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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1-28. YES24 사실 샹탈 무페의 책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을 먼저 사고 싶었다. 그러나 책이 많이 않은 모양인지 출고하는 데 시간이 좀 걸릴 모양이었고, 책을 빨리 받아보고 싶었던 나는 다른 저서를 구입했다. 내용은 잘 모르겠지만 제목은 상당히 매력적이다. 살짝 프로이트의 냄새도 난다. 다원민주주의와 정치적인 것 샹탈 무페의 93년도 이후의 논문을 모은 것으로, 키워드는 #정치적인 것 #정체성 #다원주의 #민주주의 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때 중요한 건 93년도 이후라는 점이다. 93년은 (그 실상은 다르지만) 소련이라는 거대 공산주의 국가가 멸망한 이후로, 공산주의나 사회주의는 실패의 대명사가 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따라서 사회주의자였던 무페는 '새로운 정치 기획'을 필요로 하기 시작했고, 그것이 바로 라클라우와의 공저,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이다. 포스트 맑시즘 혹은 맑시즘에 대한 배반이라 불리는 이 작업은 맑스주의 이후의 맑스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 그들의 사상은 자본가와 노동자를 대립인자로 규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사민주의와 그 맥을 같이 한다. 물론 맑스주의 입장에서는 대단히 달갑지 않은 주장이다. 자본가와 프롤레타리아와의 대립과 자본주의의 내적 모순으로 인해 공산주의 사회가 도래한다는 게 맑스주의의 가장 정통적인 견해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포스트 맑시즘의 주장도 일리가 있다. 아니 도리어 더 합리적인 견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헤게모니와 사회주의 전략>에 나오는 내용은 이렇다: '완전히 고유한 정체성을 가진 사람은 없다. 노동조합과 평등을 우선시하는 자본가, 보수적이고 국수주의적인 노동자, 남성주의적인 여성- 이러한 여러 정체성들이 뒤섞여 존재한다.' 정신분석을 위시한 포스트모더니즘의 비합리성&비정합성을 그대로 닮아있는 이 주장은 상당히 그럴 듯하다. 무페는 본 저서에서 칼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을 제기함으로써 자신의 논지를 민주주의 사회학에 적용한다. 이때 정치적인 것이란 '모든 인간 사회에 본래부터 있으며 우리의 존재론적 조건을 규정하는 차원이자 제거 불가능하며 항상 갈등 및 적대와 관계할 수밖에 없기에 결코 길들일 수 없는 개념'이다. 이는 우리가 흔히 쓰는 정치라는 단어와는 조금 색깔이 다르지만, 동질적인 이야기이긴 하다. 정치란 결국 권력 다툼이고, 권력 다툼이란 결국 적대와 갈등 속에서 힘의 관계를 의미하는 게 아니던가. 무페는 이러한 정치적인 것을 다원민주주사회에 적용한다. 그것은 곧 여러 정체성으로 섞여 있는 우리 사회가 결코 화합의 장이 될 수 없음을 역설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편 그녀는 정치철학의 오랜 논쟁에도 참여한다. 즉, 공동체주의자와 개인주의자와의 대립에 참여하는 것이다. 개인주의자는 '개인에 대한 인정이 없으면 공동의 선이라는 개념도 없다.'라고 주장하는 사람이고 공동체주의자는 '그런 개인에 대한 인정조차 공동의 선 덕분에 가능한 것이다.'라며 대립한다. 이때 무페는 어느 한쪽의 손을 들기보단 그 양쪽 사이의 좁은 길로 통과하고자 노력하는데, 그녀는 오크쇼트의 '우니베르시타스'라는 정치 결사체를 예시로 든다.
완전히 이해하진 못했지만, 말하자면 소규모 혹은 지역 공동체의 유대관계를 이용한 공동의 선으로의 복무- 이것이 그녀가 주창하는 개념인 듯하다. 그녀는 개인들의 자유로운 공동체인 우니베르시타스를 공동의 유대와 관심사에 의해 묶음으로서 공동의 선에 복무하자는 주장을 한다. 실로 흥미로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이것이야말로 무페의 가장 핵심적인 주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녀는 완전히 자유로운 무연고적 개인주의를 지양하며 오로지 공동선에 복무하는 공동체주의 또한 거부한다. 그녀는 수많은 공동체 속에서의 자유로운 개인이라는, 다소 협소하고 좁은 개념을 통과하고자 노력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나의 사례가 떠올랐다. 나는 교회에 다니는 기독교 신자이자 (기독교를 대놓고 부정하는) 정신분석과 맑스주의를 공부하는 학생이기도 하며, 선교단체의 열심분자였으되 학교 잡지의 편집장이기도 했다. 각각의 공동체에서 내가 갖고 있던 정체성이나 자아 개념, 역할은 조금씩 달랐으나 '나 자신'에 대한 생각은 확고했다. 어쩌면 이것이 무페가 갖고 있던 생각이 아니었을까. (다양한)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주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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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진민주주의를 이야기하고, 공산주의가 무너진 이후 민주주의의 갱생을 모색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슈미트의 '적'의 관념을 적절히 활용해서 투쟁, 혹은 논쟁을 당연히 여기며, 다원주의를 하나의 현상으로 인정하면서 복잡한 민주주의를 인정하고 있다. 급진 민주주의에 대해 주장하고 이를 당연시 여기며, 이를 자신이 부인하는 사상적 보편화하기 위해 애쓰는 모습이 보인다. 많은 저자들이 인용되고 있어서 정작 본인의 사상을 좀 더 구체화 시키지 못하고 있다는 차원에서 독창적인 사상가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다만, 저자가 비판하고 주장하는 바가 현대에 반드시 논의 돼야 한다는 차원에서 그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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