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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적인 과학전사 마틴 가드너는 어린시절 내게 '마틴가드너의 양손잡이 자연세계'와 같은 혼란스럽기 그지 없는 책을 선사하더니 10년이 사뿐히 지난 2005년 나에게도 여지없이 시냅스 스크류파일드라이버를 선보인다. 그는 항상 내 의심 수준에서 저 멀리 떨어진 지평선의 크기만큼 전방위로 세상을 주시하며 연구한다.
독서를 함에 있어서는 텍스트 자체의 어려움 때문인지, 번역의 난해함때문인지는 모르겠으나 간혹 문장 자체가 명쾌하게 해석되지 않는 경우가 있었다. 허나, 가치전복적이고 본질근접적인(이 말을 오해하지 않길 바란다) 책 자체의 컨텐츠 수준은 이를데 없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식인 풍습에 대한 무조건적인 두려움과 비하감을 넘어서 그것이 사실인가 신화인가에 대해 처음으로 의심하게 되었고 나름대로의 논리를 갖게 되었다.
& 식인 풍습에 대한 광대한 문헌에서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설명이 없다는 것은 신기한 일이다.
이 명쾌한 한 문장은 그 동안 우리가 식인 풍습에 어떤 오해를 가져왔는지, 다른 문화에 대한 배타성이 어떠한 상징을 부여하는지 깨닫게 해준다.
그리고 그의 다윈에 대한 호의적인 태도(정확하게는 다윈의 논리에 호의적이라 하겠다) 프로이트에 대한 호전적인 태도(또한 정확하게는 프로이트의 논리 자체를 어처구니 없어한다 하겠다)는 그의 과학을 향한 진지한 태도를 보여 주었으며,
& 종종 사용되는 구절을 반복하면, 프로이트는 옳은 곳에서 독창적이지 않고, 독창적인 곳에서 잘못을 범하고 있다. 다윈과 비교해보라. 다윈은 옳은 곳에서 창조적이었다. 독창적이지 않은 곳에서-라마르크주의에 대한 그의 옹호처럼-잘못을 범하고 있다.
'프로이트 이후의 현대 꿈 이론'에서는 '비엔나 돌팔이 의사'의 뛰어난 문학적 자질이 독보이는 꿈이론 마저 수술대 위에 올려놓는다.
& 어떤 문제를 풀고 있는 동안 컴퓨터에서 불필요한 자료를 제거하는 것이 어려운 것처럼, 우리가 새로운 감각자료들을 바쁘게 처리하며 깨어 있는 동안 우리의 기억에서 허섭쓰레기들을 치우는 일이 발생한다면 우리는 미쳐버릴지 모른다. 에번스와 뉴먼에 주장했듯이, 꿈은 저장 공간을 깨끗하게 치우기보다는 중요한 기억들에 더 직접적으로, 간단하게 접근할 수 있도록 통로를 깨끗하게 치워준다. 컴퓨터에서 불필요한 자됴들을 일상적으로 제거하지 않으면 컴퓨터의 속도와 효율성이 떨어지고, 심지어 소프트웨어끼리 충돌을 일으킬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REM 꿈을 꾸지 못한다면 우리는 다시 꿈을 꿀 때까지 행동의 무질서와 정신적 피로를 감수해야만 한다. 프로이트가 믿었던 것처럼 꿈이 잠을 유지해주는 것이 아니라 그 반대다. 우리는 꿈꾸기 위해 잠을 잔다.
..()..프로이트주의자들은 꿈을 회상하거나 분석하는 것이 유용하다는 것을 발견했다. 크릭과 미치슨은 그렇지 않음을 제시했다. 그들은 <네이처>에서 "우리는 잊기 위해 꿈을 꾼다"고 썼다. 꿈을 회상하기 위한 노력들은 실제로 해를 입힐 수 있다. "꿈을 기억하기 위한 노력은 잊어버리는 것이 더 나은 사고패턴들을 살리게 할 수 있기 때문에 장려되어서는 안된다. 그런것들은 생물체가 버리기 위해 노력하는 바로 그 패턴들이다."
지구를 떠났던 인격들과 대화를 하기 위한 기구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던 귀여운(?) 에디슨, 성경의 역사적 진실성에 대한 투철한 믿음으로 엄청난 저작활동을 했지만 후세에 대부분 무시를 받은 아이작 뉴턴 그리고 그에 관한 우스운 일화들
& 뉴턴의 독특하고, 내성적이며, 속으로 삭이는 성격은 아직도 수수께끼로 남아 있다. 동시대인들은 그의 침울한 용모를 알고 있었다.
..()..영국 철학자들 가운데 가장 친한 친구였던 존 로크(john locke)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이렇게 썼다.
"당신이 나를 여성들과 다른 방법으로 엮으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나는 그것에 너무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누군가 나에게 당신이 아프고 오래 살 것 같지 않다는 말을 했을 때, 나는 당신이 죽는 게 낫다고 대답했습니다. 나의 이런 무례를 용서해주기를 바랍니다."
또한 빼놓을 수 없는 재미였지만,
나는 그가 이 책을 쓴 가장 커다란 이유를 아래 단락의 '다윈의 편지'에서 찾을 수 있었다. 이것은 다윈의 글이지만 가드너의 생각과도 일치할 것이라는 나의 생각이다. 나 또한, 이 글과 같다. [인상깊은구절] & 그것은 항상 저를 고통스럽게 합니다. 나는 혼란스럽습니다. 나는 무신론적으로 쓸 의도가 없습니다. 그러나 나는 설계의 증거와 우리의 모든 것들에 대한 인자함을 그렇게 보고자 하지만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볼 수 없음을 고백합니다. 나로서는 이 세상이 너무 가혹합니다. 자애롭고 전능한 신이 살아 있는 쐐기벌레의 몸 속에서 그것을 갉아먹으려는 명백한 의도를 지닌 맵시벌을 계ㅎ괴적을 창조했거나, 고양이가 쥐를 희롱해야만 한다는 것을 내 자신에게 납득시킬수 없습니다. 이것을 믿을 수 없다면, 나는 눈이 명백하게 설계되었다는 믿음에서 필연성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그 반대로 나는 이 놀라운 우주, 특히 인간의 본성을 보고 모든 것이 폭력의 결과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전혀 만족할 수 없습니다. 나는 좋든 싫든 그 구체적인 모든 것들은 우리가 우연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작업 결과에 맡겨지는, 계획된 법칙들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고 싶습니다. 이런 생각은 저를 조금도 만족시키지 못합니다. 나는 모든 문제가 인간의 지성에게는 너무 심오한 것임을 매우 철저하게 느끼고 있습니다. 개 역시 뉴턴의 마음을 추측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각자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을 바라고 믿게 놔둡시다. 확실히 나는 내 관점이 절대로 필연적인 무신론이 아니라는 당신의 의견에 동의합니다. 번개는 엄청나게 복잡한 자연법칙의 작용으로 선한 사람과 악한을 가리지 않고 죽입니다. 심지어 한 아이(바보로 판명날 수도 있는)는 더 복잡한 법칙의 작용으로 태어나는데, 왜 인간 또는 다른 동물이 태초에다른 법칙들에 의해 태어나면 안되는지, 그리고 이 모든 법칙들이 미래의 모든 사건들과 결과들을 알고 있는 전지의 창조주가 명백하게 설계해야만 했던 것인지, 나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생각하면 할수록 점점 혼란스럽습니다. 이 편지에 씌어 있는 대로 말입니다.네이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