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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책을 읽으면서 꼭 이야기해고 넘어가야겠다. 싶었던 것이 있다.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 박경리 선생의 <일본산고>에 대한 감상을 옮겨온다.
이 중에서 4번에 대하여 살펴보려 한다. 사무라이 정신. 할복. 그리고 세계대전 당시의 카미카제 부대. 이들은 주군을 지키기 위해서 자신을 죽음에 이르게 한다.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칼을 배에 쑤셔넣는)으로 죽으라 하는 그들의 주군은 누구인가? 먹이사슬을 거슬러 올라가면 신국과 만세일계와 현인신에 닿아있다.
한국인은 한이 쌓이면 울분을 토하지만, 일본인은 안으로 계속 그 슬픔을 밀어넣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체념하게 되고, 자기를 죽음으로 내몰게 되고, 그로부터 마조히즘을 느낀다고 평가한다. 그래서 박경리 선생은 일본의 문학는 삶의 문학이 아닌 죽음의 문학이라고 이름 짓는다. 선생이 쓴 산고 안의 소제목처럼 그것을 풀어낼 '출구가 없는 것'이다.
출구를 찾아서 일본의 근대문학은 크게 요동친다. 선생이 보기에 죽음의 문학은 인간의 삶 자체를 조명하는 문학이 아닌. 욕망의 의식을 바깥으로 끌어내어 관찰하는 문학이다. 관찰의 형태로 사랑과 치정이 구분될 수 없는 모양새로 얽힌다. 자살이 미화된다. 이로부터 탐미주의라는 이름을 가진 장르가 탄생한다. 나는 <일본산고>를 읽은 후부터 지금까지 한국문학은 삶의 문학에 가깝고, 일본문학은 죽음의 문학에 가깝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런데 <보통의 책읽기>에 소개된 일본문학 감상들을 읽으며, 일본 문학과 '죽음'이라는 말은 너무나 동떨어져있음을 깨닫게 되었다. 오히려 작가 카쿠타 미쓰요는 <보통의 책읽기>를 통해서 시대의 거센 바람. 개인의 실존. 즉. 어쩔 수 없는 내던져짐으로부터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지속적으로 사유하고 있었다. 대표적으로 언급하자면. 모로타 레이코의 <게이코>에 대한 감상에서 그녀는 다이쇼, 쇼와 시대를 상징하는 인물인 게이코를 이렇게 바라본다. 145. 게이코의 모습을 조마조마하게 쫓아가다 보면 사람의 목숨이나 인생에 대해 티끌만큼도 생각하지 않고 멋대로 희롱하는 시대의 거센 바람이 보인다. 사람은 시대에 따라 살 수밖에 없지만 저자는 게이코를 시대에 희롱당한 여성으로 그리지 않는다. 시대에 저항할 수는 없지만 그 시대를 영양분으로 삼아 살아간 여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자신에게 닥친 재난도 불행도 게이코는 살아가는 근력으로 바꾼다. 이외에도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의 저자로 잘 알려진 아고타 크리스토프의 자서전 <문맹>(국내 미출간인데 하루빨리 출간되기를 소망한다,) 에 대한 감상문에서 저자는 아고타를 살게 한 이유에 대하여 이렇게 평한다. 135. 저자에게 있어 '쓴다'라는 행위는 삶과 같은 의미였다. 돌아갈 수도 없고, 죽을 수도 없고, 그곳에서의 하루하루를 꿋꿋하게 살아가는 것, 어릴 적 나에게 충격을 안겨준 소설이 그러한 과정을 거쳐 탄생했음을 알게 되니 놀라움과 동시에 더욱 깊이 소설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 마음속까지 관통하는 그 강인함은 언어와 함께 빼앗긴 가족과 추억을 되돌려 받기 위한 의지이며, 자신을 지키는 수단이기도 했다는 것을. 저자에게 있어 쓴다는 것은 끝나지 않은 싸움이다. 역시 깊은 속마음까지 관통하는 책이다. 결론은 시대나 어떤 문학은 삶이고 어떤 문학은 죽음이라는 문제를 국가에 대한 분류로 하는 것은 상당히 어리석은 생각이라는 점이다. 어떤 국가의 소설은 삶의 소설이고, 어떤 국가의 소설은 죽음의 소설일 리가 없다. 더 나아가서 작가의 경우에도 <추락하는 새는 날개가 없다.>, <나는 나를 파괴할 권리가 있다>, <인간실격>, <타나토스>와 같은 작품을 쓰는 작가에게 죽음을 쓰는 작가라고도 할 수 없다. 그들의 의식이 삶을 다룰 때도. 죽음을 다룰 때도 있기 때문이다. 솔직하게 말해서 삶과 죽음을 구분해서 소설을 분류하는 것도 생각해 볼 문제다. 2. 이 책을 읽으면서 대단한 소설이라고 생각하게 된 일본소설 하나를 소개해보려고 한다. 2015년 나오키상 수상작인 니시 가나코의 <사라바>라는 소설이다. 