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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이방인 이효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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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李孝石)이라고 하면 교과서에도 수록된 <메밀꽃 필 무렵>(1936)때문인지 향토적인 어휘와 서정적인 문체를 구사해서 자연과의 교감을 유려하게 묘사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짙다. 예컨대 <메밀꽃 필 무렵>의 유명한 구절인“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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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李孝石)이라고 하면 교과서에도 수록된메밀꽃 필 무렵>(1936)때문인지 향토적인 어휘와 서정적인 문체를 구사해서 자연과의 교감을 유려하게 묘사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짙다.

 

예컨대메밀꽃 필 무렵의 유명한 구절인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1)만 보아도 마치 한 편의 산문시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쓴설국(雪國)>(1947)의 도입부를 떠올릴 정도로.

 

아이러니하게도 메밀꽃 필 무렵이 이효석의 고향인 강원도 영서 지방[봉평]를 배경으로 쓰여졌지만, 정작 글을 쓴 작가는 다섯 살 때 모친과 사별하고 계모와의 갈등으로 고향이 잃었다.

고향의 정경이 일상 때 마음에 떠오르는 법 없고 고향의 생각이 자별스럽게 마음을 녹여준 적도 드물었다. 그러므로 고향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때때로 서글프게 뼈를 에이는 적이 있었다.2)

그런 고아 의식, 이방인 의식이메밀꽃 필 무렵에서 확정된 미래가 아닌 열린 미래를 보여주게 한 것이 아닐까

 

동시에 뿌리가 없는 고아, 이방인은 지금, 현재에 그만큼 집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효석은 서구의 지식과 교양을 습득하고 즐긴 것이 아닐까 

1938년에 쓰여진 수필낙엽을 태우면서를 보면 토속적이라기 보다는 세련된 소위 모던 보이가 그려진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낱을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그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색 전기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볼까 하고, 계획도 해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3)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일상이다. 여기에 식민지 지식인의 고민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소설메밀꽃 필 무렵과 수필낙엽을 태우면서 KAPF의 해체가 상징하듯이 적극적 사회참여방법이 거세된 식민지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1)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단편선>, 서준섭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07), p. 211

2) 이효석, 앞의 책, p. 507

3) 이효석, 앞의 책, pp. 489~490

 

 

 

 

 

w******f 2019.07.12. 신고 공감 14 댓글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