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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 생각을 해볼 때가 있다. 만약 소설이나 시를 작가와 제목을 가린 상태로 평을 하라고 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더러 새로 나온 음료수나 커피의 경우 먹는 사람 눈을 가린 상태에서 맛에 대한 평가를 하는 블라인드 테스트를 한다. 이렇게 테스트를 하는 이유가 브랜드에 대한 선입견을 갖지 않은 상태에서 맛을 제대로 평가하기 위해서라고 한다.아무래도 유명 브랜드에 혹하는 경우가 많을테니. 그런 것처럼 널리 알려진 작가나 작품도 그런 후광효과가 없다고는 못할 것이다.
![]() 지금 읽은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도 브랜드 가치가 높은 작품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얼마전 일본 드라마를 보는데 식물인간 상태인 중학생 딸에게 나쓰메 소세키의 '도련님'을 읽어주는 장면이 나오는 걸 보면서 소세키가 일본국민의 사랑을 듬뿍 받는 국민작가라는 말이 허언은 아니라는 걸 실감한 적이 있었다.
'도련님'은 유쾌, 상쾌, 통쾌하게 금방 읽을 수 있는 작품이었다. 시골 중학교가 배경으로 등장하는데, 학교가 마치 사회의 축소판을 연상하게 했고, 인간 군상을 그리고 있었다. 문제를 정당하게 해결하기 보다는 뒤에서 비겁하게 힘을 발휘하거나 꼼수를 써 해결하는 모습들이나 앞과 뒤가 다른 위선과 끊임없이 내 편 니 편 패를 가르면서 자신의 이익만을 챙기는 모습들을 보여준다. 그런 한편 불의와 꼼수에 굽히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의지를 지켜가는 인물 역시나 등장한다.
이 작품을 이끌어간 힘은 '나'와 교사들의 캐릭터와 기요의 존재였다. 도련님하면 곱상하게 자란 지체높은 집 자제가 연상되는데, '나'는 말썽장이에 고분고분한 성격의 소유자는 아니었다. 그런 '나'의 성격을 인정해주고, 천하에 다시 없는 도련님으로 떠받들어주는 기요가 있었기에 그는 도련님일 수 있었던 것이다.
![]() 작품 속에서 '나'가 교사에게 붙여준 별명이 인상적인데, 너구리는 무능력한 교장, 늘 빨간 셔츠를 입고 다니면서 사람들의 패를 가르고 뒤에서 사람들을 조정하는 교감은 빨간 셔츠, 교감의 비위를 맞추느라 정신없는 미술선생은 딸랑이, 안색이 퍼런 영어 선생 고가는 끝물 호박, 건장한 까까머리의 수학선생은 예의 모르는 돌중같다고 센바람..작품 내내 별명으로 불리는지라 교사들의 캐릭터를 강렬하게 부각시키는 한편, 등장인물들이 어떤 모습으로 움직이고 행동하고 다니는지 머리 속에서 그려졌다. 또 작품 전체가 밝고 경쾌하게 진행될 수 있었다.
