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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잘 것 없는 것들에 깃들인 참된 생명을 찾아--- [시집-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보잘 것 없는 것들에 깃들인 참된 생명을 찾아--- [시집-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내용보기
시인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까, 싶은 경이로움. 그래서 아무나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다. 이 시집에는 우리가 늘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 온 벌레와 풀과 나무와 사물들이 따뜻한 생명을 가진 채 담겨 있다. 오죽 그러하고 싶었으면 시인은 시집 제목을 (번데기로 살고 싶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라고 했을까.우리는
"보잘 것 없는 것들에 깃들인 참된 생명을 찾아--- [시집-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 내용보기
시인들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한다. 어떻게 이런 생각을, 어떻게 이런 표현을 할까, 싶은 경이로움. 그래서 아무나 시인이 되는 것은 아닐 테다. 이 시집에는 우리가 늘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해 온 벌레와 풀과 나무와 사물들이 따뜻한 생명을 가진 채 담겨 있다. 오죽 그러하고 싶었으면 시인은 시집 제목을 (번데기로 살고 싶다면)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라고 했을까.

우리는 늘 위대하고 거창한 것만 꿈꾸면서 살지는 않는다. 오히려 바로 우리 옆에서 씩씩하게 자라고 있는 풀과 벌레들, 제 몫을 다하며 자리를 지키고 있는 일상의 사물들에서 삶의 더 큰 진실을 얻는다. 저대로 행복하고 저대로 가치로운 이 세상에 주어진 모든 존재들. 이 시집을 읽고 나는 길을 걸으면서 내 발에 밟히는 땅과 스치는 풀과 괜히 서 있는 게 아닌 나무와 집들을 유심히 보았다. 거기 그 자리에 있어서 조화롭고 신비로운 모든 것들.

나는 또 내 자리를 생각했다. 내가 지금 살고 있는 이유와 앞으로 살아야 하는 이유에 대해서도. 시인은 '삶이란 결국 못갖춘 마디로 정리된다(22p)'고 했지만 살아있는 동안 나의 행복과 나의 가치와 나의 참된 꿈을 좇아야 하리라고.

