 형제가 비슷한 길을 걷고 이런 멋진 잡지를 만들었다는 사실이 보기 좋았다. 이 리뷰는 내용에 대한 리뷰가 아닌 전체를 훑어본 리뷰다. 자세히 읽어봐야겠지만, 소장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출간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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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이 참여하고 있고, 페이스북을 통해 악스트의 탄생 과정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있었는데 드디어 세상에 나왔다. 출판계가 무척 어렵다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저런 다양한 시도들을 많이 하고 있기 때문이다. 종종 참신한 책들을 발견하고 '어디서 나온거지?' 궁그해서 보면 은행나무의 책들이 많았다.
신인 작가들을 발굴하고, 중견작가들의 작품들도 꾸준히 내고, 잘 안 알려진 외국 작가들의 소개도 꾸준하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야심찬 기획을 들고 나왔다. 청년 같이 다부지고 패기 있고 옹골차다.
독자로서 반가운 마음에 응원하게 된다.
컨텐츠를 훑어보니 소설가들과 번역가들이 쓴 리뷰들이 제일 먼저 눈에 띈다. 개인적으로는 번역가들이 쓴 리뷰들을 소설가들의 리뷰들과 구분하여 함께 실은 게 맘에 들었다. 번역가들도 소설가들과 더불어 제2의 창작 주체가 아닌가?
리뷰어들을 중심으로 읽어도 좋겠고, 리뷰한 책들 위주로 읽어도 좋겠다.
개인적으로 가장 먼저 손이 간 건
조재룡이 쓴 조르주 페렉의 『잠자는 남자』리뷰와 정영목이 쓴 이창래의 『영원한 이방인』 리뷰이다.
T.
신경숙 작가 표절 사건을 계기로 문단 권력에 대한 비판과 자성의 목소리들이 나오고 있다. 권력이란 본시 온갖 병폐들을 만들어내기 마련이다. 문단 권력이 문제라는 인식이 있다면, 소수에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시키면 된다.
좀더 지켜봐야 하겠지만 <악스트>에는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인다. 커버스토리로 천명관의 인터뷰를 실은 것도 그런 의도가 아닐까 싶다.
부디 <악스트>가 독립적인 제 영역을 구축하면서, 다양한 목소리와 시도들이 꽃처럼 만개할 수 있길 바란다.
Axt, Art&Text.
“Ein Buch muß die Axt sein fur das gefrorene Meer in uns.
<악스트>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로서의 사명을 잘 감당하길 바란다. 시작이 반이니 반은 이미 이룬 셈이다.
도끼자루는 누가 쥐느냐가 참 중요한데, 작금의 출판계나 문단 현실을 고민하고 성찰하는 작가들과 편집자들이 직접 도끼자루를 쥐었다는 게 이 잡지가 갖는 의의가 아닐까 한다.
독자로서 이 잡지의 취지에 동의하면서, <악스트> 제작에 참여한 모든 작가님들과 편집자님들을 응원하고 격려한다.
[덧붙임] <악스트>와 거기에 참여한 모든 분들을 응원하고 격려한다는 의미로 이 리뷰 역시 '아트 앤 텍스트'의 형식으로 썼다. 리뷰의 내용이 '텍스트'라면 표지로 작업한 사진들이 '아트'다. 꿈보다 해몽이 좋은가? 암튼 의도는 그렇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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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순수 예술지를 만나는 듯하다. 옛날 ‘심상’, ‘현대문학’ ‘월간문학’ ‘바둑’ 등을 연간 구매하여 읽었던 기억이 난다. 악스트 창간은 무엇보다 기쁘다. 작가들이 주인공이 되어 책을 만들어 나가고 있는 듯하다. 표지의 천명관 소설가의 모습이 친근감을 가지고 다가온다.
안으로 들어가 보면 다양한 구성으로 구미에 맞게 만들어져 있다. 특히 오늘의 작가들이 고민하고 생각하는 것들을 실시간으로 볼 수 있는 듯한 작품들이 많아 반갑다. 동시대 함께 호흡하는 시간 장소, 그리고 내용들을 나눌 수 있어 좋다. 작가들의 숨결이 마음에 너무 가까이 다가드는 듯하다.
책의 규모도 학교의 교지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어 장답게 느껴진다. 오랜 시간 교지를 만들어 오면서 ‘어떻게 하면 더욱 잘 읽힐까?’를 고민했던 기억이 지면에 겹쳐진다. 이미지도 말을 걸어 주는 듯하다. 이미지들은 생각을 고정하게 만드는 기능을 하지만 그래도 가깝게 하고, 친근감을 느낄 수 있게 하는 잡지의 매력이다. 이 책도 다양한 이미지들이 작가들과 함께 호흡하고 있다.
