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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 : 각종 잡다부리한 소설의 짜집기. 재미도 없고, 참신성도 없고, 스토리 전개도 뭐 하고.
도대체 누가 이런 책에다가 숱한 찬사를 퍼 붓는가. 솟아 부을려면 독설을 퍼 부으라.
저자의 이전 책도 봤다만은 청출어람이 아니라 필력이 소진해 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저자여... 펜을 놓아라. 아니 키보드를 빼라.
그리고 고민 좀 해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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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도 어김 없이 크리스마스는 돌아왔다. 저기 중동의 한 나라에서 인간의 몸으로 태어나 죄를 대속하고 죽었다는 한 남자는 그 후로 신의 아들이 되어 남겨진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고 그이의 태어난날을 기억하기 위해 12월 25일을 생일날로 현재의 많은 이들이 기념한다고 한다. 바로 그날이 오늘이다.
사실 서른 세 해를 살다 죽은 그이가 말한 것은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가장 자주 말한 것은 아마도 사랑이 아니었을까? 불특정다수에 대한 한없이 베푸는 사랑 흔히들 아가페적 사랑이라고 하는 그것 말이다. 눈으로 보아야 믿을 수 있는 사람들을 위해 직접 모든 것을 보여주고 가버린 남자는 그 후로 아가페적 사랑의 기호가 되기보다는 변질되어 영원한 삶과 어마어마한 권능의 기호가 되었다.
인간들은 신의 존재를 부정하지 않았으나 과학이라는 것을 접하고 가설을 세우고 증명하는 단계를 지나고 신의 영역이라고 했던 일련의 것들을 고학과 인간의 이성을 통해 밝혀낼 수 있게되면서 또 다시 신화시대의 바베랍을 다시 쌓기 시작하는 것이다. 욕망의 극점을 향해 달려가는 인간의 모습은 유리판 위에 쌓는 모래성과 같다.
<롱기누스의 창>은 신과 과학과 미디어의 혼합물이다. 서른 세 해를 살다간 청년이 이 세상에 알리고 싶어했던 것이 무엇이고 과학은어떤 식으로 바벨탑을 쌓기 시작했으며 미디어는 어떤 식으로 과학을 부추겼는가라는 점에서 이 이야기를 읽어봐도 재미있을 것 같다. 소설에서 이런 무거운 주제를 이야기하게 되다니 성탄절 이벤트치고는 좀 무거운 일이 될지도 모르겠다.
<롱기누스의 창>을 읽다보면 한국인이라면 한 번 쯤 들어봤음직한 사람의 이름이 떠오른다. 황씨 아저씨의 캐릭터가 <롱기누스의 창>에 녹아내린 것 같다. 박이원이란 인물은 배아 복제의 권위자이지만 한국 과학계와 국제 과학계에서 축출되어 오로지 과학에 대한 호기심으로 악수스 문디의 일원이 되어 위험한 '인간복제'실험에 참가한 사람이다. 한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사건이 세계로 퍼져나가 일련의 굴절을 거쳐 나타나게 된 것일까?
