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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 글을 쓴 건 남자고 양반이다. 언젠가 조선시대에 아이를 기른 일기를 할아버지가 썼다는 말을 들었다. 손자를 잘 키우려고 했지만 말을 잘 안 들었다고 한 것 같다. 지금은 엄마가 아이를 기를 때 일을 잊지 않으려고 일기를 쓴다. 모두가 쓰는 건 아니겠지만 부지런한 사람은 쓰겠지. 조선시대에 할아버지가 손자 기르는 일기를 쓴 건 어쩔 수 없는 일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그때는 여자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걸 좋게 여기지 않았으니까. 이것도 모두 다 그런 건 아닐지도 모르겠다. 허난설헌은 결혼하기 전에는 글공부를 하고 시를 썼다. 결혼하고도 썼지만, 죽을 때 자신이 쓴 걸 모두 태우라고 했다. 그래도 조금 남아서 지금까지 전해지는 거겠지. 그때 글을 쓴 여성이 허난설헌 말고 더 있을 텐데, 내가 아는 사람이 별로 없다. 조선시대 그림을 보면서도 여성 화가가 신사임당만 나와서 아쉬웠는데. 이 책을 볼 때도 글을 쓴 여성이 더 많았다면 좋았을 텐데 했다. 편지는 많이 썼을지도 모를 텐데. 남은 게 거의 없어서 우리가 모르는 건지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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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문장의 '품격'이라는 제목을 들었을 때는 그리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글쓰기는 다른 삶을 만든다'라는 광고문구도 그냥 그랬다. 그런데 문득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에서 마음이 떠나지를 않는다.
사실 나는 날마다 라고 말하기는 좀 그렇지만 꽤 오랫동안 '일기장'이라는 걸 갖고 글을 써 왔다. 아니, '글'이라고 하기에도 좀 민망하지만 어쨌거나 일기를 써 왔다는 말이다. 더구나 올해는 같은 노트가 두 권이나 생겨 이걸 어쩌나.. 하다가 아침 저녁으로 기록을 좀 제대로 해 볼까 싶어 가장 꺼내기 좋은 곳에 다이어리를 꽂아뒀다. 요즘 저녁에는 한달정도 꺼내보지 않았고 그나마 아침에는 늦잠을 자거나 맘 편히 일어나고 싶은 주말 같은 때를 빼면 조금은 빼곡하다. 날마다 똑같이 반복되는 일상에 뭐 별다를 기록이 있겠냐 싶어 한동안 글은 서너줄인데 그림만 한가득 그려넣을때도 있다. 날마다 일러스트 연습이라도 해볼까, 싶어서.
그러니 내가 어찌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라는 말에서 마음을 뺄 수 있겠는가.
이 책은 조선의 문장가 일곱명의 글을 편집한 책이다. 저자는 그들을 요즘으로 따지자면 파워블로거라고 지칭할 수 있다고 했는데 파워블로거라기보다는 한국문학을 이끌어갈 젊은 작가 7인이라고 할만한 것이 아닐까?
허균,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는 이미 널리 알려져 있고 - 지극히 개인적인 주관에 의한 구분이기는 하지만 사실 이 책에서 이용휴와 이옥의 글을 처음 읽어봤다. 특히 이옥의 글은 하나의 단편 소설을 읽는 듯하기도 하고 짧은 에세이를 읽는 듯 하기도 해서 꽤 흥미로웠다.
첫 시작은 허균의 글이었는데 익히 알고 있는 홍길동전을 떠올리듯이 어떤 혁명적인 시각을 느낄 수도 있어서 그 역시 꽤 좋았다. 언급하지 않은 다른 이들의 글이 별로였던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글이 그저 일상적인 서간을 주고받았을 것이라는 나의 예상을 깨고 꽤나 흥미로운 글들을 적었다는 뜻이다. 각자의 개성이 드러나는 제문도 그렇고, 박제가의 농담이 담겨있는 듯 하지만 애정이 넘쳐나는 장인에 대한 제문도 참 좋았다.
각 본문의 끝에는 저자인 안대회의 해설이 담겨있어서 본문의 문장과 내용을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해설을 읽지 않더라도 상관은 없지만 문장에 대한 이해가 짧은 내게는 많은 도움이 되었다.