아마도 <보통의 책읽기>의 저자인 가쿠타 미쓰요가 굉장히 반가워했을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녀의 감상에서 좋은 소설이라고 말한 요소를 많이 가지고 있는 매력적인 소설이기 때문이다. 보통에 얽힌 그녀의 글을 간추리며 어떤 설명할 수 없는 확신이 생긴다. 12. '보통'이라는 건 커플 양쪽 모두의 공통된 인식이어야 한다. (중략) 그렇게 두 사람 사이에서만 허용되는 '보통'이 형성된다. 하지만 그건 최대공약수의 '보통'이며, 모두에게 통용되지 않는다. (중략) 책과의 관계도 그와 꼭 닮았다. 209. 평범함, 범용함이 그다지 환영받지 못하는 시대다. 개성은 보통이 아닌 것과 동의어가 되어 타인과 다른 것, 일반에 매몰되지 않는 비뚤어짐을 무턱대고 찬양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 참을 수 없다. 223. 개성은 존중의 대상이긴 하지만, 그 사람의 아무리해도 바꿀 수 없는 '핵심'이란 결코 독창성이나 창조력 같은 것이 아니라 좀 더 투박하고 때묻지 않은 그 무엇이고, 산다는 것은 나와 다른 것과의 싸움이 아니라 자기 자신의 핵심과의 싸움이 아닐까. 그 싸움을 지탱하는 것은 다른 무엇도 아닌 그 사람이 가장 순수한 형태로 좋아하게 된 것일지도 모른다. 230. 다른 사람과 다른 것을 해야만 하는 것, 특수해야만 하는 것이 개성이 아님을 이 소설을 읽고 있다 보면 절실히 깨닫게 된다. 사람은 그저 평범하게 있는 것만으로도 특수하고, 좋아한다 사랑한다고 절박하게 외치지 않아도 사람과 사람은 이렇게 서로에게 다가설 수 있다. 252. 그녀는 머물 곳을 찾고 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라는 것을 획득하기 위해 싸우고 있는 게 아닐까. (중략) 세상은 보통이 아닌 것을 배제하려 한다. 보통보다 많이 뚱뚱한 귀국자녀 후키코 씨가 따돌림을 당했던 것처럼. 그래서 우리들은 배제되지 않기 위해 보통인 척을 해야 하는 게 아니라 자기 자신이 머물 곳을 자력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보통이라는 환상과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면 자신이 머물 곳은 결코 발견할 수 없다.
이 소설은 "어떤 부분에서는 일본인은 안으로 계속 그 슬픔을 밀어넣는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들은 체념하게 되고, 자기를 죽음으로 내몰게 되고, 그로부터 마조히즘을 느낀다고 평가한다." 라는 박경리 선생의 주장을 완벽하게 따르고 있다. 8.내게는 이 세계밖에 없다, 여기서 살아갈 수밖에 없다. 는 체념과 자기학대에 대한 심리묘사도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박경리 선생이 파악한 그들의 단점을 인정하고, 그다음을 모색한다는 것이 <사라바>가 대단한 이유가 아닐까 싶었다. 니시 가나코는 이러한 체념적 행위(다카코에서 아유무로 전이)가 고통을 극복하는 방법이 될 수 없음을 주장한다는 점이다. 309. 나는 자신의 아무것도 믿지 않았다. 나는 내 주위의 것만 믿었다. 그 진리에 바짝 달라붙어 알랑거리고 자신의 감정을 계속 무시했다. <사라바>는 이것을 극복하는 이야기를 그려냄으로써 삶과 죽음의 문학에 얽힌 틀을 완전하게 깨뜨려버렸다. 3. 하고 싶은 이야기가 더 있는 것도 같지만 머리가 아파서 이쯤에서 그만하고 생각나면 나중에라도 다시 해보려한다. 여기에 소개된 작가와 작품을 알게 돼서 기쁘게 생각한다. 처음에 읽을 때는 1부에서 다룬 작가의 전작으로 만들어진 작가론적인 글을 많이 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3부를 읽고 책을 덮은 후에는 그런 생각이 사라졌다. 3부에서 특히 감상 속의 깊은 사유가 느껴졌다. 메모해 둔 구절을 옮기며 마무리하고 싶다. 20. 나는 이야기를 따라잡기 위해, 순수하게 지식을 쌓기 위해 책을 읽지는 않는다. 15년을 걸려 깨달았다. 세상에는 나보다 오백 배, 천 배 책을 읽은 사람이 있고, 그런 사람을 따라잡으려고 하는 건 소용없다. 그렇게 뒤만 좇을 바에야 지식 따위 없어도 상관없다. 나를 부르는 책을 한 권 한 권 읽는 편이 낫다. 26. 이 세상에는 추악한 것이나 번잡한 것. 절망과 불안과 질투와 체념 같은 것들이 소용돌이친다. 그러한 것들, 혹은 그러한 낌새가 머리가 아닌 몸이 알지 못하면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소설은 읽을 수 없다. 35. 