[인상깊은구절]
저 논두렁처럼
낮고 분명해야 하리라

딛고 지나간 발자국 옆에서
합장을 풀고, 싹을 틔우는 밤콩처럼

한줌의, 식은 재를 열고
몸 세우리라 (<처신>에서)
YES마니아 : 로얄 j***6 2000.05.11.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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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동화에 물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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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시들은 자연이다. 시골이고, 들이고 밭이고, 산이고 강이고.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줄곧 살아온 내게 자연과 시골로의 욕망은 문학작품에게로 향했다. 김용택 시에서 진한 풀내음이 물씬 난다면 이정록 시인은 보드라운 흙냄새와 풀꽃냄새가 알싸하게 퍼지는 느낌이다. 아이들의 자람을 숟가락이 크는 것으로 비유하는 가 하면, 동서벌꿀 통에 고추장을 담아 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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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시들은 자연이다. 시골이고, 들이고 밭이고, 산이고 강이고. 도시에서 나서 도시에서 줄곧 살아온 내게 자연과 시골로의 욕망은 문학작품에게로 향했다. 김용택 시에서 진한 풀내음이 물씬 난다면 이정록 시인은 보드라운 흙냄새와 풀꽃냄새가 알싸하게 퍼지는 느낌이다. 아이들의 자람을 숟가락이 크는 것으로 비유하는 가 하면, 동서벌꿀 통에 고추장을 담아 주시는 어머니를 묘사한다던가, 신발안에 개구락지가 들었던 사연 등등 소소한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솜씨가 맛나다. 이런 따스함과 사소함이 이 시인에게 벽이 될수도 있건만, 나는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고 표현하는 소박한 그의 시가 이대로 계속 되어주길 바라는 욕심이다.
k*****7 2004.07.29. 신고 공감 3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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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력으로 가득찬 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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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시는 생명력이 가득 차 있다. 물론, 그 생명력에 대한 것은 때때로 자연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고, 사물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고, 사람들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다.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의 「물소리를 꿈꾸다」에서만 봐도 그렇다. 그는 ‘버드나무와 한 살림 차리고 싶다/ 물오은 수컷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자연와 한 몸이 되고자 하는 것, 생명력에 대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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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록 시인의 시는 생명력이 가득 차 있다. 물론, 그 생명력에 대한 것은 때때로 자연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고, 사물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고, 사람들에 대한 노래이기도 하다. 『버드나무 껍질에 세들고 싶다』의 「물소리를 꿈꾸다」에서만 봐도 그렇다. 그는 ‘버드나무와 한 살림 차리고 싶다/ 물오은 수컷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 자연와 한 몸이 되고자 하는 것, 생명력에 대한 노래를 하고 있다. 대상과 하나가 되도록 하면서 시인은 생명력에 대한 목소리를 높여가고 있다. 시인의 이런 생명력에 대한 목소리는 뭉퉁하지도 굵지도 않다. 가늘고 섬세하다. 한 사물마다 관찰하고, 그 시선 또한 세심하다. 마이크로적인 시선처럼 말이다. 물론, 이런 세심함이 때로는 사물의 본질과 시인이 말하고자 하는 것에 가까이 다가갈 수도 있겠지만 읽다가 지루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것이 시를 오히려 늘이는 것만 같았다. 하고자 하는 말을 질질 늘여서 하는 것만 같았다.어딘가는 좀 잘라버리고 싶을 지경이다. 너무나 작고 불필요한 것까지 자세히 보고 있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그것이 읽는 사람을 자칫 지루하게 만들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인의 눈은 따뜻하고 시 역시도 따뜻하다. 이것은 온도같은 따뜻함보다는 세심한 배려에서 나오는 따뜻함이 옳은 것이다. 하지만 그것이 이정록 시인에게 있어서 벽이 되고 있는건 아닌가 고민해봐야 할 문제가 아닌가 생각한다. 이정록 시인에 있은 말하는 방식을 바꿀 필요가 있지 않을까. 너무 세심한 시선이 때로는 지저분하게 보이기도 한다. 읽다가 손에 놓아버리기까지 한다. 그리고 이야기하는 것도 너무나 식상하다. 독자는 때로 당연한 것을 당연한 말로 하는 것보다 당연한 것을 새로운 말로 하는 것을 원한고, 혹은 새로운 것을 말해주기를 바라기도 한다. 너무 당연한 말을 너무 식상한 방법으로 당연히 하고 있지 않은가.
YES마니아 : 플래티넘 y******2 2004.05.19. 신고 공감 2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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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단한 시 감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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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심상이 다양하게 융합되어 신선한 기운이 시를 읊는 입가에 감돈다. 이정록 시인은 벌레들은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다. 파브르의 관찰력과 시가 만나면 이정록의 시처럼 되었을까.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시는 그냥 읽는 것 만으로도 시인의 상상력의 파티에 참여하는 기분이 든다.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무언가 슬픈 감정이 있더라도 그것은 시의 전체적인 분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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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소리를 꿈꾸다=""> 다양한 심상이 다양하게 융합되어 신선한 기운이 시를 읊는 입가에 감돈다. 이정록 시인은 벌레들은 어지간히 좋아하나 보다. 파브르의 관찰력과 시가 만나면 이정록의 시처럼 되었을까. 답답함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이시는 그냥 읽는 것 만으로도 시인의 상상력의 파티에 참여하는 기분이 든다. 즐겁고 기쁘기만 하다. 무언가 슬픈 감정이 있더라도 그것은 시의 전체적인 분위기에 맞는 정감은 아니다. 이 시의 근본정감은 기쁨과 희망이다. 이런 시들이 좀 많아지면 이 사회는 조금 더 살기 편해질까. <숟가락> 숟가락이 자란다는 상상력에서 시작하여 어머니의 자식에 대한 사랑까지 아우른다. 그 과정이 매끄럽고 걸리지 않는 이유는 한국에서 자라고 태어난 사람이면 밥이란 음식을 퍼먹는 숟가락의 존재를 무의식적이든 의식적이든 잘 인지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밥을 푸는 행위와 자연의 오묘한 변화는 따로 떼어진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시를 감상하면 알 수 있게 된다. 그리고 어떤 깨달음을 가슴에 새기게 된다. 그 깨달음은 말로써 설명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저 어떤 느낌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눈> 크크 소리가 절로 나는 시인의 재치가 있다. 어안이 벙벙하다는 상투적인 문장의 주체를 정말로 어(魚)로 만들어 색다른 느낌을 주는 것이다. 물고기의 삶의 정한 이랄까 그런 것을 이 시를 읽어 나가면서 느꼈는데 시의 줄거리가 다른 시보다 불명확해서 이해하기는 힘이 들었다. <파리> 재미있다. 그냥 재미있다는 말 밖에는 달리 떠오르지 않는다. 곤충의 의인화가 재미있는 것을 이 시를 통해 처음 알 수 있었다. 파리인 인간화 하여 무임승차했다고 하는 화자의 기막힌 수사력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그리고 파리떼를 지고서라도 사이사이 사람이 타는 것이 고맙다는 화자의 말은 시종일관 내 입가에 웃음을 담게 하였다. <슬픈 개구리=""> 개구리가 의인화 된 것인지 아니면 사람이 개구리로 비유된 것인지 시만 봐서는 알길이 묘연하다. 하지만 개인적인 생각으로 사람이 개구리로 비유된 것 같은데 그 이유는 인간의 감정이 절실히 담겨져 있는 시이기 때문이다. 삶의 괴로움을 노래한 듯 싶다.
y*****o 2005.11.17. 신고 공감 1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