'문장의 품격'이라는 제목이 여전히 그닥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그래도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쓴다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알 것 같기도 하다. 일상의 소소한 것을 기록한다고 하더라도 그 일상을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과 관점이 담겨있을 것이고, 자신의 사상과 주장이 담겨있을 수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지만 글로 적어내기는 쉽지가 않은 것이다.
나도 이제는 다른 삶을 꿈꿔보며 글쓰기로 세상을 바꿔보는 시도를 해 볼까... 최소한 세상이 안바뀐다해도 내가 바라보는 세상은 바뀌게 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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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수시로 소셜네트워크나 블로그를 통해 일상 속 경험과 생각들을 짧은 글로 담아낸다. 이러한 글을 통해 주변의 솔직한 생활 감정을 읽어내고 또 집단지성을 형성하여 새로운 변화의 흐름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이처럼 글로 세상을 움직인 인물들이 있었다. 『문장의 품격』은 형식과 내용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에 대한 다채롭고 섬세한 글쓰기로 동시대의 삶을 움직였던 조선시대의 문장가 7인ㅡ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을 소개한다.
좋은 문장이란 무엇일까? 거창한 사회문제나 심오한 사상을 담아야 좋은 글, 품격 있는 글일까? 이 책에서는 마치 이 시대의 ‘파워블로거’처럼 형식과 내용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에 대한 다채롭고 섬세한 글쓰기로 동시대의 삶을 움직였던 조선시대의 문장가 7인을 소개한다.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은 낡은 사유와 정서를 담은 고문(古文) 대신 낯설고 새롭고 실험적인 문장에, 도시 취향의 삶과 의식, 여성과 평민 등 소외 계층의 일상, 담배·음식·화훼 등의 기호품까지 다양한 주제로 생동하는 삶의 모습을 담아냈다. 소셜네트워크와 블로그를 통해 짧은 글쓰기에 익숙한 우리에게 자유로운 형식으로 진솔하게 자신의 내면을 드러낸 이들의 문장은 큰 공감대를 불러일으키며 좋은 문장, 품격 있는 문장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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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대회의 <선비답게 산다는 것>을 읽어보았다. 조선 선비들의 삶과 글들을 풀어내는 솜씨가 일품이었다. 이번 책 <문장의 품격>>을 기대하며 읽은 이유다. 그리고 안대회는 독자를 실망시키지 않는다. 조선의 문장가의 소소한 일상을 드러낸 글들을 이렇게도 친근하게 소개하고 그 의미를 드러낼 수 있다니, 조선 문장가의 글뿐 아니라 안대회의 해설의 글도 명문장이라 할 수 있겠다.
이 책이 소개한 조선의 명문장가 일곱 분 중에 처음 들어본 사람은 이용휴(李用休)와 이옥(李鈺)이다. 당시 문필가들은 모두 학자요 벼슬을 한 선비들이라 생각했는데 이들은 일종의 전업 작가였다. 안대회는 이용휴를 18세기 개성적 산문의 창작을 선도한 선구자라고 치켜세운다. 그는 짧은 글을 선호하고 매우 쉬운 어휘를 선택하는 대신 발상이 아주 기발하고 주제가 선명했다. 이용휴의 글 <미인의 얼굴 반쪽>을 읽고는 이해가 되지 않았는데 해설에서 촌철살인(寸鐵殺人)의 비유임을 알게 되었다. 이 글은 아름다운 금강산을 다 보지 못한 아쉬움과 그리움을 표현한 것이다. 설명을 듣고 다시 읽으니 ‘인생은 짧지만 예술은 길다’라는 문구가 떠올랐다. 18세기 조선에서 즐겨 사용되었던 은유와 상징 기법은 품위가 있다. 그의 짧은 글 <이 사람의 집(此居記)>은 훨씬 더 훌륭하다. 우리는 사람들을 판단할 때 그 사람의 신분이나 외모, 지위, 가문, 오늘날에는 특히 경제력을 우선적으로 본다. 이용휴는 그런 외적인 것으로 사람들을 판단하지 말고 사람 자체를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하루가 쌓여 열흘이 된다>에서는 당일(當日)의 중요성을 말한다. 공부하지 않은 날은 아직 오지 않은 날과 마찬가지로 공일(空日)에 불과할 뿐이라는 주장이다.