삶에 얽히는 번거로움, 모순, 잔혹함, 여의치 않음, 패배할 것을 알면서도 그것과 싸우거나 나약해지는 모습을 나는 이 다자이 오사무의 언어에서 본다. 37. 우리들은 늘 까닭을 알 수 없는 것에 공포를 느낀다. 공포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름을 붙인다. 이름을 붙여 분류하면 안심할 수 있다. 75. 보통 사람은 자신의 핵을 이루는 부분을 숨기고 살아간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제정신으로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그 부분을 오랜 시간 무방비 상태로 사람들에게 계속 드러내면 매우 위험하다. (중략) 그래서 사람은 지식과 이데올로기와 경험 혹은 이력, 지위가 있다면 지위, 돈이 있다면 돈, 그런 것들로 튼튼하게 무장하고 있다. 그러한 무장을 완전히 거부한 작가가 찰스 부코스키이다. 92. 하나하나의 소설이 사람의 생의 무게를 훌륭히 그려내고 있어 아프거나 수명을 다해서 사망한 것이 아닌 죽음의 수수께끼는 삶의 수수께끼이기도 하다는 것을 뼈져리게 깨닫게 된다. 94. 그녀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항'이다. 세상, 상식, 안주, 권력, 또 자신에게까지 줄곧 저항했다. 그녀가 만들어낸 것 모두가 저항으로부터 생긴 알력이다. 알력은 지금의 우리들에게 자유와 선택을 위임해 주었다. 104. 소설을 읽는 즐거움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저 맛보는 것. 106. '우리들은 연결되어 있으면서 단절되어 있다.' 121. '가족은 무엇일까'라는 한정적인 물음이 아닌 '사람과 사람의 관계는 무엇일까' 138. "좋아, 사랑해"라는 감정만이 남자와 여자가 함께 하는 이유는 아남을 깨닫게 한다. 강한 애증이 관계의 농도를 결정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도. 247. 나에게 좋은 단편소설이란 실제 페이지 수의 몇 배로 세계가 부풀어 오르는 소설이다. 한창 읽고 있는 동안 팽팽하게 부풀어 오르는 소설도 있고, 다 읽자마자 왈칵하고 세계가 넓게 퍼지는 소설도 있다. 263. 내가 아는 현실과 전혀 다른 세계라 하더라도 그것이 색다른 힘을 갖고 있다면 내가 보고 있는 현실로 침식해온다. 268. 우리들은 강하거나 나를 지켜줄 수 있을 것 같은 것에만 의존하지는 않는다. 공포나 불편함, 쾌락, 슬픔에도 의존한다. 4. 이 작품은 2005년 <대안의 그녀>라는 작품으로 나오키상을 수상한 가쿠타 미쓰요라는 작가가 2003년부터 2009년 까지 쓴 독서일기를 엮은 책이다. 오래 전에 이 책을 사놓은 기억이 있어서 반가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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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가 다양한 책들을 읽고 쓴 서평을 모은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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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다보면 같은 책을 읽은 누군가와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어떤 부분이 좋았는지, 혹은 제목부터 별로이지 않냐며 그렇게 한바탕 비평가인듯 착각하며 이야기를 나누고 싶어진다. 그 상대가 이 책 [보통의 책읽기]의 저자 가쿠타 미쓰요라면 정말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너무 어릴 때 고전을 읽다보면 저자가 담백하게 풀어낸 문체가 가슴에 와닿지 않는다. 산다는 것은 엄청나게 버라이어티 해야하고 예측불가능하며 그 와중에 셜록에 나오는 탐정처럼 명민한 주인공이 내가 되어야만 하는 기대가 있기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저자가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이즈의 무희]를 정말 재미없다고 독서감상문 과제로 제출했다는 일화를 읽었을 때 공감했던 이유이기도 하다. 물론 저자가 그러했듯 나도 시간이 지난 이후 다시 읽고서 이 멋진 작가를 왜 내가 진즉에 알아보지 못했었나 후회했던 적도 많았다. 하지만 결국 늦게 진가를 알아보았다고 하더라도 오히려 더 잘된일인 경우가 많다. 