읽기가 좋다. 다른 단행본들처럼 많은 시간을 들여 읽지 않아도 되고, 필요하고 좋아하는 것들만 골라서 읽는 재미도 있다. 그리고 아는 분이 나오면 더욱 반갑다. 잡지가 가지고 있는 효능인 듯하다. 앞으로 악스트가 더욱 발전하며, 한국 문학의 한 축을 담당하기를 원한다. 참가하는 작가군들이 마음에 흡족하게 다가든다.
단지 활자가 너무 작은 것이 안타깝다. 더러는 활자의 크기도 조정하는 부분이 있었으면 나이가 든 사람들도 도움을 받지 않을까 여겨진다. 돋보기를 통해서도 잘 안 보이는 활자의 포인트가 있다. 글자의 포인트를 좀 키워 주시면? 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현장감 있게 대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장점이다. 작가들과 실시간으로 함께 호흡하는 기분은 지극히 만족스런 경험이 된다. 순수 예술지, 그 성장이라는 이름을 악스트를 재료로 해서 기원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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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스트가 처음 나왔을 때 주변 사람들에게 알리고 싶었다. 널리 알리지 못한 건 주변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이다. 간신히 한 명과 다른 한 명에게만 알렸다. 사서 사진도 찍어서 보내줬다. 믿지 않을 것 같아서. 가격때문에. 자꾸 돈 얘기를 하는데 돈이 없으면 책을 살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 책이 나오고 계속 나와서 다행이다. 나 아닌 다른 사람들이 부지런히 알리고 있다는 거 아닐까. 전경린, 배수아, 김경욱의 신작 단편들을 읽고 서평도 읽었다. 흔들리는 버스 안에서 김엄지의 예지3을 읽었다. 김엄지의 글들은 웃기고 톡 쏘고 큭큭거리게 했다. 초씨는 계속 연락을 취했을 것 같다. 세상에는 무의미한 만남이 가득해서 어느 순간에는 그게 유의미해 질테니까. 김경욱의 양들의 역사. 택시는 잘 안타지만 안타고 싶은 것 중에 하나지만 소설 안에서는 뭐든지 가능하니까, 이런 이야기도 쓸 수 있구나 한다. |
신경숙의 표절 사건으로 문학 권력과 문단 시스템에 대한 비판들이 제기되고 있다. 그런데 이 '사태'를 대하는 심정이 가장 참담한 건 아마도 소설가들이 아닐까 한다. 아마 깊은 자괴감에 빠져 있을 수도 있겠다. 순전히 우연히겠지만, 공교롭게도 그 즈음에 <악스트>라는 문학잡지가 출간되었다.
우선은 계간지가 아니라 격월간으로 발간되는 잡지라는 점부터 기존의 문예지들과 차별된다. 그리고 종이값도 안 될 것 같은 2900원이라는 가격. 이 가격으로 계속 출간이 가능할지 걱정스러울 만큼 지나치게 싼 가격이다. 그리고 컨텐츠. 사실 컨텐츠는 기존 문예지들과 거의 차별성이 없어 보인다. 시가 없다 뿐 단편과 장편, 그리고 리뷰로 짜여진 구성이 기존 문예지들의 포맷과 비슷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잡지가 기존의 계간 문예지들과 다른 점은 소설가들이 주축이 되었다는 점일 것이다.
사실 어느 조직이나 허리 역할을 하는 중추들이 중요한데, 이제 '중견작가'라고 할 수 있는 배수아와 백가흠, 정용준의 참여가 노작가들과 젊은작가들을 잇는 다리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선생으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이 있으니 젊은 작가들과도 친할 테고, 학생으로서 선생 밑에서 배운 적이 있을 테니 노작가들과도 친분이 있을 테니 말이다. 모든 세대의 작가들을 아우를 수 있다면 모든 세대가 공감할 수 있는 잡지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들이는 시간과 공이 엄청날 것 같은데, 자신을 위해 혹은 작품을 쓰는 데 투자할 시간을 기꺼이 할애해 이런 잡지를 만드는 소설가들의 문제의식을 다른 소설가들이나 출판계의 여타 다른 포지션에 있는 출판인들, 그리고 독자들과 공유할 수 있는 장이 될 수도 있겠다.