안대회에 따르면, 이옥은 18, 19세기를 대표하는 소품가다. 그는 자신만의 개성있는 문제와 내용을 고집하다가 군주로부터 견책을 당했다고 한다. 그는 관계진출(官界進出)의 길이 막히자 문학 창작에 매달렸다. <심생전(沈生傳)>은 오늘날의 풋풋한 자유연애 단편소설을 읽는 듯하다. 이 작품에서 조선 시대 처자(妻子)의 내면과 가치관을 읽어낼 수 있다.
이렇게 소소한 일상을 묘사한 조선시대 고전 산문을 읽어보니, 고전이 그렇게 어렵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전에는 고전하면 사서삼경(四書三經)이 떠오르고 성리학(性理學)과 같은 심오한 철학이 떠올랐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조선 시대의 보통사람들이 살아간 일상의 모습이 생동감 있게 다가왔고, 고전이 친근하게 느껴졌다. 이 책의 바탕인 된 <조선의 명문장들>이 날 한번 가져보라고 유혹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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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허균 그저 홍길동전의 저자로만 알고 지내다가 그의 행적에서 보여지던 혁명 기운이 다분히 의외적으로 다가왔던 인물이다. 저자는 허균을 소개할 때 '사회와의 불화' 라는 단어를 썼다. 사회적으로 반감을 느꼈다는 허균의 입장이 그의 저서 홍길동전으로 태어나게 했겠다는 나름대로의 연결을 지어보도록 만들었다. 알면 알수록, 다가가면 다가갈수록 흥미로운 인물 중 하나가 허균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가 쓴 글 조차도, 일상 속의 짧은 문장들과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사회 속에서 그가 어떤 생각으로 살아내고 있었던지를 조금은 알게 한다.
대화체로 엮어낸 비방꾼과의 대화에서도 좋은 일화를 보여준다. 자신의 조카 허친이 그의 서재에 "통곡헌" 이라는 편액을 걸었을 때 세상 사람들의 의아함에서도 허균은 주저없이 자신의 사상을 피력하고 있다. 세속과는 반대 방향으로 달려 가고자 했던 그의 의도는 사춘기 소년의 어긋난 일탈 행위처럼 닿아온다. 그러나 작은 반발의 의미가 아니라 그것이 세상을 향해 저항하는 자세였다는 것이 큰 파동을 불러왔다. 그것은 허균 개인만의 피해가 아닌 조선 백성 전체로 끼친, 진보를 위한 발걸음을 늦추게 한 것은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2. 이용휴와 이옥 두 분 다 내게는 생소했다. 글쓰기 형태의 새로운 모습인 '소품문' 을 다룰 때 유명하지 않은 듯한 이름으로써 내게 다가왔다. 그러나 일상성을 주제로 한 짧은 글에서 두드러진 존재들 임을 이번 기회에 알게 되었다. 그들이 남긴 파격적인 형태의 글쓰기가 흥미롭기만 하다. 글 속에 숨겨놓은 비유와 은유도, 삶을 살아가는데에 필요한 시선도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3. 박지원, 박제가 북학파 일원이며 실학의 선구자 정도로 알고 있었을 뿐이었다. 문장에 있어서도 아름다운 문체를 구사하고 돋보이는 산문을 남긴 것으로 유명함을 이 책을 통해서, 또 비슷한 시기에 읽은 <글쓰기 동서대전> 이라는 책을 통해서도 알게 되었다. 실학이라면 실용성을 중시하고 과학 기술등을 장려하며 보수적인 면 보다는 진보에 가깝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는데 글쓰기에서도 이런 사고방식이 영향을 끼친 것은 아닐까 싶다.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기존의 낡은 방식에서 벗어나 주제도 넓고 크게 생각하며 글쓰기를 했던 이유로 다양한 글쓰기의 결과가 태어났던 것은 아닐까?