서른 세 해를 살다간 청년이 골고다 언덕에서 죽음에 처했을 때 마지막으로 죽음을 확인한 창을 소재로 과학의 발전으로 청년을 아기 상태로 복제해내려고 하는 집단과 교황청의 대결이 가장 큰 포인트다. 상업성과 도덕성의 대결이라고 봐도 무방하 것 같다. 복제가 합법화된다면 개인은 개인을 무한히 복제하므로써 영생을 얻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인간은 유일한 존재라는 것이다. 대량 복제를 통해서 여럿이 존재한다는 것은 도덕적으로 결함을 드러낼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여기서 악수스 문디라는 집단이 등장하는데 사실 악수스 문디의 수장은 언론과 연관이 있는 모양이다. 어디서 많이 본 포멧이다. 007영화를 케이블을 통해 보다보면 나오는데 미디어 대박을 위해 전쟁을 일으키려는 즉 미디어의 선점을 위해 이슈거리를 스스로 생산하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도 많은 사건이 있었지만 원색적이고 도발적인 제목만 있고 내용은 없는 시선 끌기식의 기사들의 생산과 궤를 같이한다. 배아복제가 성공하면 미디어에 정보를 흘려 미디어 대박을 노린다는 것이다. 배아복제가 되면 특허출원을 해서 일석 이조의 득을 얻는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보통의 소설은 새로운 인간복제품이 세상에 나오는 것을 원천적으로 봉쇄하거나 동귀어진의 형태로 이야기를 마무리하게 마련인데 이 <롱기누스의 창>에서는 그 복제품이 태어나 사람의 손에 키워지게 된다. 아이를 세상에 태어나게 하면서 이루어진 성선설과 성악설의 혼란이다. 아마도 작가는 성선설도 성악설도 아닌 백지론 - 내 마음대로 붙인 이름인데 길들이기 나름이라는 의미를 포함한다 환경 결정론이라고 해야하나? - 을 믿는 것 같다. 환경에 따라 다른 사람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서른 세해를 살다간 청년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날을 기념하면서 그가 등장하는 이야기를 읽어보는 것도 재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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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의 옆구리를 찔렀다는 롱기누스의 창에 대한 이야기만으로도 한번쯤 돌아보게 만드는 소재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롱기누스창에 묻어있는 피에서 DNA를 채취해 신을 복재한다. 이 이야기만으로도 흥미롭고 신화에 관련된 이야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읽어봐야지 하는 마음을 갖게할 정도로 매력적인 소재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그런의미에서 나또한 이 소재에 흥미가 생겨 책을 보았으니까...
그리고 읽으면서 기대했다. 결말은 대충 예상이 되지만 내가 원하는건 그 흥미로운 소재를 어떻게 풀어나가는 거였으니까. 살며시 기대도 해보았다. 댄브라운 급이 소설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는 기대. 그러나 내 기대는 그냥 기대에 묻히고만 말았다.
내가 좀 멋대로 기대치를 높게 잡은건지 몰라도 이만한 소재로 이런 내용이라니 좀 많이 실망하게 되었다. 신화와 DNA에 관한 나열식 설명들과 좀 어설퍼 보이는 전투신, 진부해 보이는 결말, 살려서 쓴다면 분명 엄청난 흡입력을 발휘할수 있는 부분인데도 받는 느낌은 교과서를 읽는듯한 딱딱한 느낌뿐이었다. 그리고 결말에 작가가 말하는 바가 무엇인지는 알겠으나 크게 설득력 있게 다가오지 못했다. 작가라면 책전반에 자신이 말하는 바를 사건의 흐름에 따러서 자연스럽게 말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런 얼런뚱땅이라고 생각될 만큼 어색하게 만드는 결말이라니 작가한테는 미안한 말이지만 소재가 아깝다고 느껴질 정도였다.
내가 이 소재로 이런류의 소설을 쓴다면 작가보다 잘 쓸자신은 없다. 잘쓰지도 못하면서 비평만 늘어놓는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지만 돈을내고 책을 사서 보았으니 이런비판정도는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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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의 창. 나는 원래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났고 꽤 독실한 신자ㅋㅋ 라고 생각한다. 롱기누스의 창에 대해서는 예전에 어디선가에서 본 인터넷 기사에서 알고 있었고 예수님의 수의 라든가.. 등등에 대해서도 꽤 관심있게 보고 그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그런데 이 책을 쓴게 언제일까 봤더니 2007년도였다. 할거면 불안하거나 쪼잔하게 굴지 말고 통 크게 ㅋㅋ
뭐 일단 기독교에서는 논란이 크긴 하지만
발상은 참 좋다.
한번쯤 읽어보고 생각하게 할만한 것들.
