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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효석(李孝石)이라고 하면 교과서에도 수록된 <메밀꽃 필 무렵>(1936)때문인지 향토적인 어휘와 서정적인 문체를 구사해서 자연과의 교감을 유려하게 묘사하는 작가라는 인식이 짙다.
예컨대 <메밀꽃 필 무렵>의 유명한 구절인 “이지러는 졌으나 보름을 가제 지난 달은 부드러운 빛을 흐붓이 흘리고 있다. 대화까지는 칠십 리의 밤길 고개를 둘이나 넘고 개울을 하나 건너고 벌판과 산길을 걸어야 된다. 길은 지금 긴 산허리에 걸려 있다. 밤중을 지난 무렵인지 죽은 듯이 고요한 속에서 짐승 같은 달의 숨소리가 손에 잡힐 듯이 들리며 콩 포기와 옥수수 잎새가 한층 달에 푸르게 젖었다. 산허리는 온통 모밀밭이어서 피기 시작한 꽃이 소금을 뿌린 듯이 흐뭇한 달빛에 숨이 막힐 지경이다. 붉은 대궁이 향기같이 애잔하고 나귀들의 걸음도 시원하다.1)” 만 보아도 마치 한 편의 산문시를 보는 듯한 인상을 받는다. 어떻게 보면 가와바타 야스나리[川端康成]가 쓴 <설국(雪國)>(1947)의 도입부를 떠올릴 정도로.
아이러니하게도 <메밀꽃 필 무렵>이 이효석의 고향인 강원도 영서 지방[봉평]를 배경으로 쓰여졌지만, 정작 글을 쓴 작가는 다섯 살 때 모친과 사별하고 계모와의 갈등으로 고향이 잃었다. “고향의 정경이 일상 때 마음에 떠오르는 법 없고 고향의 생각이 자별스럽게 마음을 녹여준 적도 드물었다. 그러므로 고향 없는 이방인 같은 느낌이 때때로 서글프게 뼈를 에이는 적이 있었다.2)” 그런 고아 의식, 이방인 의식이 <메밀꽃 필 무렵>에서 확정된 미래가 아닌 열린 미래를 보여주게 한 것이 아닐까?
동시에 뿌리가 없는 고아, 이방인은 지금, 현재에 그만큼 집착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이효석은 서구의 지식과 교양을 습득하고 즐긴 것이 아닐까 1938년에 쓰여진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를 보면 토속적이라기 보다는 세련된 소위 ‘모던 보이’가 그려진다. “백화점 아래층에서 커피의 낱을 찧어가지고는 그대로 가방 속에 넣어 가지고, 전차 속에서 진한 향기를 맡으면서 집으로 돌아온다. 그러는 그 내 모양을 어린애답다고 생각하면서, 그 생각을 또 즐기면서 이것이 생활이라고 느끼는 것이다. 싸늘한 넓은 방에서 차를 마시면서, 그제까지 생각하는 것이 생활의 생각이다. 벌써 쓸모 적어진 침대에는 더운 물통을 여러 개 넣을 궁리를 하고, 방구석에는 올 겨울에도 또 크리스마스트리를 세우고 색 전기로 장식할 것을 생각하고, 눈이 오면 스키를 시작해볼까 하고, 계획도 해보곤 한다. 이런 공연한 생각을 할 때만은 근심과 걱정도 어디론지 사라져버린다. 책과 씨름하고 원고지 앞에서 궁싯거리던 그 같은 서재에서 개운한 마음으로 이런 생각에 잠기는 것은 참으로 유쾌한 일이다.3)” 80여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전혀 어색하지 않는 일상이다. 여기에 식민지 지식인의 고민 따위는 설 자리가 없다.
소설 <메밀꽃 필 무렵>과 수필 <낙엽을 태우면서>는 KAPF의 해체가 상징하듯이 적극적 사회참여방법이 거세된 식민지 청년이 선택할 수 있는 동전의 양면인 셈이다.
1) 이효석, <메밀꽃 필 무렵 : 이효석 단편선>, 서준섭 엮음, (문학과 지성사, 2007), p. 211 2) 이효석, 앞의 책, p. 507 3) 이효석, 앞의 책, pp. 489~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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