4. 이덕무, 그리고 정약용 글쓰기에서 보다는 책만 보는 바보로써 먼저 다가왔던 인물이었다. 그의 트레이드 마크처럼 내게 작용한다라고 할까. 그에 관한 일화, 부르는 호칭이 아주 많았던 점과 글쓰기의 교류 관계 또한 흥미로웠던 인물이다. 정약용님의 글도 다른 문장가들에게 할애했듯이 몇 편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세검정 폭포나 낚시꾼의 뱃집과 같은 짧은 소품들을 선보인다. 나로서는 정약용님에 관한 느낌은 짧게 끝날 수가 없을 정도로 이 분에 대한 생각은 깊고도 넓다. 따로 그의 책들을 하나 씩 맛보고 음미하는 것이 인생의 대 과제일 정도로.
<조선의 명문장가들> 책에서 특히 위에 소개한 7분을 뽑아서 그들의 글쓰기를 통해 문장의 아름다움과 일상을 표현한 짧은 글짓기를 둘러본다. 사소하고 하찮은 사물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서는 새로운 글감으로 재탄생하게 됨을 볼 수 있다. 친구들 간의 편지글, 사물을 관찰한 단문, 묘비명, 제문 등 주제도 다양하고 글쓴이의 감정도 느껴지게 한다. 그 당시에는 파격적이었던 글의 형태가, 그래서 비판적일 수 밖에 없었던 글이 지금으로서는 더할 나위없이 아름다운 모습이라는 것은 여러가지 생각들이 오고가게 한다. 시대에 따라서, 그 글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느냐 아니냐 하는, 사람들의 생각의 차이등. 이 글쓴이들이 몇 백년을 앞서서 실현시킨 미래 지향적인 글쓰기 라는 생각도 들게 한다. 짧지만 읽을수록 정감이 돋는다. 이들이 해 낸 것처럼 일상적인 산문에 더욱 몰입하고 싶은 마음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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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글을 만나면 행복하다 글이 넘치는 세상이다. SNS활동이 활성화되면서 책을 통해 글을 만나던 시대ㅘ 비교해보면 글과 만나는 기회는 급속도로 빈번해졌다. 개중에는 좋은 글을 만나 다양한 유익함을 얻고 누기도 하지만, 글의 홍수 속에 노출되면서 한편으론 그 피해를 고스란히 안고 사는 것이다. 글을 쓰는 것이 개인의 감정과 의지의 작용이지만 사적인 활동에 머무는 것이 아닐 때 글에 대한 일차적 책임을 져야하는 것은 그 글을 쓴 이다. 전문적인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글이 아닌 사소한 일상을 담는 글일수록 그 글에 담긴 글쓴이의 감정과 의지는 더 적극적으로 독자들과 교감하게 된다. 이런 글을 만나게 되면 글이 가진 힘에 의해 공감하고 위안 받으며 개인적 차원을 넘어 흐름을 형성하거나 새로운 변화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조선시대에도 그러한 글을 통해 문장가로 이름을 떨친 사람들이 있었다. 조선의 문장가에게 배우는 치밀하고 섬세하게 일상을 쓰는 법이라는 부재를 단 이 책‘문장의 품격’은 바로 그들의 글을 통해 글이 가지는 맛과 멋을 통해 글의 힘을 확인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안대회의 ‘문장의 품격’은 저자의 ‘고전 산문 산책’이라는 저서에서 일곱 사람을 가려 뽑은 후 그들의 글을 세심하게 번역하고 각각의 작품에 짧고 명쾌한 해설을 붙인 선집이다. “허균, 이용휴,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이옥, 정약용”이 책에 등장하는 문장가들이다. 이들은 다양한 분야에서 우리에게 익히 잘 알려진 사람들이다. 각기 활동했던 분야는 다르지만 이들이 가지는 공통점으로는 “형식과 내용의 제약에서 벗어나 일상에 대한 다채롭고 섬세한 글쓰기로 동시대의 삶을 움직였던”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낡은 사유와 정서를 담은 고문(古文) 대신 낯설고 새롭고 실험적인 문장에, 도시 취향의 삶과 의식, 여성과 평민 등 소외 계층의 일상, 담배·음식·화훼 등의 기호품까지 다양한 주제로 생동하는 삶의 모습을 담아냈다.”