저자가 쓴 작품을 연대별로 편안하게 골라 볼 수 있는 특권 아닌 특권이 주워지는데 마치 종방 후 드라마를 한꺼번에 몰아보는 느낌같다. 이 책의 아쉬운점은 아직 국내에 번역되지 않은 저자의 작품들이 많아서 책을 읽고 찾아보려고 해도 구할수가 없다는 점이다. 이것은 정말 치명적이다. 마치 엄청나게 맛있는 음식을 봤지만 국내에서 파는 가게가 없는 것과 같다. 어떻게든 재료를 구해 비슷하게나마 만들어먹거나 여행을 떠나는 방법처럼 원서를 구해와 지인에게 번역을 부탁해야하나 싶은 책들이 수두룩하다. 특히 [후지 일기]가 그랬다. 이 작품은 비단 가쿠타 미쓰요뿐 아니라 다른 유명 일본문인들이 추천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에 번역본이 없다는 것이 너무 아쉬웠다. 물론 이렇게 아쉬움을 극대화 시키는 소감도 있지만 국내에서 영화로 개봉되었던 [방황하는 칼날]의 경우는 결말을 노출시켜서 살짝 저자가 미워질 뻔했다. 스릴러, 추리소설의 핵심, 절대 스포를 하면 안되는데 이런 류의 책들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서문에서 저자는 책이 사람을 부른다고 말했다. 자신의 글을 통해 재미겠다 싶은 맘에 한 권 집어들어주면 좋겠다고도 말했다. 당연하게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다. 결말을 다 알려주고, 국내에 번역본이 없어서 아쉽긴 하지만 내가 읽었었던 이이지마 나미의 작품 속 소소함을 공유하는 기분은 이 글 서두에 밝힌 것처럼 같은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딱 그런 기분을 느끼게 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 책을 읽은 뒤 가장 먼저 읽고픈 책은 사소해서 집중하지 않았던 책을 재발견했을 때의 기분, 나이들어서 다시 읽었을 때 깨닫게 되는 작가의 천재적인 문장력을 세세하게 느끼는 이 작가의 작품을 가장 먼저 읽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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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통의 책읽기
일본인 소설가 가쿠타 미쓰요의 독서에세이인 이 책은 주로 소설을 소개하며 저자만의 이야기를 펼쳐놓는다. 나는 소설을 즐겨 읽지 않지만 가끔 읽고 싶은 소설을 읽는다. 이 책을 읽으면 내가 읽지 않았지만 저자가 심플하게 그려내는 보통의 책읽기에서 의미있는 메시지를 발견하게 된다.
소설의 힘은 역시 소설속에 등장하는 인물과 이야기속에서 발견하는 삶의 모순과 환희, 그리고 읽는 이의 가슴을 초기화 시켜주어 인생에 대해 다시 해석하여 보여주는데 있다. 우리가 잊어버렸던 이야기, 추억, 자아, 정체성, 가족, 사랑,.. 인생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삶과 인간 군상들의 뒷이야기까지, 책속에서는 모든 것이 가능하고 또한 모든 것이 이야기가 된다.
우리는 소설속에서 위로를 받고, 분노하며, 세상을 잠시 먼 발치에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다. 나 자신은 어떻게 살았는지, 무엇을 생각하지 않아도 내 기억들과 어느정도 일치하는 순간이 오면 맞춤형 장치처럼 자동으로 나를 불러내어 추악함과 그리움, 그리고 누군가를 마주하게 만든다.
책들이 살아나 저자에게 말을 거는 기적이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다. 그것은 간절함에 있다. 히말라야 도서관의 저자 존 우드는 인도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책을 사원에 가져다 놓자 한 주에 50명은 족히 될 어린이가 아침부터 임시 도서관으로 달려왔다고 한다. 이렇듯 도서관에서는 계급, 성별,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책을 자유롭게 읽을 수 읽기에 도서관에서 그 아이들이 배운 삶의 교육은 그 어느것으로도 바꿀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책이 우리에게 주는 유익이자 구원이다.
나도 오늘부터라도 하루에 몇십페이지를 목표로 두고 읽는 습관을 길러야겠다. 하루라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없도록 책을 읽고 글을 쓰자. 그들의 언어들을 나의 것으로 만들도록 노력해야겠다. 아무튼 이 책은 기타 다른 독서책과는 다른 재미를 맛보게 해줄 것임은 분명하다.