뭐, 아주 보수적인 시각에 꽉 틀어박혀서 60년대에 나서 배운 목사님들께 곧이곧대로 고집세게 배운 사람들이야 이 책을 읽으면 바르르르 떨수도 있겠지만 지금이 60년대도 아니고. 사람들이 민감하게 생각할만한 문제를 딱 잡아서
문제는
6~7세 아동이 보면 적절할 듯한 악당의 이미지라서... 내용 면으로는 선과 악의 구도가 너무나 당연하고 나쁜 쪽으로는 나쁜 이미지 당연하고 성격들도 안 좋고, 그럴만한 성장과정쯤도 있었고
사실 사람들은 그렇게 해서 착하게 된다거나, 나쁘게 되거나 하지 않는다는 게 문제지 않을까? 인간의 성격이 단편적인 게 아니기 때문에 (놀부, 흥부가 아닌 이상) 복잡한 성격과 심리 구도를 잘 드러내줘도 좋았을텐데. 상황이 몰아가기 때문에
구성이 평이하다고 한 것은.. 요즘 왠만한 '문제를 해결해나가야 하는' 소설에서는
사실 이게 꽤나 효과적인 구성이긴 한데
뭐,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 주디스의 마지막 즈음에 나오는 대사 "진지한 사람이 좋겠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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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롱기누스의 창을 보고 애니메이션 에반게리온이 떠올라서 혹시.. 종말에 관한 이야기인가 하고 궁금증에 읽어보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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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복제의 산물. 다른 아기의 탄생, 두번째 메시아의 탄생.
"이틀 후, 태양이 떠오를 때."
-본문中에서..
예수를 찌른 그 옛날의 창을 현대의 과학기술로 DNA를 복제한다는 신선하지만 있을법한 스토리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책을 처음 접했을 때에는 '다빈치 코드'가, 읽는 도중에는 '신의 유전자'가, 읽은 후에는 "롱기누스의 창"만이 선명하게 뇌리에 꽂혔다. 개인적으로 매우 책을 많이 접하는 편이지만 이렇게 생생히, 준비가 잘 되어 묘사된 소설을 읽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다빈치코드'의 스릴감과 '신의유전자'에서의 구체적인 의학적 지식을 가볍게 곁들인 소설은 끝내 자신만의 색깔을 짙게 각인시킨다.
무엇보다 나는 무교였기에 잘 알지 못했던 기독교의 사상과 가르침이라는 것을 이 책을 통해 대략적으로 배울 수 있었다. 이 책은 전체적으로 기독교사상이 짙게 배여있기에 종교가 다른 독자들은 나처럼 약간의 이해를 필요로 하기에 벅참을 느낌과 동시에, 그 어떤 '다른것'을 교양삼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된다. 교육적으로도, 종교의 차이로 인해 평소에 모르는 것이 있었던 사람이라면 교황과 바티칸처럼 유명한 배경과 꽤나 자주 인용되는 이야기들이 이 책에 실려있는것을 군데군데서 느낄 수 있으니 이 기회를 통해 배워보는것도 좋을듯하다.
이 책의 저자는 프랑스 작가인 '아르노 들랄랑드'로서 '단테의 신곡살인'의 저자이기도 하다. 다른 저자의 책이긴 하지만 시리즈인 '단테의 모자이크살인'을 즐겁게 읽은 기억이 있기에 아르노의 책을 아직 읽지 못했지만 많은 기대를 걸고 있던 작가이기도 했다.
이 책은 독자들에게 이와 관련된 다른 책들을 더 찾아보게 해 줄 유익한 매력을 지닌 책이다. 이 책을 읽은 후, 의학적으로도 인간복제에 관해 관심이 생기게 되었다면 내용상으로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비슷한 주제에 대해 더욱 의학적으로 담아낸 마이클 코디의 '신의 유전자'를 읽어보는 것을 권한다.