는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되는 사람은 글 속에 위트와 해학이 넘치는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의 글들과 함께 정조의 문체반정의 직접적인 희생양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옥의 글이다. 이덕무, 박지원, 박제가는 이미 많은 사람들에 의해 주목받아 와 일반화되어 익숙한 사람들이지만 이옥의 경우는 쉽게 접하지 못했던 사람이어서 더 주목된다. 이들은 “규범적이고 정통적인 문체로 정치와 철학, 도덕에 천착했던 고문 일변도의 조선 문단에 새로운 변화의 바람을 불러 일으켰던 문장가들이다. 이들은 고문의 형식적 구속이 변화하는 시대의 삶과 정서마저 제약한다고 보고, 새로운 시대의 문장은 형식과 내용의 굴레에서 벗어난 자유로운 것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글쓴이의 감정과 의지가 담긴 글은 글쓴이의 특유의 멋과 맛이 베어낸다. 문장만으로도 누구의 글인지 알 수 있을 정도로 개성이 강하지만 이들의 글에는 힘이 살아 있어 읽는 이들로 하여금 큰 공감과 울림을 받게 한다. 좋은 글은 읽으면 읽는 이의 가슴에 잔잔한 파문이 인다. 그 파문은 때론 뜨거운 열정으로 때론 시원한 청량감으로 글이 가진 멋과 맛을 음미할 수 있다. 좋은 글을 가려 읽고 글이 주는 매력을 누리며 삶의 활력소로 작용할 수 있도록 밝은 눈을 키우는 것은 어쩌면 글을 읽는 사람의 의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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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는 즐거움을 잃어버렸다. 이렇게 말하면 누군가는 대단한 글쓰기를 하는 줄 오해할지도 모르겠다. 그냥 쓰고 싶은 마음이 사라진 것인지 써야 할 것들에 대한 부담이 늘어난 것인지 알 수 없다. 그러나 여전히 좋은 문장을 만나면 반갑고 부럽다. 나의 기록을 생각한다. 사소하고 소소한 것들을 기록했던 시간을 떠올렸다. 한때는 좋은 글을 쓰고 싶었던 욕망이 있었다. 블로그 검색을 통해 찾아보니 어떤 날은 답답한 마음이 고스란히 글에 있었고 어떤 날은 커다란 분노가 거기 있었다. 서로 다른 감정이 글에서 자라고 있다니 놀라웠다. 글이란 참으로 신기한 것이라서 말보다 강한 힘을 지니기도 한다. SNS에 올라오는 글도 그렇다. 어쩌면 그렇게 글을 잘 쓰는지 모르겠다. 짧고 간결한 문장에 자신만의 색을 담은 글은 정말 대단한다. 글은 공기와 같아서 함께 나누고 공유할 수 있다.
좋은 글을 만나는 즐거움은 쓰는 즐거움 이상으로 크다. 그러니 안대회의 『문장의 품격』에서 만난 조선시대 문장가 7인의 문장을 읽는 건 더운 여름의 소나기처럼 반갑다. 잘 알려진 허균, 박지원, 이덕무, 박제가, 정약용과 조금은 생소한 이용휴, 이옥의 글은 저마다 고유한 개성을 보여준다. 좋은 문장을 친절한 안대회의 해설로 만날 수 있다. 17~19세기 조선시대의 문단에 새로운 바람을 몰고 온 7인 7색의 즐거움이라고 할까. 그렇다고 그들의 글이 모두 정치, 문학, 경제를 논하는 건 아니다. 그저 평범한 하루하루를 그린 풍경이며 누군가를 향한 애도의 글이며 우정을 전하는 편지글이며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와 같다. 그들에게 글은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이었고 자신과 시대를 견디는 유일한 방법이었다. 신기하게도 시대를 바라보는 문장은 예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았다. ‘국가의 일은 날이 갈수록 그릇되어가고, 선비의 행실은 날이 갈수록 허위에 젖어들며, 친구들끼리 등을 돌리고 저만의 이익을 추구하는 배신 행위는 길이 갈라져 분리됨보다 휠씬 심하다.’ (19쪽, 허균) 허균의 문장은 지금 현재 우리 사회를 꿰뚫는 듯하다. 자신의 생각을 올바르게 정리하고 쓸 수 있는 힘, 그것이야말로 문장의 품격이다.