사실 내가 모르는 소설들이 수두룩하다. 물론 일본인이기에 일본 책을 소개하기에 그렇지만 번역이 안되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요소들이 책을 보는 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 오히려 이런 소설들이 있다는 것과 마음의 상황에 따라 책읽기가 가능하며, 새로운 소설을 알려주어 기쁘기까지 하다.
책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보통의 책읽기는 반가운 책이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소설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겐 더욱 소설을 좋아하게 만들것이고, 소설을 읽지 않는 사람들에게도 소설이 주는 매력을 깨닫게 되어 그 전보다 더욱 소설책을 가깝게 두게 될 것이다.
글을 쓰는 걸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도 이 책을 읽는 다면 책을 읽는 일을 게을리 할 수 없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본인 소설가가 자국의 책을 읽고 그의 편지같은 이야기를 전해듣는 것이 오히려 더 넓은 책세상을 만끽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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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종이달'이라는 소설로 우리나라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일본인 작가 '가쿠타 미쓰요'의 독서감상문 모음집이다. 그녀 자신이 이 책속에 쓰여진 글에 대해 '서평'이 아닌 '감상문'이라고 강조했듯이 이 책속에 열거된 글들은 책에 대한 냉정한 평가와는 거리가 먼 그녀 자신이 책속에 들어가서 느끼고 체험한 이야기들이다.
그녀는 말한다. 어른이 되지 않으면 '가와바타 야스나리'를 읽을수 없다고. 머리가 아닌 우리가 살아낸 몸으로 읽는 책들이 있다고. 시간이 흐른다는건 결코 무언가를 잃어버리는것이 아님을 그녀의 글을 읽으며 또다시 위로받는다. 그리고 내 시간들이 쌓인 몸으로 내게 말을 거는 책들과 조용히 마주보고 싶어진다. 그저 읽는 것이 아닌 문장하나하나가 생각과 경험과 엉켜 하나가 되는듯한 느낌의 이런 서평. 나도 이런 나만의 서평이 쓰고 싶다. 이 책은 내게 그렇게 다가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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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대한 책은, 언제나 좋다. 처음 책에 대한 책을 읽었던 건 아직 읽지 못한 책이 많은데 도대체 어떤 책을 읽어야 할지 알 수가 없어 도움을 받기 위해서였다. 몇 권을 거친 지금은, 남들(유명한 작가이거나 평론가이거나 전문가들 그 누구거나)은 어떤 책을 재미있게 읽었는지 내가 읽었던 책은 어떻게 다르게 읽었는지를 읽는 것 자체가 즐겁다. 그래서 기회가 있을 따마다 찾아 읽게 된다. 때로는 엄청난 감동을 하며 즐거운 책읽기가 될 때도 있고 어떨 때는 거의 공감하지 못한 채 한 권이 끝나버릴 때도 있지만 새로운, 내가 전혀 관심을 가져보지 못할 만한 책을 한 권이라도 발견한다면, 그 책은 성공이다.
<보통의 책읽기>는 가쿠타 미쓰요가 쓴 책에 대한 에세이와 감상문을 엮은 책이다. 사실 가쿠타 미쓰요...라는 이름은 잘 모른다. 약력을 보다가 깜작 놀랐다. 몇 년 전 읽었던 <8일째 매미>의 작가이다. 작가의 다른 작품은 읽어보지 못했지만 단 한 권으로 내 기억에 남아있는 책이다. 추리 스릴러였지만 무언가 묵직함을 남겨주던, 그런 책이었다. 그런 작가가 읽은 책은, 책에 대한 감상은 어떨까.
사실 <8일째 매미>를 기억하고 이 책을 읽자니 또다시 놀랄 수밖에 없다. 보통의 작가들이 수필과 소설은 많이 다른 분위기를 풍기기는 하지만 이 책의 경우 그 간극이 너무 커서 말이다. 무서워서 다음 장을 넘겨야 할지 넘기지 말아야 할지 고민하게 만들었던 소설과 달리 작가의 책에 대한 책은, 굉장히 편안하다. 편안하다 못해 가끔은 '이 사람 정말 작가 맞나...' 싶을 정도로 가식 없이 간단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하고 있다. 감상문은 다소 짧게 느껴져서 아쉽기도 하고 2권을 하나로 묶어 이야기하는 것도 많아서 다소 깊이감이 떨어진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으며 든 생각은, 이 작가는 참 많은 책을 읽는구나... 좋아하는 장르나 특별한 작가 없이 정말 많은 책을 읽는구나...하는 것이었다.
작가가 읽은 이렇게나 많은 책들 가운데 우리나라에 출간되지 않은 책들이 훨씬 많아서 다소 공감되지 않는 면도 있었다. 다양한 작가의 책을 읽었지만 그럼에도 일본 작가의 책이 거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 반 이상은 출간되지 않은 것 같다. 그렇게 보니... 일본의 출판 시장은 엄청난가 보다... 하는 생각도 든다.