작품 속에 삽입돼 있는 일러스트 또한 작품 분위기를 밝게 조성하는데 한 몫 거들고 있었는데 한편으로는 일러스트 분위기가 너무 현대적인데다가 일러스트 작가 이름이 너무 눈에 띄여 '도련님'의 시대적 느낌이 탈색된 듯 해서 아쉬웠다. 고전의 반열에 든 작품이라면 작품 위에 쌓인 시간의 더께와 작품 당시의 시대상을 느낄 수 있는 것도 괜찮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도련님'처럼 유명작가의 유명 작품을 읽을 때면 나 스스로를 단속하고 있다. 유명세에 홀리지 말고 작품 자체에만 파고들자고, 그런데 그렇게 각오를 다지면서 읽다보면 오히려 작품에 몰입하는 게 방해되는 경우도 생기는데, '도련님'은 그렇지 않았다. 밝으면서도 따뜻한 기운이 전해져왔다. 불의와 부정에 관해 해학적으로 풀어가는 이야기 방식도 좋았거니와 시니컬한 듯하면서도 정의로운 괴짜 '나'의 캐릭터는 볼매였다. '나'와 기요와의 관계도 훈훈하기 이를데 없었다. 나쓰메 소세키의 작품을 더 많이 읽어야 잘 알 수 있겠지만, 그럼에도 '도련님'을 통해, 작품이 한세기 넘게 사랑받을 수 있었던 이유를, 또 그가 왜 일본인의 사랑을 받을 수 있었는지만큼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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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08년 作 나쓰메 소세키
도쿄의 중산층 가정에서 남부럽지 않게 생활하는 한 소년이 성장하여 사회에 첫발을 내딛으며 겪는 에피소드가 주된 내용이다. 주인공은 어렸을 적 부터 말썽꾸러기로 이름을 날린다. 그의 천성의 기본은 대담함과 솔직함이라고나 할까? 다른 아이들은 서로의 눈치를 보면서 꺼려 하는 일도 주인공은 서슴지 않고 해버린다. 그래서 그에게는 남들과 다르다는 편견, 그리고 말썽꾸러기라는 수식어가 붙었다. 그런 그를 싫어하지 않고 귀여워 해주는 유일한 인물이 있었으니, 그의 집에서 일을 하는 할머니 '기요'였다. 기요는 굳이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하지 않아도 되지만, 오래 일하면서 살아온 집을 굳이 떠나고 싶지 않다고 이야기 하는 정많은 할머니이다. 그녀만큼은 주인공을 '도련님'이라고 부르며 때론 용돈도 쥐어 주며 끔직이 아낀다.
그런 '도련님' 기새가 등등하던 어린 시절과 달리 학교를 졸업하고 나자 갈곳이 없다. 그가 특기로 여기는 장점들은 사회에서는 전연 쓸모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그에게 기회가 찾아오니 시골 교사 자리이다. 워낙 특출하던 그이기에 탐탁치 않지만, 산 입에 거미줄 치기 싫어 억지로 시골 교사로 부임해 간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 월급 40엔에 이 멀고 먼 깡촌까지 오겠느냐고, 인간은 다 거기서 거기다. 화가 나면 싸움쯤은 누구라도 할 수 있는 거지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에서 대꾸를 할 수는 없다. -중략-그렇게 어려운 역할이라면 채용하기 전에 이러이러하다고 말을 했어야지 않은가. 나는 거짓말을 하는 건 싫으니 어쩔 수 없다. - p38-
도쿄 출신 도련님의 눈에 시골 생활은 그저그렇다. 게다가, 학교 선생님이라고 하면 모두가 변변치 않은 이들 뿐이다. 역시 시골이다. 그나마 교감이라고 대학 교육까지 마친 인텔리가 있는데 그나마 나아 보인다.
오늘 학교에 가서 사람들에게 모두 별명을 붙여줬어. 교장은 너구리, 교감은 빨간셔츠, 영어 선생은 끝물호박, 수학은 센바람, 미술은 딸랑이야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그나마 낫다고 생각했던 교감 선생님이 최악의 적이었던 것이다. 교감은 자신에 대한 우월감에 빠져있는 사람일 뿐만 아니라, 자신의 힘을 이용해 파벌을 가르고, 또 힘이 약한 사람을 괴롭히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 말썽 꾸러기가 과연 학교에서는 정의의 사도가 될 수 있을 것인가?