문학은 무엇인가에서부터 문학은 무엇이 되어야하는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담론들을 토론하고 생산할 수 있는 장으로서, 계간지 위주의 문예지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잡지가 되길 바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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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in Buch muß die Axt sein fur das gefrorene Meer in uns.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 ―프란츠 카프카 문학의 위기에 대한 말을 많이 하고는 한다. 소설은 죽었다는 이야기도 들려오고…. 하지만 어느 시대에 문학이, 또는 소설이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있었을까? 문학은 늘 깨어 있어야 했고, 깨어 있어야 하고, 또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그렇기에 문학과 시대의 불화는 어느 만큼은 예정된 것이고, 더군다나 어제 산 물건이 내일이면 유행에 뒤처지는 요즘 같은 시기에 문학의 위기는 지극히 당연한 현상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설은 늘 시대를 진단하고, 개인의 내면을 돌아보고, 새로운 길을 끊임없이 모색해 왔다. 영화의 시대, 인터넷의 시대, 스마트폰의 시대일 수 있는 지금은 물론이고, 앞으로 어떤 시대가 다가오더라도 소설은 그 시대에 맞는 모습으로 한결같이 남아 있을 것이라 믿는다면 지나치게 낙관적인 것일까?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탈바꿈하면서도, 또 늘 같은 모습으로 소설은 그 자리에 서 있을 것이라 희망을 섞어 기대해 본다. <악스트 Axt>는 소설시장의 위기와 침체가 자연스럽게 언급되고 있는 지금, 소설독자들의 얼어붙은 마음을 깨고자 창간되었다고 한다. 원래 무가지로 기획되었지만 가격을 매기지 않고는 서점에 들어갈 수 없다고 해서 결국 2,900원이라는 착한 가격으로 독자들과 첫 만남을 가진 이 잡지에는 장편소설 3편, 단편소설 3편, 소설서평 16편 그리고 천명관 소설가와의 인터뷰가 실려 있다. 평론가가 중심이 되는 문예지가 아니라, 작가 스스로가 중심이 되어 좋은 소설을 싣거나 그런 소설에 대한 서평을 통해 독자에게 다가가려는 시도에 긍정적인 평가를 보내고 싶다. 마침 좋은 소설에 대한 갈망을 지닌 독자들이 많아서인지, 아니면 착한 가격 또는 1회성의 화제 때문인지는 몰라도 <악스트 Axt>가 출간 한 달도 안 돼 1만 부를 찍었다는 뉴스가 검색된다. 그렇다면 일단 얼어붙은 독자의 마음을 깨는 도끼가 되겠다는 편집진의 1차적인 목표는 이룬 것이 아닐까 생각하면서, 처음 거둔 성과에 안주한다면 깨어진 틈이 그대로 다시 얼어붙어 버리지나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든다. 현재에 만족하지 말고 더욱 힘찬 도끼질을 통해 꾸준히 앞으로 나아가는 잡지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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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느낌은 의외였다. 문예지라고 하더니 남성 패션잡지인가 싶을 정도의 고급스런 종이. 칼라화보. 표지는 천명관 작가의 담배 피우는 모습. 파격이란 단어가 먼저 떠올랐다. 호기심을 불러일으킬까. 거부감이 들게 할까. 몇 장이나 넘겨도 계속된 칼라 지면에다 차례조차 문예지 같지는 않았다. 뭘까 이 책이 가는 방향은 ‘ 소설가를 위한 잡지’라고 밝히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소설이 주인공이다. 소설을 읽고 쓴 다수의 비평가들의 리뷰와 인기 소설가 천명관 인터뷰. 그리고 단편과 장편의 소설들. ‘책은 우리 안에 얼어붙은 바다를 깨는 도끼여야 한다.’는 카프카의 말을 곳곳에 인용한 것은 읽는 독자 보다는 쓰는 작가를 겨냥한 말 같았다. 리뷰를 슬쩍 훑은 뒤 인터뷰를 건너뛰고 수록된 소설을 읽었다. 배수아 작가는 역시 그 다운 소설을 썼고, 김경욱의 소설은 역시 또 재미있었다. 다음을 기대하게 하는 것은 김이설 작가의 소설이었다. 일단 재미있게 읽히고 어떤 이야기가 펼쳐질지 궁금하다. 이쯤해서 책을 검색해보니 고급 재질의 책 치고는 가격이 무척이나 싸다. 2,900원. 할인하면 2,610원. 부담 없는 가격이지만 필요한가에 대해서는 아직은 잘 모르겠다.
이것저것 다 읽고 천명관 작가의 인터뷰를 읽었다. 가수 김C처럼 나른한 얼굴을 한 작간데 읽을수록 자신만의 튼튼한 의지가 느껴진다. 입 떼기 어려운 문단 이야기가 나와서 저절로 귀가 솔깃해졌는데 보기보다 훨씬 더 용감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창간호이기에 과감한 시도를 한 것으로 보인다. 늘 그렇게 생각하지만 첫인상은 순간이고 나머지 관계를 결정 짓는 것은 그 안에 있는 내면의 모습이다. 내면에 울림을 주는 내용을 싣는 드문 잡지가 되길 기원해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