박지원의 산문은 무척 편안하고 아름다웠다. 큰누님을 잃고 쓴 제문에는 그리움이 가득했고 짧은 편지를 소개한 척독집(尺牘集)은 유쾌한 위트가 넘쳤다. 그러나 계속해서 읽고 싶은 문장은 마음을 고요히 가지는 것에 대한 이야기로 모든 것이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글이었다. 문 밖의 소리에 대한 비유로 정말 매력적이다. 그런가 하면 책만 보는 바보로 익숙한 이덕무는 책만 읽는 자신의 모습을 쓴 글이 많았다. 반복되는 일상을 다뤘지만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책과 글을 통해 자신의 존재를 증명하는 우직한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짧은 글로 자신의 전부를 보여줄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대단한가. 생활문장의 진수라 하겠다.
‘깊은 솔숲에 바람이 이는 소리가 났는데 이는 듣는 이가 흥분했을 때이고, (…)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이는 소리가 났는데 이는 듣는 이가 놀랐을 때이고, (…) 거문고가 웅숭깊게 어울려 연주하는 소리가 났는데 이는 듣는 이가 슬플 때이고,(…)’ (112쪽, 박지원)
‘내가 사는 집은 저잣거리 바로 옆이다. 해가 뜨면 마을 사람들이 장을 열어 시끌벅적하다, 해가 들어가면 마을의 개들이 떼를 지어 짖어댄다. 그러나 나만은 책을 읽으며 편안한다.’ (146쪽, 이덕무)
박제가의 문장에는 자신감이 넘쳤고 이옥의 글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이야기로 쓰고 싶은 욕망이 느껴졌으며 정약용의 친근하고 편안한 글에서 귀양살이의 고단함은 찾을 수 없었다.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고, 물 위에서 잠을 자며, 파도 위의 오리처럼 둥실둥실 떠다닌다. 때때로 짧은 노래 작은 시를 지어, 기구하고도 뇌락(牢落)한 심경을 스스로 펼쳐낸다. 이것이 내가 바라는 삶이다.’ (282쪽, 정약용)
누구나 글을 쓸 수 있지만 자신의 삶을 치밀하고 담백하게 쓸 수 있는 건 아니다. 재능을 떠나서 삶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만 가능한 일이다. 새로운 변화를 꿈꾸던 7인의 문장은 그런 점에서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내면의 목소리를 투명하게 발산할 수 있는 문장을 갖고 싶다. 우선은 쓰는 즐거움을 회복해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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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균부터 정약용까지 조선의 명문장가 7명의 산문을 골라 엮은 책이다. 격식에 치우치지 않는 소품문들이나 척독 (서간문)등 일상생활을 기록한 것들이어서 더욱 가깝게 다가왔다. 선비들의 삶에 깊숙이 들어가 엿보는 느낌으로 친근해서 좋았고, 힘든 인생살이에 서글픔을 느끼기도 했다. 홍길동전을 썼고, 역모죄로 죽은 허균의 글에서는 역시 혁명가다운 거침없는 발언을 볼 수 있었다. 이런 글이 만약 검열을 당했다면 바로 끌려가 국문을 당하지는 않을까 걱정마저 되는 글들도 많았다. 세상을 앞서간 뛰어난 사상가임을 그의 편지글, 산문 등에서 만나볼 수 있는 좋은 시간이었다. 분향하고 머리 조아리며 신에게 하늘에 맹세하노라. "이 한 몸 다 마치도록 나 자신과 더불어 살겠노라." -- 64쪽 내가 밑줄 그은 이 문장은 이용휴라는 분이 쓴 글이다. 성인들의 말씀도, 경전의 가르침도 필요없이 오직 나 자신에게 진실하게 살겠다는 다짐. 당시 선비들의 학문인 주자학과는 다른 철학을 담고 있는 글이라고 한다. 학생때 배웠던 박지원의 열하일기 중 크고 거친 물살을 건너던 때의 일화를 전문으로 만나는 반가움도 있었다. 낮에는 거친 물살을 보며 건너기가 두려워 하늘로 고개를 쳐들고 건너는 사람들, 하지만 밤에는 깜깜해 눈이 보이지 않기에 귀로 감각이 집중되어 강물이 더 크게 우는 것처럼 여겨지지만 이는 모두 우리의 감각이 부리는 요사스러운 행태이다. 나는 이제야 도를 알았다! 