<<탐독>>에서 은희경 작가가 뽑은 작가의 책인 <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이 이 책에서도 소개되고 있어 나도 꼭 한 번 읽어봐야겠다고 다짐을 하고, 너무나 애정하는 그림책 <100만 번 산 고양이>의 작가 사노 요코에 대한 책도 몇 권 소개하고 있어 그녀의 수필도 모조리 읽고싶어졌다.
책에 대한 책은, 그래서 읽는다. 가끔 내가 지금껏 읽었던 책을 정리하기도 하고, 다시 읽고 싶은 책을, 읽고 싶은 작가를 리스트화 하기 위해서. 더불어 이런 책을 쓴 작가의 생각 속에 들어가보고 싶어져서. 오늘도, 성공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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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읽기가 특별함을 지니고 있다면 부담스러워 많은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을 듯 보통은 특별하지 아니하고 흔히 볼 수 있어 평범함을 뜻하는 말로 책읽기는 그런
책읽기는 특수하기도 하고 개인적이고 정신적인 교감행위를 하는 일이다. 혹자는 책에 대해 죽은 사람들의 사유에 갖혀지내는 일이라 폄하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읽은 책들에 대한 사유를 담은 서평에 대해 책을 만나 보는것은 내겐
세상의 모든 사람을 만날 수 없듯이 세상 모든 책을 읽을 수 없음은 기정사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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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정말 마음에 드는 책을 만났다. 처음 서문부터 읽으면서 마음을 쿵쿵쿵 강타하던 문장들. 요런 비슷한 분위기의 책을 예전에 서점에서 보고 샀는데 처음 훅은 좋았는데 가면 갈수록 이야기가 산으로 갔던 책이 한 권 있었다;; 책과 서점이란 주제를 가지고도 이렇게 내용없게 쓸 수 있구나,,느꼇던 책이 있었는데 처음 시작은 비슷했으나 이 책은 처음 시작부터 한 챕터가 끝나기 까지 더더 멋진 생각과 문장들로 마음을 울려주더라. 가쿠다 미쓰요란 저자가 어릴 때 왜 책을 사랑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 어떤 책들이 본인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고 어떻게 인간과 삶을 더 이해하게 되었는지를 참 정감있게 잘 풀어내고 있다. 챕터 2,3장은 본인이 쓴 서평들의 모음이다. 어린시절 또래의 어린이들과 어울리는 것이 힘들던 한 여자아이가 책의 세계에 빠졌다. 책을 펴면 그곳은 현실과는 전혀 다른 흥미진진한 새로운 세계가 펼쳐졌고 어떤 일보다 그 세계를 탐사하는 것이 세상에서 제일 흥미로운 일이었다는 저자의 고백은 어쩜 그렇게도 내 경험과 똑같은지. 또 참 별로라고 생각했던 책 한권이 나이가 더 들어서 읽었을 때 몇 년전 그 책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 가치관을 흔들어 놓은 경험,, 나도 있었다. 저자의 경우에는 어린왕자였고 내 경우에는 안나 카레리나. 또 더 나이든 후 읽으면 또 다른 느낌이겠지? 그리고 시 한편이 어느날 갑자기 내 마음을 휘저으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리게 만들어 버린 기폭제가 된날. 아, 어쩜 이것마져도 나와 이렇게 똑같을까? 중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끝난 후, 개학식때였다. 그 추운 3월에 운동장에서 덜덜 떨어가며 조회를 하며 교감선생님 말씀을 듣는데 기절할 것 같이 춥던 그 날 교감선생님이 읽어준 시 한 구절에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윌리엄 워즈워스의 rainbow란 시의 한 구절이었는데, 'The child is father of a man'이라는 그 구절. 망치로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아무도 그 시에 공감을 하는 사람이 없었고 다들 뭔 말이 저렇게 많냐며 욕을 하고 있었다. 어쩜 저런 구절을 생각할 수 있지? 어린아이의 가치를 어쩜 저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며 갑자기 울컥하며 눈물이 나더라. 너무 쪽팔려서 하품한 척 하고 슬쩍 돌아섰지만, 그날부로 워즈워스는 내게 있어서 최고의 시인이었다. 생각난 김에 그때 외워버린 윌리엄 워즈워스의 My hear leaps up. My Heart Leaps Up