겉으로는 빨간 셔츠 쪽이 훌륭한 사람 같아 보이지만 겉모양이 아무리 번지르르 해도 사람 마음까지 움직일 수는 없다. 돈과 권력과 논리로 인간의 마음을 살수 있다면 고리대금업자나 순경이나 대학교수가 사람들에게 가장 호감을 사야 할 것이다. 중학교 교감 따위의 언변으로 내 마음을 움직이려 하다니, 인간은 자기가 좋고 싫은 대로 움직이는 것이다. 언변으로 움직이는 게 아니다. - p165 -
도련님의 1908년에 출간된 소설입니다. 하지만, 시대가 무색할 정도로 재치있는 글귀가 읽는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합니다. 솔직하고 정직하지만, 천덕꾸러기였던 주인공이 어른이 된 뒤 세상에 적응 못하여 부임해간 시골에서도 어려움을 겪습니다. 어쩌면 이 세상에 주인공을 맞추기에는 주인공은 너무 곧고 세상은 너무 휘어져 있었던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력 따위가 무슨 상관입니까? 이력보다 의리가 중요합니다. - 도련님曰-
어쨌든 나쓰메 소세키는 시대를 뛰어넘는 재치로 이러한 상황을 재미나게 그려 나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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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어쩌면 빨간셔츠같은 이들로 붐비는 더럽고 야비한 곳일지도 모른다. 나쓰메 쇼세키는 언제나 내면 독백과 미묘한 감정처리에 독보적인데, <마음>에서도 그랬던 것 같다. <도련님>은 남들의 시선에 크게 개의치 않고 자기 멋대로 행동하는 쿨한 도련님이 세상에 적응하는 이야기다. 여기에 '기요' 같이 헌신적인 하녀와 야비한 교감인 '빨간 셔츠'는 소설 속에서 대비되는 캐릭터이다. 내면이 아름다운 나의 한 친구가 처음으로 내게 소개해준 책이다. 이 책에서 도련님이 좌충우돌 성장하는 점이 인상깊었다고 했다. 나는 헌신적인 기요의 존재가 내게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야비하고 더러운 정치공작에 분노하면서 읽었다. 그 친구는 나에게 소설 속의 이야기에 너무 자신을 대입해서 읽지 말라고 했다. 맞는 이야기다. 하지만 그것도 나름 하나의 독서방법이 아닐런지. 나쓰메 소세키는 읽을 땐 별 생각 없다가 읽고 나서 늘 많은 생각을 하게 하는 작가다. 말하자면 얕은 파도가 아니라 너울이랄까. 살살 불어오는 이 바람이 언제 폭풍이 되어 몰려올지 알 수가 없다. 분명 문학작품을 평론하라면 이런 저런 이야기가 많겠지만, 그것은 나만 갖고 있으려 한다. 어차피 도련님도 자기 할 말 다 싸질러도 아무런 변화를 못 일으키고 돌아올 수밖에 없지 않았던가? 다만, 좋았던 점 하나만 지적하자면, 우울한 이야기를 밝은 톤으로 진행하고, 하녀 기요의 죽음을 경쾌하게 처리하는 점이 좋았다. 어렸을 때부터 자신을 믿어주던 유일한 사람인 기요가 죽었다면 보통 울고 불고 난리를 치면서 불안하고 방황하는 인물을 제시해야 전형적일 것 같은데 쇼세키는 그런 방식을 택하지 않았다. 그런 점이 작가의 탁월한 점이었던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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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도 기억한다. 우연히 이 책을 읽고 '보물'을 발견한 기분으로 다음날 아침 친구에게 열심히 스토리를 설명하고 꼭 읽어보라고 강권하다시피하며, 히죽히죽 웃어대던 나. 그때 이후 벌써 여러권의 '도련님'을 소장하며 틈틈히 읽어오고 있다. 출판사마다 색다른 삽화와 미묘하게 다른 번역, 구성들이 일단은 눈에 띄지만, 원작이 지닌 깊은 의미는 가벼운 페이지수와 달리 내 마음 깊숙히 무겁게 다가온다. 정말 설득력있고, 완벽한 글은 오히려 이렇게나 쉽고도, 간결하게 표현되어 전달될수 있구나 탄복하며 고개 숙이는 나..... 난 뭔가를 설명하려들면 점점더 장황하고, 지루해지고, 이내 스스로 싫증이 난다. 