마음을 고요히 가진 사람은 귀와 눈이 마음에 누를 끼치지 않는 반면에 귀와 눈을 굳게 믿는 사람은 보고 듣기를 한층 자세하게 하므로 그 때문에 병을 일으키는 것이다. --- 114쪽 이렇게 도를 깨달은 박지원은 하룻밤에 그 위태로운 강물을 아홉번이나 편안하게 건넜다고 한다. 마음을 고요히 가지는 것이 중요함은 나도 매일매일 깨닫는 바이다. 똑같은 일을 만나도 마음 상태가 어떻냐에 따라 부드럽게 넘어가기도 하고, 어떤 때는 불필요한 화를 내어 일을 크게 만들게 되니 항상 마음을 고요히 하는 것에 정성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책만 보는 바보, 이덕무의 이야기는 아무래도 낯익어 더 정겹게 다가왔다. 소개된 몇개의 산문을 읽어보니 이덕무가 어째서 그렇게 문장가로 이름을 떨쳤는지 크게 고개가 끄덕여지며 수긍이 되었다. 두고 두고 다시 읽어보고 싶은 글이 가장 많았던 것은 역시 이덕무, 그리고 박제가 부분이었다. 가난한 삶도, 여행도, 친분을 쌓는 편지들도, 새로이 만들어내는 이야기도 고리타분하지 않는 시선과 문장, 그리고 박학함 덕분에 그야말로 품격있는 문장들로 탄생하여 감탄을 자아낸다. 본받고 싶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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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비가 오거나 날씨가 흐려 집 안으로 빛이 들어오지 않는 날이면 이덕무가 생각난다. 집 안에서 책 읽기밖에 할 수 없었던 시절, 빛을 따라 자리를 바꿔가며 책을 봤을 그가 이런 날이면 의기소침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염려 때문이었다. 전혀 연결고리가 없었던 18세기의 문인 이덕무와 백탑파를 알게 되었고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도 문학이 폭발하던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자 뭔가 가슴이 북받쳐 올랐다. 한동안 18세기 문학을 찾아 읽다 어느 순간 잊고 있었는데 이 책으로 인해 그때의 열망을 잠시나마 다시 떠올릴 수 있어서 좋았다. 허균이 시인으로 탁월했다는 사실을 얼마 전에 알고 나서인지 이 책의 첫머리에 만난 허균의 산문은 반가웠다. 지금 읽어도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자신만의 색깔을 담았다는 생각은 이 책에 실린 일곱 명의 문인을 만나는 시간 내내 들었다. 시대적 상황과 배경을 제쳐두더라도 막힘없이 읽히는 흡인력과 그 안에 담긴 메시지, 익살, 문학에 대한 애정 등등 다양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서 마치 그들을 직접 지켜보고 있는 듯한 기분까지 들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글을 남기고 비판을 받을지라도 새로운 글쓰기를 하고 일상의 평범함과 내면의 이야기도 은근하게 녹여낸 노력이 고마울 정도였다. 문인으로서의 열정, 학자로서의 의무, 부조리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들을 찾는 일보다 글에서 드러나는 있는 그대로의 느낌을 바라보려 했다. 비슷한 시대 혹은 다른 시대에 살았던 문인들의 글을 읽으며 다양한 느낌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이 경이로울 정도였다. 이미 익숙한 백탑파를 재조명해보고 새로움을 만끽할 수 있었고, 잘 알지 못했던 문인의 글을 보는 재미 또한 쏠쏠했다. 나를 찾았다고 해서 물리적 이득이 오는 것도 아니고, 신기한 현상이 일어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자유롭고 행복한 삶을 누리며 살 수 있다. 그는 외물의 욕망에 흔들려 자기 정체성을 잃지 말고 자신을 지키며 살자고 다짐하는 것으로 글을 맺었다. (66쪽) 개인적으로 18세기의 대표 문인 이용휴의 글이 인상적이었다. 굉장히 짧은 글임에도 그 안에 담고 있는 은유와 메시지, 파격적인 시도들 때문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벼슬의 길을 포기하고 전업 작가로 한평생을 보냈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문학에 대한 애정과 깊이, 새로움을 추구하는 다양한 매력을 느낄 수 있었다. 