그런데!! 이렇게 감동하면서 읽던 책을, 도둑맞았다;;;!! 헬스장 싸이클 위에서 줄까지 그어가면서 읽고 샤워하면서 옷장에 넣어놨는데 샤워하고 나오니 옷장이 열려있고 다른 건 다 그대론데 책만 없어졌더라 ㅠㅠ 아직 반도 다 못읽었는데… 관장님한께도 분실물로 혹시라도 들어오면 제발 전달해 달라고 말해놨지만 아직까지 돌아오고 있지 않은 내 책. 책을 도둑맞은 건 처음이라서 너무 황당하지만, 도둑질을 해서까지 이 읽고 싶었나보다;. 그런가보다 ㅠ 할 수 없이 내가 읽고 난 부분까지의 단상만 남기는 서평이 되어버렸다. 이렇게 감동하면서 본 책 참 오랜만이었는데… 장바구니에 담아놔야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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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이다. '서평집'을 읽어본 것은. 한술 더 떠서 저작을 전혀 읽어본 적 없는 일본 작가의 서평집이라니.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개구리 마냥 나는 이따금 내 의중도 모른 채 일을 저지를 때가 있다. <보통의 책읽기>도 그랬다. 아는 작품이 없는 작가에, 여태껏 관심 밖이었던 서평 장르를 선택한 것도 어느 날 문득 '그러고 싶어서'였다. 문득 현역 작가가 읽어내는 책은 어떤 것들인지, 어떤 시선으로 보는지 알고 싶다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다. 특히 한국 작가가 아닌 외국 작가 중에서. 가쿠타 미쓰요의 여러 서평을 모아서 엮은 <보통의 책읽기>는 그러한 조건에 딱 들어맞는 책이었다. 더군다나 신간이어서 더 구미가 당긴 것도 사실. 그런데 자꾸 '서평'이란 말을 들먹여서 가쿠타 미쓰요가 이 글을 읽는다면 기분 상할지도 모르겠다. 책의 후기에서 그녀가 밝히고 있듯이, 자신은 평론가가 아니기에 평 같은 건 할 수가 없으니 이 책은 감상문집이지 서평집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 작가로 등단한 뒤 주변의 작가들이나 출판업계의 사람들에 비해 읽은 책이 너무 없어서 서평 의뢰가 들어오는 대로 수락하다 보니 이렇게 많은 감상문을 낳았다는 가쿠타 미쓰요. 책은 크게 3부로 나누어져 있다. 2부는 2003년부터 2006년 사이에 쓴 감상문들이, 3부에는 2007년부터 2009년 사이에 쓴 감상문이 수록되어 있다. 그리고 1부는 연도 표시가 없고, 2부와 3부에 비해 한 챕터마다 글의 양이 많은 걸 보니 최근에 쓰인 듯 보인다. 마치 이런 뉘앙스랄까. (이 책을 기준으로) 보통 2쪽, 길어야 3페이지를 조금 채우고 있는 2, 3부의 글들을 의식해서 '나 이렇게 길게도 잘 쓸 수 있어요'라고 1부에서 솜씨를 뽐내고 있는 것 같은. 시시한 책은 내용이 시시한 게 아니라 나와 잘 맞지 않거나, 나의 협소한 취향에서 벗어났거나 둘 중 하나일 뿐이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보면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던 상대방과 뜻하지 않은 계기로 무척 가까워지는 경우도 있고, 취향이 확 바뀌는 경우도 있다. 시시하다고 치워버리는 것은 (글을 쓴 인간에 대해서가 아니라) 쓰인, 이미 존재하고 있는 책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본문 18쪽] 글이 기나 짧으나 가쿠타 미쓰요의 감상문들은 하나같이 잘 썼다. 그리고 정말이지 애정을 가지고 책을 대하고 있고, 그 책을 쓴 작가를 존중하고 있는 게 느껴진다. 얼마나 책이 좋았으면 <이 책이 세상에 존재하는 이유>라는 단편집을 썼을 정도이니, 그녀의 책을 향한 사랑이 얼마큼 큰 지 잘 알 만도 하다.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작가들 중에는 책을 잘 읽지도 않으면서 책을 쓰는 사람들도 참 많은데, 그런 면에서 가쿠타 미쓰요는 참으로 겸손해 보이기까지 하다. 더군다나 초등학교 2학년 때 만나 재미없다고 던져버렸던 <어린 왕자>를 고등학교 2학년 때 다시 만나 대단하고 훌륭한 책이라고 느끼게 된 일을 겪은 이후로는, 재미없는 책을 만나게 되더라도 시시하다고 단정하지 않게 되었단다. 여간 귀여운 사람이 아닐 수가 없다. 그건 그렇고, 나 역시 초등학교 3학년 때 <어린 왕자>를 처음 읽고, "에이, 뭐야. 