참고로 이 책에 등장하는 꽤나 비중있는 역을 맡은 한국인 과학자의 행동을 지켜보는것도 쏠쏠한 재미를 준다.(비록 악역이었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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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가가 예전에 썼던 <단테의 산곡 살인>은 미스테리 스릴러 물이었다. 잔혹한 연쇄 살인을 저지르면서도 냉정한 범인은- 마치 <양의 침묵>속 핵터 박사를 떠오르게 했었다. 그런데 이번 작품인 <롱기누스의 창>은 첩보 스릴러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교황청 對 예수의 유전자를 복제하려는 집단과의 쫒고 쫒기는 모험과 살인은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엽기 살인은 아니다) 전작이 공포스럽고 잔혹했다면 이번 작품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326페이지의 긴 책이지만 한 번 손에 쥐면 계속 손을 놓지 못도록 하는 긴박감이 넘처 흐른다. 일단 소재가 재미있고 진행방식이 역동적인데다가 한국인 유전학자까지 등장한다. =============== 과연 롱기누스의 창은 실제하는 것인가? 예수의 유전자는 복제될 것인가? 복제인간이 탄생한다면 그는 예수라고 할 수 있을까? 등등... 많은 유전학적인, 생물학적인 궁금증을 자아내는 진행이 윤리적 종교적 문제까지와도 결합되면서 여러가지 흥미진진한 상황들을 만들어낸다. 더구나 주인공은 아름답고 연약한 젊은 여자. 가녀린 여주인공이 반종교. 반교황 세력과 맞서면서 각국을 넘나들며 정보를 수집하고 사건 해결에 일익을 담당하기 까지 아슬아슬한 모험이 계속된다. (책을 덮고 나서도 결말을 알 수 없다-아마도 속편이 나오지 않을까 싶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의문과 암살. 그녀에 대한 추적. ========================================= 어쨌거나 무엇보다, 그래서, 이소설의 "특별한 결말"을 보는 느낌은 참신하다. 일반적인 첩보 액션물의 전통을 따른다기 보다 작가적 개성을 유감없이 발휘했으니까. ======================================== 암호, 유적 탐사, 비밀. 악마주의, 신비주의 교리, 이교집단 성단기사단 , 성의, 종말론등.. 역사 기록에 평소에 관심을 가져온 독자라면 꼭 읽어보면 좋을 것이다. -과거의 역사(롱기누스 시대)에 대한 묘사도 리얼하고 현재 위기의 상황묘사도 고고학적인 배경이 멋지게 묘사되어 있다. ============= 그러나 술술 읽히는 쉬운 대중 소설을 기대하고 본다면 쉽게 진도가 안 나가 안타까울 수도 있다. 무엇보다 로멘스나 섹스 폭력에 대한 대중적인 묘사에 그닥 치중하고 있지 않을 뿐더러 블록버스터급의 진행이나 캐릭터 설정을 강조하고 있지도 않는 책이다. 미국 소설의 버터 발린 급발진 자동차 같은 느낌이라기 보다는 움베르트 에코 식의 역사주의가 가미된 진지한 느낌이 꽤 있다. 따라서 지식적 즐거움을 추구하는 독자라면 이 책을 더 좋아하지 않을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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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의 매력은 흡인력에 있다고 생각한다. 어느정도 읽어나가도..'이래도 안 읽을래?' 하는 독자를 빨아들이는 흡인력이 없다면 대중소설로는 매력을 잃었다고 생각한다. 롱기누스의 창은..흡인력을 가진 속도감 있는 대중소설임에는 틀림없다.
2000년 전에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된 사건은 현대의 첨단과학에 까지 연결되어 이야기의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해 간다.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의 죽음을 확인하기 위해 그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자가 롱기누스이고, 롱기누스 창에 묻은 예수의 피로 그를 복제하려는 악수스 문디라는 조직과 신의 복제라는 엄청난 문제에 맞서는 바티칸의 대결 구도는 한장 한장이 스릴러를 다룬 영화를 보듯 빠져들게 했다. 약간의 반전 인 듯한..마지막 부분이 영화로 치면 속편을 예고 하는 것 같기도 했지만.. 신을 복제하는 첨단과학이라면..대략 난감이다!!