지금 읽어도 어색함이 없는 새로움이 이용휴란 사람을 더 알고 싶게 만들었다. 장인에게 쓰는 박제가의 제문, 이상적인 생활공간을 글로 옮긴 정약용, 한가함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보인 허균의 글처럼, 정보로 넘쳐나는 피로한 현대사회에서 단연 돋보이면서도 이런 게 문장이라는 사실을 깊이 공감했다. 그러면서 이렇게 오래된 글을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고마웠다. 이러한 글을 쓰면서 이렇게 오랜 뒤에 남겨질 걸 알았을까? 후세에 남기겠다는 생각보다 현재 안고 있던 고뇌와 시대의 흐름, 자아성찰 등 글로 남길 수 있는 것들에 관심을 기울이고 쓰는데 더 열중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랬기에 그런 글들이 오래도록 살아남았고 현재의 나도 읽고 있다. 그런 사실 하나만으로도, 그렇기에 글을 쓰는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뭔가 뭉클해지는 기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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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나라엔 참으로 걸출한 문필가가 많다. 지금도 세계적인 예술가들이 각종 분야에서 많이 나오는 것을 보면 이 작은 나라의 저력이 대단함을 느낀다. 영화나 음악 부분에서의 두각이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인정한다. 하지만 언어적인 장벽을 뛰어넘어 감동을 주는 것은 참 힘든 인인데 외국인들과 문화적인 감성이 다름에도 불구하고 서양에서 주는 문학상까지 받아오는 작가들이 종종 있는 것을 보면 우리 나라 사람들의 DNA에 박힌 예술의 혼이 참 대단함을 느낀다. 그런 에너지의 대표격으로 볼 수 있는 조선시대 문필가들 5명이 이 책에 소개되어 있다. 5분들 중 내가 많이 들어봤던 분들은 <홍길동전>으로 유명한 허균, 그리고 연암 박지원과 정약용 선생이었다. 하지만 또 걸출한 문필가 두 분을 알게 됐으니 바로 이용휴와 이덕무였다. 특히 이용휴의 글은 마치 조선시대에 살았던 사람이 아니라 일제 강점기에 살았던, 혹은1950년대 이후의 사람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로 현대적인 감성이 돋보이는 느낌이었다. 조선시대 사대부들이 나라를 걱정하고 임금을 위하는 글을 쓰며 대의를 노래했던 것과는 달리, 이용휴는 현대의 문필가들처럼 자신의 감정과 느낌에 대한 것을 주제로 철학미가 돋보이는 글들을 썼는데, 같은 시대에 살았으면서도 참으로 다른 길을 걸었던 문필가들의 개성이 뚜렷해서 글을 읽으며 매우 색다르고 즐거운 기분이 든다. 이덕무와 박제가는 서로 친구사이이기도 했는데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써내려간 재치있는 문장이 참 재미있다. 서로를 디스하면서(요새말로) 서로 농을 주고받으며 놀고있는 글들이 현대의 분위기와도 닮아있어서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여기 쓰여져 있는 재치있는 글들을 당시에는 '소품문'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 문장들에는 중국의 당나라와 송나라의 영향을 받지 않은 우리 문화와 풍속을 고스란히 담고 있기 때문에 그 당시 귀족들의 가치관과 평범한 백성들의 하루 일과 등을 엿볼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중국의 것이 아닌 우리 나라가 가진 문화를 발전시키고, 우리 고유의 것들을 표현해 내고자 했던 당시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그림으로 풍속도가 유행하고, 글도 이러한 소품문이 발전하던 시절, 18세기-19세기의 조선. 이러한 트렌드는 곧 수구파들에게 밀려 사라져 버리긴 했으나, 참으로 파격적이며 매력적인 시도들이었고 이렇게 책으로 볼 수 있으니 뿌듯하고 즐겁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