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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인의 <태형>이라는 단편이 있다. 때는 일제 강점기. 서술자는 무슨 일에선지 감옥에 갇혀 있다. 다섯 평 남짓 되는 방에 수감된 사람은 사십사 명. 학교 교실이 보통 스무평 남짓인데 거기에 책걸상 놓고 마흔 네 명이 들어가면 바글바글하다. 그런데 면적이 4분의 1이라면...... 이걸 묘사할 수 있는 사진을 구글에서 찾았지만 탑재는 안하련다. 끔찍하니까. 닭장이나 돼지우리는 그래도 옆 칸 돼지와 공간을 나눌 수 있는 격벽이라도 있지만 감옥에는 그나마도 없다. 게다가 여름. 서술자의 독백을 빌자면 "지옥이었었다. 빽빽이 앉은 사람들은 모두 힘없이 머리를 늘이우고 입을 송장같이 벌리고 흐르는 침과 땀을 싯을 생각도 안하고 먹먹히 앉아 있다.(중략)그러나 지금 그들의 머리에는 독립도 없고, 민족 자결도 없고, 자유도 없고, 사랑스러운 아내며 아들이며 부모도 없고, 또는 더위를 깨달을 만한 새로운 신경도 없다. 무거운 공기와 더위에 괴로움 받고 학대받아서, 조그맣게 두개골 속에 웅크리고 있는 그들의 피곤한 뇌에 다만 한 가지의 바램이 있다 하면, 그것은 냉수 한 모금이었다. 나라를 팔고 고향을 팔고 친척을 팔고 또는 뒤에 이를 모든 행복을 희생하여서라도 바꿀 값이 있는 것은 냉수 한 모금밖에는 없었다."
그들이 냉수 다음으로 바라는 것은 누구 한 명이라도 이곳에서 나가 한 치만큼의 공간이라도 더 늘어나는 것. 하룻밤을 셋으로 나누어 두 패는 서 있고 한 패는 교대로 눈을 붙이기로 하고 살고 있으니 한 사람분의 공간이 절실하긴 했으리라. 이때 한 영감이 등장하는데, 이 영감이 받은 판결은 태형 90대. 쉽게 곤장을 맞는 장면을 상상하면 되는데, 말이 90대지 이걸 칠십 넘은 양반이 맞으면 그냥 죽는다고 보면 된다. 이 영감님 입장에서는 아직 죽을 순 없으니 항소를 하면 되는데, 문제는 항소를 할 때까지 이 영감이 여기 있어야 된다는 사실이다. 영감을 제외한 나머지 43명의 생각은 순식간에 대동단결된다. '저 영감이 태형 맞으러 나가면 한 사람분의 공간이 늘어날텐데.. 영감이야 죽든 말든 좀 나갔으면...' 사실 산술적으로 나눠도 한 사람분의 공간이 마흔세 명에게 돌아가봐야 몇 센티미터나 될까. 하지만 순간 몰아치는 이기심은 영감의 생명 따위에는 관심없게 만든다.
우선 인권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일제 치하 감옥의 현실을 알아볼 수 있겠지만, 사실 이 작품에서 눈여겨 볼 것은 극한 상황에서 드러나는 인간의 민낯이다. 바깥에서 들려오는 형장 소리와 영감의 비명 소리에 잠깐 괴로워하지만 이미 일은 벌어지고 난 다음이다. 나는 지금 6인 1실에 누워 있다. 침대가 짜증나게 좁다.
<노트북 너비와의 비교. 아악... 좁다....>
침대의 상체 부분을 세우려고 해도 요즘 침대는 다 옆에 장치가 있어서 쉽게 올리고 내릴 수 있는 반면 여기의 침대는 머리맡에 수동 레버가 있어서 조작을 하자면 침대 옆에 일어나서 해야 하니 꽤나 불편하다. 처음보는 다섯 명의 낯선 사람들과 한 방을 써야 한다는 것도 편한 일이 아니다.
뉴스를 보니 연일 30도씨가 넘는 초여름 날씨라고 한다. 병원에 가만히 있어도 꽤나 덥다. 그런데 에어컨을 못 켠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외과 전문 병원인 이곳, 내 옆자리에 암수술 환자 아저씨가 누워 계시다. 찬바람을 쐬면 안된다며 병실 기온이 높아서 리모컨을 들고 찾아온 간호사에게 에어컨을 틀지 못하게 한다. 다른 환자들이 공용 정수기를 지저분하게 쓴다며 한국 사람은 안돼ㅉㅉㅉ 하며 한참 세평을 늘어놓을 때는 언제고, 이 분 하나 때문에 나머지 다섯이 부채를 부치며 앉아 있다. 방귀 냄새는 어찌나 지독한지 그냥 똥을 싼 듯.... 좀 원색적인가.. 아무튼. 불편해서 다른 병실은 없는지 물었더니 다른 병실도 꽉 찼다는 바람에 하릴없이 돌아와서 속으로 궁시렁거리고 있다. 한 곳에 오래 있으니 뭐 시덥잖은 것에도 예민해지는 것 같다. 빨리 나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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