너무 당연한 것들만 늘어놓아서 재미없어. 그리고 어린 왕자는 왜 풀썩 쓰러져 버린 거야. 철새들을 다시 타고 별로 돌아가면 될 걸 말야."라며 구석에 던져버렸다가, 중학생 때 다시 읽고 "이렇게 대단한 책이!"라고 했던 경험이 있다. 근데 내 주변에 이런 경험을 한 사람들이 나 말고 여럿 있음을 커서 알게 되었는데, <어린 왕자>에 대한 경험은 비슷한 사람이 많지 않을까 싶다. ![]() 저자는 수년간 책 감상문을 쓰며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고 했는데, 대부분의 서평 의뢰가 신간 위주인 게 단점이라면 단점이었단다. 하지만 그런 단점이 있더라도 꾸준히 책을 읽으며 꾸밈없이 감상을 적고, 책을 쓴 저자의 의중을 이해해보려고 노력한다. 모든 작가에게 애정을 보이지만 그녀가 좋아하는 작가, 가령 '사노 요코'의 책을 읽고 쓴 감상문에는 그 애정이 더더욱 많이 묻어나 있음이 한눈에 느껴진다('미우라 시온'의 책에 대한 감상문을 유독 눈을 번쩍이며 내가 읽었듯이 말이다). 그리고 일본 작가들 위주로 많이 읽은 걸로 보아 자국 문학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해 보인다. 가쿠타 미쓰요의 여러 감상문들을 읽으며 절로 그녀의 책 사랑이 나에게도 전염이 되어버렸나 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한동안 읽지 못한 소설 장르가 너무도 읽고 싶어졌다. 그녀가 읽은 책들의 향기를 감상문을 읽으며 그대로 하나하나 맡았다고 느껴진 건, 그녀의 문체 때문일까, 책에 대한 사랑 때문일까. 뭐가 되었든 가쿠타 미쓰요는 좋은 사람임에 틀림이 없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 치고 나쁜 사람은 없을 테니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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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 일상다반사....좋은 말이다. 독서를 따로 시간을 내서 하자라던가 독서를 강조하는 문구들을 보면 이해가 되지 않았다. 책을 읽는다는 것이 왜 하나의 행사가 되야 하는가를 이해하지 못했다. 독서는 하나의 상황이어야 하고 지킬 수 있는 상황이어야 하고 생활속에서 우리들이 실행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지식 활동으로 생각이 되었다. 이 책의 작가 ‘가쿠타 미쓰요’도 마찬가지로 일상속에 사소함으로 책을 읽어 보라고 권유한다. 그래서 그가 일상 속에서 읽은 책들을 소개하고 있다. 2003~2006, 2007~2009로 연도를 나눠놓고 자신이 읽은 책들을 담담하게 정리해 놓고 있다. 그가 읽은 책의 대부분은 일본작가들의 책이고 내가 읽어보지 못한 것들이어서 그의 내용에 공감해 가면서 혹은 비판하면서 읽어 볼 수 없는 점이 아쉬웠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용의자 X의 헌신’, 제인 오스틴 ‘이성과 감성’ 정도가 읽어본 것들이고 나머지는 전혀 알지 못했다. 오히려 잘 된 것일수도 있다. 그 일본 작가들의 다양한 작품들을 읽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것이다. 작가는 책을 읽어가면서 보통의 사람들처럼 자신의 감정을 잘 드러내면서 솔직한 감상을 적고 있어 재미 있다. P231 호시노 히로미 ‘바보 중국을 가다’ -책을 펼치고 있는 동안 전철 안, 식당, 은행 플로어 등 장소를 가리지 않고 웃고, 울고, 눈을 번쩍 뜨고, 미간을 찌푸리고, 분노로 으드득 이를 갈았다. 옆에서 봤다면 아마 기묘했을 거다. 모두 ‘바보 중국을 가다’탓이다. 재미있지 않은가? 자신의 감정을 너무나 잘 표현하고 있다. 책을 읽고 드는 감정들은 다양하기 때문에 자신이 해 볼 수 없는 부분의 간접경험이 되는 것인데 작가는 매우 솔직하게 나타내고 있다. 소개한 책이 거의 모두 일본작가들의 책이라서 아쉬울 뿐이다. 아직 일본 작가들의 책은 많이 읽어 보질 못했다. 우리나라에도 장정일 작가가 자신이 읽은 책들을 연도별로 서평을 적은 것을 책으로 만들어 읽어보았었는데 나의 책 리스트를 만드는데 도움을 받았다. 다른 사람들이 책에 대한 느끼는 감정이 나의 것과 같을 리도 없고 같아서도 안 되겠지만 생각을 엿보는 것 같아 재미있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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