최근 교황청에서 악령을 쫒는 퇴마사를 양성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퇴마사라면..악마를 퇴치한다는 말일텐데..터부시 되어 왔던 퇴마사가 다시 등장한다는 것은 그만큼 세상이 혼란에 빠졌다는 말과도 상통한다고 본다. 정신적 공황상태나 환각상태의 사람들을 치료하는 게 퇴마사의 역할이 될테지만..지금의 큰 악마는 귀신 자체라기 보다는 돈으로 모든걸 해결 하려 들고, 신을 더 이상 무서워 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아닐까..이책을 보며 생각하게 됐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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롱기누스의 창...
어릴때부터 교회를 다녀왔고 지금도 쭉 다니고 있는 나로썬 롱기누스의 창이란 책을 알게됐을때 참 흥미있고 관심이 생겼었다.
사실 그렇다고 해도 나역시 롱기누스의 창 하면 그냥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혔을때 롱기누스란 로마병사가 창으로 찔른거 정도의 내용만 알고있었을뿐.. 자세하게는 알지 못했지만 말이다.
사실 전세계적으로 가장 많은 사람들이 믿고있는 종교이기도 하고 영향력도 커서 많은 관심과 주목을 받고있기도 한 종교인 기독교에 관련된 팩션 소설이 나왔다.
아르노 들랄랑드 유명한 프랑스의 시나리오 작가이자 소설가.. 단테의 신곡 살인에 이어 롱기누스의 창이란 파격적인 내용을 가지고 팩션소설의 새로운 지평을 연 그의 소설이 많은이의 주목을 끌고있다.
책의 내용은 예수가 십자가에 못박혀 있는 골고다 언덕에서 시작된다. 롱기누스가 명령을 받고 예수를 창으로 찔른 순가 피와 물이 나온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눈을 뜨는것을 보게되고 모두가 떠난 후에도 혼자 남아 몽롱한 상태로 양피지에 모든 사실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2006년 주디스 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세계는 양피지에 적힌 롱기누스의 기록을 토대로 하나하나 실마리를 찾아간다. 그리고 주디스는 직접 롱기누스 창 발굴 작업에 참여하게 되고 발견하게 되지만 참여한 사람중 1명 빼고 모두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게 된다.
하지만 그것은 악수스문디라는 조직의 무서운 계획이란 것을 알게된다. 악수스 문디는 롱기누스 창의 예수의 DNA를 추출해서 예수를 복제하려는 무시무시한 음모를 계획하고 있었고 엄청난 노력끝에 신의 부활직전까지 끝마쳤다. 주디스와 군대가 그들을 습격하지만 이미 자궁실험까지 끝난뒤였고.,
이 소설은 단지 예수의 부활이라는 단순한 흥미위주의 소설도 아닌것이 현대의 과학 발전의 문제점을 내포하고 있다. 이런 무섭고도 윤리적인 과학의 발전의 문제를 이 책에서 다루어 놓아 다시 한번 과학 발전의 올바른 방향을 제시해 주고 있다.
이 책을 읽으면서 느낀 가장 큰 점이 있다면 예수의 부활이라는 실험소재는 너무도 파격적이고 무엇보다 절대 해서는 안되는 실험인것 같다. 아무리 인간의 과학기술이 발전해도 말이다.. 인간이 아무리 잘났어도 신의 영역을 침범하는 일은 해서도 안되고 무엇보다 기독교의 역사를 한순간에 물거품으로 만들어 버리기 때문이다.
과학은 인간을 좀 더 편하고 안락한 삶을 위해 존재 한다. 그러나 인간의 존엄성이 위협받고 더이상 과학이라 할 수 없는 그런 기술은 더이상 과학이 아니라는 것을 새삼 느끼게 된 책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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