또한 혼란스러운 내면과 외부와의 충돌에서 파생되는 여러 감상과 통찰을 채 쉽게 정리하지도 못하는데, 일본이란 나라의 이 작가분은 벌써 백여년 전에 인생에 대한 많은 통찰과 명확한 답을 이런 쉬운 책 하나로 은근하게 표현했다니..... 놀랍고, 존경스럽다. 읽을때마다 색다른 맛도이 책의 미덕이라 하겠다. 처음에는 '도련님'의 독특한 캐릭터가 끌렸고, 이후엔 그의 다사다난한 일상이 흥미진진했다. 나중에는 그의 주변인물들을 면밀히 살펴보게 되었고, 이번에는 도련님과 하녀 '기요'의 따뜻한 교류에 맘에 쓰인다. 피가섞인 가족보다 서로를 더 이해하고 살피는 이들의 기묘한 애정이 맘을 따뜻하게 한다. 도련님이 그렇게나 반듯하게 그렇지만, 개구지게 자란것은 하녀 '기요'의 공이 아닐까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든든한 애정의 그늘에 힘을 얻고 신뢰를 얻어 그나마 삐딱하지 않게 자란듯..... 다음에는 또 어떤 감상을 얻게될지 미리부터 기대가 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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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련님의 어린시절부터 기요할머니가 돌아가실때까지의 이야기가 담겨있다. 기요할머니의 도련님에 대한 사랑은 지극정성이다.
개구쟁이 시절의 도련님은 아찔할 정도였다. 왜냐하면 아이들이 툭하면 던지는 말도 안되는 짓을 행동에 옮겼기 때문이다. 특히 "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니 손가락을 잘라 봐라." 라는 말에 손가락을 자르려 했다. 다행히 뼈가 걸려서 살만 좀 잘리고 말았다나 어쨌다나. 정말 감당안되는 도련님이다. 그런 도련님을 기요 할머니는 꺽이지 않는 대나무라느니, 우직하다드니 그런 칭찬을 해준다. 그런 도련님이 어쩌다 보니 학교를 졸업하고 시골학교 수학선생으로 가게 되었다. 그것도 수학선생님이라니 참 어려운 문제를 푸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도련님은 기요 할머니말대로 나름 괜찮은 성격이다. 시골학교라서 그런지 도련님이 어딜 가든지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아이들이 온천에를 갔다 왔네. 꼬치를 먹었네. 하면서 다음날 수업시간이 되면 선생을 놀리기 일쑤였다. 기요할머니는 도련님과 함께 살고 싶어했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서 지금은 잠시 떨어져서 지내고 있다. 아들도 아니고 손자도 아니지만 기요할머니와 도련님은 각별한 사이이다. 도련님은 학교 선생들에게 별명을 붙인다. 빨간셔츠라든지, 센바람이라든지, 끝물호박 선생이라든지 말이다. 빨간셔츠에게 약혼자를 뺏긴 끝물호박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으니 안타까웠다. 빨간셔츠는 교감선생님이라 결국에는 끝물호박 선생을 딴 시골학교로 보내 버린다. 착한것도 병이다. 어쩔수 없는 일도 있지만 이건 뭐 답답할 뿐이다.
빨간셔츠 앞에서 딸랑 거리는 딸랑이 선생도 있다. 어딜가든 딸랑딸랑, 뒤태마저 남다르다. 어딜가든 별 다를것이 없어서 좋다고 해야할지.
기요할머니의 편지를 한참 들여다보는 도련님과 하숙집 할머니의 모습이 재미있게 그려져 있다. 하숙집 할머니가 반찬으로 감자만 내리 3일을 준다. 감자나 먹으란 이야기일까. 하여튼 감자만 먹다가는 진짜 감자가 되어 버릴것만 같은 기분이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렇게 매일 감자만 먹어서야 목숨을 부지할 수 없을 것이다. 끝물 호박 선생을 놀릴 때가 아니다. 머잖아 내가 끝물 감자 선생이 되겠다. (138쪽) 소소하고 일상적인 이야기들이다.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재미있게 읽고서 도련님을 읽게 되었는데 새록새록 재미는 있다. 툭툭 던지는 듯한 재미, 일상의 고달픔과 재미가 담겨져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